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0년 6월13일 남북 간의 감격적인 만남이 이뤄졌다. 그러나 남북정상회담은 말 그대로 고난의 연속이었다. 이 여사는 자서전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정상회담을 계속하고 있었던 터라 많이 지쳐보였다”며 “무거운 걸음을 떼는 그의 뒷모습이 무척 고독하고 힘겨워 보였다. 한동안 배웅하면서 서 있자니 눈가가 젖어왔다”고 회고했을 정도다.
우여곡절 끝에 두 정상은 여러 번의 수정을 거쳐 완성된 공동선언문에 합의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포도주 잔을 높이 들어 축배를 들고 있는 김 전 대통령 곁으로 박준영 공보수석이 다가가 “대통령님, 대단히 죄송합니다. 아까 두 분이 나가셔서 공동선언을 합의했다고 말씀하신 것을 카메라 기자들이 없어 잡지 못했습니다. 매우 중요한 역사적인 장면인 만큼 죄송하지만 다시 한 번 해주십시요”라고 요청했던 것.
잠시 난처한 얼굴을 하던 김 전 대통령은 김 위원장에게 “김 위원장, 아까 우리가 나가서 한 것을 못 찍었다는데…”라고 말을 전하자 김 위원장은 “그럼 오늘 배우 하십시다. 좋은 날인데 배우 한번 하십시다”라고 흔쾌히 승낙했다.
뿐만 아니다. 우여곡절 끝에 성사시킨 공동선언문을 마친 뒤 김 전 대통령이 수행원들과 앉아서 밝힌 소회는 말 그대로 흥미진진하다.
“젖 먹던 힘까지 다했다. 내 평생 가장 길고 무겁고, 보람을 느낀 날이다. 회담 3시간40분 동안 3시간30분이 긴장의 연속이었다. 절망적으로 생각해 두어 번 포기하고 싶은 심정도 들었는데 이 길이 어떤 길인가, 7천만 겨레의 염원을 생각하고 젖 먹던 힘까지 다 쏟아 설득했다. 김 위원장의 유연한 사고와 해박한 지식이 도움이 됐다. 합리적이어서 고집하다가도 납득이 되면 생각을 바꿨다.” 76세의 김 전 대통령이 ‘젖 먹던 힘’을 강조해 수행원들이 웃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