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불황은 전에 없던 여러 가지 세태를 만들어내고 있다. 일자리를 잃거나 얻지 못하는 이들이 늘면서 돈벌이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하는 사람들이 만드는 그림이다. 이런 가운데 교도소에 들어가기 위해 일부러 범죄를 저지르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칼바람을 맞으며 노숙생활을 할 바에야 지붕이 있는 감옥에서 겨울을 나보겠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일이다. 벌금 10만원을 못내 구치소생활을 하는 이들이 증가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평생 전과자로 낙인이 찍힐지언정 눈앞에 놓인 굶주림을 해결하는 것이 먼저인 절박한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다.
감옥에서 나와 자유의 몸이 된 지 6개월도 채 되지 않은 박모(48)씨는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대전역 등에서 노숙생활을 했다. 전과자란 꼬리표를 달고 있는 그에게 돌아갈 일거리가 남아있기에는 불황이 혹독한 탓이었다.
“칼바람 무서워서…”
갑자기 불어 닥친 매서운 겨울바람은 노숙생활까지 힘들게 했고 박씨는 6개월 전 자신을 먹여주고 재워줬던 곳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그곳은 다름 아닌 교도소였다.
그는 결국 교도소로 돌아가기 위해 범행을 저지르기로 결심했다. 그는 지난달 새벽 3시경, 대전 서구 용문동에 있는 한 주택에 몰래 침입해 금품을 훔쳤다. 절도가 주된 목적이 아니었던 박씨는 금세 집주인에게 꼬리를 밟혔다.
경찰서에 잡혀 온 그는 “마땅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공사장에서 막일을 했지만 경기침체로 막일마저 할 수 없어 범행을 저질렀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노숙생활보다 교도소 생활이 낫다”며 범행의 이유를 설명하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전 서부경찰서는 박씨에 대해 절도미수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6개월 전 출소한 노숙자 생계 막막… 교도소 들어가려 절도행각
벌금 못내 노역형 택하는 사람들도 크게 늘어 구치소 북적북적
박씨처럼 먹고사는 것이 녹록치 않아 교도소행을 택하는 이들은 적지 않았다. 특히 출소 후 마땅한 일자리를 구하기가 힘들어 다시 교도소를 찾는 전과자들이 대부분이었다.
지난 2월에는 출소 6일 만에 교도소에 가기 위해 범행을 저지른 60대가 붙잡혔다. 지난해 3월 고양시의 한 슈퍼마켓에 들어가 흉기로 주인을 위협하고 돈을 빼앗으려다 현장에서 검거된 A(65)씨는 특수강도미수죄로 10개월간 복역했다.
자유의 몸이 될 날만 꿈꿨던 A씨. 그러나 10개월 후의 세상은 그 전과 너무나 달랐다. 전과자란 꼬리표가 붙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데다 마땅히 지낼 집도 없었다. 결국 여관을 전전하다가 출소 6일 만에 또 한 번 범행을 저질렀다. 고양경찰서 신도지구대에 공업용 볼트 2개를 던져 현관 유리를 깨뜨렸고 현장에서 경찰에 붙잡힌 것이다.
A씨는 경찰에서 “교도소에서 나왔지만 가족도 없고 돈도 없는 신세에 화가 나 정비소에서 주워 가지고 있던 볼트를 신도지구대 현관에 던졌다”고 진술했다. 사건 전날 스스로 흉기로 왼쪽 팔을 찔러 깁스를 하고 있던 그는 “신세가 처량하기도 하고 갈 곳도 없어 다시 교도소에 가려고 지구대 현관에 볼트를 던졌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8차례나 교도소 생활을 했던 한모(35)씨도 교도소에 가기 위해 일부러 범죄를 저지른 케이스다. 2006년 출소한 그는 제대로 된 사회의 일원으로 지내지 못하며 방황하다 그해 11월, 남의 집에 몰래 들어가 22만원 상당의 금품을 훔쳤다. 그러나 운 나쁘게도 그의 절도행각은 적발되지 않았다.
이후 한씨는 경찰에 붙잡힐 때까지 7차례에 걸쳐 절도행각을 했다. 결국 그는 지난 2월 절도혐의로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에서 한씨는 “먹고 살 일이 막막했지만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며 “다시 교도소에 보내달라”고 통사정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누구나 꺼리는 교도소에 들어가기 위해 고의로 범행을 저지르는 사례는 경기침체가 지속될수록 더욱 빈번히 나타나고 있다. 전과가 쌓이는 것이 어떤 불이익을 주는지 누구보다 알면서도 당장 입에 풀칠하기가 힘들어 막다른 골목을 선택하는 셈이다.
벌금 낼 돈이 어디 있어?
이 세태는 벌금 낼 돈이 없어 노역을 택하는 수형자들이 늘어나는 현상과 일맥상통한다. 벌금 낼 형편이 되지 않아 교도소 생활을 자처하는 이들이 증가하고 있는 것.
이는 통계로도 나타난다. 법무부에 따르면 2006년 3만4019명, 지난해 3만3571명이던 전체 노역수형자 수가 올해 7월까지 2만7020명에 달했다.
하루 평균 수용자수도 크게 늘고 있다. 올해 6월 말 기준으로 노역장에 수용되는 사람의 수는 평균 2086명으로 지난해 1797명에 비해 12.7%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노역장 유치자들까지 수감되면서 정원 1600명인 수원구치소는 수용능력을 이미 초과하는 등 교정시설도 넘쳐나고 있다.
막노동으로 일가족을 벌어 먹이는 B(50)씨도 이 경우에 해당한다. B씨는 최근 지나가는 행인과 뜻하지 않게 시비가 붙어 싸움을 벌이다 상해죄로 벌금 100만원을 선고받았다. 100만원은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B씨의 가족에게는 너무나 큰돈이었고 결국 B씨는 벌금대신 교도소 노역장을 택했다.
이처럼 죗값을 치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가야 했던 교도소는 생계를 꾸리기 힘든 이들에게는 잠을 잘 공간과 하루 세끼를 공짜로 제공하는 장소로 전락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일부러 감옥살이를 하려는 사람들이나 노역형을 원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국가가 감당해야 할 비용이 늘어날 뿐만 아니라 정상적인 사회의 일원이 될 노력조차 하지 않는 이들이 증가해 악순환이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