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빵 터지는’ 총기 사건사고 백태

짐승 잡을 총으로 사람 잡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총기 소유가 허용된 미국에선 난사 사건이 자주 일어난다. 피해자가 수십 명이 넘는 대형 살상 사건도 잦다. 우리나라도 마냥 ‘총기 청정국’ ‘총기 안전지대’라고 하기엔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엽총 사건이 발생한다. <일요시사>가 국내서 일어난 엽총 사건을 조명해봤다.
 

지난달 26일 미국 플로리다 주 잭슨빌 세인트존스 강변의 복합쇼핑몰서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했다. 용의자 데이비드 카츠는 쇼핑몰 내 게임바서 온라인게임 토너먼트에 참가하던 중 범행을 저질렀다. 사망자는 3명, 그중 한 명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용의자였다.

앞서 시카고서 8월 첫 주말인 3∼5일과 17∼18일 등 주말 사이에 여러 건의 총격 사건이 동시에 일어나 수십 명의 사상자가 나왔다. 17일과 18일 새벽 사이에 발생한 총격전에선 3세 아이가 부상을 입기도 했다.

총기 규제
엄격해도…

지난해 10월 미국 라스베이거스 만델레이 헤이 호텔에 투숙하던 스티븐 패덕이 맞은 편 콘서트장을 향해 10분간 총기를 난사해 59명이 사망한 일이나 2007년 4월 한국계 미국 영주권자 조승희가 재학 중이던 버지니아 공대 2곳서 총기를 난사해 32명을 살해한 ‘버지니아 공대 총기 난사 사건’ 등은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두 사건 모두 용의자는 자살했다.


잦은 총기 사건으로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피해선상에 오르자 미국 내에서는 총기 규제와 허용을 둘러싼 논란에 휩싸였다. 총기 규제 논쟁은 미국 사회서 오랫동안 답을 내지 못한 주제다. 

대형 살상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규제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높아지지만 그 이상으로 총기를 소유함으로써 자신의 몸은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입장도 만만치 않다.

미국에서 총을 사는 일은 운전면허를 따는 일보다 쉽다. 미국 최대 유통업체인 월마트는 최대 총기 판매업체기도 하다. 상대적으로 가격이 낮은 권총은 한화로 20만원대에 구매가 가능하다. 폭력전과나 정신 병력이 없고 일정 나이 이상이면 누구든 총을 살 수 있다.

그나마도 총기 구매에 나이 제한을 걸어둔 주는 워싱턴 D.C를 비롯, 20개 주뿐이다. 뉴욕은 16세, 몬태나는 15세로 제한 연령도 낮다. 미국에선 10대 청소년도 얼마든지 쉽게 총을 구할 수 있는 셈이다.

구매가 자유롭다보니 미국서 민간인이 총기를 소유한 비율은 상상을 초월한다. 미국 내 경찰 외에 민간인이 가지고 있는 총기 수는 약 2억7000만정에 이른다. 미국 인구가 3억2600만여 명인 것을 감안했을 때 시민 10명 중 8명이 총기를 갖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에서는 연간 3만명, 하루 80명 이상이 총기 사고로 목숨을 잃는다. 미국인들의 사망 원인 2위가 총기사고일 정도다.

그에 반해 국내는 총기 규제가 상당히 엄격한 편이다. 미국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총기 청정국, 총기 안전지대라는 말이 나올 법한 수준이다. 하지만 최근 이 같은 인식에 조금씩 균열이 가고 있다.


전 국민에 총기 소유가 허용된 게 아니기 때문에 그 범위가 좁다 해도 정식으로 총기 소지를 허가받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사건·사고가 한 번씩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7년새 총기사고 90여건
총기 안전지대 균열 생겨

지난달 23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이재정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총기 사건·사고 통계를 발표했다. 발표에 따르면 최근 7년새 총기 사건·사고로 인한 사상자는 89명에 이르렀다. 2012년부터 올해 6월까지 집계한 숫자다. 

이 기간 동안 총포에 의한 사건·사고는 88건, 이로 인한 사망자는 32명, 부상자는 57명으로 나타났다.

연도별로는 2012년 11건, 2013년 13건에서 2014년 9건으로 줄었다가 2015년 10건, 지난해 15건, 올 상반기에만 9건 등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사건·사고가 발생한 총기 종류는 엽총이 53건, 공기총 28건, 기타 7건이었다. 

원인은 오발 사고가 52건으로 가장 많았고 고의도 32건이나 됐다. 자살은 4건이었다.

총기 관련 사건·사고가 늘어나고 있지만 총포 소지 불허 판정은 감소하는 추세다. 범죄 경력, 정신병력 등으로 총포 소지를 허가받지 못한 건수는 2016년 175건서 지난해 93건, 올 상반기 36건으로 줄었다.

또 올해 6월 기준 소지 허가가 취소된 총기 중 미수거 총기는 149정에 달했다. 이 중 도난·분실된 총기는 128정으로 집계됐다.

이재정 의원은 “엽총으로 인한 사건·사고가 계속 발생하는 만큼 이번 국정감사를 통해 총포에 대한 관리방안은 물론 총기 출고방식, 미수고 총기 회수방안 등에 대한 대책을 깊이 있게 질의하겠다”고 밝혔다.

경찰청에 따르면 올해 7월까지 개인이 소지한 총기는 13만여정에 이른다. 종류별로는 공기총이 8만여정으로 가장 많고 엽총이 3만7000여정, 권총 1700여정, 소총 600여정 등이다. 건설용 타정총, 마취총 등 기타로 분류된 총기는 1만3000여정이다.

용도별로는 유해조수 구제용(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멧돼지나 새를 쫓기 위한 목적)이 6만여정, 수렵용 4만4000여정, 사격용 1만2000여정 순이다.

반출 절차는
제대로 지켜


현행 총기 관련 법에 따르면 사냥용이나 레저용 총기는 모두 경찰의 허가를 받아야만 구매와 소지가 가능하다. 허가를 받은 총기는 평소 경찰서에 보관하다가 필요할 때만 신청서를 내고 찾아가도록 돼있다. 총기 허가 요건은 신청자의 범죄내역과 정신병력 등 조회 결격 사유를 확인한다. 

알코올 중독자나 정신질환자는 제한된다.

문제는 총기가 출고된 이후다. 현재까지 국내서 발생한 엽총 사건·사고의 경우 대부분 정식 절차를 거쳐 출고된 이후에 일어났다. 더 큰 문제는 총기 신청자가 허가를 위한 준비를 철저히 했을 경우 총을 내주지 않을 방법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최근 경북 봉화서 일어난 엽총 사건이 그런 경우다.

지난달 21일 경북 봉화 소천면사무소에 김모(77)씨가 엽총을 들고 들이닥쳤다. 그는 직원들에게 총을 발사했고, 민원행정 6급인 손모(47)씨와 8급 이모(38)가 크게 다쳤다. 이들은 닥터 헬기와 소방헬기로 급히 병원으로 옮겨졌다. 

손씨는 가슴 명치와 왼쪽 어깨, 이씨는 가슴에 총상을 입어 심정지 상태로 안동병원으로 이송됐지만 끝내 숨졌다.


김씨는 앞서 이날 오전 9시께 봉화군 소천면 임기역 인근 사찰서 주민 임모(48)씨에게도 엽총을 쏴 어깨에 총상을 입혔다. 병원서 치료를 받고 있는 임씨는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이 김씨를 조사하는 과정서 범행 동기와 계획 등이 드러났다. 김씨는 수개월 전부터 이 같은 범행을 계획했다. 그는 4년 전 봉화로 귀농했다. 이후 상수도관 설치공사 비용과 수도 사용 문제, 화목 보일러 매연 문제 등으로 이웃과 갈등을 겪어왔다. 

또 “이웃 주민이 개를 풀어놓았다”는 신고에 면사무소 공무원과 파출소 경찰관이 이를 적극 처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불만을 품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

금전·불화 등
갈등 끝 ‘빵’

김씨는 범행을 결심하고 관련 허가 등을 취득해 엽총을 구매한 뒤 주거지서 사격 연습까지 했다. 사건 당일 1차로 주민 임씨에게 총을 쏘고 파출소를 찾은 이유도 경찰관을 상대로 범행을 하기 위한 것으로 조사 결과 드러났다.

당시 파출소에 아무도 없자 김씨는 면사무소로 향했다. 봉화경찰서는 “김씨가 이웃 갈등, 민원 처리 불만 등으로 수개월 전부터 범행을 준비했다고 진술했다”고 전했다.

2014년 귀농한 김씨는 소규모 농사를 지으며 생활했다. 최근 폭염과 가뭄으로 상수도 물이 제대로 나오지 않자 이웃과 마찰을 빚었다. 

봉화경찰서는 “김씨가 봉화에 와 수도관을 설치했고 임씨 등 세 가구가 물을 같이 당겨쓰자고 해 사용한 것으로 안다”며 “김씨가 물이 잘 나오지 않자 고지대에 살고 있는 임씨 때문이라고 여겨 평소 사이가 좋지 않은 것으로 파악했다”고 설명했다.

김씨의 범행 이후 경찰의 대처가 도마에 올랐다. 범행을 막을 수 있던 정황이 속속 발견된 것. 김씨는 지난 7월 20일부터 유해조수 구제용으로 소지 허가를 받은 엽총을 파출소에 보관해 왔다. 그리고 범행 당일 아침 소천파출소서 경찰관으로부터 엽총을 받았다.

김씨가 사건을 저지르기에 앞서 피해자 한 명을 위협해 경찰에 진정이 들어간 사실이 확인됐다. 

봉화경찰서에 따르면 제일 먼저 총에 맞은 주민 임씨는 사건 발생 10여일 전 “김씨가 나를 총으로 쏴서 죽이겠다고 위협했다는 말을 한 주민에게 했고, 이 주민이 다시 다른 사람에게 얘기한 것을 전해 들었다”며 경찰에 진정서를 냈다.

경찰은 진정서를 바탕으로 임씨 주변인을 상대로 조사를 벌였다. 이 기간에는 김씨에게 총기를 내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후 총기 위협 사실을 들었다는 주민이 경찰에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없고, 들었다면 바로 신고했을 것”이라고 부인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경찰은 김씨에게 총기를 내주는 문제를 두고 협의한 후 그가 임씨를 위협했다는 근거가 없다고 판단, 엽총을 내줬다.

경찰 관계자는 “김씨가 왜 총기 출고를 해주지 않느냐고 해 내주지 않을 방법이 없었다”며 “총기 허가도 받았고 조사 결과 (임씨의) 진정 내용과 다르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출고를 허용했다. 총기를 내주지 않을 방법이 없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60년 전 상해로 인한 벌금, 도로교통법 위반이 1건 있을 뿐 다른 전과는 없다고 말했다.

엽총 사건·사고는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일어나 시민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고 있다. 2016년 11월에는 음주 적발에 불만을 품은 이모(61)씨가 근무 중이던 경찰관을 향해 엽총을 2발 난사하고 달아난 일이 있었다.

이씨는 사건 당일 오전 12시께 고성경찰서 죽왕파출소에 엽총을 들고 난입해 총을 난사했다. 앞서 경찰의 음주 적발에 불만을 품은 이씨는 분을 삭이지 못하고 자신의 집에 있던 엽총을 들고 파출소를 찾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씨는 범행 후 이를 제지하려는 경찰관과 몸싸움 중 엽총을 빼앗기자 몰고 온 화물차를 타고 도주했지만 1시간20여분 만에 붙잡혔다. 그가 범행에 사용한 총기는 마취용으로 등록한 것이었다. 

갈등 빚다가 ‘욱’
용의자 자살 많아

2013년 12월 해당 총기로 채무자를 협박한 혐의로 구속된 전력도 있다. 이씨가 총기를 분실했다고 진술하면서 허가가 취소됐지만, 그는 자신의 집에 불법 총기를 보관하고 있었다.

2015년에는 엽총 난사 사건이 세 건이나 일어났다. 특히 2월에는 세종시와 경기도 화성시서 사흘 간격으로 총기 사건이 발생해 용의자를 포함, 총 8명이 사망했다. 2015년 2월25일 오전 세종시 장군면 금암리의 한 편의점서 강모(50)씨가 편의점 사장 김모씨의 오빠(50)와 아버지(74)에게 총을 쐈다.

이후 강씨는 김씨의 동거남 송모(52)씨를 찾아가 또 다시 총을 발사했다. 총상을 입은 이들 3명은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모두 숨졌다.

강씨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편의점에 시너를 뿌리고 불을 지른 후 달아났다. 승용차를 타고 도주했던 그는 사건 발생 장소서 약 1㎞ 떨어진 금강변서 머리에 총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강씨가 자살한 것으로 봤다.

숨진 강씨의 옆에는 범행에 사용한 엽총이 놓여 있었다. 범행 동기는 돈 문제로 추정됐다. 강씨는 편의점 사장인 김씨와 한때 사실혼 관계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관계를 정리하는 과정서 편의점 투자 지분을 놓고 갈등을 빚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세종시 엽총 사건서도 용의자는 총기 반출까지는 정식 절차를 거쳤다. 강씨는 사건 당일 충남 공주경찰서 신관지구대에 보관돼있던 이탈리아와 미국산 엽총 2정을 출고했다.

당시만 해도 주거지나 수렵지역과 관계없이 전국의 지구대에 총기를 보관하고 출고할 수 있었다. 경찰 역시 “강씨의 총기 출고와 입고 절차에 문제가 없던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세종시 엽총 사건 이후 채 사흘도 안 돼 화성시서 비슷한 사건이 발생했다. 2015년 2월27일 오전 화성시 남양동서 전모(75)씨가 엽총을 난사해 형(86)과 형수 백모(84)씨, 출동한 관할파출소장 이강석(43) 경감이 총상을 입고 사망했다. 전씨는 경찰과 대치 중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날 경찰은 “작은 아버지가 부모님을 쐈다”는 112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 경찰은 테이저건을 들고 전씨와 대치했지만 이 경감이 총을 맞고 사망했다. 전씨는 사건 당일 파출소를 방문해 사냥용 엽총을 1정 출고한 뒤 범행을 저질렀다.
 

경찰은 전씨의 범행이 금전적인 부분서 비롯됐다고 봤다. 주변 관계자의 잔술에 따르면 전씨는 평소 술을 먹고 형을 찾아 돈을 달라며 행패를 부리는 일이 잦았다.

실제 전씨 사망 이후 승용차 조수석서 발견된 편지지 6장 분량의 유서에는 형에 대한 오래된 원망과 반감, 살해하겠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가족관계가 원만하지 못한 것을 두고 형을 비난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사흘 간격으로 일어난 엽총 사건 이후 경찰은 부랴부랴 총기 관리 대책을 강화했다. 총기 소지자를 전수 조사해 폭력 전과자는 총기를 수거하기로 했고, 총기 수령 장소를 전국 경찰관서에서 소지자의 주소지와 수렵장 관할지 경찰관서로 제한했다.

총기 입출고 시간을 실제 수렵이 이뤄지는 낮 시간으로 제한하고 총기 소지 허가 갱신 기간도 5년서 3년으로 줄였다.

그러나 같은 해 11월 또 다시 엽총 사고가 일어나면서 대책의 실효성 논란이 불거졌다. 경찰이 대책을 내놓은 직후부터 보완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 상황이었다. 전남 고흥경찰서는 엽총을 발사해 자신의 조카 1명(56)을 숨지게 하고 나머지 1명(69)에게 부상을 입힌 박모(82)씨를 긴급체포했다.

박씨는 조상 묘 이장문제로 조카들과 갈등을 빚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20여년간 허가 없이 엽총을 보관해 오고 있었다.

규제 강화
“글쎄…”

민갑룡 경찰청장은 지난달 27일 기자간담회서 “지금까지는 총기를 경찰관서에 봉인했다가 유해조수 퇴치 등을 이유로 필요하면 보관해제를 거쳐 사용할 수 있게 했다”며 “그와 관련한 심사를 한층 강화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봉화 엽총 사건으로 두 명이 숨진 이후 나온 발언이다.

이어 민 청장은 “지금까지는 담당자 1명이 총기 출고를 심사하는 체제”라며 “여러 부서가 보관 해제 여부를 합동 심사해 위험성 판단을 강화하고, 문제가 있어 보이는 경우 주민들로 심사위를 구성해 더욱 엄격히 심사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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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법률수석 부활 속셈

‘갑자기?’ 법률수석 부활 속셈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4·10 총선이 범야권의 승리로 끝났다. 집권여당은 참패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집권 3년차인 윤석열정부는 국정운영의 동력을 잃게 생겼다. 레임덕을 넘어 데드덕이라는 표현까지 나오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정치 인생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식물 대통령’으로 전락한 윤 대통령의 다음 행보는 엇일까? 속사정이야 어떻든 숫자만 놓고 봤을 때 이견이 없는 결과가 나왔다. 범야권은 192석을 얻어 ‘반윤 거야’ 전선을 형성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161석, 민주당의 위성정당 더불어민주연합 14석, 조국혁신당 12석, 개혁신당 3석, 새로운미래 1석, 진보당 1석 등을 모두 합친 수치다. 국민의힘은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 의석(18석)을 포함해 108석을 얻는 데 그쳤다. 완벽한 참패 식물 대통령 선거를 진두지휘한 각 당 대표의 희비도 엇갈렸다. 사법 리스크를 안고도 선거를 승리로 이끈 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정국의 주도권을 잡게 됐고 국민의힘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정치 생명에 큰 타격을 입었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은 실제 선거를 뛴 선수보다 더 큰 영향을 받게 됐다. 윤 대통령은 임기 내내 의회 주도권을 야당에 내준 상태로 정국을 운영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한다고 해도 여당의 이탈표를 걱정해야 한다. 총선이 끝나면서 권력의 무게추가 당으로 기울어지는 모양새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또 이미 거부권을 9차례나 사용한 이력이 민심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각 당은 이번 총선서 ‘정권 심판론’을 정면에 내세웠다. 민주당은 윤석열정부 심판, 국민의힘은 ‘이조(이재명-조국) 심판’ 프레임으로 유권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했다. 국민은 범야권에 의석을 몰아주면서 정부 심판의 손을 들어줬다. 윤석열정부에 대한 중간평가에 ‘낙제점’을 준 것이다. 윤석열정부는 당장 밀어붙이고 있던 정책에 차질을 빚게 됐다.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을 골자로 하는 의료개혁이 대표적이다. 윤 대통령은 총선 패배 메시지를 통해 의료개혁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드러냈지만 추진력에 대해서는 의문부호가 붙는다. ‘카르텔 타파’라는 국정기조도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 윤 대통령은 지난 16일, 총선 결과와 관련해 첫 육성 메시지를 내놨다. 총선 참패 후 엿새 만이다. 민정수석실 폐지 대선공약 민심 청취 명분 부활 예고 윤 대통령은 “총선을 통해 나타난 민심을 우리 모두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올바른 국정의 방향을 잡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음에도 국민들께서 체감하실 만큼의 변화를 만드는 데 모자랐다”며 “큰 틀에서 국민을 위한 정책이라 해도 세심한 영역서 부족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윤석열정부서 추진하고 있던 개혁은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윤 대통령은 “노동, 교육, 연금 등 3대 개혁과 의료개혁을 계속 추진하되, 합리적인 의견을 더 챙기고 귀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국회와의 긴밀한 협력을 말했지만 야당을 명시적으로 언급하진 않았다. 윤 대통령의 메시지에 야권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민주당 홍익표 원내대표는 윤 대통령의 메시지에 대해 “개탄스럽다”며 “오만, 독선, 불통 정치를 계속하겠다는 마이웨이 선언”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이번 총선서 확인한 민심은 국정기조 전면 전환과 민생경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할 방안을 제시해 달라는 주문”이라며 “윤 대통령은 국정 실패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민생경제의 잘못을 인정하고 실질적 대책과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이 총선 패배에 대한 목소리를 내면서 이후 내놓을 쇄신안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미 국무총리와 대통령비서실장 인선과 관련한 하마평이 나오는 중이다. 지난 17일에는 대통령실서 국무총리로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을, 비서실장에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을 고려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일단 대통령실에서는 “검토한 바 없다”고 대응한 상태다. 3대 개혁 밀어붙인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현재 비서실장 아래에 있는 공직기강비서관실과 법률비서관실을 관장할 ‘법률수석비서관실(가칭)’이 신설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민심 청취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민정수석이 존재할 당시 폐해로 여겨졌던 사정 기능은 제한하고 민심을 읽는 방향의 조직을 만들 것이라는 구체적인 언급도 나오고 있다. 이 과정서 사실상 민정수석실이 부활하는 게 아니냐는 의견이 나왔다. 민정수석실 폐지는 윤 대통령의 대선공약 중 하나였다. 윤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앞으로 대통령실 업무서 사정, 정보 조사 기능을 철저히 배제하고 민정수석실을 폐지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과거 사정기관을 장악한 민정수석실은 합법을 가장해 정적, 정치적 반대 세력을 통제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고 세평 검증을 위장해 국민 신상 털기와 뒷조사를 벌여왔는데 이런 잔재를 청산하겠다”고 말했다. 실제 윤석열정부 출범 직전 대통령실은 2실(비서실·국가안보실) 5수석(경제·사회·정무·홍보·시민사회) 체제로 개편됐다. 당시 당선인 신분이었던 윤 대통령이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청산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윤석열정부 출범 3개월 만에 정책기획수석이 신설되면서 2실6수석 체제가 됐다. 민정수석실서 맡고 있던 공직기강 업무와 인사검증 업무는 법률비서관, 법무부 등으로 이관됐다. 특히 법무부에 공직자 검증 업무를 전담하는 인사정보관리단이 신설되면서 당시 법무부 장관이었던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에 권력이 지나치게 집중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사정 기능 제한한다? 지난해 11월 윤 대통령은 정책실장을 신설하는 등 대통령실 직제를 3실6수석 체제로 개편했다. 개편 과정서 기존 수석들을 물갈이하면서 대통령실 2기 체제의 출범을 알렸다. 이때도 민정수석실 관련 언급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총선 패배 이후 대통령실 쇄신안에 법률수석이 거론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야당은 즉각 반발했다. 민심 청취는 표면용일 뿐 결국 윤 대통령이 사정정국을 조성하려는 의도를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민정수석실 폐지’라는 대선공약을 파기하고 여소야대 정국을 돌파하기 위한 자구책이라는 설명이다. 여기에 야당서 예고한 특검을 방어하려는 선제적 조치가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당초 민정수석실은 민심 청취 기능과 무관하게 운영됐다. 오히려 폐지 가능성이 나오고 있는 시민사회수석실이 민심을 듣는 역할을 해왔다. 민정수석은 고위공직자 인사 검증, 국정 관련 여론 수렴, 고위공직자 복무 동향 점검, 대통령 친인척 관리, 사정기관과 소통 등의 업무를 주로 했다. 하지만 역대 정부서 가장 부각됐던 기능은 국가정보원, 검찰, 경찰, 국세청, 감사원 등 5대 사정기관을 관리하는 것이었다. 실제 2000년 김대중정부서 폐지되기 전까지 이른바 ‘사직동팀’이 청와대 하명수사를 전담했다. 사직동팀은 경찰청 형사국 조사과를 일컫는 말이다. 윤 대통령 역시 당선인 시절 대통령 인수위원회 첫 과제로 민정수석실 폐지를 밀어붙이며 “사직동팀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한 바 있다. 대통령실은 법률수석을 신설하더라도 사정 기능은 제한하겠다는 뜻을 비쳤지만 의심의 눈초리는 여전하다. 김건희·채 상병 특검법 대기 신임 수석 검찰 출신 될 듯 민주당 고민정 최고위원은 지난 16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법률수석 신설은 앞으로 들이닥칠 영부인에 대한 특검 등을 방어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며 “이제 와서 법률수석비서관실을 신설한다는 것은 사법 리스크 방어 차원”이라고 주장했다. 21대 국회에 이어 22대 국회서도 여소야대 정국이 유지되면서 민주당 등 범야권은 ‘해병대 채 상병 사망사건 수사외압 의혹 특별검사법(채 상병 특검법)’과 ‘김건희 여사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특별검사법(김건희 여사 특검법)’ 등을 예고했다. 국민의힘서도 채 상병 특검법 수용과 관련해 의견이 갈리는 만큼 국회 통과 가능성이 제기된다. 윤 대통령은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 한 차례 거부권을 행사한 상태다. 192석을 확보한 범야권은 21대 국회서 채 상병 특검법이 좌절된다고 해도 22대 국회서 재추진한다는 뜻을 보이고 있다. 고민정 최고위원도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채 상병의 죽음 앞에 정치권이 더는 부끄럽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민주당서도 의지가 충분히 있고 국회서 당장 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돼있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김건희 여사 특검법도 22대 국회 개원 전후로 다시 도마에 오를 전망이다. 12석을 확보한 조국혁신당은 아예 22대 국회 1호 법안으로 김건희 여사 특검법을 공언했다. 민주당과 개혁신당 등이 조국혁신당에 동의한다는 뜻을 보인 만큼 추진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 높다. 국민의힘 내부서도 수용 여부에 대한 의견이 갈리고 있어 향후 상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정기관 잡고 흔드나 범야권이 다수 의석을 무기로 특검 정국을 예고하면서 윤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압박 수위가 높아지는 모양새다. 법률수석을 새로 만들려는 의도가 ‘방어’로 읽히는 분위기도 윤 대통령이 처한 상황이 녹록지 않기 때문으로 보인다. 심지어 총선이 마무리되면서 국민의힘에 대한 윤 대통령의 지배력 역시 작아진 상태라는 점도 법률수석 신설의 배경으로 꼽히고 있다. 이미 시작된 것으로 보이는 레임덕을 최대한 늦추기 위한 궁여지책이라는 말도 나온다. 신임 법률수석을 누가 맡게 될지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벌써부터 하마평이 돌고 있다. 검찰 출신들로 채워질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