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그룹 승계 판도] 구광모와 LG가 사람들 ‘풀스토리’

같이 갈 수 없는 황태자와 왕자들

[일요시사 취재1팀] 박호민 기자 = 재계의 큰별이 졌다. LG그룹을 이끌어오던 구본무 회장이 별세한 것이다. 재계를 넘어 사회적으로도 비통함에 빠졌다. 비보에도 LG그룹은 다음을 준비해야 한다. 후계자로 구광모 상무가 지목하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지만 다른 경쟁자에게도 동시에 눈길이 쏠리고 있다.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지난 20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73세. 구 회장은 지난해 건강검진서 뇌종양을 발견해 수술을 받은 후 한남동 자택과 서울대병원을 오가며 투병생활을 했다.

40대 회장
탄생하나

병세가 악화됐지만 끝내 회복하지 못했다. 그의 타계 소식에 정재계 많은 인사들의 조문이 이어졌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을 비롯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양승태 전 대법원장,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등이 슬픔을 함께 했다.

구본무 회장의 별세로 LG그룹의 승계구도를 걱정하는 시각도 생겼다. 현재 구 회장을 이어 그룹을 이끌 유력 후보자는 구본무 회장의 아들 구광모 LG전자 상무다. 1978년 생인 그의 나이는 만 40세다.

LG그룹은 장자승계 원칙을 고수한다. 1969년 12월31일 창업주 구인회 회장이 별세하면서 그의 동생 구철회 사장은 이듬해 1월 경영서 한 발 물러섰다. 구인회 회장의 장자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에게 지휘봉을 넘겨주기 위해서였다.


구자경 명예회장이 경영 일선서 물러설 때도 마찬가지였다. 구자경 명예회장은 만 70세가 되던 해인 1995년 1월 럭키금성그룹 간판을 LG그룹으로 바꾼 뒤 그룹 경영권을 구본무 회장에게 넘겼다.
 

이에 따라 구자경 회장의 형제였던 구자학 아워홈 회장, 구자두 LB인베스트먼트 회장 등이 LG그룹의 경영서 물러났다. 회장직을 다음 세대에 장자가 넘겨받으면 윗세대가 경영서 물러나는 식으로 세대교체가 이뤄졌다.

구본무 회장 별세 “다음 후계자는?”
장자승계 원칙대로?

하지만 3세 경영인 구본무 회장의 별세를 4세 경영인 시대 개막으로 해석하기에 어려움이 있다. 일각에선 그가 그룹을 이끌기엔 후계자로서 검증이 안 됐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 

구광모 상무는 영동고등학교를 거쳐 미국 뉴욕에 있는 로체스터 공대를 졸업했다. 2006년부터 LG그룹서 회사생활을 시작했다. 

첫 입사 당시 그의 직급은 대리. 이듬해 유학길을 떠났지만 2009년 LG전자 미국 뉴저지 법인으로 회사에 다시 합류했다. 2013년에는 한국에 돌아와 일했으며 입사 8년 만인 2014년 11월 상무로 진급했다.

그가 회사에 들어와 경영수업을 받은 지 15년도 채 되지 않은 시점이다. 구자경 명예회장은 1950년에 입사한 후 20년간 근무한 뒤 1970년 그룹 회장직을 맡았다. 구 회장도 20년간 실무경험을 쌓고 50세이던 1995년에 회장직에 올랐다. 


구 상무의 실무 경력이 12년이 안 된 점을 감안하면 연륜에 대한 말이 나오고 있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이에 따라 구 상무 지배력을 위협할 수 있는 경쟁자들이 부각되고 있는 상황이다. 알려진 바와 같이 구 상무는 구 회장의 양자다. 2004년 구 상무는 큰아버지인 구 회장의 양자로 입적했다. 

그의 원래 친아버지는 현 희성그룹을 이끌고 있는 구본능 회장. 구 회장은 1994년 외아들을 잃은 뒤 뒤를 이을 자식이 없었다.

구연경·구연수씨 등 두 명의 딸이 더 있었지만 장자승계 원칙을 고수하는 LG그룹의 가풍 상 두 딸에게 경영권을 물려주기는 쉽지 않았다. 

LG그룹 측은 “구 회장이 슬하에 딸 두 명을 두고 있는 상황서 장자의 대를 잇고 집안 대소사에 아들이 필요하다는 유교적 가풍에 따라 이루어졌다”고 설명한 바 있다.

LG그룹 경영에 참여하지 않는 구연경씨는 지난 2006년 윤관 블루런벤처스 대표와 결혼했으며 윤관 사장 역시 LG그룹의 경영에는 참여하고 있지 않다. 구연수씨 역시 별다른 경영에 참여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구 회장의 자녀 가운데서는 구 상무를 흔들만한 인사가 없다는 게 중론이다.

작업 마무리
남은 숙제는?

하지만 현재 그룹 내에서 가장 큰 위상을 차지하는 구본준 LG전자 부회장은 구 상무를 흔들 여력이 있다. 구본준 부회장은 3세 경영인 가운데 3남이다. 그동안 구본준 부회장은 형인 구 회장이 병마와 싸우고 있을 사이 그룹을 실질적으로 이끌었다. 

장자승계의 원칙상 구본준 부회장이 회사 경영서 물러나야 하지만, 구 상무의 연착륙을 위해서 구본준 부회장이 LG그룹을 이끌 명분은 충분하다.
 

그룹 지주사 LG 지분을 7.72% 가지고 있는 구본준 부회장은 구 회장(11.28%)을 제외하면 지분이 가장 많다. 구 상무의 지분은 6.24%다. 물론 구 상무가 온전히 구 회장의 지분을 넘겨받는다면 최대주주로 올라서지만 해당 지분을 두 딸을 배제하고 넘길지는 좀 더 지켜봐야할 부분이다. 

또 해당 주식이 구 상무가 물려받는다고 하더라도 상속세 때문에 지분율이 생각보다 높지 않을 수 있다.


현행 상속세·증여세법 상 30억원 이상에는 상속 시 최고세율(50%)이 적용된다. 상장기업 주식은 고인이 사망한 시점으로부터, 전후 2개월씩 총 4개월 치 주가를 평균 금액으로 기준삼아 산정한다. 여기에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에 대한 상속 지분은 20% 할증된다.

구 상무가 구 회장에게 지분을 모두 물려받을 경우 약 1조원에 육박하는 상속세를 마련해야할 것으로 관측된다. 물납을 통해 상속재원을 마련하는 방법은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어 구 상무는 물려받은 지분을 매각해 상속재원을 마련할 가능성이 가장 높을 것으로 관측된다.

이렇게 될 경우 구 상무가 가지는 지분율이 11%를 넘기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구 상무가 구 회장의 지분을 모두 상속받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도 나와 그룹의 지배력이 확실하게 넘어갔다고 판단하기 어렵다. 
 

3세 경영인 가운데 4남인 구본식 희성그룹 부회장이 4.48%의 지분을 가지고 있어 구본준 부회장과 연대할 경우 구 상무의 지분을 상회할 수 있다.

사실 구 상무의 불안한 입지 때문에 친부인 구본능 회장의 지원사격이 꾸준히 있었다. LG전자에 첫 입사했던 2006년 구 상무의 LG 지분은 2%대에 불과했다. 하지만 2007년 희성전자 지분 14.9%를 매각한 자금으로 LG 지분을 매입했다.

2014년에는 친부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에게 LG 지분 1.10%를 증여받았다. 고모부인 최병민 깨끗한나라 회장도 2016년 말 LG 지분 0.21%(70만주)를 증여하면서 지원사격을 했다. 현재까지도 구본능 회장이 LG지분 3.45%를 가지고 있어 구 상무의 입지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 상황서 가장 큰 변수는 구 회장의 부인 김영식 여사의 지분이다. 김 여사는 LG 지분 4.20%를 가지고 있다. 승계 구도에 변화를 줄 여지가 충분하다는 의미다.

현재 다른 구 상무와 같은 항렬에 있는 사촌들 역시 경쟁자로 분류될 수 있다. 구본준 회장의 장남 구형모 LG전자 과장도 그룹 내에서 경영수업을 받고 있다. 

4세대 가운데 LG그룹 내에서 근무하고 있는 사람은 구 상무를 제외하면 구형모 과장이 유일하다. 따라서 그의 향후 행보에도 눈길이 쏠리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그가 가지고 있는 LG 지분은 0.6% 수준이다. 4세 가운데 가장 많지만 구 상무보다는 현저히 적어 지분을 가지고 직접적으로 경쟁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 외에 구 회장의 사촌 구본길 희성그룹 사장의 장남인 구현모씨와 구본식 부회장의 장남 구웅모씨가 경쟁자로 거론될 수 있다. 다만 이들은 지난해 대부분의 LG 지분을 처분하면서 경쟁구도서 멀어졌다. 현재로써 분란의 소지가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상황.

이에 따라 재계서 보는 LG그룹의 향후 승계 시나리오는 구 상무가 장자승계의 원칙에 따라 LG그룹을 이끌고 구본준 부회장이 계열사 가운데 한 곳을 분리계열해 독립하는 내용이다. 이 경우 구본준 부회장은 전자 관련 사업부분을 떼갈 것으로 관측된다. 그동안 구본준 부회장이 전자 부문 계열사에서 활동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구본준 부회장이 전자 사업부문 계열사를 중심으로 독립할 경우 LG그룹내 핵심 계열사 LG디스플레이를 가져갈 수 있을지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현재 LG전자는 LG디스플레이 지분 37.90%를 가지고 있다. 가치로 환산하면 3조원 수준. 이에 따라 인수를 위해 추가적인 재원이 1조원 이상이 필요한 상황이다.

구본준 부회장이 전자부문 외에 상사나 바이오부문 계열사를 중심으로 독립할 가능성도 전망되고 있다. 향후 거취가 명확하지 않은 상황인 셈이다. 이 때문에 구본준 부회장의 계열분리 과정에서 잡음이 발생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LG그룹의 캐시카우 역할을 하는 주력 계열사를 두고 신경전이 생길 수 있어서다. 현 시점에서 승계 작업이 확실하게 마무리 됐다고 보기 어려운 이유도 이 때문이다.

지분율 안심 못해
짧은 경력도 숙제

한편, 구광모 상무는 빠르게 그룹을 장악하려는 움직임이다. 구본무 회장의 3일장을 마치자마자 바로 출근한 것. 지난 23일 LG그룹에 따르면 구광모 상무는 이날 오전 9시께 서울 여의도 트윈타워 서관으로 출근했다. 구광모 상무는 현재 LG전자 정보디스플레이(ID) 사업부장을 맡고 있어 지주사 LG가 있는 동관이 아닌 LG전자가 입주해 있는 서관으로 평소대로 출근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내규정상 부모상 경조휴가는 5일이지만 구광모 상무는 3일장을 치른 뒤 곧바로 출근했다. 발 빠르게 새로운 경영 체제를 구축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구광모 상무의 직급은 아직 LG전자 ID사업부 상무지만 이미 그룹 전반에 대한 경영 현황 파악은 물론 차기 경영구상에 돌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에서는 구광모 상무가 그룹 전반을 조율하며 미래 먹거리 발굴에 집중할 것으로 보고 있다. LG는 전문경영인 체제가 안착돼 있는 만큼 주요 계열사 경영은 6인의 부회장단에게 맡기고 큰 틀에서 미래 비전을 제시할 것이라는 구상이다.

LG그룹을 서둘러 구광모 상무 체제로 선회하고 있는 모습이다. LG는 지난 17일 이사회를 열고 다음달 29일 서울 영등포구 LG트윈타워 지하 1층 대강당에서 임시주주총회를 열기로 결정했다. LG그룹 관계자는 “다음달 29일 임시주총에서 LG의 사내이사 선임안이 통과되면, 그 이후 이사회를 다시 열어 구광모 상무의 직급과 역할을 결정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계열 분리
가능성 솔솔

LG그룹은 그동안 큰 잡음 없이 장자승계의 원칙 아래 계열분리에 성공한 그룹이다. 방계그룹 GS, 아워홈, 희성, LS, LIG, GS, 오성, 성철, 코멧 등 많은 방계 그룹을 계열분리 하면서 큰 잡음없이 승계와 독립을 반복했다.

하지만 현 시점에서 구광모 상무로 승계 작업이 마무리됐다고 보기 어렵다는 시각이 존재한다. 재계의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그동안 LG그룹은 장자승계의 원칙에 따라 별다른 잡음없이 승계작업이 이뤄졌다”면서 “지난해 받은 수술 이후 건강이 악화된 구본무 회장의 별세가 어느 정도 예견돼 있다고 하지만 시기가 갑작스러운 면이 있어 향후 승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눈길이 쏠린다”고 말했다.
 

<donkyi@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사정당국이 불안한 구광모 '왜?'

최근 사정당국이 LG그룹을 들여다보고 있다. 승계과정을 중점적으로 살펴보는 양상이다. 구광모 상무의 긴장감이 고조되는 모습이다. 지난해 말 국세청은 승계 자금줄 역할을 했던 기업들에 대한 세무조사를 실시한 바 있다.

업계에 따르면 국세청은 구광모 회장의 승계 자금줄 역할을 할 것으로 관측되는 판토스의 최대주주 LG상사를 세무조사했다. 판토스 지분은 LG상사가 51%다. 구광모 상무 7.5% 등 오너일가 지분이 19.9% 수준이다. 이 때문에 판토스가 구광모 상무의 승계 자금 창구로 활용될 가능성이 점쳐졌다. 오너일가의 지분율 19.9%는 공정거래위원회의 내부거래 제재 범위를 간발의 차로 피해나가는 수준이었다.

공정위는 내부거래 규제오너일가의 지분율이 상장사의 경우 30% 이상, 비상장사 20% 이상의 경우 제재하고 있다. 판토스의 경우 0.1% 차이로 일감몰아주기 규제를 벗어나 뒷말이 나오기도 했다. 재계에서는 당시 세무조사가 구광모 상무의 승계 과정을 살펴보는 성격이라고 판단하는 시각이 있었다. 

세무조사 대상에는 구광모 상무의 친부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당시 세무조사 결과 LG상사는 711억2900만원의 추징금을 이달 15일 부과 받았다.

특히 검찰의 칼날이 무섭다. LG전자가 23일 채무증권 신고서 정정신고 공시를 통해 탈세혐의 관련 검찰의 압수수색에 대해 투자자들에게 공지했다. 

LG전자는 이날 오후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을 통해 “지난 5월 초 LG그룹 내 일부 개인 특수관계인의 조세 관련 문제로 당사의 지주회사인 LG에 대한 검찰의 압수수색이 있었다”며 “압수수색은 당사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지 않고, LG그룹 내 일부 개인 특수관계인과 관련된 문제로 현재 수사가 진행중인 상황이라 당사도 정확한 사실관계를 파악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향후 사실관계가 파악되고 당사와 관련된 문제점 등이 확인될 경우에 공시 등의 방법을 통해 투자자 분들께 알리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유력 후계자인 구광모 상무를 비롯해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까지 사정당국의 수사망에 걸린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이에 따라 구광모 상무가 그룹을 물려받기까지 험로가 예상되는 상황이다.<호>

 

<기사 속 기사> 구본무 영면한 화담숲은?

구본무 LG 회장이 숲에서 영면한다. 매장 중심의 우리 장묘문화를 개선하고자 했던 고인의 뜻에 따라 재벌총수로는 이례적으로 ‘수목장’의 형태로 잠들게 됐다.

지난 22일 오전 연건동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앞에서 구 회장의 발인이 엄수됐다. 유족들과 LG그룹 임원, 범 LG가 인사, 재계 인사 100여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차분하게 진행됐다. 이후 가족들만 따로 장지로 이동해 비공개로 장례를 치렀다. 

고인의 유해는 화장한 뒤 수목장의 형태로, 생전 즐겨 찾았던 경기도 곤지암 화담숲 인근 지역에 매장된다. 재벌 총수로는 수목장으로 장례를 치르게 되는 첫 번째 사례다.

수목장은 화장한 후 나온 뼛가루를 나무 뿌리에 뿌리거나 별도로 단지에 담아 묻는 자연 친화적인 매장 방식이다. 장례를 위한 공간은 제한되어 있는데 매장이나 납골에 필요한 부지가 늘어나면서 대안으로 등장했다. 수목장은 1999년 스위스서 최초로 도입됐다. 주로 국토가 좁은 일본, 뉴질랜드, 영국 등의 국가에서 새로운 장례문화로 자리 잡았다.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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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분오열’ 의료계 내분 내막

‘사분오열’ 의료계 내분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뚝심인가, 고집인가?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한 대통령의 뜻이 확고해도 너무 확고하다. 겉으로는 유연한 대처를 언급하면서 ‘2000명’이라는 수치는 굽히지 않을 기세다. 강 대 강 대치에 나섰던 의료계는 우왕좌왕하는 모양새다. 의료계 내부의 의견을 모으는 일도 쉽지 않아 보인다. <일요시사>와 인터뷰한 지방의대 A 교수는 의과대학 정원 확대를 밀어붙이는 윤석열정부의 강경 기조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정규군은 수뇌부만 처리하면 와해되기 쉽다. 하지만 현재 의료계는 게릴라 방식으로 대응 중이다. 주동자를 찾기 어렵고 실제 주동자도 없다. 전공의, 의대생 모두 조직의 통제하에 움직이는 게 아니라 본능에 따라 행동하고 있다. 윤정부 입장에서는 협상 대상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일괄 협상에 따른 일괄 타결은 어렵다고 본다.” 2월 이후 평행선만 실제 의료계는 대학의사협회(의협),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의대협) 등 여러 단체가 의대 정원 확대 정책에 개별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의대 정원 확대 반대’를 큰 틀로 하되 대응 방식이나 세부적인 요구사항은 각각 다른 상황이다. A 교수의 말대로 의료계는 현재 단일협의체가 없다. 협상테이블이 마련된다 해도 앞에 대표로 나설 사람이 없는 셈이다. 과거 의정갈등이 일어났을 때 주로 의협이 나서서 의료계 입장을 전달하고 대응을 이끌었다면 현재는 각개전투를 진행하고 있다. 이미 정부는 의협의 대표성에 대해 의문을 표한 상태다. 정부는 지난 2월 말 의협 대신 ‘대표성을 갖춘 협의체’를 구성해 의대 정원 확대 등에 대해 대화하자고 의료계에 요청했다. 의협이 전체 의사들의 대표성을 띠기 어렵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다. 당시 주수호 의협 비상대책위원회 언론홍보위원장은 “의협 회원엔 전공의·봉직의 등 모든 직역이 포함돼있고 모든 직역이 배출한 대의원 총회 의결을 거쳐 만들어진 조직이 비대위”라며 “정부가 의협의 대표성을 부정하는 이유는 내부 분열을 조장하기 위함”이라고 반발했다. 의협은 의료법에 근거해 모든 의사가 가입하는 법정 단체지만 개원의를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번 의정갈등 국면서 가장 선봉에 선 단체는 전공의가 모인 대전협이 꼽힌다. 전공의가 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해 병원을 떠나는 등 집단 강경 투쟁에 나서면서 의정갈등에 불이 붙었다. 의대생은 집단 휴학으로 힘을 실었다. 유급 마지노선에 이른 대학들이 수업을 재개했지만 의대생은 돌아올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집단사직에 나선 전공의가 여전히 버티고 있는 상황서 의대생의 복귀 가능성 역시 낮다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대통령실 1년 유예안 일축하면서도 ‘2000명 정원’ 논의 가능성 제시해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기준 학칙에 따른 형식적인 신청 요건을 지킨 의대생의 휴학 신청은 누적 1만242명으로 전체 의대 재학생 대비 54.5% 규모에 이른다. 의대생들의 집단 휴학과 수업 거부는 지난 2월부터 시작됐다. 대학 사이에선 이달 중순이 지나면 여름방학까지 총동원해도 유급을 막을 수 없다. 의대는 특정 수업서 3분의 1 또는 4분의 1 이상을 결석하면 낙제(F) 처리되고 F가 하나라도 나올 경우 유급이 되도록 학칙을 세워둔 곳이 많다. 전공의의 집단사직으로 병원 업무가 마비되고 일부 의료진에 업무가 과중되는 이른바 ‘의료대란’이 벌어졌다. 여기에 의대생의 집단 휴학은 의사 수급 부족 현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의료현장에 구멍이 생기면서 의사를 찾지 못해 환자가 사망하는 ‘응급실 뺑뺑이’ 사건도 일어났다. 문제는 정부의 태도다. 지난 2월6일 2025학년도 의대 입학 정원을 5058명으로 현행보다 2000명 늘리겠다고 발표한 이후부터 현재까지 요지부동 상태다. 정부는 2035년까지 1만명의 의사 인력을 확충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2006년 이후 19년 동안 동결됐던 의대 정원 확대를 예고한 것이다. 당시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는 발표 당시 의료계와 소통한 결과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지난해 10월26일 ‘의대정원 확대 추진계획’을 발표한 이후 40개 대학으로부터 증원 수요와 교육역량에 대한 자료를 받았고 현장점검을 포함한 검증을 마쳤다고 밝혔다. 의료계를 비롯해 사회 각계각층과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했다는 점도 언급했다. 특히 정부는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강조했다. 언론사 여론조사 등에서 의대 정원을 늘리는 문제에 대해 국민 10명 가운데 8명 이상이 ‘필요하다’고 응답한 것을 의미있게 언급했다. “흔들림 없는 의료개혁을 완수하겠다”는 정부의 입장에 국민의 응원을 지지대로 삼은 것이다. 요구 다른 의사단체 윤석열 대통령의 의지는 더 강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일 ‘국민께 드리는 말씀’ 대국민담화서 “역대 정부들이 9번 싸워 9번 모두 졌고 의사들의 직역 카르텔은 더욱 공고해졌다”며 “이제는 결코 그런 실패를 반복할 여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2000명이라는 숫자는 정부가 꼼꼼하게 계산해 산출한 최소한의 증원 규모”라며 “이를 결정하기까지 의사단체를 비롯한 의료계와 충분하고 광범위한 논의를 거쳤다”고 설명했다. 연구 결과를 들어 그 배경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윤 대통령은 “정부는 국책연구소 등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연구된 의사 인력 수급 체계를 검토했다. 수요 측면서 저출산 고령화와 같은 인구구조의 변화, 만성질환의 증가와 같은 질병구조의 변화, 소득 증가에 따른 의료수요 변화까지 반영했다”며 “어떤 방법론이더라도 지금부터 10년 후인 2035년에는 자연 증감분을 고려하고도 최소 1만명 이상의 의사가 부족하다는 결론은 동일하다”고 말했다. 의대 정원 확대 시기에 대해서도 정부는 가차없는 태도를 보인다. 대통령실은 지난 8일, 의협이 제안한 의대 증원 1년 유예안에 대해 “정부는 그간 검토한 바 없고 앞으로도 검토할 계획도 없다”고 밝혔다. 앞서 박민수 복지부 차관이 “내부 검토는 하겠고 현재로서 수용 여부를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내놓은 답변서 더 강경해진 입장이다. 대통령실은 1년 유예안을 받을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면서도 “만약 의료계서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근거, 그리고 통일된 의견으로 제시한다면 논의할 가능성은 열어놓고 있다”며 “열린 마음으로 임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팔짱 낀 정부 공은 의료계로 일각에서는 정부는 초지일관 원론적인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현재로선 ‘2000명’이 정부와 의료계 간 대화의 장벽이 되고 있다. 정부는 2000명이라는 수치를 꿋꿋하게 고수하고 의료계는 2000명 백지화가 대화의 선결 조건이라는 뜻을 굽히지 않는 중이다. 정부든 의료계든 어느 한쪽이라도 구부려야 맞닿는 법인데 평행선만 그리는 모양새다. 이 와중에 의료계는 내분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정부가 의료계에 요구하는 ‘통일된 의견’을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새 회장을 선출한 의협이 그 중심에 있는 상황이다. ‘강성’으로 꼽히는 임현택 의협 회장 당선인과 의협 비대위가 엇박자를 내고 있고 대전협의 박단 비대위원장도 의협 비대위와 갈등 조짐을 보이는 중이다. 현재 의협은 비대위원장과 차기 회장이 공존하는 상태다. 의협은 지난달 26일, 임 당선인을 차기 회장으로 선출했다. 임 당선인은 결선투표서 65%의 지지를 얻어 당선됐고 임기는 다음 달 1일부터다. 임 당선인의 등장으로 의협의 대정부 투쟁 수위가 올라갈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됐다. 임 당선인은 의대 정원 증원 철회를 비롯해 대통령의 사과와 책임자 파면을 요구하는 등 다른 의사단체에 비해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마찰음이 나온 건 ‘단일대오’를 구성하는 과정에서였다. 의협 비대위는 지난 7일, 기자회견서 전의교협, 대전협, 의대협 등과 함께 합동 기자회견을 이번주 안에 열겠다고 예고했다. 하지만 임 당선인이 이런 움직임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의협 비대위, 차기 회장·전공의 회장 갈등 삐걱거리는 단일대오에 대화 공전 가능성도 의협 회장직 인수위원회는 의협 비대위와 대의원회에 공문을 보내 임 당선인이 김택우 현 비대위원장 대신 의협 비대위원장직을 수행할 수 있도록 협조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는 ‘한 지붕 두 가족’ 상황의 의협 창구를 단일화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대전협 박 위원장도 의협 비대위와 불협화음을 내고 있다. 박 위원장은 자신의 SNS에 “의협 비대위 김택우 위원장, 전의교협 김창수 회장과 지속적으로 소통하고 있지만 합동 브리핑 진행에 합의한 적은 없다”고 적었다. 합동 기자회견은 일단 취소된 상태다. 박 위원장과 임 당선인의 갈등도 관심사다. 임 당선인은 지난 4일, 윤 대통령과 박 위원장의 비공개 만남에 불만을 드러냈다. 의협 비대위는 윤 대통령과 박 위원장의 만남을 ‘의미 있다’고 평가했지만 임 당선인은 SNS에 ‘내부의 적’을 운운하며 박 위원장을 강도 높게 비난하는 듯한 글을 남겼다. 박 위원장은 이 같은 보도 내용을 게시글에 공유하며 ‘유감’이라고 적었다. 전의교협은 의대 비대위에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다. 전의교협은 전국 40개 의과대학 교수협의회로 구성된 단체다. 김창수 전의교협 회장이 의협 비대위에 합류하면서 의료계 단일대오 구성이 빨라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통일된 의견을 내놓을 단일협의체 구성 속도에 따라 의정갈등의 타결 가능성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의협 비대위를 중심으로 단일대오를 구성하려던 시도가 임 당선인과 박 위원장의 행보로 삐걱거리면서 의료계 상황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처지가 됐다. 여기에 협상테이블이 마련돼 정부와 의료계의 대화가 이뤄진다 해도 합의까지 가는 데는 하 세월이 걸릴 것이라는 의견이 만만찮다. 입장차가 그만큼 첨예하다는 뜻이다. 타결까지 첩첩산중 일각에서는 정부와 의료계 모두 환자에 대한 배려는 뒷전에 두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월 이후 두 달 넘게 갈등이 계속되면서 환자들은 불편을 겪고 있고 일부 의료진은 업무 과중으로 그로기 상태에 빠졌다. 전공의가 떠난 병원은 매일 막대한 손해를 입고 있다. 정부와 의료계의 10번째 갈등이 어떤 결론으로 끝나느냐에 따라 의료계 지각변동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