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파티, 송년회 등 각종 모임이 많은 시기다. 이런 때에 더욱 외로운 사람들은 짝이 없는 싱글족이다. 찬바람에 허전한 옆구리는 더욱 시리기만 하다. 이 때문에 연말이면 유난히 애인 만들기에 혈안이 된 남녀가 넘쳐난다. 나 홀로 크리스마스를 맞지 않으려고 급히 소개팅을 잡는가하면 여행카페 등 솔로남녀가 많이 찾는 인터넷동호회에 가입해 애인을 만들기도 한다. 잠시라도 파트너가 필요한 이들은 돈을 들여서라도 애인을 만들기 위해 애인대행 사이트를 찾기도 한다. 연말이면 이들 사이트가 더욱 분주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3년 동안 여자친구 없이 지낸 31세의 정모씨. 이번 연말도 애인 없는 동료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신세한탄이나 하다 새해를 맞는 그림이 머릿속에 그려지자 마음이 다급해지기 시작했다.
올 크리스마스만큼은 혼자 보내지 않을 거라는 결심을 한 정씨는 모든 인맥을 동원해 소개팅 주선을 부탁했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이 소개팅에서는 자신의 짝을 만날 수 없었고 마지막 수단으로 애인대행 사이트를 찾았다. 돈을 받고 애인역할을 해 주러 나온 여성이지만 혹시라도 운명의 짝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란 순진한 생각에서였다.
이에 정씨는 P모 사이트에 들어가 여성들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여성들의 사진과 간단한 프로필을 살펴보던 정씨는 “좋은 인연 찾아요”라는 제목으로 사진을 올린 여성을 선택했다. 사진발임을 감안하더라도 수준급의 외모인데다 다른 여성들과 달리 조신하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진짜 애인이라면…”
정씨는 이 여성과 연락을 주고받았고 지난 7일 있었던 한 모임에 참석해 달라는 부탁을 했다. 파트너를 동반하는 모임이라 불참하려고 생각했던 모임이었다. 대행비는 7만원으로 합의를 봤다. 그리고 이날 저녁 7시, 정씨는 떨리는 마음으로 대행녀를 만났다. 사진보다는 못하지만 누가 봐도 미인이라고 할 만한 얼굴에 모임과 잘 어울리는 말끔한 옷차림으로 나타난 대행녀를 보자 마자 정씨는 ‘진짜 애인으로 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3시간 동안 마치 진짜 여자친구처럼 정씨에게 살갑게 굴던 대행녀에게 마음을 빼앗긴 정씨. 맥주 몇 잔으로 기분 좋게 취기가 오르자 대행녀가 더욱 예뻐 보였고 모임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고 한다. 그러나 약속한 시간이 끝나자 대행녀의 얼굴에 시종일관 떠나지 않았던 미소가 사라졌다. 약속한 돈을 받은 대행녀는 고맙다는 짤막한 인사를 끝으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정씨를 떠났다. 그제야 번쩍 정신이 든 정씨는 이런 만남으로 애인을 찾으려 했던 자신을 원망하며 자리를 떠났다고 한다.
정씨처럼 한해의 마무리를 누군가와 함께 하고픈 싱글족들 중 애인대행 사이트를 찾는 이들이 증가하고 있다. 특히 커플들의 천국이라 할 수 있는 크리스마스가 다가올수록 사이트를 향한 절박한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모 애인대행 사이트에서도 애인을 구하는 사람들과 일자리를 구하는 사람들의 글이 쏟아지고 있었다. “귀여운 여대생 좋은 인연 찾아요”, “당신의 빈자릴 채워드립니다”, “원하시는 건 다 해드려요”, “사진 보고 연락 주세요. 후회 없음”, “연말 모임 파트너 돼 드려요”등 많은 여성들이 애인대행녀로 간택되길 바라며 글을 올리고 있었다.
연예인 수준의 사진과 키, 몸무게 등 신체사이즈와 함께 시급 또는 건당 받고 싶은 금액을 올려 남성들의 눈길을 끌기도 했다. 일부 여성들은 함께 여행을 가거나 장기 스폰서를 구한다는 글을 올려놓기도 했다.
애인대행으로 돈을 버는 것은 여성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남성들도 자신의 사진과 프로필을 올리고 애인대행 알바에 뛰어들고 있다.
옆구리 시린 싱글족, 연말 맞아 애인대행사이트 이용 급증
여성들, 성매매·성폭행 등 각종 범죄 타깃 ‘경계주의보’
이들 중 한 남성인 A씨는 얼마 전 애인대행 아르바이트를 하며 겪었던 일화를 올려놓기도 했다. 상대 여성이 A씨에게 바라는 것은 ‘전 남자친구’의 역할을 해달라는 것. 이유인즉슨 현재 사귀는 남자친구가 자신에게 소원해진 것 같으니 질투심을 유발시키도록 해달라는 것.
다소 황당한 제안에 망설인 A씨는 밀린 카드값을 생각하며 이 여성의 부탁을 충실히 실행해줬다. 의뢰인이 만든 시나리오는 자신이 남자친구와 길을 걸을 때 갑자기 나타나 자신에게 ‘다시 만나 달라’고 매달리라는 것. 어색함을 무릅쓰고 생전 처음 각본에 짜여진 연기를 한 A씨는 무사히 의뢰인에게 약속한 돈을 받았다고 한다.
이런저런 이유들로 연말 애인대행 사이트들은 호황을 누리고 있다. 대목을 놓치지 않으려는 업체들의 홍보전도 극에 달했다. 시도 때도 없이 ‘새로운 회원이 가입했습니다’, ‘좋은 인연을 찾으세요’등의 스팸문자와 메일을 보내기도 한다.
문제는 여전히 극성을 부리는 비건전 만남, 즉 성매매다. 일부 애인대행 사이트가 성매매가 일어나고 있는 것을 묵인하는 방식으로 성매매를 조장한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성매매도 공공연히
실제 모 애인대행 사이트에 가보면 ‘조건만남’을 암시하는 글을 올려놓고 성매매를 할 뜻이 있음을 내비치는 여성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성매매 특별법으로 남성들이 성매매를 할 수 있는 통로가 점차 줄어들면서 인터넷을 통한 성매매는 더욱 기승을 부리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를 통한 성매매가 대부분 일대일로 만나 은밀하게 이뤄지기 때문에 단속마저 쉽지 않아 성매매의 규모조차 파악하기 힘들다.
또 여성의 경우 애인대행을 해주고도 돈을 받지 못하거나 갈취, 성폭행 등의 범죄를 당할 수 있다는 위험성도 감수해야 한다. 특히 비디오방 등 은폐된 공간에서는 더욱 주의를 기울어야 한다. 들뜬 연말 분위기 속에서 안심하고 처음 보는 남성과 만나기엔 흉흉한 세상인 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