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망가지는 신동들

천재 소리 듣다가 어느 날 ‘범재’로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천재의 사전적 의미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남보다 훨씬 뛰어난 재주, 또는 그런 재능을 가진 사람’이다. 워낙 흔히 쓰이는 말이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는 ‘진짜 천재’에 관심을 쏟는다. 어릴 때부터 천재라 불린 사람들은 그런 열띤 기대 속에 성장한다. 하지만 천재의 삶이 늘 탄탄대로인 것만은 아니다.
 

천재의 등장은 늘 이슈가 된다. 공부를 탁월하게 잘하는 천재의 경우 공부법과 부모의 교육법이 유행한다. 예체능 분야서 특출한 재능의 소유자가 나오면 그쪽으로 관심이 쏠린다. 천재의 일거수일투족은 관심의 대상이 된다. 사람들은 천재로 불리는 이들에게 동경, 선망, 기대, 시기, 질투 등의 감정을 품는다.

그들에 대한
기대와 실망

최근 ‘천재소년’으로 불렸던 송유근 군이 올해 말 현역으로 군에 입대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일각에서는 송군이 지난 6월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 졸업을 위한 박사학위 논문 최종 심사에 불합격한 것을 군입대의 이유로 들고 있다. 

<중앙일보>는 UST 관계자가 “송유근이 블랙홀을 주제로 한 박사학위 논문 발표서 심사위원들의 질문에 제대로 답을 하지 못하는 등 기본적인 것을 갖추지 못해 심사서 불합격 처리됐다”고 보도했다.

송군의 아버지는 이 같은 상황에 반발하고 있다. 


그는 “2015년 논문 표절 논란 이후 지도교수도 없이 블랙홀에 대한 연구를 계속해 지난해 6월 영국의 <천체물리학저널(Astrophysical Journal, ApJ)>에 논문을 실었다”며 “외국 과학자와 함께 연구하고 저명한 학술지에 논문을 실었는데도 불구하고 불합격 처리한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주장했다.

사실 송군에겐 현역 입대 말고도 여러 갈래의 군복무 방법이 있다. 다른 박사과정을 밟거나 연구원으로 근무하는 대체복무제도인 전문연구요원에 지원할 수도 있다. 

병역법에는 석사 이상의 학위를 취득한 사람(석사학위 및 박사학위 과정이 통합된 과정을 수료한 사람을 포함한다)은 병역지정업체로 선정된 연구기관에 복무할 수 있다고 돼있다.

송군은 석·박사 통합과정에 있다. 논문 심사의 불합격 처리로 제때 졸업을 하지 못하더라도 통합과정을 수료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전문연구요원으로 군복무를 대체할 수 있다. 또 다른 대학원에 진학하면 학업을 이유로 최대 28세까지 병역을 연기할 수 있다.

송군은 예전부터 현역 입대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내왔다. 지난 2015년 인터뷰서 송군은 “군대에 꼭 가고 싶다”며 “(군대는) 대한민국서 태어난 남자라면 누구나 가야 하는 의무이기도 하지만 군대에 가서 여러 가지 훈련도 해보고 싶다. 물론 힘들겠지만 인간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바 있다. 

다른 한편에서는 송군이 현역 입대를 선택한 것에 대해 어린 시절부터 많은 관심 속에 숱한 부침을 겪으면서 지친 심신에 일종의 휴식을 주려는 게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송군은 8세에 대학에 입학하면서 ‘천재소년’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는 2004년 만 6세의 나이로 정보처리기능사 시험서 역대 최연소로 합격했다. 이후 2005년 5월 최연소 고입, 고졸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그해 10월 인하대 2학기 수시 ‘21세기 글로벌리더 전형’ 특이경력 분야로 자연과학대학 자연계열에 지원, 2006년 최연소 합격자가 됐다.
 


그러나 2년 뒤인 2008년 송군은 돌연 인하대를 자퇴했다. 당시 송군의 어머니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서 “유근이가 1학년을 마치던 2006년 말부터 ‘반복되는 강의실 교육이 재미없다’고 말해왔다”고 전했다. 이어 “밤새 실험하고 연구해서 과학자가 되고 싶은데 대학 수업은 그렇지 않다더라”고 덧붙였다.

어릴 때부터
과도한 관심

이후 송군이 만 11세의 나이로 UST에 입학, 최연소 석사과정에 도전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또 한 번 화제를 모았다. 13세에는 최연소 박사학위 도전에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논문 표절 논란이 두 차례에 걸쳐 불거지면서 부침이 시작됐다. 

해당 논란은 송군의 경력에 큰 타격을 입혔다.

2015년 11월 송군이 국제학술지 <ApJ>에 발표한 블랙홀 논문에 대한 표절 의혹이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제기됐다. 송군의 논문이 지도교수인 박석재 한국천문위원회 연구위원의 2002년 학술대회 발표자료와 흡사하다는 지적이다. 

당시 박 교수는 “유근이 논문과 제 발표자료는 많은 부분이 같거나 유사해 일반인은 표절로 의심할 수 있다”며 “하지만 유근이가 유도해낸 편미분 방정식 부분은 이 논문의 핵심이고 학문적 성과”라고 주장, 표절 의혹을 부인했다.

천재소년 송유근 숱한 논란의 중심
부모의 과욕과 지나친 관심의 결말?

그러나 <ApJ>의 조치는 달랐다. 미 저널은 같은 해 11월24일(현지시각) 송군의 논문을 게재 철회했다. 저널은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 제기한 의혹이 사실이라고 확인해준 셈이다. 송군과 박 연구위원이 공동저자로 참여해 제출한 논문에 2002년 박 연구위원의 학술대회 발표자료의 많은 부분이 그대로 사용됐지만 인용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는 것.

논문 표절 의혹이 사실로 확인되면서 당시 송군의 박사학위 취득도 물 건너갔다. UST는 박사학위 논문심사를 청구할 수 있는 졸업자격 요건으로 제1저자로 참여한 논문 1편 이상을 SCI급 저널에 발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논문 게재가 철회되면서 자격 미달로 졸업자격 요건을 채우지 못했다.

송군은 논문 표절 논란으로 징계를 받았다. UST는 대학위원회를 열어 송군에게 2주 근신과 반성문 작성 징계를 결정했다. 지도교수인 박 연구위원은 해임조치됐다. 

일각에서는 박 연구위원에 대한 조치가 가혹한 게 아니냐는 말이 나왔지만 UST는 “논문표절 등 연구 윤리 위반은 연구자로서, 학자로서 중대한 잘못으로 보고 엄정 조치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2016년 송군의 새 논문은 또 다시 표절 논란에 휩싸였다. 이번에는 학술지에 투고하기 전 아카이브에 올린 논문이 문제가 됐다. 논란이 불거진 논문에는 우주 초기 퍼져 나간 중력파가 방향에 따라 세기가 달리지는 것을 이론적으로 설명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번에도 의혹을 제기한 것은 인터넷 커뮤니티 이용자들이었다. 이들은 송군의 논문이 조용승 이화여대 명예교수의 2011년 논문과 많은 부분이 유사하다고 지적했다. 조 교수가 공저자에 없으니 표절이라는 주장이다. 

아카이브 자체 검사 시스템에서도 두 논문의 글이 매우 비슷한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논문에 이름을 같이 올린 박 연구위원은 “절대 아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겠느냐”며 표절 의혹을 강력히 부인했다. 또 표절 대상으로 지목된 조 교수는 원래 공저자였지만 (조 교수가)굳이 필요 없다고 해서 뺐다고 해명했다. 박 연구위원은 자신의 블로그에 긴 해명글을 남기기도 했다.

이후 지도교수 없이 연구를 계속해왔던 송군은 끝내 UST서 박사학위를 받지 못하고 ‘수료’ 상태로 학교를 떠나게 됐다. 
 

정현철 카이스트 영재교육원 부원장은 <중앙일보>에 “유근이는 뛰어나긴 하지만 너무 어린 나이에 세상의 주목과 지나친 기대를 받은 것이 독이 된 것 같다”며 “지금 새로 시작해도 전혀 늦지 않은 나이니, 대학이나 대학원에 들어가 천천히 공부해도 얼마든지 뛰어난 성과를 거둘 수 있다”고 조언했다.


송군보다 더 똑똑했던 것으로 알려진 김웅용 신한대학교 교수는 어린 시절 천재로 주목받은 이후 혹독한 유명세를 치렀다. 

최근에는 방송 출연 등으로 가끔 얼굴을 비추는 정도지만 과거 대단한 관심을 받았다. 그의 이름 앞에는 ‘실패한 천재’라는 수식어가 자주 붙는다. 천재로 불릴 만큼 똑똑했던 그가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는 만큼 성공하지 못해 붙은 말이다.

IQ210, 5세 때 4개 국어 통달, 6세 때 일본 후지TV에 출연 미적분 풀이, 8세 때 미국 항공우주국(NASA) 초청으로 유학 등 세간에 알려진 김 교수의 어린 시절은 화려하다. 김 교수의 과거 행적이 거짓이라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김 교수에 대한 관심은 전국구였다고 한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언론에 보도될 정도였다.

김 교수에 따르면 그는 나사에서 일하다 홀로 하는 외국생활에 지쳐 8년 만에 귀국했다. 김 교수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서 “정말 외로웠다. 아무도 나와 친구가 되어주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초·중·고를 검정고시로 통과하고 충북대에 입학했다. 이후 평범한 대학생활을 보냈다.

성과 압박에
멍드는 아이

언론은 김 교수가 주장하는 화려한 과거 이력에 비해 빛을 보지 못한 그의 삶을 두고 ‘실패한 천재’라고 혹평했다. 잘못된 영재교육의 폐단으로 김 교수를 지목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그러나 김 교수는 언론과의 인터뷰서 “실패한 인생이 아닌데 실패자로 취급해 상처도 많이 받았지만 ‘모든 걸 다 내려놓자’고 하니 지금은 마음이 아주 편안해졌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측근들의 과욕과 지나친 관심이 천재들을 망가뜨리고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어린 나이에 대단한 업적을 이뤄야 한다는 측근의 욕심이 되레 아이를 망가뜨리고 있다는 설명이다. 

송군의 논문 표절 논란에 대해 지도교수였던 박 연구위원이 “유근이가 하루 빨리 조금 더 넓은 무대서 능력을 발휘했으면 하는 마음에 서두른 측면도 없지 않다”고 말한 데서도 확인할 수 있다.

측근에 휘둘려 정신병까지
한국 못 품어 해외로 나가

송군이 겪은 공기정화기 논란 역시 측근의 지나친 욕심으로 빚어진 해프닝이었다. 2005년 송군의 아버지는 오명 당시 과학기술부총리 앞에서 송군이 발명했다는 공기정화시스템을 시연하는 행사를 마련했다. 

송군의 아버지는 이 물건에 대해 “유근이가 만든 공기정화기가 몇 개월 안에 상용화되면 나라가 깜짝 놀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송군이 개발했다던 해당 공기정화기는 한 중소기업서 빌려온 제품으로 확인됐다. 해당 중소기업 관계자는 송군의 아버지가 회사에 찾아와 연구원들이 만들어 놓은 장비를 빌려갔다고 밝혔다. 

이에 송군의 아버지는 “대규모 기자회견은 처음이어서 분위기에 휩쓸려 장비에 대해 잘못 표현한 부분이 있을지 모르겠다”고 해명한 바 있다.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로 알려진 유진박씨는 전 매니저의 감금, 폭행 등의 행위로 망가졌다가 최근에서야 조금씩 회복 중이다. 

박씨는 3세 때 바이올린을 시작해 8세 때 전액 장학금을 받고 줄리어드 예비학교에 입학할 만큼 천재적인 음악성을 드러냈다. 이후 줄리어드 음악원에 입학하고 여러 음악대회서 우승하는 등 탄탄한 경력을 쌓았다.

그러다 2009년 박씨의 감금, 학대설이 터져 나왔다. 박씨가 소규모 행사장과 유흥업소 등을 전전하면서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소속사에 의해 착복과 착취를 당하는 것은 물론 맞기까지 했다는 루머가 떠돌았다. 

또 오랜 감금 생활로 박씨의 정신상태가 불안정하다는 말이 함께 나왔다. 이 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망가진 천재’에 안타까움을 느낀 누리꾼들이 구명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천재 해커’ 이정훈씨는 국내를 떠나 해외로 나갔다. 이씨는 국내 화이트 해커 중 1인자로 꼽히던 실력자다. 화이트 해커는 일종의 ‘좋은’ 해커를 지칭하는 말로 민관서 활동하는 보안전문가들을 통칭한다. 

고의적으로 인터넷을 파괴하는 블랙해커와 대비된다. 서버의 취약점을 찾아 보안 기술을 만드는 보안전문가들을 말하기도 한다.

이씨는 20세 때 미국 라스베이거스서 열린 해킹 올림픽 ‘제21회 데프콘’서 3위에 오르며 깜짝 등장했다. 2015년 3월에는 캐나다서 열린 해킹 대회에 홀로 참여, 1위에 올라 해킹 대회 역사상 최대 상금(22만5000달러, 한화로 약 2억5000만원)을 획득했다. 이 대회서 그는 구글과 애플, 마이크로소프트의 인터넷 접속 프로그램 보안망을 다 뚫었다.

이씨는 2015년 삼성SDS에 입사했다. 스마트폰과 노트북, 냉장고 등 삼성전자가 만드는 모든 전자제품의 보안 취약점을 찾고, 이를 개선하는 게 그의 역할이었다. 하지만 채 1년도 되지 않아 그는 삼성을 떠나 구글로 이직했다.

당시 이씨의 소식이 전해지자 화이트 해커를 제대로 대우하지 않는 기업 문화가 이직의 원인이 됐다는 설명이 나왔다. 이직을 결정한 그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서 “연봉은 삼성이 더 많지만 보안전문가의 꿈을 키우기 위해서는 구글이 낫다”고 말하기도 했다.

돈 더 줘도
해외로 간다

이씨는 최근 구글 소속으로 DEFKOR00T팀에 참여했다. 지난 13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라온시큐어는 DEFKOR00T팀이 미국 라스베이거스서 열린 국제해킹방어대회서 다른 23개 팀을 제치고 우승했다고 밝혔다. 이 대회는 해킹 올림픽 중에서도 최고 권위로 인정받는 국제 해킹방어대회로 2015년에 이어 3년 만에 한국 팀이 우승했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미국 한인계 ‘천재소녀’ 사기극

하버드-스탠퍼드 동시합격 했다더니…

2015년 6월, 미국 한인사회가 ‘천재소녀’ 사연으로 떠들썩했다. 

미국의 한 교민언론사가 한국 고교생이 하버드와 스탠퍼드에 동시 합격했다고 보도하면서부터다. 국내 언론이 기사를 받아쓰면서 판이 커졌다.

미국 공립 고등학교인 토마스 제퍼슨 과학고에 재학 중이던 김○○양을 하버드와 스탠퍼드서 서로 데려가려 했고, 학년을 쪼개 두 학교에 모두 다닐 수 있도록 협의했다는 내용이 알려지자 김양은 순식간에 유명인이 됐다.

하지만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각종 의혹이 제기됐고, 하버드와 스탠퍼드가 공식적으로 해당 내용을 부인하면서 사기 의혹이 불거졌다. 드러난 사실은 김양의 말이 모두 거짓이었다는 점. 결국 김양의 아버지가 딸의 행동에 대해 사과하고 허위임을 인정했다.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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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 상병 특검’ 공수처 불편한 속내

‘채 상병 특검’ 공수처 불편한 속내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채 상병 특검’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야권의 4·10 총선 압승으로 더불어민주당의 움직임에도 속도가 붙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난감하기만 하다. 부족한 인력으로 인해 수사의 첫 단추도 끼우지 못하는 실정이다. 발 빠른 수사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공수처 안팎에서는 정치권의 책임 떠넘기기에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조직이 와해되기 직전인데 수사에 속도가 어떻게 나겠느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출신 한 변호사의 말이다. 요즘 공수처의 분위기는 참혹하다. 해병대 ‘채 상병 사건’으로 반전을 꾀하고 싶어도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특별검사(이하 특검) 목소리가 거세지면서 ‘비교 대상’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대통령실 압수수색? 채 상병 사건 특검법 추진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공수처의 분위기는 암흑 상태다. 검찰 제도를 보완해 ‘상설특검’ 명목으로 출범했음에도 ‘늑장·부실’ 수사 논란 속에 결국 사건 기록을 특검에 넘겨줘야 하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오는 5월2일, 임시국회를 열어 법안을 표결하자는 분위기다. 법안 통과를 위해서는 국회의장과 여당의 협조가 필요한데, 총선 이후 여당 일각서도 채 상병 특검에 동의하는 분위기가 표출되고 있다. 채 상병 특검 법안은 지난해 10월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뒤 180일의 숙려 기간을 거쳐 본회의 표결만 하면 언제든 통과할 수 있는 상황이다. 채 상병 사건 수사 갈래는 크게 두 가지다. 무리한 수색 지시 등 책임자를 가리는 본안 수사가 경북지방경찰청서 진행 중이고, 해병대 수사단의 초동 조사에 국방부와 대통령실 관계자가 개입했다는 외압 의혹은 공수처가 맡고 있다. 외압 핵심 피의자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주호주대사로 임명돼 부임 후 사퇴하는 과정서 대통령과 법무·외교부 장관의 직권남용 의혹도 공수처에 추가로 고발됐다. 야권이 특검을 통해 밝히려는 사안의 실체는 수사 외압에 집중돼있다. 특검이 통과되면 공수처가 내려던 실적이 특검으로 넘어가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민주당은 이 대사 임명 과정서의 추가 의혹도 특검법안을 수정 발의해 포함할 계획이다. 공수처는 수사의 무게를 일부 덜겠지만, 6개월 넘게 진행해온 사건 기록을 외부에 넘긴다는 건 또 다른 비판의 빌미를 제공하는 셈이다. 특검 추진 본격화…수사팀 의욕 잃어 “이럴 거면 왜 강조하나” 불만 증폭 공수처 출신 한 변호사는 “인력난 때문에 고전하는 상황이다. 내부 얘기를 들어보면 ‘죽을 맛’이란다. 채 상병 사건 수사는 최선을 다하려 했는데 특검이 언급되면서 수사팀의 의욕이 상실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수처법상 수사 범위와 인원 범위가 지나치게 제한돼있어 실질적인 수사 기능을 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설명이다. 공수처법은 공수처의 수사 범위를 현직 공직자와 그 가족, 퇴임 3년 이내 전직 고위공직자로 한정하고 있다. 공수처 검사와 수사관의 인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현재 공수처법이 규정하고 있는 검사와 수사관의 규모는 처·차장 포함 검사 25명, 수사관 40명이다. 공수처법을 추진할 당시 규모는 검사 30~50인, 수사관 50~70인이 제안됐지만 법무부와 국회의 논의를 거치면서 현재 정원으로 대폭 감소했다. 공수처 관계자는 “총선과 무관하게 지속적으로 인원 확대와 관련해 국회와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며 “검사의 신분보장을 위한 임기에 대해서도 개선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앞서 공수처는 최소한의 행정인력이라도 확보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 달라고 호소한 바 있다. 현행법상 행정인원 정원은 20명인데 지난 2022년 공수처는 행정직원 중 국·과장과 직제 파견자 등 7명을 제외하면 실제 가용인원이 13명에 불과해 수사관을 행정인력에 투입해야 할 상황에 놓인 바 있다. 공수처가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법 개정이 필수적이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특히 공수처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일치시켜 수사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수처는 ‘공수처법상 기소권 없는 사건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연구용역’을 발주하는 등 수사 대상과 기소 대상의 불일치로 발생하는 구속영장 논란을 정리하기 위한 연구에 착수하기도 했다. 인력난 가중화 지금까지 공수처가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한 상황을 보면 초기 단계에 불과하다. 지난해 12월 이 전 장관 등을 출국금지했고, 한 달 후인 지난 1월 압수수색에 착수했다. 이후 포렌식과 참고인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 전 장관을 비롯한 국방부 지휘부와 해병대 수뇌부 등에 대한 조사는 특검의 몫이 될 가능성도 있다. 경우에 따라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등으로 특검 수사가 확대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공수처와 경찰은 특검법 처리 여부를 주시하며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총선 국면서 논란의 중심에 선 공수처는 수사를 신속하게 진행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겠다는 입장이다. 공수처 지휘부 공백 상태가 영향을 줄 여지도 있다. 주요 피의자 소환 및 신병처리 등 주요 의사결정을 처장 대행인 부장검사가 결정하기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다. 만약 국회서 여야가 특검법 처리에 합의하는 수순을 밟으면 공수처도 새로 출범할 특검에 기록을 인계하기 위한 작업에 중점을 둘 가능성이 크다. 현재 본회의에 회부된 안은 민주당이 지난해 9월 발의한 법안이다. 민주당이 지난 3월, 이 전 장관이 주호주대사로 임명된 경위를 수사해야 한다는 별도의 특검안도 국회에 제출했기 때문에 이 두 법안이 병합되는 안도 거론된다. 본회의 회부 안건은 수사기간을 최장 100일로 정하고 있는데, 잔여 수사를 검찰에 이첩하도록 명시됐다. 경찰과 공수처가 시작한 수사가 특검을 거쳐 검찰 손에 넘어가는 것은 부자연스럽다는 말도 나온다. 민주당이 3월 발의한 안은 잔여수사 이첩 대상을 검찰과 공수처로 정했다. 단추도 못 끼워 민주당이 특검법 조항 일부를 양보하고 국민의힘이 수사 대상 확대에 동의하는 시나리오도 정치권을 중심으로 나온다. 이런 과정서 본회의 회부 안이 조정될 수도 있다. 이 가운데 이 전 장관은 최근 변호인을 통해 공수처에 “소환조사를 진행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 전 장관 측이 공수처에 소환조사를 요청한 것은 이번이 네 번째다. 이 전 장관 측 김재훈 변호사는 최근 공수처에 소환 촉구 의견서를 내고 “이 전 장관은 호주 대사직서도 물러났으나 공수처는 지금까지도 아무런 연락이 없다”며 “공수처의 이런 수사 방기 탓인지 정치권에서는 특검 필요성까지 제기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공수처에 보낸 의견서에서 “이첩 보류 지시는 직권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국방부 장관은 민간 수사기관으로의 사건 이첩에 대한 최종 승인권자이므로 인사권자가 인사안 결재 후 이를 취소·변경할 수 있듯이 그 승인을 변경할 수 있다”며 “해병대 수사단장에게 수사 권한이 있다느니, 수사단장에게 민간 수사기관으로의 이첩 권한이 있다느니 하는 것은 법 규정의 몰이해로부터 비롯된 억지”라고 주장했다. 이 전 장관 측은 ‘이 장관이 보고서를 회수하라고 지시하기 전에 대통령실 내선번호로 전화를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이 전 장관 측은 “이 전 장관은 대통령으로부터 (사단장을 빼라는)지시를 받은 사실이 없다”며 “당시 장관이 군사보좌관과 논의하는 과정서 ‘(초급 간부들까지 처벌 대상에 포함한다면)초급 간부들이 힘들어할 것 같다’는 의견을 나눴고 법무관리관실의 법리 검토를 거쳐야 한다고 판단해 이첩 보류를 지시했다”고 강조했다. 수사 인원 범위 제한적 법 개정 안되면 도루묵 이어 “재검토한 결과 8월24일 직접적인 혐의가 있는 2명을 경찰에 이첩했고, 해병대수사단 조사기록 원안도 그대로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 전 장관 측은 민주당이 추진하는 ‘채 상병 특검’도 비판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공수처의 1차 수사 결과도 나오지 않은 상황인데 무엇이 미흡하고 국민적 의혹이 남아 해소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냐”며 “특검 논란을 잠재울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은 공수처의 신속한 수사와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공수처 수장이 석 달째 공석인 점은 제도 지속 가능성에 의문을 더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최종 후보자 지명을 두 달 가까이 미루고 있다. 앞서 국회 공수처장후보추천위원회는 지난 2월29일 판사 출신 오동운(사법연수원 27기) 변호사와 검사 출신 이명순(연수원 22기) 변호사를 후보로 추천했다. 김진욱 전 처장과 여운국 전 차장이 임기 만료로 퇴임해 공수처가 ‘대행 체제’에 들어간 건 지난 1월 말부터다. 김선규 수사1부장이 처장 대행을 맡고 있지만, 지난달 제출한 사직서가 수리되지 않아 임시로 대행직을 수행 중이다. 최근 인사위원회서 연임이 불발된 수사1부 소속 김송경 검사(사법연수원 40기) 임기도 만료됐다. 김 대행이 이끄는 수사1부는 공기광 검사만 남게 된다. 별도 조직개편 계획도 없어 수사 부서 1개가 사실상 사라질 위기다. 윤 대통령이 공수처장 후보자를 지명해도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해야 임명이 가능하다. 21대 국회 임기는 내달 29일까지다. 22대 국회가 개원해도 원구성에 시일이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신속한 공수처장 공백 해소를 위해선 이달 안으로 후보 지명을 마쳐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수장 공백 장기화 우려 법조계에서는 특검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공수처법에 따르면, 공수처는 이 전 장관에 대한 수사권은 있지만 기소 권한이 없다. 수사를 마친 뒤 검찰에 사건을 넘기고 검찰이 기소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 구조다. 공수처 출범 당시 수사·기소권을 모두 줄 경우 일각에선 ‘무소불위 공수처’가 될 거란 우려가 제기되면서 공수처는 법관, 검사, 고위 경찰공무원에 대해서만 제한적 기소권을 갖게 됐다. 문제는 검찰이 채 상병 사건 기소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검찰을 관할하는 법무부는 지난달 8일, 공수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 전 장관의 출국금지를 해제했다. 사건 처리의 중립성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특검을 통해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