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절체절명 위기에 내몰린 사연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졌다. 노건평 씨 구속에 이어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과 정대근 전 농협회장이 구치소 신세를 지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검찰의 수사가 ‘전초전’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참여정부 핵심 인사들에 대한 로비 의혹이 여전히 베일에 쌓여있어서다. 이 때문에 노 전 대통령의 ‘맘고생’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침묵으로 일관하며 김해 봉하마을에서 참여정부에 대한 사정향배를 지켜보고 있을 뿐이다. 정치권에서는 친노인사들이 위기에 내몰린 만큼 친노세력 와해 등 노 전 대통령의 입지가 많이 줄어들 것이라고 관측하고 있다. 결국 노 전 대통령에게 봉하마을은 지금 유배지 아닌 유배지인 셈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형 건평 씨 구속으로 침묵모드로 돌입했다. 그의 정치적 위상도 이젠 절대적 추락 위기에 빠진 셈이다. 노 전 대통령은 형 건평 씨의 구속과 관련해 일절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다만 참담하고 굳은 표정만을 짓고 있을 뿐이다. 노 전 대통령은 온종일 내부에서 모습을 나타내지 않고 있다.

실제 농협의 세종증권 인수 비리와 관련, 형 건평 씨의 구속으로 노 전 대통령은 봉하마을 ‘방문객 맞이 행사’도 지난 12월5일부터 중단했다. 일주일에 하루를 빼고 매일 두 차례 이상 방문객들과 대화하고 사진을 찍는 일도 없어졌다. 이는 노 전 대통령의 심기가 간접적으로 드러난 것.

황폐해진 봉하마을
측근 인사들 줄줄이 구속

이에 따라 노 전 대통령을 보기 위해 봉하마을을 찾던 관광객들의 발길도 뚝 끊겼다. 노 전 대통령 얼굴에는 착잡함과 침통함이 . ‘친인척 게이트는 없다’며 참여정부의 도덕성만큼은 자신하던 그는 이제 더 이상 기댈 것도 바랄 것도 없는 칠흑같은 어둠에 빠진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은 “형 건평 씨 사건에 대해 아무 할 말이 없다”며 “지금 국민들한테 사과를 해야 되지 않느냐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전직 대통령으로서 도리도 있겠지만 형님의 동생으로서 도리도 있다”고 형이 구속된 마당에 어떠한 말도 할 입장이 아님을 밝혔다.

이어 그는 “형님이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고 있는데 내가 여기서 사과를 해버리면 피의사실을 인정해버리는 결과가 될 수 있어서 국민들에게 뭐라 말씀도 드리기 어렵다”며 “전직 대통령으로서 국민에게 해야 할 도리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한 사람의 가족으로서, 동생으로서 도리도 있는 것 아니냐. 모든 사실이 다 확정될 때까지는 형님의 말을 부정하는, 앞지른 판단을 말하거나 할 수는 없는 처지”라고 마지막으로 그를 찾아온 사람들에게 이해를 구했다.

그도 그럴 것이 노 전 대통령은 참여정부 초기에 “청탁하다 걸리면 패가망신시키겠다”며 측근 인사들의 부정 비리에는 가차없는 조치를 취하겠다는 발언을 했었다.


그러나 정권이 바뀐 후 속속 들어나고 있는 자신의 측근비리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켰다. 노 전 대통령은 임기 때부터 유독 측근들의 비리에 대해서는 사과를 주저하는 경향을 보였다. 최도술, 안희정 등 ‘측근비리’가 터져 나왔을 때 노 전 대통령은 “내가 감독하고 관리해야 할 사람들의 잘못에 대해서는 내가 책임져야 한다. 그러나 이 사람들이 대선 이후에 저지른 어처구니없는 실수에 대해 나도 마음이 아프고 용서하기 어렵다. 그 사람들이 치부나 축재를 하기 위해 돈을 모은 게 아니라 대통령의 체면치레를 위해 앞으로 필요하지 않겠느냐고 생각해 알아서 관리했던 것으로 본다”고 애써 두둔했다.

실제 남상국 전 대우건설 사장이 형 건평 씨에게 수천만원을 주고 청탁을 했을 때도 화살은 남 전 사장을 향했다. 사실상 건평 씨에게 ‘면죄부’를 준 셈이다. 남 전 사장은 끝내 자살을 택했다. 자신의 발언으로 인해 그런 일이 생길 줄은 그도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상황이 이런 가운데 검찰은 참여정부 핵심 인사들을 향해 사정의 칼날을 들이밀고 있다. 조만간 노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이강철 전 청와대 정무특보도 소환할 예정이어서 측근들에 대한 형사처벌이 줄을 이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 구속된 건평 씨에 대한 검찰 수사내용을 살펴보면 건평 씨는 동생인 노 전 대통령의 생각과는 다른 역행보를 걸어 온 것으로 나타났다. 2004년 3월 노 전 대통령이 탄핵 파문에 휩싸였을 때 건평 씨는 자신의 회사인 정원토건에서 10억원을 빼내 리얼아이디테크놀러지에 차명으로 주식투자를 했다. 동생의 정치생명이 오락가락하는 상황에 고수익을 노리고 회사 돈으로 주식 투자를 한 셈이다.

건평 씨가 리얼아이디테크놀러지의 유상 증자에 참여해 주식을 교부받은 시점은 3월11일. 다음날인 3월12일 국회에서 당시 야3당은 노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의결했다. 그후 건평 씨는 또 한 번 일을 저질렀다. 세종캐피탈 측이 로비성공사례금으로 건넨 30억원 중에서 10억5000만원을 투자한 경남 김해시의 사행성오락실이 개장한 시점은 2006년 7월. 검찰은 이 오락실을 건평 씨와 정화삼 씨 형제의 공동재산으로 보고 있다.

이때는 ‘바다이야기’ 등 사행성게임이 전국에 유행병처럼 번져 이를 방치한 참여정부가 여론의 비판을 받던 때였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도둑을 맞으려니 개도 안 짖더라”며 사행성 오락의 폐해를 미리 감지하지 못한 정부시스템을 개탄하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던 때였다. 형인 건평 씨는 당시 사행성오락실 개장에 깊이 연루돼 있었다.

태광실업 박연차 회장은 1971년 나이키 상표 신발 제조로 유명한 태광실업의 전신인 정일산업을 경남 김해에 세우면서 당시 세무공무원이었던 건평 씨와 처음 인연을 맺었다.


그는 노 전 대통령이 88년 부산에서 국회의원 후보로 나섰을 때, 동생 선거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건평 씨가 내놓은 김해 땅을 사들였다. 17대 대선을 앞둔 2002년에는 건평 씨가 동생의 대선 출마를 돕겠다며 내놓은 거제 부동산도 샀다. 김해상공회의소 회장이던 그는 당시 부산 경남 일대에서 현금 동원력이 가장 높은 재력가로 알려진 인물이었다.

“뗄레야 뗄 수 없다”
3인방과 얽히고설킨 사연

‘지역 유지’이던 박 회장이 ‘전국적’으로 이름을 알린 것은 2003년 대선자금 수사 때다. 박 회장은 노 전 대통령의 측근 안희정 씨에게 7억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건넨 혐의로 기소돼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정치권에서는 이 때문에 ‘대통령의 후원자’라는 명성을 얻어 승승장구하기 시작했다는 말이 나돈다. 노 전 대통령 주변에서는 박 회장이 ‘기피 대상’이었다는 말도 나오지만, 그와 참여정부의 인연은 계속 이어진다.

박 회장의 셋째 딸은 2003년 청와대 국정상황실에서 일하기도 했다. 또 2006년 5월 부인과 회사 임직원 등 5명의 이름으로 열린우리당 의원 20여명에게 300만~500만원씩 모두 9800만원의 후원금을 냈다가 벌금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그는 지난해 10월 2차 남북정상회담 때 대기업 총수들과 함께 북한 방문단에 끼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이 퇴임을 앞두고 마련한 봉하마을 사저 터는 박 회장의 최측근인 정모씨 이름으로 돼 있던 땅을 사들인 것이다. 박 회장이 검찰의 소환조사를 받으면서 그의 ‘입’은 태풍의 핵으로 떠오르고 있다.

현재 구속수감중인 정대근 전 농협 회장과의 유착관계를 이용해 농협의 자회사인 휴켐스를 인수했다는 의혹이 밝혀짐으로써 관심의 초점은 박 회장의 ‘정·관계 커넥션’ 여부에 맞춰지고 있다. 정 전 회장이 50억원을 참여정부 인사들에게 줬다고 진술함으로써 향후 이들 역시 검찰 문턱을 들락거릴 수밖에 없는 처지다.

친노 인사 줄줄이 소환
노무현·친노세력 최대 위기

이 때문에 노 전 대통령 일가와 농협과의 ‘인연’에 새삼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 인연은 참여정부시절 국정감사 과정에서 여러 차례 논란을 불러일으켰을 정도로 각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7년 국감에서 한 야당의원은 “노무현 대통령과 정대근 농협중앙회장은 남다른 친분을 지니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젊은 시절 노 전 대통령은 부산상고 졸업 후 농협 입사시험에 응시했다가 떨어진 경험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 전 대통령 당선직후 부산상고 동기생들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노 당선자가 젊은 시절 농협 입사시험에 낙방한 후에 어망회사에서 일하기도 하는 등 역경을 극복했다”고 회고한 바 있다.

대통령 당선 직후인 지난 2002년 12월25일 열린 노 전 대통령의 아들 건호 씨 결혼식장에는 5개의 화환만 놓였는데 그중의 하나가 정대근 전 농협중앙회장의 것이었던 것만으로도 두 사람의 관계는 익히 짐작할 수 있다.

앞서 건호 씨는 결혼 발표 기자회견에서 “장인 될 분은 경남 김해에서 농협 전무를 지내다가 퇴직했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농협측은 노 당선자에 대해 대대적인 축하광고를 도하 언론에 게재하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 사돈인 배병렬 씨는 모 단위농협 전무 출신으로 노 전 대통령과 사돈을 맺은 지 한달만에 농협중앙회 자회사로 농협이 60%의 지분을 쥔 농협CA투자신탁(현 NHCA자산운용)의 비상임감사로 임명됐다.


또 6개월 후에는 상임감사가 됐으며 감사위원장으로 재직하다 얼마 전 사표를 낸 것으로 확인됐다. 농협 구조조정에 따라 8일 자회사 임원 50여명이 일괄 사표를 내면서 함께 사직서를 제출한 것.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친노세력 인사들에 대한 의혹들이 검찰 ‘레이더망’에 줄줄이 포착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노 전 대통령 측과 친분이 두터운 정 전 회장의 입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차제에 친노세력이 완전 와해되지 않겠느냐는 말들이 나돌고 있다. 여기엔 특히 386 정치인들이 대거 연루됨에 따라 친노진영은 ‘초토화’ 위기를 맞을 공산이 크다.

그간 친노세력은 ‘독자 신당’을 구상할 정도로 세를 확장하는 한편 주군인 노 전 대통령과 더불어 예측 불가능한 행보를 보여왔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검찰 수사 레이더망에 친노인사들이 대거 걸려들면서 ‘독자 신당’은 커녕 ‘친노세력 부활’도 먼 나라의 얘기라는 게 정치권의 일반적인 관측이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친노인사들은 궁극적으로 독자세력화를 꿈꿔왔다”며 “검찰 사정칼날로 인해 친노세력은 물론 노 전 대통령의 입지까지 축소돼, 당 내부에서는 노 전 대통령과의 인연을 끊어야 된다는 말까지 나온다”고 설명했다. 이는 민주당에서 배척 아닌 배척을 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또 친노 내부에서도 친노인사들 간의 결집이 잘 되지 않고 있다는 말까지 전해지고 있다. 친노 핵심인사들이 바쁘다는 일정으로 모임에 빠지기는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이 모임에 참여하지 않으려는 의도가 있는 것 같다고 해석하는 이들도 많다. 그만큼 사정이 만만치 않다는 사실을 입증해주는 대목이다.

자신을 지지하고 뒷받침해주는 세력이 완전 와해될 경우 가장 곤경에 처하는 이는 다름 아닌 노 전 대통령. 하지만 과거 행적에서 보듯 가장 어려움에 처했을 때 진가를 발휘했던 것도 역시 ‘역전의 용사’ 노 전 대통령이었다. 심지어 탄핵 위기에까지 내몰렸다가도 불사조처럼 되살아나 마지막 임기를 마쳤던 노 전 대통령이기에 이번 위기 역시 어떻게 극복해낼지에 초미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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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 상병 특검’ 공수처 불편한 속내

‘채 상병 특검’ 공수처 불편한 속내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채 상병 특검’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야권의 4·10 총선 압승으로 더불어민주당의 움직임에도 속도가 붙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난감하기만 하다. 부족한 인력으로 인해 수사의 첫 단추도 끼우지 못하는 실정이다. 발 빠른 수사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공수처 안팎에서는 정치권의 책임 떠넘기기에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조직이 와해되기 직전인데 수사에 속도가 어떻게 나겠느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출신 한 변호사의 말이다. 요즘 공수처의 분위기는 참혹하다. 해병대 ‘채 상병 사건’으로 반전을 꾀하고 싶어도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특별검사(이하 특검) 목소리가 거세지면서 ‘비교 대상’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대통령실 압수수색? 채 상병 사건 특검법 추진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공수처의 분위기는 암흑 상태다. 검찰 제도를 보완해 ‘상설특검’ 명목으로 출범했음에도 ‘늑장·부실’ 수사 논란 속에 결국 사건 기록을 특검에 넘겨줘야 하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오는 5월2일, 임시국회를 열어 법안을 표결하자는 분위기다. 법안 통과를 위해서는 국회의장과 여당의 협조가 필요한데, 총선 이후 여당 일각서도 채 상병 특검에 동의하는 분위기가 표출되고 있다. 채 상병 특검 법안은 지난해 10월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뒤 180일의 숙려 기간을 거쳐 본회의 표결만 하면 언제든 통과할 수 있는 상황이다. 채 상병 사건 수사 갈래는 크게 두 가지다. 무리한 수색 지시 등 책임자를 가리는 본안 수사가 경북지방경찰청서 진행 중이고, 해병대 수사단의 초동 조사에 국방부와 대통령실 관계자가 개입했다는 외압 의혹은 공수처가 맡고 있다. 외압 핵심 피의자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주호주대사로 임명돼 부임 후 사퇴하는 과정서 대통령과 법무·외교부 장관의 직권남용 의혹도 공수처에 추가로 고발됐다. 야권이 특검을 통해 밝히려는 사안의 실체는 수사 외압에 집중돼있다. 특검이 통과되면 공수처가 내려던 실적이 특검으로 넘어가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민주당은 이 대사 임명 과정서의 추가 의혹도 특검법안을 수정 발의해 포함할 계획이다. 공수처는 수사의 무게를 일부 덜겠지만, 6개월 넘게 진행해온 사건 기록을 외부에 넘긴다는 건 또 다른 비판의 빌미를 제공하는 셈이다. 특검 추진 본격화…수사팀 의욕 잃어 “이럴 거면 왜 강조하나” 불만 증폭 공수처 출신 한 변호사는 “인력난 때문에 고전하는 상황이다. 내부 얘기를 들어보면 ‘죽을 맛’이란다. 채 상병 사건 수사는 최선을 다하려 했는데 특검이 언급되면서 수사팀의 의욕이 상실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수처법상 수사 범위와 인원 범위가 지나치게 제한돼있어 실질적인 수사 기능을 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설명이다. 공수처법은 공수처의 수사 범위를 현직 공직자와 그 가족, 퇴임 3년 이내 전직 고위공직자로 한정하고 있다. 공수처 검사와 수사관의 인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현재 공수처법이 규정하고 있는 검사와 수사관의 규모는 처·차장 포함 검사 25명, 수사관 40명이다. 공수처법을 추진할 당시 규모는 검사 30~50인, 수사관 50~70인이 제안됐지만 법무부와 국회의 논의를 거치면서 현재 정원으로 대폭 감소했다. 공수처 관계자는 “총선과 무관하게 지속적으로 인원 확대와 관련해 국회와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며 “검사의 신분보장을 위한 임기에 대해서도 개선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앞서 공수처는 최소한의 행정인력이라도 확보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 달라고 호소한 바 있다. 현행법상 행정인원 정원은 20명인데 지난 2022년 공수처는 행정직원 중 국·과장과 직제 파견자 등 7명을 제외하면 실제 가용인원이 13명에 불과해 수사관을 행정인력에 투입해야 할 상황에 놓인 바 있다. 공수처가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법 개정이 필수적이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특히 공수처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일치시켜 수사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수처는 ‘공수처법상 기소권 없는 사건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연구용역’을 발주하는 등 수사 대상과 기소 대상의 불일치로 발생하는 구속영장 논란을 정리하기 위한 연구에 착수하기도 했다. 인력난 가중화 지금까지 공수처가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한 상황을 보면 초기 단계에 불과하다. 지난해 12월 이 전 장관 등을 출국금지했고, 한 달 후인 지난 1월 압수수색에 착수했다. 이후 포렌식과 참고인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 전 장관을 비롯한 국방부 지휘부와 해병대 수뇌부 등에 대한 조사는 특검의 몫이 될 가능성도 있다. 경우에 따라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등으로 특검 수사가 확대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공수처와 경찰은 특검법 처리 여부를 주시하며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총선 국면서 논란의 중심에 선 공수처는 수사를 신속하게 진행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겠다는 입장이다. 공수처 지휘부 공백 상태가 영향을 줄 여지도 있다. 주요 피의자 소환 및 신병처리 등 주요 의사결정을 처장 대행인 부장검사가 결정하기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다. 만약 국회서 여야가 특검법 처리에 합의하는 수순을 밟으면 공수처도 새로 출범할 특검에 기록을 인계하기 위한 작업에 중점을 둘 가능성이 크다. 현재 본회의에 회부된 안은 민주당이 지난해 9월 발의한 법안이다. 민주당이 지난 3월, 이 전 장관이 주호주대사로 임명된 경위를 수사해야 한다는 별도의 특검안도 국회에 제출했기 때문에 이 두 법안이 병합되는 안도 거론된다. 본회의 회부 안건은 수사기간을 최장 100일로 정하고 있는데, 잔여 수사를 검찰에 이첩하도록 명시됐다. 경찰과 공수처가 시작한 수사가 특검을 거쳐 검찰 손에 넘어가는 것은 부자연스럽다는 말도 나온다. 민주당이 3월 발의한 안은 잔여수사 이첩 대상을 검찰과 공수처로 정했다. 단추도 못 끼워 민주당이 특검법 조항 일부를 양보하고 국민의힘이 수사 대상 확대에 동의하는 시나리오도 정치권을 중심으로 나온다. 이런 과정서 본회의 회부 안이 조정될 수도 있다. 이 가운데 이 전 장관은 최근 변호인을 통해 공수처에 “소환조사를 진행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 전 장관 측이 공수처에 소환조사를 요청한 것은 이번이 네 번째다. 이 전 장관 측 김재훈 변호사는 최근 공수처에 소환 촉구 의견서를 내고 “이 전 장관은 호주 대사직서도 물러났으나 공수처는 지금까지도 아무런 연락이 없다”며 “공수처의 이런 수사 방기 탓인지 정치권에서는 특검 필요성까지 제기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공수처에 보낸 의견서에서 “이첩 보류 지시는 직권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국방부 장관은 민간 수사기관으로의 사건 이첩에 대한 최종 승인권자이므로 인사권자가 인사안 결재 후 이를 취소·변경할 수 있듯이 그 승인을 변경할 수 있다”며 “해병대 수사단장에게 수사 권한이 있다느니, 수사단장에게 민간 수사기관으로의 이첩 권한이 있다느니 하는 것은 법 규정의 몰이해로부터 비롯된 억지”라고 주장했다. 이 전 장관 측은 ‘이 장관이 보고서를 회수하라고 지시하기 전에 대통령실 내선번호로 전화를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이 전 장관 측은 “이 전 장관은 대통령으로부터 (사단장을 빼라는)지시를 받은 사실이 없다”며 “당시 장관이 군사보좌관과 논의하는 과정서 ‘(초급 간부들까지 처벌 대상에 포함한다면)초급 간부들이 힘들어할 것 같다’는 의견을 나눴고 법무관리관실의 법리 검토를 거쳐야 한다고 판단해 이첩 보류를 지시했다”고 강조했다. 수사 인원 범위 제한적 법 개정 안되면 도루묵 이어 “재검토한 결과 8월24일 직접적인 혐의가 있는 2명을 경찰에 이첩했고, 해병대수사단 조사기록 원안도 그대로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 전 장관 측은 민주당이 추진하는 ‘채 상병 특검’도 비판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공수처의 1차 수사 결과도 나오지 않은 상황인데 무엇이 미흡하고 국민적 의혹이 남아 해소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냐”며 “특검 논란을 잠재울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은 공수처의 신속한 수사와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공수처 수장이 석 달째 공석인 점은 제도 지속 가능성에 의문을 더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최종 후보자 지명을 두 달 가까이 미루고 있다. 앞서 국회 공수처장후보추천위원회는 지난 2월29일 판사 출신 오동운(사법연수원 27기) 변호사와 검사 출신 이명순(연수원 22기) 변호사를 후보로 추천했다. 김진욱 전 처장과 여운국 전 차장이 임기 만료로 퇴임해 공수처가 ‘대행 체제’에 들어간 건 지난 1월 말부터다. 김선규 수사1부장이 처장 대행을 맡고 있지만, 지난달 제출한 사직서가 수리되지 않아 임시로 대행직을 수행 중이다. 최근 인사위원회서 연임이 불발된 수사1부 소속 김송경 검사(사법연수원 40기) 임기도 만료됐다. 김 대행이 이끄는 수사1부는 공기광 검사만 남게 된다. 별도 조직개편 계획도 없어 수사 부서 1개가 사실상 사라질 위기다. 윤 대통령이 공수처장 후보자를 지명해도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해야 임명이 가능하다. 21대 국회 임기는 내달 29일까지다. 22대 국회가 개원해도 원구성에 시일이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신속한 공수처장 공백 해소를 위해선 이달 안으로 후보 지명을 마쳐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수장 공백 장기화 우려 법조계에서는 특검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공수처법에 따르면, 공수처는 이 전 장관에 대한 수사권은 있지만 기소 권한이 없다. 수사를 마친 뒤 검찰에 사건을 넘기고 검찰이 기소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 구조다. 공수처 출범 당시 수사·기소권을 모두 줄 경우 일각에선 ‘무소불위 공수처’가 될 거란 우려가 제기되면서 공수처는 법관, 검사, 고위 경찰공무원에 대해서만 제한적 기소권을 갖게 됐다. 문제는 검찰이 채 상병 사건 기소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검찰을 관할하는 법무부는 지난달 8일, 공수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 전 장관의 출국금지를 해제했다. 사건 처리의 중립성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특검을 통해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