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회원 600여명 정도가 한 달에 5천~1만원 후원금을 내고, 많은 미주 교포들이 도와주죠. 탈북자들이 냉대 받고 있는 상황에선 큰돈입니다.”
‘삐라(일명 풍선엽서) 뿌리는 사나이’로 알려져 있는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의 말이다. 박 대표는 최근 이명박 정부에서 ‘삐라가 남북관계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는 말에 대해 “그렇지 않다”고 강하게 부인했다. 남북관계에 악영향을 줬다는 소리는 말도 안 되고,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이명박 정부를 길들이기 위한 전략적 전술이라는 주장이다.
지난 11월26일 오후. 서울 광화문 인근 한 커피숍에서 만난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는 북한 말씨로 취재기자를 맞이했다. ‘삐라 뿌리는 사나이’라는 거창한 별명과 달리 체구는 작지만, 일에 대한 열정은 누구보다 뜨거웠다. 이 때문에 항상 위험 부담을 안고 삶을 살아가고 있다.
기후 때문에 살포 어려워
“언론에 자주 공개된 후 위험에 노출되다 보니 사무실에는 경찰 2명이 항시 대기하고 있고, 외출을 할 때마다 경찰 2명이 수시로 따라다녀 불편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죠. 철저하게 보호를 받고 있지만, 만일을 대비해 만반의 준비를 다하고 있어요.”
박 대표는 북한 주민들에게 김정일 위원장에 대한 실상을 낱낱이 폭로하다 보니 항상 신변의 위협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한때 탈북자로서 생활했던 박 대표지만 이제는 북한에 있는 부모·형제들에게 진실을 알리는 데 앞장서고 있다. 자신의 목숨을 내걸고 일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
박 대표는 “탈북을 결심하기 전 북한에서 생활할 당시 처음 ‘삐라’를 접할 때 큰 충격이었다”며 “이를 통해 북한 주민들은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최근 박 대표에게 시련의 계절이 찾아오고 있다. 이명박 정부 등에서 삐라 살포 자제를 당부하는 한편 삐라 살포로 인해 남북관계가 악화됐다고 단정 짓고 있는 것. 민주당 역시 ‘매국단체’로 내몰고 있는 실정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립니다. 노무현 정부 때는 이를 막지 않았는데 왜 이명박 정부는 막는지 모르겠어요. 또 이명박 정부의 주장대로라면 2003~2004년에 북한은 무너졌어야 됐어요. 특히 북한 주민들에게 (북한에 대한) 진실을 알리는 단체를 매국단체라고 한다면 자유를 막는 민주당은 ‘반역당’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정치권에서 삐라가 남북관계를 악화시키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또한 최근 3개월간 삐라 살포를 중지하려다 3일 만에 공식 입장을 바꾼 이유에서도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이명박 정부 대북 정책 결정에 따른 정책적 공간과 시간적 여유를 주고, 박왕자 씨 총격 살해 사건에 대한 공식 사과 등에 대한 입장을 지켜보기 위해 살포 중지를 생각했어요. 그 결정을 내리기까지 정말 힘들었지만, ‘통일을 염원하며 몇십 년을 참아왔는데 3개월은 참을 수 있다’는 심정을 결론을 내렸죠. 그런데 북한에서 개성관광, 남북 열차운행을 중단하겠다고 하니 우리도 삐라를 살포할 수밖에 없죠.”
그는 북한의 현 태도가 이명박 정부를 길들이기 위한 전략이라고 말했다. 6·15 공동 선언은 남북비핵화선언을 전제로 한 것인데 북한이 핵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공동선언은 북한이 파기한 것이라고.
박 대표는 삐라를 살포하는 과정에서 삐라 한 장당 1달러씩을 동봉한다고 설명했다. 삐라 10만여 장을 살포할 경우 1억원에 달하는 돈이 든다고. 생활고를 겪고 있을 북한 주민들을 위해 돈을 동봉한다는 것이 박 대표의 설명이다.
보통 휴전선 인근 지역 등에서 살포를 하고, 대부분 평양-함흥까지만 삐라가 살포되고 있다고. 거리가 먼 평양-함흥 윗 지역은 중국 등을 통해 북한 정권의 실상에 대한 소식을 듣는다고 한다. 대신 평양-함흥 지방은 평야지대라 식량 등을 나르는 과정에서 서로 간의 정보 공유를 통해 북한 정권에 대한 실태가 많이 퍼지고 있다고 한다.
박 대표는 “살포한 삐라를 발견할 경우 북한 주민들은 당에 돈을 바치기보다 몰래 사용한다”며 “북한 주민들이 발견 즉시 한 번에 주머니에 넣을 수 있도록 삐라와 달러 한 장씩 비닐에 동봉한다”고 말했다. 게다가 접경지역 중개자를 통해 북에 남아 있는 친구들에게 5~10만원 정도를 전해주면 북한의 현 상황도 자세히 알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 덕에 삐라를 통해 북한 군인들이 많이 흔들리고 있으며 이 때문에 탈영을 하는 군인들도 발생하고 있다고.
그는 또 삐라를 살포하는 데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고 말했다. 삐라를 북한에 제대로 살포하기 위해 5000m 높이의 상공에서 날려보기도 했는데 욕심이 너무 앞선 나머지 실수를 하기도 했다.
“2003년도에 삐라를 살포했는데, 우연치 않게 청와대 앞마당에 떨어졌어요. 이를 본 노무현 전 대통령이 크게 호통을 쳤다는 얘기도 들었어요. 하지만 살포를 반대하지는 않았죠.”
국민들 후원 늘었다
현 정부의 부정적 인식에 삐라 살포에 어려움도 있지만 정작 문제는 다른 데에 있다. 불리한 기후 조건 때문에 삐라 살포가 쉽지 않다는 것.
박 대표는 “겨울에는 삐라를 살포하는 조건이 매우 불리하다. 북에서 바람이 불어오기 때문에 삐라를 살포하기가 힘들다”고 실토했다.
특히 그는 이명박 정부가 삐라 살포에 대해 비관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는 반면, 국민들이 바라보는 시선은 달라졌다고 말한다. 정치권에서 ‘매국단체’라며 비난하고 있는 상황에서 ‘후원을 하겠다’는 국민들이 갑자기 급증했다는 것. “삐라 문제가 언론을 통해 공개되면서 국민들의 관심이 높아진 것 같아요. 현재 사무실에서는 후원하겠다는 국민들이 늘어 전화가 불통이죠. 무려 3개월 이상 모아야 할 액수를 순식간에 모았을 정도에요. 국민들이 우리를 후원하고 있다는 생각에 이제는 당당해지고 싶어요.”
오로지 북한 주민들에게 진실을 알리겠다는 일념 하나로 ‘삐라 뿌리는 사나이’라는 별칭을 얻은 박 대표. 그러나 그는 “평양 가는 날까지 삐라를 계속 살포할 것”이라면서도 “북한이 진정한 자세로 민족 공조를 원한다면 얼마든지 중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기자에게 “제가 잘하고 있는 거죠”라고 되묻기도 했다.
박상학 대표는 누구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는 북한에서 김책공업종합대학 체신학부(전자공학부)를 졸업한 엘리트다. 탈북을 결심하기 전까지 김일성 사회주의 청년동맹 산하 속도전 지도국 선전선동부 지도원으로 평양에서 근무했을 정도다.
그러던 중, 마카오·일본·중국·홍콩을 오가며 대남기구인 노동당 35호실 대외정부조사부 간부였던 아버지가 1997년 일본 NHK가 방영한 북한 주민 대량 아사 장면을 보고 중대 결심을 하게 됐다. 1999년 남한으로 망명한 것. 이 때문에 박 대표는 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어머니, 두 동생과 함께 지난 1999년 탈북, 2000년 1월 험난한 여정을 이겨내고 남한 땅을 밟았다.
한편, 인민군 장교 출신 탈북자인 부인과 결혼, 슬하에 여섯 살 된 아들을 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