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개혁의 선구자’ 박원순 신임 서울시장

돛 올린 ‘박원순호’ 정치 개혁 이뤄낼까?

[일요시사=서형숙 기자] 10·26 서울시장 재보선에서 박원순 신임 서울시장이 당선됐다. 시민후보였던 박 시장의 당선은 그간 이념갈등과 지역갈등을 부추긴 낡은 정치판에 대한 민심의 엄중한 경고로 보여진다. 압도적인 시민들의 지지를 받으며 당선된 박 시장. 그는 과연 특권과 반칙이 난무하는 정치권의 개혁을 이뤄낼 수 있을까? 벌써부터 그의 행보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안풍’ 등에 업고 시민들의 압도적 지지로 비상
당선 기쁨은 잠시 서울시정 해결 과제 ‘산더미’ 

‘안풍’을 등에 업고 박원순 신임 서울시장이 비상했다. 여야가 사활을 걸고 뛰어든 10·26 서울시장 재보선에서 박 시장이 당선된 것. 박 시장은 지난달 27일 당선소감에서 “서울시민의 승리를 엄숙히 선언한다”며 “시민은 권력을 이기고 투표가 낡은 시대를 이겼다. 상식과 원칙이 이겼다. 우리는 새로운 시대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이어 박 시장은 “지난 1995년 시민의 손으로 서울시장을 직접 뽑은 이래 26년 만에 드디어 이번 선거에서 시민이 시장이다”면서 “민주주의 정신을 완성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시민들 삶 곳곳의 아픔과 상처를 찾아내는 일부터 시작할 것”이라며 “시민의 편에 서서 시민이 가라는 길을 가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당선의 기쁨도 잠시. 박 시장이 오는 2014년 6월까지 2년8개월 간 이끌어갈 서울시정은 결코 녹록치만은 않다. 박 시장은 범야권 단일후보로 서울시 입성에는 성공했지만 무소속이라는 점에서 민주당 의원들이 2/3 정도를 차지하는 서울시의회와의 관계정립이 무엇보다 절실해 보인다.

“시민 편에 서서
상처 보듬을 것”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경우 무상급식 문제와 한강 르네상스 등 디자인 서울의 핵심 정책들이 사사건건 시의회와의 갈등으로 제동이 걸렸기 때문이다. 현재 민선 5기 서울시 구청장은 전체 25명 가운데 4명만이 한나라당이고 나머지 21명은 민주당 소속으로 구성돼 있다. 서울시의회의 경우도 106명 중 한나라당 소속은 27명인 반면, 무려 79명의 의원이 민주당 배지를 달고 있어 정책을 펴는데 절대적 협조와 지지가 필요한 상황이다.

무엇보다 오는 10일까지 의회에 제출해야할 내년도 예산문제가 급선무이다. 우선 현재 4학년까지 시행하고 있는 무상급식 예산을 당장 다음 달부터 어떤 재원으로 5·6학년까지 늘릴 것인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서울시의회는 이미 695억원의 무상급식 예산을 책정해 놓아 서울시가 집행만 하면 되지만 오는 2014년까지 초·중학교 전 학년에게 무상급식을 확대하려는 그에게 재원조달 방안은 과제로 남게 될 전망이다.

또 선거과정에서 한강 르네상스 사업 등 전시성 사업을 모두 중단하겠다고 했지만 이미 많은 예산을 들여 진행 중인 사업들을 세부적으로 어떻게 처리할 지도 고민거리다. 박 시장은 “전시성 사업은 전면적으로 재검토하겠다”고 밝혀 향후 전문가와 시민이 참여하는 별도 위원회를 구성해 살펴보겠지만 ‘중단’ 쪽에 무게중심이 쏠려 있는 상태다.

박 시장이 공약으로 내세운 임기 중 7조원의 부채를 줄여야 하고 일자리 창출, 그리고 서민을 위해 약속한 임대주택 8만호를 건설해야 하는 것도 장기적으로 검토해야 할 문제다. 무엇보다 소통과 공감을 중시해 온 박 시장이 향후 시공무원들과 동반자로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지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후보자 펀드’로
새로운 선거문화


박 시장은 당초 서울시장 출마 당시 지지율이 4-5%대의 미미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과의 후보단일화로 40∼50%대를 넘나드는 지지율을 기록하며 막강한 후보로 떠올랐다.

안 원장은 지난달 6일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에서 박 시장과 기자회견을 갖고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며 “오늘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를 만나 그의 포부와 의지를 충분히 들었고 시민사회운동을 꽃피운 그가 서울시장직을 누구보다 잘 수행할 수 있는 분이라 생각했다”고 밝혔다.

당시 한나라당 관계자는 “안철수 원장의 40%에 육박하는 지지층 가운데는 보수성향의 사람들도 많았다”며 “다른 길을 걸어온 두 사람이 단일화를 했다고 해서 박 후보의 지지율이 크게 늘어나거나 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러한 예상을 뒤엎고 박 시장은 탄탄한 정당 조직력을 갖춘 여야의 후보들을 맥없이 무너뜨리며 60년 정당정치의 역사에 굴욕을 안겨줬다.

재보선에 앞서 범야권 단일후보 경선에서는 민주당의 탄탄한 조직표를 내세운 박영선 후보를 눌렀다. 이어 지난달 26일 치러진 재보선에서는 한나라당 지도부와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까지 가세하며 전폭적인 지원사격을 받은 나경원 후보마저 꺾었다. 53.40%의 득표율로 46.21%의 득표율을 얻은 나 후보에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 것.

그간 국민들은 현 정권 인사의 측근비리와 낙하신 인사실태 등 부패하고 부조리한 정치판에 불신과 혐오를 느꼈던 게 사실이다. 이 같은 구태의연한 정치판을 국민 스스로가 바꿔보자는 움직임이 일었고, 이번 선거에서 시민후보에 대한 열광으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번 박 시장의 당선으로 시민세력은 그 영향력을 입증 받게 됐다. 때문에 그간 민심을 등돌리게 만들었던 낡은 정치판에 대대적인 쇄신 바람이 예고되고 있다.

‘박원순 펀드’로 깨끗한 선거문화 정착에 앞장서
박원순 서울시장은 시민운동 1세대 선두주자

특히 박 시장은 서울시장 재보선의 법정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유시민 펀드’를 벤치마킹해 ‘박원순 펀드’로 선거비용을 모았다. 지난 9월26일 정오부터 개설된 계좌는 47시간 만에 목표액 45억 가량을 모으는 진기록을 남기면서 마감했다.

박원순 펀드는 박 시장 선거캠프 측에서 약정액을 입금하면 원금과 일정액의 이자를 돌려주는 형식으로 고안한 펀드로 ‘정치자금을 시민으로부터 끌어 쓴다’라는 기본개념을 가지고 마련된 안이었다. 현역 정치인이 아닌 후보는 후보자 등록 신청일까지 후원회를 할 수 없다는 선거법 때문에 만들어진 특단의 대책이었던 것.

그간 정치자금법 규정에 따라 후보등록 전에는 후원회를 둘 수 없는 현실적 한계점에 따라 번번이 정계 진출을 포기했던 정치신인들에게 돌파구를 마련해준 셈이다.

사실상 그동안 기존 정치인들은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재산과 후원금으로 선거를 치렀었다. 이에 반해 박원순 펀드는 젊은 정치신인들에게 ‘돈 없어도 정치할 수 있다’는 모범적 선례를 남기게 됐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나오고 있다.

또 판매결과에 따라 후보의 역량을 홍보할 수 있고 선거 초기 바람몰이에도 효과적이어서 일석삼조의 특효가 입증됐다. 게다가 선거자금을 투명하게 모아 깨끗한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로 새로운 선거문화를 장착시키고 있다.

특히 박 시장은 국내 대표 진보적 시민단체인 참여연대를 만든 시민운동 1세대 선두주자다. 박 시장은 오랜 기간 사회정의를 위해 활동한 점을 높게 평가 받아 지난 2006년 ‘아시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리핀 막사이사이상 공공봉사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1956년 경남 창녕에서 태어난 박 시장은 경기고를 졸업한 뒤 서울대에 입학했다. 그러나 1975년 서울대 1학년 재학시절, 유신체제에 항거해 할복한 고 김상진 열사의 추모식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투옥됐다 제적됐다. 이후 단국대 사학과로 적을 옮겼다.

유학생활 중
시민운동 눈떠


1980년 제22회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연수원을 12기로 수료하면서 법조계에 입문한 박 시장은 대구지검에서 짧은 검사생활을 한 뒤 1983년부터 변호사로 활동했다.

군사정권의 서슬이 시퍼렇던 당시, 권인숙 성고문사건과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을 맡으면서 인권변호사의 길로 접어들었다. 당시 박 시장은 국민연금 노령수당 청구소송을 승소로 이끌며 ‘생활 최저선’이라는 개념을 처음 도입하기도 했다.

그러던 그가 지난 1991년 돌연 유학길에 올라 2년 동안 미국과 영국에서 공부하면서 시민사회운동에 대해 눈을 뜨기 시작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지난 1994년 ‘시민의 힘이 세상을 바꾼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참여연대를 창립, 사무처장을 맡아 본격적으로 시민운동에 뛰어들었다. 이후 소액주주운동 등을 성공시키며 우리 사회의 ‘1세대 시민운동가’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박 시장은 거기서 머물지 않았다. 지난 2000년에는 8년간 몸담았던 참여연대를 떠나 ‘아름다운재단’을 설립하면서 우리 사회 기부문화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또 2001년에는 ‘아름다운가게’를 설립하고 2006년부터 2009년까지 아름다운가게와 아름다운재단 총괄상임이사를 지냈다.

안 원장이 ‘마음 속 응원자’라며 애정을 나타내며 후보직을 양보할 만큼 깊은 친분을 키운 것은 아름다운가게의 사회공헌 활동이 계기가 된 것으로 전해졌다. 아름다운재단이 본궤도에 올라서자 이번에는 ‘21세기 실학운동’을 기치로 ‘희망제작소’를 설립하고 ‘모두가 행복한 사회’를 목표로 활동을 벌여왔다.

한때 대권 후보로 거론될 만큼 정치권의 영입 제의도 잇따랐지만 박 시장은 그간 시민사회 진영의 울타리를 한 번도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서울시장 당선으로 정치권의 새로운 ‘핵’으로 등장했다.

변화를 열망하는 시민들의 염원으로 탄생한 박 시장은 과연 정치권의 혐오와 불신을 종식시켜 정치판 개혁에도 앞장설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 프로필>

▲ 1956년 3월2일 경남 창녕 출생
▲ 경기고 졸업
▲ 단국대 사학과 졸업
▲ 사법시험 22회
▲ 대구지검 검사
▲ 역사문제연구소 초대 이사장
▲ 참여연대 사무처장
▲ 부패방지입법시민연대 공동대표
▲ 사법개혁위원회 위원
▲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공동대표
▲ 아름다운재단 및 가게 총괄상임이사
▲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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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법률수석 부활 속셈

‘갑자기?’ 법률수석 부활 속셈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4·10 총선이 범야권의 승리로 끝났다. 집권여당은 참패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집권 3년차인 윤석열정부는 국정운영의 동력을 잃게 생겼다. 레임덕을 넘어 데드덕이라는 표현까지 나오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정치 인생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식물 대통령’으로 전락한 윤 대통령의 다음 행보는 엇일까? 속사정이야 어떻든 숫자만 놓고 봤을 때 이견이 없는 결과가 나왔다. 범야권은 192석을 얻어 ‘반윤 거야’ 전선을 형성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161석, 민주당의 위성정당 더불어민주연합 14석, 조국혁신당 12석, 개혁신당 3석, 새로운미래 1석, 진보당 1석 등을 모두 합친 수치다. 국민의힘은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 의석(18석)을 포함해 108석을 얻는 데 그쳤다. 완벽한 참패 식물 대통령 선거를 진두지휘한 각 당 대표의 희비도 엇갈렸다. 사법 리스크를 안고도 선거를 승리로 이끈 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정국의 주도권을 잡게 됐고 국민의힘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정치 생명에 큰 타격을 입었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은 실제 선거를 뛴 선수보다 더 큰 영향을 받게 됐다. 윤 대통령은 임기 내내 의회 주도권을 야당에 내준 상태로 정국을 운영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한다고 해도 여당의 이탈표를 걱정해야 한다. 총선이 끝나면서 권력의 무게추가 당으로 기울어지는 모양새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또 이미 거부권을 9차례나 사용한 이력이 민심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각 당은 이번 총선서 ‘정권 심판론’을 정면에 내세웠다. 민주당은 윤석열정부 심판, 국민의힘은 ‘이조(이재명-조국) 심판’ 프레임으로 유권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했다. 국민은 범야권에 의석을 몰아주면서 정부 심판의 손을 들어줬다. 윤석열정부에 대한 중간평가에 ‘낙제점’을 준 것이다. 윤석열정부는 당장 밀어붙이고 있던 정책에 차질을 빚게 됐다.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을 골자로 하는 의료개혁이 대표적이다. 윤 대통령은 총선 패배 메시지를 통해 의료개혁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드러냈지만 추진력에 대해서는 의문부호가 붙는다. ‘카르텔 타파’라는 국정기조도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 윤 대통령은 지난 16일, 총선 결과와 관련해 첫 육성 메시지를 내놨다. 총선 참패 후 엿새 만이다. 민정수석실 폐지 대선공약 민심 청취 명분 부활 예고 윤 대통령은 “총선을 통해 나타난 민심을 우리 모두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올바른 국정의 방향을 잡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음에도 국민들께서 체감하실 만큼의 변화를 만드는 데 모자랐다”며 “큰 틀에서 국민을 위한 정책이라 해도 세심한 영역서 부족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윤석열정부서 추진하고 있던 개혁은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윤 대통령은 “노동, 교육, 연금 등 3대 개혁과 의료개혁을 계속 추진하되, 합리적인 의견을 더 챙기고 귀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국회와의 긴밀한 협력을 말했지만 야당을 명시적으로 언급하진 않았다. 윤 대통령의 메시지에 야권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민주당 홍익표 원내대표는 윤 대통령의 메시지에 대해 “개탄스럽다”며 “오만, 독선, 불통 정치를 계속하겠다는 마이웨이 선언”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이번 총선서 확인한 민심은 국정기조 전면 전환과 민생경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할 방안을 제시해 달라는 주문”이라며 “윤 대통령은 국정 실패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민생경제의 잘못을 인정하고 실질적 대책과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이 총선 패배에 대한 목소리를 내면서 이후 내놓을 쇄신안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미 국무총리와 대통령비서실장 인선과 관련한 하마평이 나오는 중이다. 지난 17일에는 대통령실서 국무총리로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을, 비서실장에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을 고려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일단 대통령실에서는 “검토한 바 없다”고 대응한 상태다. 3대 개혁 밀어붙인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현재 비서실장 아래에 있는 공직기강비서관실과 법률비서관실을 관장할 ‘법률수석비서관실(가칭)’이 신설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민심 청취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민정수석이 존재할 당시 폐해로 여겨졌던 사정 기능은 제한하고 민심을 읽는 방향의 조직을 만들 것이라는 구체적인 언급도 나오고 있다. 이 과정서 사실상 민정수석실이 부활하는 게 아니냐는 의견이 나왔다. 민정수석실 폐지는 윤 대통령의 대선공약 중 하나였다. 윤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앞으로 대통령실 업무서 사정, 정보 조사 기능을 철저히 배제하고 민정수석실을 폐지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과거 사정기관을 장악한 민정수석실은 합법을 가장해 정적, 정치적 반대 세력을 통제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고 세평 검증을 위장해 국민 신상 털기와 뒷조사를 벌여왔는데 이런 잔재를 청산하겠다”고 말했다. 실제 윤석열정부 출범 직전 대통령실은 2실(비서실·국가안보실) 5수석(경제·사회·정무·홍보·시민사회) 체제로 개편됐다. 당시 당선인 신분이었던 윤 대통령이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청산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윤석열정부 출범 3개월 만에 정책기획수석이 신설되면서 2실6수석 체제가 됐다. 민정수석실서 맡고 있던 공직기강 업무와 인사검증 업무는 법률비서관, 법무부 등으로 이관됐다. 특히 법무부에 공직자 검증 업무를 전담하는 인사정보관리단이 신설되면서 당시 법무부 장관이었던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에 권력이 지나치게 집중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사정 기능 제한한다? 지난해 11월 윤 대통령은 정책실장을 신설하는 등 대통령실 직제를 3실6수석 체제로 개편했다. 개편 과정서 기존 수석들을 물갈이하면서 대통령실 2기 체제의 출범을 알렸다. 이때도 민정수석실 관련 언급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총선 패배 이후 대통령실 쇄신안에 법률수석이 거론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야당은 즉각 반발했다. 민심 청취는 표면용일 뿐 결국 윤 대통령이 사정정국을 조성하려는 의도를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민정수석실 폐지’라는 대선공약을 파기하고 여소야대 정국을 돌파하기 위한 자구책이라는 설명이다. 여기에 야당서 예고한 특검을 방어하려는 선제적 조치가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당초 민정수석실은 민심 청취 기능과 무관하게 운영됐다. 오히려 폐지 가능성이 나오고 있는 시민사회수석실이 민심을 듣는 역할을 해왔다. 민정수석은 고위공직자 인사 검증, 국정 관련 여론 수렴, 고위공직자 복무 동향 점검, 대통령 친인척 관리, 사정기관과 소통 등의 업무를 주로 했다. 하지만 역대 정부서 가장 부각됐던 기능은 국가정보원, 검찰, 경찰, 국세청, 감사원 등 5대 사정기관을 관리하는 것이었다. 실제 2000년 김대중정부서 폐지되기 전까지 이른바 ‘사직동팀’이 청와대 하명수사를 전담했다. 사직동팀은 경찰청 형사국 조사과를 일컫는 말이다. 윤 대통령 역시 당선인 시절 대통령 인수위원회 첫 과제로 민정수석실 폐지를 밀어붙이며 “사직동팀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한 바 있다. 대통령실은 법률수석을 신설하더라도 사정 기능은 제한하겠다는 뜻을 비쳤지만 의심의 눈초리는 여전하다. 김건희·채 상병 특검법 대기 신임 수석 검찰 출신 될 듯 민주당 고민정 최고위원은 지난 16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법률수석 신설은 앞으로 들이닥칠 영부인에 대한 특검 등을 방어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며 “이제 와서 법률수석비서관실을 신설한다는 것은 사법 리스크 방어 차원”이라고 주장했다. 21대 국회에 이어 22대 국회서도 여소야대 정국이 유지되면서 민주당 등 범야권은 ‘해병대 채 상병 사망사건 수사외압 의혹 특별검사법(채 상병 특검법)’과 ‘김건희 여사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특별검사법(김건희 여사 특검법)’ 등을 예고했다. 국민의힘서도 채 상병 특검법 수용과 관련해 의견이 갈리는 만큼 국회 통과 가능성이 제기된다. 윤 대통령은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 한 차례 거부권을 행사한 상태다. 192석을 확보한 범야권은 21대 국회서 채 상병 특검법이 좌절된다고 해도 22대 국회서 재추진한다는 뜻을 보이고 있다. 고민정 최고위원도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채 상병의 죽음 앞에 정치권이 더는 부끄럽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민주당서도 의지가 충분히 있고 국회서 당장 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돼있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김건희 여사 특검법도 22대 국회 개원 전후로 다시 도마에 오를 전망이다. 12석을 확보한 조국혁신당은 아예 22대 국회 1호 법안으로 김건희 여사 특검법을 공언했다. 민주당과 개혁신당 등이 조국혁신당에 동의한다는 뜻을 보인 만큼 추진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 높다. 국민의힘 내부서도 수용 여부에 대한 의견이 갈리고 있어 향후 상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정기관 잡고 흔드나 범야권이 다수 의석을 무기로 특검 정국을 예고하면서 윤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압박 수위가 높아지는 모양새다. 법률수석을 새로 만들려는 의도가 ‘방어’로 읽히는 분위기도 윤 대통령이 처한 상황이 녹록지 않기 때문으로 보인다. 심지어 총선이 마무리되면서 국민의힘에 대한 윤 대통령의 지배력 역시 작아진 상태라는 점도 법률수석 신설의 배경으로 꼽히고 있다. 이미 시작된 것으로 보이는 레임덕을 최대한 늦추기 위한 궁여지책이라는 말도 나온다. 신임 법률수석을 누가 맡게 될지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벌써부터 하마평이 돌고 있다. 검찰 출신들로 채워질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