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테마기획② 구조조정 한파 뛰어넘기-재벌들 한파극복 사투

짙어지는 IMF 먹구름 “해고만은 제발…”

재계가 초비상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불똥이 국내 실물경제로 옮겨 붙은 탓이다. 산업 현장 곳곳에서 들려오는 공장가동 중단 소식은 더 이상 새롭지 않다. 임금삭감에 희망퇴직, 유·무급휴직 얘기가 나오더니 급기야 감원, 해고 등 인력 구조조정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10년 전 덮쳤던 ‘검은 그림자’가 다시 드리우고 있는 셈이다. 각 기업은 제2의 IMF 사태를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갈 때까지 가더라도 최소한 ‘사람’만은 버리지 않겠다는 복안이다. ‘구조조정 한파’를 뛰어넘기 위한 재계의 눈물겨운 사투를 조명해 봤다.


GM대우자동차는 오는 12월 부평과 군산, 창원 등 전국 공장 가동을 일시적으로 중단한다. 해외시장 수요 급감에 따라 생산라인 조절로 재고량을 해소하기 위해서다. 현대·기아차그룹은 이미 지난달부터 연말까지 미국 앨라배마 공장 가동을 부분적으로 중단하기로 했다. 쌍용차도 생산량 조절을 위해 일부 공장가동을 사실상 중단했다.

자동차업계가 글로벌 경기침체 직격탄을 맞았다. 판매 부진이 계속되자 생산 중단, 감산 등의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는 것. ‘구조조정 회오리’는 자동차업계뿐만 아니라 금융, 유통, 제조 등 전 산업으로 번지는 양상이다. 물론 수요가 줄어들면서 감산에 들어간 것이다.
LG디스플레이는 7월부터 생산량을 10% 가량 축소했다. 하이닉스는 국내와 미국, 중국 소재 라인 4개를 9월부터 연말까지 단계적으로 폐쇄하고 있다. SK에너지와 LG화학, 롯데대산유화 등 석유화학업계도 전체적으로 생산공장의 가동률을 10∼30% 낮춘 상태다. 포스코와 동부제철, 현대제철, 동국제강 등 철강업계도 제품 생산을 줄이기로 결정했다.
문제는 ‘감원 한파’다.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 태풍이 IMF 이후 10년 만에 다시 가시화되고 있다. ‘제2의 IMF가 다가오고 있다’는 분석도 여기서 힘을 얻는다.
‘감원 먹구름’이 가장 짙게 드리운 곳은 금융권이다.
하나대투증권은 최근 장기근속자를 대상으로 1백명 정도의 희망퇴직 신청을 받기로 했다. SC제일은행은 지난 9월부터 희망퇴직 신청을 실시해 직원 1백90여명이 둥지를 떠났다. 신한은행, 농협, 씨티은행 등 다른 금융사들도 감축 대열에 조만간 들어설 것으로 보인다.
 다른 업종도 예외가 아니다.
쌍용차는 사내 협력업체 직원을 상대로 희망퇴직을 받고 있으며, 금호타이어는 팀장급 이상 장기근속자를 대상으로 연봉 1백%까지 지급을 조건으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고 있다. 이외에도 미분양 물량이 쌓이고 있는 건설업계와 실적 부진에 시달리는 여행·유통업계도 감원바람이 닥친 상황이다.
재계 관계자는 “실물경제 악화로 경영 상황도 악화되면서 인력 부담이 커지고 있다”며 “감산이 결국 감원으로 이어져 금융권에서 시작된 사실상의 정리해고 방안인 희망퇴직 등 인력 구조조정이 갈수록 전방위 업종으로 확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전망했다.
사정이 이렇자 각 기업들은 최소한 제2의 IMF 사태를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대부분의 대기업들이 “갈 때까지 가더라도 인위적인 구조조정은 없다”고 입을 모으는 것도 같은 이유다.

국내 실물경제 위기 고조…생산중단, 감산 등 확산
희망퇴직, 유급휴직 등 자구책으로 해직 사태 차단
최후의 보루 총동원  “짜고 또 짠다”
임금 삭감 등 쥐어짜기식 초긴축 경영

주우식 삼성전자 부사장은 지난달 24일 기업설명회(IR)에서 “운영 효율을 강화하되 특단의 구조조정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현대·기아차그룹 측도 “소비심리 위축으로 감산 등은 부분적으로 추진하고 있지만 아직 인위적 구조조정은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대신 고강도 자구책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가동해 불황을 극복한다는 복안. 우선 자발적인 임금 삭감이 눈에 띈다.
우리금융그룹은 계열사의 임원 급여를 10% 반납하기로 했다. 기업은행 역시 은행장을 비롯한 임원들의 연봉을 15% 이상 삭감하는 자구안을 내놓았다. 국민은행은 지주회사 회장, 사장과 은행장 연봉은 20%, 나머지 임원은 10%씩 깎기로 했다. 하나금융과 신한금융도 전 계열사 임원의 급여를 10∼20%씩 자진반납 형식으로 줄이기로 했다. 금융감독원은 앞서 은행권을 압박하기 위해 임금 삭감 카드를 먼저 빼들었다. 금감원장 30%, 부원장 및 부원장보 등 본부장 10% 등 경영진의 내년 연봉을 자진 삭감해 지급받기로 한 것.
김종창 금융감독원장은 “경제 불안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국민들과 아픔을 공유하고 현 위기상황을 함께 극복하겠다는 의지를 다지기 위해 임금 자진 삭감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근로자들도 임금을 동결하는 등 고통분담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
KT 노사는 지난 11일 어려운 경영상황을 인식하고 범국가적 경제위기 극복노력에 동참하기 위해 금년 임금을 동결하기로 했다. KT는 1998년, 2001년, 2006년에도 임금을 동결한 바 있다.
대한항공 노조도 지난 8월 1999년 노조 설립 이후 최초로 자발적으로 임금 동결을 받아들였고, 이 영향으로 아시아나항공 노조도 지난 9월 올해 임금을 동결하기로 잠정합의했다.
쌍용양회 노조는 3년 연속 임금 동결에 합의했다. 쌍용양회 노사는 지난 10월 임금을 동결하고, 올 연말까지 비상경영 체제를 가동하기로 했다. 한광호 쌍용양회 노조위원장은 “어려운 여건을 감안해 노사를 떠나 모두가 고통을 분담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인력 구조조정의 마지막 보루로 ‘유·무급 휴직제’를 도입한 기업도 늘고 있다.
지난 7월 관광객 피격 사건으로 중단된 금강산 관광 여파로 난관에 빠져 있는 현대아산은 직원들을 교대로 재택근무를 시킨데 이어 유급휴가제를 도입했다. 이에 따라 현대아산 임원을 제외한 1백65명의 전 직원은 의무적으로 연말까지 20일의 휴가를 가야 한다. 이들은 이 기간 동안 정상월급의 70%의 급여를 받는다.
쌍용차는 감산, 희망퇴직과 함께 유급 휴직 신청도 받고 있다. 정규직원 및 사내 협력업체 직원(비정규직) 3백50여명이 대상이다. 현대아산과 마찬가지로 이 기간 동안 월급은 보통 때의 70%만 받는다.
쌍용차 측은 “자동차 판매가 부진한 데다 신차 출시마저 내년 하반기로 잡혀 있어 감산, 희망퇴직, 유급 휴직 등이 불가피했다”며 “그러나 감원을 하지 않기 위해 유급 휴직을 도입했기 때문에 강제 인력 구조조정은 없다”고 못박았다.

일부 항공사와 대형 여행사를 빼고 거의 모든 여행사에선 무급휴가가 시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들의 ‘쥐어짜기’식 초긴축 경영도 잇따르고 있다. 임직원들의 골프 금지, 판관비 등 업무추진비 삭감, 해외출장 억제, 조명·전원 끄기 등 원초적인 비용절감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 특히 ‘자린고비’식 경비 절감에 돌입한 기업이 적지 않다.
아시아나항공은 지난 1월부터 기내 서비스용 카트를 경량화 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카트 무게를 줄여 연료를 절감하겠다는 생각이다. 아시아나항공은 승객용 음용수는 물론 화장실용 물까지 줄였다.
하이닉스는 지난 9월부터 직원들에 대한 보너스, 인센티브를 비롯해 매달 지급하던 문화상품권까지 일시적으로 지급을 중단했다.
SK그룹은 지난달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기로 했던 최고경영자(CEO) 세미나를 돌연 취소했다. 해외 회의가 낭비란 계산에서다. SK그룹은 올 하반기 해외에서 열기로 했던 1∼2개의 다른 임원회의도 국내에서 열기로 했다.

삼성전자는 임직원간 골프 금지령을 내렸다. 일부 계열사엔 경조사비, 식대비 등 복지비용 축소와 해외 출장 자제령도 떨어진 것으로 전해진다. LG전자도 국내 출장의 경우 철도 등 대중교통을 이용하도록 직원들에게 독려하고 있다.
현대·기아차그룹은 서울 양재동 본사 주요 에스컬레이터의 가동을 중단했다. 실내조명도 최소 조도로 낮췄다. SK텔레콤도 근무 시간 외에 사무실 전등이 꺼지는 자동 시스템을 설치했다.
재계 관계자는 “글로벌 금융위기 불똥이 국내 실물경제로 옮겨 붙은 만큼 다양한 비용절감 방안들이 쏟아지고 있다”며 “각 기업들은 IMF 당시처럼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만은 피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1990년대 말 IMF 당시 수많은 가장들이 직장을 잃은 구조조정 삭풍을 겪어야 했다. 이 지경을 우려하고 있는 기업들은 여러 자구책으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는 형국. 겹겹의 우산으로 대규모 감원 폭풍을 언제까지 막을 수 있을지 불안한 요즘이다.
 

당신의 해고 경험은?
10명 중 7명 “아찔했다”


직장인 10명 중 7명은 회사 측의 일방적 해고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것으로 조사됐다.
취업포털 커리어가 직장인 1천2백2명을 대상으로 지난 10월28일부터 31일까지 설문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72.0%가 “직장생활을 하면서 회사 측으로부터의 일방적 해고를 직접 경험했거나 주위에서 당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이들 중 직접 해고를 당한 직장인은 38.6%로 나타났으며, 비정규직(48.1%)이 정규직(35.5%)보다 높았다. 해고 사유(복수응답)는 ‘구조조정’이 39.7%로 가장 많았고, ‘상사와의 마찰’(29.8%)과 ‘업무성과 부진’(25.4%)이 뒤를 이었다. 이어 ‘계약만료’(18.5%), ‘해당사업(직무) 종료’(9.2%), ‘질병 발병 등 건강문제’(5.1%), ‘결혼·임신 등 가정사’(4.8%), ‘회사에 대한 나쁜 소문의 근원’(3.9%), ‘사내 루머’(3.7%) 등의 순이었다.
주로 진행된 해고 방법에 대해선 59.7%가 ‘권고사직’이라고 답했다. 또 ‘자발적 퇴사 유도’(21.4%), ‘해당 직무(부서) 소멸’(7.7%), ‘희망퇴직’(7.3%) 등도 있었다.
해고를 처음 통보 받았을 때부터 실제 퇴사까지 소요된 기간은 평균 15.9일로 집계됐다. 정규직(17.4일)이 비정규직(11.9일)보다 평균 5.5일 길었다.
한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실업률이 내년 상반기 3.7%로 확대돼 고용사정이 더 악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취업자 증가폭은 정부 목표 20만명의 절반 수준인 10만명 내외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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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법률수석 부활 속셈

‘갑자기?’ 법률수석 부활 속셈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4·10 총선이 범야권의 승리로 끝났다. 집권여당은 참패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집권 3년차인 윤석열정부는 국정운영의 동력을 잃게 생겼다. 레임덕을 넘어 데드덕이라는 표현까지 나오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정치 인생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식물 대통령’으로 전락한 윤 대통령의 다음 행보는 엇일까? 속사정이야 어떻든 숫자만 놓고 봤을 때 이견이 없는 결과가 나왔다. 범야권은 192석을 얻어 ‘반윤 거야’ 전선을 형성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161석, 민주당의 위성정당 더불어민주연합 14석, 조국혁신당 12석, 개혁신당 3석, 새로운미래 1석, 진보당 1석 등을 모두 합친 수치다. 국민의힘은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 의석(18석)을 포함해 108석을 얻는 데 그쳤다. 완벽한 참패 식물 대통령 선거를 진두지휘한 각 당 대표의 희비도 엇갈렸다. 사법 리스크를 안고도 선거를 승리로 이끈 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정국의 주도권을 잡게 됐고 국민의힘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정치 생명에 큰 타격을 입었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은 실제 선거를 뛴 선수보다 더 큰 영향을 받게 됐다. 윤 대통령은 임기 내내 의회 주도권을 야당에 내준 상태로 정국을 운영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한다고 해도 여당의 이탈표를 걱정해야 한다. 총선이 끝나면서 권력의 무게추가 당으로 기울어지는 모양새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또 이미 거부권을 9차례나 사용한 이력이 민심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각 당은 이번 총선서 ‘정권 심판론’을 정면에 내세웠다. 민주당은 윤석열정부 심판, 국민의힘은 ‘이조(이재명-조국) 심판’ 프레임으로 유권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했다. 국민은 범야권에 의석을 몰아주면서 정부 심판의 손을 들어줬다. 윤석열정부에 대한 중간평가에 ‘낙제점’을 준 것이다. 윤석열정부는 당장 밀어붙이고 있던 정책에 차질을 빚게 됐다.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을 골자로 하는 의료개혁이 대표적이다. 윤 대통령은 총선 패배 메시지를 통해 의료개혁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드러냈지만 추진력에 대해서는 의문부호가 붙는다. ‘카르텔 타파’라는 국정기조도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 윤 대통령은 지난 16일, 총선 결과와 관련해 첫 육성 메시지를 내놨다. 총선 참패 후 엿새 만이다. 민정수석실 폐지 대선공약 민심 청취 명분 부활 예고 윤 대통령은 “총선을 통해 나타난 민심을 우리 모두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올바른 국정의 방향을 잡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음에도 국민들께서 체감하실 만큼의 변화를 만드는 데 모자랐다”며 “큰 틀에서 국민을 위한 정책이라 해도 세심한 영역서 부족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윤석열정부서 추진하고 있던 개혁은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윤 대통령은 “노동, 교육, 연금 등 3대 개혁과 의료개혁을 계속 추진하되, 합리적인 의견을 더 챙기고 귀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국회와의 긴밀한 협력을 말했지만 야당을 명시적으로 언급하진 않았다. 윤 대통령의 메시지에 야권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민주당 홍익표 원내대표는 윤 대통령의 메시지에 대해 “개탄스럽다”며 “오만, 독선, 불통 정치를 계속하겠다는 마이웨이 선언”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이번 총선서 확인한 민심은 국정기조 전면 전환과 민생경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할 방안을 제시해 달라는 주문”이라며 “윤 대통령은 국정 실패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민생경제의 잘못을 인정하고 실질적 대책과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이 총선 패배에 대한 목소리를 내면서 이후 내놓을 쇄신안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미 국무총리와 대통령비서실장 인선과 관련한 하마평이 나오는 중이다. 지난 17일에는 대통령실서 국무총리로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을, 비서실장에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을 고려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일단 대통령실에서는 “검토한 바 없다”고 대응한 상태다. 3대 개혁 밀어붙인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현재 비서실장 아래에 있는 공직기강비서관실과 법률비서관실을 관장할 ‘법률수석비서관실(가칭)’이 신설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민심 청취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민정수석이 존재할 당시 폐해로 여겨졌던 사정 기능은 제한하고 민심을 읽는 방향의 조직을 만들 것이라는 구체적인 언급도 나오고 있다. 이 과정서 사실상 민정수석실이 부활하는 게 아니냐는 의견이 나왔다. 민정수석실 폐지는 윤 대통령의 대선공약 중 하나였다. 윤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앞으로 대통령실 업무서 사정, 정보 조사 기능을 철저히 배제하고 민정수석실을 폐지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과거 사정기관을 장악한 민정수석실은 합법을 가장해 정적, 정치적 반대 세력을 통제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고 세평 검증을 위장해 국민 신상 털기와 뒷조사를 벌여왔는데 이런 잔재를 청산하겠다”고 말했다. 실제 윤석열정부 출범 직전 대통령실은 2실(비서실·국가안보실) 5수석(경제·사회·정무·홍보·시민사회) 체제로 개편됐다. 당시 당선인 신분이었던 윤 대통령이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청산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윤석열정부 출범 3개월 만에 정책기획수석이 신설되면서 2실6수석 체제가 됐다. 민정수석실서 맡고 있던 공직기강 업무와 인사검증 업무는 법률비서관, 법무부 등으로 이관됐다. 특히 법무부에 공직자 검증 업무를 전담하는 인사정보관리단이 신설되면서 당시 법무부 장관이었던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에 권력이 지나치게 집중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사정 기능 제한한다? 지난해 11월 윤 대통령은 정책실장을 신설하는 등 대통령실 직제를 3실6수석 체제로 개편했다. 개편 과정서 기존 수석들을 물갈이하면서 대통령실 2기 체제의 출범을 알렸다. 이때도 민정수석실 관련 언급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총선 패배 이후 대통령실 쇄신안에 법률수석이 거론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야당은 즉각 반발했다. 민심 청취는 표면용일 뿐 결국 윤 대통령이 사정정국을 조성하려는 의도를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민정수석실 폐지’라는 대선공약을 파기하고 여소야대 정국을 돌파하기 위한 자구책이라는 설명이다. 여기에 야당서 예고한 특검을 방어하려는 선제적 조치가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당초 민정수석실은 민심 청취 기능과 무관하게 운영됐다. 오히려 폐지 가능성이 나오고 있는 시민사회수석실이 민심을 듣는 역할을 해왔다. 민정수석은 고위공직자 인사 검증, 국정 관련 여론 수렴, 고위공직자 복무 동향 점검, 대통령 친인척 관리, 사정기관과 소통 등의 업무를 주로 했다. 하지만 역대 정부서 가장 부각됐던 기능은 국가정보원, 검찰, 경찰, 국세청, 감사원 등 5대 사정기관을 관리하는 것이었다. 실제 2000년 김대중정부서 폐지되기 전까지 이른바 ‘사직동팀’이 청와대 하명수사를 전담했다. 사직동팀은 경찰청 형사국 조사과를 일컫는 말이다. 윤 대통령 역시 당선인 시절 대통령 인수위원회 첫 과제로 민정수석실 폐지를 밀어붙이며 “사직동팀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한 바 있다. 대통령실은 법률수석을 신설하더라도 사정 기능은 제한하겠다는 뜻을 비쳤지만 의심의 눈초리는 여전하다. 김건희·채 상병 특검법 대기 신임 수석 검찰 출신 될 듯 민주당 고민정 최고위원은 지난 16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법률수석 신설은 앞으로 들이닥칠 영부인에 대한 특검 등을 방어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며 “이제 와서 법률수석비서관실을 신설한다는 것은 사법 리스크 방어 차원”이라고 주장했다. 21대 국회에 이어 22대 국회서도 여소야대 정국이 유지되면서 민주당 등 범야권은 ‘해병대 채 상병 사망사건 수사외압 의혹 특별검사법(채 상병 특검법)’과 ‘김건희 여사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특별검사법(김건희 여사 특검법)’ 등을 예고했다. 국민의힘서도 채 상병 특검법 수용과 관련해 의견이 갈리는 만큼 국회 통과 가능성이 제기된다. 윤 대통령은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 한 차례 거부권을 행사한 상태다. 192석을 확보한 범야권은 21대 국회서 채 상병 특검법이 좌절된다고 해도 22대 국회서 재추진한다는 뜻을 보이고 있다. 고민정 최고위원도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채 상병의 죽음 앞에 정치권이 더는 부끄럽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민주당서도 의지가 충분히 있고 국회서 당장 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돼있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김건희 여사 특검법도 22대 국회 개원 전후로 다시 도마에 오를 전망이다. 12석을 확보한 조국혁신당은 아예 22대 국회 1호 법안으로 김건희 여사 특검법을 공언했다. 민주당과 개혁신당 등이 조국혁신당에 동의한다는 뜻을 보인 만큼 추진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 높다. 국민의힘 내부서도 수용 여부에 대한 의견이 갈리고 있어 향후 상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정기관 잡고 흔드나 범야권이 다수 의석을 무기로 특검 정국을 예고하면서 윤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압박 수위가 높아지는 모양새다. 법률수석을 새로 만들려는 의도가 ‘방어’로 읽히는 분위기도 윤 대통령이 처한 상황이 녹록지 않기 때문으로 보인다. 심지어 총선이 마무리되면서 국민의힘에 대한 윤 대통령의 지배력 역시 작아진 상태라는 점도 법률수석 신설의 배경으로 꼽히고 있다. 이미 시작된 것으로 보이는 레임덕을 최대한 늦추기 위한 궁여지책이라는 말도 나온다. 신임 법률수석을 누가 맡게 될지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벌써부터 하마평이 돌고 있다. 검찰 출신들로 채워질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