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눈에 보는 청와대 권력지형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7.07.17 10:25:34
  • 호수 112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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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전병헌’ BH 서열 바뀌었다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는 지난 5월10일 공식적으로 시작됐다. 이로써 문재인정권이 출범한 지도 2개월이 지났다. 인수위 없이 출발한 문정권이기에 이 기간 가장 시급히 풀어야 할 숙제는 단연 ‘인사청문회(이하 인청)’였다. 정치권은 인청 정국을 거치며 청와대 내부서 권력지형의 변화가 감지된다고 입을 모은다. 과연 청와대 인사들 중 어떤 사람에게 힘이 실리고 있는지 <일요시사>가 알아봤다.
 

청와대는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가 시작되고 하루가 지나 ‘대통령 비서실 및 국가안보실 조직 개편안’을 발표했다. 청와대 조직을 기존 1실장-10수석-41비서관 체제서 2실장-8수석·2보좌관-41비서관 체제로 재편한다는 게 주요 골자였다. 인수위 없이 출범한 상황서 청와대의 몸집을 키워 내각 공백을 최소화하겠다는 복안이었다.

몸집 키운 BH
공백 최소화

가장 큰 변화는 장관급인 정책실장 자리의 신설이다. 문 대통령은 장하성 전 안철수 후보 캠프 국민정책본부장을 초대 정책실장으로 임명했다. 그 밑으로 경제·과학기술 보좌관, 일자리·경제·사회 수석을 떼어줬다.

따라서 ‘왕실장’으로 군림하던 기존 비서실장의 지분은 줄었다. 정책조정·정무·민정·홍보·경제·미래전략·교육문화·고용복지·인사·외교안보 수석 등 10개 수석실을 관장하던 것에서 정무·민정·사회혁신·국민소통·인사 수석 등 5개 수석실만 관장하는 것으로 전환됐다.

비서실장의 지분은 줄었지만 청와대 내 영향력은 여전하다. 정치권은 문정권의 2인자로 임종석 비서실장을 꼽는 데 주저함이 없다.


문 대통령과 임 비서실장의 인연은 대선 전으로 올라간다. 지난해 10월14일 문 당시 후보 측에 전격 합류한 임 비서실장은 당시 경선 캠프인 ‘더문캠’에 들어가 후보 비서실장이란 중책을 수행했다.
 

문 후보는 임 비서실장 영입 초부터 사실상 캠프의 전권을 줬다. 사안에 대해 캠프 내 이견이 있으면, “임 비서실장이 결정했으니 밀어주자”고 말했다고 한다. 전권을 잡은 임 비서실장은 자신의 주특기인 정무 분야뿐 아니라 문 후보의 일정, 정책 결정에도 핵심 역할을 수행했다.

대선 승리의 1등 공신인 임 비서실장은 곧 청와대로 직행했다. 문 대통령은 본인의 공식 임기를 임 비서실장 임명으로 시작했다. 청와대 춘추관에 모습을 드러낸 문 대통령은 “임 비서실장 임명을 통해 젊은 청와대, 역동적이고 탈권위적인, 군림하지 않는 청와대로 만들 생각”이라고 밝혔다.

왕실장은 옛말? 그래도 '실세'!
문, 임종석 믿고 국당과 협상

문 대통령의 발표가 있기 전 청와대는 “여야를 가리지 않는 폭넓은 정치권 인맥을 갖고 있어 청와대와 국회 사이의 대화와 소통의 중심적 역할이 기대된다”며 “관용적이고 합리적 성품에 개혁주의자로서 민주적 절차에 의한 결정과정을 중요시해 청와대 문화를 대화와 토론, 격의 없는 소통과 탈권위 청와대 문화를 이끌 적임자”라고 임 비서실장 인선 배경을 설명했다.

임 비서실장은 재선(16·17대) 의원 출신이다. 당시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서만 6년을 활동, 정무뿐 아니라 외교 분야서도 두각을 드러냈다. 곧 정상 외교에 나서야 했던 문 대통령 입장에서는 임 비서실장의 외교 분야 전문성도 고려 대상 중 하나였던 것으로 관측된다.

최근 임 비서실장에 대한 문 대통령의 신뢰를 잘 보여주는 사건이 있었다. 문 대통령은 ‘일자리 추경안’ 등 막힌 정국을 뚫기 위해 지난 13일 임 비서실장을 국회로 급파했고 국민의당의 국회 일정 복귀를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문 대통령이 임기 초 가장 힘줘 추진하는 것을 하나 고르라면 단연 일자리 추경안 통과다. 지난달 13일 있었던 문 대통령의 첫 국회 시정연설서 이러한 부분이 잘 드러난다. 당시 문 대통령은 일자리로 시작해 일자리로 연설을 끝냈을 정도다. 

30분간 이어진 국회 시정연설서 일자리라는 단어만 무려 44번 언급했다. 설득력을 높이기 위해 파워포인트로 수치와 이미지를 적극 활용하는 모습도 보였다.
 

그러나 국민의당 제보조작 사건과 관련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추미애 대표의 ‘머리 자르기’ 발언이 나오면서 정국은 얼어붙었다. 추 대표가 한 라디오와 인터뷰서 “선대위원장이었던 박지원 전 대표와 안철수 전 의원이 (문준용씨 제보조작 사건을) 몰랐다고 하는 건 머리 자르기”라고 비판한 것이다.

추 대표의 발언에 국민의당은 국회 일정 보이콧을 선언했다. 국민의당은 추 대표의 사퇴와 민주당의 사과를 요구했다. 추가로 추 대표 발언의 배후에 청와대의 ‘야당 죽이기’ 음모가 숨어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했다.

서열 2위 임종석
흔들림 없는 입지

중대한 사안서 문 대통령은 임 비서실장을 선택했다. 지난 13일 오전 국회를 찾은 임 비서실장은 국민의당 박주선 비대위원장을 만나 추 대표의 발언에 대해 ‘대리 사과’했다.

박 비대위원장은 곧 이은 의총에서 “청와대가 추 대표 발언이 잘못됐다며 사실상 사과하고 유감 표명을 했다”며 임 비서실장의 사과를 전했다.

“왜 정치적 오해를 살 수 있는 상황을 조성했는지 청와대로선 알 수 없다. 국민의당에 걱정을 끼쳐서 미안하다. 진심으로 유감을 표명한다”고 임 비서실장이 말했다는 내용이다.

임 비서실장은 제보조작 사건 수사에 대해 “(문) 대통령은 말할 것도 없고 청와대에선 ‘수사 개입을 해선 안 된다’고 단연코 이야기한다”며 “정치권이 이것(제보조작 사건)의 시시비비를 다툴 일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추 대표의 발언이 사실상 검찰에게 수사 가이드라인을 준 것이라는 국민의당 주장에 적극 해명한 셈이다.

이에 국민의당은 입장을 전향적으로 바꿔 국회 일정에 협조 입장을 밝혔다. 중간에 임 비서실장이 추 대표 발언에 대해 언급한 바가 없다는 청와대 고위 관계자의 말이 전해져 한차례 파장을 낳았지만 임 비서실장이 “추 대표 발언을 사과한 게 맞다”며 재확인 했고 사태는 수습됐다.

문 대통령과 임 비서실장의 실리를 챙기는 결단이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 제보조작 사건으로 정치적 위기에 놓인 국민의당에게 사과는 물론 조대엽 전 고용노동부장관 후보자를 자진 사퇴케 해 국회로 복귀할 충분한 명분을 줬다는 평가다. 청와대가 추경안 심사 개시라는 실리를 챙긴 건 말할 것도 없다.

국민의당의 국회 복귀는 임 비서실장만의 작품이 아니다. 최근 청와대 권력서열 3위로 올라섰다고 평가받는 전병헌 청와대 정무수석의 지원사격이 뒷받침된 결과였다.


임 비서실장이 국회를 방문하기 앞서 전 수석은 지난 12일 저녁 박 비대위원장과 긴급 회동을 가지고 세부사항을 조율했다. 이후 13일 오전 국회로 출발하기에 앞서 추 대표에게 “추경안의 시급한 처리에 대한 문 대통령의 의지가 확고하니 이해해달라”고 양해를 구했다. 임 비서실장이 국민의당 지도부를 만나 사과할 때는 함께 동석해 힘을 실어줬다.

힘 실린 전병헌
서열 3위 우뚝

인청 정국을 맞아 전 수석은 동분서주했다. 청문회가 시작된 이후 정무라인을 풀가동해 전방위로 여야 인사들과 만나 설득했다. 일례로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의 국회 인준 때 전 수석은 주말을 반납하고 야당과 접촉해 인준을 도와줄 것을 요청한 바 있다.

인청 정국서 현재까지 낙마한 사람은 2명, 조 전 후보자와 안경환 전 법무부장관 후보자다. 조 전 후보자의 자진사퇴는 일자리 추경안과 ‘딜’을 한 성격이 강하다. 그만큼 문 대통령과 청와대 입장에서는 불가피한 결정이었다.
 

반면 안 전 후보자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각종 논란 속에서 사퇴 압박을 받던 안 전 후보자는 문 정권에 부담이 되는 존재였다. 민주당 의원들까지도 전 수석을 통해 안 전 후보자에 대해 ‘부적격’ 의견을 전할 정도였다.

당시 인사검증 부실에 따른 ‘조국 책임론’이 대두됐다. 앞서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청와대에 입성, 서열 3위로 불렸다. 인청을 앞두고 있는 상황서 인사검증을 담당하는 민정수석에게 힘이 실리는 건 당연한 결과였다.


그러나 청문회서 후보자들에 대한 각종 의혹이 터져 나오며 조 수석의 입지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특히 대부분의 후보자가 문 대통령이 밝힌 이른바 5대 인사원칙(병역 면탈, 부동산 투기, 세금 탈루, 위장 전입, 논문 표절 인사는 공직 배제)을 위배해 부실 검증에 대한 논란이 불거졌다. 

5대 인사원칙 위배 논란이 일자 문 대통령이 수석보좌관회의서 인사원칙 준수 의지를 밝히고 위배 논란이 발생한 것에 대해 양해를 구했지만, 이후에도 원칙을 위배하는 후보자는 계속 등장했다.

조 수석의 과거 발언도 그의 입지를 약하게 만든 요인 중 하나다. 

조 수석은 지난 2010년 8월 ‘위장과 스폰서의 달인들’이라는 <한겨레> 칼럼서 이명박정부 국무위원 후보자들의 위장전입 사례들에 대해 “맹모삼천지교? 맹모는 실제 거주지를 옮긴 실거주자였기에 위장전입 자체가 거론될 수 없다”며 “인지상정? 이는 좋은 학군으로 이사하거나 주소를 옮길 여력이나 인맥이 없는 시민의 마음을 후벼 파는 소리”라고 비판한 바 있다.

전 지원사격, 정무감각 '빛나'
부실검증 도마 오른 조 '흔들'

위장전입에 대해 이같이 강경한 발언을 했던 조 수석이 정작 청와대에 입성한 후 위장전입 후보자들을 잡아내지 못하는 자가당착에 빠진 것이다. 자연스레 정치권에선 청와대가 인사검증 기준과 관련해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태도를 보이고 있다며 비판이 쏟아졌다.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 정우택 원내대표는 원내대책회의서 “현 (인청) 정국을 풀기 위해 문 대통령이 직접 5대 원칙을 위배한 것에 대한 사과와 조 수석의 부실 인사 검증에 대한 규명과 조치, 새 장관 내각서 추경안 재편성 등 최소한의 성의를 보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 수석에 대한 책임론은 안 전 후보자가 낙마하면서 정점을 찍었다. 야3당은 일제히 조 수석 사퇴를 주장하며 들고 일어났다. 

한국당 주광덕 의원은 “인사 검증 부실 책임이 큰 조 수석의 교체가 필요하다”고 밝혔고, 국민의당 초선 의원 10명은 성명을 통해 “인사 실패를 인정하고 책임자를 문책하라”고 문 대통령에게 요구했다. 

바른정당 주호영 원내대표는 “검증 시스템 자체가 작동하지 않는 것인지, 검증 시스템은 있지만 직무를 유기한 것인지 철저히 따지겠다”고 불을 지폈다.

더욱이 조 수석과 안 전 후보자가 특수 관계임이 알려지면서 안 전 후보자에 대한 의혹을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검증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안 전 후보자가 지난 2000년 참여연대 집행위원장으로 일할 때, 조 수석은 사법감시센터 부소장으로 호흡을 맞췄으며 2001년 12월 조 수석이 동국대서 서울대로 교수직을 옮겼을 때 안 전 후보자의 도움을 받았을 정도로 가까운 사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자가당착’
조국 흔들

정치권서 권력은 권력자와의 거리에 비례한다. 이는 물리적 거리뿐 아니라 심리적 거리도 해당된다. 현재 대한민국의 최고 권력자는 문 대통령이다. 

그와 물리적 거리가 가장 가까운 사람은 지척의 거리서 보좌하는 임 비서실장이며, 심리적 거리가 가까운 사람은 인청 정국을 주도하는 전 수석이다. 문 대통령은 이 두 사람에게 강한 신뢰를 보이고 있다. 정치권에서 임 비서실장과 전 수석을 서열 2, 3위로 꼽는 이유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송영무-조대엽 엇갈린 희비
희생양 조, 구사일생 송

‘청문회 동기’의 희비가 교차했다. 그동안 논란이 됐던 송영무 국방부장관과 조대엽 전 고용노동부장관 후보자의 운명이 엇갈렸다. 조 전 후보자는 결국 자진사퇴 의사를 밝혔는데 반해, 송 후보자는 바로 뒤 국방부장관에 임명됐다.

조 전 후보자는 지난 13일 복수의 언론을 통해 “본인의 임명 여부가 정국 타개의 걸림돌이 된다면 기꺼이 장관 후보자 사퇴의 길을 택하겠다”고 밝혔다. 음주운전과 사외이사 의혹으로 논란을 빚어왔던 조 전 후보자는 청문회의 높은 벽을 실감해야 했다. 

형식은 자진사퇴지만, 사실상 지명 철회로 풀이된다. 일자리 추경안 통과를 위해 국민의당 설득에 나선 청와대는 조 전 후보자를 내주며 국민의당의 국회 복귀 명분을 만들어줬다는 시각이 중론이다. 

그러나 함께 논란을 빚었던 송 장관은 조 전 후보자가 자진사퇴한지 1시간 반 뒤 국방부장관에 전격 임명됐다.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송 장관에 대한 여러 가지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던 것을 잘 알고 있으며, 후보자의 도덕성과 전문성을 철저히 검증하고자 한 국회의 노력을 존중한다”면서도 “엄중한 국내외 상황서 흔들림 없는 국가 안보를 위해 국방부장관 임명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입장을 이해하여 주실 것을 요청 드린다. 북한의 계속되는 도발로 국가의 안전을 걱정하는 국민 여러분을 이제는 안심시켜 드려야 할 때”라고 송 장관 임명 강행 사유를 밝혔다.

야당은 송 장관 임명 강행에 반발하고 있다. 자유한국당 정우택 원내대표는 “두 분(조대엽·송영무)이 다 부적격자”라며 사실상 반대 의사를 명확히 했다. 국민의당 김수민 원내대변인은 “방산비리 의혹까지 제기된 인물에게 국방개혁을 맡길 수 없다”며 송 장관 임명에 반대했다. 그러나 조 전 후보자를 지명 철회한 청와대가 송 장관을 사퇴시킬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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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법률수석 부활 속셈

‘갑자기?’ 법률수석 부활 속셈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4·10 총선이 범야권의 승리로 끝났다. 집권여당은 참패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집권 3년차인 윤석열정부는 국정운영의 동력을 잃게 생겼다. 레임덕을 넘어 데드덕이라는 표현까지 나오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정치 인생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식물 대통령’으로 전락한 윤 대통령의 다음 행보는 엇일까? 속사정이야 어떻든 숫자만 놓고 봤을 때 이견이 없는 결과가 나왔다. 범야권은 192석을 얻어 ‘반윤 거야’ 전선을 형성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161석, 민주당의 위성정당 더불어민주연합 14석, 조국혁신당 12석, 개혁신당 3석, 새로운미래 1석, 진보당 1석 등을 모두 합친 수치다. 국민의힘은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 의석(18석)을 포함해 108석을 얻는 데 그쳤다. 완벽한 참패 식물 대통령 선거를 진두지휘한 각 당 대표의 희비도 엇갈렸다. 사법 리스크를 안고도 선거를 승리로 이끈 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정국의 주도권을 잡게 됐고 국민의힘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정치 생명에 큰 타격을 입었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은 실제 선거를 뛴 선수보다 더 큰 영향을 받게 됐다. 윤 대통령은 임기 내내 의회 주도권을 야당에 내준 상태로 정국을 운영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한다고 해도 여당의 이탈표를 걱정해야 한다. 총선이 끝나면서 권력의 무게추가 당으로 기울어지는 모양새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또 이미 거부권을 9차례나 사용한 이력이 민심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각 당은 이번 총선서 ‘정권 심판론’을 정면에 내세웠다. 민주당은 윤석열정부 심판, 국민의힘은 ‘이조(이재명-조국) 심판’ 프레임으로 유권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했다. 국민은 범야권에 의석을 몰아주면서 정부 심판의 손을 들어줬다. 윤석열정부에 대한 중간평가에 ‘낙제점’을 준 것이다. 윤석열정부는 당장 밀어붙이고 있던 정책에 차질을 빚게 됐다.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을 골자로 하는 의료개혁이 대표적이다. 윤 대통령은 총선 패배 메시지를 통해 의료개혁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드러냈지만 추진력에 대해서는 의문부호가 붙는다. ‘카르텔 타파’라는 국정기조도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 윤 대통령은 지난 16일, 총선 결과와 관련해 첫 육성 메시지를 내놨다. 총선 참패 후 엿새 만이다. 민정수석실 폐지 대선공약 민심 청취 명분 부활 예고 윤 대통령은 “총선을 통해 나타난 민심을 우리 모두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올바른 국정의 방향을 잡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음에도 국민들께서 체감하실 만큼의 변화를 만드는 데 모자랐다”며 “큰 틀에서 국민을 위한 정책이라 해도 세심한 영역서 부족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윤석열정부서 추진하고 있던 개혁은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윤 대통령은 “노동, 교육, 연금 등 3대 개혁과 의료개혁을 계속 추진하되, 합리적인 의견을 더 챙기고 귀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국회와의 긴밀한 협력을 말했지만 야당을 명시적으로 언급하진 않았다. 윤 대통령의 메시지에 야권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민주당 홍익표 원내대표는 윤 대통령의 메시지에 대해 “개탄스럽다”며 “오만, 독선, 불통 정치를 계속하겠다는 마이웨이 선언”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이번 총선서 확인한 민심은 국정기조 전면 전환과 민생경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할 방안을 제시해 달라는 주문”이라며 “윤 대통령은 국정 실패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민생경제의 잘못을 인정하고 실질적 대책과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이 총선 패배에 대한 목소리를 내면서 이후 내놓을 쇄신안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미 국무총리와 대통령비서실장 인선과 관련한 하마평이 나오는 중이다. 지난 17일에는 대통령실서 국무총리로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을, 비서실장에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을 고려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일단 대통령실에서는 “검토한 바 없다”고 대응한 상태다. 3대 개혁 밀어붙인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현재 비서실장 아래에 있는 공직기강비서관실과 법률비서관실을 관장할 ‘법률수석비서관실(가칭)’이 신설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민심 청취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민정수석이 존재할 당시 폐해로 여겨졌던 사정 기능은 제한하고 민심을 읽는 방향의 조직을 만들 것이라는 구체적인 언급도 나오고 있다. 이 과정서 사실상 민정수석실이 부활하는 게 아니냐는 의견이 나왔다. 민정수석실 폐지는 윤 대통령의 대선공약 중 하나였다. 윤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앞으로 대통령실 업무서 사정, 정보 조사 기능을 철저히 배제하고 민정수석실을 폐지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과거 사정기관을 장악한 민정수석실은 합법을 가장해 정적, 정치적 반대 세력을 통제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고 세평 검증을 위장해 국민 신상 털기와 뒷조사를 벌여왔는데 이런 잔재를 청산하겠다”고 말했다. 실제 윤석열정부 출범 직전 대통령실은 2실(비서실·국가안보실) 5수석(경제·사회·정무·홍보·시민사회) 체제로 개편됐다. 당시 당선인 신분이었던 윤 대통령이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청산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윤석열정부 출범 3개월 만에 정책기획수석이 신설되면서 2실6수석 체제가 됐다. 민정수석실서 맡고 있던 공직기강 업무와 인사검증 업무는 법률비서관, 법무부 등으로 이관됐다. 특히 법무부에 공직자 검증 업무를 전담하는 인사정보관리단이 신설되면서 당시 법무부 장관이었던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에 권력이 지나치게 집중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사정 기능 제한한다? 지난해 11월 윤 대통령은 정책실장을 신설하는 등 대통령실 직제를 3실6수석 체제로 개편했다. 개편 과정서 기존 수석들을 물갈이하면서 대통령실 2기 체제의 출범을 알렸다. 이때도 민정수석실 관련 언급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총선 패배 이후 대통령실 쇄신안에 법률수석이 거론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야당은 즉각 반발했다. 민심 청취는 표면용일 뿐 결국 윤 대통령이 사정정국을 조성하려는 의도를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민정수석실 폐지’라는 대선공약을 파기하고 여소야대 정국을 돌파하기 위한 자구책이라는 설명이다. 여기에 야당서 예고한 특검을 방어하려는 선제적 조치가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당초 민정수석실은 민심 청취 기능과 무관하게 운영됐다. 오히려 폐지 가능성이 나오고 있는 시민사회수석실이 민심을 듣는 역할을 해왔다. 민정수석은 고위공직자 인사 검증, 국정 관련 여론 수렴, 고위공직자 복무 동향 점검, 대통령 친인척 관리, 사정기관과 소통 등의 업무를 주로 했다. 하지만 역대 정부서 가장 부각됐던 기능은 국가정보원, 검찰, 경찰, 국세청, 감사원 등 5대 사정기관을 관리하는 것이었다. 실제 2000년 김대중정부서 폐지되기 전까지 이른바 ‘사직동팀’이 청와대 하명수사를 전담했다. 사직동팀은 경찰청 형사국 조사과를 일컫는 말이다. 윤 대통령 역시 당선인 시절 대통령 인수위원회 첫 과제로 민정수석실 폐지를 밀어붙이며 “사직동팀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한 바 있다. 대통령실은 법률수석을 신설하더라도 사정 기능은 제한하겠다는 뜻을 비쳤지만 의심의 눈초리는 여전하다. 김건희·채 상병 특검법 대기 신임 수석 검찰 출신 될 듯 민주당 고민정 최고위원은 지난 16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법률수석 신설은 앞으로 들이닥칠 영부인에 대한 특검 등을 방어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며 “이제 와서 법률수석비서관실을 신설한다는 것은 사법 리스크 방어 차원”이라고 주장했다. 21대 국회에 이어 22대 국회서도 여소야대 정국이 유지되면서 민주당 등 범야권은 ‘해병대 채 상병 사망사건 수사외압 의혹 특별검사법(채 상병 특검법)’과 ‘김건희 여사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특별검사법(김건희 여사 특검법)’ 등을 예고했다. 국민의힘서도 채 상병 특검법 수용과 관련해 의견이 갈리는 만큼 국회 통과 가능성이 제기된다. 윤 대통령은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 한 차례 거부권을 행사한 상태다. 192석을 확보한 범야권은 21대 국회서 채 상병 특검법이 좌절된다고 해도 22대 국회서 재추진한다는 뜻을 보이고 있다. 고민정 최고위원도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채 상병의 죽음 앞에 정치권이 더는 부끄럽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민주당서도 의지가 충분히 있고 국회서 당장 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돼있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김건희 여사 특검법도 22대 국회 개원 전후로 다시 도마에 오를 전망이다. 12석을 확보한 조국혁신당은 아예 22대 국회 1호 법안으로 김건희 여사 특검법을 공언했다. 민주당과 개혁신당 등이 조국혁신당에 동의한다는 뜻을 보인 만큼 추진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 높다. 국민의힘 내부서도 수용 여부에 대한 의견이 갈리고 있어 향후 상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정기관 잡고 흔드나 범야권이 다수 의석을 무기로 특검 정국을 예고하면서 윤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압박 수위가 높아지는 모양새다. 법률수석을 새로 만들려는 의도가 ‘방어’로 읽히는 분위기도 윤 대통령이 처한 상황이 녹록지 않기 때문으로 보인다. 심지어 총선이 마무리되면서 국민의힘에 대한 윤 대통령의 지배력 역시 작아진 상태라는 점도 법률수석 신설의 배경으로 꼽히고 있다. 이미 시작된 것으로 보이는 레임덕을 최대한 늦추기 위한 궁여지책이라는 말도 나온다. 신임 법률수석을 누가 맡게 될지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벌써부터 하마평이 돌고 있다. 검찰 출신들로 채워질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