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프닝으로 끝난 이명박·이재오 워싱턴 회동설. 한때 여권 내부에서는 이명박 대통령과 이재오 전 의원 간의 회동이 이뤄졌다는 얘기가 나왔다. 그러나 청와대 측에서 “사실이 아니다”라고 공식 해명함으로써 이 대통령의 의중이 간접적으로 드러난 느낌이다. 이 전 의원 ‘귀국 반대론’이 바로 그것이다. 이 전 의원은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든 일등공신이다. 또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할 수 있는 인물로 분류될 정도다. 그러나 워싱턴 회동 불발로 이 전 의원의 복귀론은 원점으로 되돌아간 분위기다. 경제위기론이 대두되고 있는 만큼 이 대통령은 당내 화합을 주문한 것. 방미기간 동안 이 전 의원과 관련된 사안에 대해 일절 언급을 자제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그렇다면 이 전 의원의 귀국에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이 대통령의 진짜 속내는 무엇일까.
“이명박 대통령이 방미 첫날인 14일 저녁 워싱턴 시내 모처에서 비공개로 이재오 전 의원을 만난 것으로 안다. 또 공식 일정이 잡혀 있지 않아 상대적으로 시간 여유가 있던 것도 배경으로 작용했다. 누구보다도 신의를 중요하게 여기는 이 대통령이 고생하고 있는 이 전 의원을 피할 이유가 없다.” 한 언론사에서 여권 핵심 관계자의 말을 인용한 글이다. 만약 사실이라면 정치권이 한바탕 ‘발칵’ 뒤집힐 만한 사건이다.
이재오 복귀 득과 실
주도권 잡되 부담 크다”
실제 이 전 의원이 워싱턴에서 사용하는 승용차가 이 대통령이 묵고 있는 워싱턴 월러드 인터콘티넨털 호텔 입구에서 목격됐다는 보도가 나왔고, 이 대통령 역시 이날 공식적으로 특별한 일정이 잡혀 있지 않았다.
이같은 내용은 언론사를 통해 빠르게 전파됐다. 급기야 이 대통령을 수행 중인 이동관 대변인이 확인 작업에 나섰다. 그러나 이명박-이재오 극비 회동설이 나돈 지 3일 만인 지난 17일 상황은 종결됐다.
이동관 대변인은 “이 대통령은 방미기간 동안 이 전 의원을 만나거나 접촉하지 않았다”며 “‘접촉’에는 전화 통화도 포함된다”고 밝혔다.
또 이 대통령은 워싱턴 특파원과의 간담회에서 “(회동 가능성을 묻는 기자에게) 국가적 수준을 말하고 있는데 사사로운 얘기를 꺼내느냐”고 말했을 정도다.
이같은 발언을 두고 최근 정치권에서는 “이 대통령의 의중이 간접적으로 드러났다”, “이재오 복귀를 반대한다”고 보고 있다. 극약처방으로 이재오 복귀에 힘을 실어줄 경우 여당 내에서는 불협화음이 계속될 소지가 있는데다 이명박 정부의 위기론이 더 가중될 수도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런 과정으로 볼 때 이 대통령은 이 전 의원의 복귀에 무게를 두기보다는 경제 문제에 더 큰 무게를 둔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이 주판알을 튕기며 ‘친이계 세결집’에 나서려는 친이재오계 인사들의 속내를 잘 알고 있지만 시기적으로 적절치 못하다는 후문이다. 정치적 논리에 휘말리지 않겠다는 고도의 계산이 깔려있다는 얘기다.
한나라당 한 관계자는 “친박계 의원들이 뭉치고 친이계에서는 싸움만 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 전 의원이 들어오면 친박-친이 간의 대결이 불가피하지만 친박으로 쏠려 있는 권력구도의 주도권을 친이계가 잡을 수는 있을 것”이라면서도 “이 전 의원의 복귀는 상당한 위험 요소가 곳곳에 도사릴 수밖에 없다”고 한나라당 분위기를 전했다.
이 대통령은 경제 위기를 타파하기 위해 이 전 의원 귀국문제를 거론하지 않고, 경제 위기 극복에만 전념하겠다는 의지다. 또 정치적 논리에 휘말리지 않겠다는 계산이다. 한마디로 이 전 의원의 귀국문제보다는 경제 위기 극복을 바란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당내 친박-친이 대결 구도를 피하고,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이 전 의원의 조기 복귀론을 일축하겠다는 복안이다. 당내 화합을 우선시 한다는 것.
실제로 이 대통령은 “심각한 위기 상황에 한가롭게 여와 야, 노와 사, 보수와 진보의 구별이 있을 수 없다”며 “불이 났을 때는 하던 싸움도 멈춰야 한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이상득 의원이 친박계 김무성 의원을 만나 화해모드로 전환 중이다.
그러나 친이계 인사들의 얘기는 다르다. 이 전 의원의 귀국 대신 화합을 주장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지적이다. 친이계 한 관계자는 “이 전 의원이 복귀할 수 있는 판이 정리돼야 복귀할 수 있다. 현 상황에서는 도저히 일선으로 복귀하기가 힘들다”며 “이 전 의원이 복귀할 경우 친이-친박간의 경계선이 확연히 드러날 수밖에 없다.
말 그대로 ‘월박’, ‘주이야박’, ‘복박’ 등은 사라질 것”이라고 밝혔다. 따라서 이 대통령이 이 전 의원의 귀국에 반대 의사를 간접적으로 밝혔지만 진짜 의도는 따로 있다는 인식을 하게 된다고 한다. 이 전 의원의 귀국을 놓고 설왕설래할 때가 아니라 이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줘 위기를 극복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게 친이계 한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 가운데 이 대통령이 이 전 의원의 귀국설에 대해 반대하는 것은 ‘정면돌파’를 하겠다는 의지라는 게 정치권의 해석이다. 그동안 청와대에서 하는 말 다르고 당에서 하는 말이 달라 ‘엇박자’를 내왔다. 연초 연말 개각설이 대표적이다. 그때부터 이 전 의원을 정무장관 등에 기용해야 된다는 얘기가 여권 내부에서 솔솔 제기되어 왔다.
사실 이 대통령은 당의 목소리를 듣지 않기보다 현 시점에서는 이 전 의원의 입각설은 “불가능하다”고 계속적으로 못을 박고 있다. 일일이 대꾸를 하다보면 여론의 오해를 부를 소지도 있고, 경제 위기론이 대두되면서 일부 장관들을 대거 교체시킬 경우 더 큰 화를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 전 의원의 입각설이 현실화될 경우 이명박 정부가 ‘융단폭격’을 맡을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사실이다. 친박계를 비롯해 야당으로부터 ‘협공’을 받을 뿐 아니라 이 전 의원의 정치생명도 ‘사실상 끝날 수 있다’는 게 친박계 한 관계자의 전언이다.
복귀 분위기 형성 ‘글쎄’
경제 문제 해결이 우선
정치권 한 관계자는 “이 전 의원은 강성이미지로서 정치권의 큰 화를 부를 인물”이라며 “경제 위기론이 계속되고 있는 상태에서 이 전 의원이 귀국할 경우 ‘제2의 레임덕 현상’이 발생할 소지가 충분하다”고 귀띔했다.
실제 정치권에서는 정부 산하 기관과 이 대통령 간의 엇박자로 인해 이미 ‘레임덕’에 걸렸다는 평가가 줄을 잇고 있다. 비록 눈에 띄지는 않고 있지만 이 대통령 주변에서 이같은 말들이 나돌고 있는 상태다.
이 가운데 이 전 의원이 귀국할 경우 지금보다 상황이 더 악화될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권력 누수를 비롯해 정치권에서 아무도 이 대통령의 뜻을 따르지 않을 공산이 크다고 한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과 이 전 의원의 워싱턴 회동이 성사됐더라도 ‘들어오지 말라’는 식으로 말을 했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경제 위기론이 대두되고 있는 만큼 이 전 의원 귀국 여부에 정치권의 이목이 쏠리는 것은 옳지 않다는 판단이다.
결국 ‘이명박-이재오 워싱턴 극비회동’이 불발된 것은 이 대통령의 의중을 이 전 의원이 직접적으로 간파한 것이 아니냐는 게 일각의 중론이다.
또 모든 것을 결정하는 사람은 이 대통령이라는 점에서 이 전 의원을 ‘배척’하기보다는 ‘아낀다’는 의미로 귀국을 막고 있는 것으로 결론을 내리는 인사들도 있다. 이 대통령과 이 전 의원과의 관계가 두텁다는 이유에서다. 친이재오계인 공성진 최고위원, 진수희, 김용태 의원 등도 이 같은 이 대통령의 의지를 충분히 읽었을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해석이다.
이 때문일까. ‘워싱턴 극비 회동’의 불발을 비롯해 여권의 사정을 감안해 볼 때 이 전 의원과의 관계가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가는 분위기다. 1월이 아닌 4월에 귀국할 수도 있다는 게 일각의 중론이다.
1월에 귀국할 것이라고 말했던 친이계 한 관계자는 “현 시점에서는 언제 귀국할지 여부는 불분명한 상태”라며 “말 그대로 비자가 만료되는 4월에 들어올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전 의원이 1월에 귀국을 하더라도 이 전 의원의 자리가 마련되지 않아 막후역할을 하기에는 힘이 든다. 또 친박계 인사들로부터 ‘오해의 소지’를 불러일으킬 가능성도 높다는 게 정치권의 해석이다.
MB “멀리보고 준비한다”
비장의 카드로 활용?
따라서 이 대통령이 안국포럼 인사들과의 모임에서 “어려운 기간일수록 멀리 보고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던 것처럼 최후의 카드로 사용하기 위해 이 전 의원의 귀국을 막을 수도 있다는 얘기도 있다. 그만큼 이 전 의원은 이 대통령과의 관계가 돈독할 뿐 아니라 이 대통령의 의중을 정치적으로 읽을 수 있는 능력도 갖춘 인물이다.
또 권력사유화로 문제로 논란이 돼 갈등을 빚었던 이상득 의원과도 화해의 손짓도 불사하고 있다. 공성진 최고위원에 따르면 “이 전 최고위원이 귀국하면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을 ‘형님으로 모시겠다’고 발언”했던 것.
이처럼 이 대통령이 이 전 의원의 귀국에 대해 비관적인 것은 당내 화합을 도모하기 위한 절차 중 하나다. ‘경제 위기론’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서로간의 ‘단합’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그러나 이 전 의원이 귀국할 경우 이 대통령은 그를 최후의 카드로 사용할 수도 있다는 게 정치권의 해석이다. 이 전 의원만큼 이 대통령의 논리를 잘 아는 사람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 때문에 이 대통령이 ‘최후의 카드’로 이 전 의원을 어떻게 활용할지에 정치권의 이목이 집중되어 있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