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나들이’ 예능 정치 득실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7.09.04 10:29:39
  • 호수 113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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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기는 정치인? 잿밥에 더 관심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과거라면 상상할 수 없던 일이 예능판서 펼쳐지고 있다. 정치인들의 예능 프로그램 출연 횟수가 늘어나고 있는 것. 정치인들이 2017년 예능 블루칩으로 자리매김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인지도’ ‘친숙한 이미지’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데 예능만큼 좋은 무대가 없기 때문이다. 과연 예능을 대중 정치인으로 거듭날 수 있는 기회의 장으로만 볼 것인가. <일요시사>는 정치인 ‘예능 나들이’의 득과 실을 살펴봤다.
 

JTBC 대표 프로그램 <썰전>은 정치가 예능의 소재로 통할 수 있다는 점을 증명했다. 올해로 방송 4년차인 이 프로그램은 수많은 이슈를 낳으며 시청률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지난 대선 기간에는 시청률 7% 이상을 기록하며 이슈의 발원지 역할을 톡톡히 했다. 수많은 시청자들이 썰전을 통해 한 주의 현안을 밀도 높게 살피고 있다.

예능 소재로
주목받는 정치

올해 <썰전>서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회차는 지난 3월16일 방송된 210회 방송이다. 시청률조사기관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당시 8.417%(전국, 유료방송가구 기준)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웬만한 공중파 예능 프로그램 이상의 시청률이다. 3월11일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탄핵 판결의 여파가 시청률 상승으로 이어진 결과였다.

<썰전>이 배출한 현역 국회의원이 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철희 의원은 <썰전> 초기 멤버로 출연해 인지도를 쌓았다. 국회의원 보좌관 생활을 끝내고 여러 대학의 강단에 올랐다가 민주당 전략기획위원회 상임 부위원장을 역임하며 현실 정치에 발을 들여놓았던 시기였다. 

<썰전>서 재치 있는 입담과 소탈한 모습을 보여준 그는 지난 20대 총선서 민주당 비례대표 8번으로 국회 입성에 성공했다.


이 의원이 ‘방송출연→인지도 상승→국회 입성’의 좋은 예라면 강용석 전 의원은 인지도 상승이 오히려 독으로 작용한 나쁜 예다. 

강 전 의원은 이 의원과 함께 <썰전>의 초기 멤버로 출연했다. 이내 이 의원과 합을 맞추며 예능 블루칩으로 발돋움했다. tvN 예능 프로그램 <SNL>에도 출연해 큰 호응을 얻었다. 새누리당의 공천을 따낼 것이란 예상이 지배적이었을 정도로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높은 곳에서 추락하면 상처가 크듯, 강 전 의원은 한창 주목을 받던 시기 ‘도도맘’과의 불륜 의혹으로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었다. 스캔들에 휩싸인 강 전 의원은 이후 모든 프로그램서 하차하며 정계 복귀의 꿈을 접어야만 했다.

인지도 ↑
구설도 ↑

정치인들의 예능 출연은 약일까, 독일까. 한마디로 ‘양날의 검’이다. 소탈하고 친숙한 이미지는 과거 정치인들이 보여줬던 권위적이고 부패한 모습과의 단절을 의미한다. 정계의 범위서 생각했을 때 대한민국에 만연한 정치 불신을 완화할 수 있다는 측면서 권장할 만한 행보다.

정치인 개인적으로도 예능 출연은 대중 정치인으로 거듭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과거 불명예 퇴진을 했던 정치인에게는 재기의 신호탄 역할을 하기도 한다. 대중의 호응을 얻어낸다면 정계 복귀는 더욱 쉬워질 것이 분명하다.

초·재선 의원에게는 자신의 소신과 색깔을 알릴 수 있는 무대다. ‘인지도 = 재선 가능성’은 수많은 시간을 통해 증명된 정치권의 공식이다. 방송 출연 횟수 증가가 재선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상대적으로 의정보고활동에 제약이 큰 초선 비례대표에게 예능 출연은 지역구 의원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발판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썰전>뿐 아니라 수많은 예능 프로그램에 정치인의 출연이 잦아지고 있다. 방송가도 이런 정치인의 니즈(needs)를 알고 다양한 형태의 프로그램을 런칭하고 있다.

정치인들의 출연이 잦았던 컨셉은 토크쇼 형태의 방송이다. <썰전>도 이러한 형태의 방송 중 하나다. 자신의 전문 분야에 대해 유창한 언변으로 장시간 말할 수 있다는 점이 정치인들에게 매력적이다.

특히 대선과 같이 중요한 정치 이벤트를 앞두고 있을 때 후보들은 이러한 토크쇼에 출연하는 것을 선호한다. 

문재인 대통령도 후보 시절 <썰전>에 출연해 자신의 비전을 제시하고, 의혹을 해명하는 시간을 가진 바 있다. 문 대통령은 당시 보수논객인 전원책 변호사에게 “나는 전 변호사님이 저보다 선배인 줄 알았어요”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문 대통령 외에도 안희정·이재명·안철수·유승민·심상정 등 유력 대선주자들이 출연해 화제가 됐다. 과거에도 MBC <무릎팍도사>에 안철수 후보, SBS <힐링캠프>에 박근혜·문재인 후보가 출연해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바 있다.

방송가 찾는 의원 급증, 블루칩
토크쇼 출연 여전, 전문성 어필

TV조선의 정치 토크쇼 <강적들>은 전·현직 국회의원들이 고정으로 출연한다. 새누리당 유정현 전 의원을 MC로,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 장제원 의원, 바른정당 이준석 노원병 당협위원장이 방송을 이끌고 있다.

지난달 12일 방송서 장 의원은 자신의 치부를 서슴없이 드러내 화제가 된 바 있다. 

“나 자신의 위치가 많이 변한 상황”이라며 “잃어버린 신뢰부터 찾아야 할 것 같다”고 발언한 것. 최순실 사태 때 ‘청문회 스타’로 거듭났던 그였지만 ‘자유한국당 복당 사태’ ‘아들 성매수 논란’으로 힘든 나날을 보낸 것을 자조적으로 표현한 말이었다.

채널A <외부자들>을 찾는 정치인의 발길도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최근 한국당 나경원 의원이 출연해 한나라당 전여옥 전 의원과 ‘여걸 대결’을 펼쳐 화제가 됐다. 
 

지난달 22일 나 의원은 북핵 사태 해법에 대해 “핵무기는 절대무기다. 절대무기는 절대무기로만 막을 수 있다”며 전술핵 배치 찬성 입장을 밝히자 전 전 의원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같은 군사 협의체가 없는 아시아서 이는 공허한 주장”이라고 비판하는 등 신경전을 펼쳤다.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KBS 2TV 예능 프로그램 <냄비받침>에 유력 정치인들의 출마 러시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13일 바른정당 유승민 의원을 시작으로 정의당 심상정 의원, 안희정 충남도지사, 민주당 추미애 대표, 한국당 홍준표 대표, 민주당 손혜원 의원, 한국당 나경원 의원, 정의당 노회찬 원내대표, 바른정당 이혜훈 대표 등이 연이어 출연했다.

전문성→인간적
토크쇼의 변모

<냄비받침>은 앞서 토크쇼와는 컨셉이 다르다. 현안보다 정치인 개인의 인간적인 모습에 주안점을 두고 대화가 이루어진다. 이 때문에 훨씬 대중적이고 소탈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지난달 1일 방송된 손혜원·나경원 의원 편이다. 

당시 ‘정치인의 외모 비교’에 대해 나 의원은 “문 대통령의 외모가 별로라고 생각하느냐”고 손 의원에게 질문하자 “홍준표 대표보다는 조금…”이라고 답했다. 이어 나 의원이 “문 대통령보다 유승민, 안철수 후보가 내 스타일”이라고 덧붙이자 손 의원은 “취향이 이상하다”라고 가감 없이 말했다.


좀처럼 보기 힘든 정치인의 자상한(?) 모습도 확인할 수 있다. 

지난달 25일 <냄비받침>에 출연한 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과거 민주당 추미애 대표에게 했던 “집에 가서 애나 봐라”는 발언에 대해 사과했다. 

추 대표에 대한 첫 인상을 묻는 질문에는 “사법연수원 같은 반이었는데 그 당시에도 미인이었다”며 “그런데 2년 동안 말 한마디 건넨 적이 없었다”고 회고하는 등 기존 ‘스트롱맨’ 이미지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친분이 있는 두 정치인이 동시 출격하는 형태도 추세 중 하나다. 최근 <냄비받침>서 바른정당 이혜훈 대표, 정의당 노회찬 원내대표가 정치계 ‘남사친-여사친’으로 케미를 맞췄다. 두 사람은 지난 2004년 12월 말 동남아 쓰나미 재난이 발생했을 당시 국회 시찰단으로 파견돼 8박9일 고락을 함께 나누며 동지 같은 관계가 됐다는 후문을 전했다.
 

이어 두 사람의 진솔한 모습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대표는 정치에 입문한 계기를 밝히는 부분에서 셋째를 출산할 당시를 회고했다. 임신한 사실을 숨기고 회사 산행을 하던 중 산통을 느껴 출산했는데 회사 측이 “또 출산휴가를 쓰냐”며 화를 냈다는 것. 

워킹맘의 비애를 느낀 이 대표는 이때 정계 진출을 결심했다고 털어놨다.

노 원내대표는 사회자인 이경규와의 인연을 전했다. “이경규씨 친형과 잘 아는 사이”라고 운을 땐 그는 “이경규씨, 초등학교 때 많이 맞고 다녔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가족·음악 예능까지 활동폭 넓혀
인기영합으로 재선? 부작용 우려

최근 방송가서 주류를 이루고 있는 방송 컨셉은 가족관찰 예능이다. 최근 SBS는 일주일 중 닷새 저녁에 가족관찰 예능을 편성했을 정도다. ‘가족+관찰’이라는 예능계 트렌드를 접목한 형태다. 유력 인사가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브라운관을 통해 시청자들을 찾아간다.

대표적인 가족관찰 예능 중 하나인 SBS <동상이몽2-너는 내 운명>에는 이재명 성남시장이 부인 김혜경씨와의 알콩달콩한 평소 모습을 여과 없이 공개했다. 

소신 있는 발언으로 ‘사이다’라는 발명을 얻은 이 시장이지만, 방송에서는 평범한 부부의 생활상을 보여줘 ‘성남 고길동’이라는 친근한 별명도 얻었다. 주말에 늦잠 자고 소파에 누워 뒹굴거리는 모습이 일반 가정과 큰 차이가 없었다. 

휴가 때 제주도 풀빌라를 원하는 아내의 소망을 멀리하고 바다 배낚시를 하러 가는 모습은 영락없는 우리네 그것과 같은 모습임을 보여줬다. 이 시장의 이 같은 예능 나들이를 지켜본 정치권 일각에선 경기도지사 선거 출마를 염두에 두고 대중성을 강화하는 행보 아니냐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또 다른 가족관찰 예능 tvN <둥지탈출>에는 민주당 기동민 의원이 아들 기대명과 함께 출연해 정치인이 아닌 아버지로서의 모습을 보여줬다. 이 프로그램은 유력 인사의 2세들이 좌충우돌하는 모습을 부모들이 지켜보는 SBS <미운우리새끼>의 컨버전(conversion) 형태다.

방송가의 파격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22일 KBS 2TV <불후의 명곡> 측은 국회의원 특집을 방송한다고 밝혔다. 비록 KBS 총파업 사태로 녹화가 잠정 연기된 상태지만, 현직 국회의원의 가요 예능 출연 소식은 시청자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각 정당을 대표하는 현직 국회의원들이 출연해 가수들과 팀을 이뤄 듀엣 무대를 펼치는 기획이다. 앞서 민주당 표창원 의원, 한국당 장제원 의원, 국민의당 장정숙 의원, 바른정당 하태경 의원, 정의당 추혜선 의원 등의 출연이 예정됐으나 표창원‧장제원 의원은 KBS 총파업을 지지하며 해당 프로그램 출연을 취소한 상태다.

이렇듯 예능 나들이에 나선 정치인을 두고 ‘폴리테이너 2.0’ 시대라도 한다. 폴리테이너(Politainner)는 정치인(Politician)과 예능인(Entertaniner)의 합성어다. 과거 정치권에 진출했던 연예인이 1세대라면 2세대는 정치인이 방송 프로그램을 누비는 것을 일컫는다.

폴리테이너 2세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입법기관 본업에 충실하라는 지적이 대표적이다. 국민의 혈세를 월급으로 받는 국회의원이 예능 출연으로 가외수입을 버는 모습을 불편한 시선으로 보는 사람도 분명 존재한다.

가족예능 출연
집·일상 공개

무엇보다 자칫 정치를 ‘희화화’ 내지는 왜곡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정치인의 예능 출연이 정치를 보다 친숙하게 여기게 만드는 부분도 있지만, 전문성이 떨어지는 패널과 가십에만 집중하는 질문 등으로 현안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방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문제를 일으킨 정치인들이 ‘이미지 세탁’을 위한 창구로 악용할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대선후보의 공약, 정치인이 발의한 법안보다 이미지에만 치중하는 정치로 변모할 수 있다는 점도 지적사항 중 하나다. 인기영합주의로 재선에 성공하는 정치인의 등장을 걱정하는 시선도 존재한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남자유담’ 기동민 아들 화제
훈훈한 외모 “연예인 꿈 없어요”

tvN <둥지탈출>에 출연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기동민 의원의 아들 기대명의 훈훈한 외모가 화제다. 바른정당 유승민 의원의 딸 유담의 이름을 따 ‘남자유담’이란 별명을 얻었을 정도다. 유담은 지난 대선기간 동안 연예인에 버금가는 외모로 큰 관심을 받은 바 있다.

남다른 외모를 가졌기에 일각에서는 그가 연예계 진출을 노리고 방송에 출연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그러나 그는 지난 7월10일 진행된 제작발표회서 “나는 연예인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가 아무것도 없었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며 “지금 평범한 대학생이고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꿈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아직 연예인은 생각해 본 적은 없다”고 일축했다.

연예계 진출 노리고 방송 출연?
“한번도 생각해 본 적 없다” 일축

이어서 그는 “현재는 로스쿨 진학을 위해 공부하고 있다”며 “개인적으로 촬영하면서 오늘 하루 겪은 일을 공유하고 느낀 점을 이야기하고 내일 어떻게 해야 더 발전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들이 좋은 경험이 됐다”고 자신의 꿈을 밝혔다.

한때 <둥지탈출>은 ‘연예인 세습’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유력 연예인 2세들의 ‘자립 어드벤처’를 그리고 있어 방송사에서 대놓고 밀어주기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실제 출연자 6명 중 연예인 지망을 꿈꾸는 학생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됐다. 부모의 후광으로 쉬운 연예계 데뷔를 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제작자인 김유곤 PD는 발표회서 “낯선 곳에서 잘 모르는 친구들과 살아보고 싶은 아이들을 선발했다. 이야기를 나누며 아이들에게서 진정성을 봤다”며 “다르다는 느낌을 받으실 것”이라고 설명했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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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법률수석 부활 속셈

‘갑자기?’ 법률수석 부활 속셈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4·10 총선이 범야권의 승리로 끝났다. 집권여당은 참패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집권 3년차인 윤석열정부는 국정운영의 동력을 잃게 생겼다. 레임덕을 넘어 데드덕이라는 표현까지 나오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정치 인생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식물 대통령’으로 전락한 윤 대통령의 다음 행보는 엇일까? 속사정이야 어떻든 숫자만 놓고 봤을 때 이견이 없는 결과가 나왔다. 범야권은 192석을 얻어 ‘반윤 거야’ 전선을 형성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161석, 민주당의 위성정당 더불어민주연합 14석, 조국혁신당 12석, 개혁신당 3석, 새로운미래 1석, 진보당 1석 등을 모두 합친 수치다. 국민의힘은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 의석(18석)을 포함해 108석을 얻는 데 그쳤다. 완벽한 참패 식물 대통령 선거를 진두지휘한 각 당 대표의 희비도 엇갈렸다. 사법 리스크를 안고도 선거를 승리로 이끈 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정국의 주도권을 잡게 됐고 국민의힘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정치 생명에 큰 타격을 입었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은 실제 선거를 뛴 선수보다 더 큰 영향을 받게 됐다. 윤 대통령은 임기 내내 의회 주도권을 야당에 내준 상태로 정국을 운영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한다고 해도 여당의 이탈표를 걱정해야 한다. 총선이 끝나면서 권력의 무게추가 당으로 기울어지는 모양새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또 이미 거부권을 9차례나 사용한 이력이 민심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각 당은 이번 총선서 ‘정권 심판론’을 정면에 내세웠다. 민주당은 윤석열정부 심판, 국민의힘은 ‘이조(이재명-조국) 심판’ 프레임으로 유권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했다. 국민은 범야권에 의석을 몰아주면서 정부 심판의 손을 들어줬다. 윤석열정부에 대한 중간평가에 ‘낙제점’을 준 것이다. 윤석열정부는 당장 밀어붙이고 있던 정책에 차질을 빚게 됐다.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을 골자로 하는 의료개혁이 대표적이다. 윤 대통령은 총선 패배 메시지를 통해 의료개혁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드러냈지만 추진력에 대해서는 의문부호가 붙는다. ‘카르텔 타파’라는 국정기조도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 윤 대통령은 지난 16일, 총선 결과와 관련해 첫 육성 메시지를 내놨다. 총선 참패 후 엿새 만이다. 민정수석실 폐지 대선공약 민심 청취 명분 부활 예고 윤 대통령은 “총선을 통해 나타난 민심을 우리 모두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올바른 국정의 방향을 잡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음에도 국민들께서 체감하실 만큼의 변화를 만드는 데 모자랐다”며 “큰 틀에서 국민을 위한 정책이라 해도 세심한 영역서 부족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윤석열정부서 추진하고 있던 개혁은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윤 대통령은 “노동, 교육, 연금 등 3대 개혁과 의료개혁을 계속 추진하되, 합리적인 의견을 더 챙기고 귀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국회와의 긴밀한 협력을 말했지만 야당을 명시적으로 언급하진 않았다. 윤 대통령의 메시지에 야권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민주당 홍익표 원내대표는 윤 대통령의 메시지에 대해 “개탄스럽다”며 “오만, 독선, 불통 정치를 계속하겠다는 마이웨이 선언”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이번 총선서 확인한 민심은 국정기조 전면 전환과 민생경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할 방안을 제시해 달라는 주문”이라며 “윤 대통령은 국정 실패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민생경제의 잘못을 인정하고 실질적 대책과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이 총선 패배에 대한 목소리를 내면서 이후 내놓을 쇄신안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미 국무총리와 대통령비서실장 인선과 관련한 하마평이 나오는 중이다. 지난 17일에는 대통령실서 국무총리로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을, 비서실장에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을 고려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일단 대통령실에서는 “검토한 바 없다”고 대응한 상태다. 3대 개혁 밀어붙인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현재 비서실장 아래에 있는 공직기강비서관실과 법률비서관실을 관장할 ‘법률수석비서관실(가칭)’이 신설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민심 청취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민정수석이 존재할 당시 폐해로 여겨졌던 사정 기능은 제한하고 민심을 읽는 방향의 조직을 만들 것이라는 구체적인 언급도 나오고 있다. 이 과정서 사실상 민정수석실이 부활하는 게 아니냐는 의견이 나왔다. 민정수석실 폐지는 윤 대통령의 대선공약 중 하나였다. 윤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앞으로 대통령실 업무서 사정, 정보 조사 기능을 철저히 배제하고 민정수석실을 폐지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과거 사정기관을 장악한 민정수석실은 합법을 가장해 정적, 정치적 반대 세력을 통제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고 세평 검증을 위장해 국민 신상 털기와 뒷조사를 벌여왔는데 이런 잔재를 청산하겠다”고 말했다. 실제 윤석열정부 출범 직전 대통령실은 2실(비서실·국가안보실) 5수석(경제·사회·정무·홍보·시민사회) 체제로 개편됐다. 당시 당선인 신분이었던 윤 대통령이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청산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윤석열정부 출범 3개월 만에 정책기획수석이 신설되면서 2실6수석 체제가 됐다. 민정수석실서 맡고 있던 공직기강 업무와 인사검증 업무는 법률비서관, 법무부 등으로 이관됐다. 특히 법무부에 공직자 검증 업무를 전담하는 인사정보관리단이 신설되면서 당시 법무부 장관이었던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에 권력이 지나치게 집중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사정 기능 제한한다? 지난해 11월 윤 대통령은 정책실장을 신설하는 등 대통령실 직제를 3실6수석 체제로 개편했다. 개편 과정서 기존 수석들을 물갈이하면서 대통령실 2기 체제의 출범을 알렸다. 이때도 민정수석실 관련 언급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총선 패배 이후 대통령실 쇄신안에 법률수석이 거론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야당은 즉각 반발했다. 민심 청취는 표면용일 뿐 결국 윤 대통령이 사정정국을 조성하려는 의도를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민정수석실 폐지’라는 대선공약을 파기하고 여소야대 정국을 돌파하기 위한 자구책이라는 설명이다. 여기에 야당서 예고한 특검을 방어하려는 선제적 조치가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당초 민정수석실은 민심 청취 기능과 무관하게 운영됐다. 오히려 폐지 가능성이 나오고 있는 시민사회수석실이 민심을 듣는 역할을 해왔다. 민정수석은 고위공직자 인사 검증, 국정 관련 여론 수렴, 고위공직자 복무 동향 점검, 대통령 친인척 관리, 사정기관과 소통 등의 업무를 주로 했다. 하지만 역대 정부서 가장 부각됐던 기능은 국가정보원, 검찰, 경찰, 국세청, 감사원 등 5대 사정기관을 관리하는 것이었다. 실제 2000년 김대중정부서 폐지되기 전까지 이른바 ‘사직동팀’이 청와대 하명수사를 전담했다. 사직동팀은 경찰청 형사국 조사과를 일컫는 말이다. 윤 대통령 역시 당선인 시절 대통령 인수위원회 첫 과제로 민정수석실 폐지를 밀어붙이며 “사직동팀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한 바 있다. 대통령실은 법률수석을 신설하더라도 사정 기능은 제한하겠다는 뜻을 비쳤지만 의심의 눈초리는 여전하다. 김건희·채 상병 특검법 대기 신임 수석 검찰 출신 될 듯 민주당 고민정 최고위원은 지난 16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법률수석 신설은 앞으로 들이닥칠 영부인에 대한 특검 등을 방어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며 “이제 와서 법률수석비서관실을 신설한다는 것은 사법 리스크 방어 차원”이라고 주장했다. 21대 국회에 이어 22대 국회서도 여소야대 정국이 유지되면서 민주당 등 범야권은 ‘해병대 채 상병 사망사건 수사외압 의혹 특별검사법(채 상병 특검법)’과 ‘김건희 여사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특별검사법(김건희 여사 특검법)’ 등을 예고했다. 국민의힘서도 채 상병 특검법 수용과 관련해 의견이 갈리는 만큼 국회 통과 가능성이 제기된다. 윤 대통령은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 한 차례 거부권을 행사한 상태다. 192석을 확보한 범야권은 21대 국회서 채 상병 특검법이 좌절된다고 해도 22대 국회서 재추진한다는 뜻을 보이고 있다. 고민정 최고위원도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채 상병의 죽음 앞에 정치권이 더는 부끄럽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민주당서도 의지가 충분히 있고 국회서 당장 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돼있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김건희 여사 특검법도 22대 국회 개원 전후로 다시 도마에 오를 전망이다. 12석을 확보한 조국혁신당은 아예 22대 국회 1호 법안으로 김건희 여사 특검법을 공언했다. 민주당과 개혁신당 등이 조국혁신당에 동의한다는 뜻을 보인 만큼 추진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 높다. 국민의힘 내부서도 수용 여부에 대한 의견이 갈리고 있어 향후 상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정기관 잡고 흔드나 범야권이 다수 의석을 무기로 특검 정국을 예고하면서 윤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압박 수위가 높아지는 모양새다. 법률수석을 새로 만들려는 의도가 ‘방어’로 읽히는 분위기도 윤 대통령이 처한 상황이 녹록지 않기 때문으로 보인다. 심지어 총선이 마무리되면서 국민의힘에 대한 윤 대통령의 지배력 역시 작아진 상태라는 점도 법률수석 신설의 배경으로 꼽히고 있다. 이미 시작된 것으로 보이는 레임덕을 최대한 늦추기 위한 궁여지책이라는 말도 나온다. 신임 법률수석을 누가 맡게 될지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벌써부터 하마평이 돌고 있다. 검찰 출신들로 채워질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