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회담 이후…두 가지 시나리오

일본이 끼면 복잡해진다

[일요시사 정치팀] 김정수 기자 = 오는 12일 ‘세기의 담판’이 시작된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이날 오전 10시(한국시각) 싱가포르 센토사 섬 카펠라 호텔서 만난다. 남북정상회담과 판문점 선언을 시작으로 물꼬를 튼 북미정상회담은 우여곡절 끝에 회담 성사를 눈앞에 두고 있다. 핵심 의제는 비핵화다. 두 정상이 비핵화 방식에 따른 접점을 얼마나 찾을 수 있느냐가 이번 회담의 관건이다. 또 북미정상회담은 한반도의 미래와 동북아 정세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만남은 가시적이다. 북미정상회담을 위한 실무 협의는 마무리됐다. 두 정상이 회담서 다룰 의제 협의는 판문점 북측 지역 통일각서 진행됐다. 성 김 필리핀 주재 미국대사와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을 중심으로 갖춰진 북미 대표단은 지난달 27일을 시작으로 지난 6일까지 총 여섯 차례 만남을 가졌다. 

비핵화-체제보장
실무협상 마무리

핵심 의제는 비핵화와 북한의 체제안정보장 조치 등인 것으로 전해졌다. 대표단은 의견 조율을 통해 정상회담 후 발표할 문서의 초안을 다잡은 것으로 점쳐진다. 비핵화 등에 따른 양국 간 의견 차가 꽤 좁혀진 것으로 여겨지는 까닭이다.

북미 간 실무협상은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과 트럼프 대통령의 만남 이후 급물살을 탔다. 김영철 부위원장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각) 미국을 방문해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부장관과 고위급 회담을 가졌다. 

이후 그는 지난 1일(현지시각) 김 위원장의 친서를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달했다. 친서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정상회담을 갈망하는 김 위원장의 의지가 담겨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친서 전달 직후 북미 대표단은 지난 2∼4일과 지난 5일에 연속적으로 만남을 가졌다.


양국 간 의견 조율은 막바지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세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지난 4일(현지시각) 정례 브리핑을 통해 “미 대표단이 북측 대표단과 외교 협상을 계속하고 있는데 긍정적 논의와 중대한 진전이 이뤄졌다”고 밝혔다. 

샌더스 대변인의 발언은 북·미 대표단의 5차 실무협상 뒤에 나온 까닭에 정상회담에 대한 기대감은 더욱 높아졌다.

경호 등과 관련한 의전 협상도 마무리된 것으로 보인다. 김창선 북한 국무위원회 부장과 조지프 헤이긴 백악관 부비서실장은 양국 정상의 의전 협의를 위해 싱가포르서 회담을 가졌다. 김창선 국무위원회 부장은 지난 6일, 싱가포르서 출국해 베이징에 도착한 것으로 알려졌고, 미 대표단은 그보다 이른 지난 2일 출국했다.

북미정상회담이 하루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두 정상이 비핵화에 대한 간극을 얼마나 좁힐 수 있을지 주목된다. 회담의 성사에 이은 성과는 그 차이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이번 회담의 최대 승부처라 할 수 있다.

북-미 비핵화 방식 간극 좁히나
CVID와 체제보장 ‘빅딜’ 가능성

미국은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를 고수한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은 최소한의 물리적 시간만을 허용하는 일괄 타결식 해법을 언급하며 강조된 CVID 방식을 주장하고 있다. 

반면 북한은 단계적-동시적 해법을 내세우고 있다. 스스로 신뢰할만한 보상이 나오지 않는다면 핵을 일괄적으로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비핵화의 대가가 만족할 정도로 충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폼페이오 장관의 두 차례 방북과 김영철 부위원장의 방미, 그리고 판문각 실무협상 등 끊임없는 물밑접촉이 이어지고 있지만 핵심 의제에 대한 양국 간 격차는 쉽게 줄어들기 어렵다는 해석도 나온다. 회담 전 협상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까닭이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정상회담을 두고 일회성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 발언한 부분은 주목할 만하다. 그는 지난 1일 백악관서 김영철 부위원장과 회동한 뒤 기자들과 만나 6·12 회담을 두고 “과정을 시작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어 “나는 (회담이)한 번 이라고 말 한 적 없다”며 “한 번에 성사된다고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는 비핵화 의제가 단번에 해결되기 어렵다는 방증으로 해석된다. 또 트럼프 대통령은 일괄적 CVID를 추구하지만 서두르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이면서 북한이 좀 더 전향적인 태도로 나올 수 있는 틈을 제공해준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김정은 위원장의 친서 전달 이후 공식적인 발언을 일절 하지 않았다. 북한 내부적으로도 트럼프의 속도전에 대의적으로 공감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비핵화 간극
회담 성과 관건

두 정상이 단 한 번의 회동으로 완전한 비핵화를 도출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맞물려 있는 만큼 이번 정상회담서 합의될 수 있는 사안은 비핵화의 큰 틀 정도로 좁혀진다. 그에 맞춰 후속조치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북한 모두에게 만족할 만한 합의가 나오려면 비핵화 방식은 완전한 핵 폐기로 수렴되는 CVID로, 그에 따른 보상은 북한이 신뢰할만한 체제안정이 나와야 한다는 분석이다. 북한은 핵을 체제 존속의 보루로 보는 공산이 크다. 

반면 미국은 핵의 존재자체를 부정하는 입장이다. 상반된 두 의견이 접점을 찾으려면 북미 중 누군가는 한 발짝 뒤로 물러서야 하는 형국이다.

우선 트럼프 대통령은 단발성 회담 가능성을 일축하고, 속도전을 언급하면서 팽팽한 양국의 줄다리기서 일련의 틈을 보였다. 그 틈은 북한에 대한 보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고, 동시에 김 위원장의 입장을 확인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보상의 궤도는 CVID를 벗어나지 않는 쪽으로 잡힐 것이란 해석이다.

비록 트럼프 대통령이 과정과 속도전을 언급해 김 위원장이 강조한 단계적-동시적 비핵화 방식에 힘이 실리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 존재한다. 그러나 백악관과 미국 국무부는 단계적 비핵화는 과거 정부의 실패를 되풀이 할뿐이라는 입장을 보이며 단호한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은 체제 안전보장을 통해 북한의 신뢰를 얻으려 할 것이지만 이는 CVID를 향한 디딤돌로 여길 가능성이 높다.

비핵화 보상의 일환으로 언급되는 체제 안전보장 조치로 종전선언이 언급된다. 지난 남북정상회담 당시 진행된 판문점 선언이 종전선언의 도화선이라 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은 판문점 선언을 통해 남북 간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추진을 약속했다. 이어 평화협정 체결과 관련해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회담 개최를 적극 추진하기로 했다. 종전선언은 정치적 선언에 그치지만 평화협정으로 나아가기 위한 중간 단계이기도 하다.

북한이 바라는 체제 안전보장 조치는 미국과의 종전선언에 있다. 북한은 미국과의 종전선언을 거친 평화협정 체결을 안전보장의 조치로 여길 가능성이 높다. 김 위원장은 미국과의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외교적 관계를 맺어 정상국가로서의 도약을 바란다는 해석이다. 

다만 북한이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의 대가로 CVID를 밀어붙이고 있는 미국의 입장을 어느 정도 수용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결국 북미정상회담은 전적인 비핵화 합의보다 종전선언과 같은 정치적 선언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 대가로 북한의 전향적인 비핵화 방식이 큰 틀에서 합의가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일각에선 그동안 양국 접촉이 톱 다운 형식으로 진행된 것으로 비춰봤을 때 예측불허의 두 인물이 회담에 직접 자리하는 만큼 완전한 비핵화와 체제보장 조치를 주고받는 등의 빅딜 가능성 역시 생각해볼 수 있다.

이와 반대로 북미 정상회담이 성사되더라도 두 정상 간 극명한 의견차이로 회담 이후 북핵과 동북아 정세가 다시 난기류로 흘러들 가능성도 제기된다. 애초에 비핵화를 바라보는 양국의 시각차가 현저한 까닭이다.


회담의 성과가 가시적이지 않을 경우 남북미 주도의 비핵화 과정서 밀려난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일본이 목소리를 높일 공산이 크다. 과거 ‘한·미·일’ 대 ‘북·중·러’의 구도로 회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러-일
개입 본격화?

중국은 대내외적으로 ‘차이나 패싱’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중국은 남북정상회담 이전까지 북핵 등 한반도 문제와 동북아 정세에 있어 굳건한 입지를 자부했다. 그러나 남북미 주도의 비핵화와 종전선언 가능성이 불거지면서 틈을 파고들기가 쉽지 않았다. 

게다가 미국과의 남중국해 갈등, 트럼프 대통령의 ‘시진핑 배후설’ 언급 등으로 비핵화 의제의 중심서 벗어났다.

다만 중국은 지난 두 차례 북중 정상회담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의 방중, 경제사절단 교류 등으로 정세의 주도권을 놓치지 않기 위한 포석을 깔아놨다. 또 북한과 우방 국가를 넘어선 혈맹국가인 점 역시 간과할 수 없다. 남북미가 주도하는 비핵화 과정의 분기점이 될 수 있는 북미정상회담이 마땅한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한다면 중국은 본격적으로 정세에 개입할 확률이 크다.

러시아 역시 북한과의 수교 70주년을 맞아 올해 김 위원장에게 북러정상회담을 제안했고, 김 위원장은 이에 합의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지난달 31일 방북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친서를 김 위원장에게 전달한 바 있다. 
 

북한과의 우방국인 러시아도 북미정상회담 이후 동북아 정세에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둔 셈이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8∼10일 중국 칭다오서 열린 상하이협력기구(SOC) 정상회의에 참석차 중국을 국빈 방문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남북미 주도의 비핵화 정세 가운데 힘을 잃지 않겠다는 러시아와 중국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것이다.   

회담 이후 중·러·일 개입 가시화
주변국 변수 맞물린다면 시계제로

북미정상회담이 비핵화를 향한 진전을 보여주지 못할 경우 북·중·러 구도의 삼각펜스가 강화될 조짐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북핵의 비핵화 과정서 미국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을 반기지 않는다. 

양국은 미국이 나서 북핵 비핵화의 주도권을 잡는 모양새를 두고 동북아 정세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중국과 러시아에게 북핵은 동북아 정세가 이전처럼 형성될 수 있는 계기가 될 만한 사안이다.

패싱의 정점을 찍은 일본은 명분만 쥐어진다면 북핵 과정에 개입하고 싶은 의지가 다분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주변 국가 중에서 유일하게 대북 연락책을 구비하지 못했다. 

아베 총리는 지난 8∼9일 캐나다서 열리는 G7(주요 7개국) 정상회의에 앞서 지난 7일 백악관을 방문해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그는 이번 미일정상회담서 미국이 일본인 납치문제를 북미정상회담의 의제로 올려줄 것을 요청했지만 북한은 ‘이미 끝난 문제’라며 못 박고 있어 의제로 설정될 지는 불투명하다. 아베 총리는 “북한과의 대화를 원한다”며 북일대화의 의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과거 한·미·일 구도의 ‘대북 제재’를 외쳤던 일본이었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추가 대북제재 무기한 연기 발표와 ‘최대한의 압박’이라는 표현을 거둬들이면서 일본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북미정상회담 이후 비핵화의 큰 밑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면 일본은 적극적으로 개입할 공산이 크다. 패싱의 중심에 선 만큼 입지를 제고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력하다는 이유에서다.

세기의 담판으로 불리는 북미정상회담이 비핵화를 향한 큰 그림을 그릴 수 있을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관전 포인트는 CVID를 내세우는 미국과 신뢰할 만한 체제 안전보장을 바라는 북한과의 간극이 얼마나 좁아질 수 있을지다. 

큰 얼개 없다면
향후 시계제로

북미가 큰 틀을 마련한다면 다시금 남북미 주도로 후속 조치와 세부 사항을 논의할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그 과정에 있어서 논의가 진척되지 못하고 공전할 경우 패싱의 그늘에 가려졌던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일본이 입지를 되찾기 위해 개입할 가능성이 높다. 변수가 많아지는 만큼 북핵문제가 난기류에 빠질 공산이 클 것으로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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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분오열’ 의료계 내분 내막

‘사분오열’ 의료계 내분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뚝심인가, 고집인가?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한 대통령의 뜻이 확고해도 너무 확고하다. 겉으로는 유연한 대처를 언급하면서 ‘2000명’이라는 수치는 굽히지 않을 기세다. 강 대 강 대치에 나섰던 의료계는 우왕좌왕하는 모양새다. 의료계 내부의 의견을 모으는 일도 쉽지 않아 보인다. <일요시사>와 인터뷰한 지방의대 A 교수는 의과대학 정원 확대를 밀어붙이는 윤석열정부의 강경 기조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정규군은 수뇌부만 처리하면 와해되기 쉽다. 하지만 현재 의료계는 게릴라 방식으로 대응 중이다. 주동자를 찾기 어렵고 실제 주동자도 없다. 전공의, 의대생 모두 조직의 통제하에 움직이는 게 아니라 본능에 따라 행동하고 있다. 윤정부 입장에서는 협상 대상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일괄 협상에 따른 일괄 타결은 어렵다고 본다.” 2월 이후 평행선만 실제 의료계는 대학의사협회(의협),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의대협) 등 여러 단체가 의대 정원 확대 정책에 개별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의대 정원 확대 반대’를 큰 틀로 하되 대응 방식이나 세부적인 요구사항은 각각 다른 상황이다. A 교수의 말대로 의료계는 현재 단일협의체가 없다. 협상테이블이 마련된다 해도 앞에 대표로 나설 사람이 없는 셈이다. 과거 의정갈등이 일어났을 때 주로 의협이 나서서 의료계 입장을 전달하고 대응을 이끌었다면 현재는 각개전투를 진행하고 있다. 이미 정부는 의협의 대표성에 대해 의문을 표한 상태다. 정부는 지난 2월 말 의협 대신 ‘대표성을 갖춘 협의체’를 구성해 의대 정원 확대 등에 대해 대화하자고 의료계에 요청했다. 의협이 전체 의사들의 대표성을 띠기 어렵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다. 당시 주수호 의협 비상대책위원회 언론홍보위원장은 “의협 회원엔 전공의·봉직의 등 모든 직역이 포함돼있고 모든 직역이 배출한 대의원 총회 의결을 거쳐 만들어진 조직이 비대위”라며 “정부가 의협의 대표성을 부정하는 이유는 내부 분열을 조장하기 위함”이라고 반발했다. 의협은 의료법에 근거해 모든 의사가 가입하는 법정 단체지만 개원의를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번 의정갈등 국면서 가장 선봉에 선 단체는 전공의가 모인 대전협이 꼽힌다. 전공의가 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해 병원을 떠나는 등 집단 강경 투쟁에 나서면서 의정갈등에 불이 붙었다. 의대생은 집단 휴학으로 힘을 실었다. 유급 마지노선에 이른 대학들이 수업을 재개했지만 의대생은 돌아올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집단사직에 나선 전공의가 여전히 버티고 있는 상황서 의대생의 복귀 가능성 역시 낮다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대통령실 1년 유예안 일축하면서도 ‘2000명 정원’ 논의 가능성 제시해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기준 학칙에 따른 형식적인 신청 요건을 지킨 의대생의 휴학 신청은 누적 1만242명으로 전체 의대 재학생 대비 54.5% 규모에 이른다. 의대생들의 집단 휴학과 수업 거부는 지난 2월부터 시작됐다. 대학 사이에선 이달 중순이 지나면 여름방학까지 총동원해도 유급을 막을 수 없다. 의대는 특정 수업서 3분의 1 또는 4분의 1 이상을 결석하면 낙제(F) 처리되고 F가 하나라도 나올 경우 유급이 되도록 학칙을 세워둔 곳이 많다. 전공의의 집단사직으로 병원 업무가 마비되고 일부 의료진에 업무가 과중되는 이른바 ‘의료대란’이 벌어졌다. 여기에 의대생의 집단 휴학은 의사 수급 부족 현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의료현장에 구멍이 생기면서 의사를 찾지 못해 환자가 사망하는 ‘응급실 뺑뺑이’ 사건도 일어났다. 문제는 정부의 태도다. 지난 2월6일 2025학년도 의대 입학 정원을 5058명으로 현행보다 2000명 늘리겠다고 발표한 이후부터 현재까지 요지부동 상태다. 정부는 2035년까지 1만명의 의사 인력을 확충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2006년 이후 19년 동안 동결됐던 의대 정원 확대를 예고한 것이다. 당시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는 발표 당시 의료계와 소통한 결과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지난해 10월26일 ‘의대정원 확대 추진계획’을 발표한 이후 40개 대학으로부터 증원 수요와 교육역량에 대한 자료를 받았고 현장점검을 포함한 검증을 마쳤다고 밝혔다. 의료계를 비롯해 사회 각계각층과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했다는 점도 언급했다. 특히 정부는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강조했다. 언론사 여론조사 등에서 의대 정원을 늘리는 문제에 대해 국민 10명 가운데 8명 이상이 ‘필요하다’고 응답한 것을 의미있게 언급했다. “흔들림 없는 의료개혁을 완수하겠다”는 정부의 입장에 국민의 응원을 지지대로 삼은 것이다. 요구 다른 의사단체 윤석열 대통령의 의지는 더 강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일 ‘국민께 드리는 말씀’ 대국민담화서 “역대 정부들이 9번 싸워 9번 모두 졌고 의사들의 직역 카르텔은 더욱 공고해졌다”며 “이제는 결코 그런 실패를 반복할 여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2000명이라는 숫자는 정부가 꼼꼼하게 계산해 산출한 최소한의 증원 규모”라며 “이를 결정하기까지 의사단체를 비롯한 의료계와 충분하고 광범위한 논의를 거쳤다”고 설명했다. 연구 결과를 들어 그 배경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윤 대통령은 “정부는 국책연구소 등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연구된 의사 인력 수급 체계를 검토했다. 수요 측면서 저출산 고령화와 같은 인구구조의 변화, 만성질환의 증가와 같은 질병구조의 변화, 소득 증가에 따른 의료수요 변화까지 반영했다”며 “어떤 방법론이더라도 지금부터 10년 후인 2035년에는 자연 증감분을 고려하고도 최소 1만명 이상의 의사가 부족하다는 결론은 동일하다”고 말했다. 의대 정원 확대 시기에 대해서도 정부는 가차없는 태도를 보인다. 대통령실은 지난 8일, 의협이 제안한 의대 증원 1년 유예안에 대해 “정부는 그간 검토한 바 없고 앞으로도 검토할 계획도 없다”고 밝혔다. 앞서 박민수 복지부 차관이 “내부 검토는 하겠고 현재로서 수용 여부를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내놓은 답변서 더 강경해진 입장이다. 대통령실은 1년 유예안을 받을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면서도 “만약 의료계서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근거, 그리고 통일된 의견으로 제시한다면 논의할 가능성은 열어놓고 있다”며 “열린 마음으로 임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팔짱 낀 정부 공은 의료계로 일각에서는 정부는 초지일관 원론적인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현재로선 ‘2000명’이 정부와 의료계 간 대화의 장벽이 되고 있다. 정부는 2000명이라는 수치를 꿋꿋하게 고수하고 의료계는 2000명 백지화가 대화의 선결 조건이라는 뜻을 굽히지 않는 중이다. 정부든 의료계든 어느 한쪽이라도 구부려야 맞닿는 법인데 평행선만 그리는 모양새다. 이 와중에 의료계는 내분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정부가 의료계에 요구하는 ‘통일된 의견’을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새 회장을 선출한 의협이 그 중심에 있는 상황이다. ‘강성’으로 꼽히는 임현택 의협 회장 당선인과 의협 비대위가 엇박자를 내고 있고 대전협의 박단 비대위원장도 의협 비대위와 갈등 조짐을 보이는 중이다. 현재 의협은 비대위원장과 차기 회장이 공존하는 상태다. 의협은 지난달 26일, 임 당선인을 차기 회장으로 선출했다. 임 당선인은 결선투표서 65%의 지지를 얻어 당선됐고 임기는 다음 달 1일부터다. 임 당선인의 등장으로 의협의 대정부 투쟁 수위가 올라갈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됐다. 임 당선인은 의대 정원 증원 철회를 비롯해 대통령의 사과와 책임자 파면을 요구하는 등 다른 의사단체에 비해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마찰음이 나온 건 ‘단일대오’를 구성하는 과정에서였다. 의협 비대위는 지난 7일, 기자회견서 전의교협, 대전협, 의대협 등과 함께 합동 기자회견을 이번주 안에 열겠다고 예고했다. 하지만 임 당선인이 이런 움직임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의협 비대위, 차기 회장·전공의 회장 갈등 삐걱거리는 단일대오에 대화 공전 가능성도 의협 회장직 인수위원회는 의협 비대위와 대의원회에 공문을 보내 임 당선인이 김택우 현 비대위원장 대신 의협 비대위원장직을 수행할 수 있도록 협조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는 ‘한 지붕 두 가족’ 상황의 의협 창구를 단일화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대전협 박 위원장도 의협 비대위와 불협화음을 내고 있다. 박 위원장은 자신의 SNS에 “의협 비대위 김택우 위원장, 전의교협 김창수 회장과 지속적으로 소통하고 있지만 합동 브리핑 진행에 합의한 적은 없다”고 적었다. 합동 기자회견은 일단 취소된 상태다. 박 위원장과 임 당선인의 갈등도 관심사다. 임 당선인은 지난 4일, 윤 대통령과 박 위원장의 비공개 만남에 불만을 드러냈다. 의협 비대위는 윤 대통령과 박 위원장의 만남을 ‘의미 있다’고 평가했지만 임 당선인은 SNS에 ‘내부의 적’을 운운하며 박 위원장을 강도 높게 비난하는 듯한 글을 남겼다. 박 위원장은 이 같은 보도 내용을 게시글에 공유하며 ‘유감’이라고 적었다. 전의교협은 의대 비대위에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다. 전의교협은 전국 40개 의과대학 교수협의회로 구성된 단체다. 김창수 전의교협 회장이 의협 비대위에 합류하면서 의료계 단일대오 구성이 빨라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통일된 의견을 내놓을 단일협의체 구성 속도에 따라 의정갈등의 타결 가능성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의협 비대위를 중심으로 단일대오를 구성하려던 시도가 임 당선인과 박 위원장의 행보로 삐걱거리면서 의료계 상황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처지가 됐다. 여기에 협상테이블이 마련돼 정부와 의료계의 대화가 이뤄진다 해도 합의까지 가는 데는 하 세월이 걸릴 것이라는 의견이 만만찮다. 입장차가 그만큼 첨예하다는 뜻이다. 타결까지 첩첩산중 일각에서는 정부와 의료계 모두 환자에 대한 배려는 뒷전에 두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월 이후 두 달 넘게 갈등이 계속되면서 환자들은 불편을 겪고 있고 일부 의료진은 업무 과중으로 그로기 상태에 빠졌다. 전공의가 떠난 병원은 매일 막대한 손해를 입고 있다. 정부와 의료계의 10번째 갈등이 어떤 결론으로 끝나느냐에 따라 의료계 지각변동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