람사르 습지 ③고창 운곡습지

자연의 무한 회복 탄력성성

자연은 스스로 피어난다. 고창 운곡습지에 필요한 건 무관심이었다. 사람 발길이 끊기고 30여년이 지난 2011년 4월, 버려진 경작지는 람사르 습지로 등록됐다. 꽉 막힌 대지에 물이 스며들고 생태가 살아났다. 호젓한 숲길과 원시 비경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총 860여종에 이르는 생물이 서식하는 생태계 보고다. 생태관광지역으로 선정된 고창 운곡습지는 자연의 무한 회복 탄력성을 보여주는 우수 사례다.

재생을 넘어선 상생의 손길로 다시 사람들을 초대하는 운곡습지. 그 운명은 1980년대에 바뀌었다. 1981년 전남 영광에 한빛원자력발전소가 들어서면서다. 발전용 냉각수를 공급하기 위한 운곡댐 건설이 그 시작이다. 고창군 아산면을 관통해 지나가는 주진천을 댐으로 막아 운곡저수지가 생기면서, 그곳에 자리한 운곡리와 용계리가 수몰됐다. 물에 잠기거나 경작이 금지돼 삶터를 잃은 9개 마을, 158세대 360명이 고향을 떠나야 했다.

댐 건설로 버려져

습지를 개간한 계단식 논도 사라졌다. 30여년이 흘러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폐경지는 놀라운 변화를 맞이한다. 사람은 대대로 살아온 터전을 잃었지만, 인적이 끊기니 경작으로 훼손된 습지는 원시 모습을 되찾은 것이다. 
운곡습지의 복원은 어쩌면 필연인지도 모른다. 습지 인근에 분포한 고창 고인돌 442기가 2000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록되면서, 무분별한 개발을 막을 두 번째 계기가 마련됐다.

물을 머금은 운곡 땅은 2009년 고창군 한웅재 부군수가 발견해 세상에 드러났다. 30년간 환경 담당 공무원으로 일한 덕분에 운곡습지의 변화를 한눈에 알아차렸다. 갓 태어난 아이의 잇몸 아래 손끝으로 만져지는 치근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은 아니다.
이제 운곡습지 탐방에 나서보자. 탐방안내소를 기점으로 출발하는데, 고인돌유적지 탐방안내소에서 1·3코스가, 친환경주차장에서 2·4코스가 시작된다. 1코스(3.6km, 왕복 1시간40분 소요)는 탐방안내소에서 운곡습지생태연못, 생태둠벙을 거쳐 운곡람사르습지생태공원까지 이어진다. 거리가 가장 짧아 일반적으로 선호하는 코스다. 

초입에 있는 고창고인돌군은 모르면 지나치기 쉽다. 고창 지역의 고인돌은 185개 군집에 1600여기가 확인되는데, 운곡습지 1코스 초입의 오베이골(오방골의 전라도 사투리) 주변은 고인돌 최대 집중 분포지다. 너른 들판에 바둑판식 53기, 탁자식과 바둑판식 중간 형태인 지상석곽식 20기 등 고인돌 128기가 흩어져 있다.


본격적인 습지 탐방은 습지 보호용 신발 털이개에 신발을 털면서 시작된다. 혹여 신발에 묻은 생태 교란 외래종 식물이 습지 안으로 들어가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습지 탐방로는 한 사람이 지나갈 너비의 나무 데크로 조성됐다. 팔을 양쪽으로 조금만 뻗어도 난간이 잡힐 만한 거리다. 발판은 일정한 간격으로 벌어져 데크 아래 식물이 햇볕을 받을 수 있도록 배려했다. 자연 훼손을 최소화하고 인위적 간섭을 막기 위함인데, 다시 찾아온 자연과 상생하기 위한 노력이다.

타박타박 걷다 보면 지천으로 깔린 고마리가 눈에 띈다. 자연환경해설사는 “물이 가득한 습지를 상상했는데 메마른 땅만 보인다는 탐방객이 많아요. 실제로 들어가면 물이 허리까지 차오르는 습지입니다”라고 전한다. 바람에 흔들리는 어리연꽃, 낙지다리, 병꽃나무, 익모초, 노루오줌 등 푸른 숲으로 통칭할 수 없는 ‘생명의 세계’가 바로 운곡습지다.

사람 발길 끊기고 30여년 자연 습지로 탄생
860여종 이르는 생물 서식, 생태관광지역 선정

길잡이 역할을 하는 안내 표지판도 재밌다. 삵, 담비, 수달, 붉은배새매, 팔색조 등 운곡습지에 서식하는 동물의 모습을 나무 표지판에 새겼다. 생태둠벙으로 가는 길목에서 마을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외양간으로 보이는 벽돌 위로 무성한 수풀이 세월을 말해준다. 호젓한 걸음에 뻐꾸기와 꾀꼬리, 직박구리 소리가 박자를 맞춘다.

2코스는 운곡저수지를 따라 한 바퀴 둘러보는 구간으로, 2시간30분 정도 걸린다. 저수지 동쪽과 서쪽 조류관찰대에서 철새의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 3코스는 회암봉과 옥녀봉, 호암봉을 거쳐 운곡서원으로 이어진다. 운곡서원에서 탐방안내소까지 도보로 빠져나와야 하기 때문에 5시간 정도 걸린다.
현재 네 코스가 모두 만나는 지점에 운곡람사르습지생태공원이 조성 중이다. 생태공원에서 오른쪽으로 5분 정도 걸으면 동양 최대 고인돌을 만난다. 덮개돌 둘레 16m, 높이 5m, 무게 300t으로 추청되는 고인돌 앞에 서면 탄성이 절로 나온다. 지나온 길을 되돌아가는 동안 보지 못한 꽃을 보았다. 바람은 흙이 머금은 물길을 따라 땅속으로도 다니는 듯했다. 어쩌면 운곡습지는 사람이 빼앗긴 땅이 아니라, 자연이 내민 화해의 손길인지도 모른다.

인근 고창고인돌박물관은 선사시대 사람들의 삶과 고인돌을 이해하는 장이다. 청동기시대 각종 유물과 생활상을 알기 쉽게 전시해 고인돌의 의미를 살펴볼 수 있다. 무엇보다 실제 유적이 지척에 있어 좋다. 박물관 앞에서 모로모로열차를 타면 드넓은 고인돌 유적과 마주한다.

고창고인돌박물관에서 5.7km 떨어진 고창읍성도 함께 둘러보자. 1453년 축조된 고창읍성(사적 145호)은 둘레 약 1.7km다. 봄날 철쭉 길과 답성 놀이 등으로 알려졌지만, 소나무와 어우러진 맹종죽을 놓칠 수 없다. 구불구불하게 자란 소나무 가지가 맹종죽을 껴안은 듯한 형상이 신비롭다. 운곡습지에서 시작된 고창 여행은 ‘상생’이란 단어가 떠오르게 한다.


‘누구나 책, 누구나 도서관’이라는 모토로 폐교가 살아 있는 책마을로 변신한 책마을해리에 가면 사람들의 따뜻한 정서가 느껴진다. 이곳에서는 누구나 책의 저자가 되어보는 경험을 할 수 있다. 활자 꾸미기, 편집하기, 전통 방식 제본 등 기획부터 제작까지 책에 관한 캠프가 열린다. ‘누구나’에 방점이 찍힌 이곳은 아이부터 80세 노인까지 그림을 그리고, 자기 이야기를 펼쳐놓는다. 더욱이 고창을 여행하며 새롭게 만난 생태와 역사, 문화, 예술 등이 책의 소재가 되어 의미 깊다.

고창고인돌박물관

인근 상하농원은 건강한 재료로 먹거리를 직접 만들고 체험하고 맛보는 공간이다. 깨끗한 환경에서 방목한 젖소를 만나고, 동물과 교감하는 동물농장에서 온 가족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좋다. 햄·과일·빵·발효 공방에서 각각의 제품을 만드는 과정을 지켜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여행 정보>

당일 여행 고창고인돌박물관→운곡습지→책마을해리→상하농원

1박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고창읍성→고창판소리박물관→고창군립미술관→고창고인돌박물관→운곡습지
둘째 날: 학원농장→책마을해리→상하농원→동호해수욕장

관련 웹 사이트 주소
- 고창군 문화관광 http://culture.gochang.go.kr
- 고창군 운곡람사르습지 www.gochang.go.kr/ungok/index.gochang
- 고창고인돌박물관 www.gcdolmen.go.kr
- 책마을해리 http://blog.naver.com/pbvillage
- 상하농원 www.sanghafarm.co.kr 

문의 전화
- 운곡습지탐방안내소 063)564-7076
- 고창고인돌박물관 063)560-8666
- 고창읍성 063)560-8067
- 책마을해리 070-4175-0914
- 상하농원 1522-3698

대중교통 정보
버스: 서울-고창, 센트럴시티터미널에서 하루 16회(07:05~19:00) 운행, 약 3시간10분 소요. 고창터미널 정류장에서 고창-죽림 농어촌버스, 고창고인돌박물관 정류장 하차, 약 30분 소요. 
*문의: 센트럴시티터미널 02)6282-0114 고속버스통합예매 www.kobus.co.kr 고창공용버스터미널 063)563-3388 

자가운전
서해안고속도로→고창 IC에서 아산·선운산 방면 오른쪽→동서대로→고인돌공원길→고창고인돌박물관 주차장, 도보 10분

숙박 정보
- 힐링카운티: 고창읍 석정2로, 063)560-7300, www.huespapension.com, 
- 선운산관광호텔: 아산면 중촌길, 063)561-3377, www.sushotel.com
- 책마을해리 북스테이: 해리면 월봉성산길, 070-4175-0914, http://blog.naver.com/pbvillage
- 고창읍성한옥마을: 고창읍 동리로, 063)563-9977, http://woko.kr/hosting/index.asp?pno=108

식당 정보
- 조양관(한정식): 고창읍 천변남로, 063)564-2026
- 청림정금자할매집(장어소금구이): 아산면 인천강서길, 063)564-1406
- 천변밥집(생선구이): 고창읍 천변남로, 063)561-1824


이색 체험
- 시티투어버스 ‘팜팜시골버스’ 시범 운행: 6월23일·7월28일
- 모니터링 투어(8월 본격 운영). 참가비 1만 원(체험·식사·교통비 포함). 고창읍성, 선운사, 운곡습지, 학원농장, 고인돌들꽃학습원 등 당일 여행

주변 볼거리
고창판소리박물관, 선운산도립공원, 동호해수욕장, 학원농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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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법률수석 부활 속셈

‘갑자기?’ 법률수석 부활 속셈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4·10 총선이 범야권의 승리로 끝났다. 집권여당은 참패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집권 3년차인 윤석열정부는 국정운영의 동력을 잃게 생겼다. 레임덕을 넘어 데드덕이라는 표현까지 나오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정치 인생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식물 대통령’으로 전락한 윤 대통령의 다음 행보는 엇일까? 속사정이야 어떻든 숫자만 놓고 봤을 때 이견이 없는 결과가 나왔다. 범야권은 192석을 얻어 ‘반윤 거야’ 전선을 형성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161석, 민주당의 위성정당 더불어민주연합 14석, 조국혁신당 12석, 개혁신당 3석, 새로운미래 1석, 진보당 1석 등을 모두 합친 수치다. 국민의힘은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 의석(18석)을 포함해 108석을 얻는 데 그쳤다. 완벽한 참패 식물 대통령 선거를 진두지휘한 각 당 대표의 희비도 엇갈렸다. 사법 리스크를 안고도 선거를 승리로 이끈 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정국의 주도권을 잡게 됐고 국민의힘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정치 생명에 큰 타격을 입었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은 실제 선거를 뛴 선수보다 더 큰 영향을 받게 됐다. 윤 대통령은 임기 내내 의회 주도권을 야당에 내준 상태로 정국을 운영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한다고 해도 여당의 이탈표를 걱정해야 한다. 총선이 끝나면서 권력의 무게추가 당으로 기울어지는 모양새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또 이미 거부권을 9차례나 사용한 이력이 민심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각 당은 이번 총선서 ‘정권 심판론’을 정면에 내세웠다. 민주당은 윤석열정부 심판, 국민의힘은 ‘이조(이재명-조국) 심판’ 프레임으로 유권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했다. 국민은 범야권에 의석을 몰아주면서 정부 심판의 손을 들어줬다. 윤석열정부에 대한 중간평가에 ‘낙제점’을 준 것이다. 윤석열정부는 당장 밀어붙이고 있던 정책에 차질을 빚게 됐다.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을 골자로 하는 의료개혁이 대표적이다. 윤 대통령은 총선 패배 메시지를 통해 의료개혁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드러냈지만 추진력에 대해서는 의문부호가 붙는다. ‘카르텔 타파’라는 국정기조도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 윤 대통령은 지난 16일, 총선 결과와 관련해 첫 육성 메시지를 내놨다. 총선 참패 후 엿새 만이다. 민정수석실 폐지 대선공약 민심 청취 명분 부활 예고 윤 대통령은 “총선을 통해 나타난 민심을 우리 모두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올바른 국정의 방향을 잡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음에도 국민들께서 체감하실 만큼의 변화를 만드는 데 모자랐다”며 “큰 틀에서 국민을 위한 정책이라 해도 세심한 영역서 부족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윤석열정부서 추진하고 있던 개혁은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윤 대통령은 “노동, 교육, 연금 등 3대 개혁과 의료개혁을 계속 추진하되, 합리적인 의견을 더 챙기고 귀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국회와의 긴밀한 협력을 말했지만 야당을 명시적으로 언급하진 않았다. 윤 대통령의 메시지에 야권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민주당 홍익표 원내대표는 윤 대통령의 메시지에 대해 “개탄스럽다”며 “오만, 독선, 불통 정치를 계속하겠다는 마이웨이 선언”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이번 총선서 확인한 민심은 국정기조 전면 전환과 민생경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할 방안을 제시해 달라는 주문”이라며 “윤 대통령은 국정 실패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민생경제의 잘못을 인정하고 실질적 대책과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이 총선 패배에 대한 목소리를 내면서 이후 내놓을 쇄신안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미 국무총리와 대통령비서실장 인선과 관련한 하마평이 나오는 중이다. 지난 17일에는 대통령실서 국무총리로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을, 비서실장에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을 고려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일단 대통령실에서는 “검토한 바 없다”고 대응한 상태다. 3대 개혁 밀어붙인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현재 비서실장 아래에 있는 공직기강비서관실과 법률비서관실을 관장할 ‘법률수석비서관실(가칭)’이 신설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민심 청취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민정수석이 존재할 당시 폐해로 여겨졌던 사정 기능은 제한하고 민심을 읽는 방향의 조직을 만들 것이라는 구체적인 언급도 나오고 있다. 이 과정서 사실상 민정수석실이 부활하는 게 아니냐는 의견이 나왔다. 민정수석실 폐지는 윤 대통령의 대선공약 중 하나였다. 윤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앞으로 대통령실 업무서 사정, 정보 조사 기능을 철저히 배제하고 민정수석실을 폐지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과거 사정기관을 장악한 민정수석실은 합법을 가장해 정적, 정치적 반대 세력을 통제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고 세평 검증을 위장해 국민 신상 털기와 뒷조사를 벌여왔는데 이런 잔재를 청산하겠다”고 말했다. 실제 윤석열정부 출범 직전 대통령실은 2실(비서실·국가안보실) 5수석(경제·사회·정무·홍보·시민사회) 체제로 개편됐다. 당시 당선인 신분이었던 윤 대통령이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청산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윤석열정부 출범 3개월 만에 정책기획수석이 신설되면서 2실6수석 체제가 됐다. 민정수석실서 맡고 있던 공직기강 업무와 인사검증 업무는 법률비서관, 법무부 등으로 이관됐다. 특히 법무부에 공직자 검증 업무를 전담하는 인사정보관리단이 신설되면서 당시 법무부 장관이었던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에 권력이 지나치게 집중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사정 기능 제한한다? 지난해 11월 윤 대통령은 정책실장을 신설하는 등 대통령실 직제를 3실6수석 체제로 개편했다. 개편 과정서 기존 수석들을 물갈이하면서 대통령실 2기 체제의 출범을 알렸다. 이때도 민정수석실 관련 언급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총선 패배 이후 대통령실 쇄신안에 법률수석이 거론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야당은 즉각 반발했다. 민심 청취는 표면용일 뿐 결국 윤 대통령이 사정정국을 조성하려는 의도를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민정수석실 폐지’라는 대선공약을 파기하고 여소야대 정국을 돌파하기 위한 자구책이라는 설명이다. 여기에 야당서 예고한 특검을 방어하려는 선제적 조치가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당초 민정수석실은 민심 청취 기능과 무관하게 운영됐다. 오히려 폐지 가능성이 나오고 있는 시민사회수석실이 민심을 듣는 역할을 해왔다. 민정수석은 고위공직자 인사 검증, 국정 관련 여론 수렴, 고위공직자 복무 동향 점검, 대통령 친인척 관리, 사정기관과 소통 등의 업무를 주로 했다. 하지만 역대 정부서 가장 부각됐던 기능은 국가정보원, 검찰, 경찰, 국세청, 감사원 등 5대 사정기관을 관리하는 것이었다. 실제 2000년 김대중정부서 폐지되기 전까지 이른바 ‘사직동팀’이 청와대 하명수사를 전담했다. 사직동팀은 경찰청 형사국 조사과를 일컫는 말이다. 윤 대통령 역시 당선인 시절 대통령 인수위원회 첫 과제로 민정수석실 폐지를 밀어붙이며 “사직동팀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한 바 있다. 대통령실은 법률수석을 신설하더라도 사정 기능은 제한하겠다는 뜻을 비쳤지만 의심의 눈초리는 여전하다. 김건희·채 상병 특검법 대기 신임 수석 검찰 출신 될 듯 민주당 고민정 최고위원은 지난 16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법률수석 신설은 앞으로 들이닥칠 영부인에 대한 특검 등을 방어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며 “이제 와서 법률수석비서관실을 신설한다는 것은 사법 리스크 방어 차원”이라고 주장했다. 21대 국회에 이어 22대 국회서도 여소야대 정국이 유지되면서 민주당 등 범야권은 ‘해병대 채 상병 사망사건 수사외압 의혹 특별검사법(채 상병 특검법)’과 ‘김건희 여사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특별검사법(김건희 여사 특검법)’ 등을 예고했다. 국민의힘서도 채 상병 특검법 수용과 관련해 의견이 갈리는 만큼 국회 통과 가능성이 제기된다. 윤 대통령은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 한 차례 거부권을 행사한 상태다. 192석을 확보한 범야권은 21대 국회서 채 상병 특검법이 좌절된다고 해도 22대 국회서 재추진한다는 뜻을 보이고 있다. 고민정 최고위원도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채 상병의 죽음 앞에 정치권이 더는 부끄럽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민주당서도 의지가 충분히 있고 국회서 당장 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돼있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김건희 여사 특검법도 22대 국회 개원 전후로 다시 도마에 오를 전망이다. 12석을 확보한 조국혁신당은 아예 22대 국회 1호 법안으로 김건희 여사 특검법을 공언했다. 민주당과 개혁신당 등이 조국혁신당에 동의한다는 뜻을 보인 만큼 추진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 높다. 국민의힘 내부서도 수용 여부에 대한 의견이 갈리고 있어 향후 상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정기관 잡고 흔드나 범야권이 다수 의석을 무기로 특검 정국을 예고하면서 윤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압박 수위가 높아지는 모양새다. 법률수석을 새로 만들려는 의도가 ‘방어’로 읽히는 분위기도 윤 대통령이 처한 상황이 녹록지 않기 때문으로 보인다. 심지어 총선이 마무리되면서 국민의힘에 대한 윤 대통령의 지배력 역시 작아진 상태라는 점도 법률수석 신설의 배경으로 꼽히고 있다. 이미 시작된 것으로 보이는 레임덕을 최대한 늦추기 위한 궁여지책이라는 말도 나온다. 신임 법률수석을 누가 맡게 될지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벌써부터 하마평이 돌고 있다. 검찰 출신들로 채워질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