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택 수석부의장은 1961년 민주청년회 경남위원장을 역임, 1957년 신민당 소속으로 제7대 국회의원 당선됐다. 이후 내리 8·9·10·12대 국회의원을 역심, 신민당 사무총장과 부총재까지 역임하면서 중진의 반열에 올랐다. 당시 양김(김대중·김영삼) 같은 거물급 틈새에서 자신의 계보까지 조직했을 정도다.
이후 전두환이 4·13 호헌조치를 발표하자 이에 항의하여 15일간 단식했다. 6월 항쟁 이후, 여당이 직선제 개헌을 받아들이자, 비로소 통일민주당에 입당하여 부총재를 역임, 13대 총선에서 당선되었다.
또 1992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시 대통령 선거에서 낙선하고 정계를 은퇴하자, 일약 야당총수가 됐다. 1993-1994년에는 제1야당의 총수로서 전성기를 누렸으나, 당내 최대 지분을 소유하고 있던 동교동계와 번번이 신경전을 벌이며 주도권 다툼을 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15대 총선에서 패배했고, 1997년 고향 포항의 보궐선거에도 출마했지만 ‘금배지’를 달지 못했다.
특히 2002년 부산상공 후배이자 동지인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지지했고, 참여정부 노선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내며 17대 대선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을 지지하기도 했던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