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칵’ 한국만화영상진흥원 무슨 일이…

성희롱 사주에 가려진 부천시 속내는?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경기도 부천시는 일찍부터 ‘만화 도시’를 목표로 다양한 사업에 투자해왔다. 그 결과 부천은 만화 영역서 독보적인 위치에 올랐다. 그 중심에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 있다. 진흥원은 만화계와 부천시가 만화 발전을 위해 협치하는 무대. 최근 진흥원이 안팎의 문제로 홍역을 앓고 있다.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하 진흥원)은 한국만화산업을 육성, 발전시키고 국제경쟁력을 키워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기 위해 설립된 단체다. 1998년 부천만화정보센터로 시작, 2001년 사단법인으로 출범했다가 2006년 재단법인화됐다가 2009년에 현재의 명칭으로 바뀌었다. 주무부서는 부천시 만화애니과로, 진흥원의 지도·감독을 맡고 있다.

연이은 문제
진흥원 시끌

최근 진흥원은 혼란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지난해 12월 취임한 안○○ 전 원장은 2년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지난 8월 자진 사퇴 형식으로 물러났다. 지난 8월15일부터 19일까지 열린 부천국제만화축제가 ‘역대급 성공’이라는 호평을 받고 폐막한 직후였다. 

언론서 안 전 원장과 진흥원 간부 김○○ 본부장에 대한 여러 의혹을 보도했다. 앞서 7월에는 진흥원 내부 보안문서가 유출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부천시는 진흥원에 대한 특별감사에 돌입했다. 겉으로 보기엔 진흥원의 내홍에 부천시가 감사를 통해 개입한 모양새다. 하지만 일련의 사건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진흥원 내부 사정에 밝은 만화계 관계자 역시 언론이나 감사 등을 통해 표면적으로 드러난 것보다 더 깊은 속사정이 있다고 했다.


안 전 원장은 진흥원 사임 이후 쏟아진 여러 의혹에 대해 줄곧 침묵을 지키다 지난달 20일 처음 언론을 상대로 속내를 밝혔다. 안 전 원장은 자신을 둘러싼 의혹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정한 상태였다. 

그는 “진흥원 원장으로 일하는 동안 마음고생이 너무 심했다. 조용히 물러나고 싶었지만 근거 없는 소문과 악의적인 공격이 계속돼 대응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전 원장 9개월 만에 사임 왜?
문서유출·성희롱 사주 터져

이 과정서 만화계는 물론 진흥원과 부천시를 발칵 뒤집어놓은 ‘성희롱 사주’ 녹취파일이 공개됐다. 녹취파일에는 최○○ 전 부천시 만화애니과 과장이 김 본부장에게 ‘안 전 원장이 술자리에서 성희롱 발언을 하면 그 내용을 녹취해 오라’고 사주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사건의 핵심인물로 지목된 최 전 과장은 진흥원 노조와 관련 협회·단체서 파면을 요구했지만 현재 약대동장으로 전보조치된 상황이다. 

안 전 원장은 최 전 과장을 통신비밀보호법위반 미수, 직권남용권리행사 방해, 업무방해 혐의 등으로 고소했다. 

안 전 원장은 “다른 것은 바라지 않는다. 그저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고 싶을 뿐”이라고 전했다. 법정 공방으로 치달을 듯했던 사태는 최 전 과장의 사과로 봉합 수순에 접어드는 모양새다.


안 전 원장에 따르면 최 전 과장은 지난달 27일 성희롱 녹취 사주 건과 안 전 원장을 둘러싼 여러 의혹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한다는 뜻을 담은 공식사과문을 전달했다. 또 성희롱 녹취 사주 건과 관련해 언론에 해명하는 과정서 나온 발언은 사실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최 전 과장은 성희롱 녹취 사주 건이 불거진 이후 언론과의 인터뷰서 “안 전 원장이 성추행을 저지른다는 제보가 많아 녹취를 사주했다”는 뉘앙스로 발언한 바 있다.

성희롱 사주?
전 원장 고소

문제는 일련의 사태를 단순히 시 관계자 개인의 일탈로 보고 사과문으로 덮기엔 본질은 따로 있다는 주장이 계속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진흥원 관계자는 “이번 사태가 단순히 안 전 원장과 김 본부장을 쫓아내기 위해 일어났다고 보진 않는다”며 “넓게 보면 만화애니과서 진흥원을 장악하고 나아가 없애기 위한 시도의 첫 단계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자체 조사, 징계위원회 등에서 마무리된 사건이 계속해서 확대·재생산된 것도 그 일환이라는 주장이다. 

실제 김 본부장의 논문 비위 의혹 건은 징계위원회서 징계 논의 자체가 기각된 사안이지만 최근까지도 언론 보도가 계속됐다. 앞서 김 본부장이 석사학위 논문을 쓰는 과정서 특정 교수에게 연구용역 책임연구원을 맡겼고, 그 연구용역 결과를 멋대로 사용했다는 내용의 투서가 국민권익위로 들어갔다.

조사를 진행한 부천시 감사실은 김 본부장이 ‘부작위 의무’를 위반했다며 진흥원에 경징계를 권고했다. 김 본부장이 진흥원 예산으로 진행된 연구용역 결과를 원장에게 보고하는 과정을 생략하고 사용한 것이 부작위의 의무를 위반했다는 설명이다. 

김 본부장은 당시 연구용역 결과를 2차 분석해 논문에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체 징계위원회에 참석했던 관계자는 “(김 본부장은)메타데이터의 일부를 가지고 수도권 지역에 있는 작가들의 만족도 조사를 진행했다. 때문에 메타데이터 결과와 논문 결과는 완전히 다르다”며 “(원장에게) 보고를 하지 않았을 뿐 출처 표기도 전부 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진흥원 간부의 논문 사건으로 시끄럽던 사이 진흥원 내부의 또 다른 사건은 형사고발 조치까지 이뤄졌지만 상대적으로 조용히 묻혔다. 진흥원 내부 보안문서가 유출된 사건이다. 

진흥원 관계자는 “다른 사안보다 더욱 심각한 사건이지만 경찰 조사부터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며 “문서유출 사건이 지금 상황의 ‘스모킹 건’이 됐다”고 강조했다.


지난 7월 최○○ 차장은 카카오톡을 통해 김 본부장에게 특정 문서를 보냈다. 김 본부장의 논문 비위 의혹과 관련한 징계위원회 개최 건의에 필요한 문서였다. 해당 문서에는 김 본부장과 관련 인물들의 개인정보가 담겨 있었다. 최 차장은 해당 문서를 다른 사람에게 보내려다 김 본부장에게 잘못 보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날은 진흥원 이사회가 있던 날로, 이사회에 참석했던 진흥원 관계자들은 저녁식사를 하던 중이었다. 최 차장이 보낸 문서를 받은 김 본부장은 그 자리서 즉각 문제를 제기했다. 최 차장은 호기심에 문서를 다운로드 받았고 개인 비밀번호를 쳤더니 문서가 열려 김 본부장에게 보고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만화축제 성공 직후 감사
원장 표적으로 감사 진행?

진흥원은 규정에 따라 최 차장을 형사고발했다. 경찰은 이 사건에 대해 불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하지만 진흥원서 최 차장의 동의하에 컴퓨터를 압수수색해 디지털 포렌식을 진행한 결과, 석연치 않은 점이 드러났다. 

진흥원 관계자에 따르면 보안문서는 기안자와 결재자가 비밀번호를 넣어야만 확인이 가능하다. 또 문서를 열어보거나 다운로드 받으면 반드시 기록이 남는다.

하지만 최 차장의 컴퓨터에는 문제의 보안문서에 대한 기록이 전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다시 말해 최 차장의 휴대폰서 김 본부장의 휴대폰으로 문서가 옮겨간 흔적만 있을 뿐 컴퓨터에는 해당 문서와 관련한 아무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다. 


현재 경찰은 검찰의 지시로 해당 사건에 대해 재수사 중이다.

만화계 관계자는 “이 건(문서유출)을 덮기 위해 안 전 원장에 대한 음해성 소문, 이미 경징계로 결론난 김 본부장의 논문 비위 의혹 등 수많은 논란을 끌고 왔다는 말이 진흥원 내부에 파다하다”며 “하지만 부천시 특별감사서도 이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다루지 않는 것 같다”고 귀띔했다. 
 

그러면서 최 전 과장의 성희롱 녹취 사주 건에 대해서도 제대로 된 조사가 이뤄지지 않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보안문서 유출
“보고하려 했다”

진흥원 관계자는 “문서유출 사건이 터지고 이상하게 보안문서 유출 행위 자체보다 문서 내용, 진흥원의 대응이 도마에 올랐다”며 “최 차장이 보안문서를 어떤 경로로 취득했는지, 누구에게 보내려 했는지 등의 본질은 사라졌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문서유출 건은 부천시가 진흥원 행정에 과도하게 개입하려다 실수가 나온 경우로 보인다”며 “이 같은 개입 시도는 이전에도 여러 차례 있었다”고 덧붙였다.

특히 2016년 만화애니과가 신설된 이후 사사건건 진흥원과 대립이 있었다는 말이 나왔다. 이전까지는 만화팀서 진흥원을 지도·감독했다. 진흥원은 운영 방식이 여타 출연기관과는 달리 독특한 구조를 띤다. 

이사장을 비롯, 이사회의 절반이 만화가로 구성돼있다. 이 때문에 특정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만화가들의 지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부천시에서 진흥원을 쉽게 좌지우지 할 수 없는 이유다.

그럼에도 부천시의 개입 시도가 없던 건 아니라는 게 진흥원 관계자들의 주장이다. 현재 진행 중인 부천시 특별감사만 해도 부천시의 진흥원 장악 시도라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부천시가 진흥원 특별감사에 나선 날짜는 지난 8월22일로, 만화축제 폐막 3일 후였다. 시의회 행정사무감사를 불과 일주일 앞두고 전격적으로 진행된 특별감사였다.

특별감사에 들어가기까지 절차 역시 문제로 떠올랐다. <시사저널>에 따르면 특별감사실시계획서의 발신자는 진흥원 감사에서 부천시장으로 한 차례 바뀌었고, 결국 바뀐 계획서에 따라 감사가 시작됐다. 

부천시는 문서유출 등으로 뒤숭숭한 진흥원 내부 기강 확립 차원서 감사를 진행한다고 밝힌 상태다.

그러나 부천시의 해명과는 달리 석연치 않은 착수 절차와 시기 등의 문제로 이번 특별감사가 안 전 원장을 찍어내기 위한 표적 감사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안 전 원장은 “취임 직후 인사발령 과정서 김 본부장을 그 자리에 앉히고부터 부천시와의 관계가 삐걱거리기 시작했다”며 “시의원, 시 관계자 등에게 인사 관련 전화를 받았다”고 토로했다. 

이뿐만 아니라 안 전 원장이 취임 직후 조직 개편을 시도했지만 무산된 사례도 있었다. 안 전 원장은 원장 고유의 인사권을 침해당했다는 입장이다.

특별감사는 여전히 진행 중(지난달 27일 기준)에 있다. 

부천시 감사실 관계자는 “진행 중인 감사 내용에 대해서는 알려줄 수 없다”며 “감사가 언제 끝날 지에 대해서도 확정된 바가 없다”고 말했다. 

진흥원 관계자는 “부천시는 특별감사를 통해 조직 기강을 확립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직원들은 지나치게 길게 이어지는 감사에 더 지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안 전 원장의 사임 직후 특별감사 진행 기간 중에 부천시 문화국 김○○ 국장과 최 전 과장이 김동화 이사장을 찾아가 진흥원 예산을 만화애니과서 직접 다루고 싶다는 입장을 전한 사실도 드러났다.

김 이사장은 “만화애니과서 진흥원을 국가기관화 하려 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땐 시가 진흥원 운영이 부담이 돼서 그런 줄로만 알았다”며 “하지만 최 전 과장이 나를 찾아와 예산 문제를 말했을 땐 ‘욕심을 부리는 구나’라고 생각해 어처구니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 만화가 얼마나 어렵게 이만큼까지 성장했는데, 일개 과장의 행동으로 만화계 전체가 뒤흔들리고 있다”며 “분명한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앞서 5월에는 진흥원에 대한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조례를 개정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지난달 13일에는 역시 진흥원에 대한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내용으로 부천시서 제출한 조례개정안이 상정됐다. 부천시의회 재정문화위원회는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설치 및 운영 조례 일부개정조례안’에 대해 만장일치로 부결 처리했다.

개정안에는 “시장은 필요한 경우 진흥원의 경영상황이나 관련 업무를 보고하게 할 수 있으며, 진흥원은 법령이나 조례에 명시된 사항에 대해 사전에 주무부서와 문서 또는 구두로 협의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진흥원 관계자는 “앞서 오○○ 원장 시절에도 정관을 바꿔 진흥원의 법적 대표 지위를 이사장서 원장으로 교체하려는 안건이 이사회에 올라오기도 했다”며 “만화계가 중심을 지키고 있는 현행 진흥원 구조를 깨려는 시도는 꾸준히 있어왔다”고 설명했다.

시의 장악 시도?
“꾸준히 있었다”

한 문화계 관계자는 “지도·감독의 미명하에 지자체서 독립된 공공기관을 지나치게 통제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게 하는 현실이 제2의 진흥원 사태를 불러 올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며 “이번 사태를 계기로 공공기관이 법에서 정한 정당한 자율권을 보장 받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이어 “특히 문화예술분야의 공공기관 자율권 침해는 블랙리스트 탄압보다 더 엄중한 사안”이라며 “문화예술분야의 창의성은 자율성이 근본이 되어야만 발전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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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 상병 특검’ 공수처 불편한 속내

‘채 상병 특검’ 공수처 불편한 속내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채 상병 특검’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야권의 4·10 총선 압승으로 더불어민주당의 움직임에도 속도가 붙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난감하기만 하다. 부족한 인력으로 인해 수사의 첫 단추도 끼우지 못하는 실정이다. 발 빠른 수사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공수처 안팎에서는 정치권의 책임 떠넘기기에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조직이 와해되기 직전인데 수사에 속도가 어떻게 나겠느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출신 한 변호사의 말이다. 요즘 공수처의 분위기는 참혹하다. 해병대 ‘채 상병 사건’으로 반전을 꾀하고 싶어도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특별검사(이하 특검) 목소리가 거세지면서 ‘비교 대상’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대통령실 압수수색? 채 상병 사건 특검법 추진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공수처의 분위기는 암흑 상태다. 검찰 제도를 보완해 ‘상설특검’ 명목으로 출범했음에도 ‘늑장·부실’ 수사 논란 속에 결국 사건 기록을 특검에 넘겨줘야 하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오는 5월2일, 임시국회를 열어 법안을 표결하자는 분위기다. 법안 통과를 위해서는 국회의장과 여당의 협조가 필요한데, 총선 이후 여당 일각서도 채 상병 특검에 동의하는 분위기가 표출되고 있다. 채 상병 특검 법안은 지난해 10월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뒤 180일의 숙려 기간을 거쳐 본회의 표결만 하면 언제든 통과할 수 있는 상황이다. 채 상병 사건 수사 갈래는 크게 두 가지다. 무리한 수색 지시 등 책임자를 가리는 본안 수사가 경북지방경찰청서 진행 중이고, 해병대 수사단의 초동 조사에 국방부와 대통령실 관계자가 개입했다는 외압 의혹은 공수처가 맡고 있다. 외압 핵심 피의자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주호주대사로 임명돼 부임 후 사퇴하는 과정서 대통령과 법무·외교부 장관의 직권남용 의혹도 공수처에 추가로 고발됐다. 야권이 특검을 통해 밝히려는 사안의 실체는 수사 외압에 집중돼있다. 특검이 통과되면 공수처가 내려던 실적이 특검으로 넘어가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민주당은 이 대사 임명 과정서의 추가 의혹도 특검법안을 수정 발의해 포함할 계획이다. 공수처는 수사의 무게를 일부 덜겠지만, 6개월 넘게 진행해온 사건 기록을 외부에 넘긴다는 건 또 다른 비판의 빌미를 제공하는 셈이다. 특검 추진 본격화…수사팀 의욕 잃어 “이럴 거면 왜 강조하나” 불만 증폭 공수처 출신 한 변호사는 “인력난 때문에 고전하는 상황이다. 내부 얘기를 들어보면 ‘죽을 맛’이란다. 채 상병 사건 수사는 최선을 다하려 했는데 특검이 언급되면서 수사팀의 의욕이 상실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수처법상 수사 범위와 인원 범위가 지나치게 제한돼있어 실질적인 수사 기능을 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설명이다. 공수처법은 공수처의 수사 범위를 현직 공직자와 그 가족, 퇴임 3년 이내 전직 고위공직자로 한정하고 있다. 공수처 검사와 수사관의 인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현재 공수처법이 규정하고 있는 검사와 수사관의 규모는 처·차장 포함 검사 25명, 수사관 40명이다. 공수처법을 추진할 당시 규모는 검사 30~50인, 수사관 50~70인이 제안됐지만 법무부와 국회의 논의를 거치면서 현재 정원으로 대폭 감소했다. 공수처 관계자는 “총선과 무관하게 지속적으로 인원 확대와 관련해 국회와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며 “검사의 신분보장을 위한 임기에 대해서도 개선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앞서 공수처는 최소한의 행정인력이라도 확보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 달라고 호소한 바 있다. 현행법상 행정인원 정원은 20명인데 지난 2022년 공수처는 행정직원 중 국·과장과 직제 파견자 등 7명을 제외하면 실제 가용인원이 13명에 불과해 수사관을 행정인력에 투입해야 할 상황에 놓인 바 있다. 공수처가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법 개정이 필수적이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특히 공수처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일치시켜 수사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수처는 ‘공수처법상 기소권 없는 사건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연구용역’을 발주하는 등 수사 대상과 기소 대상의 불일치로 발생하는 구속영장 논란을 정리하기 위한 연구에 착수하기도 했다. 인력난 가중화 지금까지 공수처가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한 상황을 보면 초기 단계에 불과하다. 지난해 12월 이 전 장관 등을 출국금지했고, 한 달 후인 지난 1월 압수수색에 착수했다. 이후 포렌식과 참고인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 전 장관을 비롯한 국방부 지휘부와 해병대 수뇌부 등에 대한 조사는 특검의 몫이 될 가능성도 있다. 경우에 따라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등으로 특검 수사가 확대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공수처와 경찰은 특검법 처리 여부를 주시하며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총선 국면서 논란의 중심에 선 공수처는 수사를 신속하게 진행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겠다는 입장이다. 공수처 지휘부 공백 상태가 영향을 줄 여지도 있다. 주요 피의자 소환 및 신병처리 등 주요 의사결정을 처장 대행인 부장검사가 결정하기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다. 만약 국회서 여야가 특검법 처리에 합의하는 수순을 밟으면 공수처도 새로 출범할 특검에 기록을 인계하기 위한 작업에 중점을 둘 가능성이 크다. 현재 본회의에 회부된 안은 민주당이 지난해 9월 발의한 법안이다. 민주당이 지난 3월, 이 전 장관이 주호주대사로 임명된 경위를 수사해야 한다는 별도의 특검안도 국회에 제출했기 때문에 이 두 법안이 병합되는 안도 거론된다. 본회의 회부 안건은 수사기간을 최장 100일로 정하고 있는데, 잔여 수사를 검찰에 이첩하도록 명시됐다. 경찰과 공수처가 시작한 수사가 특검을 거쳐 검찰 손에 넘어가는 것은 부자연스럽다는 말도 나온다. 민주당이 3월 발의한 안은 잔여수사 이첩 대상을 검찰과 공수처로 정했다. 단추도 못 끼워 민주당이 특검법 조항 일부를 양보하고 국민의힘이 수사 대상 확대에 동의하는 시나리오도 정치권을 중심으로 나온다. 이런 과정서 본회의 회부 안이 조정될 수도 있다. 이 가운데 이 전 장관은 최근 변호인을 통해 공수처에 “소환조사를 진행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 전 장관 측이 공수처에 소환조사를 요청한 것은 이번이 네 번째다. 이 전 장관 측 김재훈 변호사는 최근 공수처에 소환 촉구 의견서를 내고 “이 전 장관은 호주 대사직서도 물러났으나 공수처는 지금까지도 아무런 연락이 없다”며 “공수처의 이런 수사 방기 탓인지 정치권에서는 특검 필요성까지 제기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공수처에 보낸 의견서에서 “이첩 보류 지시는 직권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국방부 장관은 민간 수사기관으로의 사건 이첩에 대한 최종 승인권자이므로 인사권자가 인사안 결재 후 이를 취소·변경할 수 있듯이 그 승인을 변경할 수 있다”며 “해병대 수사단장에게 수사 권한이 있다느니, 수사단장에게 민간 수사기관으로의 이첩 권한이 있다느니 하는 것은 법 규정의 몰이해로부터 비롯된 억지”라고 주장했다. 이 전 장관 측은 ‘이 장관이 보고서를 회수하라고 지시하기 전에 대통령실 내선번호로 전화를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이 전 장관 측은 “이 전 장관은 대통령으로부터 (사단장을 빼라는)지시를 받은 사실이 없다”며 “당시 장관이 군사보좌관과 논의하는 과정서 ‘(초급 간부들까지 처벌 대상에 포함한다면)초급 간부들이 힘들어할 것 같다’는 의견을 나눴고 법무관리관실의 법리 검토를 거쳐야 한다고 판단해 이첩 보류를 지시했다”고 강조했다. 수사 인원 범위 제한적 법 개정 안되면 도루묵 이어 “재검토한 결과 8월24일 직접적인 혐의가 있는 2명을 경찰에 이첩했고, 해병대수사단 조사기록 원안도 그대로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 전 장관 측은 민주당이 추진하는 ‘채 상병 특검’도 비판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공수처의 1차 수사 결과도 나오지 않은 상황인데 무엇이 미흡하고 국민적 의혹이 남아 해소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냐”며 “특검 논란을 잠재울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은 공수처의 신속한 수사와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공수처 수장이 석 달째 공석인 점은 제도 지속 가능성에 의문을 더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최종 후보자 지명을 두 달 가까이 미루고 있다. 앞서 국회 공수처장후보추천위원회는 지난 2월29일 판사 출신 오동운(사법연수원 27기) 변호사와 검사 출신 이명순(연수원 22기) 변호사를 후보로 추천했다. 김진욱 전 처장과 여운국 전 차장이 임기 만료로 퇴임해 공수처가 ‘대행 체제’에 들어간 건 지난 1월 말부터다. 김선규 수사1부장이 처장 대행을 맡고 있지만, 지난달 제출한 사직서가 수리되지 않아 임시로 대행직을 수행 중이다. 최근 인사위원회서 연임이 불발된 수사1부 소속 김송경 검사(사법연수원 40기) 임기도 만료됐다. 김 대행이 이끄는 수사1부는 공기광 검사만 남게 된다. 별도 조직개편 계획도 없어 수사 부서 1개가 사실상 사라질 위기다. 윤 대통령이 공수처장 후보자를 지명해도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해야 임명이 가능하다. 21대 국회 임기는 내달 29일까지다. 22대 국회가 개원해도 원구성에 시일이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신속한 공수처장 공백 해소를 위해선 이달 안으로 후보 지명을 마쳐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수장 공백 장기화 우려 법조계에서는 특검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공수처법에 따르면, 공수처는 이 전 장관에 대한 수사권은 있지만 기소 권한이 없다. 수사를 마친 뒤 검찰에 사건을 넘기고 검찰이 기소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 구조다. 공수처 출범 당시 수사·기소권을 모두 줄 경우 일각에선 ‘무소불위 공수처’가 될 거란 우려가 제기되면서 공수처는 법관, 검사, 고위 경찰공무원에 대해서만 제한적 기소권을 갖게 됐다. 문제는 검찰이 채 상병 사건 기소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검찰을 관할하는 법무부는 지난달 8일, 공수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 전 장관의 출국금지를 해제했다. 사건 처리의 중립성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특검을 통해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