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농단 사태] ‘떨고 있는’ 대법관 막전막후

양승태만? 다른 법관들은 괜찮고?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사법 농단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양승태 사법부 시절 청와대와 재판을 두고 거래가 있었다는 의혹에 사회 전반이 들썩이고 있다. 북미정상회담과 6·13지방선거가 끝나면 이슈의 전면에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아직 공개되지 않은 부분이 많아 파괴력은 가늠조차 되질 않는다. <일요시사>가 현재 재판거래 의혹을 받고 있는 판결과 불거지는 대법관 책임론을 살펴봤다.
 

지난달 25일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특별조사단(단장 안철상 법원행정처장)이 일부 공개한 문건이 사회 전반을 흔들고 있다. 지난 2월 구성된 특조단은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등 판사 사찰 등에 개입했다고 의심받고 있는 전·현직 판사들의 업무용 PC서 3만건이 넘는 문서를 확보했다. 이 중 키워드 추출방식으로 한 차례 선별 후 파일 손상과 삭제 등의 이유로 재생이 불가능한 문서를 제외한 나머지 410건을 대상으로 조사를 벌였다.

문건 일부에
파장 일파만파

이 중 특조단은 ‘국제인권법 연구회 대응방안’(2016년 3월10일 작성), ‘전교조 법원노조 통보처분 효력 집행정지 관련 검토’(2014년 12월3일), ‘현안 관련 말씀자료’(2015년 7월27일) 등 문건의 일부만 공개했다. 

특조단 발표로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법관을 사찰하고 특정 재판을 두고 청와대와 정치적 거래를 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특조단은 이 같은 문제의 원인으로 양 전 대법원장이 임기 초부터 핵심 과제로 지목한 상고법원의 입법을 지목했다.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박근혜정부와 국회 등의 지원이 필요했던 법원행정처가 이에 대해 비판적 목소리를 내는 판사를 ‘입단속’하는 한편 청와대와 특정 재판을 놓고 ‘흥정’을 벌였다는 취지다.


극히 일부만 공개된 문건이 가져온 파장은 엄청났다. 국정 농단 사태에 이어 사법 농단이 일어났다고 분개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논란이 커지자 김명수 대법원장은 지난달 31일, 사법부 수장으로서의 사과와 재발 방지 대책을 담은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했다.

이날 김 대법원장은 “심한 충격과 실망감을 느끼셨을 국민께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올린다”며 “대법원과 법원행정처를 인적·물적으로 완전히 분리하고 행정처를 대법원 청사 외부로 이전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논란의 중심으로 지목된 법원행정처의 탈법관화를 추진해 사태 재발을 막겠다는 의도다.

재판거래 의혹 16건 중 대법원 15건
1·2심 승소 노동사건 대법서 뒤집혀

그러면서도 양 전 대법원장 등에 대한 고발 여부는 결정을 유보했다. 김 대법원장은 “최종 판단을 담당하는 대법원이 형사조치를 하는 것은 신중할 수밖에 없다”며 “국민과 함께하는 사법발전위원회, 전국법원장간담회, 전국법관대표회의 등의 의견을 종합한 뒤 결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비난의 화살은 양 전 대법원장에게 집중됐다. 사법부에 대한 검찰 수사와 양 전 대법원장을 구속 수사해야 한다는 요구가 빗발쳤다. 
 

그러자 지난달 1일 양 전 대법원장은 자택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의혹에 대해 입을 열었다. 그는 “재임 중 법원행정처서 부적절한 행위가 있었다는 지적이 사실이라면 그걸 막지 못한 책임이 있다고 통감하고 있고 사과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재판 개입과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에 대해서는 강하게 부인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대법원장으로 재직하면서 대법원이나 하급심이나 재판에 부당하게 개입한 적이 결단코 없다. 하물며 재판을 흥정거리로 삼아 거래를 하는 것은 꿈도,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당해 법관에게 편향된 조치를 하는 불이익을 준 적이 전혀 없다”고도 덧붙였다.

기자회견에
여론 악화

양 전 대법원장의 기자회견 이후 비난 여론은 더욱 커졌다. 여러 의혹에 대해 속 시원한 해명 대신 ‘모르쇠’로 일관하는 태도가 국민들의 분노에 불을 지폈다. 또 구체적인 답변 없이 억울하다는 입장만 피력한 것에 오히려 검찰 수사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여론이 거세졌다.

양 전 대법원장이 기자회견을 한 날 오후 안철상 특조단 단장은 “재판 거래는 실제로 있지 않았다고 확신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날 취재진을 만난 자리서 “재판 거래라는 말은 30년 이상 법관으로 재직하며 처음 듣는 말”이라고 전했다. 

안 단장의 발언은 재판 거래 의혹이 과장된 의미로 여론에 전달되고 있는 점을 지적하려는 의도라는 분석이 나온다.

특조단은 조사 발표 당시에도 법원행정처에서 청와대와의 협상 방안을 검토했다고는 해도 실제 행동에 옮겼다는 증거를 찾을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문건 작성 자체는 부적절했지만 실제 청와대와 사법부가 재판을 놓고 거래했다는 의혹은 오해라는 뜻을 내비쳤다는 분석이다. 

해당 발언 이후 일각에서는 안 단장이 양 전 대법원장의 기자회견을 옹호한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현 대법원장의 대국민 담화, 전 대법원장의 기자회견, 특조단 단장의 발언이 연이어 나왔지만 이번 사태는 쉽사리 가라앉지 않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재판거래 의혹 당사자들이 양 전 대법원장을 고발하는 등 사실 확인을 요구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특조단 발표 이후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청와대와 사법부의 재판거래 의혹을 받고 있는 판결들이다. 2015년 7월 작성된 현안 관련 말씀자료 문건에는 16개의 판결이 박 전 대통령의 국정운영의 ‘협력 사례’로 적시돼있다. 이 중 15개가 대법원 판결이다.

이 자료에는 과거사 정립 5건, 자유민주주의 수호 2건, 국가경제 발전 3건, 노동개혁 4건, 교육개혁 2건 등 총 16건이 박근혜정부 국정 기조에 맞게 선고됐다고 자평하는 내용이 나온다. 대부분 언론의 상당한 주목을 받았던 사건들이다. 

여기에 2015년 11월19일 임종헌 법원행정처 차장이 직접 작성한 ‘상고법원의 성공적 입법추진을 위한 BH와의 효과적 협상 추진 전략’ 문건에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 선거법 위반 사건 등 3건이 추가로 더 언급돼있다.


문건에 적시된 협력 사례는 ▲합리적 범위 내에서의 과거사 정립(국가배상 제한 등) ▲자유민주주의 수호와 사회적 안정을 고려한 판결(이석기·원세훈·김기종 사건 등) ▲국가경제발전을 최우선적으로 염두에 둔 판결(통상임금·국공립대학 기성회비 반환·키코 사건 등) ▲노동개혁에 기여할 수 있는 판결(KTX 승무원·정리해고·철도노조 파업 사건 등) ▲교육 개혁에 초석이 될 수 있는 판결(전교조 시국선언 사건 등)이다. 이 중 15건이 대법원 사건이다.

국가배상 제한
보수적인 판결

과거사 사건은 국가배상을 최대한 제한하는 방향으로 판결이 나왔다. 2013년 5월 ‘과거사위원회 보고서만 믿고 국가배상을 결정할 수 없다’, 2015년 1월 ‘생활지원금 등 이미 보상금을 받은 피해자에게 추가배상은 못한다’, 2015년 4월 ‘진실규명을 신청하지 않은 피해자는 배상 안된다’, 2015년 3월 ‘긴급조치 9호 발령은 정치적 행위로 배상 대상이 아니다’ 등의 판결이다.
 

특히 박정희 전 대통령의 긴급조치 발동에 따른 국가배상 제한에 대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이하 민변)은 대법원 판결에 대해 헌법소원을 내는 등 반발한 바 있다. 당시 민변 등은 “대법원 판결은 헌법재판소가 긴급조치에 위헌 결정을 내린 취지에 반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리해고 등 노동 관련 사건은 보수적인 판결이 주를 이뤘다. 특조단 발표 이후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KTX 해고승무원 복직 사건에 대해 당시 대법원은 불허 판결을 내렸다. 복직 판결을 내렸던 1, 2심 판결과 180도 달라진 결과다. 

대법원 판결로 KTX 해고승무원들은 4년치 월급에 이자까지 더해 1억원을 토해내야 하는 처지에 몰렸다. 한 승무원은 자살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콜텍 정리해고 사건, 쌍용차 정리해고 사건, 철도노조 파업 사건 등도 마찬가지였다. 해당 사건 모두 1, 2심서 원고 승소 판결이 났지만 하나같이 대법원에서 원고 패소 취지로 파기환송 됐다.

콜텍 정리해고 사건은 2007년 7월 콜텍 대전공장 폐쇄로 해고된 노동자들이 제기한 소송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대전공장의 경영사정뿐만 아니라 회사 전체의 경영 사정을 검토해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성을 판단해야 한다”며 해고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대법원은 “전체의 경영악화를 방지하기 위해 불가피한 것이었는지 등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심리하라”며 파기환송을 결정했다. 구체적인 판단은 유보한 채였다.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 사건도 이와 비슷하다. 2013년 10월 고용노동부는 전교조가 해직자를 노조원으로 뒀다는 이유로 법외노조로 통보했다. 이에 대해 전교조가 소송을 제기했고 1, 2심 판결은 전교조에 합법적 노조 지위가 인정된다는 취지로 결론 났다. 그러나 2015년 6월 대법원은 사실상 전교조의 합법적 지위를 박탈하는 취지로 결정을 내렸다.

대법관들 1월엔 반발하더니
이번엔 2주 넘게 ‘침묵’ 중

특조단이 지난 5일 추가로 공개한 98건의 문건에는 전교조 관련 내용이 담겨있다. 문건에는 대법원 선고서 전교조의 법적 지위가 박탈될 경우 예상되는 반발 세력을 무마할 수 있는 방안이 구체적으로 적시돼있다. 

대법원 판결은 해당 문건이 작성되고 6개월 뒤에 나왔다. 문건이 공개되자 전교조는 “양승태 사법부의 전교조 법외노조 판결은 원천 무효고, 고용노동부는 법외노조 통보를 취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난의 화살은 양 전 대법원장에 집중되고 있다. 재판거래 의혹이 불거진 판결 중 6건은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회부됐다. ▲국가 배상 관련 2건 ▲통합진보당 이석기 전 의원 사건 ▲통상임금 사건 ▲키코 사건 ▲전교조 시국선언 교사 벌금형 사건 등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사건의 심리는 대법원장을 포함한 13명의 대법관이 참여한다. 이 경우 대법원장이 재판장을 맡는다. 일각에선 재판 거래 의혹을 받고 있는 판결에 관여한 대법관들도 책임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지적한다.

시민단체 참여연대는 지난달 31일 성명을 내고 “사법부 신뢰의 근간이 무너진 지금, 대법관들의 자진 사퇴는 법관으로서 최소한의 책임일 뿐”이라며 “국민 앞에 사죄하고 사퇴하는 길만이 대한민국 대법원과 사법부를 살리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재판거래 의혹을 받고 있는 판결 중 가장 최근 것인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대법원 판결에 관여한 대법관 중 7명은 여전히 재임 중이다. 
 

참여연대는 “이 중 8월2일 퇴임하는 고영한, 김창석, 김신 대법관과 11월1일 퇴임하는 김소영 대법관 등 재임 중인 대법관들이 현 사태에 대한 책임도 없이 임기를 모두 채우고 퇴직하는 것은 국민들을 우롱하는 것”이라고 실명을 거론했다. 실명이 거론된 4명의 대법관은 양 전 대법원장이 제청하고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임명했다.

법원 안팎의 비판은 시간이 지날수록 커지고 있다. 양 전 대법원장은 물론 대법관들이 검찰 조사를 받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도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높아질 것이라는 주장도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양 전 대법원장이 기자회견서 입장을 밝힌 것에 반해 대법관들은 조용하다. 지난 1월 추가조사위 조사로 불거진 재판개입 의혹에 대해 단체 성명을 내고 반발했던 때와는 대조되는 대목이다.

대법관들은 지난 1월23일 ‘원세훈 재판개입’ 의혹에 대해 “사건의 중요성까지 고려해 전원합의체에서 논의할 사안으로 분류하고 대법관들의 일치된 의견으로 판결을 선고했다”며 “재판에 관해 사법부 내외부 누구로부터 어떠한 연락도 받은 사실이 없음을 분명히 한다”고 강하게 부인했다.

거래 의혹 판결
대법관 7명 관여?

당시 성명을 낸 대법관 13명 중 7명만이 해당 사건 대법원 판결 심리에 참여했음에도 불구하고 긴급 좌담회를 열어 이 같은 입장을 발표한 것이다. 추가조사위 조사 결과가 나온 지 하루 만이었다. 그러나 지난달 25일 특조단 발표 이후 2주가 지났지만 대법관 가운데 누구도 이번 사태에 대해 어떠한 입장도 내놓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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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법률수석 부활 속셈

‘갑자기?’ 법률수석 부활 속셈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4·10 총선이 범야권의 승리로 끝났다. 집권여당은 참패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집권 3년차인 윤석열정부는 국정운영의 동력을 잃게 생겼다. 레임덕을 넘어 데드덕이라는 표현까지 나오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정치 인생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식물 대통령’으로 전락한 윤 대통령의 다음 행보는 엇일까? 속사정이야 어떻든 숫자만 놓고 봤을 때 이견이 없는 결과가 나왔다. 범야권은 192석을 얻어 ‘반윤 거야’ 전선을 형성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161석, 민주당의 위성정당 더불어민주연합 14석, 조국혁신당 12석, 개혁신당 3석, 새로운미래 1석, 진보당 1석 등을 모두 합친 수치다. 국민의힘은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 의석(18석)을 포함해 108석을 얻는 데 그쳤다. 완벽한 참패 식물 대통령 선거를 진두지휘한 각 당 대표의 희비도 엇갈렸다. 사법 리스크를 안고도 선거를 승리로 이끈 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정국의 주도권을 잡게 됐고 국민의힘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정치 생명에 큰 타격을 입었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은 실제 선거를 뛴 선수보다 더 큰 영향을 받게 됐다. 윤 대통령은 임기 내내 의회 주도권을 야당에 내준 상태로 정국을 운영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한다고 해도 여당의 이탈표를 걱정해야 한다. 총선이 끝나면서 권력의 무게추가 당으로 기울어지는 모양새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또 이미 거부권을 9차례나 사용한 이력이 민심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각 당은 이번 총선서 ‘정권 심판론’을 정면에 내세웠다. 민주당은 윤석열정부 심판, 국민의힘은 ‘이조(이재명-조국) 심판’ 프레임으로 유권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했다. 국민은 범야권에 의석을 몰아주면서 정부 심판의 손을 들어줬다. 윤석열정부에 대한 중간평가에 ‘낙제점’을 준 것이다. 윤석열정부는 당장 밀어붙이고 있던 정책에 차질을 빚게 됐다.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을 골자로 하는 의료개혁이 대표적이다. 윤 대통령은 총선 패배 메시지를 통해 의료개혁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드러냈지만 추진력에 대해서는 의문부호가 붙는다. ‘카르텔 타파’라는 국정기조도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 윤 대통령은 지난 16일, 총선 결과와 관련해 첫 육성 메시지를 내놨다. 총선 참패 후 엿새 만이다. 민정수석실 폐지 대선공약 민심 청취 명분 부활 예고 윤 대통령은 “총선을 통해 나타난 민심을 우리 모두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올바른 국정의 방향을 잡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음에도 국민들께서 체감하실 만큼의 변화를 만드는 데 모자랐다”며 “큰 틀에서 국민을 위한 정책이라 해도 세심한 영역서 부족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윤석열정부서 추진하고 있던 개혁은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윤 대통령은 “노동, 교육, 연금 등 3대 개혁과 의료개혁을 계속 추진하되, 합리적인 의견을 더 챙기고 귀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국회와의 긴밀한 협력을 말했지만 야당을 명시적으로 언급하진 않았다. 윤 대통령의 메시지에 야권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민주당 홍익표 원내대표는 윤 대통령의 메시지에 대해 “개탄스럽다”며 “오만, 독선, 불통 정치를 계속하겠다는 마이웨이 선언”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이번 총선서 확인한 민심은 국정기조 전면 전환과 민생경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할 방안을 제시해 달라는 주문”이라며 “윤 대통령은 국정 실패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민생경제의 잘못을 인정하고 실질적 대책과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이 총선 패배에 대한 목소리를 내면서 이후 내놓을 쇄신안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미 국무총리와 대통령비서실장 인선과 관련한 하마평이 나오는 중이다. 지난 17일에는 대통령실서 국무총리로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을, 비서실장에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을 고려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일단 대통령실에서는 “검토한 바 없다”고 대응한 상태다. 3대 개혁 밀어붙인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현재 비서실장 아래에 있는 공직기강비서관실과 법률비서관실을 관장할 ‘법률수석비서관실(가칭)’이 신설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민심 청취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민정수석이 존재할 당시 폐해로 여겨졌던 사정 기능은 제한하고 민심을 읽는 방향의 조직을 만들 것이라는 구체적인 언급도 나오고 있다. 이 과정서 사실상 민정수석실이 부활하는 게 아니냐는 의견이 나왔다. 민정수석실 폐지는 윤 대통령의 대선공약 중 하나였다. 윤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앞으로 대통령실 업무서 사정, 정보 조사 기능을 철저히 배제하고 민정수석실을 폐지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과거 사정기관을 장악한 민정수석실은 합법을 가장해 정적, 정치적 반대 세력을 통제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고 세평 검증을 위장해 국민 신상 털기와 뒷조사를 벌여왔는데 이런 잔재를 청산하겠다”고 말했다. 실제 윤석열정부 출범 직전 대통령실은 2실(비서실·국가안보실) 5수석(경제·사회·정무·홍보·시민사회) 체제로 개편됐다. 당시 당선인 신분이었던 윤 대통령이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청산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윤석열정부 출범 3개월 만에 정책기획수석이 신설되면서 2실6수석 체제가 됐다. 민정수석실서 맡고 있던 공직기강 업무와 인사검증 업무는 법률비서관, 법무부 등으로 이관됐다. 특히 법무부에 공직자 검증 업무를 전담하는 인사정보관리단이 신설되면서 당시 법무부 장관이었던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에 권력이 지나치게 집중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사정 기능 제한한다? 지난해 11월 윤 대통령은 정책실장을 신설하는 등 대통령실 직제를 3실6수석 체제로 개편했다. 개편 과정서 기존 수석들을 물갈이하면서 대통령실 2기 체제의 출범을 알렸다. 이때도 민정수석실 관련 언급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총선 패배 이후 대통령실 쇄신안에 법률수석이 거론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야당은 즉각 반발했다. 민심 청취는 표면용일 뿐 결국 윤 대통령이 사정정국을 조성하려는 의도를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민정수석실 폐지’라는 대선공약을 파기하고 여소야대 정국을 돌파하기 위한 자구책이라는 설명이다. 여기에 야당서 예고한 특검을 방어하려는 선제적 조치가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당초 민정수석실은 민심 청취 기능과 무관하게 운영됐다. 오히려 폐지 가능성이 나오고 있는 시민사회수석실이 민심을 듣는 역할을 해왔다. 민정수석은 고위공직자 인사 검증, 국정 관련 여론 수렴, 고위공직자 복무 동향 점검, 대통령 친인척 관리, 사정기관과 소통 등의 업무를 주로 했다. 하지만 역대 정부서 가장 부각됐던 기능은 국가정보원, 검찰, 경찰, 국세청, 감사원 등 5대 사정기관을 관리하는 것이었다. 실제 2000년 김대중정부서 폐지되기 전까지 이른바 ‘사직동팀’이 청와대 하명수사를 전담했다. 사직동팀은 경찰청 형사국 조사과를 일컫는 말이다. 윤 대통령 역시 당선인 시절 대통령 인수위원회 첫 과제로 민정수석실 폐지를 밀어붙이며 “사직동팀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한 바 있다. 대통령실은 법률수석을 신설하더라도 사정 기능은 제한하겠다는 뜻을 비쳤지만 의심의 눈초리는 여전하다. 김건희·채 상병 특검법 대기 신임 수석 검찰 출신 될 듯 민주당 고민정 최고위원은 지난 16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법률수석 신설은 앞으로 들이닥칠 영부인에 대한 특검 등을 방어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며 “이제 와서 법률수석비서관실을 신설한다는 것은 사법 리스크 방어 차원”이라고 주장했다. 21대 국회에 이어 22대 국회서도 여소야대 정국이 유지되면서 민주당 등 범야권은 ‘해병대 채 상병 사망사건 수사외압 의혹 특별검사법(채 상병 특검법)’과 ‘김건희 여사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특별검사법(김건희 여사 특검법)’ 등을 예고했다. 국민의힘서도 채 상병 특검법 수용과 관련해 의견이 갈리는 만큼 국회 통과 가능성이 제기된다. 윤 대통령은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 한 차례 거부권을 행사한 상태다. 192석을 확보한 범야권은 21대 국회서 채 상병 특검법이 좌절된다고 해도 22대 국회서 재추진한다는 뜻을 보이고 있다. 고민정 최고위원도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채 상병의 죽음 앞에 정치권이 더는 부끄럽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민주당서도 의지가 충분히 있고 국회서 당장 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돼있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김건희 여사 특검법도 22대 국회 개원 전후로 다시 도마에 오를 전망이다. 12석을 확보한 조국혁신당은 아예 22대 국회 1호 법안으로 김건희 여사 특검법을 공언했다. 민주당과 개혁신당 등이 조국혁신당에 동의한다는 뜻을 보인 만큼 추진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 높다. 국민의힘 내부서도 수용 여부에 대한 의견이 갈리고 있어 향후 상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정기관 잡고 흔드나 범야권이 다수 의석을 무기로 특검 정국을 예고하면서 윤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압박 수위가 높아지는 모양새다. 법률수석을 새로 만들려는 의도가 ‘방어’로 읽히는 분위기도 윤 대통령이 처한 상황이 녹록지 않기 때문으로 보인다. 심지어 총선이 마무리되면서 국민의힘에 대한 윤 대통령의 지배력 역시 작아진 상태라는 점도 법률수석 신설의 배경으로 꼽히고 있다. 이미 시작된 것으로 보이는 레임덕을 최대한 늦추기 위한 궁여지책이라는 말도 나온다. 신임 법률수석을 누가 맡게 될지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벌써부터 하마평이 돌고 있다. 검찰 출신들로 채워질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