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요원이 털어놓은 그때 중정·안기부와 지금의 국정원

“고용된 흥신소와 뭐가 다릅니까”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국내외 정보를 한 손에 쥔 정보기관의 힘은 막강하다. 각종 수단을 통해 정보를 수집·가공·이용한 사실이 관계자에 의해 폭로될 때마다 국민은 경악한다. 그들이 알고 있는 정보는 일반 국민이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이다. 때문에 정치 개입 등 샛길로 샐 가능성도 그 어떤 기관보다 높다. <일요시사>는 김필원 전 국가안전기획부 정치과장을 만나 우리나라 정보기관 국정원에 대해 들어봤다.
 

정보기관이라 하면 미국의 중앙정보국(CIA)이나 연방수사국(FBI)을 떠올린다. 이들과 우리나라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은 그 위상 차이가 ‘하늘과 땅’에 비할 정도다. 첩보활동이나 국외 안보 동향 분석 등 정보기관 본연의 업무보다 국내 정치 개입에 더 열을 올린 탓이다. 

정치 사찰, 고문, 살해, 간첩 조작 등 우리 현대사의 어두운 과거를 파헤치다 보면 그 배경에 국정원이 존재하는 경우가 많다. 국정원 역사에 차곡차곡 쌓인 어두운 기록들은 큰 변혁의 시기마다 망령처럼 되살아났다.

“변한 게 없다”

김필원 제18대 대선 선거무효 소송인단 공동대표는 “내가 근무했을 때의 안기부나 지금의 국정원이나 변한 건 아무 것도 없다. 그 때도 국정원은 정치적이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1972년 국정원의 전신인 중앙정보부(이하 중정)에 공채로 입사해 국가안전기획부(이하 안기부) 3급 과장을 거쳐 1997년 6월30일 계급 정년에 걸려 퇴직할 때까지 28년간 근무한 이른바 ‘안기부맨’의 일침이었다.


국정원은 시작부터 정부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출발했다. 중정은 1961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5·16 군사쿠데타 직후 반혁명세력과 간첩을 색출하고 국가안보 관련 활동을 전개하기 위해 설립됐다. 

박정희정부 내내 간첩을 색출·처벌하며 중정은 정부에서 가장 힘 있는 기관으로 영향력을 행사했다.

1980년 12월 권력을 잡은 전두환정부는 중정의 기구를 일부 개편하고 명칭을 안기부로 바꿨다. 안기부는 이름만 바뀌었을 뿐 전두환·노태우정부 내내 정치 개입, 반정부세력 탄압 등 악행의 굴레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어둠의 청소부 역할에도 여전히 충실했다.

당시 안기부는 국내·해외·북한·운영 등의 파트로 구분돼있었는데 김 대표는 1년6개월간 해외연수를 다녀오는 등 국내외를 넘나들며 군사과, 경제과, 정치과 등 다양한 부서에서 일했다. 

그는 “정보기관에 대한 국민의 인식과는 달리 안기부도 보통 직장하고 비슷하다. 특징이라면 부서별로 간섭하지 않도록 업무가 분리돼있던 점”이라며 “협력은 윗선서 진행하고 직원들은 자기 일만 하면 됐다”고 설명했다.
 

그 시절 안기부는 ‘나는 새도 떨어뜨릴 수 있을 만큼’ 막강한 권력기관이었고 김 대표는 안기부의 그 힘을 몸소 체험했다. 안기부에는 계급 정년제와 나이 정년제가 있었다. 조직에 머무르려면 두 가지 조건 모두를 충족해야 했다. 김 대표는 9년 안에 과장서 부국장으로 진급해야만 안기부 내에서 계속 신분을 유지할 수 있었다. 진급을 못했을 경우엔 퇴직이 불가피했다.

결과적으로 김 대표는 진급에 실패했다. 그는 인사 조치가 불법이고 부당하다며 퇴직 전 한 달간 투쟁을 진행했다. 이 과정서 그는 ‘소통령’이라고 불렸던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씨가 안기부 인사에 개입했다고 주장했다. 김현철씨 인맥이 안기부를 사조직화하고 있다는 일종의 내부고발이었다.


이름 바꿀 때 개혁 내세웠지만
56년 역사는 나쁜 기록만 가득

그는 안기부 창설 36년 만에 처음으로 단식 투쟁을 벌였다. 그 대가는 혹독했다. 단식 투쟁 4일째 되던 날 그는 안기부 지하 감찰실에 감금됐다. 안기부 관계자들의 회유와 협박에도 그가 굴하지 않자 삼성서울병원 정신병동으로 옮겨졌다. 

그는 병원으로 이동하는 동안에도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전혀 몰랐다고 한다.

김 대표는 “안기부서 이렇게까지 할 거라곤 생각도 못했다”며 “가정불화로 별거 중이던 아내의 동의를 받아 4개월반이나 나를 정신병원에 불법 감금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의 주변 사람에게도 불똥이 튀었다. 

그가 집에서 나와 머물고 있던 하숙집 여주인은 간첩이라고 의심받아 사람들에게 고립되는 등 고초를 겪은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1997년 10월 아내에게 대부분의 재산을 일임한다는 내용의 서약서를 쓰고 나서야 정신병동서 풀려날 수 있었다. 그 과정서 일시금 4000여만원, 연금 월 150만원, 퇴직보조금 1억4000여만원 등 2억원에 가까운 돈이 그의 아내에게 지급됐다.

당시 그가 받은 월급은 200여만원이었다. 김 대표는 “안기부 퇴직 당시 아내에게 지급된 돈을 현재 가치로 따지면 20억원에 가까울 것”이라며 “나중에 통장을 내 명의로 돌리고 나서야 연금을 직접 받을 수 있었다. 퇴직 직후에는 엄청 고생했다”고 토로했다.

국정원은 1999년 김대중정부 들어 이름을 바꾸면서 부정적인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 노력했다. 중정과 안기부 시절 자행했던 인권침해 소지를 줄이는 등 부단한 노력으로 국정원에 민주적 이미지가 살짝 덧씌워졌다.

하지만 변화는 길지 않았다. 이명박·박근혜정부서 국정원의 정치 개입은 노골적인 수준으로 발전했다. 정보기관의 대선 개입 의혹으로 비화된 댓글 사건부터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 세월호 참사 관련 의혹, 문화계 블랙리스트 개입 의혹 등 한 손에 다 꼽기도 어려울 만큼 숱한 의혹이 이명박·박근혜정부 시기에 불거졌다. 

이 때문에 대선 후보 시절부터 적폐 청산을 외치며 지지를 호소했던 문재인 대통령의 개혁 1순위는 검찰과 함께 국정원이 지목됐다.
 

우리나라 최고의 정보기관을 바라보는 국민의 눈은 불신에 가득 차 있다. 세 번에 걸쳐 간판을 바꿔 달았지만 내용물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는 게 김 대표의 생각이다. 

그는 “내가 근무할 당시 안기부는 매우 정치적이었다”며 “중요한 것은 그 방향이 국민과 국가 안보로 향하는지 특정 정권이나 대통령으로 향하는지 여부였다”고 말했다.


국정원 개혁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입장을 보였다. 문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부터 국정원의 국내 정치 개입을 원천 봉쇄하겠다는 의지를 여러 차례 드러냈다. 서훈 신임 국정원장 역시 대통령의 뜻에 발맞춰 국정원 개혁 발전위원회를 꾸리고 그 밑에 적폐청산 태스크포스를 운영해 정치개입 의혹 사건을 철저히 조사하겠다고 했다.

국민 불신 최고

김 대표는 “국내 파트를 없애는 것으로 개혁이 이뤄질지에 대해서는 두고 볼 일”이라며 “국내 정보 관련 일을 국정원서 하지 않으면 또 사각지대가 생길 수 있다. 또 정보가 부족하면 대통령이 제대로 국가를 이끌 수 있겠나?”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핵심은 정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라며 “제도적, 체계적 대책이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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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 상병 특검’ 공수처 불편한 속내

‘채 상병 특검’ 공수처 불편한 속내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채 상병 특검’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야권의 4·10 총선 압승으로 더불어민주당의 움직임에도 속도가 붙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난감하기만 하다. 부족한 인력으로 인해 수사의 첫 단추도 끼우지 못하는 실정이다. 발 빠른 수사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공수처 안팎에서는 정치권의 책임 떠넘기기에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조직이 와해되기 직전인데 수사에 속도가 어떻게 나겠느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출신 한 변호사의 말이다. 요즘 공수처의 분위기는 참혹하다. 해병대 ‘채 상병 사건’으로 반전을 꾀하고 싶어도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특별검사(이하 특검) 목소리가 거세지면서 ‘비교 대상’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대통령실 압수수색? 채 상병 사건 특검법 추진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공수처의 분위기는 암흑 상태다. 검찰 제도를 보완해 ‘상설특검’ 명목으로 출범했음에도 ‘늑장·부실’ 수사 논란 속에 결국 사건 기록을 특검에 넘겨줘야 하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오는 5월2일, 임시국회를 열어 법안을 표결하자는 분위기다. 법안 통과를 위해서는 국회의장과 여당의 협조가 필요한데, 총선 이후 여당 일각서도 채 상병 특검에 동의하는 분위기가 표출되고 있다. 채 상병 특검 법안은 지난해 10월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뒤 180일의 숙려 기간을 거쳐 본회의 표결만 하면 언제든 통과할 수 있는 상황이다. 채 상병 사건 수사 갈래는 크게 두 가지다. 무리한 수색 지시 등 책임자를 가리는 본안 수사가 경북지방경찰청서 진행 중이고, 해병대 수사단의 초동 조사에 국방부와 대통령실 관계자가 개입했다는 외압 의혹은 공수처가 맡고 있다. 외압 핵심 피의자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주호주대사로 임명돼 부임 후 사퇴하는 과정서 대통령과 법무·외교부 장관의 직권남용 의혹도 공수처에 추가로 고발됐다. 야권이 특검을 통해 밝히려는 사안의 실체는 수사 외압에 집중돼있다. 특검이 통과되면 공수처가 내려던 실적이 특검으로 넘어가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민주당은 이 대사 임명 과정서의 추가 의혹도 특검법안을 수정 발의해 포함할 계획이다. 공수처는 수사의 무게를 일부 덜겠지만, 6개월 넘게 진행해온 사건 기록을 외부에 넘긴다는 건 또 다른 비판의 빌미를 제공하는 셈이다. 특검 추진 본격화…수사팀 의욕 잃어 “이럴 거면 왜 강조하나” 불만 증폭 공수처 출신 한 변호사는 “인력난 때문에 고전하는 상황이다. 내부 얘기를 들어보면 ‘죽을 맛’이란다. 채 상병 사건 수사는 최선을 다하려 했는데 특검이 언급되면서 수사팀의 의욕이 상실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수처법상 수사 범위와 인원 범위가 지나치게 제한돼있어 실질적인 수사 기능을 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설명이다. 공수처법은 공수처의 수사 범위를 현직 공직자와 그 가족, 퇴임 3년 이내 전직 고위공직자로 한정하고 있다. 공수처 검사와 수사관의 인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현재 공수처법이 규정하고 있는 검사와 수사관의 규모는 처·차장 포함 검사 25명, 수사관 40명이다. 공수처법을 추진할 당시 규모는 검사 30~50인, 수사관 50~70인이 제안됐지만 법무부와 국회의 논의를 거치면서 현재 정원으로 대폭 감소했다. 공수처 관계자는 “총선과 무관하게 지속적으로 인원 확대와 관련해 국회와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며 “검사의 신분보장을 위한 임기에 대해서도 개선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앞서 공수처는 최소한의 행정인력이라도 확보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 달라고 호소한 바 있다. 현행법상 행정인원 정원은 20명인데 지난 2022년 공수처는 행정직원 중 국·과장과 직제 파견자 등 7명을 제외하면 실제 가용인원이 13명에 불과해 수사관을 행정인력에 투입해야 할 상황에 놓인 바 있다. 공수처가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법 개정이 필수적이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특히 공수처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일치시켜 수사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수처는 ‘공수처법상 기소권 없는 사건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연구용역’을 발주하는 등 수사 대상과 기소 대상의 불일치로 발생하는 구속영장 논란을 정리하기 위한 연구에 착수하기도 했다. 인력난 가중화 지금까지 공수처가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한 상황을 보면 초기 단계에 불과하다. 지난해 12월 이 전 장관 등을 출국금지했고, 한 달 후인 지난 1월 압수수색에 착수했다. 이후 포렌식과 참고인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 전 장관을 비롯한 국방부 지휘부와 해병대 수뇌부 등에 대한 조사는 특검의 몫이 될 가능성도 있다. 경우에 따라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등으로 특검 수사가 확대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공수처와 경찰은 특검법 처리 여부를 주시하며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총선 국면서 논란의 중심에 선 공수처는 수사를 신속하게 진행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겠다는 입장이다. 공수처 지휘부 공백 상태가 영향을 줄 여지도 있다. 주요 피의자 소환 및 신병처리 등 주요 의사결정을 처장 대행인 부장검사가 결정하기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다. 만약 국회서 여야가 특검법 처리에 합의하는 수순을 밟으면 공수처도 새로 출범할 특검에 기록을 인계하기 위한 작업에 중점을 둘 가능성이 크다. 현재 본회의에 회부된 안은 민주당이 지난해 9월 발의한 법안이다. 민주당이 지난 3월, 이 전 장관이 주호주대사로 임명된 경위를 수사해야 한다는 별도의 특검안도 국회에 제출했기 때문에 이 두 법안이 병합되는 안도 거론된다. 본회의 회부 안건은 수사기간을 최장 100일로 정하고 있는데, 잔여 수사를 검찰에 이첩하도록 명시됐다. 경찰과 공수처가 시작한 수사가 특검을 거쳐 검찰 손에 넘어가는 것은 부자연스럽다는 말도 나온다. 민주당이 3월 발의한 안은 잔여수사 이첩 대상을 검찰과 공수처로 정했다. 단추도 못 끼워 민주당이 특검법 조항 일부를 양보하고 국민의힘이 수사 대상 확대에 동의하는 시나리오도 정치권을 중심으로 나온다. 이런 과정서 본회의 회부 안이 조정될 수도 있다. 이 가운데 이 전 장관은 최근 변호인을 통해 공수처에 “소환조사를 진행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 전 장관 측이 공수처에 소환조사를 요청한 것은 이번이 네 번째다. 이 전 장관 측 김재훈 변호사는 최근 공수처에 소환 촉구 의견서를 내고 “이 전 장관은 호주 대사직서도 물러났으나 공수처는 지금까지도 아무런 연락이 없다”며 “공수처의 이런 수사 방기 탓인지 정치권에서는 특검 필요성까지 제기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공수처에 보낸 의견서에서 “이첩 보류 지시는 직권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국방부 장관은 민간 수사기관으로의 사건 이첩에 대한 최종 승인권자이므로 인사권자가 인사안 결재 후 이를 취소·변경할 수 있듯이 그 승인을 변경할 수 있다”며 “해병대 수사단장에게 수사 권한이 있다느니, 수사단장에게 민간 수사기관으로의 이첩 권한이 있다느니 하는 것은 법 규정의 몰이해로부터 비롯된 억지”라고 주장했다. 이 전 장관 측은 ‘이 장관이 보고서를 회수하라고 지시하기 전에 대통령실 내선번호로 전화를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이 전 장관 측은 “이 전 장관은 대통령으로부터 (사단장을 빼라는)지시를 받은 사실이 없다”며 “당시 장관이 군사보좌관과 논의하는 과정서 ‘(초급 간부들까지 처벌 대상에 포함한다면)초급 간부들이 힘들어할 것 같다’는 의견을 나눴고 법무관리관실의 법리 검토를 거쳐야 한다고 판단해 이첩 보류를 지시했다”고 강조했다. 수사 인원 범위 제한적 법 개정 안되면 도루묵 이어 “재검토한 결과 8월24일 직접적인 혐의가 있는 2명을 경찰에 이첩했고, 해병대수사단 조사기록 원안도 그대로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 전 장관 측은 민주당이 추진하는 ‘채 상병 특검’도 비판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공수처의 1차 수사 결과도 나오지 않은 상황인데 무엇이 미흡하고 국민적 의혹이 남아 해소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냐”며 “특검 논란을 잠재울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은 공수처의 신속한 수사와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공수처 수장이 석 달째 공석인 점은 제도 지속 가능성에 의문을 더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최종 후보자 지명을 두 달 가까이 미루고 있다. 앞서 국회 공수처장후보추천위원회는 지난 2월29일 판사 출신 오동운(사법연수원 27기) 변호사와 검사 출신 이명순(연수원 22기) 변호사를 후보로 추천했다. 김진욱 전 처장과 여운국 전 차장이 임기 만료로 퇴임해 공수처가 ‘대행 체제’에 들어간 건 지난 1월 말부터다. 김선규 수사1부장이 처장 대행을 맡고 있지만, 지난달 제출한 사직서가 수리되지 않아 임시로 대행직을 수행 중이다. 최근 인사위원회서 연임이 불발된 수사1부 소속 김송경 검사(사법연수원 40기) 임기도 만료됐다. 김 대행이 이끄는 수사1부는 공기광 검사만 남게 된다. 별도 조직개편 계획도 없어 수사 부서 1개가 사실상 사라질 위기다. 윤 대통령이 공수처장 후보자를 지명해도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해야 임명이 가능하다. 21대 국회 임기는 내달 29일까지다. 22대 국회가 개원해도 원구성에 시일이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신속한 공수처장 공백 해소를 위해선 이달 안으로 후보 지명을 마쳐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수장 공백 장기화 우려 법조계에서는 특검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공수처법에 따르면, 공수처는 이 전 장관에 대한 수사권은 있지만 기소 권한이 없다. 수사를 마친 뒤 검찰에 사건을 넘기고 검찰이 기소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 구조다. 공수처 출범 당시 수사·기소권을 모두 줄 경우 일각에선 ‘무소불위 공수처’가 될 거란 우려가 제기되면서 공수처는 법관, 검사, 고위 경찰공무원에 대해서만 제한적 기소권을 갖게 됐다. 문제는 검찰이 채 상병 사건 기소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검찰을 관할하는 법무부는 지난달 8일, 공수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 전 장관의 출국금지를 해제했다. 사건 처리의 중립성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특검을 통해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