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VS 안철수’ 서울시장 빅매치 관전포인트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8.02.26 10:44:58
  • 호수 1155호
  • 댓글 0개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으로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바른미래당(이하 바미당) 안철수 전 대표가 서울시장 출마를 고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3선 도전을 시사, 그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경선을 넘으면 두 사람의 빅매치가 성사된다. 무려 7년 만의 조우다. <일요시사>는 안 전 대표 출마와 박 시장의 경선 통과 가능성을 살펴봤다.
 

서울시장 자리를 건 여야의 한판 승부는 지방선거의 꽃으로 불린다. 역대 지방선거만 살펴봐도 가장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왔다. 인구 1000만명인 서울시정을 살피는 자리라는 점에서 어찌 보면 당연한 관심이다. 

서울시장은 ‘소통령’이라 불리며 그만한 권한과 위상을 가진다. 정치적으로는 차기 대권에 가장 근접해 있는 자리다. 이 때문에 대권에 꿈이 있는 정치인이라면 한번쯤은 탐내는 자리기도 하다.

안철수 출격
장고 들어가

2선 후퇴를 선언한 바미당 안 전 대표가 서울시장 출마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당이 요구하면 무슨 역할이든 하겠다”라며 원론적 입장을 표하고 있지만 출마 여부에 대해선 숙고 중에 있다고 한다.

바미당 측 관계자는 “안 전 대표가 출마한다면 서울시장 내지 부산시장일 것”이라며 “두 곳 모두 현재 여당 기세가 높은데, 기왕 힘든 게임이라면 서울시장 쪽을 택하지 않겠나”라고 조심스레 점쳤다.


또 다른 바미당 측 관계자는 “여러 가능성이 열려있다”면서도 “당내에서는(안 전 대표가) 서울시장으로 나서주길 바라는 사람이 많다”고 귀띔했다.

실제 바미당 내에서는 안 대표 스스로 서울시장 출마를 결정해야 한다면서도 그의 출마를 은근히 바라는 눈치다. 

이태규 사무총장은 지난 20일 한 라디오에 출연해 “당에서 아직 결정한 바는 없지만 본인의 생각과 잘 맞아떨어져야 하지 않겠나”면서도 “내 개인적으로는(서울시장에) 나가는 것이(당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태경 최고위원도 같은날 “안 전 대표는 어디든 나올 자세가 돼있다”면서도 “보궐선거에 나갈 수도 있다는 안도 있다. 그러나 그건 극소수 안이고, 다수 안으로 1순위는 서울시장, 2순위는 부산시장 이런 식으로 가지 않을까”라고 덧붙였다.

이어 “안 전 대표는 서울시장에 반드시 출마해야 한다. 당을 살리려면 가장 경쟁력 있는 후보이기 때문”이라며 “유승민 대표도 서울시장 히든카드 정도로 생각한다. 대구시장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사실 박원순-안철수 작전이 베스트”라고 언급했다.

전국적으로 봤을 때 바미당은 지방선거에 낼 만한 카드가 풍족하지 않다. 이제 갓 세상에 나온 신생 정당이 가진 인재풀은 기존 정당들에 비해 그 폭과 깊이서 밀릴 수밖에 없다. 현 상황서 이름값 있는 인재들은 당선 가능성이 높은 민주당-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을 향하는 게 인지상정이다.

바미당은 이번 지방선거서 사실상 사활을 걸어야 할 만큼 중대 기로에 서있다. 지방선거서 좋은 성적을 거둬야 향후 정국서 힘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바미당은 기존 국민의당-바른정당서 각자 만들고 키워왔던 인재풀을 핵심 지역에 투입해 최대의 효과를 노리는 전략을 구사할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시장은 상징성이 있는 자리이다. 만약 바미당이 서울시장직을 차지하는 데 성공한다면 이번 지방선거 최대 돌풍으로 떠오를만하다. 여세를 몰아 2020년으로 예정된 21대 총선까지 바람을 이어갈 수 있는 교두보가 되는 셈이다. 
 

캐스팅보터가 아닌 민주당-한국당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정당으로 거듭나는 일도 꿈은 아니다. 바미당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카드를 서울시장 선거에 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안 전 대표는 서울시장 선거서 바미당이 꺼내들 수 있는 최선의 카드다. 안 전 대표가 정치권에 입문해 ‘안철수 돌풍’을 일으킨 때도 지난 2011년 서울시장 선거였다. 당시 후보군으로 거론됐던 안 전 대표는 범야권 후보였던 박 시장과 단일화를 선언하며 한발 물러났다. 

여론조사에서 50%가 넘는 지지율을 보였던 안 전 대표 입장에선 큰 양보였다. 당시 박 시장의 지지율은 5%였다. 단일화로 힘을 받은 박 시장은 본선서 50%를 넘기며 압승했다.

안 전 대표 입장에서는 서울시장 자리를 탐낼만한 이유가 있다. 꿈꿔왔던 대권에 한 발짝 다가설 수 있기 때문이다. 

차기인 제20대 대선과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는 모두 2022년에 열린다. 그 사이 서울시장으로서 문재인 대통령과 대립 구도를 형성,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시키는 전략이 가능하다.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서울시장 연임으로 방향을 틀수도 있다. 선택지가 많아지는 점은 정치인 입장서 결코 나쁘지 않다.

1순위 서울
2순위 부산

그러나 상황이 여의치만은 않다. SBS가 ‘칸타퍼블릭’에 의뢰해 지난 11일부터 14일까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서울시장 후보 선호도서 박 시장은 30.8%로 1위를 차지했다. 이어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10.4%, 황교안 전 총리 9%, 안 전 대표 8.2%, 민주당 박영선 의원 7.5% 순으로 나타났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아무리 선거가 바람이라지만, 20%포인트 이상 나는 차이를 뒤집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현 상황서 안 전 대표의 서울시장 출마는 도박에 가깝다. 

더욱이 바미당의 미래, 자신의 정치적 생명까지 고려해야해 부담감이 크다. 정치권 안팎에선 안 전 대표가 이번에도 패배할 경우 ‘낙선 정치인’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다시 재기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안 전 대표의 숙고가 길어질 수밖에 없는 분위기다. 안 전 대표 측은 최근 “안 전 대표가 통합 과정을 이끌어온 만큼 서울시장 출마 혹은 선거대책위원장 등 이번 지방선거서 무엇이 됐든 분명히 역할을 할 것”이라고 전했다.

반면 박 시장의 출마는 기정사실화 되는 분위기다. 지난 1월 복수와의 인터뷰서 박 시장은 “결심을 굳혀가고 있다”며 은근히 속내를 드러냈다. 설 연휴를 앞둔 지난 14일에는 서울 중랑구에 위치한 전통시장 2곳, 장애인종합복지관 등을 찾아 민심을 점검했다.


박 시장이 3선 도전을 선언할 경우 치열한 당내 경선을 뚫어야 한다. 민주당에 복당한 정봉주 전 의원이 최근 서울시장 도전을 선언함으로 인해 민주당 내 서울시장 후보군은 박 시장을 포함해 6명으로 늘었다.

정 전 의원은 지난 21일 자신의 SNS를 통해 “서울을 공정하고 활기차게 바꿀 서울시장에 도전하는 것으로 정치 복귀의 명분을 찾았다”며 “공식 출마 선언은 3월 초에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안, 당 미래 짊어지고 출마?
지금은 밀리지만…안풍 변수

정 전 의원에 앞서 우상호·박영선·민병두·전현희 의원이 서울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우 의원은 지난 1월 민주당 인사 중 처음으로 서울시장 경선 출마를 선언하며 “문재인정부의 성공을 도와 세상을 바꾸기 위해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박 의원은 평창과 재래시장 등을 다니며 출마를 준비 중이다. 


민 의원은 지난 1월 자신의 싱크탱크인 ‘미래전략 연구소’ 창립 심포지엄서 “혁신의 기관차가 되겠다”며 사실상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했다. 

전 의원은 지난 4일 “서울 강남의 지지를 받는 유일한 민주당 후보이자 강남권서 가장 많은 표를 가져올 수 있는 내가 서울시장 선거서 민주당의 압승을 보여주겠다”며 출마 선언을 했다.
 

본선보다 힘든 경선이 예상되기 때문일까.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군은 전방위 네거티브전을 벌이며 치열한 공방을 벌이고 있다. 행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각종 여론조사에서 가장 앞서 있는 박 시장에 대한 공세가 주를 이룬다.

출마를 선언한 날 자신이 두 번이나 선거를 도왔던 박 시장에게 날선 비판을 가했던 우 의원은 서울 강남권 재건축 아파트 가격 급등과 관련해 박 시장 책임론을 제기했다.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는 박 시장 3선 도전에 대해 “아무래도 부정적인 여론이 많다”며 “다음 정치세대를 키우는 데 새로운 목표를 두시는 게 더 좋지 않겠냐 하는 여론이 있다”고 각을 세웠다.

박 의원도 박 시장을 겨냥했다. 미세먼지 감소를 위해 대중교통 무료정책을 펼치고 있는 박 시장을 겨냥해 “서울시의 대중교통 무료정책을 더 이상 해선 안 되고 중단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 시장의 부동산 정책에 대해서도 “정부와 서울시의 엇박자로 집값을 잡는 데 굉장한 어려움이 있다는 얘기를 여러 차례 들었다”며 정면 비판했다.

민 의원의 공세는 다른 후보군에 비해 한층 매섭다. 복수의 언론과 인터뷰서 박 시장의 시정에 대해 “박 시장의 상상력은 이미 멈췄다” “서울시의 패러다임을 전환할 아이디어를 가진 새 인물이 필요하다” “박 시장은 뚜렷이 내세울 실적이 없어 조바심을 낸다” 등의 저평가를 내놨다. 

3선 도전
기정사실

비판뿐 아니라 박 시장에게 정책 대결을 제안하는 모습도 보였다. 박 시장과 SNS상에서 일자리와 안전, 강남 집값 등 서울시의 주요 현안을 놓고 정책으로 겨루겠다는 각오다. 

그는 “민병두의 정책은 120% 준비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7년간 서울시장을 맡은 박 시장과 정책으로 정면승부를 하자는 것”이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전 의원은 출마를 선언한 자리서 “서울시장 자리가 대권으로 가는 디딤돌이나 징검다리로 생각해선 안 된다”며 “박 시장이 만약 대권 도전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당장 (대권을)도전하라고 말하고 싶다”고 했다.

정봉주 전 의원은 박 시장의 7년 서울시정을 꼬집었다. 2월 초 여의도 한 식당서 기자들과 만나 “박원순 7년을 보자.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렸다. 초기엔 워낙 ‘난장판’이라 정리하는 데 3∼4년이 걸렸다. 하지만 지금 서울시는 민생국장급이 할 만한 일을 서울시 전체가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경쟁자들의 비판에 박 시장은 의연하게 대응하고 있다. “비판은 쉽지만 구체적 해결방안을 내놓고 실천하는 일은 어렵다”는 입장을 내놨다.

현 상황에서는 박 시장이 선두를 달리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가 이를 증명한다. 그러나 변수는 존재한다. 바로 민주당 경선 룰이다. 지방선거까지 4개월이 채 남지 않은 상황서 ‘권리당원 50%, 국민 50%’라는 비율 외에는 합의된 룰이 없다. 

민주당은 평창동계올림픽 폐막을 전후로 경선 룰 논의에 속도를 낸다는 입장이다.

박, 네거티브에도 끄떡없어
“독주 막자” 반박연합 슬슬∼

‘컷오프’ ‘결선투표’가 경선 룰 논의의 핵심 쟁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민주당은 지난 2016년 8월27일 전당대회 전 4명의 당대표 후보 중 1명을 떨어뜨리는 컷오프를 실시한 바 있다. 

이번 지방선거서도 이와 비슷한 형식을 따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점쳐진다. 6명의 후보군을 3명 내지 4명까지 추려내야 경선 집중도를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단, 지난 2016년 모델을 그대로 적용할지, 여론조사 방식을 채택할 지는 미지수다. 

2016년의 경우 국회의원과 지역위원장, 지자체장 등으로 구성된 350명의 제한된 선거인단 투표로 컷오프를 결정했다. 

제한된 선거인단 투표로 결정할 경우 상대적으로 당내 세가 약한 박 시장이 불리한 반면, 여론조사 방식을 선택할 경우 현역 프리미엄을 등에 엎은 박 시장이 유리하다는 게 정치권의 분석이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어떤 방식이든 박 시장이 컷오프 될 확률은 희박하다”며 “나머지 두 개 내지는 세 개 자리를 놓고 후보군들이 각축을 벌이지 않을까 예상한다”고 내다봤다.

‘결선투표’ 도입 여부도 쟁점이다. 결선투표는 1위 득표율이 과반(50%)에 미달할 경우 1위와 2위 후보가 2차 투표를 실시하는 제도다. 박 시장을 제외한 나머지 후보군이 도입을 적극 찬성할 것으로 예상된다. 

‘박원순 독주’를 막기 위해 ‘반박(원순)연합’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만약 결선투표가 도입돼 박 시장이 과반에 미달하면 ‘박원순 대 반박연합’ 구도가 완성된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결선투표가 도입되지 않으면 현역 의원들 중 상당수가 경선을 포기하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제기된다.

현행 민주당 당규도 박 시장 편에 서있다. 박원순·정봉주를 제외한 현역 의원들은 서울시장에 출마할 경우 10%의 페널티를 받게 된다. 
 

민주당은 지난 2015년 9월 ‘임기를 4분의 3 이상 마치지 않고 다른 공직에 출마하는 선출직에 대해서는 최고위원회가 정한 기준에 따라 심사결과의 10%를 감산한다’는 규정을 신설한 바 있다. 

2016년 4월13일 20대 총선을 치른 우상호·박영선·민병두·전현희 의원의 임기는 아직 4분의 3 이상을 마치지 못해 페널티 대상이다. 후보군들 사이서 “현역 지자체장에게 절대 유리한 당규”라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후보 난립
그래도 유리

민주당 입장에선 행복한 고민이다. 여러모로 유리한 고지를 점한 상태서 높은 인지도와 강한 내공을 지닌 소위 ‘스타성’ 있는 정치인들이 경선 열기를 달구고 있기 때문이다. 후보 층도 두터워 유권자들의 관심을 받기 충분하다. 

여러모로 야권보다 최소한 한 발 이상 앞서 있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과연 여러 변수를 뚫고 박원순 대 안철수의 대결이 성사될 수 있을 것인가. 현 상황이 6월까지 이어진다면 두 사람의 대결은 시간문제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돌고 돌아 결국 오세훈?

6·13 지방선거가 4개월도 채 남지 않았음에도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은 좀처럼 서울시장 후보를 찾지 못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당 지도부가 전직 시장·도지사 등 소위 ‘올드보이 차출’에 나서는 모습이다. 

대구·경북을 제외하곤 ‘인물난’에 시달리는 한국당의 고육지책으로 풀이된다. 

올드보이 차출설은 홍준표 대표가 군불을 지폈다. 

설 연휴 직전에 가진 기자간담회서 홍 대표는 오세훈 전 서울시장 차출설에 대해 “원 오브 뎀(여러 명 중 한 명)”이라며 “당의 제일 중요한 자산이고 당을 이끌어나갈 지도자감”이라고 평가했다. <목>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갑자기?’ 법률수석 부활 속셈

‘갑자기?’ 법률수석 부활 속셈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4·10 총선이 범야권의 승리로 끝났다. 집권여당은 참패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집권 3년차인 윤석열정부는 국정운영의 동력을 잃게 생겼다. 레임덕을 넘어 데드덕이라는 표현까지 나오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정치 인생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식물 대통령’으로 전락한 윤 대통령의 다음 행보는 엇일까? 속사정이야 어떻든 숫자만 놓고 봤을 때 이견이 없는 결과가 나왔다. 범야권은 192석을 얻어 ‘반윤 거야’ 전선을 형성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161석, 민주당의 위성정당 더불어민주연합 14석, 조국혁신당 12석, 개혁신당 3석, 새로운미래 1석, 진보당 1석 등을 모두 합친 수치다. 국민의힘은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 의석(18석)을 포함해 108석을 얻는 데 그쳤다. 완벽한 참패 식물 대통령 선거를 진두지휘한 각 당 대표의 희비도 엇갈렸다. 사법 리스크를 안고도 선거를 승리로 이끈 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정국의 주도권을 잡게 됐고 국민의힘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정치 생명에 큰 타격을 입었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은 실제 선거를 뛴 선수보다 더 큰 영향을 받게 됐다. 윤 대통령은 임기 내내 의회 주도권을 야당에 내준 상태로 정국을 운영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한다고 해도 여당의 이탈표를 걱정해야 한다. 총선이 끝나면서 권력의 무게추가 당으로 기울어지는 모양새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또 이미 거부권을 9차례나 사용한 이력이 민심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각 당은 이번 총선서 ‘정권 심판론’을 정면에 내세웠다. 민주당은 윤석열정부 심판, 국민의힘은 ‘이조(이재명-조국) 심판’ 프레임으로 유권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했다. 국민은 범야권에 의석을 몰아주면서 정부 심판의 손을 들어줬다. 윤석열정부에 대한 중간평가에 ‘낙제점’을 준 것이다. 윤석열정부는 당장 밀어붙이고 있던 정책에 차질을 빚게 됐다.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을 골자로 하는 의료개혁이 대표적이다. 윤 대통령은 총선 패배 메시지를 통해 의료개혁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드러냈지만 추진력에 대해서는 의문부호가 붙는다. ‘카르텔 타파’라는 국정기조도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 윤 대통령은 지난 16일, 총선 결과와 관련해 첫 육성 메시지를 내놨다. 총선 참패 후 엿새 만이다. 민정수석실 폐지 대선공약 민심 청취 명분 부활 예고 윤 대통령은 “총선을 통해 나타난 민심을 우리 모두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올바른 국정의 방향을 잡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음에도 국민들께서 체감하실 만큼의 변화를 만드는 데 모자랐다”며 “큰 틀에서 국민을 위한 정책이라 해도 세심한 영역서 부족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윤석열정부서 추진하고 있던 개혁은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윤 대통령은 “노동, 교육, 연금 등 3대 개혁과 의료개혁을 계속 추진하되, 합리적인 의견을 더 챙기고 귀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국회와의 긴밀한 협력을 말했지만 야당을 명시적으로 언급하진 않았다. 윤 대통령의 메시지에 야권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민주당 홍익표 원내대표는 윤 대통령의 메시지에 대해 “개탄스럽다”며 “오만, 독선, 불통 정치를 계속하겠다는 마이웨이 선언”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이번 총선서 확인한 민심은 국정기조 전면 전환과 민생경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할 방안을 제시해 달라는 주문”이라며 “윤 대통령은 국정 실패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민생경제의 잘못을 인정하고 실질적 대책과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이 총선 패배에 대한 목소리를 내면서 이후 내놓을 쇄신안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미 국무총리와 대통령비서실장 인선과 관련한 하마평이 나오는 중이다. 지난 17일에는 대통령실서 국무총리로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을, 비서실장에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을 고려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일단 대통령실에서는 “검토한 바 없다”고 대응한 상태다. 3대 개혁 밀어붙인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현재 비서실장 아래에 있는 공직기강비서관실과 법률비서관실을 관장할 ‘법률수석비서관실(가칭)’이 신설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민심 청취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민정수석이 존재할 당시 폐해로 여겨졌던 사정 기능은 제한하고 민심을 읽는 방향의 조직을 만들 것이라는 구체적인 언급도 나오고 있다. 이 과정서 사실상 민정수석실이 부활하는 게 아니냐는 의견이 나왔다. 민정수석실 폐지는 윤 대통령의 대선공약 중 하나였다. 윤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앞으로 대통령실 업무서 사정, 정보 조사 기능을 철저히 배제하고 민정수석실을 폐지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과거 사정기관을 장악한 민정수석실은 합법을 가장해 정적, 정치적 반대 세력을 통제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고 세평 검증을 위장해 국민 신상 털기와 뒷조사를 벌여왔는데 이런 잔재를 청산하겠다”고 말했다. 실제 윤석열정부 출범 직전 대통령실은 2실(비서실·국가안보실) 5수석(경제·사회·정무·홍보·시민사회) 체제로 개편됐다. 당시 당선인 신분이었던 윤 대통령이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청산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윤석열정부 출범 3개월 만에 정책기획수석이 신설되면서 2실6수석 체제가 됐다. 민정수석실서 맡고 있던 공직기강 업무와 인사검증 업무는 법률비서관, 법무부 등으로 이관됐다. 특히 법무부에 공직자 검증 업무를 전담하는 인사정보관리단이 신설되면서 당시 법무부 장관이었던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에 권력이 지나치게 집중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사정 기능 제한한다? 지난해 11월 윤 대통령은 정책실장을 신설하는 등 대통령실 직제를 3실6수석 체제로 개편했다. 개편 과정서 기존 수석들을 물갈이하면서 대통령실 2기 체제의 출범을 알렸다. 이때도 민정수석실 관련 언급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총선 패배 이후 대통령실 쇄신안에 법률수석이 거론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야당은 즉각 반발했다. 민심 청취는 표면용일 뿐 결국 윤 대통령이 사정정국을 조성하려는 의도를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민정수석실 폐지’라는 대선공약을 파기하고 여소야대 정국을 돌파하기 위한 자구책이라는 설명이다. 여기에 야당서 예고한 특검을 방어하려는 선제적 조치가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당초 민정수석실은 민심 청취 기능과 무관하게 운영됐다. 오히려 폐지 가능성이 나오고 있는 시민사회수석실이 민심을 듣는 역할을 해왔다. 민정수석은 고위공직자 인사 검증, 국정 관련 여론 수렴, 고위공직자 복무 동향 점검, 대통령 친인척 관리, 사정기관과 소통 등의 업무를 주로 했다. 하지만 역대 정부서 가장 부각됐던 기능은 국가정보원, 검찰, 경찰, 국세청, 감사원 등 5대 사정기관을 관리하는 것이었다. 실제 2000년 김대중정부서 폐지되기 전까지 이른바 ‘사직동팀’이 청와대 하명수사를 전담했다. 사직동팀은 경찰청 형사국 조사과를 일컫는 말이다. 윤 대통령 역시 당선인 시절 대통령 인수위원회 첫 과제로 민정수석실 폐지를 밀어붙이며 “사직동팀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한 바 있다. 대통령실은 법률수석을 신설하더라도 사정 기능은 제한하겠다는 뜻을 비쳤지만 의심의 눈초리는 여전하다. 김건희·채 상병 특검법 대기 신임 수석 검찰 출신 될 듯 민주당 고민정 최고위원은 지난 16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법률수석 신설은 앞으로 들이닥칠 영부인에 대한 특검 등을 방어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며 “이제 와서 법률수석비서관실을 신설한다는 것은 사법 리스크 방어 차원”이라고 주장했다. 21대 국회에 이어 22대 국회서도 여소야대 정국이 유지되면서 민주당 등 범야권은 ‘해병대 채 상병 사망사건 수사외압 의혹 특별검사법(채 상병 특검법)’과 ‘김건희 여사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특별검사법(김건희 여사 특검법)’ 등을 예고했다. 국민의힘서도 채 상병 특검법 수용과 관련해 의견이 갈리는 만큼 국회 통과 가능성이 제기된다. 윤 대통령은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 한 차례 거부권을 행사한 상태다. 192석을 확보한 범야권은 21대 국회서 채 상병 특검법이 좌절된다고 해도 22대 국회서 재추진한다는 뜻을 보이고 있다. 고민정 최고위원도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채 상병의 죽음 앞에 정치권이 더는 부끄럽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민주당서도 의지가 충분히 있고 국회서 당장 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돼있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김건희 여사 특검법도 22대 국회 개원 전후로 다시 도마에 오를 전망이다. 12석을 확보한 조국혁신당은 아예 22대 국회 1호 법안으로 김건희 여사 특검법을 공언했다. 민주당과 개혁신당 등이 조국혁신당에 동의한다는 뜻을 보인 만큼 추진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 높다. 국민의힘 내부서도 수용 여부에 대한 의견이 갈리고 있어 향후 상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정기관 잡고 흔드나 범야권이 다수 의석을 무기로 특검 정국을 예고하면서 윤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압박 수위가 높아지는 모양새다. 법률수석을 새로 만들려는 의도가 ‘방어’로 읽히는 분위기도 윤 대통령이 처한 상황이 녹록지 않기 때문으로 보인다. 심지어 총선이 마무리되면서 국민의힘에 대한 윤 대통령의 지배력 역시 작아진 상태라는 점도 법률수석 신설의 배경으로 꼽히고 있다. 이미 시작된 것으로 보이는 레임덕을 최대한 늦추기 위한 궁여지책이라는 말도 나온다. 신임 법률수석을 누가 맡게 될지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벌써부터 하마평이 돌고 있다. 검찰 출신들로 채워질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