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부실’ 대선조선 경영권 보전 의혹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8.08.20 10:30:04
  • 호수 118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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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님 떠받치는 보이지 않는 손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대선조선 재매각을 둘러싼 난타전이 벌어지고 있다. 최대주주인 한국수출입은행(이하 수은)은 오너 일가 소유 주식을 전부 무상소각하고도 일가의 경영권을 인정하고 있다. 지난 3월 대선조선 정기주주총회에 참석한 대선조선 주주는 지분이 없는 오너 일가가 경영을 계속하는 데 수은이 뒷배를 봐주고 있다고 주장한다. <일요시사>는 대선조선 재매각을 둘러싼 의혹들의 전모를 파헤쳤다.

대선조선은 부산에 본사와 공장을 둔 국내 최초 민간자본 조선소다. 1945년 12월 안성달씨(창업주 1세)가 대선철공소를 창업해 1980년 12월 안강태(창업주 2세) 현 대선조선 회장으로 이어지면서 전성기를 누렸다. 안 회장은 2012년 9월 장남인 안재용(창업주 3세)씨에게 대표이사직을 물려줘 3세 경영을 이어가고 있다.

경영 악화로
채권단 관리

대선조선은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전 세계적인 조선업계 불황으로 적자누적 및 부채 확대를 겪어왔다. 재무구조가 열악해지자 대선조선은 지난 2010년 상장폐지 및 워크아웃에 들어갔고 채권단 공동관리(자율협약) 체제로 전환됐다. 채권단은 수은과 산업은행, 한국무역보험공사 등으로 구성됐다. 

그중 대선조선 지분의 67.3%(오너일가 지분 무상감자 전 기준)를 보유한 수은이 주채권은행이다.

수은은 지난해 11월 삼일회계법인을 매각주관사로 선정하고 대선조선에 대한 공개매각에 나섰다. 워크아웃 이후 7년 만에 새 주인 찾기에 나선 것이다. 그러나 매입자가 나타나지 않아 매각은 유찰됐다.


지난 3월 대선조선 정기주주총회에서는 창업주인 안씨 일가가 가진 지분이 도마 위에 올랐다. 당시 주총에 참여한 주주는 “안씨 일가 주식을 모두 무상감자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씨 일가가 채권단 관리를 받고 있음에도 부산‧경남지역 내 영향력을 바탕으로 경영에 지속적으로 관여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대선조선은 올해 3월 재무제표 상 부채가 자산보다 4018억원을 초과하는 등 완전히 자본잠식상태다. 올해 1분기만 해도 50억원의 영업 적자를 냈다. 안 회장과 안 대표이사 등 안씨 일가는 부산서 영향력이 상당하다. 부산 내 유력 정치인 및 재계 인사들과 학맥으로 연결돼 있다.”

안 대표이사의 경영 능력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했다. 대선조선은 2008년 238억 규모의 영업이익을 기록했지만, 이후 9년째 영업손실을 기록하고 있다.
 

“대표이사로서 대선조선의 실질적인 경영권을 행사해 왔는데, 2005년부터 2008년까지 조선 경기가 정점에 있었음에도 이런 흐름조차 제대로 읽지 못했다. 뒤늦게 중국에서 플로팅도크(해상에서 선박을 건조할 수 있도록 고안된 바지선 형태의 대형 구조물)를 수입하는 등 무리한 시설 확장과 저가 수주로 엄청난 당기손실을 발생시켰다. 상장 폐지 및 채권단 관리 체제 이후 7년간 매년 영업적자를 이어오고 있다. 당기순 누적적자만 2746억원에 이른다.”

회사는 휘청
여전히 경영

이에 주주는 안씨 일가의 주식을 무상감자(주식을 보유한 사람이 어떠한 보상도 받지 못한 채 결정된 감자 비율만큼 주식수를 잃게 되는 것)하고 일가가 경영서 손을 땔 것을 요구했다. 

1차 매각에 실패한 수은은 안씨 일가의 보유주식이 대선조선 매각의 걸림돌이라는 의견을 받아들였다. 지난 5월23일 오전 10시 대선조선 1공장 회의실서 진행된 임시주주총회서 ‘지분의 감소 승인의 건’을 의결해 안씨 일가가 가진 29만3502주(안 회장 29만2226주, 안 대표이사 1276주)를 무상소각했다.


수은은 안씨 일가의 주식을 모두 소각했음에도 경영진을 교체하지 않고 있다. 이는 대선조선과 마찬가지로 수은이 대주주로 있는 성동조선과 비교된다. 수은 등 성동조선 채권단은 지난 2012년 3월31일 성동조선 오너일 가를 경영진서 물러나게 하고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했다.

수은 측은 두 회사가 차이가 나는 점에 대해 “개별 회사의 여건에 따라 차이가 있는 것이다. 성동조선과 대선조선이 같아야 하는 건 아니다. 조선소 규모도 다르고 진행해온 프로세스도 달랐다”며 “성동조선이 (경영진을) 교체했으니 대선조선도 교체해야지 공정한 것 아니냐는 시각은 제3자인 우리가 봤을 때 좋은 결정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대선조선 주주는 안 대표이사가 경영을 계속하고 있는 현 상황과 관련해 다양한 의혹을 제기한다. ▲대선조선에 채용된 수은 출신 전무 ▲안 회장의 ‘덕경회’ 인맥 등으로 인해 수은이 경영진 교체에 소극적인 것 아니냐는 주장이다.

1차 매각 유찰 “오너 일가 때문”
지분 무상소각…경영은 그대로

공주식 대선조선 전무는 수은 외환업무실장, 무역금융부장, 남북협력사업부장 등을 거쳐 2010년 1월 수은 부산지점장에 올랐다. 2012년 6월 지점장을 그만둔 공 전무는 1년 뒤인 2013년 6월 대선조선 전무로 자리를 옮겼다. 

공 전무는 지점장으로 있을 당시 수은서 대선조선으로 파견된 채권단 관리인이었다. 수은을 나와 본인이 관리하던 회사의 전무로 이동한 것이다.
 

공 전무는 연세대 경제학부를 졸업했다. 안 대표이사 역시 마찬가지다. 대선조선 경영기획실 측은 “학부 상으로 (공 전무가 안 대표이사의) 선배가 맞다”고 확인해줬다. 의혹을 제기한 주주는 “이들이 4년간 대선조선을 실질적으로 경영하면서 회사에 부채만 안겼지만, 의문스럽게도 수은 등 채권단은 이들의 경영권을 그대로 인정해주고 있다. 이는 특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공 전무는 지난 3월 정기주주총회서 또 다시 사내이사로 연임됐다. 공 전무는 지난 2014년 3월28일 사내이사로 임명된 후 지금까지 사내이사직을 이어오고 있다.

‘덕경회’는 경남고·부산 출신 인사들의 모임이다. <월간조선> 2017년 6월호에 따르면 2010년 출범한 덕경회에는 오완수 대한제강 회장을 비롯해 안강태 대선조선 회장, 윤성덕 태광 사장, 홍하종 DSR제강 사장, 구자신 쿠쿠홈시스 회장 등 부산·울산·경남 지역에 사업체를 둔 70여 명의 동문이 가입해 있다.

<월간조선>은 최근 덕경회가 문재인 대통령의 재계인맥으로 주목받고 있다고 전했다. 문 대통령이 모임에 자주 참여하거나 학맥을 챙기지는 않지만, 정치 입문 이후 모임 인사들로부터 다양한 조언을 받았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1971년 경남고를 졸업(25회)했으며, 안 회장은 1957년 졸업(11회)했다.

회장님 무기
덕경회 파워

문 대통령은 2016년 9월22일 오전 부산 영도구에 위치한 대선조선소를 방문한 사실이 있다. 이날은 부산의 한 선주사의 석유화학제품선 명명식이 있었다. 당시는 문 대통령이 더불어민주당 당 대표직을 내려놓고 대권행보를 이어가던 시점이었다. 


이날 행사장서 문 대통령은 “조선·해운산업은 우리나라 핵심 기간산업”이라며 “조선·해운산업의 구조조정이 국가경쟁력을 살리는 구조조정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행사에는 안 회장을 비롯해 안 대표이사도 참석했다. 특히 안 대표이사는 문 대통령을 지척거리서 수행했다.

대선조선 측은 문 대통령이 대선조선소에 방문한 사실에 대해 “우리 쪽에서 초대하지 않았다. 선주사 쪽에서 초대했다”고 해명했다. 해당 선주사 측은 “오래된 일이라 (문 대통령을 우리 쪽에서 초대했는지)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밝혔다.

주주는 덕경회에 대해 “부산 지역을 중심으로 한 재계모임 중 단연 최고의 파워를 자랑한다. 기득권 중에 기득권이다. 부산상공회의소의 주력 멤버도 덕경회에 들어가 있다. 수은이 덕경회 멤버인 안 회장의 눈치를 살피느라 대선조선 경영진 구조조정에 나서지 못하는 것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주장했다.

수은과 대선조선 측은 모든 의혹을 반박하고 있다. 

수은 측은 안씨 일가의 주식을 모두 소각했음에도 여전히 회사를 경영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 “우리 입장에서는 매각을 추진하는 데 있어 사람을 바꾸는 것도 중요한지만, 현재 회사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조직에 대한 장악력이 높은 사람이 (대선조선을)운영하면서 적당한 매수자를 찾는 게 더 효율적이라고 판단해 유임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대선조선의 상황이 다른 중소조선소와는 달리 상대적으로 채권단의 추가 자금지원 없이 자기 자본으로 회사를 꾸려나가고 있으며 안 대표이사는 영업 위주로 경영을 하고 있다”며 ”수주를 잘 하려면 인맥도 있어야 하고 사업에 대한 전문성도 있어야 한다. 중소조선소 전체가 어려운 상황서 특정인에 의해 회사가 어렵게 됐다는 (주주 측)주장을 받아들이기 힘들다. 안 대표이사를 임기 중에 해임할 근거도 없다”고 밝혔다.
 


공 전무의 존재가 대선조선 매각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에 대해서는 “그런 건 아니다. 확실히 아니다”라며 “이미 떠난 사람이다. 우리는 (대선조선을) 합리적인 가격에 매각하는 게 최선이지 그 이외 다른 이유는 없다”고 설명했다.

안 회장이 덕경회 멤버라는 점이 매각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덕경회를) 처음 듣는다. 그건 아닌 것 같다. 감안할 사항도 아니다”라고 부인했다.

수은 출신 전무·덕경회 뒷배 의혹
수은·대선 측 “매각에 영향 없어”

대선조선 역시 수은과 비슷한 입장이다. 

안 대표이사를 전문경영인으로 교체해야 한다는 의견에 대해 대선조선 측은 “안 대표이사는 전문경영인으로 선임됐다. 구 사주(안 회장과 안 대표이사)의 지분이 없는 상태이니 (안 대표이사는) 전문경영인이다. (안 대표이사가) 중소 조선 분야를 잘 아니 채권단서 선임을 해 준 것이다. 본인도 그렇게 알고 있다”고 말했다.

공 전무가 지난 3월 정기주주총회서 또 다시 사내이사로 연임되는 과정서 수은 출신이자 안 대표이사의 학부 선배라는 점이 고려됐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학연 쪽은 영향이 없다. 주주나 외부에서 퇴직자 낙하산을 얘기하지만, 회사 정상화의 성과를 창출했기 때문에 연임이 된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채권단 초기에는 수은이 절대 지분을 가진 게 아니어서 (공 전무의 사내이사 연임에 대해 수은 측에서)일방적인 의사결정을 할 상황이 아니었다. 마치 수은이 처음부터 (공 전무를 사내이사로) 결정한 것으로 비춰진 것 같은데 히스토리를 따져보면 여러 채권금융기관이 초기부터 협의한 것이지 수은만의 결정이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덕경회 의혹에 대해서는 “금시초문”이라고 밝혔다.

대선조선 매각 의사가 없어 보인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그렇지는 않다. 안 대표이사나 공 전무, 수은 모두 매각에 대해 부정하지 않는다. 반대할 이유도 없다. 지난해는 너무 준비가 안 되서 매각에 실패했다. 하반기에도 매각하는 쪽으로 계속 작업이 진행된다”고 설명했다.

수은·대선
전면 부인

대선조선 측은 오히려 의혹을 제기하는 주주 측에게 아쉬움을 전했다. “주주이기 때문에 기업경영에 대해 어느 정도 아시지만,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경영 정상화에 도움을 주셔야 하는데, 오히려 기업 이미지를 추락시키는 그런 좋지 않은 효과가 나올 것 같다. 의혹이 있다면 의혹에 대해 명명백백하게 밝히면 되는 것”이라고 했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신음하는 중소 조선업계

국내 조선업계가 양극화에 몸살을 앓고 있다. 대형조선소는 시황이 개선돼 차츰 살아나고 있는 반면, 중소조선소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지난 16일 영국의 조선·해운 분석업체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대한민국 조선업계는 지난달 전 세계 선박 발주량 201만CGT(표준화물선환산톤수)중 절반에 가까운 97만CGT을 수주했다. 이는 14%에 그친 중국에 두 배를 넘는 세계 1위다.

그러나 편중 현상이 심하다. 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삼성중공업 등 빅3는 지난 7월까지 누적 수주량 645만CGT를 기록했다. 중국 501만CGT, 일본 159만CGT를 크게 앞서는 수치다. 반면 같은 기간 대선조선, 성동조선, SPP, STX 등 중소조선사들의 실적은 대형사들의 2%도 안 되는 10만1000CGT에 그쳤다.

한국수출입은행에 따르면 상반기 중소조선사들의 총 수주 금액은 4억7000만달러다. 지난해 동기보다 45%나 급감했다. 봄을 맞이한 대형조선사들과는 달리 중소조선사들의 겨울은 계속되고 있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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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분오열’ 의료계 내분 내막

‘사분오열’ 의료계 내분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뚝심인가, 고집인가?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한 대통령의 뜻이 확고해도 너무 확고하다. 겉으로는 유연한 대처를 언급하면서 ‘2000명’이라는 수치는 굽히지 않을 기세다. 강 대 강 대치에 나섰던 의료계는 우왕좌왕하는 모양새다. 의료계 내부의 의견을 모으는 일도 쉽지 않아 보인다. <일요시사>와 인터뷰한 지방의대 A 교수는 의과대학 정원 확대를 밀어붙이는 윤석열정부의 강경 기조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정규군은 수뇌부만 처리하면 와해되기 쉽다. 하지만 현재 의료계는 게릴라 방식으로 대응 중이다. 주동자를 찾기 어렵고 실제 주동자도 없다. 전공의, 의대생 모두 조직의 통제하에 움직이는 게 아니라 본능에 따라 행동하고 있다. 윤정부 입장에서는 협상 대상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일괄 협상에 따른 일괄 타결은 어렵다고 본다.” 2월 이후 평행선만 실제 의료계는 대학의사협회(의협),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의대협) 등 여러 단체가 의대 정원 확대 정책에 개별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의대 정원 확대 반대’를 큰 틀로 하되 대응 방식이나 세부적인 요구사항은 각각 다른 상황이다. A 교수의 말대로 의료계는 현재 단일협의체가 없다. 협상테이블이 마련된다 해도 앞에 대표로 나설 사람이 없는 셈이다. 과거 의정갈등이 일어났을 때 주로 의협이 나서서 의료계 입장을 전달하고 대응을 이끌었다면 현재는 각개전투를 진행하고 있다. 이미 정부는 의협의 대표성에 대해 의문을 표한 상태다. 정부는 지난 2월 말 의협 대신 ‘대표성을 갖춘 협의체’를 구성해 의대 정원 확대 등에 대해 대화하자고 의료계에 요청했다. 의협이 전체 의사들의 대표성을 띠기 어렵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다. 당시 주수호 의협 비상대책위원회 언론홍보위원장은 “의협 회원엔 전공의·봉직의 등 모든 직역이 포함돼있고 모든 직역이 배출한 대의원 총회 의결을 거쳐 만들어진 조직이 비대위”라며 “정부가 의협의 대표성을 부정하는 이유는 내부 분열을 조장하기 위함”이라고 반발했다. 의협은 의료법에 근거해 모든 의사가 가입하는 법정 단체지만 개원의를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번 의정갈등 국면서 가장 선봉에 선 단체는 전공의가 모인 대전협이 꼽힌다. 전공의가 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해 병원을 떠나는 등 집단 강경 투쟁에 나서면서 의정갈등에 불이 붙었다. 의대생은 집단 휴학으로 힘을 실었다. 유급 마지노선에 이른 대학들이 수업을 재개했지만 의대생은 돌아올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집단사직에 나선 전공의가 여전히 버티고 있는 상황서 의대생의 복귀 가능성 역시 낮다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대통령실 1년 유예안 일축하면서도 ‘2000명 정원’ 논의 가능성 제시해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기준 학칙에 따른 형식적인 신청 요건을 지킨 의대생의 휴학 신청은 누적 1만242명으로 전체 의대 재학생 대비 54.5% 규모에 이른다. 의대생들의 집단 휴학과 수업 거부는 지난 2월부터 시작됐다. 대학 사이에선 이달 중순이 지나면 여름방학까지 총동원해도 유급을 막을 수 없다. 의대는 특정 수업서 3분의 1 또는 4분의 1 이상을 결석하면 낙제(F) 처리되고 F가 하나라도 나올 경우 유급이 되도록 학칙을 세워둔 곳이 많다. 전공의의 집단사직으로 병원 업무가 마비되고 일부 의료진에 업무가 과중되는 이른바 ‘의료대란’이 벌어졌다. 여기에 의대생의 집단 휴학은 의사 수급 부족 현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의료현장에 구멍이 생기면서 의사를 찾지 못해 환자가 사망하는 ‘응급실 뺑뺑이’ 사건도 일어났다. 문제는 정부의 태도다. 지난 2월6일 2025학년도 의대 입학 정원을 5058명으로 현행보다 2000명 늘리겠다고 발표한 이후부터 현재까지 요지부동 상태다. 정부는 2035년까지 1만명의 의사 인력을 확충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2006년 이후 19년 동안 동결됐던 의대 정원 확대를 예고한 것이다. 당시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는 발표 당시 의료계와 소통한 결과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지난해 10월26일 ‘의대정원 확대 추진계획’을 발표한 이후 40개 대학으로부터 증원 수요와 교육역량에 대한 자료를 받았고 현장점검을 포함한 검증을 마쳤다고 밝혔다. 의료계를 비롯해 사회 각계각층과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했다는 점도 언급했다. 특히 정부는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강조했다. 언론사 여론조사 등에서 의대 정원을 늘리는 문제에 대해 국민 10명 가운데 8명 이상이 ‘필요하다’고 응답한 것을 의미있게 언급했다. “흔들림 없는 의료개혁을 완수하겠다”는 정부의 입장에 국민의 응원을 지지대로 삼은 것이다. 요구 다른 의사단체 윤석열 대통령의 의지는 더 강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일 ‘국민께 드리는 말씀’ 대국민담화서 “역대 정부들이 9번 싸워 9번 모두 졌고 의사들의 직역 카르텔은 더욱 공고해졌다”며 “이제는 결코 그런 실패를 반복할 여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2000명이라는 숫자는 정부가 꼼꼼하게 계산해 산출한 최소한의 증원 규모”라며 “이를 결정하기까지 의사단체를 비롯한 의료계와 충분하고 광범위한 논의를 거쳤다”고 설명했다. 연구 결과를 들어 그 배경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윤 대통령은 “정부는 국책연구소 등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연구된 의사 인력 수급 체계를 검토했다. 수요 측면서 저출산 고령화와 같은 인구구조의 변화, 만성질환의 증가와 같은 질병구조의 변화, 소득 증가에 따른 의료수요 변화까지 반영했다”며 “어떤 방법론이더라도 지금부터 10년 후인 2035년에는 자연 증감분을 고려하고도 최소 1만명 이상의 의사가 부족하다는 결론은 동일하다”고 말했다. 의대 정원 확대 시기에 대해서도 정부는 가차없는 태도를 보인다. 대통령실은 지난 8일, 의협이 제안한 의대 증원 1년 유예안에 대해 “정부는 그간 검토한 바 없고 앞으로도 검토할 계획도 없다”고 밝혔다. 앞서 박민수 복지부 차관이 “내부 검토는 하겠고 현재로서 수용 여부를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내놓은 답변서 더 강경해진 입장이다. 대통령실은 1년 유예안을 받을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면서도 “만약 의료계서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근거, 그리고 통일된 의견으로 제시한다면 논의할 가능성은 열어놓고 있다”며 “열린 마음으로 임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팔짱 낀 정부 공은 의료계로 일각에서는 정부는 초지일관 원론적인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현재로선 ‘2000명’이 정부와 의료계 간 대화의 장벽이 되고 있다. 정부는 2000명이라는 수치를 꿋꿋하게 고수하고 의료계는 2000명 백지화가 대화의 선결 조건이라는 뜻을 굽히지 않는 중이다. 정부든 의료계든 어느 한쪽이라도 구부려야 맞닿는 법인데 평행선만 그리는 모양새다. 이 와중에 의료계는 내분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정부가 의료계에 요구하는 ‘통일된 의견’을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새 회장을 선출한 의협이 그 중심에 있는 상황이다. ‘강성’으로 꼽히는 임현택 의협 회장 당선인과 의협 비대위가 엇박자를 내고 있고 대전협의 박단 비대위원장도 의협 비대위와 갈등 조짐을 보이는 중이다. 현재 의협은 비대위원장과 차기 회장이 공존하는 상태다. 의협은 지난달 26일, 임 당선인을 차기 회장으로 선출했다. 임 당선인은 결선투표서 65%의 지지를 얻어 당선됐고 임기는 다음 달 1일부터다. 임 당선인의 등장으로 의협의 대정부 투쟁 수위가 올라갈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됐다. 임 당선인은 의대 정원 증원 철회를 비롯해 대통령의 사과와 책임자 파면을 요구하는 등 다른 의사단체에 비해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마찰음이 나온 건 ‘단일대오’를 구성하는 과정에서였다. 의협 비대위는 지난 7일, 기자회견서 전의교협, 대전협, 의대협 등과 함께 합동 기자회견을 이번주 안에 열겠다고 예고했다. 하지만 임 당선인이 이런 움직임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의협 비대위, 차기 회장·전공의 회장 갈등 삐걱거리는 단일대오에 대화 공전 가능성도 의협 회장직 인수위원회는 의협 비대위와 대의원회에 공문을 보내 임 당선인이 김택우 현 비대위원장 대신 의협 비대위원장직을 수행할 수 있도록 협조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는 ‘한 지붕 두 가족’ 상황의 의협 창구를 단일화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대전협 박 위원장도 의협 비대위와 불협화음을 내고 있다. 박 위원장은 자신의 SNS에 “의협 비대위 김택우 위원장, 전의교협 김창수 회장과 지속적으로 소통하고 있지만 합동 브리핑 진행에 합의한 적은 없다”고 적었다. 합동 기자회견은 일단 취소된 상태다. 박 위원장과 임 당선인의 갈등도 관심사다. 임 당선인은 지난 4일, 윤 대통령과 박 위원장의 비공개 만남에 불만을 드러냈다. 의협 비대위는 윤 대통령과 박 위원장의 만남을 ‘의미 있다’고 평가했지만 임 당선인은 SNS에 ‘내부의 적’을 운운하며 박 위원장을 강도 높게 비난하는 듯한 글을 남겼다. 박 위원장은 이 같은 보도 내용을 게시글에 공유하며 ‘유감’이라고 적었다. 전의교협은 의대 비대위에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다. 전의교협은 전국 40개 의과대학 교수협의회로 구성된 단체다. 김창수 전의교협 회장이 의협 비대위에 합류하면서 의료계 단일대오 구성이 빨라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통일된 의견을 내놓을 단일협의체 구성 속도에 따라 의정갈등의 타결 가능성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의협 비대위를 중심으로 단일대오를 구성하려던 시도가 임 당선인과 박 위원장의 행보로 삐걱거리면서 의료계 상황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처지가 됐다. 여기에 협상테이블이 마련돼 정부와 의료계의 대화가 이뤄진다 해도 합의까지 가는 데는 하 세월이 걸릴 것이라는 의견이 만만찮다. 입장차가 그만큼 첨예하다는 뜻이다. 타결까지 첩첩산중 일각에서는 정부와 의료계 모두 환자에 대한 배려는 뒷전에 두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월 이후 두 달 넘게 갈등이 계속되면서 환자들은 불편을 겪고 있고 일부 의료진은 업무 과중으로 그로기 상태에 빠졌다. 전공의가 떠난 병원은 매일 막대한 손해를 입고 있다. 정부와 의료계의 10번째 갈등이 어떤 결론으로 끝나느냐에 따라 의료계 지각변동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