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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추문 덮친’ 문화예술계 막전막후양반만 있는 줄 알았더니…“조용한 날이 없네”
  • 장지선 기자
  • 등록 2018-02-12 11:40:37
  • 승인 2018.02.12 17:01
  • 호수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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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문화·예술계에 바람 잘 날이 없다. 2016년 SNS를 중심으로 ‘문단 내 성추행’ 폭로가 이어지면서 문학계가 쑥대밭이 됐다. 박근혜정부서 특정 문화·예술인에 대한 블랙리스트를 작성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홍역을 앓았고, 그 여파는 현재진행형이다. 올해도 연초부터 영화계, 문단 할 것 없이 동시다발적으로 사건이 터져 나오고 있다.
 

▲김기덕 감독

지난해 12월12일 제18회 올해의 여성영화인상 행사가 열렸다. 2000년 처음 시상을 시작한 이 상은 영화계 전반에서 활동 중인 여성 영화인들이 선정하고 수여하는 상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남다르다는 평을 받아왔다. 매년 최고상에 해당하는 올해의 여성영화인상, 연기상 등 각종 부문에서 주목할 만한 활약을 펼친 여성 영화인에게 준다.

빛바랜 수상
감독상 박탈

이날 감독상의 주인공은 이현주 감독이었다. 이 감독은 여성간의 사랑과 이별을 그린 영화 <연애담>으로 올해의 여성영화인상 감독상을 수상했다. 지난해 11월 제38회 청룡영화상과 10월 제26회 부일영화상에서 역시 <연애담>으로 신인감독상을 수상하면서 대중에게 이름을 각인시켰다. 이 감독이 연출한 <연애담>은 성소수자의 사랑을 현실적으로 그려냈다는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중심으로 이 감독이 연루된 성추문 사건이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 감독상의 의미가 퇴색됐다. 추문의 내용이 동성 성폭행으로 드러나면서 그 파장은 더욱 커졌다. 또 사건이 이미 대법원 선고까지 종결된 시점에 알려졌기 때문에 놀라움은 배가됐다.

이 사건은 ‘미투(Me too)’ 운동을 통해 알려졌다. 미투 운동은 SNS에 ‘나도 그렇다’는 뜻인 Me Too에 해시태그(#Me too)를 달아 자신이 겪었던 성범죄를 고백하면서 그 심각성을 알리는 캠페인이다. 

지난해 10월 미국 할리우드의 유명 영화제작자 하비 웨인스타인의 성추문 사건 이후 배우 알리사 밀라노가 처음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피해자인 여성 영화감독 A씨는 지난 1일 SNS를 통해 이 감독과의 일을 세상에 알렸다. 2015년 4월 이 감독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 
 

▲<화유기> 포스터

A감독은 “2015년 봄 동료이자 동기인 여자감독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 가해자가 재판을 수십 번 연기한 탓에 재판은 2년을 끌었고 지난해 12월 드디어 대법원 선고가 내려졌다”고 적었다. 

A감독에 따르면 이 감독은 술에 취해 의식을 잃은 A감독에게 유사 성행위를 했다.

사건 발생 한 달 뒤 A감독은 이 감독을 준유사강간 혐의로 고소했다. 2년간의 재판 끝에 대법원은 이 감독에게 징역 2년과 집행유예 3년, 성범죄예방교육 40시간 이수 명령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유사강간은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에 대해 구강, 항문 등 성기를 제외한 신체의 내부에 성기를 넣거나 성기, 항문에 손가락 등 성기를 제외한 신체의 일부 또는 도구를 넣는 행위를 말한다. 형법에는 유사강간죄를 저지르면 2년 이상의 유기 징역에 처한다고 돼있다.

또다시 불거진 성범죄로 ‘얼룩’
동성 성폭행·성추행 의혹·폭행

사태가 일파만파로 커지자 이 감독은 6일 보도자료를 통해 공식입장을 밝혔다. 그는 “지금까지 동성애자라는 성 정체성에 대해 피해자 등 몇몇 지인들 외에는 그 누구에게도 떳떳하게 밝히지 못했다. 

동성애자임을 밝혔을 때 부모님께서 받으실 충격, 영화 시장서 저를 바라볼 곱지 않은 시선, 우리 사회에서 성소수자들이 처한 상황 등을 생각하면 당당히 커밍아웃할 용기가 없었다”고 전했다.

이어 “A감독은 내가 동성애자임을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사람들 중 한 명일 정도로 나와 친분이 깊었고 많은 감정들을 공유하고 있었다”며 “당시 술자리서 피해자가 만취한 상태였기 때문에 일행들의 부탁을 받아 피해자와 함께 있게 됐다”고 덧붙였다.

성폭행 논란에 대해서는 “술에 취해 잠든 줄 알았던 피해자가 어느 새 울기 시작하더니 오열했다. 피해자가 자신의 고민을 얘기하고 내가 달래는 과정서 자연스럽게 성관계를 가지게 됐다”며 “당시 나로서는 피해자가 저와의 성관계를 원한다고 여길만한 여러 가지 사정들이 있었다”고 해명했다.

이 감독의 해명은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A감독은 같은 날 ‘가해자 이현주의 심경고백 글을 읽고 쓰는 글’이라는 제목으로 SNS에 글을 올려 이 감독의 공식입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A감독은 “다시 떠올리기 끔찍하지만 그날의 일을 말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가해자가 먼저 그날의 일을 말해버렸으니 말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가해자는 심경고백 글에서 사건 이후 ‘밥 먹고 차 먹고 대화하고 잘 헤어졌는데 한 달 뒤에 갑자기 신고를 했다’고 하지만 이는 명백한 거짓말이다. 사과를 받기 위해 두 차례 더 먼저 전화를 했지만 사과는커녕 내 잘못이라고 탓하는 얘기만 들었다”고 당시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A감독은 1심 판결문을 일부 발췌해 공개하고 “끝으로 당신의 그 길고 치졸한 변명 속에 나에 대한 사죄는 어디에 있는가? 순수한 마음으로 응원한 영화팬들에 대한 사죄의 말은 어디에 있는가? 내가 몹쓸 짓을 당했던 그 여관이 당신의 영화에 나왔던 그곳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됐을 때 느낀 섬뜩함을 당신의 입장문을 읽으며 다시금 느꼈다”는 말로 글을 마무리했다.
 

▲'괴물'

사건에 대한 이 감독과 A감독의 입장, 법원의 판결 등이 알려지자 영화계는 발칵 뒤집혔다. 여성영화인모임은 이 감독의 감독상을 박탈했고, 한국영화감독조합은 그를 제명했다. 또 영화진흥위원회는 사건 관련 진상조사팀을 꾸렸다.

내부위원과 외부위원으로 팀을 구성해 1∼2주 안에 사건의 진상을 밝히겠다는 입장이다. 이 과정에서 사건을 은폐하려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한국영화아카데미 소속 교수 역시 조사하겠다는 계획이다.

영진위 관계자는 “이번 조사가 이현주 감독 개인의 이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향후 비슷한 사태를 방지하기 위한 밑거름이 될 것”이라며 “이와 같은 사건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매뉴얼을 만들 예정”이라고 밝혔다.

미투 운동
대대적 확산

영화계서 현재 진행 중인 성추문 사건은 또 있다. 배우 조덕제씨와 여배우 B씨 간의 진실공방이다. B씨는 지난 2015년 4월 저예산 영화를 촬영하던 중 상호 합의되지 않은 상황서 상대 남배우가 속옷을 찢고 바지에 손을 넣어 신체 부위를 만지는 등 성추행을 당했다며 조씨를 강제추행치상 혐의로 고소했다.

조씨는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항소심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40시간 이수 명령이 내려졌다. 조씨는 2심 판결이 나온 이후 기자회견을 열어 억울함을 토로했다.

그는 “2년 6개월간 기나긴 송사를 벌여왔고 이제 대법원에 가게 됐다”며 “이렇게 힘들고 고달픈 송사 과정에서 억울함과 답답함에 무너지려 하는 마음을 다잡고 허위와 거짓 주장에 갈기갈기 찢긴 가슴을 추스르며 걸어가면 곧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 믿고 버텨왔다”고 말문을 열었다.
 

▲영화배우 조덕제

조씨는 1심과 2심에서 판결이 갈린 것은 재판부의 시각과 관점의 차이라고 주장했다. 1심에서는 조씨의 행위를 업무상의 정당행위로 판단하고 촬영 중의 연기로 판단한 반면, 2심은 감독의 지시에 따랐던 연기를 연기로 받아들이지 않고 사회의 일반적인 성폭력 상황으로 받아들였다는 설명이다.

이어 “영화인에게 물어봐 달라. 20년 이상 연기한 조·단역 배우가 그 많은 스태프가 있는 현장에서 연기하면서 일시적으로 흥분할 수도 없을뿐더러 흥분 상태서 연기자임을 망각하고 성추행하는 것을 상상할 수도 없다는 점을 잘 알 것이다. 정신병자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토로했다.

법정 공방
입장 평행선

여배우 측도 기자회견을 열어 입장을 밝혔다. 여배우의 대리인인 이학주 변호사는 “조덕제는 자신의 주장과 달리 13번 신 처음 장면부터 감독의 연기지시를 제대로 따르지 않았다”며 조씨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또 항소심도 조씨의 행위가 감독의 연기지시에 충실히 따르거나 정당한 연기를 하는 과정에서 이뤄진 것이라 볼 수 없다는 취지로 판시했다고 덧붙였다. 공은 대법원으로 넘어가 있는 상태다.

조씨와 B씨의 입장 차이는 평행선을 그리고 있다. 이 과정서 B씨는 조씨에 대해 명예훼손, 모욕,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등의 혐의로 지난달 중순경 서울남부지검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또 B씨를 향해 악의적인 글을 지속적으로 올린 누리꾼 73명도 같은 혐의로 고소했다.

김기덕 감독이 연루된 폭행 사건도 아직 마무리 되지 않았다. 김 감독은 지난 2013년 영화 <뫼비우스> 촬영장에서 여배우 C씨에게 상대 남배우의 주요 부위를 만질 것을 주문하고 수시로 뺨을 때리는 등 폭행을 가한 혐의로 고소당했다. 

김 감독은 검찰 조사 과정서 “뺨을 때린 사실은 인정하지만 연기 지도를 위해서였을 뿐 고의는 없었다”고 진술했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형사6부는 촬영현장에서 김 감독이 고소인의 뺨을 세게 내리치며 폭행한 부분에 대해서는 혐의를 인정해 폭행죄로 500만원 약식기소했다. 나머지 고소사실에 대해서는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혐의없음’ 처분했다. 

김 감독에 대한 고소 결과가 나오자 일각에서는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유명 원로시인 의혹 폭로
문단은 찬반 갈려 격론중

C씨는 지난달 19일 ‘위키트리’와의 인터뷰에서 검찰에 항고 이유서를 접수했다고 전했다. 또 정신과 치료와 트라우마 치료센터 심리 상담을 함께 받고 있다는 근황을 밝혔다. 

C씨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김 감독과 있었던 사건 경위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했다. 그러면서 “김기덕씨만의 문제가 아니다. 영화계에 입문한 이후 폭력, 성폭력을 수도 없이 당했다. 내가 풀어야 할 숙제라는 걸 깨달았다. 물러서지 않을 거다. 물러서면 이자가 붙는다”는 말로 인터뷰를 마쳤다.

2016년 연이어 터진 문인들의 성추행 의혹으로 몸살을 앓은 문단은 최근 거물급 문인에 대한 폭로글로 또 다시 혼란 상태에 빠졌다. 발단은 최영미 시인의 시 ‘괴물’이다. 최 시인의 시는 지난해 12월 계간지 <황해문화>에 실렸다. 

최근 미투 운동이 바람을 일으키면서 2개월이 지나 수면 위로 올라온 것.

시 ‘괴물’에는 ‘En선생’이라는 인물이 등장하는데, 해당 인물이 문단의 거물로 불리는 원로시인이라는 분석이 제기되면서 논란은 순식간에 불타올랐다. 

최 시인은 ‘괴물’서 En선생 옆에 앉지 말라고/문단 초년생인 내게 K시인이 충고했다/젊은 여자만 보면 만지거든 …(중략)… 몇 년 뒤, 어느 출판사 망년회에서/옆에 앉은 유부녀 편집자를 주무르는 En을 보고/내가 소리쳤다/“이 교활한 늙은이야!”/감히 삼십년 선배를 들이박고 나는 도망쳤다 …(후략)…

최 시인은 지난 7일 SBS와의 인터뷰서 자신이 겪었던 또 다른 성추행에 대해 언급했다. 시에서 다룬 것보다 더한 성폭력을 휘둘러온 문단 권력자들이 있다며 그들의 진심어린 사과를 원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문단의 권력을 쥔 남자들이 어떤 자리에 부를 때 안 가면 소위 ‘찍혀요’, 그런데 대개 술자리에서 저는 늘 불쾌한 일을 당했어요. 이미 등단하고 시집을 낸 저 같은 사람보다는 더 약한 여자 문인들, 아직 등단하지 않고 원고만 투고한 상태의 그들이 가장 취약하죠”라고 설명했다.

최 시인의 폭로에 문인들은 찬반 의견을 내세우며 논란에 가담하고 있다. 이승철 시인은 최 시인이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고 있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지난 7일 최 시인이 jtbc <뉴스룸>에 출연해 진행한 인터뷰를 두고 “내내 심기가 불편했다. 문단에 만연한 성추행이라니, 최영미는 참으로 도발적인 발언을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의 잣대로 마치 성처녀처럼 쏟아냈다”며 “메이저 출판사와 무소불위의 평론가들의 묵계를 강조하면서 그녀는 피해자 코스프레를 남발했다”고 자신의 SNS에 적었다. 또 ‘싸가지 없다’ 등의 원색적인 표현을 사용, 최 시인의 최근 행보를 맹비난했다.

시인의 폭로
거장의 몰락?

반면 류근 시인은 지난 6일 자신의 SNS에 “몰랐다고? 고○ 시인의 성추행 문제가 드디어 수면 위로 드러난 모양”이라며 “놀랍고 지겹다. 1960∼1970년대부터 공공연했던 고○ 시인의 손버릇, 몸버릇을 이제야 마치 처음 듣는 일이라는 듯 소스라치는 척하는 문인과 언론의 반응이 놀랍고, 하필이면 이 와중에 연예인 대마초 사건 터뜨리듯 물타기에 이용당하는 듯한 정황 또한 지겹고도 지겹다”고 문단과 언론의 행태를 지적했다.

이어 “소위 문단 근처에라도 기웃거린 내 또래 이상의 문인 가운데 고○ 시인의 기행과 비행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 얼마나 되나”라며 “심지어는 눈 앞에서 그의 만행을 지켜보고도 마치 그것을 한 대가의 천재성이 끼치는 성령의 손길인 듯 묵인하고 지지한 사람들조차 얼마나 되나. 심지어는 그의 손길을 자랑스러워해야 마땅하다고 키득거린 이들 또 얼마나 되나”라고 꼬집었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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