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인순이가 가수들의 예술의전당 대관 신청에 관한 기자회견을 갖고 공식입장을 전했다. 인순이는 지난 3일 오후 1시, 서울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진행된 ‘대중 가수를 외면하는 전문 공연장의 현실’이라는 주제로 열린 기자회견에서 “예술의전당을 지날 때마다 그 무대에 서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그 꿈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며 “도대체 왜 그 무대에 설 수 없다는 건지 알려 달라”고 예술의전당 측에 강력한 의견을 피력했다. 인순이가 예술의전당 측에 공개적으로 섭섭함을 토로한 건 이번이 두 번째다. 올 3월 데뷔 30주년 기념 공연 제작발표회에서 예술의전당으로부터 공연을 거절당했다고 밝혔다. 당시 인순이는 “미국 카네기홀에서도 공연했는데 예술의전당에서 할 수 없다는 게 섭섭하고 서운하다. 예술의전당에서 요구하는 모든 조건을 충족했음에도 불구하고 공연을 거절당했다”고 말한 바 있다. 인순이와 예술의전당 측이 엇갈리고 있는 쟁점 세 가지를 짚어보았다.
인순이는 지난달 15일 ‘심사에서 탈락했다’는 내용의 팩스 한 장을 받았다. 팩스 용지에는 뚜렷한 이유 대신 ‘일정경합’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인순이는 예술의전당이 대관신청 이유를 정확하게 설명해주지 않는 이상 ‘대중가수를 폄하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그는 “그저 경합에 의한 탈락이라고 하는데 그 탈락 이유가 무엇인지 정말 알고 싶다. 만약 충분히 설득력 있다면 지금이라도 손 털고 포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1년 중 나흘만 빼준다면 어떤 날이든 공연하겠다고 했다. 그럼에도 공연을 할 수 없는 이유를, 나는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예술의전당 측의 애매한 기준을 꼬집으며 대중예술 차별에 무게를 두는 발언이다.
인순이는 비단 이번 문제가 개인적인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아름답고 뛰어난 무대는 자신과 가수들의 문제를 넘어 대중음악을 즐기는 관객들에게도 관련된 문제라고 강조했다.
인순이는 “월남전이 벌어질 때도 대중가수들은 그곳으로 달려가 위문공연을 했다. 외국근로자가 외화를 벌어들일 때도 대중가수들은 그곳으로 가 설움을 달래곤 했다. 해외에서 열광하는 한류스타가 참 많은 곳이 한국 가요계다. 외국 가면 우리는 잘 대접받는다. 나 역시 카네기홀에서 공연을 했던 사람이다. 우리 집에서 아껴주고 밀어달라는 게 무리한 요구인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이어 “조금만 용기를 달라는데 그것이 그렇게 잘못된 것인가. 해외 팬들도 국내 공연을 보러 많이 오는데 이들에게도 좋은 공연장을 보여줘야 할 것 아닌가. 잘못됐다면 내가 손을 털고 일어나겠다”고 강변했다.
예술의전당 측은 이와 관련 인순이에게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은 상태다. 다만 “대관 경쟁률이 높아 공정한 심사를 거쳐 떨어뜨렸다”고만 전했다.
인순이의 의혹 제기대로 ‘대중가수를 차별’했는지 여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조용필, 패티김 등이 이 무대에 선 바 있기 때문이다.
인순이의 공연기획사 통엔터테인먼트의 임철빈 대표는 “가요계의 산 역사를 갖고 있는 좋은 가수들이 경합에 의해 떨어졌다면 이 공연장이 어떤 특정 장르에 국한돼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며 “예술의전당 설립 목적이 비단 클래식 음악에 국한되지는 않는다고 본다”고 말했다.
‘대중예술을 경시한 권위의식’ vs ‘원칙은 원칙일 뿐’
유인촌 장관 “‘대중가수용 예술의전당’ 만들겠다” 공언
인순이는 10월 공연을 기준으로 대관 신청을 했다. 예술의전당 측은 “10월에는 공연이 많이 몰려서 경합이 더 치열했다”고 설명한 바 있다. 예술의전당 측 입장에 따르면 경쟁이 치열했을 뿐, 대중가수여서 떨어뜨렸다는 인순이의 주장은 설득력을 잃는다.
인순이도 “10월로 대관신청을 한 것은 실수다”라고 인정했다. 공연 연습 일정 등을 고려해 10월이 ‘공연하기 가장 아름다운 날짜였다’는 것. 그렇다고 대관 신청 탈락이 납득할 만한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임철빈 대표는 “예술의전당이 오프 시즌인 1~2월, 7~8월에 대중가수에게 오픈할 계획이었다는 말은 나중 에서야 들었다. 미리 알려주지도 않았다. 예전에 그럼 아무 때나 공연 가능한 날을 알려달라고 하니 이도 안 된다고 할 뿐이었다”고 말했다. 미리 고지를 안 했다는 것은 애초에 의지도 없었던 게 아니냐는 주장이다.
최근 문화체육관광부는 “국립극장 특성화 방안을 내걸고 예술의전당을 클래식전문공연장으로 운영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유인촌 장관은 “인순이의 예술의전당 대관 신청 탈락 소식을 들었다. 안타깝다. 대중가수들이 마음껏 무대에 설 수 있는 ‘대중가수용 예술의전당’을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인순이는 이와 관련 무작정 기다릴 순 없는 노릇이라고 하소연했다. 그는 “아직 부지가 정해졌다거나 설계도가 나왔다거나 하는 소식을 듣지 못했다. 그 공연장은 아마도 내 다음 세대를 위한 것이 아닐까 싶다. 나는 당장 무대에 서고 싶다”고 말했다.예술의전당 측은 언론을 통해 인순이 대관신청 탈락 이유를 “음향 무대 등 시설이 클래식 공연에 맞춰 설계됐다. 대중가수의 공연을 하려면 2~3일 시간을 들여 무대를 고쳐야 하는데, 그만큼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다”고 설명한 바 있다. 또 “전자음향에 맞지 않는 구조라서 메아리가 울릴 수도 있다”고 염려했다.
인순이는 이와 관련 “내가 원한 무대는 클래식 위주의 콘서트홀이 아니라 오페라 극장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클래식 중심의 공연장이 아닌, 뮤지컬, 퍼포먼스 등의 공연이 오르는 오페라 극장에 대관 신청을 했다. 또 내가 신청한 부분이 오페라 극장에 맞지 않다면, 그것도 공연장에 맞게 고칠 의향이 있다고 했다. 그런데도 안 된다고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임철빈 대표도 “콘서트홀은 클래식 공연장으로 음향 잔향 문제가 심해 대중가수의 공연을 하기 적합하지 않다. 하지만 오페라 극장은 클래식뿐 아니라 뮤지컬, 퍼포먼스 등 다양한 장르의 공연이 가능한 시스템으로 국내 최고의 음향시설을 갖췄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