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입취재] 가짜뉴스 공장 들어가 보니…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8.10.15 10:16:42
  • 호수 118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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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A, 임종석을 최고 실권자로 보고?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가짜뉴스’가 정국 최대 이슈 중 하나로 떠올랐다. <한겨레> 신문이 가짜뉴스의 뿌리를 추적해 집중 보도함으로써 중요 의제로 부상했으며, 이낙연 국무총리는 가짜뉴스를 ‘공동체 파괴범’으로 규정하고 법적 조치를 예고했다. <일요시사>는 지난 2년여 간 가짜뉴스가 생산·유통되고 있는 단체채팅방 3곳에 잠입해 어떤 가짜뉴스가 있었는지, 누구를 겨냥했는지 등을 취재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정국을 전후로 가짜뉴스가 생산·유통되는 단체채팅방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채팅방마다 적게는 수십, 많게는 수백 명이 모여 활동한다. <일요시사>가 약 2년 전부터 취재차 들어가 있는 채팅방 3곳에는 주로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을 지지하는 극우 성향의 유권자들이 활동하고 있다. 채팅방에는 하루에도 수십 개의 기사, 인터넷주소(URL), 합성사진, 종교성 짙은 글 등이 공유된다.

적게는 수십
많게는 수백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룬다. 채팅방 3곳 중 가장 활발하며 74명의 극우 성향 유권자들이 속해 있는 ‘다시 집권 OOOOO’ 채팅방서 ‘문재인’을 키워드로 검색하면 문 대통령을 비난하는 1593개의 글을 확인할 수 있다(지난 11일 오후 3시30분 기준). 

문제는 개중에 가짜뉴스도 상당수 확인된다는 점이다. ‘뭉가’ ‘문죄인’ 등 극우 성향의 유권자들이 최근 문 대통령을 비하할 목적으로 부르는 명칭을 키워드로 검색하면 그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미 정부 기관의 이름을 따온 가짜뉴스가 대표적이다. 지난달 4일 ‘CIA 극비 보고 내용’이라는 글에는 남북 교류협력과 관련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데, 내용의 대부분이 과거 보수정권의 ‘종북 프레임’을 그대로 답습하는 수준이다.


이를 테면 ‘개성공단 재개’에 대해 “남한 측 근로자 등 대규모인력을 유사 시 김정은의 핵인질로 만들려는 김정은의 고도로 계산된 북한의 미국 북폭 방어 전략의 일환”이라고 평가하는 식이다.

또 이 글의 작성자는 “문재인은 고려연방제를 추진할 것이며, 서울에 입성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남한의 목사, 군인, 경찰관, 정부 공무원, 정치인, 태극기집회 주동자, 종교인, 민노총, 전교조 등 주사파 세력들과 남한의 개돼지들을 북한 지역 오지나 탄광촌으로 강제격리 이주시킬 것”이라고 내다봤다.

작성자는 이러한 내용이 “미 CIA의 동북아 책임자가 며칠 전 백악관 비공개 비밀 보고에서 북한 관련 김정은과 문재인의 계략이 담긴 정보를 비공개 브리핑에서 발표한 것”이라고 밝혔다. 

형식과 내용면에서 CIA 보고서로 보기 힘들다. 작성자는 CIA 동북아 책임자가 누구인지, 어떤 경로로 내용을 입수하게 됐는지 등 정보의 신뢰와 관련된 사항은 밝히지 않았다. 이는 가짜뉴스가 만들어지는 전형적인 공식이다. 

가짜뉴스공장에서는 시중에 나도는 글, 또는 자신이 작성한 글에 신뢰할 만한 기관의 이름을 끼워 넣는 방식으로 가짜뉴스를 만들어낸다.

미국이 침공?
도 넘은 수준

‘미국의 남한 점령 전략’이라는 글에는 “미국의 저명한 국제전략 연구소의 아시아 정책연구소장이 미국은 문재인의 공산화 과정서 문재인정권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전략을 연구 중이다. 미군의 주둔 병력도 증강 재배치하고 전략자산의 한반도 영구배치까지 계획하고 있으며 실질적으로 문재인의 공산주의 고려연방제 시도를 무산시키기 위해 소리 없이 남한점령 작전을 전개 중”이라고 나와 있다. 


액면 그대로만 보면 미국이 한반도 침공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뜻이다. 작성자는 미국을 ‘우주패권국’으로 추켜세웠다.
 

비단 문 대통령에 대한 가짜뉴스만 있는 게 아니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평양 남북정상회담’ 당시 국회차원의 방북 무산을 기획·주도했다는 가짜뉴스를 확인할 수 있다. 

작성자는 이 대표의 이러한 기획이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을 축출하려는 속셈이며 문재인정부 내에서 암투가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임 비서실장이 대한민국의 최고 실권자라는 CIA 보고서가 백악관에 보고됐다는 가짜뉴스도 눈에 띈다.

75명이 속한 채팅방 ‘위대한 개혁 OOOOOOO’에는 문재인정부를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글, 쟁점 법안의 찬성·반대를 촉구하는 글, 극우 성향의 유튜브 URL 등이 주로 개제된다.

채팅방 3곳 2년간 체크…유언비어 넘쳐나
근거 없는 대통령 비난 정부 인사도 타깃

한 극우 성향의 유권자는 문재인정부와의 대결을 성전으로 규정하며 “목숨을 겁시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입니다. 다윗은 짱돌로 남산 만한 골리앗의 대굴빡(머리)을 깨부숴 이긴 겁니다. 아멘”라고 채팅방의 사람들에게 촉구했다.

음모론을 기정사실화하는 글도 눈에 띈다. 한 사람은 “노무현이 자살하기 전날 밀착 경호원을 바꾼 것은 문재인이었다”고 반복적으로 글을 올렸다. 다른 사람은 “김대중이 2001년 문재인 등 법관들을 시켜 민주화운동 유공자 자격 심사를 하게 했는데, 이때 김대중이 선출한 심사위원들 중에 김일성 장학생들이 대거 포함돼있었다”고 제기했다.

쟁점 법안 찬성·반대를 촉구하는 글의 경우 국회 입법예고 홈페이지의 URL을 첨부하는 식으로 채팅방에 게재된다. 

‘민주당원 댓글조작 사건 및 김경수 의원 등 연루 의혹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의 URL을 올린 이는 “만명 만듭시다. 찬성 올려주세요. 5월3일까지 마감입니다”라고 촉구했다.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 URL을 올린 이는 “이 법이 통과되면 유튜브나 카톡으로 악한 것을 악하다고 할 수 없게 됩니다. 국민청원과는 다릅니다. 입법예고는 만명만 반대하면 자동 폐기된다고 합니다. 꼭 폐기해야 합니다. (10/6 마감)”이라고 독려했다.

극우 채널
URL 첨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의 URL을 첨부하는 글도 있다. ‘개헌안, 차별금지법의 독소조항이 포함된 국가인권정책 기본계획을 즉각 철회해 주십시오’라는 청와대 국민청원 글의 URL을 붙인 사람은 차별금지법에 대해 “동성애, 공산주의, 이단, 이슬람 등에 대한 사실에 근거한 반대도 처벌”이라고 주장했다. 


성평등 정책에 대해서는 “남녀평등인 양성평등 아니라 동성혼 합법화의 수순”이라며 청원에 동참해 줄 것을 채팅방서 호소했다.

39명이 속한 ‘탄핵 10적 OOO OOO’ 채팅방은 진보뿐 아니라 보수 정치인도 비난한다. 주로 2016년 12월 국회서 박근혜 당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통과됐을 때 찬성표를 던진 비박계 정치인이 타깃이다. 한국당 김무성 의원과 바른미래당 유승민 의원이 가장 많이 거론된다.

이를 테면 “이명박이 지 앞날을 모르고 김무성을 시켜 탄핵을 획책한 꼴이 자승자박”이라고 평가한 사람이 있으며, “박근혜를 출당시키고 친박을 몰아내는 홍준표는 바른정당 놈들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함”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주로 한국당 친박계의 주장과 일치한다.

최근 문재인정부는 가짜뉴스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지난 2일 국무회의서 가짜뉴스를 ‘공동체 파괴범’으로 규정하고 법적 조치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그는 “유튜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온라인서 의도적이고 악의적인 가짜뉴스가 급속히 번지고 있다. 개인의 사생활이나 민감한 정책현안은 물론, 남북관계를 포함한 국가안보나 국가원수와 관련한 턱없는 가짜뉴스까지 나돈다”며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극비보고서? 극우·친박계 문법 답습
고민하는 방통위 “자율규제로 가닥”


가짜뉴스 근절 방안은 2018국정감사서도 최대 화두로 떠올랐다.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는 지난 11일 국회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 주요업무 보고를 하는 자리에서 자율규제에 초점을 맞춘 가짜뉴스 확산 방지 대책을 12월에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방통위가 직접 나서 가짜뉴스를 판별하면 헌법상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 자리서 진성철 방통위 대변인은 “범정부 대책과 방통위 방안은 별개로 추진되는 사안”이라며 “방통위는 민간에 자율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정치권은 가짜뉴스 확산 방지를 위한 종합대책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주로 한국당을 비롯한 야당이 이 같은 주장을 펼치고 있다. 이날 국감장에서는 가짜뉴스 대응방안을 놓고 질의가 끊이지 않았다.

한국당 박대출 의원은 이효성 방통위원장에게 “조작된 허위정보만을 대상으로 하면 현행법으로도 처벌이 가능한데 왜 국가기관 7개가 동원되느냐”며 “선진국서 국가기관을 동원하고 국무총리가 나서는 경우가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보수 언론
재갈물리기?

같은 당 박성중 의원도 “가짜뉴스 판명은 현행법으로 처리 가능하다. 우리가 문제 삼는 것은 국무총리가 나서고, 전 정부가 나서서 반대 목소리를 누를 여지가 있다는 것”이라며 “국가가 나서지 말고 자율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당은 이낙연 국무총리가 가짜뉴스를 엄단하겠다고 나선 것은 표현의 자유는 물론 보수 언론에 재갈을 물리기 위한 권위주의적 행태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대해 이 위원장은 “가짜뉴스라는 말이 포괄적이고 불분명한 측면이 있다”며 “표현의 자유를 해치지 않는 수준서 허위조작정보에 한해 대처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가짜뉴스’ 페이스북 대처

페이스북이 미국 내에서 사용자들의 관심을 유도하는 가짜 페이지와 계정을 발견해 없앴다고 지난 11일(현지시각) <블룸버그통신>이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페이스북은 잘못된 정보와 스팸의 확산을 이끄는 559페이지와 251개의 계정을 삭제했다. 대부분 미국 내에서 생성된 것들이다.

이번에 삭제된 가짜 페이지와 계정은 정치뉴스로 가장해 클릭하면 급전대출 등과 같은 상업성 비공인 금융 사이트로 연결된다. 모두 페이스북 이용 규정을 어긴 것들이며, 미국 중간선거를 앞두고 미국인들의 관심이 정치에 몰리고 있는 점을 역이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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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법률수석 부활 속셈

‘갑자기?’ 법률수석 부활 속셈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4·10 총선이 범야권의 승리로 끝났다. 집권여당은 참패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집권 3년차인 윤석열정부는 국정운영의 동력을 잃게 생겼다. 레임덕을 넘어 데드덕이라는 표현까지 나오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정치 인생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식물 대통령’으로 전락한 윤 대통령의 다음 행보는 엇일까? 속사정이야 어떻든 숫자만 놓고 봤을 때 이견이 없는 결과가 나왔다. 범야권은 192석을 얻어 ‘반윤 거야’ 전선을 형성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161석, 민주당의 위성정당 더불어민주연합 14석, 조국혁신당 12석, 개혁신당 3석, 새로운미래 1석, 진보당 1석 등을 모두 합친 수치다. 국민의힘은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 의석(18석)을 포함해 108석을 얻는 데 그쳤다. 완벽한 참패 식물 대통령 선거를 진두지휘한 각 당 대표의 희비도 엇갈렸다. 사법 리스크를 안고도 선거를 승리로 이끈 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정국의 주도권을 잡게 됐고 국민의힘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정치 생명에 큰 타격을 입었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은 실제 선거를 뛴 선수보다 더 큰 영향을 받게 됐다. 윤 대통령은 임기 내내 의회 주도권을 야당에 내준 상태로 정국을 운영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한다고 해도 여당의 이탈표를 걱정해야 한다. 총선이 끝나면서 권력의 무게추가 당으로 기울어지는 모양새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또 이미 거부권을 9차례나 사용한 이력이 민심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각 당은 이번 총선서 ‘정권 심판론’을 정면에 내세웠다. 민주당은 윤석열정부 심판, 국민의힘은 ‘이조(이재명-조국) 심판’ 프레임으로 유권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했다. 국민은 범야권에 의석을 몰아주면서 정부 심판의 손을 들어줬다. 윤석열정부에 대한 중간평가에 ‘낙제점’을 준 것이다. 윤석열정부는 당장 밀어붙이고 있던 정책에 차질을 빚게 됐다.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을 골자로 하는 의료개혁이 대표적이다. 윤 대통령은 총선 패배 메시지를 통해 의료개혁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드러냈지만 추진력에 대해서는 의문부호가 붙는다. ‘카르텔 타파’라는 국정기조도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 윤 대통령은 지난 16일, 총선 결과와 관련해 첫 육성 메시지를 내놨다. 총선 참패 후 엿새 만이다. 민정수석실 폐지 대선공약 민심 청취 명분 부활 예고 윤 대통령은 “총선을 통해 나타난 민심을 우리 모두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올바른 국정의 방향을 잡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음에도 국민들께서 체감하실 만큼의 변화를 만드는 데 모자랐다”며 “큰 틀에서 국민을 위한 정책이라 해도 세심한 영역서 부족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윤석열정부서 추진하고 있던 개혁은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윤 대통령은 “노동, 교육, 연금 등 3대 개혁과 의료개혁을 계속 추진하되, 합리적인 의견을 더 챙기고 귀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국회와의 긴밀한 협력을 말했지만 야당을 명시적으로 언급하진 않았다. 윤 대통령의 메시지에 야권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민주당 홍익표 원내대표는 윤 대통령의 메시지에 대해 “개탄스럽다”며 “오만, 독선, 불통 정치를 계속하겠다는 마이웨이 선언”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이번 총선서 확인한 민심은 국정기조 전면 전환과 민생경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할 방안을 제시해 달라는 주문”이라며 “윤 대통령은 국정 실패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민생경제의 잘못을 인정하고 실질적 대책과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이 총선 패배에 대한 목소리를 내면서 이후 내놓을 쇄신안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미 국무총리와 대통령비서실장 인선과 관련한 하마평이 나오는 중이다. 지난 17일에는 대통령실서 국무총리로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을, 비서실장에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을 고려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일단 대통령실에서는 “검토한 바 없다”고 대응한 상태다. 3대 개혁 밀어붙인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현재 비서실장 아래에 있는 공직기강비서관실과 법률비서관실을 관장할 ‘법률수석비서관실(가칭)’이 신설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민심 청취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민정수석이 존재할 당시 폐해로 여겨졌던 사정 기능은 제한하고 민심을 읽는 방향의 조직을 만들 것이라는 구체적인 언급도 나오고 있다. 이 과정서 사실상 민정수석실이 부활하는 게 아니냐는 의견이 나왔다. 민정수석실 폐지는 윤 대통령의 대선공약 중 하나였다. 윤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앞으로 대통령실 업무서 사정, 정보 조사 기능을 철저히 배제하고 민정수석실을 폐지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과거 사정기관을 장악한 민정수석실은 합법을 가장해 정적, 정치적 반대 세력을 통제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고 세평 검증을 위장해 국민 신상 털기와 뒷조사를 벌여왔는데 이런 잔재를 청산하겠다”고 말했다. 실제 윤석열정부 출범 직전 대통령실은 2실(비서실·국가안보실) 5수석(경제·사회·정무·홍보·시민사회) 체제로 개편됐다. 당시 당선인 신분이었던 윤 대통령이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청산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윤석열정부 출범 3개월 만에 정책기획수석이 신설되면서 2실6수석 체제가 됐다. 민정수석실서 맡고 있던 공직기강 업무와 인사검증 업무는 법률비서관, 법무부 등으로 이관됐다. 특히 법무부에 공직자 검증 업무를 전담하는 인사정보관리단이 신설되면서 당시 법무부 장관이었던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에 권력이 지나치게 집중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사정 기능 제한한다? 지난해 11월 윤 대통령은 정책실장을 신설하는 등 대통령실 직제를 3실6수석 체제로 개편했다. 개편 과정서 기존 수석들을 물갈이하면서 대통령실 2기 체제의 출범을 알렸다. 이때도 민정수석실 관련 언급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총선 패배 이후 대통령실 쇄신안에 법률수석이 거론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야당은 즉각 반발했다. 민심 청취는 표면용일 뿐 결국 윤 대통령이 사정정국을 조성하려는 의도를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민정수석실 폐지’라는 대선공약을 파기하고 여소야대 정국을 돌파하기 위한 자구책이라는 설명이다. 여기에 야당서 예고한 특검을 방어하려는 선제적 조치가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당초 민정수석실은 민심 청취 기능과 무관하게 운영됐다. 오히려 폐지 가능성이 나오고 있는 시민사회수석실이 민심을 듣는 역할을 해왔다. 민정수석은 고위공직자 인사 검증, 국정 관련 여론 수렴, 고위공직자 복무 동향 점검, 대통령 친인척 관리, 사정기관과 소통 등의 업무를 주로 했다. 하지만 역대 정부서 가장 부각됐던 기능은 국가정보원, 검찰, 경찰, 국세청, 감사원 등 5대 사정기관을 관리하는 것이었다. 실제 2000년 김대중정부서 폐지되기 전까지 이른바 ‘사직동팀’이 청와대 하명수사를 전담했다. 사직동팀은 경찰청 형사국 조사과를 일컫는 말이다. 윤 대통령 역시 당선인 시절 대통령 인수위원회 첫 과제로 민정수석실 폐지를 밀어붙이며 “사직동팀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한 바 있다. 대통령실은 법률수석을 신설하더라도 사정 기능은 제한하겠다는 뜻을 비쳤지만 의심의 눈초리는 여전하다. 김건희·채 상병 특검법 대기 신임 수석 검찰 출신 될 듯 민주당 고민정 최고위원은 지난 16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법률수석 신설은 앞으로 들이닥칠 영부인에 대한 특검 등을 방어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며 “이제 와서 법률수석비서관실을 신설한다는 것은 사법 리스크 방어 차원”이라고 주장했다. 21대 국회에 이어 22대 국회서도 여소야대 정국이 유지되면서 민주당 등 범야권은 ‘해병대 채 상병 사망사건 수사외압 의혹 특별검사법(채 상병 특검법)’과 ‘김건희 여사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특별검사법(김건희 여사 특검법)’ 등을 예고했다. 국민의힘서도 채 상병 특검법 수용과 관련해 의견이 갈리는 만큼 국회 통과 가능성이 제기된다. 윤 대통령은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 한 차례 거부권을 행사한 상태다. 192석을 확보한 범야권은 21대 국회서 채 상병 특검법이 좌절된다고 해도 22대 국회서 재추진한다는 뜻을 보이고 있다. 고민정 최고위원도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채 상병의 죽음 앞에 정치권이 더는 부끄럽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민주당서도 의지가 충분히 있고 국회서 당장 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돼있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김건희 여사 특검법도 22대 국회 개원 전후로 다시 도마에 오를 전망이다. 12석을 확보한 조국혁신당은 아예 22대 국회 1호 법안으로 김건희 여사 특검법을 공언했다. 민주당과 개혁신당 등이 조국혁신당에 동의한다는 뜻을 보인 만큼 추진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 높다. 국민의힘 내부서도 수용 여부에 대한 의견이 갈리고 있어 향후 상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정기관 잡고 흔드나 범야권이 다수 의석을 무기로 특검 정국을 예고하면서 윤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압박 수위가 높아지는 모양새다. 법률수석을 새로 만들려는 의도가 ‘방어’로 읽히는 분위기도 윤 대통령이 처한 상황이 녹록지 않기 때문으로 보인다. 심지어 총선이 마무리되면서 국민의힘에 대한 윤 대통령의 지배력 역시 작아진 상태라는 점도 법률수석 신설의 배경으로 꼽히고 있다. 이미 시작된 것으로 보이는 레임덕을 최대한 늦추기 위한 궁여지책이라는 말도 나온다. 신임 법률수석을 누가 맡게 될지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벌써부터 하마평이 돌고 있다. 검찰 출신들로 채워질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