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상생경영 모범 함영준 오뚜기 회장

대통령도 엄지척 ‘미담 자판기’

[일요시사 취재1팀] 박호민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후 처음으로 주요 기업인들과 회동했다. 이번 회동이 눈길을 끈 것은 오뚜기 때문이다. 재계서열이 초청 명단에 포함된 기업보다 낮지만 오뚜기의 윤리경영이 재계에 미치는 ‘울림’이 크다는 청와대의 판단에서다. 연일 화제가 되고 있는 오뚜기의 과거와 현재를 조명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7, 28일 청와대 상춘재 앞에서 호프미팅을 열고 주요 기업인들과 대화를 나눴다. 27일과 28일에 걸쳐 총 15개 기업의 기업인들이 초청됐다. 이 자리에 참석한 중견기업은 오뚜기 함영준 회장이 유일했다.

“부담스럽다”
겸손한 모습

오뚜기가 호프미팅에 참석한 이유는 명쾌했다. 호프미팅을 주최하기 전인 지난 23일 청와대는 일정을 설명하며 “오뚜기는 상생협력, 일자리 창출 부문서 모범적 기업이라 초청해 격려하고자 했다”고 오뚜기에 대해 따로 언급했다.

미팅 당시에 청와대의 배려도 돋보였다. 문 대통령은 호프미팅에 도착해 “요즘 젊은 사람들은 오뚜기를 갓뚜기(god+오뚜기)로 부른다면서요”라고 덕담을 건넸다.

이어 “새 정부 경제정책에 부합하는 기업모델이니 노하우를 전수해달라”며 “기업에게 국민들 성원이 가장 큰 힘이니 앞으로 발전할 수 있는 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함 회장은 “(갑작스런 관심이) 부담스럽다”면서도 “더욱 열심히 하겠다. 감사하다”고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함 회장은 또 “중소기업과의 협력관계를 30년 이상 유지하며 서로 성장해왔다”며 “앞으로도 중소기업과의 협력을 계속 늘려나갈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상춘재 안으로 들어왔을 때에도 청와대의 오뚜기에 대한 배려가 엿보였다. 상춘재 안에선 자리 배정이 돼있었는데 함 회장은 문재인 대통령 오른쪽 자리에 앉은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옆자리에 착석했다.

계속 쏟아지는 
‘갓뚜기’ 신화

청와대 초청으로 오뚜기의 관심은 더욱 고조되는 양상이다. 사실 최근 오뚜기가 갓뚜기로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식품회사로서의 확고한 자리를 굳히고 있는 기업이다. 

오뚜기는 다방면으로 사업 영역을 넓힌 다른 기업과는 달리 식품관련 사업에 집중해 50년 가까이 사업을 키워나가고 있다. 오뚜기의 주요 제품 가운데 업계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제품은 30가지가 넘는다. 그 배경에는 함태호 창업주와 장남 함 회장의 경영자로서 능력이 주효했다는 평이 나온다.

오뚜기는 1969년 함태호 창업주가 그 모체를 창립했다. 1971년 풍림 식품공업주식회사로 상호를 변경했으며, 1973년 오뚜기 식품공업주식회사로 상호를 다시 변경한 뒤 오뚜기란 상호를 지금까지 쓰고 있다.
 


함 회장은 풍림상사를 창립하면서 카레를 선보였다. 1971, 1972년 잇달아 선보인 케첩과 마요네즈는 함 회장이 국내 소비자에게 처음 소개한 제품이다.

청와대 15명 기업인 초청 간담회
중견기업은 오뚜기 함 회장 유일

오뚜기는 토종기업이라는 한계를 극복하고 케첩과 마요네즈 시장에서 입지를 굳혔다. 전세계 시장서 유통되고 있는 케첩의 절반 이상이 미국산 제품인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이란 평가가 나온다. 

오뚜기는 하인즈, 유니레버 등 전 세계 1등 기업들에게 밀리지 않고 평균 시장 점유율 70~80%를 지켰다. 

실제로 세계 최대 케첩 회사인 미국의 하인즈가 80년에 국내에 진출했을 때는 오뚜기와 10년 넘게 점유율 전쟁을 치렀다. 함 회장은 “우리 시장을 지켜내야 한다는 책임감을 갖고 싸웠기 때문에 경쟁서 이길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서민 식품
48년 외길

라면 부분의 성장은 함 회장의 뚝심 때문으로 평가된다. 함 회장은 한양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서던캘리포니아 대학교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오뚜기에 입사했으며, 2000년부터 오뚜기 사장으로 취임해 회사 경영을 이끌었으며, 2010년부터 회장직에 올라 회사를 대표하고 있다. 오뚜기는 1987년 라면회사로 이름을 알린 청보식품을 인수하면서 본격적으로 라면시장에 뛰어들었다. 

오뚜기 내부서도 라면 사업 진출에 이견이 갈렸다. 당시 라면업계는 신라면과 삼양라면이 양분하고 있던 시기였기 때문이었다. 사업진출 초기 오뚜기가 출시한 라면은 시장의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1988년 야심차게 준비한 진라면 역시 출시 초기 소비자의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 이미 형성된 소비자의 입맛을 바꾸기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또한 연예인 마케팅 중심으로 시장을 공략했던 청보식품의 원천 기술 수준이 높지 않았던 것도 시장 진입을 어렵게 만든 요소였다. 
 

하지만 제품에 대한 연구에 집중한 결과 시장서 오뚜기라면이 갖는 위치는 점점 올라가기 시작해 마침내 양강 구도를 깼다. 2013년 하반기 삼양라면을 누르고 시장점유율 2위로 올라선 것. 

닐슨코리아 자료에 따르면 오뚜기는 2013년 14.1%의 점유율로 삼양라면을 따돌리고 업계 2위로 올라섰다. 이후 오뚜기는 농심의 아성에 도전하고 있다. 2014년 16.2%, 2015년 18.3%의 점유율로 꾸준한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농심은 2015년 기준 61.6%의 점유율을 기록할 정도로 업계서 압도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의 점유율을 살펴보면 오뚜기의 추격세가 매서운 양상이다. 농심은 지난해 53.8%의 점유율로 50%대로 주저앉았으나 오뚜기는 23%로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특히 지난 5월 기준 농심의 점유율이 49.4%로 낮아진 반면, 오뚜기의 25.2%까지 상승하면서 격차를 더욱 좁히고 있는 상황이다.

함 회장은 해외시장 공략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오뚜기는 러시아 이외에도 라면, 카레 등 주요 제품을 미국, 멕시코, 중국 등 전 세계 30여개국에 수출하고 있다. 오뚜기 마요네즈의 경우 러시아에선 모든 음식에 넣어 먹는 ‘만능 소스’로 불릴만큼 인기가 많은 것으로 전해진다. 

수출은 2011년 500억원을 넘어선 뒤 매년 10% 이상 늘어나고 있다. 유사 제품이 출시되고 있지만 오뚜기의 아성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회사측의 설명이다.

오뚜기의 꾸준함을 동력으로 삼아 성장세를 이어간 결과 외연확장에 성공하고 있는 상황이다. 오뚜기는 2007년 매출 1조를 돌파한 이후 9년만에 매출 2조원을 돌파했다. 조용하지만 무서운 성장세라는 평가가 가능한 대목이다.

이런 상황서 오뚜기의 선행까지 주목받으면서 회사의 이미지가 제고되고 있다. 오뚜기의 함 창업주 부자의 선행은 오랜 기간에 걸쳐 이뤄졌다. 지난해 함 창업주가 별세했는데 장례식장서 여느 기업총수의 빈소와는 다른 모습이 펼쳐졌다. 


나이 어린 조문객이 슬피 우는 모습이 목격된 것. 주인공은 15살(당시) 최경훈군, 15살 박하늘양, 11살 한재균 군 등이다. 이들은 함 회장부자의 심장병 어린이 후원으로 새 생명을 얻은 아이들이었다. 

실제 오뚜기는 꾸준히 심장병 어린이를 후원해 새 생명을 불어넣고 있다. 함 창업주은 매년 태어나는 신생아 중 선천선 심장병 환자 0.8%가 돈이 없어 수술을 받지 못한다는 소식에 심장병 어린이 지원을 시작, 1992년부터 2016년까지 24년간 4242명에게 후원했다. 오뚜기도 함 창업주의 정신을 이어받아 사회공업 사업을 진행 중이다.

외국업체 공세 속
한국인 입맛 지켜

투명한 경영승계 역시 오뚜기의 이미지를 높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함 회장은 지난해 12월 선대회장인 고 함태호 명예회장으로부터 오뚜기 46만5543주와 계열사 조흥 지분을 상속받았다. 

이에 함 회장은 총 1500억 원에 이르는 상속세를 5년에 걸쳐 완납하기로 했다. 내야할 상속세였지만 각종 편법으로 경영권을 승계하는 일이 비일비재한 재계서 시원하게 상속세를 내는 모습이 오뚜기를 ‘갓뚜기’로 만들었다.

비정규직 낮은 오뚜기의 기업 운영방식도 네티즌의 호응을 이끌어냈다. 오뚜기는 지난 3월 말 기준 전체 직원 3099명 가운데 기간제 근로자는 36명(비정규직 비중 1.16%) 수준이다. 오뚜기의 정규직 비율은 98.84% 수준이다. 

 

함 창업주가 과거 1800명의 시식사원을 모두 채용하며 “사람을 비정규직으로 쓰지 말라”고 생전에 말한 바 있다.

라면가격을 10년간 동결한 점도 양심 경영의 사례로 꼽히고 있다. 최근 식료품 물가가 급등하고 있는 가운데 대표적인 서민상품인 라면의 가격 인상을 10년째 보류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긍정적인 평가 일색이다.

최근에는 계열사 일감몰아주기로 지적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한쪽에선 일감몰아주기를 통한 수직계열화로 효율을 극대화해 라면값 동결을 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기도 한다.

최근 이미지 제고 덕분에 주가는 연일 상승세다. 소비자들과 네티즌 사이서 긍정적인 평가가 나오면서 연초 65만원선이던 주가는 현재 80만원 대에서 움직이고 있다.

꾸준히 성장
해외서도 인정

업계 관계자는 “오뚜기의 경우 B2C(기업·소비자간 거래) 기업이기 때문에 소비자 사이서의 명성이 중요하다”며 “최근 오뚜기를 둘러싸고 있는 미담이 향후 오뚜기의 장기적인 성장동력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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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 상병 특검’ 공수처 불편한 속내

‘채 상병 특검’ 공수처 불편한 속내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채 상병 특검’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야권의 4·10 총선 압승으로 더불어민주당의 움직임에도 속도가 붙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난감하기만 하다. 부족한 인력으로 인해 수사의 첫 단추도 끼우지 못하는 실정이다. 발 빠른 수사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공수처 안팎에서는 정치권의 책임 떠넘기기에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조직이 와해되기 직전인데 수사에 속도가 어떻게 나겠느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출신 한 변호사의 말이다. 요즘 공수처의 분위기는 참혹하다. 해병대 ‘채 상병 사건’으로 반전을 꾀하고 싶어도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특별검사(이하 특검) 목소리가 거세지면서 ‘비교 대상’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대통령실 압수수색? 채 상병 사건 특검법 추진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공수처의 분위기는 암흑 상태다. 검찰 제도를 보완해 ‘상설특검’ 명목으로 출범했음에도 ‘늑장·부실’ 수사 논란 속에 결국 사건 기록을 특검에 넘겨줘야 하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오는 5월2일, 임시국회를 열어 법안을 표결하자는 분위기다. 법안 통과를 위해서는 국회의장과 여당의 협조가 필요한데, 총선 이후 여당 일각서도 채 상병 특검에 동의하는 분위기가 표출되고 있다. 채 상병 특검 법안은 지난해 10월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뒤 180일의 숙려 기간을 거쳐 본회의 표결만 하면 언제든 통과할 수 있는 상황이다. 채 상병 사건 수사 갈래는 크게 두 가지다. 무리한 수색 지시 등 책임자를 가리는 본안 수사가 경북지방경찰청서 진행 중이고, 해병대 수사단의 초동 조사에 국방부와 대통령실 관계자가 개입했다는 외압 의혹은 공수처가 맡고 있다. 외압 핵심 피의자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주호주대사로 임명돼 부임 후 사퇴하는 과정서 대통령과 법무·외교부 장관의 직권남용 의혹도 공수처에 추가로 고발됐다. 야권이 특검을 통해 밝히려는 사안의 실체는 수사 외압에 집중돼있다. 특검이 통과되면 공수처가 내려던 실적이 특검으로 넘어가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민주당은 이 대사 임명 과정서의 추가 의혹도 특검법안을 수정 발의해 포함할 계획이다. 공수처는 수사의 무게를 일부 덜겠지만, 6개월 넘게 진행해온 사건 기록을 외부에 넘긴다는 건 또 다른 비판의 빌미를 제공하는 셈이다. 특검 추진 본격화…수사팀 의욕 잃어 “이럴 거면 왜 강조하나” 불만 증폭 공수처 출신 한 변호사는 “인력난 때문에 고전하는 상황이다. 내부 얘기를 들어보면 ‘죽을 맛’이란다. 채 상병 사건 수사는 최선을 다하려 했는데 특검이 언급되면서 수사팀의 의욕이 상실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수처법상 수사 범위와 인원 범위가 지나치게 제한돼있어 실질적인 수사 기능을 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설명이다. 공수처법은 공수처의 수사 범위를 현직 공직자와 그 가족, 퇴임 3년 이내 전직 고위공직자로 한정하고 있다. 공수처 검사와 수사관의 인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현재 공수처법이 규정하고 있는 검사와 수사관의 규모는 처·차장 포함 검사 25명, 수사관 40명이다. 공수처법을 추진할 당시 규모는 검사 30~50인, 수사관 50~70인이 제안됐지만 법무부와 국회의 논의를 거치면서 현재 정원으로 대폭 감소했다. 공수처 관계자는 “총선과 무관하게 지속적으로 인원 확대와 관련해 국회와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며 “검사의 신분보장을 위한 임기에 대해서도 개선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앞서 공수처는 최소한의 행정인력이라도 확보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 달라고 호소한 바 있다. 현행법상 행정인원 정원은 20명인데 지난 2022년 공수처는 행정직원 중 국·과장과 직제 파견자 등 7명을 제외하면 실제 가용인원이 13명에 불과해 수사관을 행정인력에 투입해야 할 상황에 놓인 바 있다. 공수처가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법 개정이 필수적이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특히 공수처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일치시켜 수사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수처는 ‘공수처법상 기소권 없는 사건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연구용역’을 발주하는 등 수사 대상과 기소 대상의 불일치로 발생하는 구속영장 논란을 정리하기 위한 연구에 착수하기도 했다. 인력난 가중화 지금까지 공수처가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한 상황을 보면 초기 단계에 불과하다. 지난해 12월 이 전 장관 등을 출국금지했고, 한 달 후인 지난 1월 압수수색에 착수했다. 이후 포렌식과 참고인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 전 장관을 비롯한 국방부 지휘부와 해병대 수뇌부 등에 대한 조사는 특검의 몫이 될 가능성도 있다. 경우에 따라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등으로 특검 수사가 확대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공수처와 경찰은 특검법 처리 여부를 주시하며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총선 국면서 논란의 중심에 선 공수처는 수사를 신속하게 진행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겠다는 입장이다. 공수처 지휘부 공백 상태가 영향을 줄 여지도 있다. 주요 피의자 소환 및 신병처리 등 주요 의사결정을 처장 대행인 부장검사가 결정하기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다. 만약 국회서 여야가 특검법 처리에 합의하는 수순을 밟으면 공수처도 새로 출범할 특검에 기록을 인계하기 위한 작업에 중점을 둘 가능성이 크다. 현재 본회의에 회부된 안은 민주당이 지난해 9월 발의한 법안이다. 민주당이 지난 3월, 이 전 장관이 주호주대사로 임명된 경위를 수사해야 한다는 별도의 특검안도 국회에 제출했기 때문에 이 두 법안이 병합되는 안도 거론된다. 본회의 회부 안건은 수사기간을 최장 100일로 정하고 있는데, 잔여 수사를 검찰에 이첩하도록 명시됐다. 경찰과 공수처가 시작한 수사가 특검을 거쳐 검찰 손에 넘어가는 것은 부자연스럽다는 말도 나온다. 민주당이 3월 발의한 안은 잔여수사 이첩 대상을 검찰과 공수처로 정했다. 단추도 못 끼워 민주당이 특검법 조항 일부를 양보하고 국민의힘이 수사 대상 확대에 동의하는 시나리오도 정치권을 중심으로 나온다. 이런 과정서 본회의 회부 안이 조정될 수도 있다. 이 가운데 이 전 장관은 최근 변호인을 통해 공수처에 “소환조사를 진행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 전 장관 측이 공수처에 소환조사를 요청한 것은 이번이 네 번째다. 이 전 장관 측 김재훈 변호사는 최근 공수처에 소환 촉구 의견서를 내고 “이 전 장관은 호주 대사직서도 물러났으나 공수처는 지금까지도 아무런 연락이 없다”며 “공수처의 이런 수사 방기 탓인지 정치권에서는 특검 필요성까지 제기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공수처에 보낸 의견서에서 “이첩 보류 지시는 직권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국방부 장관은 민간 수사기관으로의 사건 이첩에 대한 최종 승인권자이므로 인사권자가 인사안 결재 후 이를 취소·변경할 수 있듯이 그 승인을 변경할 수 있다”며 “해병대 수사단장에게 수사 권한이 있다느니, 수사단장에게 민간 수사기관으로의 이첩 권한이 있다느니 하는 것은 법 규정의 몰이해로부터 비롯된 억지”라고 주장했다. 이 전 장관 측은 ‘이 장관이 보고서를 회수하라고 지시하기 전에 대통령실 내선번호로 전화를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이 전 장관 측은 “이 전 장관은 대통령으로부터 (사단장을 빼라는)지시를 받은 사실이 없다”며 “당시 장관이 군사보좌관과 논의하는 과정서 ‘(초급 간부들까지 처벌 대상에 포함한다면)초급 간부들이 힘들어할 것 같다’는 의견을 나눴고 법무관리관실의 법리 검토를 거쳐야 한다고 판단해 이첩 보류를 지시했다”고 강조했다. 수사 인원 범위 제한적 법 개정 안되면 도루묵 이어 “재검토한 결과 8월24일 직접적인 혐의가 있는 2명을 경찰에 이첩했고, 해병대수사단 조사기록 원안도 그대로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 전 장관 측은 민주당이 추진하는 ‘채 상병 특검’도 비판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공수처의 1차 수사 결과도 나오지 않은 상황인데 무엇이 미흡하고 국민적 의혹이 남아 해소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냐”며 “특검 논란을 잠재울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은 공수처의 신속한 수사와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공수처 수장이 석 달째 공석인 점은 제도 지속 가능성에 의문을 더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최종 후보자 지명을 두 달 가까이 미루고 있다. 앞서 국회 공수처장후보추천위원회는 지난 2월29일 판사 출신 오동운(사법연수원 27기) 변호사와 검사 출신 이명순(연수원 22기) 변호사를 후보로 추천했다. 김진욱 전 처장과 여운국 전 차장이 임기 만료로 퇴임해 공수처가 ‘대행 체제’에 들어간 건 지난 1월 말부터다. 김선규 수사1부장이 처장 대행을 맡고 있지만, 지난달 제출한 사직서가 수리되지 않아 임시로 대행직을 수행 중이다. 최근 인사위원회서 연임이 불발된 수사1부 소속 김송경 검사(사법연수원 40기) 임기도 만료됐다. 김 대행이 이끄는 수사1부는 공기광 검사만 남게 된다. 별도 조직개편 계획도 없어 수사 부서 1개가 사실상 사라질 위기다. 윤 대통령이 공수처장 후보자를 지명해도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해야 임명이 가능하다. 21대 국회 임기는 내달 29일까지다. 22대 국회가 개원해도 원구성에 시일이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신속한 공수처장 공백 해소를 위해선 이달 안으로 후보 지명을 마쳐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수장 공백 장기화 우려 법조계에서는 특검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공수처법에 따르면, 공수처는 이 전 장관에 대한 수사권은 있지만 기소 권한이 없다. 수사를 마친 뒤 검찰에 사건을 넘기고 검찰이 기소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 구조다. 공수처 출범 당시 수사·기소권을 모두 줄 경우 일각에선 ‘무소불위 공수처’가 될 거란 우려가 제기되면서 공수처는 법관, 검사, 고위 경찰공무원에 대해서만 제한적 기소권을 갖게 됐다. 문제는 검찰이 채 상병 사건 기소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검찰을 관할하는 법무부는 지난달 8일, 공수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 전 장관의 출국금지를 해제했다. 사건 처리의 중립성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특검을 통해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