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세태> 잘 팔리는 ‘대리부’ 요지경 실태

‘봉사’한다는 대리부들~ 실상은 “님도 보고 뽕도 따고”

[일요시사=김설아 기자] ‘대리모’와 유사한 형태인 ‘대리부’가 극성이다. 그간 대리모의 실체는 드라마 소재로까지 다뤄지며 심심찮게 들어왔지만 대리부라니 어쩐지 낯설기만 하다. 아마 남성에게 불임의 원인이 있는 경우는 더 쉬쉬했던 사회적 풍토 탓일 것이다.

그러나 최근 불임부부 인터넷카페에 대리부 지원 글이 빈번하게 올라오는 등 불법 정자거래가 성행하고 있어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이들은 인터넷카페를 통해 불임부부들에게 돈을 받고 정자 공여는 물론 한 단계 더 진화하여 ‘자신의 성적쾌락과 금전해결’이라는 두 마리토끼를 잡기위해 직접적인 성관계까지 마다하지 않고 있어 충격을 주고 있다.

“저는 85년생 27살입니다. 사는 곳은 부산이나 출장이 잦은 관계로 수도권을 포함한 전국각지로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현재 중소기업에서 인턴 중이며 4년제 대학 졸업반입니다. (대리부)2번째 경험이며 앞전 지원에선 2번 만에 자연수정 되었습니다. 신체적 스펙은 키는 176(cm)이고, 넓은 어깨, 흰 피부를 자랑합니다. 성격은 좋고 공부는 중간 정도…."

불임 부부들이 정보를 공유하는 인터넷카페의 게시판에 지난 3일 올라온 글이다. 이 글의 작성자는 불임남성 대신 그의 아내에게 정자를 직접적인 성관계로 제공하겠다는 대리부 지원자다.

그는 자신의 신체와 성격, 학력, 직업은 물론 과거경험까지 상세히 소개하면서 “이일 말고도 연애시절 전 여자친구들에게 몹쓸 시술을 받게 할 정도로 임신이 무지하게 잘된다”고 강조하며 “이일을 봉사적인 마인드로 행하고 있다. (자연임신) 될 때까지 해드리고 힘이 되고 싶다”며 자신을 어필했다.

직접 성관계(자연수정)로
“내 정자 드려요~”


이처럼 대리부들은 불임 관련 인터넷카페 등지에서 은밀히 활동하고 있었다. 카페 게시판에는 대리부 지원자들의 글로 넘쳐났다. 지원자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게시물 제목과 내용은 점점 노골적으로 변하고 있다.

지원자가 밝힌 학력은 고졸부터 대학원 재학생까지 폭넓으면서 명문대 재학 및 졸업자, 해외 유학파 등 고학력이 적지 않았다. 직업은 학생, 인턴사원, 영어강사, 대기업 직원, 연구원 등으로 다양했다. 심지어 공무원과 고등학생도 끼어 있었다. 이들은 저마다 자신이 신체건강하고 임신이잘 된다는 점을 강조했고, 일부는 근육질인 상반신 사진을 첨부하기도 했다.

이들 대리부의 가격은 스펙과 외모·신체적 조건에 따라 천차만별이었다.

취재를 위해 불임부부를 가장, 카페에 대리부를 구한다는 글을 남기고 답변을 기다렸다. 다음 날 확인해 보니 대리부 지원자로부터 수십통의 메일과 쪽지가 도착해 있었다.

“임신확률 높인다”며 불임부부 아내와 대리부 직접 ‘성관계’
스펙 앞세운 대리부들 “일주일에 2~3회 관계 가능, 비밀 보장”

서울 소재 공대를 졸업해 전자회로 디자인을 한다는 지원자 A(35)씨는 자기 홍보에 필사적인 모습이었다. 우선 그는 과거 대리부로서의 ‘임무’를 성공으로 이끈 점을 내세웠다.

그는 “지금까지 5번의 자연수정 경험이 있으며 3번은 출산, 1번은 유산, 다른 1번은 도덕적 수치심을 감당하지 못한 예비산모의 포기가 있었다”며 “첫 번째 분은 아들을 낳아 현재 3살이고, 두 번째 분은 6개월 때 안타깝게 유산됐으며 세 번째 분은 작년 11월 딸을 출산하셨고, 네 번째 분은 8개월 전 득남했다”고 말했다.

A씨가 말하는 ‘자연수정 방법’은 꽤 구체적이었다. 그는 심리치료를 병행한 섹스요법과 생리주기를 이용한 섹스요법이 있으며 불임부부가 두 가지 방법 중 선택할 수 있고, 비용은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전자의 방법은 대화를 통해 심리상태를 파악하고 대리부 기간을 산정하는 방식으로 처음 당분간은 주 1~2회 정도의 만남을 갖되 관계를 갖진 않으나 대화를 통해 충분한 준비가 됐다고 판단될 때, 생리주기를 파악해 총 5~10회 정도의 관계를 갖는다”며 “이 방법의 비용은 6개월 이내 기준 3000만원이며 계약금 2000만원, 중도금 600만원, 임신진단 확인 시 400만원”이라고 말했다.

이어 “후자는 과거 6개월 동안의 정확한 월경날짜를 알고 난 이후 만남 일정을 잡고 관계를 갖는 방법으로 예비산모의 도덕적 수치심과 스트레스 지수에 따라 실패 확률이 있다”며 “비용은 6개월 이내 기준 1500만원이며 계약금 1000만원 중도금 300만원 임신진단 확인 시 200만원”이라고 했다.

끝으로 A씨는 “유산은 자신이 책임져 줄 수 없다”면서도 “확실한 결과를 얻게 되면, 지불 비용이 큰돈이 아님을 자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지원자 B(27)씨도 자신이 잘 나가는 대리부임을 강조했다. B씨는 과거 불임부부 가정에 직접 찾아가서 관계를 맺었고 총 6번 시도 끝에 자연수정에 성공했다고 말했다.

그는 “내입이 부인의 몸 어디에도 닿지 않고 다른 프로세스 없이 단순한 삽입과 사정으로 관계가 이뤄졌다”며 “한 달 후 임신이 안됐다고 다시 부탁이 와서 흔쾌히 시도했고 관계 시 남편분이 새벽에 통닭을 사올 정도로 분위기가 좋았고 봉사하는 느낌이었다”고 당시 소감을 전했다. 비용은 2회 관계에 100만원이었다고 했다. 

이들 외에도 현재 국내 최고 명문대학에 재학 중이며 멘사 회원으로 IQ가 155에 달한다고 강조하는 지원자, 저렴한 금액과 철저한 비밀보장을 약속한다는 지원자, 건강한 체질과 준수한 외모를 적극적으로 내세우는 지원자 등 다양한 사람들에게서 연락이 왔다.

이들이 원하는 가격은 제각각이었다. 최소 30만원부터 ‘자신의 스펙이 대단해 최고의 유전자를 자랑한다’며 최대 3000만원까지 요구해 온 사람도 있었다.

대리부 고스펙 이력?
확인할 방법은 없어…

하지만 대리부 지원자들의 이 같은 이력은 대부분 그들의 ‘말’에만 의존해야 하는 만큼 그 진위를 검증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다시 말해 대리부 지원자가 불임부부를 속여 금전적 이익을 취하거나 성적욕구만 채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단 얘기다.

실제로 취재기자에게 연락이 온 지원자 중 10명 중 3명꼴은 ‘아무 대가 없이 돕고 싶다’고 말해왔다. 서울에 거주하며 자신을 대기업에 다니는 직장인이라 소개한 C(38)씨는 “저는 대리부 경험이 없지만 도움이 되고 싶네요. 원하는 바는 없습니다. 비용도 필요 없고요. 저도 가정이 있고, 딸아이가 있기에… 훗날을 위해 남편분이 모르셔도 되고요. 원하는 바를 알려주시면 따르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지원자 D(21)씨 역시 자신을 “술담배를 하지 않는 건강한 몸”이라 어필하며 “돈 10원짜리 하나 바라지 않는다. 맹세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하나같이 ‘순수하게 불임부부를 돕고 싶은 마음에서 나섰다’고 설명하지만 그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한 대리부 지원자에 따르면 과거 모 인터넷 카페에서 이와 관련해 한바탕 홍역을 치른 적이 있다고 한다. 카페를 통해 자신의 ‘빼어난 스펙’을 자랑하는 한 남성이 무료로 정자를 공여하겠다고 밝혀왔다.


그는 각종 시도에도 임신실패로 심신이 지쳐있는 불임부부들에게 접근, ‘봉사하는 마음으로 희망을 드리고 싶다’며 몇몇 불임부부의 아내와 성관계를 맺었다. 하지만 그 후 그가 말한 이력의 대부분이 거짓임이 드러났다.

성관계를 위해 거짓 이력을 꾸며냈던 것이다. 사건이 확대되자 피해자를 비롯한 카페 회원들은 공분, 이 발칙한 대리부 지원자를 혼내줄 법적 대응을 준비했지만 모두 헛수고에 불과했다. 법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혐의가 없었기 때문이다.

경찰에 따르면 학력, 직업 등 신분을 속인 대리부 지원자가 불임남성의 아내와 합의 하에 성관계를 맺었을 때 적용할 만한 혐의는 강간, 사기, 간통, 혼인빙자간음, 성매매 정돈데 형법상 강간은 피해자가 폭행이나 협박으로 맺은 성관계여야만 성립된다.

여성이 남편 강요로 제3자와 원치 않는 성관계를 맺었다면 교사에 의한 강간으로 볼 수 있지만 이는 대리부 빙자 성관계와는 거리가 멀다. 또 대리부가 불임부부에게 정자를 내주고 금품을 받지 않았다면 사기나 성매매 혐의도 적용되지 않는다.

간통은 남편이 사전에 동의하거나 사후에 용서하면 적용할 수 없다. 다만 동의한 이유가 대리부의 거짓 이력 때문이었다면 ‘착오에 의한 의사표시’에 해당돼 간통죄를 적용할 수 있다. 하지만 간통은 남녀를 함께 처벌하는 쌍벌죄여서 대리부와 성관계를 맺은 아내도 처벌 대상이기 때문에 사실상 처벌할 방도가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대리부 빙자 성관계범죄 늘고 있지만 “형사처벌은 못 해”
부부갈등 원인 및 제2의 범죄 양산 위험, 제도 마련 ‘시급’


결국 사태는 문제의 지원자를 카페에서 영구추방하는 것으로 막을 내렸지만 제2, 제3의 피해자가 순번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또 이 사건 외에 관계 시 자신의 쾌락을 위해 터무니없는 행위를 요구하거나, 무료로 정자를 제공하겠다고 해놓고 나중에 말을 바꿔 말도 안 되는 금액을 요구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발생하고 있었다.

상황이 이럼에도 대리부를 찾는 불임부부의 행렬은 끊이지 않고, 또 자연수정을 통해 정자를 받으려는 부부들 역시 좀처럼 사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대체 그 이유는 무엇일까.

불임부부들이 꼽은 가장 큰 이유는 정자은행의 정자를 사용할 경우 정자 기증자에 대한 정보가 하나도 없어, 불안하다는 것이다. 이왕이면 좋은 유전자를 가진 아이를 갖고 싶다는 게 불임부부의 공통된 생각이다. 또 인공수정보다 자연수정이 ‘임신확률’이 높고 병원에서 시술 시 돈은 돈대로 들고 몸만 축난다는 부정적인 인식 때문이다.

3번의 시험관 실패로 몸과 마음이 지쳐 대리부를 구하게 되었다는 주부 A(32)씨는 “정자은행을 통해 정자를 기증받을 경우 남에게 알려지기 쉽고, 이름도 모를 정자를 받아서 키운다는 사실이 알려지는 게 싫었다”며 “또 평생 키울 아이와 관련된 일인 만큼 좋은 유전자를 가진 정자 주인을 직접 만나본 뒤 신중하게 결정하고 싶었고, 가능하면 남편과 닮은 이미지 인 사람을 선택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제도적 미흡함에 불임부부들의 바램이 더해져 현재 대리부의 양산은 앞으로도 끊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아이를 갖고싶다’는 불임부부의 간절한 상황을 고려하면 이를 막기도 쉽지 않은 실정이다.

그러나 이 같은 방식은 향후 부부관계의 문제 및 대리부가 폭로를 빌미로 협박을 하거나 계속적인 성관계를 요구하는 등 또 다른 범죄를 양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불임부부였고, 결국 아이를 입양했다는 E씨는 “불임부부들이 제발 정신 차리고 가정파탄 날 행동을 자제했으면 좋겠다”며 “여성분들도 급한 마음에 남편 몰래 하려고 하지 말고 보다 현실적인 대안을 찾았으면 좋겠다”고 우려를 표했다.

전문가들 역시 대리부 문제에 대해 이젠 정부가 직접 나서 문제점파악과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윤석용 의원은 지난 9월 보건복지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현재 정자 매매를 금지하고 있지만 불임부부들이 좀 더 우월한 유전자를 가진 자식을 갖기 원하는 만큼 음성적인 정자 거래는 지속될 것”이라며 “정자 거래를 양성화하고 보상비용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는 한편 정자 기증 횟수제한으로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희귀 유전성 질환을 막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가정파탄 원인, 범죄양산
가능성 있어 “신중해야”

이렇듯 적잖은 남성들이 ‘직업적 대리부’로 나서면서 병리학적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대리부 지원자가 하는 말의 진위를 검증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불임 부부를 속여 금전적 이익을 취하거나 자신의 성적욕구를 채우려는 대리부들 역시 점점 늘고 있는 추세다. 은밀히 이뤄지는 정자 공여가 더 큰 범죄 피해로 이어지지 않도록 관련 제도를 확립할 필요성이 절실하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사분오열’ 의료계 내분 내막

‘사분오열’ 의료계 내분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뚝심인가, 고집인가?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한 대통령의 뜻이 확고해도 너무 확고하다. 겉으로는 유연한 대처를 언급하면서 ‘2000명’이라는 수치는 굽히지 않을 기세다. 강 대 강 대치에 나섰던 의료계는 우왕좌왕하는 모양새다. 의료계 내부의 의견을 모으는 일도 쉽지 않아 보인다. <일요시사>와 인터뷰한 지방의대 A 교수는 의과대학 정원 확대를 밀어붙이는 윤석열정부의 강경 기조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정규군은 수뇌부만 처리하면 와해되기 쉽다. 하지만 현재 의료계는 게릴라 방식으로 대응 중이다. 주동자를 찾기 어렵고 실제 주동자도 없다. 전공의, 의대생 모두 조직의 통제하에 움직이는 게 아니라 본능에 따라 행동하고 있다. 윤정부 입장에서는 협상 대상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일괄 협상에 따른 일괄 타결은 어렵다고 본다.” 2월 이후 평행선만 실제 의료계는 대학의사협회(의협),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의대협) 등 여러 단체가 의대 정원 확대 정책에 개별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의대 정원 확대 반대’를 큰 틀로 하되 대응 방식이나 세부적인 요구사항은 각각 다른 상황이다. A 교수의 말대로 의료계는 현재 단일협의체가 없다. 협상테이블이 마련된다 해도 앞에 대표로 나설 사람이 없는 셈이다. 과거 의정갈등이 일어났을 때 주로 의협이 나서서 의료계 입장을 전달하고 대응을 이끌었다면 현재는 각개전투를 진행하고 있다. 이미 정부는 의협의 대표성에 대해 의문을 표한 상태다. 정부는 지난 2월 말 의협 대신 ‘대표성을 갖춘 협의체’를 구성해 의대 정원 확대 등에 대해 대화하자고 의료계에 요청했다. 의협이 전체 의사들의 대표성을 띠기 어렵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다. 당시 주수호 의협 비상대책위원회 언론홍보위원장은 “의협 회원엔 전공의·봉직의 등 모든 직역이 포함돼있고 모든 직역이 배출한 대의원 총회 의결을 거쳐 만들어진 조직이 비대위”라며 “정부가 의협의 대표성을 부정하는 이유는 내부 분열을 조장하기 위함”이라고 반발했다. 의협은 의료법에 근거해 모든 의사가 가입하는 법정 단체지만 개원의를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번 의정갈등 국면서 가장 선봉에 선 단체는 전공의가 모인 대전협이 꼽힌다. 전공의가 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해 병원을 떠나는 등 집단 강경 투쟁에 나서면서 의정갈등에 불이 붙었다. 의대생은 집단 휴학으로 힘을 실었다. 유급 마지노선에 이른 대학들이 수업을 재개했지만 의대생은 돌아올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집단사직에 나선 전공의가 여전히 버티고 있는 상황서 의대생의 복귀 가능성 역시 낮다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대통령실 1년 유예안 일축하면서도 ‘2000명 정원’ 논의 가능성 제시해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기준 학칙에 따른 형식적인 신청 요건을 지킨 의대생의 휴학 신청은 누적 1만242명으로 전체 의대 재학생 대비 54.5% 규모에 이른다. 의대생들의 집단 휴학과 수업 거부는 지난 2월부터 시작됐다. 대학 사이에선 이달 중순이 지나면 여름방학까지 총동원해도 유급을 막을 수 없다. 의대는 특정 수업서 3분의 1 또는 4분의 1 이상을 결석하면 낙제(F) 처리되고 F가 하나라도 나올 경우 유급이 되도록 학칙을 세워둔 곳이 많다. 전공의의 집단사직으로 병원 업무가 마비되고 일부 의료진에 업무가 과중되는 이른바 ‘의료대란’이 벌어졌다. 여기에 의대생의 집단 휴학은 의사 수급 부족 현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의료현장에 구멍이 생기면서 의사를 찾지 못해 환자가 사망하는 ‘응급실 뺑뺑이’ 사건도 일어났다. 문제는 정부의 태도다. 지난 2월6일 2025학년도 의대 입학 정원을 5058명으로 현행보다 2000명 늘리겠다고 발표한 이후부터 현재까지 요지부동 상태다. 정부는 2035년까지 1만명의 의사 인력을 확충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2006년 이후 19년 동안 동결됐던 의대 정원 확대를 예고한 것이다. 당시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는 발표 당시 의료계와 소통한 결과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지난해 10월26일 ‘의대정원 확대 추진계획’을 발표한 이후 40개 대학으로부터 증원 수요와 교육역량에 대한 자료를 받았고 현장점검을 포함한 검증을 마쳤다고 밝혔다. 의료계를 비롯해 사회 각계각층과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했다는 점도 언급했다. 특히 정부는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강조했다. 언론사 여론조사 등에서 의대 정원을 늘리는 문제에 대해 국민 10명 가운데 8명 이상이 ‘필요하다’고 응답한 것을 의미있게 언급했다. “흔들림 없는 의료개혁을 완수하겠다”는 정부의 입장에 국민의 응원을 지지대로 삼은 것이다. 요구 다른 의사단체 윤석열 대통령의 의지는 더 강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일 ‘국민께 드리는 말씀’ 대국민담화서 “역대 정부들이 9번 싸워 9번 모두 졌고 의사들의 직역 카르텔은 더욱 공고해졌다”며 “이제는 결코 그런 실패를 반복할 여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2000명이라는 숫자는 정부가 꼼꼼하게 계산해 산출한 최소한의 증원 규모”라며 “이를 결정하기까지 의사단체를 비롯한 의료계와 충분하고 광범위한 논의를 거쳤다”고 설명했다. 연구 결과를 들어 그 배경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윤 대통령은 “정부는 국책연구소 등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연구된 의사 인력 수급 체계를 검토했다. 수요 측면서 저출산 고령화와 같은 인구구조의 변화, 만성질환의 증가와 같은 질병구조의 변화, 소득 증가에 따른 의료수요 변화까지 반영했다”며 “어떤 방법론이더라도 지금부터 10년 후인 2035년에는 자연 증감분을 고려하고도 최소 1만명 이상의 의사가 부족하다는 결론은 동일하다”고 말했다. 의대 정원 확대 시기에 대해서도 정부는 가차없는 태도를 보인다. 대통령실은 지난 8일, 의협이 제안한 의대 증원 1년 유예안에 대해 “정부는 그간 검토한 바 없고 앞으로도 검토할 계획도 없다”고 밝혔다. 앞서 박민수 복지부 차관이 “내부 검토는 하겠고 현재로서 수용 여부를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내놓은 답변서 더 강경해진 입장이다. 대통령실은 1년 유예안을 받을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면서도 “만약 의료계서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근거, 그리고 통일된 의견으로 제시한다면 논의할 가능성은 열어놓고 있다”며 “열린 마음으로 임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팔짱 낀 정부 공은 의료계로 일각에서는 정부는 초지일관 원론적인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현재로선 ‘2000명’이 정부와 의료계 간 대화의 장벽이 되고 있다. 정부는 2000명이라는 수치를 꿋꿋하게 고수하고 의료계는 2000명 백지화가 대화의 선결 조건이라는 뜻을 굽히지 않는 중이다. 정부든 의료계든 어느 한쪽이라도 구부려야 맞닿는 법인데 평행선만 그리는 모양새다. 이 와중에 의료계는 내분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정부가 의료계에 요구하는 ‘통일된 의견’을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새 회장을 선출한 의협이 그 중심에 있는 상황이다. ‘강성’으로 꼽히는 임현택 의협 회장 당선인과 의협 비대위가 엇박자를 내고 있고 대전협의 박단 비대위원장도 의협 비대위와 갈등 조짐을 보이는 중이다. 현재 의협은 비대위원장과 차기 회장이 공존하는 상태다. 의협은 지난달 26일, 임 당선인을 차기 회장으로 선출했다. 임 당선인은 결선투표서 65%의 지지를 얻어 당선됐고 임기는 다음 달 1일부터다. 임 당선인의 등장으로 의협의 대정부 투쟁 수위가 올라갈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됐다. 임 당선인은 의대 정원 증원 철회를 비롯해 대통령의 사과와 책임자 파면을 요구하는 등 다른 의사단체에 비해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마찰음이 나온 건 ‘단일대오’를 구성하는 과정에서였다. 의협 비대위는 지난 7일, 기자회견서 전의교협, 대전협, 의대협 등과 함께 합동 기자회견을 이번주 안에 열겠다고 예고했다. 하지만 임 당선인이 이런 움직임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의협 비대위, 차기 회장·전공의 회장 갈등 삐걱거리는 단일대오에 대화 공전 가능성도 의협 회장직 인수위원회는 의협 비대위와 대의원회에 공문을 보내 임 당선인이 김택우 현 비대위원장 대신 의협 비대위원장직을 수행할 수 있도록 협조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는 ‘한 지붕 두 가족’ 상황의 의협 창구를 단일화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대전협 박 위원장도 의협 비대위와 불협화음을 내고 있다. 박 위원장은 자신의 SNS에 “의협 비대위 김택우 위원장, 전의교협 김창수 회장과 지속적으로 소통하고 있지만 합동 브리핑 진행에 합의한 적은 없다”고 적었다. 합동 기자회견은 일단 취소된 상태다. 박 위원장과 임 당선인의 갈등도 관심사다. 임 당선인은 지난 4일, 윤 대통령과 박 위원장의 비공개 만남에 불만을 드러냈다. 의협 비대위는 윤 대통령과 박 위원장의 만남을 ‘의미 있다’고 평가했지만 임 당선인은 SNS에 ‘내부의 적’을 운운하며 박 위원장을 강도 높게 비난하는 듯한 글을 남겼다. 박 위원장은 이 같은 보도 내용을 게시글에 공유하며 ‘유감’이라고 적었다. 전의교협은 의대 비대위에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다. 전의교협은 전국 40개 의과대학 교수협의회로 구성된 단체다. 김창수 전의교협 회장이 의협 비대위에 합류하면서 의료계 단일대오 구성이 빨라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통일된 의견을 내놓을 단일협의체 구성 속도에 따라 의정갈등의 타결 가능성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의협 비대위를 중심으로 단일대오를 구성하려던 시도가 임 당선인과 박 위원장의 행보로 삐걱거리면서 의료계 상황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처지가 됐다. 여기에 협상테이블이 마련돼 정부와 의료계의 대화가 이뤄진다 해도 합의까지 가는 데는 하 세월이 걸릴 것이라는 의견이 만만찮다. 입장차가 그만큼 첨예하다는 뜻이다. 타결까지 첩첩산중 일각에서는 정부와 의료계 모두 환자에 대한 배려는 뒷전에 두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월 이후 두 달 넘게 갈등이 계속되면서 환자들은 불편을 겪고 있고 일부 의료진은 업무 과중으로 그로기 상태에 빠졌다. 전공의가 떠난 병원은 매일 막대한 손해를 입고 있다. 정부와 의료계의 10번째 갈등이 어떤 결론으로 끝나느냐에 따라 의료계 지각변동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