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어 낚은 이재현 CJ그룹 회장

막판 뒤집기 한판승…‘제2의 전성기’ 맞았다

[일요시사=김성수 기자] 우여곡절 끝에 대한통운을 거머쥔 CJ그룹. 떡 돌리고 샴페인 터뜨리는 요란한 소리가 날만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조용하다 못해 고요하다. 마냥 웃고 떠들 때가 아니란 분위기다. 이재현 회장의 속내는 복잡하다. 앞에 놓인 숙제가 한두 가지가 아닌 탓이다. 어렵게 ‘대어’를 낚았지만 ‘어항’에 넣기까지 그야말로 ‘산 넘어 산’이다. 이 회장이 풀어야 할 현안들을 짚어봤다.

포스코 제치고 대한통운 인수 우선협상자 선정
처음 뒤지다 2조 ‘통큰 베팅’으로 전세 역전

CJ그룹이 대한통운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대한통운 주식매각 주체인 대우건설과 아시아나항공은 지난달 28일 포스코-삼성SDS 컨소시엄, CJ제일제당-CJ GLS 컨소시엄의 본입찰제안서를 평가한 뒤 CJ 측의 손을 들어줬다. 공동매각주간사인 산업은행과 노무라증권은 실사를 거쳐 이달 중 CJ그룹과 매매계약을 체결할 예정이다. 

이번 인수전에서 CJ그룹은 포스코 측에 비해 자금력 면에서 절대적으로 열세였다. 처음엔 포스코 컨소시엄 쪽으로 기울다가 극적인 반전이 이뤄진 것이다. 이는 이재현 회장의 ‘통큰 베팅’결과였다.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기준에서 인수가격은 전체 배점의 75%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수가 2조2000억원
예상가 6000억 상회

CJ그룹은 주당 20만원이 넘는 인수가격을 제시, 총 인수 제안 금액은 2조2000억원 정도로 추산된다. 당초 시장이 예상했던 주당 18만원대 수준인 1조5000억∼1조6000억원을 훌쩍 뛰어넘는 것으로, 물론 포스코 컨소시엄(주당 19만원씩 총 1조8000억원)보다 높은 가격이다.

전세를 역전시킨 CJ그룹의 베팅은 이 회장의 강력한 인수 의지에서 비롯됐다. 이 회장은 대한통운 인수를 그룹 시너지와 외형을 키울 수 있는 기회로 보고 과감한 베팅을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물류사업을 ▲식품서비스 ▲바이오·생명공학 ▲E&M(엔터테인먼트 미디어)과 함께 그룹 4대 핵심사업으로 삼은 이 회장은 대한통운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판단해 인수전을 직접 지휘했다. 2013년 그룹 목표 매출인 38조원(지난해 매출 18조원) 달성을 위해서도 대한통운을 꼭 인수해야 했다. 이 회장은 인수합병(M&A) 실무를 맡은 그룹 지주회사인 CJ㈜ 기획팀으로부터 실시간 보고를 받으며 “대한통운을 인수해 아시아 대표 물류기업으로 키우자”고 독려해왔다.

CJ그룹은 “물류회사 CJ GLS, 해외로 활발하게 진출하고 있는 CJ오쇼핑과의 시너지를 통해 대한통운을 그룹 내 주요 성장축으로 삼겠다”며 “2020년까지 매출 20조원을 달성해 DHL 등 세계적인 물류기업과 경쟁할 아시아 대표 기업으로 키울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 회장의 속내는 복잡하다. 앞에 놓인 숙제가 한두 가지가 아닌 탓이다. 어렵게 ‘대어’를 낚았지만 ‘어항’에 넣기까지 그야말로 ‘산 넘어 산’이다.

“그룹 외형 키울 기회다!” 이 회장 M&A 직접 진두지휘

우선 시너지에 대한 의문이 적지 않다. 업계 일각에선 CJ그룹이 이미 물류 계열사인 CJ GLS를 보유하고 있어 중복되는 사업이 많아 대한통운과의 인수 효과를 내기 어려울 것이란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CJ그룹은 오히려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고 일축했다. 회사 측은 “CJ는 지식형 물류회사로 보관 배송에 강점이 있는 반면 대한통운은 운송 항만 하역에 경쟁력이 있어 양사가 결합하면 물류 전 과정에서 서비스가 가능하다”며 “CJ 고객군(소비재 전기 전자 자동차부품)과 대한통운 고객군(군수 사료 곡물 철강)이 겹치지 않는 것도 시너지 효과를 높이는 대목”이라고 설명했다. 택배부문 중복에 대해선 “택배사업은 파이를 키워야 경쟁력이 생긴다”며 “택배사업은 규모의 경제가 관건인데 대한통운을 인수하면 글로벌 경쟁력을 키울 수 있다. 물류사업을 2020년까지 20조원 규모로 키워 글로벌 7대 전문 물류기업으로 육성하겠다”고 말했다.

대한통운 노조의 반발도 걸림돌이다. 앞서 포스코를 지지했던 노조는 CJ그룹 인수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노조는 지난달 29일 성명을 내고 “CJ그룹이 우선 협상 대상자로 선정된 것을 인정할 수 없다”며 “실사저지, 파업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CJ그룹의 인수를 막을 것”이라고 으름장을 놨다. 노조는 “지난 80여년 동안 국내 물류의 대동맥을 책임져 온 국내 최대의 물류회사인 대한통운의 미래 비전은 무시하고 인수전이 기업 간 자존심 싸움으로 변질됐다”며 “CJ가 과도한 금액을 제시함으로써 그 부담이 고스란히 대한통운 전 종업원들에게 전가돼 결국 고용도 불안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CJ그룹은 노조 달래기에 나섰다. 노조의 반발을 충분히 예상했던 만큼 차분히 대응하겠다는 방침이다.

이관훈 CJ㈜ 대표는 “CJ그룹은 우수한 역량을 가진 대한통운 임직원의 안정적 고용을 보장하며, 절대 인위적인 구조조정을 진행할 계획이 없다”며 “대한통운 노조와도 상생적인 발전관계를 구축하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CJ그룹은 창업이념이 인재제일”이라며 “그동안 국내외 다양한 업체들과의 M&A를 통해 성공적인 통합경험을 축적해 대한통운과도 유기적인 융합을 이룰 수 있을 것으로 자신한다”고 덧붙였다.

무엇보다 ‘승자의 저주’를 우려하는 시선도 있다. 대우건설을 인수한 대가로 유동성 위기에 몰린 금호아시아나그룹이 그랬고, GS그룹 등 국내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을 제치고 대우조선해양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던 한화그룹이 그랬다. 홈에버를 인수한 이랜드, 남광토건을 인수한 대한전선, 하이마트를 인수한 유진그룹 등도 모두 비슷한 고통을 겪어야 했다. 최근엔 현대그룹이 무리하게 현대건설을 삼켰다 도로 뱉기도 했다.

“실사저지, 파업”
노조 강하게 반발


시장에선 CJ그룹도 자칫 무리한 인수에 나섰다가 그룹 전체가 위험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했던 지난달 28일 대한통운의 종가는 11만1000원. CJ그룹이 주당 20만원이 넘는 인수가격을 제시한 점을 감안하면 경영권 프리미엄이 80%에 이르는 셈이다. 인수 경쟁이 과열되면서 인수가격이 적정 수준을 넘어섰다는 평가가 나오는 대목으로, 결국 CJ그룹이 ‘통큰 베팅’을 감당할 수 있을지가 물음표다.

M&A시장 관계자는 “최근 몇 년간 대형 인수전에 나섰다가 큰 코 다친 대기업이 한둘이 아니다”라며 “CJ그룹이 무리하게 판을 키우다 수렁에 빠진 기업들의 전철을 밟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전했다.

CJ그룹은 ‘승자의 저주’는 없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인수 대금 조달에 전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대한통운 인수 자금 2조2000억원은 50대50 투자로 컨소시엄을 구성한 CJ제일제당과 CJ GLS가 절반씩 부담하게 된다.

CJ제일제당은 보유 현금(약 1000억∼2000억원)에 1조원대의 삼성생명 주식을 유동화할 계획이다. CJ GLS는 CJ㈜를 대상으로 한 5000억원 유상증자와 5000억원 상당의 외부 차입을 통해 자금을 마련할 예정이다.

CJ그룹은 “인수가격이 다소 올랐지만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범위다. 1조5000억원 상당의 추가 차입 여력이 충분하다”며 “그룹의 연간 잉여 현금 흐름이 4000억∼5000억원에 달하기 때문에 대한통운 인수로 인해 자금 운영 안정성에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돈만 해결된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이 회장으로선 삼성과의 갈등이 이번 인수전에서 불거진 가장 큰 골칫거리다. 하루빨리 관계 복원이 시급하다.

[남은 숙제들]
1.시너지 효과
2.노조의 반발
3.승자의 저주
4.삼성과 관계
5.법적 공방전

CJ그룹은 삼성그룹과 ‘사촌기업’이다. 이재현 회장과 이건희 회장은 삼촌 조카 사이다. 둘 사이에 균열이 감지된 것은 본입찰을 나흘 앞둔 지난달 23일 삼성SDS가 포스코 쪽에 붙으면서다. 동시에 CJ그룹의 자문을 맡았던 삼성증권이 계약을 철회하면서 갑자기 CJ그룹과 삼성그룹간 갈등으로 비화됐다.

업계에선 삼성이 CJ에 등을 돌린 이유가 두 집안 사이의 오랜 앙금 때문이란 관측이 제기됐다. 실제 고 이병철 섬성그룹 창업주의 장남 이맹희씨(이재현 회장 부친)는 3남 이건희 회장에게 그룹 경영권을 넘기고 20년 넘게 야인생활을 하고 있는데, 이때부터 두 집안이 여러 차례 갈등을 빚어왔다.

1994년 CJ그룹이 삼성그룹에서 계열분리될 때 서로 마찰을 빚은 게 단적인 예다. 당시 한남동 이건희 회장 집에서 바로 옆에 있는 이재현 회장 집 정문이 보이도록 CCTV를 설치해 출입자를 감시하도록 한 사실이 드러나 감정의 골이 깊어질 대로 깊어졌었다.

삼성그룹 측은 “삼성SDS가 포스코 컨소시엄에 참여한 이유는 비즈니스적 판단이지 그룹 차원의 조직적 개입은 없었다”며 사태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CJ그룹 측은 삼성을 향해 대놓고 삿대질을 했다. CJ는 지난달 27일 보도자료를 통해 “비도덕적인 삼성증권의 행태에 배신감을 느낀다”며 “이번 사태로 인한 유무형의 손실에 대해 명백히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룹 관계자는 “삼성SDS의 지분 투자가 그룹 차원의 의사결정 없이 진행됐다고 믿을 수 없다”며 “삼성의 의도가 무엇인지 밝혀낼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한통운 인수전이 삼성가 집안싸움으로 흘러가자 CJ그룹은 “입찰 과정에서 삼성그룹과의 갈등을 지나치게 부각했다”며 홍보실장을 전격 교체하는 것으로 서둘러 봉합하려 했지만, 삼성과의 불편한 관계는 물론 홍보실장 경질 배경을 두고도 이런저런 뒷말이 끊이지 않고 있다.

법적 문제도 남아있다. CJ그룹은 삼성증권에 대해 강경 대응할 뜻을 밝힌 바 있다. CJ그룹은 “인수자문 계약을 철회한 삼성증권에 대해 손해배상 청구 소송 등 법적 책임을 물을 방침”이라며 “손해 내용으로는 삼성증권 측의 잘못으로 자문 서비스를 받지 못하게 된 점, CJ의 정보가 누출될 가능성, CJ가 인수 성공시 얻을 경제적 이익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경고했었다.

반면 포스코는 CJ그룹 선정 과정에 의문점이 있다며 법률 검토에 들어갔다. 포스코는 “인수 주체가 CJ㈜로 알려졌는데 실제 본입찰에는 CJ제일제당과 CJ GLS가 참여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입찰 주체가 바뀐 부분에 대해 법률적 문제가 없는지 의문이 든다”고 지적했다. 또 “CJ 측이 이사회 결의 내용을 공시한 적이 없으며 이사회 개최 여부도 불투명하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CJ그룹 측은 “법적으로 문제 될 것이 전혀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삼성가 갈등 비화
관계 복원 될까

우선협상대상자가 최종 승자는 아니다. M&A 전문가들은 “우선협상자로 CJ그룹이 선정됐지만 매각 작업이 완전히 마무리된 게 아닌 만큼 본계약까지 두고 봐야 한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예비협상대상자인 포스코도 “아직 인수전이 끝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를 잘 아는 CJ그룹은 내부 단속에 들어갔다. 이 회장은 임직원들에게 “끝까지 한 치의 흐트러짐 없는 자세를 유지해 달라”고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CJ그룹이 험난한 여정을 잘 마치고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을지 시선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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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 상병 특검’ 공수처 불편한 속내

‘채 상병 특검’ 공수처 불편한 속내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채 상병 특검’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야권의 4·10 총선 압승으로 더불어민주당의 움직임에도 속도가 붙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난감하기만 하다. 부족한 인력으로 인해 수사의 첫 단추도 끼우지 못하는 실정이다. 발 빠른 수사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공수처 안팎에서는 정치권의 책임 떠넘기기에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조직이 와해되기 직전인데 수사에 속도가 어떻게 나겠느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출신 한 변호사의 말이다. 요즘 공수처의 분위기는 참혹하다. 해병대 ‘채 상병 사건’으로 반전을 꾀하고 싶어도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특별검사(이하 특검) 목소리가 거세지면서 ‘비교 대상’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대통령실 압수수색? 채 상병 사건 특검법 추진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공수처의 분위기는 암흑 상태다. 검찰 제도를 보완해 ‘상설특검’ 명목으로 출범했음에도 ‘늑장·부실’ 수사 논란 속에 결국 사건 기록을 특검에 넘겨줘야 하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오는 5월2일, 임시국회를 열어 법안을 표결하자는 분위기다. 법안 통과를 위해서는 국회의장과 여당의 협조가 필요한데, 총선 이후 여당 일각서도 채 상병 특검에 동의하는 분위기가 표출되고 있다. 채 상병 특검 법안은 지난해 10월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뒤 180일의 숙려 기간을 거쳐 본회의 표결만 하면 언제든 통과할 수 있는 상황이다. 채 상병 사건 수사 갈래는 크게 두 가지다. 무리한 수색 지시 등 책임자를 가리는 본안 수사가 경북지방경찰청서 진행 중이고, 해병대 수사단의 초동 조사에 국방부와 대통령실 관계자가 개입했다는 외압 의혹은 공수처가 맡고 있다. 외압 핵심 피의자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주호주대사로 임명돼 부임 후 사퇴하는 과정서 대통령과 법무·외교부 장관의 직권남용 의혹도 공수처에 추가로 고발됐다. 야권이 특검을 통해 밝히려는 사안의 실체는 수사 외압에 집중돼있다. 특검이 통과되면 공수처가 내려던 실적이 특검으로 넘어가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민주당은 이 대사 임명 과정서의 추가 의혹도 특검법안을 수정 발의해 포함할 계획이다. 공수처는 수사의 무게를 일부 덜겠지만, 6개월 넘게 진행해온 사건 기록을 외부에 넘긴다는 건 또 다른 비판의 빌미를 제공하는 셈이다. 특검 추진 본격화…수사팀 의욕 잃어 “이럴 거면 왜 강조하나” 불만 증폭 공수처 출신 한 변호사는 “인력난 때문에 고전하는 상황이다. 내부 얘기를 들어보면 ‘죽을 맛’이란다. 채 상병 사건 수사는 최선을 다하려 했는데 특검이 언급되면서 수사팀의 의욕이 상실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수처법상 수사 범위와 인원 범위가 지나치게 제한돼있어 실질적인 수사 기능을 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설명이다. 공수처법은 공수처의 수사 범위를 현직 공직자와 그 가족, 퇴임 3년 이내 전직 고위공직자로 한정하고 있다. 공수처 검사와 수사관의 인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현재 공수처법이 규정하고 있는 검사와 수사관의 규모는 처·차장 포함 검사 25명, 수사관 40명이다. 공수처법을 추진할 당시 규모는 검사 30~50인, 수사관 50~70인이 제안됐지만 법무부와 국회의 논의를 거치면서 현재 정원으로 대폭 감소했다. 공수처 관계자는 “총선과 무관하게 지속적으로 인원 확대와 관련해 국회와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며 “검사의 신분보장을 위한 임기에 대해서도 개선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앞서 공수처는 최소한의 행정인력이라도 확보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 달라고 호소한 바 있다. 현행법상 행정인원 정원은 20명인데 지난 2022년 공수처는 행정직원 중 국·과장과 직제 파견자 등 7명을 제외하면 실제 가용인원이 13명에 불과해 수사관을 행정인력에 투입해야 할 상황에 놓인 바 있다. 공수처가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법 개정이 필수적이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특히 공수처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일치시켜 수사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수처는 ‘공수처법상 기소권 없는 사건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연구용역’을 발주하는 등 수사 대상과 기소 대상의 불일치로 발생하는 구속영장 논란을 정리하기 위한 연구에 착수하기도 했다. 인력난 가중화 지금까지 공수처가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한 상황을 보면 초기 단계에 불과하다. 지난해 12월 이 전 장관 등을 출국금지했고, 한 달 후인 지난 1월 압수수색에 착수했다. 이후 포렌식과 참고인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 전 장관을 비롯한 국방부 지휘부와 해병대 수뇌부 등에 대한 조사는 특검의 몫이 될 가능성도 있다. 경우에 따라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등으로 특검 수사가 확대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공수처와 경찰은 특검법 처리 여부를 주시하며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총선 국면서 논란의 중심에 선 공수처는 수사를 신속하게 진행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겠다는 입장이다. 공수처 지휘부 공백 상태가 영향을 줄 여지도 있다. 주요 피의자 소환 및 신병처리 등 주요 의사결정을 처장 대행인 부장검사가 결정하기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다. 만약 국회서 여야가 특검법 처리에 합의하는 수순을 밟으면 공수처도 새로 출범할 특검에 기록을 인계하기 위한 작업에 중점을 둘 가능성이 크다. 현재 본회의에 회부된 안은 민주당이 지난해 9월 발의한 법안이다. 민주당이 지난 3월, 이 전 장관이 주호주대사로 임명된 경위를 수사해야 한다는 별도의 특검안도 국회에 제출했기 때문에 이 두 법안이 병합되는 안도 거론된다. 본회의 회부 안건은 수사기간을 최장 100일로 정하고 있는데, 잔여 수사를 검찰에 이첩하도록 명시됐다. 경찰과 공수처가 시작한 수사가 특검을 거쳐 검찰 손에 넘어가는 것은 부자연스럽다는 말도 나온다. 민주당이 3월 발의한 안은 잔여수사 이첩 대상을 검찰과 공수처로 정했다. 단추도 못 끼워 민주당이 특검법 조항 일부를 양보하고 국민의힘이 수사 대상 확대에 동의하는 시나리오도 정치권을 중심으로 나온다. 이런 과정서 본회의 회부 안이 조정될 수도 있다. 이 가운데 이 전 장관은 최근 변호인을 통해 공수처에 “소환조사를 진행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 전 장관 측이 공수처에 소환조사를 요청한 것은 이번이 네 번째다. 이 전 장관 측 김재훈 변호사는 최근 공수처에 소환 촉구 의견서를 내고 “이 전 장관은 호주 대사직서도 물러났으나 공수처는 지금까지도 아무런 연락이 없다”며 “공수처의 이런 수사 방기 탓인지 정치권에서는 특검 필요성까지 제기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공수처에 보낸 의견서에서 “이첩 보류 지시는 직권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국방부 장관은 민간 수사기관으로의 사건 이첩에 대한 최종 승인권자이므로 인사권자가 인사안 결재 후 이를 취소·변경할 수 있듯이 그 승인을 변경할 수 있다”며 “해병대 수사단장에게 수사 권한이 있다느니, 수사단장에게 민간 수사기관으로의 이첩 권한이 있다느니 하는 것은 법 규정의 몰이해로부터 비롯된 억지”라고 주장했다. 이 전 장관 측은 ‘이 장관이 보고서를 회수하라고 지시하기 전에 대통령실 내선번호로 전화를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이 전 장관 측은 “이 전 장관은 대통령으로부터 (사단장을 빼라는)지시를 받은 사실이 없다”며 “당시 장관이 군사보좌관과 논의하는 과정서 ‘(초급 간부들까지 처벌 대상에 포함한다면)초급 간부들이 힘들어할 것 같다’는 의견을 나눴고 법무관리관실의 법리 검토를 거쳐야 한다고 판단해 이첩 보류를 지시했다”고 강조했다. 수사 인원 범위 제한적 법 개정 안되면 도루묵 이어 “재검토한 결과 8월24일 직접적인 혐의가 있는 2명을 경찰에 이첩했고, 해병대수사단 조사기록 원안도 그대로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 전 장관 측은 민주당이 추진하는 ‘채 상병 특검’도 비판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공수처의 1차 수사 결과도 나오지 않은 상황인데 무엇이 미흡하고 국민적 의혹이 남아 해소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냐”며 “특검 논란을 잠재울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은 공수처의 신속한 수사와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공수처 수장이 석 달째 공석인 점은 제도 지속 가능성에 의문을 더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최종 후보자 지명을 두 달 가까이 미루고 있다. 앞서 국회 공수처장후보추천위원회는 지난 2월29일 판사 출신 오동운(사법연수원 27기) 변호사와 검사 출신 이명순(연수원 22기) 변호사를 후보로 추천했다. 김진욱 전 처장과 여운국 전 차장이 임기 만료로 퇴임해 공수처가 ‘대행 체제’에 들어간 건 지난 1월 말부터다. 김선규 수사1부장이 처장 대행을 맡고 있지만, 지난달 제출한 사직서가 수리되지 않아 임시로 대행직을 수행 중이다. 최근 인사위원회서 연임이 불발된 수사1부 소속 김송경 검사(사법연수원 40기) 임기도 만료됐다. 김 대행이 이끄는 수사1부는 공기광 검사만 남게 된다. 별도 조직개편 계획도 없어 수사 부서 1개가 사실상 사라질 위기다. 윤 대통령이 공수처장 후보자를 지명해도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해야 임명이 가능하다. 21대 국회 임기는 내달 29일까지다. 22대 국회가 개원해도 원구성에 시일이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신속한 공수처장 공백 해소를 위해선 이달 안으로 후보 지명을 마쳐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수장 공백 장기화 우려 법조계에서는 특검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공수처법에 따르면, 공수처는 이 전 장관에 대한 수사권은 있지만 기소 권한이 없다. 수사를 마친 뒤 검찰에 사건을 넘기고 검찰이 기소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 구조다. 공수처 출범 당시 수사·기소권을 모두 줄 경우 일각에선 ‘무소불위 공수처’가 될 거란 우려가 제기되면서 공수처는 법관, 검사, 고위 경찰공무원에 대해서만 제한적 기소권을 갖게 됐다. 문제는 검찰이 채 상병 사건 기소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검찰을 관할하는 법무부는 지난달 8일, 공수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 전 장관의 출국금지를 해제했다. 사건 처리의 중립성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특검을 통해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