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흥행의 결정적 요소라는 ‘입소문’. 영화계에 ‘입소문 알바(아르바이트)’ 존재 여부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최근 개봉하는 영화 게시판에는 어김없이 등장하는 단어가 바로 ‘댓글 알바생’이다. 해당 영화에 대한 칭찬 일색의 호평이 게재되면 밑에는 여지없이 ‘댓글 알바에 속지 말라’, ‘제작비의 대부분을 댓글 알바생 고용에 썼을 것’ 등의 답글이 이어진다. 최근 한 매체가 설마 했던 영화계의 인터넷을 통한 ‘입소문 마케팅’의 실체가 드러났다고 보도해 영화계에 파장이 일고 있다.
“호감도 평점 높이기 위해 부정투표 나선 사실 확인” 보도
<트와일라잇> 측 “사실무근, 이런 경우 전혀 없어 당황”
지난 12월2일 한 매체는 “모 포털사이트 영화 관련 카페에서 영화 <트와일라잇>의 평점을 높이기 위해 부정투표를 유도했다”고 보도했다.
이 매체는 보도를 통해 “한 제보를 통해 회원수 6만명이 넘는 모 포털사이트 영화 관련 카페의 일부 회원들이 한 영화 사이트에서 영화 <트와일라잇>의 호감도 평점을 높이기 위해 부정투표에 나선 사실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이 매체는 이어 “이 카페에서는 ‘미션’이라는 이름의 이벤트를 통해 회원들에게 <트와일라잇>에 대한 ‘몰아주기 투표’를 유도했다. 영화 시사회 티켓에 당첨되기 위해 특정 인터넷 영화 사이트의 투표에 참가해서 <트와일라잇>에 1표를 주는 식이다. 인터넷 투표에 참가한 후 댓글을 달고, 기부서비스인 ‘콩’을 저금통에 기부하면 티켓의 당첨 확률이 높아진다며 네티즌을 부추기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사이버 입소문은 인터넷 알바?
이 매체는 또 “이 때문인지 해당 사이트 투표에서 <트와일라잇>은 12월 2주차 개봉작 6편 중 가장 보고 싶은 영화 2위에 올랐다. 2735명이 참가한 투표에서 1092명의 지지를 받았다. 232건의 댓글에도 1위를 한 <오스트레일리아>(1197명)보다 <트와일라잇>을 추천하는 글이 더 많았다”고 전했다.
이 매체는 마지막으로 이 영화카페에서 회원으로 활동 중인 한 네티즌의 말을 인용해 “6만명이나 회원으로 있는 공개된 장소에서 이런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지고 있다는 게 같은 회원 입장에서 좀 부끄러웠다”면서 “이제야 왜 모든 작품들이 저마다 영화 평점 1위를 받는지 알 것 같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입소문 알바 논란’에 대해 <트와일라잇> 측은 “사실무근”이라고 밝혔다. 마케팅 대행사 측은 “자사 홈페이지 등을 통해 일부 경품 마케팅을 하기는 해도 이런 경우는 전혀 없었기 때문에 당황스럽다. 그 지점까지 관리를 하지 못한 책임을 느낀다”며 “그러나 회사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이뤄진 만큼 우리도 해당 카페 등에 강력한 항의 조치를 취했다”고 말했다.
직장인 K씨는 영화 포털사이트에서 한 누리꾼이 남긴 영화평점을 보고 ‘알바’가 아닐까 의심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조폭 소재의 한국영화에는 10점 만점을 준 반면 로맨틱 코미디 영화에는 “이런 영화 이제 그만”이라는 악평과 함께 최하점인 1점을 준 것. 모두 한날한시 한꺼번에 올라온 평점이었다.
‘입소문 알바’가 실제로 존재하는지 확인된 바는 없다. 하지만 영화계에서는 공공연히 ‘입소문 알바’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흘러나왔다. 최근 흥행작이 몇 편 나오지 않았기에 영화 마케터들은 개봉 전 여론 몰이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 영화관계자는 “영화 개봉 초반 분위기를 띄워야 하기 때문에 ‘이 영화 된다’는 인식을 심어 줘야 했다”고 털어놓았다.
영화사 측은 알바생의 실체에 대해 특정 영화에 후한 점수를, 경쟁작엔 최하 점수를 한날한시 한꺼번에 준 경우, 개봉 전 영화도 마치 본 것처럼 좋다는 평을 다량 남긴 경우, 같은 영화인데도 사이트 간의 평점 차가 클 경우 등을 예로 들었다.
하루 평균 2500명의 누리꾼이 영화평점을 남기는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영화 코너에서는 2006년 1월부터 같은 주민등록번호로 여러 개 아이디를 사용하거나 최하점과 최고점을 동시에 자주 남기는 누리꾼 등에 한해 영화평을 삭제하는 등 조치를 취하고 있다. 알바생의 존재를 인정하는 조치인 셈이다.
2004년 한석규 주연의 영화 <주홍글씨>는 알바 논쟁에 휩싸였다. 당시 한 영화 전문 인터넷 사이트는 IP 주소가 유사하거나 동일한 수십명의 사람들이 <주홍글씨>에 관해 우호적인 글을 도배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결국 구체적인 것은 밝혀지지 않았다.
영화 홍보사 관계자는 “인터넷 알바에 관련한 논쟁은 끊이지 않는다. 하지만 최근 한국영화의 불황과 맞물려서 알바를 통해 홍보하는 곳이 있다는 것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하지만 ‘입소문 알바’는 가장 효과가 좋은 마케팅 수단 중 하나”라고 덧붙였다.
일방적 옹호평 나오면 역효과
영화계에서 ‘입소문의 힘’이 알려지면서 최근 시사회장에서 무대 인사를 하는 배우들은 “좋은 댓글이나 호평을 많이 남겨 주세요”라는 인사말을 빠뜨리지 않는다. 그러나 반대로 영화에 자신이 없을 경우 제작사들은 시사회 일정을 줄이거나 아예 취소하는 등 악평을 막는 데 온 힘을 쏟는다.
최근에는 영화에 대한 호평을 이끌어내기 위한 이벤트도 등장했다. 영화를 보고 좋은 평을 인터넷 게시판에 올리면 추첨을 통해 선물을 주는 이벤트들이다.
그러나 ‘입소문 알바’가 작품 홍보에 실제로 큰 영향을 미치기는 어렵다는 것이 마케팅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관객·시청자들의 피드백이 빠르고 정확해지면서 노이즈 마케팅 등 강렬하지만 위험부담이 큰 홍보 방식이 점차 사라지고 있는 것도 이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요즘은 관객들의 입소문을 통한 작품 정보가 퍼지는 속도가 무척 빨라서 마케팅 또한 일단 개봉을 하면 영화를 본 관객들의 분위기를 관찰한 후 그에 맞춰 방향을 잡아가는 경우가 많은 것.
한 영화관계자는 “알바생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이기 때문에 일방적인 옹호성 평이 나올 경우 이에 대한 역효과가 크다”며 “이미 포털사이트나 영화전문 사이트 등에서 활동하는 누리꾼만 몇백만명인데 고작 100~200명으로 여론을 바꾼다는 것은 무리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최근에는 관객들도 눈이 높아져 이같은 평점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