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기획]<일요시사 선정> 2011 이슈메이커 50인 ①정계 10인

‘신묘년’ 요동쳤던 정치판 ‘껑충껑충’ 토끼 탓?

[일요시사=서형숙 기자] ‘능곡지변(陵谷之變)’이란 말이 있다. 이는 높은 언덕이 변하여 깊은 골짜기가 되고, 깊은 골짜기가 변하여 다시 언덕이 된다는 뜻으로 세상사가 극심하게 뒤바뀔 때 사용하는 말이다. 2011년 정치권에 능곡지변이란 표현보다 더 적합한 말이 있을까. 토끼가 껑충껑충 뛰듯이 정국이 극심하게 출렁였던 신묘년은 그야말로 격동의 한 해였다. <일요시사>가 ‘송년기획’으로 2011년 정치판을 쥐락펴락 뒤흔들었던 10대 인물을 선정해봤다.

기성정치판에 성난 민심 ‘안철수 신드롬’으로 분출
분당승리로 한나라 아성 깬 손학규 일순 대권 탄력

<신드롬에서 기부까지 안철수>

2011년 정치권은 ‘총체적 예측불허’로 요약될 수 있다. 변화무쌍하며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던 형국이 연출되면서다. ‘안철수 신드롬’이 그렇고 ‘디도스 파문’이 그랬다. 특히나 올 한 해 정치에 대한 국민적 관심사가 커지며 정치권은 계속해서 요동쳤다. 정국을 뿌리째 뒤흔든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단연 화제의 인물 1순위로 꼽힌다.

안 원장은 난공불락처럼 여겨졌던 ‘박근혜 대세론’의 아성을 단박에 무너뜨렸다. 안 원장의 묵묵부답에도 ‘대망론’은 거세게 불며 여의도 정가를 뜨겁게 달궜다.

그간 부패하고 부조리한 모습을 보였던 기성 정치판에 대해 불신과 혐오는 극에 달했다. 때문에 전혀 새로운 리더십을 원하는 민심이 안 원장에 열광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안 원장은 백신을 개발하여 무료로 나눠주며 헌신하는 공적 삶을 살았다. 그는 ‘청춘콘서트’를 통해 대중과의 스킨십을 꾸준히 이어왔다.

기존의 정치인들이 기득권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 상황에서 서울시장 후보 자리를 놓고 압도적 지지를 받던 그가 박원순 서울시장과 후보단일화를 하며 ‘아름다운 양보’라는 선례도 남겼다. 게다가 그의 연구소 주식 1500억을 쾌척하는 ‘통큰 기부’도 선보였다.

이러한 안 원장의 행보는 기존 정당정치가 하지 못한 부분을 비정치권 인사인 그가 충족시켜줄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감을 불러일으켰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이에 정치계의 판도를 뒤집어 놓을 정도의 ‘안철수 신드롬’으로 번지며 ‘철수’라는 이름은 교과서뿐만 아니라 올 한해 언론까지 화끈하게 장식했다.

<시민세력 전면 등장 박원순>

‘안풍’을 등에 업은 시민후보 박(원순) 시장의 당선은 단연 집중조명을 받았다. 그는 여야 잠룡까지 사활을 걸고 뛰어든 10·26 서울시장 보선에서 당당하게 승리했다. 특히 박 시장은 탄탄한 정당 조직력을 갖춘 여야의 후보들을 맥없이 무너뜨리며 60년 정당정치의 역사에 충격과 굴욕을 안겨줬다.

박 시장은 국내 대표 진보적 시민단체인 참여연대를 만든 시민운동 1세대로 ‘아름다운 재단’을 설립하면서 우리 사회 기부문화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이에 한때 대권후보로 거론될 만큼 정치권의 영입 제의도 잇따랐지만 박 시장은 그간 시민사회 진영의 울타리를 한 번도 벗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기존 정치를 더 두고 볼 수 없었다며 출사표를 던졌고 당선으로 이어졌다. 박 시장의 당선으로 시민세력이 정치권 전면에 등장하는 계기가 됐다.

<한나라당 텃밭 탈환 손학규>

지난 4‧27 재보선 당시 최대 접전지역이던 분당대첩을 승리로 이끌었던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도 주목받았다. 분당을 지역은 단 한 번도 야권성향 후보가 당선된 적 없던 한나라당의 텃밭으로 불린다. 이런 불모지에 민주당의 깃발을 꽂으며 이변을 일으킨 장본인이 손 전 대표였던 것.

재보선 당시 투표 마감 직전인 오후 7~8시 사이 한 시간 동안에만 1만389명이 투표한 것으로 나타났다. 때문에 손 전 대표는 ‘넥타이부대’와 ‘킬힐부대’ 결집의 요체였다는 평을 받으며 순식간에 대권가도까지 탄력을 받았다.

<정치인생 벼랑 끝 선 나경원>

반면 재보선으로 정치인생의 나락에 선 인물도 있다. 바로 한나라당 나경원 전 의원이다. 그는 지난 10‧26 재보선 당시 박 시장과 맞붙었지만 처참하게 깨졌다. 후보로 나와 검증과정에서 수두룩한 먼지가 털리며 오히려 역풍을 맞았다. 부친의 사학비리와 1억원 피부샵, 일본 자위대 행사 참석 등의 치명적인 과거로 정치인생까지 위태로워 진 것.

이에 그는 최고위원직에서 사퇴했다. 하지만 불행은 끝나지 않았다. 지난 12일 서울시장 선거운동 당시 장애아동의 동의 없이 사진을 촬영‧공개한 것에 대해 인권위가 인권침해라고 판정해 또다시 곤혹을 치루고 있다.

‘얼짱 국회의원’으로 불리며 촉망받던 정치인에서 한 순간에 나락으로 곤두박질 친 나 전 의원에겐 이래저래 올 겨울이 어느 때보다 쓸쓸하고 추운 계절임에 틀림없다.

<한나라 저주의 불씨 오세훈>

2011년을 기억하기 힘든 정치인 가운데 한 사람은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다. 최근 한나라당에는 ‘무상급식 주민투표 패배’ ‘서울대첩 패배’ ‘디도스 파문’ 등 악재가 겹치며 당의 해체까지 거론되는 위기일발의 상황이다.

이 모든 사태는 오 전 시장의 불명예 퇴진에서 비롯됐다. 이른바 ‘오세훈의 저주’라는 성토가 이어지는 이유이다. 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독불장군 식으로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밀어붙이다 무산되자 전격적으로 시장직에서 물러나면서 저주가 시작됐다는 것.

오세훈의 ‘돌발사퇴’ 저주에 한나라당은 ‘만신창이’
‘자학개그’ 선보여 연예대상감으로 거론된 강용석 

주민투표는 한나라당의 패배로 귀결됐다. 이어진 서울시장 재보선에서도 한나라당은 패했다. 게다가 재보선 당시 선관위 디도스 공격이 최구식 한나라당 의원의 수행비서 소행으로 밝혀지며 한나라당은 만신창이로 전락했다.

문제는 이 저주의 끝이 언제인지 가늠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다시 언제 어떤 사건이 터질지 몰라서다. 때문에 한나라당은 내년 선거 때까지 한시도 긴장의 고삐를 늦출 수 없는 형국이다.


<개그맨과 개그 배틀 강용석>

2011 불명예 넘버원 정치인은 강용석 무소속 의원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올 한 해 누구보다 언론에 자주 오르내리며 포털 인기검색어 연속 1위라는 기염(?)을 토했다.

강 의원은 작년 7월 국회 전국대학생토론회 뒤풀이에서 한 아나운서 지망 여대생에게 “아나운서가 되려면 다 줘야 한다” “대통령도 예쁜 여학생의 연락처를 알려고 했을 것”이라는 등의 성희롱 발언을 했다. 이에 한국아나운서협회와 방송사 여성 아나운서 78명은 지난해 검찰에 집단모욕죄로 고소장을 제출했다.

강 의원은 똑같은 방식으로 KBS <개그콘서트>에서 정치인을 풍자한 개그맨 최효종을 국회의원 집단모욕죄로 고소했다.

자신의 집단모욕죄 부당성을 호소하기 위해 개그맨을 미끼로 고소하는 자학개그를 선보인 셈. 역풍은 생각보다 거세게 불었다. 누리꾼들은 지극히 사적인 이유로 강 의원이 다른 사람을 고소까지 한 입장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며 비난했고, 이때부터 뭘 해도 욕먹는 미운털이 박혔다.

개그맨과 한판 배틀을 벌인 그는 올해 연말 연예대상감이라는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한 상태이다.

<무죄로 검찰굴욕 준 한명숙>

한명숙 전 총리가 검찰과의 대결에서 잇단 2연승을 거머쥔 것도 화제였다. 지난해 7월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에게 9억7000만원을 받은 혐의와 지난해 4월에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으로부터 5만달러를 받은 혐의(뇌물수수)로 기소된 사건에서 잇따라 무죄 판결을 받은 것.

당시 수사에 자신감을 내비쳤던 검찰은 한 전 대표와 곽 전 사장의 진술 외에 직접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따라서 검찰은 제보자의 진술에만 의존해 한 전 총리를 무리하게 기소했다는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검찰 수사의 공정성과 신뢰에도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검찰이 정권의 하수인으로 전락해 전 정권 인사를 탄압한 전형적인 사례”라며 ‘표적수사’ ‘정치탄압’이라는 평가도 줄을 잇는다. ‘정치검찰’이라는 별칭도 붙었다. 족쇄가 풀리며 전세를 역전시킨 한 전 총리는 검찰개혁에 칼을 빼든 상태다.

<헌정 초유 최루탄 테러 김선동>

지난 11월22일 오후 4시8분, 국회 본회의장에 최루탄이 터지는 헌정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최루탄 테러의 주역은 바로 김선동 민주노동당 의원이다. 그는 한나라당에 의해 한미FTA가 기습처리 되는 것에 반발해 이 같은 일을 저질렀다.

이 사건은 한국 언론뿐만 아니라 외신을 타고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이로 인해 국회의 ‘날치기’와 ‘테러’ 등 후진적인 한국정치의 치부가 세계만방에 널리 알려졌다.

지난 4‧27 재보선에서 민주당의 양보로 전남 순천에서 단일후보로 출마해 그렇게도 꿈에 그리던 금배지를 달았던 김 의원은 이번 사태로 정치 앞날이 가물가물한 지경에 처한 형국이다.

<상왕통치시대 종식 이상득>

현 정권의 실세로 통하던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의 19대 총선 불출마 선언은 ‘상왕통치 시대’의 폐막을 알렸다. 그는 불출마 배경에 대해 “한나라당이 새롭게 태어나는데 하나의 밀알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고 밝혔지만 사실상 불명예퇴진이라는 평이다.

15년지기 보좌관 박모씨가 제일저축은행 및 SLS그룹 구명 로비자금을 받아 검찰조사 중에 있어서다. 보좌관이 받기에는 너무 거액이라는 의심에 검찰의 칼날이 이 의원을 향해 있는 상태다.

게다가 현 정권에서 의혹이 일었다 하면 그의 이름이 빠지지 않고 등장해 ‘만사형(兄)통’이라는 말까지 생겼다. 절대권력으로 통했던 그의 불출마 선언은 ‘권불십년 화무십일홍’을 여실히 증명한 셈이다. 


<한나라의 ‘5개월 천하’ 홍준표>

지난달 디도스 파문이 불거지며 리더십에 치명상을 입고 지난 9일 사퇴한 홍준표 전 한나라당 대표도 올 한 해 천당과 지옥을 오간 정치인 중 한 명이다.

선출직 최고위원 3인의 동반사퇴로 ‘억지춘향격’으로 밀려난 홍 전 대표 체제는 ‘5개월 천하’로 막을 내렸다. 7‧4 전당대회에서 대표로 당선된 이후 한나라당의 온갖 악재와 맞물려 그 역시 막말로 자주 구설수에 올랐다.

홍 전 대표는 당 대표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하며 갖은 사퇴 압박 속에서도 당 쇄신안을 앞세워 사퇴를 거부했었다. 하지만 결국 여론에 밀려 대표직에서 물러나며 한나라당은 다시 격랑에 휩싸인 분위기다.

올 한 해 정치권은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특히 국회의 고질적 병폐인 폭행사태가 난무했고, 대통령 친인척‧측근비리가 봇물을 이루며 정치권에 대한 국민적 피로감과 불신을 더했다. 때문에 유난히도 올 한 해 민심이 계속해서 출렁였고, 2012년의 정치 일정까지 미리 앞당겨 놓은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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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 상병 특검’ 공수처 불편한 속내

‘채 상병 특검’ 공수처 불편한 속내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채 상병 특검’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야권의 4·10 총선 압승으로 더불어민주당의 움직임에도 속도가 붙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난감하기만 하다. 부족한 인력으로 인해 수사의 첫 단추도 끼우지 못하는 실정이다. 발 빠른 수사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공수처 안팎에서는 정치권의 책임 떠넘기기에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조직이 와해되기 직전인데 수사에 속도가 어떻게 나겠느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출신 한 변호사의 말이다. 요즘 공수처의 분위기는 참혹하다. 해병대 ‘채 상병 사건’으로 반전을 꾀하고 싶어도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특별검사(이하 특검) 목소리가 거세지면서 ‘비교 대상’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대통령실 압수수색? 채 상병 사건 특검법 추진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공수처의 분위기는 암흑 상태다. 검찰 제도를 보완해 ‘상설특검’ 명목으로 출범했음에도 ‘늑장·부실’ 수사 논란 속에 결국 사건 기록을 특검에 넘겨줘야 하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오는 5월2일, 임시국회를 열어 법안을 표결하자는 분위기다. 법안 통과를 위해서는 국회의장과 여당의 협조가 필요한데, 총선 이후 여당 일각서도 채 상병 특검에 동의하는 분위기가 표출되고 있다. 채 상병 특검 법안은 지난해 10월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뒤 180일의 숙려 기간을 거쳐 본회의 표결만 하면 언제든 통과할 수 있는 상황이다. 채 상병 사건 수사 갈래는 크게 두 가지다. 무리한 수색 지시 등 책임자를 가리는 본안 수사가 경북지방경찰청서 진행 중이고, 해병대 수사단의 초동 조사에 국방부와 대통령실 관계자가 개입했다는 외압 의혹은 공수처가 맡고 있다. 외압 핵심 피의자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주호주대사로 임명돼 부임 후 사퇴하는 과정서 대통령과 법무·외교부 장관의 직권남용 의혹도 공수처에 추가로 고발됐다. 야권이 특검을 통해 밝히려는 사안의 실체는 수사 외압에 집중돼있다. 특검이 통과되면 공수처가 내려던 실적이 특검으로 넘어가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민주당은 이 대사 임명 과정서의 추가 의혹도 특검법안을 수정 발의해 포함할 계획이다. 공수처는 수사의 무게를 일부 덜겠지만, 6개월 넘게 진행해온 사건 기록을 외부에 넘긴다는 건 또 다른 비판의 빌미를 제공하는 셈이다. 특검 추진 본격화…수사팀 의욕 잃어 “이럴 거면 왜 강조하나” 불만 증폭 공수처 출신 한 변호사는 “인력난 때문에 고전하는 상황이다. 내부 얘기를 들어보면 ‘죽을 맛’이란다. 채 상병 사건 수사는 최선을 다하려 했는데 특검이 언급되면서 수사팀의 의욕이 상실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수처법상 수사 범위와 인원 범위가 지나치게 제한돼있어 실질적인 수사 기능을 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설명이다. 공수처법은 공수처의 수사 범위를 현직 공직자와 그 가족, 퇴임 3년 이내 전직 고위공직자로 한정하고 있다. 공수처 검사와 수사관의 인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현재 공수처법이 규정하고 있는 검사와 수사관의 규모는 처·차장 포함 검사 25명, 수사관 40명이다. 공수처법을 추진할 당시 규모는 검사 30~50인, 수사관 50~70인이 제안됐지만 법무부와 국회의 논의를 거치면서 현재 정원으로 대폭 감소했다. 공수처 관계자는 “총선과 무관하게 지속적으로 인원 확대와 관련해 국회와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며 “검사의 신분보장을 위한 임기에 대해서도 개선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앞서 공수처는 최소한의 행정인력이라도 확보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 달라고 호소한 바 있다. 현행법상 행정인원 정원은 20명인데 지난 2022년 공수처는 행정직원 중 국·과장과 직제 파견자 등 7명을 제외하면 실제 가용인원이 13명에 불과해 수사관을 행정인력에 투입해야 할 상황에 놓인 바 있다. 공수처가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법 개정이 필수적이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특히 공수처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일치시켜 수사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수처는 ‘공수처법상 기소권 없는 사건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연구용역’을 발주하는 등 수사 대상과 기소 대상의 불일치로 발생하는 구속영장 논란을 정리하기 위한 연구에 착수하기도 했다. 인력난 가중화 지금까지 공수처가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한 상황을 보면 초기 단계에 불과하다. 지난해 12월 이 전 장관 등을 출국금지했고, 한 달 후인 지난 1월 압수수색에 착수했다. 이후 포렌식과 참고인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 전 장관을 비롯한 국방부 지휘부와 해병대 수뇌부 등에 대한 조사는 특검의 몫이 될 가능성도 있다. 경우에 따라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등으로 특검 수사가 확대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공수처와 경찰은 특검법 처리 여부를 주시하며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총선 국면서 논란의 중심에 선 공수처는 수사를 신속하게 진행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겠다는 입장이다. 공수처 지휘부 공백 상태가 영향을 줄 여지도 있다. 주요 피의자 소환 및 신병처리 등 주요 의사결정을 처장 대행인 부장검사가 결정하기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다. 만약 국회서 여야가 특검법 처리에 합의하는 수순을 밟으면 공수처도 새로 출범할 특검에 기록을 인계하기 위한 작업에 중점을 둘 가능성이 크다. 현재 본회의에 회부된 안은 민주당이 지난해 9월 발의한 법안이다. 민주당이 지난 3월, 이 전 장관이 주호주대사로 임명된 경위를 수사해야 한다는 별도의 특검안도 국회에 제출했기 때문에 이 두 법안이 병합되는 안도 거론된다. 본회의 회부 안건은 수사기간을 최장 100일로 정하고 있는데, 잔여 수사를 검찰에 이첩하도록 명시됐다. 경찰과 공수처가 시작한 수사가 특검을 거쳐 검찰 손에 넘어가는 것은 부자연스럽다는 말도 나온다. 민주당이 3월 발의한 안은 잔여수사 이첩 대상을 검찰과 공수처로 정했다. 단추도 못 끼워 민주당이 특검법 조항 일부를 양보하고 국민의힘이 수사 대상 확대에 동의하는 시나리오도 정치권을 중심으로 나온다. 이런 과정서 본회의 회부 안이 조정될 수도 있다. 이 가운데 이 전 장관은 최근 변호인을 통해 공수처에 “소환조사를 진행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 전 장관 측이 공수처에 소환조사를 요청한 것은 이번이 네 번째다. 이 전 장관 측 김재훈 변호사는 최근 공수처에 소환 촉구 의견서를 내고 “이 전 장관은 호주 대사직서도 물러났으나 공수처는 지금까지도 아무런 연락이 없다”며 “공수처의 이런 수사 방기 탓인지 정치권에서는 특검 필요성까지 제기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공수처에 보낸 의견서에서 “이첩 보류 지시는 직권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국방부 장관은 민간 수사기관으로의 사건 이첩에 대한 최종 승인권자이므로 인사권자가 인사안 결재 후 이를 취소·변경할 수 있듯이 그 승인을 변경할 수 있다”며 “해병대 수사단장에게 수사 권한이 있다느니, 수사단장에게 민간 수사기관으로의 이첩 권한이 있다느니 하는 것은 법 규정의 몰이해로부터 비롯된 억지”라고 주장했다. 이 전 장관 측은 ‘이 장관이 보고서를 회수하라고 지시하기 전에 대통령실 내선번호로 전화를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이 전 장관 측은 “이 전 장관은 대통령으로부터 (사단장을 빼라는)지시를 받은 사실이 없다”며 “당시 장관이 군사보좌관과 논의하는 과정서 ‘(초급 간부들까지 처벌 대상에 포함한다면)초급 간부들이 힘들어할 것 같다’는 의견을 나눴고 법무관리관실의 법리 검토를 거쳐야 한다고 판단해 이첩 보류를 지시했다”고 강조했다. 수사 인원 범위 제한적 법 개정 안되면 도루묵 이어 “재검토한 결과 8월24일 직접적인 혐의가 있는 2명을 경찰에 이첩했고, 해병대수사단 조사기록 원안도 그대로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 전 장관 측은 민주당이 추진하는 ‘채 상병 특검’도 비판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공수처의 1차 수사 결과도 나오지 않은 상황인데 무엇이 미흡하고 국민적 의혹이 남아 해소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냐”며 “특검 논란을 잠재울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은 공수처의 신속한 수사와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공수처 수장이 석 달째 공석인 점은 제도 지속 가능성에 의문을 더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최종 후보자 지명을 두 달 가까이 미루고 있다. 앞서 국회 공수처장후보추천위원회는 지난 2월29일 판사 출신 오동운(사법연수원 27기) 변호사와 검사 출신 이명순(연수원 22기) 변호사를 후보로 추천했다. 김진욱 전 처장과 여운국 전 차장이 임기 만료로 퇴임해 공수처가 ‘대행 체제’에 들어간 건 지난 1월 말부터다. 김선규 수사1부장이 처장 대행을 맡고 있지만, 지난달 제출한 사직서가 수리되지 않아 임시로 대행직을 수행 중이다. 최근 인사위원회서 연임이 불발된 수사1부 소속 김송경 검사(사법연수원 40기) 임기도 만료됐다. 김 대행이 이끄는 수사1부는 공기광 검사만 남게 된다. 별도 조직개편 계획도 없어 수사 부서 1개가 사실상 사라질 위기다. 윤 대통령이 공수처장 후보자를 지명해도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해야 임명이 가능하다. 21대 국회 임기는 내달 29일까지다. 22대 국회가 개원해도 원구성에 시일이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신속한 공수처장 공백 해소를 위해선 이달 안으로 후보 지명을 마쳐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수장 공백 장기화 우려 법조계에서는 특검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공수처법에 따르면, 공수처는 이 전 장관에 대한 수사권은 있지만 기소 권한이 없다. 수사를 마친 뒤 검찰에 사건을 넘기고 검찰이 기소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 구조다. 공수처 출범 당시 수사·기소권을 모두 줄 경우 일각에선 ‘무소불위 공수처’가 될 거란 우려가 제기되면서 공수처는 법관, 검사, 고위 경찰공무원에 대해서만 제한적 기소권을 갖게 됐다. 문제는 검찰이 채 상병 사건 기소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검찰을 관할하는 법무부는 지난달 8일, 공수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 전 장관의 출국금지를 해제했다. 사건 처리의 중립성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특검을 통해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