한국 코미디계의 거성 배삼룡(82)의 쓸쓸한 말년이 알려져 세간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밀린 병원비를 내지 못해 병원 측으로부터 진료비 청구소송을 당한 것. 지난해 6월 폐렴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서울 아산병원에 입원한 배삼룡은 병원비 1억3000여 만원을 내지 못해 법정소송에 휘말리게 됐다. 이 소식은 그를 아직도 ‘비실이’로 기억하는 이들에게 남다른 애잔함을 주고 있다. 우스꽝스런 모습으로 시청자들을 웃기고 울렸던 배삼룡의 비극적인 말년은 적지 않은 충격인 탓이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희극인의 인생역정을 재조명했다.
‘비실이 배삼룡’ 쓰러진 것도 억울한데 법정소송까지
굴곡진 인생사·가정사 공개되면서 팬들 안타까움↑
“다시 태어나도 삼룡이로 태어나고 싶다.”
수십 년간 ‘비실이’란 캐릭터로 시청자들 곁에 있던 원로 코미디언 배삼룡. 지난 1964년 MBC 코미디언으로 데뷔해 영화 ‘요절복통 007’을 비롯해 ‘운수대통’, ‘마음약해서’, ‘형님 먼저 아우 먼저’, ‘철부지’등의 많은 작품과 각종 코미디 프로그램에 출연해온 코미디계의 산증인이다.
보는 이들을 포복절도하게 만들었던 배삼룡만의 슬랩스틱 코미디를 추억하는 이들은 적지 않다. 그가 유행시킨 ‘개다리춤’은 지금도 코미디언이라면 섭렵해야 하는 첫 번째 과제로 인식될 정도다.
험난한 인생사 공개
이처럼 수십 년 동안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서 즐거운 희극인으로 살아 있던 배삼룡의 말년이 공개됐다. 원로 코미디언의 모습이 아닌 진료비 청구소송을 당한 피소송인의 모습으로.
그의 안타까운 말년이 처음 알려진 것은 지난해 6월이었다. 당시 배삼룡은 폐렴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서울 아산병원에 입원해 중환자실에서 집중치료를 받고 있는 상태였다.
지난 7월에는 MBC ‘기분 좋은 날’이란 프로그램에서 배삼룡의 힘겨운 투병기를 공개해 많은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예전의 장난기어린 모습은 온 데 간 데 없이 43kg의 가냘픈 몸을 산소 호스에 의지한 노인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시 무대에 서고 싶다는 그의 말에서 시청자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배삼룡은 팬들에게 또 한 번 안타까움을 던졌다. 밀린 진료비 때문에 법정소송에 휘말렸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 서울 아산병원은 지난 16일 서울동부지방법원에 배삼룡과 가족을 상대로 체납된 1억3300만원의 진료비를 돌려 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병원 측은 배삼룡이 지난 2월부터 특실로 옮겨 치료를 받으면서 제때 정산하지 못해 입원비, 진료비 등이 체납됐다고 소송의 이유를 밝혔다. 이어 병원 측은 소송과 별도로 배삼룡에 대한 치료는 계속 이뤄지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배삼룡 측은 입원 초기 비용을 꼬박꼬박 납부했지만 특실로 옮긴 뒤 진료비가 크게 불어나면서 체납 지경에 이른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같은 배삼룡의 기구한 처지는 팬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했던 그의 코미디언 시절을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낯선 모습으로 비춰진다. 그러나 배삼룡의 실제 인생은 브라운관 안의 모습과는 달리 눈물로 얼룩져 있었다. 관객을 웃기기 위해 우스꽝스런 분장과 몸짓으로 무대에 섰지만 무대 뒤에서는 남몰래 눈물을 삼켜야 했다.
무대에 서고 싶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어머니의 지갑에서 돈을 훔쳐 집을 나온 배삼룡은 유랑극단의 밑바닥에서부터 희극인의 인생을 시작했다. 그 후 길고 긴 무명시절을 거쳐 유랑극단의 스타로 선 배삼룡의 배우 인생은 TV가 등장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1964년, 지상파 코미디 프로그램에 출연하기 시작해 ‘웃으면 복이와요’, ‘쇼반세기’, ‘부부만세’등을 거치며 일약 국민스타로 도약하게 된다. 당시 구봉서, 서영춘과 함께 트로이카 체재를 구축한 배삼룡은 당대 최고의 별로 떠올랐다.
그의 인기를 보여주는 일화 중 하나는 ‘배삼룡 납치사건’이다. 1973년 MBC와 TBC가 배삼룡을 스카우트하기 위해 대낮에 납치극을 벌인 것. 그는 명실 공히 방송가 최고의 블루칩이었다.
이처럼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던 배삼룡의 인기도 차츰 식어갔다. 게다가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제5공화국은 그를 ‘저질 코미디언’으로 몰아세웠고 급기야 TV에서 퇴출됐다. 이후 배삼룡은 홀연히 미국으로 잠적해 팬들의 궁금증을 자아내기도 했다. 사생활도 순탄치만은 않았다. 두 번의 이혼과 사업실패를 겪으며 심신도 지쳐갔다.
그러나 그의 몸속에는 여전히 희극인의 피가 끓고 있었다. 1990년대에 들어서는 다시 무대에 서기도 했다. 공연 ‘그 시절 그 쑈’, ‘눈물의 여왕’ 등에 출연하며 마지막 남은 코미디언으로서의 열정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하지만 변한 세상은 더 이상 그의 코미디에 웃어주지 않았다.
건강도 점차 악화됐다. 1990년대부터 중반부터 앓아온 흡입성 폐렴은 결국 그의 말년을 초라하게 만드는 결정타를 제공했다. 그리고 지난해 끝내 쓰러져 병실에 입원한 모습으로 팬들에게 돌아오게 된 것.
병실에 누워있으면서도 그는 가정사로 속앓이를 해야 했다. 친아들 배동진 씨와 양아들이자 코미디언 출신 가수인 이정표와의 감정싸움이 표출된 것.
이들의 갈등은 배삼룡의 투병소식을 알린 한 일간지의 보도내용으로 인해 불거졌다. 당시 이 일간지는 이정표가 배삼룡을 극진히 모시고 있다는 사연을 전했다. 20년 전 부자의 인연을 맺은 이정표가 배삼룡과 함께 가족처럼 지내면서 병간호를 해왔다고 보도한 것.
그러나 배동진 씨가 이 보도에 반발하고 나섰다. 그는 “이정표가 아버지의 명성을 이용해 득을 보려고 언론플레이를 했다”며 “양아들로 아버지를 보필한 것은 인정하지만 아버지의 이름으로 자신의 선행을 포장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며 불편한 심정을 전했다.
투병 중에도 속앓이
이후 두 사람은 오해를 풀고 화해한 것으로 종지부를 찍었으나 투병중인 아버지를 사이에 둔 이들의 갈등은 좋지 않은 인상을 남겼다.
투병 중 겪은 또 하나의 비운의 가정사는 세 번째 부인에게 이혼소송을 당한 것. 배동진 씨는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아버지가 투병중일 때 세 번째 어머니 측에서 이혼을 요구했다. 어머니도 투병 중으로 인지 능력이 거의 없는 상태로 어머니의 오빠가 대리인을 자처해 이혼소송을 제기했다”고 밝힌 바 있다.
병상에 누워서도 마음 편할 날이 없던 배삼룡은 끝내 소송에 휘말리는 처참한 모습까지 보여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코미디를 기억하는 팬들은 마음속에 영원한 광대 ‘비실이’로 남아있기에 그가 병을 떨치고 다시 한 번 무대에 서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