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표와 정몽준 최고위원간의 잠행 행보가 연일 계속되고 있다. ‘MB 후계자’를 노리기 위한 행보다. 이 때문에 한 지붕 아래서 벌이는 이들의 잠행 행보는 정치권의 눈길을 모으고 있다. 여기에는 반드시 단서조항이 붙는다. 박 전 대표는 MB와의 관계를 청산을 추구하는 반면, 정 최고위원은 MB를 지근거리에서 보필한다는 것이다. 이들의 엇갈린 행보를 추적해봤다.
MB정부가 최대 위기에 봉착하면서 차기 대권 후보들의 잠행 행보도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와 견제 양상으로 변화되고 있어서다. 여기에 박근혜 전 대표와 정몽준 최고위원 등이 차기 대권 플랜을 가동하면서 한나라당 대권 판도는 2파전으로 치닫고 있다.
특히 ‘박근혜 역할론’이 군불 때기에 그쳐, 박 전 대표는 차기 대권 후보주자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한 상태다. MB정부의 신뢰가 바닥에 떨어져 있는 만큼 박 전 대표 측은 잠행행보를 취하며, 여당 내 야당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어서다. 이른바 ‘반 이명박 전선’을 형성하고 있는 셈이다.
달라도 너무 다르다
실제 ‘월박’, ‘복박’ ‘주이야박’이라는 신조어가 탄생했다. 심지어 친박계 인사들이 더 많다는 얘기가 들릴 정도로 ‘세 불리기 작업’이 한창이다. 또 지금까지 함께 해온 이 대통령의 보이지 않는 실세가 박 전 대표 측 핵심인사로 활동하고 있어, 이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우기 위한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친박계 관계자는 “MB 정부 임기가 만료될 경우 이 대통령은 차기 대권 후보를 암묵적으로 지명, 지지할 가능성이 높다”면서도 “이 대통령이 박 전 대표를 지지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물론 이 같은 발언은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와의 이별 가능성만을 시사한 것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러나 ‘만년 2인자’로서의 역할만을 해왔던 박 전 대표가 이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워, 지방선거를 전후로 차기 대권 후보로 군림하겠다는 고도의 계산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게다가 한나라당 내에서 박 전 대표가 ‘반 이명박 전선’의 선봉장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이 같은 움직임은 ‘박근혜 역할론’을 통해 이미 간접적으로 표출됐다. 짧게는 4월 재보궐 선거, 길게는 2010년 지방선거 이후 구체적으로 드러날 것이라는 친박계 한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에 반해 정 최고위원은 박 전 대표와는 정 반대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 대통령과 같은 CEO 출신인데다 MB정부가 무너지면 정 최고위원의 대권 플랜에도 ‘적신호’가 커져 대권의 꿈이 무산될 수도 있다는 이유에서다. 정 최고위원이 MB정부와 손을 잡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명박-정몽준 밀약설’을 통해 정 최고위원이 차기 대권 후보로 나설 경우 대권 경쟁에서 부담이 없어진다. 또 친이계 인사들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을 수 있다는 명분이 마련된다는 점에서 정 최고위원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카드다. 이 때문에 MB정부에 협조하면서 차기 대권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할 수도 있다는 계산을 하고 있다.
이 일환으로 정 최고위원은 한나라당 한미관계 특위 방미단을 구성, 지난 1일부터 7일까지 미국을 방문했다. 그 결과 한미 자유무역협정 비준안 처리 등 한미 간의 관계회복에 일조하려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또한 최고위원 회의에도 빠지지 않으려고 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게 정몽준계 한 관계자의 전언이다.
실제 정 최고위원은 당내기반이 약하다. 지난 2002년 노무현-정몽준 단일화 등으로 인해 한나라당 내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는 인식이 강하다는 게 정치권의 분석이다. 이 때문에 한나라당 내에서도 ‘외국통’으로 불리는 만큼 당과 이명박 정부에 자진협력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여기에다 정 최고위원의 향후 행보와 관련된 기획안 등이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오리무중 이명박
정몽준계 한 관계자는 “이 대통령과 정 최고위원의 스타일은 동일하다. 같은 CEO 마인드를 갖고 있어, 이 대통령이 무너지면 정 최고위원의 대권 플랜도 무산될 가능성이 높다. 또 정 최고위원이 이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우면 ‘당내에서 아직도 기반을 못 잡고 있다’는 소리가 나올 것”이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이 대통령과 공존체제를 유지하면서 ‘MB 후계자’를 노릴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박 전 대표와 정 최고위원의 이 같은 행보로 인해 가장 관심을 끄는 인물은 바로 이 대통령. 현재까지 2인자가 없다는 얘기가 나돌고 있는 만큼 차기 대권 후보로 누굴 점찍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이에 따라 양 진영은 차기 대권 플랜을 성사시키기 위해 열을 올리고 있는 중이다.
이처럼 박 전 대표와 정 최고위원은 엇갈린 잠행 행보를 통해 차기 대권을 노리고 있다. 현재까지는 ‘득’과 ‘실’에 대한 뚜렷한 구분이 없다. 대신 이들의 취하고 있는 행보는 뚜렷하다. ‘반 이명박 전선’ 대 ‘이명박 공존’이다. 덕분에 ‘MB 후계자’를 향한 이들의 행보는 정치권의 또 다른 관심거리로 급부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