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재생 ③대전 대흥동과 소제동

도시가 품은 시대를 산책하다다

“철도관사촌이 독특하고, 골목에 문학과 예술이 담겨 있다.” 부산서 소문을 듣고 소제동에 온 길이라 했다. 저녁 무렵 대흥동 어귀서 그들을 다시 만났다. 낡았지만 어딘가 세련된 분위기가 마음에 드는 눈치다. 대전 대흥동과 소제동이 뜨고 있다. 모두 오래된 풍경을 간직한 곳으로, 이 가을과 잘 어울린다. 
 

두 동네는 최근 10여년간 도시 균형 발전을 위한 재생 작업이 꾸준히 진행돼 도시가 걸어온 시간을 풍성하고 멋스런 이야기로 들려준다. 근대부터 100년이 넘는 시간을 타박타박 걸으며 만나고 싶다면 대흥동과 소제동을 찾아라. 대전역을 기준으로 대흥동은 서쪽, 소제동은 동쪽에 있어 연계해 둘러보기 좋다.
 

대전역 광장서 대전근현대사전시관으로 이어지는 중앙로 왼쪽이 대흥동이다. 1990년대만 해도 공공기관 이전과 상권 이동으로 침체에 빠졌는데, 지금은 다시 북적이는 거리가 됐다. 

빼놓을 수 없는 ‘벽화 투어’

2006년부터 도시 재생 사업을 꾸준히 진행한 데다 이곳에 둥지를 튼 젊은 문화 활동가와 예술가들이 노력한 결과다. 무엇보다 대흥동에는 시간에 시간이 더해진 풍경이 잘 남았다. 전문가들은 이 점에 문화 가치를 더한 도시 재생이 주효했다고 말한다. 
 

여행 포인트는 크게 세 가지다. ▲근대건축물을 허물지 않고 새롭게 활용한 건물 찾기 ▲오래된 건물 외벽에 그려진 그림 찾기 ▲낡은 건물을 리노베이션해 빈티지한 카페나 갤러리 찾기. 먼저 대흥동 일대는 근대건축물을 문화 공간으로 재활용한 곳이 많다. 


대전 충청남도청 구 본관(등록문화재 18호)은 지역 근현대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대전근현대사전시관으로, 대전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구 충청지원(등록문화재 100호)은 대전시립미술관 창작센터로, 초록 지붕이 우아한 대전여중강당(대전문화재자료 46호)은 대전갤러리로 다시 태어났다. 

테미고개 인근에 있는 충청남도 관사촌도 눈에 띈다. 충청남도지사공관(대전문화재자료 49호)을 비롯한 관사 10여 동이 문화 공간으로 변신할 예정이다. 
 

대흥동에선 벽화 투어도 빼놓을 수 없다. 대부분 2012년 대전시립미술관이 기획한 ‘예술을 통한 도시 재생전’의 결과물이다. 지금은 거의 사라졌지만 카페 ‘여전히 잘’(옛 산호다방) 건물 외벽에 흰 스웨터 벽화가 상징처럼 남아 있다. 낡은 담이나 배관에도 작은 그림이 보인다.
 

오래된 주택이나 상가 건물을 리노베이션한 빈티지 공간 역시 매력 있다. 카페 ‘초록지붕’ ‘여전히 잘,’ ‘희나리’ ‘하이드아웃’ ‘안도르’, 문화공간주차 ‘파킹’ 등이 그곳이다. 안도르는 대한제국 시대 대전부윤(지금의 대전시장)의 관사였고 파킹은 오래된 여관 주차장이었다. 
 

저물녘에는 으능정이문화의거리 쪽으로 길을 잡아보자. 이곳에 도심 활성화를 위해 조성한 스카이로드가 있다. 도로 위에 대형 LED 영상 시설물을 세워 화려한 밤 풍경을 연출한다. 오후 6시부터 10시까지(10~3월) 매시 정각에 50분씩 다양한 영상물이 머리 위로 흐른다(월요일 휴장). 오가는 길에 튀김소보로가 유명한 ‘성심당’이 보이면 잠시 들러 맛봐도 좋다. 
 

대전역 뒤쪽은 소제동이다. 1920~1930 년대 일본 철도 노동자의 집단 거주지로, 전란과 개발을 용케 피한 관사 40여 채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근현대를 거치며 집을 허물지 않고 형편이 허락하는 대로 조금씩 품을 넓혀, 조금은 삐뚤빼뚤하고 담장이 살짝 기울었다. 

대흥동,  근대건축물 문화공간으로 재활용
소제동,  빈집 손질해 창작·전시 공간으로


담장마다 키 큰 나무가 무성하고 길가에 구멍이 숭숭 뚫린 나무 전봇대가 여러 개다. 한자리에서 60년 세월을 보낸 ‘대창이용원’도 정겹다. 흔히 보지 못하는 것으로 가득 찬 동네다. 
 

이런 독특한 풍경에 소제창작촌이 자리한다. 지난 2012년 대전시 철도 문화유산 활용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운영하기 시작한 레지던시로, 빈집을 살짝 손질해서 활용하는 게 핵심이다. 

현재 활용 중인 공간은 ▲소제창작촌(작가 창작 공간) ▲재생공간293(전시 공간) ▲시울마실(게스트하우스) ▲시울2길 골목길(공동체 공간) 등 네 곳. 

소제창작촌의 유현민 프로그램디렉터는 “소제창작촌은 예술가들이 무상이나 저렴한 임대료로 빌린 집을 활용해 전시회를 열고, 때로 축제도 개최하며 주민과 함께 살아가는 곳”이라며 “올해는 특별히 시와 그림과 퍼포먼스로 소제동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흥동과 달리 주거지이므로 조용히 둘러봐야 하고, 재생공간293은 전화로 개방 여부를 확인하고 방문하는 것이 좋다. 시간이 넉넉하면 관사촌을 짓기 위해 매립했다는 소제호 방죽을 흔적 따라 걸어도 괜찮다. 허름한 골목을 품은 관사촌과 잘 어울리는 길이다. 
 

하루 종일 지치도록 도시 골목을 거닐었다면 도심에 깃든 자연으로 발걸음을 옮겨보자. 동구 가양동에 있는 우암사적공원은 소제동이란 이름을 지은 우암 송시열 선생이 제자에게 학문을 가르친 곳이다. 

버드나무가 울창한 연못이 남간정사(대전유형문화재 4호)나 기국정과 어우러진 풍치가 곱다. 남간정사 조금 위에는 우암 선생의 발자취가 담긴 유물관이 있어 함께 둘러보기 좋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도시를 보면 색다른 맛이 있다. 대동하늘공원과 보문산, 식장산이 멀리서 바라본 도시가 아름다운 곳이다. 대전역서 2.3km 정도 거리에 있는 대동하늘공원은 풍차 뒤로 대전 시내가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언덕이다. 

밤이면 풍차에 조명이 들어와 일대가 더욱 찬란해진다. 대전 시민이 ‘보물산’으로 부르는 보문산과 드라이브 코스로 소문난 식장산도 도시를 조망하기 좋다. 식장산은 임도로 정상부까지 오를 수 있어 야간 데이트 코스로 인기다. 
 

여독은 온천욕으로 풀자. 대전에는 <동국여지승람>에 나올 정도로 역사가 깊은 유성온천이 있다. 대규모 온천 단지에 마련된 무료 족욕체험장이 지친 여행자를 반긴다. 

여독은 온천욕으로

유성온천역서 가까워 찾기 쉽고, 오전 7시부터 오후 10시까지(4~ 10월) 뜨끈뜨끈한 물에 발을 담글 수 있다. 



<여행 정보>

당일 여행 소제동→대전근현대사전시관→대흥동 일대→으능정이문화의거리(스카이로드)  

1박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대전근현대사전시관→대흥동 일대→으능정이문화의거리(스카이로드) 
[둘째 날] 소제동→우암사적공원→대동하늘공원  

관련 웹 사이트 주소
- 대전관광(대전시청 문화관광 홈페이지) http://www.daejeon.go.kr/tou/ index.do
- 대전근현대사전시관 http://www.daejeon.go.kr/mor/main.do
- 으능정이문화의거리(스카이로드) http://www.skyroad.or.kr
- 대전문화재단 http://www.dcaf.or.kr
- 대전시립미술관 http://dmma.daejeon.go.kr
- 소제창작촌 http://www.facebook.com/sojaechangjakchon
- 동구축제관광 http://tour.donggu.go.kr/html/tour
- 중구문화관광 http://tour.djjunggu.go.kr
- 유성구문화관광 http://tour.yuseong.go.kr
- 문화공간주차 ‘파킹’ http://www.spaceparking.aub.kr

문의 전화
- 대전광역시청 관광진흥과 042)270-3972
- 대전광역시청 도시재생과 042)270-6303
- 대전종합관광안내센터 042)861-1330
- 대전역관광안내소 042) 221-1905
- 소제창작촌 010-5263-7729
- 으능정이문화의거리(스카이로드) 042)252-7100
- 대전시립미술관 창작센터 042)255-4700
- 문화공간주차 ‘파킹’ 042)254-5954
- 우암사적공원 042)673-9286
- 보문산 042)270-7860
- 식장산 042)274-1877
- 유성온천 족욕체험장 042)611-2114

대중교통 정보
[기차] 서울역-대전역, KTX 하루 70여회(05:05~23:30) 운행, 약 1시간 소요. 용산역-서대전역, KTX 하루 10~11회(06:15~20:50) 운행, 약 1시간 소요. 수서역-대전역, SRT 하루 40회(05:30~22:40) 운행, 약 50분 소요. 
*문의: 레츠코레일 1544-7788, http://www.letskorail.com SR 1800-1472, http://etk.srail.co.kr 
[버스] 서울-대전복합, 서울고속버스터미널서 하루 60여회(06:00〜다음 날 00:10) 운행, 약 2시간 소요. 
*문의: 서울고속버스터미널 1688-4700 고속버스통합예매 
http://www.kobus.co.kr 대전복합터미널 1577-2259, http://www.djbusterminal.co.kr  


자가운전
경부고속도로 대전 IC→동부네거리 금산·옥천 방면 좌회전→가양네거리 대전역 방면 우회전→성남네거리 금산·옥천·대전역(동광장) 방면 좌회전→계족로 850m→대전역(동광장) 방면 우회전→중앙로역 방향 직진→대전근현대사전시관 

숙박 정보
- 베니키아호텔대림: 중구 대종로505번길, 042)251-9500, http://www.daelimhotel.com
- 토요코인호텔 정부청사점: 서구 둔산중로134번길, 042)545-1045, http://www.toyoko-inn.com/korea
- 호텔그레이톤 둔산: 서구 둔산중로, 042)482-1000, http://www.graytone.co.kr
- 이안레지던스호텔: 서구 둔산로65번길, 042)487-3939, http://www.eanhotel.co.kr
- 레지던스호텔라미아: 서구 둔산로51번길, 042)334- 0100, http://www.hotellamia.com
- 크리스탈레지던스호텔: 중구 대종로452번길, 042) 255-2933, http://www.crystalht.co.kr
- 호텔아드리아: 유성구 온천로, 042)828-3636, http://www.hoteladria.co.kr
- 호텔리베라 유성: 유성구 온천서로, 042)823-2111, http://www.shinan.co.kr/yusong/index_yuseong.asp
- 장태산자연휴양림: 서구 장안로, 042) 270-7883, http://www.jangtaesan.or.kr  

식당 정보
- 성심당(튀김소보로·부추빵): 중구 대종로480번길, 1588-8069, 
http://www.sungsimdang.co.kr
- 진로집(두부두루치기·오징어두루치기): 중구 중교로, 042)226-0914
- 현대식당(닭볶음): 중구 중앙로130번길, 042)223-8922
- 내집식당(올갱잇국): 중구 대흥로121번길, 042)223-5083
- 대전갈비(돼지갈비): 중구 대전천서로, 042)254-0758
- 광천식당(두부두루치기·오징어두루치기): 중구 대종로505번길, 042)226-4751
- 신도칼국수(칼국수): 동구 대전로825번길, 042)253-6799
- 대선칼국수(칼국수·두부두루치기): 서구 둔산중로40번길, 042)471-0317
- 소나무집(오징어칼국수): 중구 대종로460번길, 042)256-1464
- 사리원면옥(냉면): 중구 중교로, 042)256-6506, 
http://www.sariwonfood.com
- 태화장(짬뽕): 동구 중앙로203번길, 042)256-2407

주변 볼거리
뿌리공원, 오월드, 한밭수목원, 이응노미술관, 대전 회덕 동춘당, 한밭교육박물관, 엑스포과학공원, 국립중앙과학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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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법률수석 부활 속셈

‘갑자기?’ 법률수석 부활 속셈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4·10 총선이 범야권의 승리로 끝났다. 집권여당은 참패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집권 3년차인 윤석열정부는 국정운영의 동력을 잃게 생겼다. 레임덕을 넘어 데드덕이라는 표현까지 나오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정치 인생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식물 대통령’으로 전락한 윤 대통령의 다음 행보는 엇일까? 속사정이야 어떻든 숫자만 놓고 봤을 때 이견이 없는 결과가 나왔다. 범야권은 192석을 얻어 ‘반윤 거야’ 전선을 형성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161석, 민주당의 위성정당 더불어민주연합 14석, 조국혁신당 12석, 개혁신당 3석, 새로운미래 1석, 진보당 1석 등을 모두 합친 수치다. 국민의힘은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 의석(18석)을 포함해 108석을 얻는 데 그쳤다. 완벽한 참패 식물 대통령 선거를 진두지휘한 각 당 대표의 희비도 엇갈렸다. 사법 리스크를 안고도 선거를 승리로 이끈 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정국의 주도권을 잡게 됐고 국민의힘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정치 생명에 큰 타격을 입었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은 실제 선거를 뛴 선수보다 더 큰 영향을 받게 됐다. 윤 대통령은 임기 내내 의회 주도권을 야당에 내준 상태로 정국을 운영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한다고 해도 여당의 이탈표를 걱정해야 한다. 총선이 끝나면서 권력의 무게추가 당으로 기울어지는 모양새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또 이미 거부권을 9차례나 사용한 이력이 민심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각 당은 이번 총선서 ‘정권 심판론’을 정면에 내세웠다. 민주당은 윤석열정부 심판, 국민의힘은 ‘이조(이재명-조국) 심판’ 프레임으로 유권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했다. 국민은 범야권에 의석을 몰아주면서 정부 심판의 손을 들어줬다. 윤석열정부에 대한 중간평가에 ‘낙제점’을 준 것이다. 윤석열정부는 당장 밀어붙이고 있던 정책에 차질을 빚게 됐다.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을 골자로 하는 의료개혁이 대표적이다. 윤 대통령은 총선 패배 메시지를 통해 의료개혁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드러냈지만 추진력에 대해서는 의문부호가 붙는다. ‘카르텔 타파’라는 국정기조도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 윤 대통령은 지난 16일, 총선 결과와 관련해 첫 육성 메시지를 내놨다. 총선 참패 후 엿새 만이다. 민정수석실 폐지 대선공약 민심 청취 명분 부활 예고 윤 대통령은 “총선을 통해 나타난 민심을 우리 모두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올바른 국정의 방향을 잡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음에도 국민들께서 체감하실 만큼의 변화를 만드는 데 모자랐다”며 “큰 틀에서 국민을 위한 정책이라 해도 세심한 영역서 부족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윤석열정부서 추진하고 있던 개혁은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윤 대통령은 “노동, 교육, 연금 등 3대 개혁과 의료개혁을 계속 추진하되, 합리적인 의견을 더 챙기고 귀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국회와의 긴밀한 협력을 말했지만 야당을 명시적으로 언급하진 않았다. 윤 대통령의 메시지에 야권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민주당 홍익표 원내대표는 윤 대통령의 메시지에 대해 “개탄스럽다”며 “오만, 독선, 불통 정치를 계속하겠다는 마이웨이 선언”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이번 총선서 확인한 민심은 국정기조 전면 전환과 민생경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할 방안을 제시해 달라는 주문”이라며 “윤 대통령은 국정 실패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민생경제의 잘못을 인정하고 실질적 대책과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이 총선 패배에 대한 목소리를 내면서 이후 내놓을 쇄신안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미 국무총리와 대통령비서실장 인선과 관련한 하마평이 나오는 중이다. 지난 17일에는 대통령실서 국무총리로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을, 비서실장에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을 고려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일단 대통령실에서는 “검토한 바 없다”고 대응한 상태다. 3대 개혁 밀어붙인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현재 비서실장 아래에 있는 공직기강비서관실과 법률비서관실을 관장할 ‘법률수석비서관실(가칭)’이 신설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민심 청취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민정수석이 존재할 당시 폐해로 여겨졌던 사정 기능은 제한하고 민심을 읽는 방향의 조직을 만들 것이라는 구체적인 언급도 나오고 있다. 이 과정서 사실상 민정수석실이 부활하는 게 아니냐는 의견이 나왔다. 민정수석실 폐지는 윤 대통령의 대선공약 중 하나였다. 윤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앞으로 대통령실 업무서 사정, 정보 조사 기능을 철저히 배제하고 민정수석실을 폐지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과거 사정기관을 장악한 민정수석실은 합법을 가장해 정적, 정치적 반대 세력을 통제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고 세평 검증을 위장해 국민 신상 털기와 뒷조사를 벌여왔는데 이런 잔재를 청산하겠다”고 말했다. 실제 윤석열정부 출범 직전 대통령실은 2실(비서실·국가안보실) 5수석(경제·사회·정무·홍보·시민사회) 체제로 개편됐다. 당시 당선인 신분이었던 윤 대통령이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청산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윤석열정부 출범 3개월 만에 정책기획수석이 신설되면서 2실6수석 체제가 됐다. 민정수석실서 맡고 있던 공직기강 업무와 인사검증 업무는 법률비서관, 법무부 등으로 이관됐다. 특히 법무부에 공직자 검증 업무를 전담하는 인사정보관리단이 신설되면서 당시 법무부 장관이었던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에 권력이 지나치게 집중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사정 기능 제한한다? 지난해 11월 윤 대통령은 정책실장을 신설하는 등 대통령실 직제를 3실6수석 체제로 개편했다. 개편 과정서 기존 수석들을 물갈이하면서 대통령실 2기 체제의 출범을 알렸다. 이때도 민정수석실 관련 언급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총선 패배 이후 대통령실 쇄신안에 법률수석이 거론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야당은 즉각 반발했다. 민심 청취는 표면용일 뿐 결국 윤 대통령이 사정정국을 조성하려는 의도를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민정수석실 폐지’라는 대선공약을 파기하고 여소야대 정국을 돌파하기 위한 자구책이라는 설명이다. 여기에 야당서 예고한 특검을 방어하려는 선제적 조치가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당초 민정수석실은 민심 청취 기능과 무관하게 운영됐다. 오히려 폐지 가능성이 나오고 있는 시민사회수석실이 민심을 듣는 역할을 해왔다. 민정수석은 고위공직자 인사 검증, 국정 관련 여론 수렴, 고위공직자 복무 동향 점검, 대통령 친인척 관리, 사정기관과 소통 등의 업무를 주로 했다. 하지만 역대 정부서 가장 부각됐던 기능은 국가정보원, 검찰, 경찰, 국세청, 감사원 등 5대 사정기관을 관리하는 것이었다. 실제 2000년 김대중정부서 폐지되기 전까지 이른바 ‘사직동팀’이 청와대 하명수사를 전담했다. 사직동팀은 경찰청 형사국 조사과를 일컫는 말이다. 윤 대통령 역시 당선인 시절 대통령 인수위원회 첫 과제로 민정수석실 폐지를 밀어붙이며 “사직동팀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한 바 있다. 대통령실은 법률수석을 신설하더라도 사정 기능은 제한하겠다는 뜻을 비쳤지만 의심의 눈초리는 여전하다. 김건희·채 상병 특검법 대기 신임 수석 검찰 출신 될 듯 민주당 고민정 최고위원은 지난 16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법률수석 신설은 앞으로 들이닥칠 영부인에 대한 특검 등을 방어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며 “이제 와서 법률수석비서관실을 신설한다는 것은 사법 리스크 방어 차원”이라고 주장했다. 21대 국회에 이어 22대 국회서도 여소야대 정국이 유지되면서 민주당 등 범야권은 ‘해병대 채 상병 사망사건 수사외압 의혹 특별검사법(채 상병 특검법)’과 ‘김건희 여사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특별검사법(김건희 여사 특검법)’ 등을 예고했다. 국민의힘서도 채 상병 특검법 수용과 관련해 의견이 갈리는 만큼 국회 통과 가능성이 제기된다. 윤 대통령은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 한 차례 거부권을 행사한 상태다. 192석을 확보한 범야권은 21대 국회서 채 상병 특검법이 좌절된다고 해도 22대 국회서 재추진한다는 뜻을 보이고 있다. 고민정 최고위원도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채 상병의 죽음 앞에 정치권이 더는 부끄럽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민주당서도 의지가 충분히 있고 국회서 당장 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돼있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김건희 여사 특검법도 22대 국회 개원 전후로 다시 도마에 오를 전망이다. 12석을 확보한 조국혁신당은 아예 22대 국회 1호 법안으로 김건희 여사 특검법을 공언했다. 민주당과 개혁신당 등이 조국혁신당에 동의한다는 뜻을 보인 만큼 추진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 높다. 국민의힘 내부서도 수용 여부에 대한 의견이 갈리고 있어 향후 상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정기관 잡고 흔드나 범야권이 다수 의석을 무기로 특검 정국을 예고하면서 윤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압박 수위가 높아지는 모양새다. 법률수석을 새로 만들려는 의도가 ‘방어’로 읽히는 분위기도 윤 대통령이 처한 상황이 녹록지 않기 때문으로 보인다. 심지어 총선이 마무리되면서 국민의힘에 대한 윤 대통령의 지배력 역시 작아진 상태라는 점도 법률수석 신설의 배경으로 꼽히고 있다. 이미 시작된 것으로 보이는 레임덕을 최대한 늦추기 위한 궁여지책이라는 말도 나온다. 신임 법률수석을 누가 맡게 될지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벌써부터 하마평이 돌고 있다. 검찰 출신들로 채워질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