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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천우의 시사펀치> 미투를 넘어 노모아로!
  • 황천우 소설가
  • 등록 2018-03-12 09:31:26
  • 승인 2018.03.12 13:49
  • 호수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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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조선 후기 실학자인 성호(星湖) 이익(李瀷, 1681∼1763)의 ‘강간’에 대한 변을 들어보자. 그의 작품인 성호사설에 실려 있다.

『옛말에 “세상에 강간은 없다” 했으니 이는 여자가 만약 목숨을 걸고 정조를 지킨다면 도둑이 범하지 못함을 말한 것이다.

옛날 노영청(魯永淸)이 화간(和姦)과 강간의 구별을 판결하기 위하여 힘센 종을 시켜 여자의 옷을 벗기게 했는데 다른 옷은 모두 벗겼으나 오직 속옷 한 벌만은 여자가 죽기를 한정하고 반항하여 마침내 벗기지 못했다. 이에 강간이 아니요 화간이라고 판결을 내리니 사람들이 명판결이라고 일렀다.

나는 생각건대 이는 정리에 벗어난 논설이니, 여자가 거절하는데 남자가 겁간하려 하는 것은 이미 강간이니 그 후에 딸려 일어나는 일은 족히 말할 것이 없다.

날짐승에 비유하건대, 암탉이 수탉에 쫓기어 담을 넘고 지붕에 올라 쉴 사이 없이 날다가 마침내는 면하지 못하는데, 그 후에 본즉 새끼 딸린 암탉은 모면하지 못할 듯하나 수탉이 마침내 범하지 못하니 이로써 말한다면 암탉도 또한 죄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수탉에게 쫓기어 쉴 사이 없이 달아나다가 모면하지 못한 것을 어찌 화간이라고 하겠는가?

죄는 마침내 겁간한 자에게 있으니 혹 이 같은 송사가 있어 노영청의 판결에 의한다면 폐단이 있을 듯싶으므로 이에 변론하는 바이다.』

상기 글에 등장하는 노영청(魯永淸)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고 있다. 다만 중국 명나라 말기 사람인 풍몽룡(馮夢龍)의 ‘지낭(智囊, 지혜가 많은 사람들)’이란 작품에 등장하는 사실로 미뤄 한때 인기몰이를 했던 대만 드라마 ‘판관 포청천’에 등장하는 포청천 정도로 간주해도 좋을 듯싶다.

여하튼 이익의 설에 따르면 여자가 거절하는데 남자가 겁간하려함은 곧 강간이라 했다. 물론 겁간은 폭행이나 협박 따위의 불법적인 수단으로 부녀자와 성관계를 맺는다는 의미로 강간과 그 의미가 동일하다.

아울러 이익은 닭을 예로 들면서 암탉에게도 일정 부분 책임을 묻고 있다. 그런데 이익이 예로 든 글을 액면 그대로 살피면 난해하다. 아마도 번역 상 문제로 보이는데, 필자는 암탉의 태도가 수탉의 의지를 관철시키는 중요 요인으로 그 책임 소재를 묻고 있는 것으로 파악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익은 모든 죄는 겁간한 자에게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를 염두에 두고 현재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미투 운동에 대해 살펴본다. 자신에게는 치부일 수밖에 없는 경험을 언론에 드러내는 위험까지 감수하는 여인들의 모습을 바라보면 필자 역시 그 또래에 딸을 가진 아버지로서 안타까움을 넘어 분노까지 치밀어 오른다.

물론 자신들이 지니고 있는 알량한 지위를 이용하여 파렴치한 행위를 서슴지 않고 행한 인간 망종들에 대해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에 대한 분노 못지않게 피해 당사자들에 대한 분노 역시 일어난다. 인간쓰레기에 불과한 종자들에게 당했다는 사실 때문이다.

각설하고, 자금 전개되고 있는 미투 운동을 바라보면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이 떠오른다. 아울러 이익도 언급했지만 피해 당사자의 자세도 중요하다. 그런 상황에 직면하게 되면 사후약방문 식의 미투가 아니라 그 자리서 ‘노모아!(No More)’를 외쳐야 할 일이다.

노모아는 ‘더 이상 방관하지 않고 그 뿌리를 뽑아버리겠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 본 칼럼은 <일요시사>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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