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1월20일 취임을 앞둔 미 대통령 당선인 오바마의 행보가 빨라지고 있다. 오바마는 대외 정책, 한미 FTA, 대북 정책 등 각종 현안과 관련해 선거를 전후해 자신의 견해를 분명히 밝혔다. 각종 정책과 관련 보수적이면서도 상당히 진보적인 면도 보이고 있어 보수 일변도인 우리 정부의 정책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 신선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번 대선과정에서 오바마 진영의 외교안보공약을 총괄 지휘한 수전 라이스 전 국무부 차관보는 향후 미 차기정부의 외교안보정책을 ‘Before Bush, After Bush(BBAB정책)’로 정의했다. 오바마 차기정부의 대외정책은 부시 이전의 클린턴 행정부의 정책으로 되돌아가고, 부시 이후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것이다.
오바마 정책은 부시 8년간의 정책을 철저히 부정하는 데서 시작하겠다는 것이다. 오바마 차기행정부의 대외정책이 나아갈 방향으로 미국 대외정책의 제1목표를 ‘테러와의 전쟁’으로 동일하게 규정했다.
오바마는 지난 7월15일 워싱턴에서 ‘새로운 세계에 대한 새로운 도전’이라는 연설을 통해 차기 미 행정부의 외교안보정책 방향을 ▲이라크전쟁의 책임있는 종료 ▲알 카에다, 탈레반 전투의 종식 ▲테러집단, 불량국가로부터 핵안전 확보 ▲진정한 에너지안보의 확보 ▲21세기 도전에 맞선 동맹관계의 재구축의 다섯 가지로 정리했다. 공산주의가 서유럽으로 확산되는 것을 막았던 마샬플랜과 같이 국제테러망을 분쇄하기 위해 ‘공유된 안보동반자프로그램(SSPP)’을 신설하고 2012년까지 대외원조액을 5백억 달러로 배증하여 실패국가들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지원한다는 구상이다.
오바마 대외정책…우방국과 협력
문제는 미국내 경제사정이 좋지 않기 때문에 우방국들에게 이 부담을 공유하는 방향으로 나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미국 차기행정부의 외교안보정책에서 주목되는 것은 바로 아시아정책이다.
지난 8월7일 발표된 민주당 정강정책은 아시아의 안정과 번영을 위해 한국, 일본, 호주 및 인도와도 협력을 강화하며, 중국에 대한 포용정책을 통해 기후변화와 같은 공동관심사에 협력하고 개방과 시장경제화를 더욱 촉진시킨다는 내용을 담았다. 오바마 당선인은 중국을 활용해 아시아지역의 번영과 협력을 위한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해갈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최근 미국의 금융위기와 관련해 중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국가들이 수출위주의 정책에서 내수도 중시하는 정책을 통해 미국과 아시아 간 공정한 교역을 취하자는 입장이다. 아시아에서 보다 효과적인 지역 틀이 필요하므로 중국과 일본을 동시에 관리한다는 차원에서 새롭고 항구적인 아시아 집단안보체제를 만들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오바마 당선인측은 한미관계의 강화가 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의 초석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전시작전통제권의 한국군 이양, 산재했던 미군기지의 2개 허브기지로의 이전 재배치 등 재조정 협의를 마친 상태이다. 올해 들어 주한미군의 감축 동결(2만5천~2만8천5백명)과 주둔기간의 연장 조치(1년~3년)가 이루어졌다.
오바마 당선인이 이라크 미군을 조기에 철군하면서 아프간전쟁에 몰두하기로 함에 따라 우리 정부에 ‘비전투 지원’을 요청할 가능성이 있다. 오바마 당선인은 국제협조시스템을 존중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 정부가 파병을 원치 않을 경우 이를 강요하기보다는 테러와의 전쟁에 드는 비용의 분담과 국제테러망의 분쇄를 위한 SSPP 참가, 경제원조의 제공 등 경제적 부담을 요청해 올 가능성이 높다.
우리 정부로서도 공적개발원조(ODA)의 증액을 포함해 ‘기여외교’를 강조해 왔기 때문에 이러한 요구를 거부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이명박 정부는 기본적인 외교방향을 한미동맹의 강화 및 한·미·일 안보협력의 복원으로 잡았다. 하지만 한미동맹은 미국산 수입쇠고기 파동을 거치면서 당초 약속했던 ‘21세기 전략동맹 선언’을 차기 행정부로 미룬 상태이다.
또 한미 FTA 문제가 한미간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 당선인은 선거기간 동안 여러 차례에 걸쳐 자동차 추가협상이 없는 한미 FTA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었다. 오바마 당선인은 대통령 후보 당시 여러 차례에 걸쳐 한미 FTA를 결함 있는 협정이라고 개정을 요구해왔다. 대선 당시 토론회를 통해 오바마 당선인은 한국에서 매년 70만대의 자동차를 미국에 수출하는데 미국은 5천대를 한국에 수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었다. 오바마 당선인의 발언이 대선 후보로서 유권자의 표를 의식한 발언이라 해도 지속적으로 발언해 온 이상 이를 한 번에 바꾸지는 않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향후 양국간 갈등 요소가 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현재 행정부뿐만 아니라 미 상하 양원 모두 보호무역주의 성향이 있어 한미 정부간 새로운 관계 정립에 있어 이같은 미국측의 보호무역주의 정책에 대한 우리측과의 갈등 조정이 필요할 것으로 판단된다.
오바마정부 FTA 문제 최대 걸림돌
이태식 주미대사는 지난달 국정감사에서 “2010년에야 한미 FTA가 본격 논의될 것”이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한국 국회가 설혹 한미 FTA를 먼저 비준하더라도 이 협정에 대한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자 진영의 부정적인 시각은 크게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게 워싱턴 통상 관계자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미국의 경제난이 가중되면서 오바마 당선자 정부가 미국의 국익을 최우선적으로 내세우는 통상 정책을 취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잭 프리처드 한미경제연구소(KEI) 소장은 지난 10일 워싱턴DC 주재 한국 특파원들과의 간담회에서 “한미 FTA는 차기 미 정부가 시급히 처리해야 할 우선 과제로 설정해 놓고 있지 않다. 차기 미국 정부의 실무자들이 이 협정을 검토한 뒤 한국측에 재협상을 요구할지 여부 등을 결정해 오바마 당선자에게 보고하는 과정을 거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프리처드 소장은 “오바마 당선인이 한미간 자동차 교역 불균형 문제 등을 들어 한미 FTA에 반대하는 입장을 밝혔으나 집권한 뒤에는 이 협정을 경제뿐 아니라 한미 동맹 관계 등 다원적인 시각에서 재검토하게 될 것이다. 경제 회복을 최우선 과제로 상정해놓고 있는 오바마 당선자 정부에서 협정 비준 문제가 조기에 해결될 것으로 기대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오바마 당선자 캠프 내 설치된 한반도정책팀에서 활동한 고든 플레이크 맨스필드 태평양센터소장도 “오바마 당선자가 한미 FTA 내용을 비판한 것을 단순한 선거 운동의 일환이라고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오바마 당선자 진영의 그 어느 누구도 아직 한미 FTA의 재협상 얘기를 꺼낸 사람이 없다. 한미 양국은 이 협정이 한국 국회뿐 아니라 미국 의회에서 비준될 수 있도록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오바마 정부가 출범한 이후 단기간 내에 국제 무역 질서 재편 작업이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점도 한미 FTA의 비준 전망을 어둡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현재 도하개발아젠다(DDA) 협상이 답보 상태에 빠져 내년 중에 이 협상이 진전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또 오바마 당선자는 후보 시절 토론회 등에서 “한국은 수십만대의 자동차를 미국에 수출하는 반면 미국이 한국에 파는 자동차는 4천~5천대도 안 된다”면서 한미 FTA가 불공정한 협정이라고 주장해왔다.
오바마 당선자측 관계자들은 이 협정의 어느 부분을 어떻게 수정해야 할지 구체적인 아이디어를 내놓진 않고 있다. 워싱턴의 한 통상 관계자는 “오바마 당선자가 자동차 문제를 제기했으나 미국의 관심은 한국 시장 진출 확대가 아니라 미국 시장 방어에 있다”고 설명했다.
이같이 미국 자동차 공식 수입업체들이 한국 시장에서 미국차 판매가 저조한 이유를 한미간 불공정 무역 때문이라고 지적한 오바마 당선인의 발언으로 한미간 무역 분쟁의 단초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미국 크라이슬러 브랜드의 공식 판매업체인 크라이슬러코리아의 한 관계자는 11월 11일 “한국 시장에서 미국 브랜드의 판매가 저조한 원인을 양국간 불공정 무역으로 돌리는 발언이 계속될 경우 자칫 소비자들의 감정을 자극해 미국차 판매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올해 9월까지 작년에 비해 약 14%의 판매 신장률을 기록했는데 이같은 기조의 발언이 반복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기존 고객에 대한 서비스를 강화하고 경쟁력 있는 신차를 통해 새로운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노력할 따름이다. 한미간 정치 및 외교적인 이슈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지만 양국이 원만한 협상을 통해 모두에게 장기적으로 도움이 되는 결과를 이끌어내기를 바란다”고 주장했다.
GM코리아측도 오바마의 발언에 대해 같은 입장을 표명했다. 수입차 시장 형성 초기인 1994년에 49.2%의 점유율을 기록했던 미국 브랜드 차는 1998년까지 유럽 브랜드와 경합하다가 1999년을 기점으로 유럽 브랜드에 밀리기 시작하면서 점유율이 현저히 축소됐다. 렉서스를 필두로 일본 브랜드가 한국 시장에 잇따라 진출하자 점유율이 줄어들면서 작년에는 11.7%까지 하락했으며 올해 들어서는 10월말 기준으로 11.3%까지 하락했다. 미국 ‘빅3’ 자동차회사인 GM과 포드, 크라이슬러는 현재 경기침체와 고유가로 매출이 급격하게 줄어들면서 손실이 급증하고 있는 상황이다. 오바마 당선인의 구상은 연비가 우수한 차세대 자동차 개발에 한국과 일본보다 과감한 투자를 통해 자동차 종주국의 지위를 회복하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오바마 차기행정부가 내년 1월 출범할 때 가장 큰 변화가 예상되는 분야는 대북정책이다.
오바마 당선인은 후보시절 여러 차례에 걸쳐 북한 정책과 관련해 조건 없는 대화와 직접 외교를 강조했었다. 양자 및 다자 대화를 통해 북한을 국제무대로 이끄는 동시에 비핵화와 관계정상화, 한반도 냉전체제의 해체를 추구할 가능성이 높다.
오바마 당선인은 지난 5월 후보 시절 기자간담회를 통해 “우리의 적들과도 강력한 외교를 주도해 나갈 것이다.
지도자들을 만날 것이며 준비는 하되 조건없이 만날 것이다.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를 명료하게 설명할 것이다. 북한과 대화를 하지 않았던 게 북한의 핵개발로 이어졌기에 대화를 해야만 하겠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6자회담은 불완전하기는 하지만 적어도 진전을 이뤄냈고 북한으로 하여금 (무기를) 내려놓게 했다”고 밝혔다.
“강력한 외교 주도할 것” 대북정책 대변화 예고
자누지 한반도팀장은 10월 2일 한 모임에서 “오바마는 북한과 관계 개선을 위해 고위급 협상을 포함해 모든 외교적 대안을 고려하고 있다. 6자회담의 틀 안에서 적극적인 양자 회담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밝힌 바 있다. 페리 전 국방장관이나 키신저 전 국무장관의 대북 특사설도 흘러나오고 있다. 오바마 차기행정부는 북한 주민의 인권문제와 관련해 비교적 탄력적인 태도를 취할 가능성이 높다.
탈북자문제와 관련해 오바마 당선인은 지난 7월18일 ‘북한자유를 위한 한인교회연합’에 보낸 지지 서한에서 “탈북 난민들의 절망적인 상황은 반드시 해결해야 할 부당한 권리침해다. 그들이 강제송환 돼 처벌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고 그들은 국제법에 따라 난민으로 보호받아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조셉 바이든 부통령 내정자는 북한 인권, 탈북자 문제에 대해 개선책을 구상하고 있음을 밝혔다. 그는 지난 9월24일 자유아시아방송(RFA)과 가진 인터뷰에서 북한을 점진적으로 인권과 안보, 무역에서 국제 규범을 준수하도록 북돋우는 전략과 조화 속에서 인권과 탈북자정책이 이뤄져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따라서 오바마 차기행정부는 북핵협상이 진행되고 있는 도중에는 급격한 인권정책을 취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