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김승연 회장의 보복폭행 사건이 영화로 만들어진다. 서울 남대문경찰서 강대원 전 수사과장은 11월26일 서울 충무로 PJ호텔에서 김승연 회장 사건의 영화화 계획을 밝혔다. 그는 “자신의 회고록 ‘형사 25시’를 바탕으로 영화 <형사>(가제)의 시나리오 작업 중이다”라며 “김승연 회장 사건과 연쇄살인범 유영철 사건, 용산 초등학생 성추행 사건 등이 포함될 것이다”라고 밝혔다. 강대원 전 수사과장은 굵직한 사건들을 직접 수사한 경찰로 지난해 김승연 회장 사건과 관련해 외압설을 주장하며 내사를 중단해 직무유기 혐의로 검찰에 기소됐다가 결국 정년을 앞두고 사직했다. 강대원 수사과장은 석연치 않은 사직과 관련해 “나의 명예를 되찾고 영화로도 흥미로울 것 같아 영화화를 결정했다. 영화는 영화다. 지금 다 얘기하면 영화의 의미가 없다. 영화를 보면 알 수 있다”고 밝혔다.
영화 <형사> 기자회견장에 선글라스를 착용한 채 보디가드 4명의 호위를 받으며 등장한 강대원 전 수사과장은 “7월에 회고록을 탈고했고, 출판을 할까 했지만 영화 매체를 선택했다”며 “연쇄살인범 유영철 사건이 영화의 주가 되고 김승연 회장 부분은 부가적인 내용이 될 것이다. 김승연 사건으로 현재 형 집행 중이기 때문에 예민한 문제라 밝힐 수 없고 모든 걸 영화로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한화측서 “어떤 제의도 받지 않을 것”
그는 이어 “한화 부분은 최대한 객관적으로 그릴 것이고 재판 결과에 따라 내용이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라며 “영화화 후 한화와의 법적 대응 문제와 또 다른 사회적인 파장까지도 준비하고 있다. 투자 유치도 한화와는 관계없다”고 강조했다.
영화 내용과 관련된 외압이나 영화 제작에 관한 배경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는 “영화는 영화다. 지금 다 말하면 영화의 의미가 없다. 말 못 한다. 영화로 말하겠다”고 답변을 극도로 아꼈다.
제작을 맡은 (주)에버시네마의 강철웅 대표는 “한화 문제를 거론한 것은 홍보 목적이 아니다. 형사들의 사실적 아픔과 고난을 그릴 것이다”라며 “한화로부터 투자는 물론 어떤 제의도 받지 않을 것이다. 한화로부터 영화 제작에 제동을 거는 요구 전화를 수차례 받았지만 한화와 접촉한 적 없고 앞으로도 만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영화인이지 로비스트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강 대표는 이어 “4년여 간 영화 <삼청교육대>를 준비하다가 투자 문제로 제작을 못한 바 있다. 전적을 참고삼아 제대로 된 시나리오와 투명한 투자사의 투자를 받아 투명하고 철저하게 영화를 완성할 계획이다”라고 덧붙였다.
강 대표는 또 “서두르지 않고 차근차근 해나가 내년 초에 크랭크인 계획을 잡았다. 강 전 수사과장이 참여한 1차 시나리오가 완성됐고, 2차 재고 중이다. 감독은 선정됐지만 밝히지 않겠다”고 영화에 관련된 투자와 제작 의혹을 해명했다.
강 전 수사과장은 자신이 수사에 참여했던 유영철 사건이 영화화된 <추격자>의 내용에 대해서도 불만을 표했다.
강 전 수사과장은 “영화에서 주로 다루는 것은 유영철 사건이다. 영화 <추격자>는 사실이 아니다. 사실은 이번 영화에서 확인할 수 있다”며 “당시 유영철을 검거했다가 놓친 후 11시간 만에 다시 잡았던 사건 등 입에 담지 못할 여러 가지 일이 있었다”고 말했다.
김승연 회장 사건·연쇄살인범 유영철 사건·용산 초등학생 성추행 사건 등 다룰 것
감독만 정해졌을 뿐 시나리오 제작 단계·투자자와 출연 배우도 확정되지 않은 상태
그는 이어 “사건 운이 많은 건지 정년을 앞두고 한화 사건으로 사표를 썼다. 그 사건에 의문을 갖고 계신 분이 많아 이 사건까지 함께 영화로 만들면 명예를 되찾을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며 “최대한 객관적으로 당시 사건을 그릴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강 전 수사과장은 지난해 김 회장의 보복폭행 사건 때 경찰 수뇌부의 지시로 사건 내사를 중단한 혐의(직무유기)로 기소돼 최근 항소심에서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다.
김 회장은 지난해 3월 자신의 아들이 북창동 술집 종업원들과 시비가 붙어 폭행을 당하자 경호원과 조직폭력배 등을 동원해 가해자들을 보복 폭행했고 이에 대한 늑장 수사 논란으로 경찰의 2인자 격인 서울경찰청장 등 경찰 간부들이 줄줄이 물러나기도 했다.
한편 이날 기자회견 내용은 사전 예고와는 달리 영화 홍보에 치중돼 기자들의 불만을 샀다. 영화사에 따르면 감독만 정해졌을 뿐 아직 시나리오 제작 단계에 있으며 투자자와 출연 배우도 확정되지 않은 상태다.
기자들은 이에 대해 “영화제작사와 강 전 수사과장이 외압 폭로 운운해서 기자들을 불러 모은 뒤 투자자 확보를 위한 영화 홍보를 위한 액션 아니냐”는 반응을 보였다.
강 전 수사과장도 “영화 제작사에서 배포한 사전 보도 자료엔 기자회견을 통해 외압의 실체를 밝힌다고 돼 있는 걸 봤는데 나도 몰랐다. 재판에 계류 중인 사건이라 여기서 공개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제작사 제작작품 기록 없어 의구심
한화를 포함해 다른 굴지의 투자사로부터 영화 투자를 받기 위한 기자회견이 아니냐는 지적에 강 전 수사과장과 강 대표는 강력히 부인했지만, 여전히 의문점이 남는다.
재판이 진행 중인 과정에 기자회견을 연 강 전 수사과장의 행보와 어려운 국내 영화계를 잘 알고 있다는 강 대표가 왜 지금, 굳이 영화를 만드는가 하는 의구심이다. (주)에버시네마는 1995년에 설립됐지만 한 편의 영화도 제작한 경험이 없다. 작품 기록이 없어 제작 능력과 기반 등을 가늠할 수 없는 상황이다.
강 대표는 투자에 대해 “정확한 투자자들의 자금을 모아 할 예정이다. 에버시네마가 4년여간 준비했던 영화 <삼청교육대>를 항간에서는 투자가 안 되고, 영화사 역사가 짧다고 하는데 영화가 좋은 스토리를 가지고 신념이 있으면 투자는 어렵지 않다. <삼청교육대>도 투자할 회사 회장이 회견장에 있다. <형사>도 투자자본을 유치해야 할 것이다. 그러려면 시나리오와 기획을 알차게 해야 한다. 서두르지 않고 차근차근 해나갈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사진=송원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