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간판도 없는 삼양식품 ‘비밀곳간’ 추적

  • 김성수 kimss@ilyosisa.co.kr
  • 등록 2012.03.12 14:5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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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 황태자 키워라!”…‘전인장 지령’ 받은 찜질방 주인

[일요시사=김성수 기자] 사무실이 없다. 직원도 없다. 그 흔한 홈페이지도 없다. 보통 이런 법인을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페이퍼컴퍼니’로 의심한다. 이른바 ‘유령회사’다. 50년 전통의 ‘라면 명가’ 삼양식품이 수상한 회사를 끼고 있다. 정확하게는 받들고 있다는 표현이 맞다. 사명만 노출됐을 뿐 철저히 베일에 싸여 있는 삼양식품의 ‘비밀곳간’. 그 실체를 캐봤다.

삼양 지배구조 핵심 비글스 ‘유령법인’ 의혹
사무실·종업원 따로 없어…“회사 실체 모호”

서울 양천구 목동 목동파라곤 105동 지하 601호. 50년 전통의 ‘라면 명가’ 삼양식품 지배구조의 핵심으로 떠오른 ‘비글스’ 주소다. 그러나 지난달 28일 오전 11시 찾아간 이곳에서 비글스 사무실을 찾아볼 수 없었다.

지하 6층을 샅샅이 뒤져봐도 마찬가지였다. 간판조차 걸려있지 않았다. 엉뚱하게도 ‘스파’가 자리 잡고 있다. 지하 6층 전층을 사용하고 있었다. 정확한 명칭은 ‘파라곤스파’. 말이 좋아 스파지 여느 찜질방과 다를 바 없이 운영됐다.

“찜질방에 무슨
회사가 있겠냐”

스파 직원들도 비글스란 회사에 대해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한 관리인은 “찜질방에 무슨 회사가 있겠냐”며 “여기는 그런(비글스) 회사가 없으니 딴 데 가서 알아보라”고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직원들의 날카로운 시선에 쫓겨나듯 스파를 나왔다. 그리고 이튿날 비글스 본사 전화번호인 2654-○○○○로 연락해봤다.


‘예 스파입니다.’

전날 방문했던 스파였다. 비글스의 전화번호도 스파와 같았던 것이다. 스파 안내데스크라며 전화를 받은 직원은 “스파 전화번호가 여러 개 있는데, 이 번호도 그중 하나”라고 했다.

삼양식품의 ‘비밀곳간’인 비글스를 두고 말들이 많다. 식품업계에 실체가 모호하다는 뒷말이 끊이지 않고 있다. 실제 <일요시사>의 취재 결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무실이 없다. 직원도 없다. 그 흔한 홈페이지도 없다. 기업공개는커녕 외부감사와 공시도 하지 않고 있다. 이쯤 되면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페이퍼컴퍼니’로 의심해볼 만하다는 게 감독당국의 지적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페이퍼컴퍼니, 즉 유령회사 여부를 판단할 때 가장 먼저 사무실과 직원 존재를 파악한다”며 “특히 매출이 없거나 허위매출이 발생하고 있다면 거의 맞다고 보면 된다”고 전했다.

그렇다면 ‘꽁꽁’ 베일에 싸인 비글스는 어떤 회사일까. 1961년 설립된 삼양식품은 1963년 한국 최초로 라면을 생산, 이를 기반으로 유지, 장류, 유가공, 사료 등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그러나 1989년 ‘우지파동’ 사건과 무리한 사업다각화로 1998년 IMF 당시 화의를 신청했고, 이후 뼈를 깎는 구조조정 끝에 2005년 기사회생할 수 있었다. 최근엔 ‘나가사키짬뽕’ 히트로 옛 명성을 되찾는 등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다.

우여곡절 와중에 2세 체제가 안착됐다. 전중윤 창업주의 2남5녀 중 장남인 전인장 회장은 1992년 영업담당 이사를 시작으로 경영관리실, 기획조정실 사장 등을 거쳐 2005년 부회장에 오른데 이어 2010년 회장으로 취임했다. 전 창업주는 명예회장으로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전 회장이 ‘경영 바통’을 물려받기 직전 소리 소문 없이 생긴 게 바로 비글스다. 2007년 1월 설립된 비글스는 농산물 도소매 업체다. 경영컨설팅 및 기업투자관리, 해외기술알선 등도 사업목적에 포함돼 있다. 당초 강남구 청담동 고급빌라 퍼즐하우스에 ‘둥지’를 틀었다가 2008년 10월 현 주소인 목동파라곤으로 이전했다.

비글스가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2009년 삼양식품 지배구조의 축으로 떠오르면서다. 프루웰(79.87%), 삼양베이커(50%), 원주운수(20%), 삼양축산(48.49%), 삼양유통(63.09%), 삼양티에이치에스(100%) 등 계열사들을 지배하고 있는 삼양식품의 최대주주는 삼양농수산(33.26%).

비글스는 이 삼양농수산(26.9%)을 장악하고 있다. 결국 비글스가 삼양농수산을 통해 삼양식품과 그 계열사들을 거느리는 위치에 있는 셈이다. 삼양식품 지분(1.66%)도 있는 비글스는 2008년까지만 해도 계열 출자구도의 정점에 있는 삼양농수산 지분이 없었지만, 이듬해 계열사들이 갖고 있던 지분을 넘겨받았다.

이후 비글스가 삼양식품 오너일가의 개인회사로 드러나면서 더욱더 세간의 시선이 쏠렸다. 전 회장의 장남 병우군이 비글스 지분 100%를 소유한 사실이 알려진 것. 이에 따라 비글스는 삼양식품 3세 체제를 위한 ‘전진기지’란 분석이 힘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비글스는 ‘눈치 없는’주식 매매로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비글스는 지난해 12월 나가사키짬뽕의 인기로 삼양식품 주가가 폭등하자 주식 12만4690주를 팔아치워 40억원이 넘는 시세차익을 거뒀다. 뿐만 아니다. 앞서 비글스는 지난해 평창이 동계올림픽 수혜주로 거론되면서 대관령목장을 소유한 삼양식품 주가가 2배 가까이 뛰자 잽싸게 지분 14만3290주를 매각해 약 35억원을 챙겼다.

이를 두고 ‘얌체 매매’란 빈축과 함께 ‘먹튀 논란’이 일기도 했다. 당시 삼양식품 측은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회사 관계자는 “비글스가 매각한 지분은 삼양식품 전체적으로 봤을 때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며 “회사가 주식을 사고파는 것은 당연한 기업행위”라고 일축했다.

비글스가 삼양식품의 ‘비밀곳간’으로 부상하면서 동시에 비글스를 둘러싼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이상한 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그 실체가 모호하다.

대법원 법인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비글스 사무실은 서울시 양천구 목동 917번지 목동파라곤 105동 지하 601호다. 국세청과 금융감독원 등 당국에 신고된 주소지도 같다.

오너 최측근 가신
대표이사직 겸임

그런데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해당 주소지엔 식품사업과 전혀 연관이 없는 찜질방이 영업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 찜질방을 운영하고 있는 업체는 ‘휴네트개발’. 비글스와 휴네트개발이 한 주소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두 회사는 전화번호도 같았다. 자본금 5000만원으로 1996년 4월 설립된 휴네트개발은 당초 학습교재를 제작하다 2003년 11월 부동산과 서비스 업체로 전환됐다.

비글스와 휴네트개발의 대표이사도 동일 인물로 드러났다. 비글스 대표이사인 심의전씨는 휴네트개발 대표이사도 맡고 있다. 심씨가 휴네트개발 경영(사내이사)에 참여한 것은 2003년 4월. 대표이사는 2007년 12월부터 역임했다.

이듬해 10월 심씨는 비글스 대표이사까지 맡았다. 비글스가 청담동 퍼즐하우스에서 목동파라곤으로 이전한 시점(2008년 10월17일)은 심씨의 취임일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이는 사전에 논의 후 비글스가 휴네트개발로 주소지만 옮겼다는 추론이 가능한 대목이다.


심씨는 전 회장의 최측근으로 알려졌다. 회사 내부에선 ‘전인장 그림자’로 통한다고 한다. 인천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심씨는 비글스 외에도 전 회장, 김정수 사장(전 회장 부인)과 함께 삼양농수산 등기임원에 올라있다. 지난해 3월 임기 3년의 사내이사로 선임됐다.

특히 심씨는 삼양식품과 삼양농수산에 라면, 스낵, 유제품 등의 포장지를 납품하고 있는 테라윈프린팅 대표이사도 역임 중이다. 1968년 삼양식품 인쇄사업부로 출범한 테라윈프린팅은 2008년 분사했지만, 여전히 삼양식품과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2000년대 초반 이 회사 경영에 참여한 심씨는 2006년 9월부터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비글스의 직원이 없다는 점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중소기업으로 분류된 비글스가 세무당국에 신고한 종업원은 단 1명이다.(2010년 말 기준) 통상적으로 종업원수에 대표이사도 포함되는 사실을 감안하면 심씨 혼자 회사를 꾸리고 있다는 얘기다. 국내 굴지의 식품기업인 삼양식품을 ‘수하’에 두고 있는 사실상 지주사가 직원 한명 없는 ‘1인 회사’란 점은 언뜻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휴네트개발 한 직원은 “이곳(지하 6층 스파)에 비글스 사무실과 직원은 따로 없다”며 “딱 구분돼 있지 않지만 다 같이 쓰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직원은 비글스에 대해 묻자 “뭐 때문에 꼬치꼬치 캐묻냐. 여기서 뭘 하든지 무슨 상관이냐”며 “(비글스에 대해) 자세히 모르고 알아도 알려줄 수 없다”고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별도의 사무실과 직원이 없다는 점에서 또 다른 의문이 생긴다. 도대체 무슨 사업으로 실적이 얼마나 되냐는 것이다. 이 역시 지금까지 언론 등에 단 한 번도 공개된 적이 없다.

주소지 목동스파로 확인 직원은 ‘사장님’ 단 1명
회사측 ‘모르쇠’ 일관 “오히려 더 의문 키워”

<일요시사>가 입수한 비글스 재무현황 등에 따르면 과일과 채소 등 농산물 도소매가 주사업인 비글스는 2008년 5600만원의 매출을 거뒀다. 2009년과 2010년엔 각각 6억6400만원, 6억700만원을 기록했다. 비글스는 삼양농수산 등 계열사와의 거래로 적지 않은 매출을 올리고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비글스의 영업이익은 2008∼2010년 각각 1000만원, 1억700만원, 1억원으로 나타났다. 그동안 인건비는 단 한 푼도 지출되지 않았다. 이는 직원이 없다는 점을 뒷받침한다.


순이익의 경우 2008년 1000만원, 2009년 3300만원에서 2010년 적자(-2700만원)로 돌아섰다. 같은 기간 총자산은 1억900만원에서 29억8300만원으로, 총자본은 5800만원에서 6400만원으로 늘었다. 부채도 5100만원에서 29억1900만원으로 불었다.

비글스 설립 자금의 출처도 불분명하다. 비글스의 자본금은 5000만원이다. 병우군이 지분 100% 소유한 것은 이 돈을 전액 출자했다는 뜻이다.

1994년생인 병우군의 올해 나이는 18세. 2007년 비글스 설립 당시엔 13세였다. 초등학생이었던 병우군이 어떻게 5000만원을 마련했는지 의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병우군은 5세 때인 1999년 삼양식품 지분(0.69%·1만주)을 처음 매입할 당시 취득 방법을 증여나 상속이 아닌 ‘매수’라고 공시해 의아해하는 시선이 많았다.
삼양식품과 휴네트개발 등은 이렇다 할 해명이나 반박을 하지 않아 오히려 더 의문을 키우고 있다. 이들 회사는 모두 <일요시사>의 취재를 사실상 거부했다. 하나같이 피하기에 급급했다.

삼양식품은 비글스와의 관계 등에 대한 질의서를 보냈지만 답변하지 않았다. 회사 홍보실도 모르쇠로 일관했다.

장남 병우군 소유
13세때 회사 차려

삼양식품 홍보실장은 “비글스에 대해 전혀 아는 사실이 없다. 어디서 뭘 하는 회사인지도 알지 못한다”고 잘라 말했다. 이 말대로라면 삼양식품도 비글스의 실체를 모른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그는 이어 “다만 말할 수 있는 부분은 법적으로나 도의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기 때문에 유령회사란 표현은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덧붙였다.

<일요시사>는 ‘키맨’심씨에게도 정확한 사실 관계를 파악하기 위해 공식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어떠한 대답도 들을 수 없었다. 휴네트개발 관계자에게 수차례 메모를 남겨도 소용없었다. 이 관계자는 “메모를 전달했다”는 말만 반복했다.

현재 심씨 외 유일하게 비글스 등기명부에 감사로 등재돼 있는 김모씨(대학 교수)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비글스 감사를 맡고 있는 것은 맞다. 어찌 어찌 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 지금은 학교 일로 바쁘다. 나중에 통화하자”며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이후 끝내 연락이 닿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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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법률수석 부활 속셈

‘갑자기?’ 법률수석 부활 속셈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4·10 총선이 범야권의 승리로 끝났다. 집권여당은 참패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집권 3년차인 윤석열정부는 국정운영의 동력을 잃게 생겼다. 레임덕을 넘어 데드덕이라는 표현까지 나오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정치 인생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식물 대통령’으로 전락한 윤 대통령의 다음 행보는 엇일까? 속사정이야 어떻든 숫자만 놓고 봤을 때 이견이 없는 결과가 나왔다. 범야권은 192석을 얻어 ‘반윤 거야’ 전선을 형성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161석, 민주당의 위성정당 더불어민주연합 14석, 조국혁신당 12석, 개혁신당 3석, 새로운미래 1석, 진보당 1석 등을 모두 합친 수치다. 국민의힘은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 의석(18석)을 포함해 108석을 얻는 데 그쳤다. 완벽한 참패 식물 대통령 선거를 진두지휘한 각 당 대표의 희비도 엇갈렸다. 사법 리스크를 안고도 선거를 승리로 이끈 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정국의 주도권을 잡게 됐고 국민의힘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정치 생명에 큰 타격을 입었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은 실제 선거를 뛴 선수보다 더 큰 영향을 받게 됐다. 윤 대통령은 임기 내내 의회 주도권을 야당에 내준 상태로 정국을 운영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한다고 해도 여당의 이탈표를 걱정해야 한다. 총선이 끝나면서 권력의 무게추가 당으로 기울어지는 모양새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또 이미 거부권을 9차례나 사용한 이력이 민심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각 당은 이번 총선서 ‘정권 심판론’을 정면에 내세웠다. 민주당은 윤석열정부 심판, 국민의힘은 ‘이조(이재명-조국) 심판’ 프레임으로 유권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했다. 국민은 범야권에 의석을 몰아주면서 정부 심판의 손을 들어줬다. 윤석열정부에 대한 중간평가에 ‘낙제점’을 준 것이다. 윤석열정부는 당장 밀어붙이고 있던 정책에 차질을 빚게 됐다.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을 골자로 하는 의료개혁이 대표적이다. 윤 대통령은 총선 패배 메시지를 통해 의료개혁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드러냈지만 추진력에 대해서는 의문부호가 붙는다. ‘카르텔 타파’라는 국정기조도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 윤 대통령은 지난 16일, 총선 결과와 관련해 첫 육성 메시지를 내놨다. 총선 참패 후 엿새 만이다. 민정수석실 폐지 대선공약 민심 청취 명분 부활 예고 윤 대통령은 “총선을 통해 나타난 민심을 우리 모두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올바른 국정의 방향을 잡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음에도 국민들께서 체감하실 만큼의 변화를 만드는 데 모자랐다”며 “큰 틀에서 국민을 위한 정책이라 해도 세심한 영역서 부족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윤석열정부서 추진하고 있던 개혁은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윤 대통령은 “노동, 교육, 연금 등 3대 개혁과 의료개혁을 계속 추진하되, 합리적인 의견을 더 챙기고 귀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국회와의 긴밀한 협력을 말했지만 야당을 명시적으로 언급하진 않았다. 윤 대통령의 메시지에 야권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민주당 홍익표 원내대표는 윤 대통령의 메시지에 대해 “개탄스럽다”며 “오만, 독선, 불통 정치를 계속하겠다는 마이웨이 선언”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이번 총선서 확인한 민심은 국정기조 전면 전환과 민생경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할 방안을 제시해 달라는 주문”이라며 “윤 대통령은 국정 실패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민생경제의 잘못을 인정하고 실질적 대책과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이 총선 패배에 대한 목소리를 내면서 이후 내놓을 쇄신안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미 국무총리와 대통령비서실장 인선과 관련한 하마평이 나오는 중이다. 지난 17일에는 대통령실서 국무총리로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을, 비서실장에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을 고려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일단 대통령실에서는 “검토한 바 없다”고 대응한 상태다. 3대 개혁 밀어붙인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현재 비서실장 아래에 있는 공직기강비서관실과 법률비서관실을 관장할 ‘법률수석비서관실(가칭)’이 신설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민심 청취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민정수석이 존재할 당시 폐해로 여겨졌던 사정 기능은 제한하고 민심을 읽는 방향의 조직을 만들 것이라는 구체적인 언급도 나오고 있다. 이 과정서 사실상 민정수석실이 부활하는 게 아니냐는 의견이 나왔다. 민정수석실 폐지는 윤 대통령의 대선공약 중 하나였다. 윤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앞으로 대통령실 업무서 사정, 정보 조사 기능을 철저히 배제하고 민정수석실을 폐지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과거 사정기관을 장악한 민정수석실은 합법을 가장해 정적, 정치적 반대 세력을 통제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고 세평 검증을 위장해 국민 신상 털기와 뒷조사를 벌여왔는데 이런 잔재를 청산하겠다”고 말했다. 실제 윤석열정부 출범 직전 대통령실은 2실(비서실·국가안보실) 5수석(경제·사회·정무·홍보·시민사회) 체제로 개편됐다. 당시 당선인 신분이었던 윤 대통령이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청산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윤석열정부 출범 3개월 만에 정책기획수석이 신설되면서 2실6수석 체제가 됐다. 민정수석실서 맡고 있던 공직기강 업무와 인사검증 업무는 법률비서관, 법무부 등으로 이관됐다. 특히 법무부에 공직자 검증 업무를 전담하는 인사정보관리단이 신설되면서 당시 법무부 장관이었던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에 권력이 지나치게 집중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사정 기능 제한한다? 지난해 11월 윤 대통령은 정책실장을 신설하는 등 대통령실 직제를 3실6수석 체제로 개편했다. 개편 과정서 기존 수석들을 물갈이하면서 대통령실 2기 체제의 출범을 알렸다. 이때도 민정수석실 관련 언급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총선 패배 이후 대통령실 쇄신안에 법률수석이 거론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야당은 즉각 반발했다. 민심 청취는 표면용일 뿐 결국 윤 대통령이 사정정국을 조성하려는 의도를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민정수석실 폐지’라는 대선공약을 파기하고 여소야대 정국을 돌파하기 위한 자구책이라는 설명이다. 여기에 야당서 예고한 특검을 방어하려는 선제적 조치가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당초 민정수석실은 민심 청취 기능과 무관하게 운영됐다. 오히려 폐지 가능성이 나오고 있는 시민사회수석실이 민심을 듣는 역할을 해왔다. 민정수석은 고위공직자 인사 검증, 국정 관련 여론 수렴, 고위공직자 복무 동향 점검, 대통령 친인척 관리, 사정기관과 소통 등의 업무를 주로 했다. 하지만 역대 정부서 가장 부각됐던 기능은 국가정보원, 검찰, 경찰, 국세청, 감사원 등 5대 사정기관을 관리하는 것이었다. 실제 2000년 김대중정부서 폐지되기 전까지 이른바 ‘사직동팀’이 청와대 하명수사를 전담했다. 사직동팀은 경찰청 형사국 조사과를 일컫는 말이다. 윤 대통령 역시 당선인 시절 대통령 인수위원회 첫 과제로 민정수석실 폐지를 밀어붙이며 “사직동팀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한 바 있다. 대통령실은 법률수석을 신설하더라도 사정 기능은 제한하겠다는 뜻을 비쳤지만 의심의 눈초리는 여전하다. 김건희·채 상병 특검법 대기 신임 수석 검찰 출신 될 듯 민주당 고민정 최고위원은 지난 16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법률수석 신설은 앞으로 들이닥칠 영부인에 대한 특검 등을 방어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며 “이제 와서 법률수석비서관실을 신설한다는 것은 사법 리스크 방어 차원”이라고 주장했다. 21대 국회에 이어 22대 국회서도 여소야대 정국이 유지되면서 민주당 등 범야권은 ‘해병대 채 상병 사망사건 수사외압 의혹 특별검사법(채 상병 특검법)’과 ‘김건희 여사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특별검사법(김건희 여사 특검법)’ 등을 예고했다. 국민의힘서도 채 상병 특검법 수용과 관련해 의견이 갈리는 만큼 국회 통과 가능성이 제기된다. 윤 대통령은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 한 차례 거부권을 행사한 상태다. 192석을 확보한 범야권은 21대 국회서 채 상병 특검법이 좌절된다고 해도 22대 국회서 재추진한다는 뜻을 보이고 있다. 고민정 최고위원도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채 상병의 죽음 앞에 정치권이 더는 부끄럽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민주당서도 의지가 충분히 있고 국회서 당장 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돼있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김건희 여사 특검법도 22대 국회 개원 전후로 다시 도마에 오를 전망이다. 12석을 확보한 조국혁신당은 아예 22대 국회 1호 법안으로 김건희 여사 특검법을 공언했다. 민주당과 개혁신당 등이 조국혁신당에 동의한다는 뜻을 보인 만큼 추진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 높다. 국민의힘 내부서도 수용 여부에 대한 의견이 갈리고 있어 향후 상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정기관 잡고 흔드나 범야권이 다수 의석을 무기로 특검 정국을 예고하면서 윤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압박 수위가 높아지는 모양새다. 법률수석을 새로 만들려는 의도가 ‘방어’로 읽히는 분위기도 윤 대통령이 처한 상황이 녹록지 않기 때문으로 보인다. 심지어 총선이 마무리되면서 국민의힘에 대한 윤 대통령의 지배력 역시 작아진 상태라는 점도 법률수석 신설의 배경으로 꼽히고 있다. 이미 시작된 것으로 보이는 레임덕을 최대한 늦추기 위한 궁여지책이라는 말도 나온다. 신임 법률수석을 누가 맡게 될지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벌써부터 하마평이 돌고 있다. 검찰 출신들로 채워질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