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리백화점’ 보육기관의 민낯
‘비리백화점’ 보육기관의 민낯
  • 장지선 기자
  • 승인 2018.10.23 10:06
  • 호수 1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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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밝히는 원장님 애 때리는 선생님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어린이집, 사립유치원 문제로 엄마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걸핏하면 불거지는 어린이집 아동학대 논란도 모자라 최근에는 비리 사립유치원 명단이 공개돼 파장이 일파만파로 확산되고 있다. 아이를 믿고 맡겼던 엄마들은 이번에 드러난 보육기관의 민낯에 충격을 받은 모양새다.
 

▲반발하는 한국유치원총연합회 회원들

지난 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서 ‘유치원 비리근절을 위한 정책토론회’가 열렸다.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실서 사립유치원 회계부정 사례를 공유하고 향후 비리 방지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자리였다. 사립유치원 원장들의 반발은 거셌다. 전국 사립유치원 운영자·원장들의 협의체인 한국유치원총연합회(이하 한유총) 회원 400여명이 토론회 시작 전부터 회장을 점거했다.

정부 돈 어디에?

토론회가 시작된 이후에는 아예 회장이 아수라장이 됐다. 고성과 욕설이 난무했고 몸싸움이 벌어졌다. 한유총 회원들은 단상을 점거했다. 이들은 회계부정 사례를 정리한 화면을 가리기 위해 우산을 펼쳐 들기도 했다.

한유총 회원들은 “사립유치원을 비리집단으로 매도하고 있다”며 토론회를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일부 사립유치원서 일어난 비리를 전체의 잘못인 것처럼 싸잡아 보고 있다는 주장이었는데 이날 결국 토론회는 파행됐다.

불씨는 국정감사장으로까지 번졌다. 지난 11일 박 의원은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이 2013∼2017년 감사를 벌인 결과 전국 1878개 사립유치원서 5951건의 비리가 적발됐다고 밝혔다. 박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는 충격적인 내용이 가득했다.

경기도의 한 사립유치원 원장은 정부 지원금과 매달 학부모가 내는 돈으로 노래방, 숙박업소서 결제하고 명품백도 모자라 성인용품까지 샀다. 이 돈은 개인차량 기름값, 차량 수리비, 자동차세 아파트 관리비로도 사용됐다. 

교직원 복지적립금 명목으로 설립자 개인 계좌에 1억8000만원을 쌓아두거나 6000만원을 설립자 명의의 만기환급형 보험에 넣은 곳도 있었다.

이후 MBC에서 문제가 된 사립유치원 명단을 공개하면서 논란이 가속화됐다. 자녀를 사립유치원에 보내고 있는 학부모들은 물론 국민들이 발칵 뒤집어졌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사립유치원 문제에 대한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줄을 이었다.

비리 사립유치원 명단 공개
한유총 측 “법적 대응하겠다”

한유총은 지난 16일, 기자회견을 갖고 “국민 여러분들과 학부모님들께 송구스럽다”면서도 “지난 10여년 동안 사립유치원에 맞지 않는 사학기관 재무회계 규칙 개정을 교육부에 수차례 건의했지만 이뤄지지 않았고, 그 결과 비리라는 오명을 듣게 됐다”고 주장했다.

충남의 한 사립유치원 원장이 학부모들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이 공개되면서 분노는 더욱 커졌다. 

해당 유치원의 원장이 보낸 A4용지 2장 분량의 편지에는 이번 사태가 “좌파 국회의원 그리고 좌파 성향의 시민단체가 공모해 국감 기간 사립유치원을 비리집단으로 모는 노이즈 마케팅”이라는 주장이 담겼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

한유총은 법무법인 광장과 계약을 체결하고 박 의원으로부터 자료를 받아 ‘전국유치원 감사결과’를 공개한 MBC를 상대로 명단 공개금지 가처분 신청, 정정보도·반론보도를 위한 언론중재 제소,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대한 법리적 검토를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박 의원은 비리 사립유치원 명단을 추가로 공개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부도 국가 차원의 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국가 지원금이 투입된 만큼 사립유치원에도 정부 회계시스템을 도입하고 감사 결과, 감사 내용은 실명 공개를 원칙으로 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어느 유치원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누가 어떻게 책임질 것인지,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등 국민이 알아야 할 것은 모조리 알려드리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 

이 총리는 지난 16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서 주재한 국무회의를 통해 “매년 2조원 규모의 정부재정이 사립유치원에 지원되지만 관리와 통제는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며 “사립유치원 비리가 드러나 국민의 실망과 분노를 불러 일으켰다”며 이같이 말했다.

학부모들 분노 폭발
어린이집에도 불똥

비리 사립유치원 명단이 방송을 통해 공개된 이후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도 분노에 불을 지폈다. 지난 15일 온라인 커뮤니티 ‘보배드림’에는 자신을 유치원에 급식을 납품하는 직원이라고 소개한 사람의 글이 올라와 파장이 일었다. 

A씨는 비리 사립유치원 명단 공개 이후 급식 납품량이 크게 늘었다고 주장했다.

A씨는 ‘유치원 급식 납품하는 사람입니다’라는 글에서 “너무 웃겨서 여기 올려봅니다. 유치원 서른 군데 정도 납품하는 하청직원이고 품목은 채소와 과일입니다. 하루 전에 물류에 입고 시켜줘야 다음날 아침 배송이라 일요일도 일합니다. 어제 납품량이 확 늘었더군요. 신학기라 애들이 늘어난 것도 아닌데 귤, 사과, 포도, 멜론, 감 등 유치원 한 곳당 많게는 4배 정도 늘었습니다”라고 주장했다.

사립유치원에 자녀를 보내고 있는 학부모들의 분노는 당분간 사그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지원금과 학부모가 낸 돈이 원장이나 설립자의 호주머니 속으로 들어간 사이 자녀가 제대로 된 보육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에 실망감은 물론 배신감을 느끼고 있는 상황이다. 

또 전체 유치원의 75%를 차지하는 사립유치원은 물론 어린이집 등 자녀를 믿고 맡길 곳이 없다는 사실에 좌절하고 있다.

사립유치원 비리 문제가 불거지기 전 어린이집 역시 여러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가마솥더위라고 불릴 정도로 푹푹 찌던 지난 여름 어린이집 학원 차량에 아동이 방치돼 사망한 사고가 발생했다. 

오후가 되도록 아이가 등원하지 않은 사실을 파악하지 못한 어린이집의 관리 부실이 문제로 떠올랐다. 비슷한 사고가 이미 여러 차례 일어난 적 있다는 사실도 비판에 불을 붙였다.

이뿐만 아니라 보육교사의 학대로 아이가 사망하는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화곡동의 한 어린이집서 아이가 잠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불로 감싸 누르고 있는 보육교사의 모습이 담긴 CCTV 영상이 공개됐을 땐 국민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본 사진은 특정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문제의 교사가 어린이집 원장과 자매 관계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가족경영의 문제점도 불거졌다. 지난 8월에는 자매가 1억원 상당의 보조금을 부정으로 받은 정황이 새롭게 밝혀지기도 했다.

급식 공급이 제대로 되지 않아 원아들이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한 사실도 우후죽순처럼 드러났다. 민주노총공공운수노조 보육1·2지부는 지난 17일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어린이집 부실급식과 교구 리베이트 등이 심각하다고 폭로했다. 

노조원들에 따르면 정원이 50명인 어린이집에서 두부 2모로 모두의 국을 끓이는 것을 봤다거나 이중 식단표를 작성, 배부용과 원내 보관용을 따로 뒀다는 증언도 이어졌다.

피해자는 아이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사립유치원 비리 문제뿐만 아니라 어린이집도 전수조사 해야 한다는 청원이 빗발치고 있다. 실제 사립유치원 문제가 터진 이후 어린이집 관련 비리 폭로전이 이어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번 기회에 보육기관의 곪아버린 부분을 치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정부는 사립유치원 비리 척결은 물론 어린이집에 대한 회계 관리 강화 방안을 마련하는 등 대책 마련에 분주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