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으로’ 사법시험의 추억

사라진 개천…돈이 용을 키운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인생 역전의 사다리’라 불렸던 사법시험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지난 21∼24일 지난해 1차 시험 합격자 중 2차 시험에 불합격한 인원을 대상으로 2차 사법시험이 치러졌다. 사법시험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의 도입 이후 존폐 논란에 시달렸다. 사법시험 존치 법안이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이지만 통과 여부는 불투명한 상태. 1947년 조선변호사시험 시행 이후 사법시험 70년의 발자취를 더듬어봤다.
 

김씨 할머니는 세상을 뜨기 전까지 평생 ‘판·검사’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매일 새벽 4시 밭일을 나서기 전 아들 박씨를 깨우면서 한 말도 “얼른 일어나서 공부해. 판·검사 돼야지”였다. 아들 박씨는 어머니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 오랫동안 사법시험을 준비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가난한 시절
유일한 희망

김씨 할머니의 바람은 손자에게로 이어졌다. 손자가 태어나자 김씨 할머니는 계룡산 중턱에 있는 절의 스님에게서 ‘법중(法中)’이라는 아명을 받아왔다. 법의 한가운데라는 뜻으로, 손자가 판·검사가 되길 바라는 간절함을 담은 이름이었다.

예전에는 사법시험에 합격한 사람을 두고 ‘개천서 용 났다’고들 했다. 다 같이 못 먹고 못 살던 시절, 이른바 전국이 ‘개천’이었던 시절에는 사시 합격이 상류층으로 가는 초고속 열차나 다름없었다. 

공부 좀 한다는 학생들은 대부분 사법시험에 도전했다. 사법시험을 준비하는 자녀를 뒷바라지하느라 허리가 휘어도 부모는 그저 합격만 하라며 일에 매달렸다.


자녀가 사법시험서 1차라도 합격하면 동네 어귀에는 플래카드가 붙었다. ‘OO의 아들, OO사법고시 1차 합격’의 플래카드가 나부끼는 날에는 동네 회관에 잔치가 벌어졌다. ‘소를 잡는다, 돼지를 잡는다’ 난리가 난 상황서 동네 사람들은 ‘합격턱’을 내는 부모를 부러움 섞인 눈으로 바라보곤 했다.

47년 조선변호사시험 후 70년 역사
보통 사람들의 출세 ‘희망 사다리’

사법시험은 아직까지도 드라마나 영화의 단골 소재로 사용되고 있다. 가세가 심하게 기운 집을 일으키기 위해 주인공이 도전하는 시험은 대부분 사법시험이었다. 

올해 흥행에 성공한 영화 <더 킹>서도 주인공은 지긋지긋한 현실서 벗어나기 위한 수단으로 사법시험을 선택한다. 사법시험은 합격에 이르기까지 힘들지만 일단 사다리에 올라타면 앞길이 탄탄대로일 것이라 믿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 덕에 사법시험은 지금껏 우리나라 최고 시험으로 인정받아 왔다.
 

사법시험의 시초는 1947∼1949년 3년간 시행된 조선변호사시험이다. 이후 1950년부터 1963년까지 고등고시 사법과가 시행되다가 ‘사법시험령’ 제정과 함께 현재 이름으로 불리게 됐다. 

초기 사법시험은 합격자 모두 판·검사로 임용되는 사실상 임용시험이었다. 정원을 정해두지 않은 절대평가 방식으로, 평균 60점 이상이면 모두 합격하는 시스템이었다. 1967년에는 합격자가 5명에 불과했다.


선발 인원 늘어
2만 법조인 양성

그러다 1970년 합격 정원제가 도입된 후 합격자가 매년 60~80명으로 늘어났다. 1980년에는 합격자가 300명에 이를 정도로 문이 넓어졌다. 1995년 사법 개혁의 일환으로 선발 인원이 단계적으로 증원되면서 2000년대 초반 합격자 1000명 시대가 시작됐다. 1963년 이후 55년간 사법시험으로 배출된 법조인은 2만여명에 이른다.

사법시험하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게 신림동 고시촌이다. 1980년대 초 신문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고시촌’이라는 말은 국가고시를 준비하는 고시생들이 공부방과 거주 용도로 사용하던 고시원이 밀집한 지역을 말한다. 

국가고시를 준비하던 서울대학교 학생들이 관악산 기슭 여러 하숙집에 거주하다 사법시험에 합격하는 사람이 많아지자 말 그대로 전국 각지서 고시생이 모이기 시작했다.

사법시험 선발 인원이 증가하자 시험을 준비하는 지원자 역시 급증했다. 과거 선발 인원이 소수일 때 절에 들어가 머리를 싸매고 사법시험을 준비하던 풍토는 문호가 넓어지자 일대 변화가 일어났다. 

학원서 나오는 족집게 요점정리 등 시험 정보가 고시생을 중심으로 돌기 시작했고 시험 출제 경향에 대해 함께 스터디를 진행하는 일도 늘었다. 그 과정서 신림동 고시촌은 1990년대 고시생 숫자가 20만명에 이르는 등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고시생이 모여들자 고시 서적을 판매하는 서점 역시 우후죽순처럼 생기기 시작했다. 가장 유명했던 곳이 전 국무총리 출신의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의원과 가족이 운영했던 광장서적이다. 

광장서적은 1978년부터 2013년까지 35년간 신림동 고시촌의 상징이었다. 인문사회과학서점 ‘그날이 오면’도 1988년부터 서울대생들의 세미나실 역할을 톡톡히 하며 명소로 자리 잡았다. 거대 상권이 형성된 신림동 고시촌에는 값싼 밥집과 술집이 들어섰고, 학원과 독서실 등이 얽혀 특유의 문화를 형성했다.
 

고시생들의 시간은 철저하게 사법시험 일정에 맞춰 돌아갔다. 신림동 고시촌의 시간 역시 고시생들의 시간에 따라 움직인다. 사법시험은 1차 시험에 합격하면 두 번의 2차 시험 기회가 주어진다. 1차 시험 합격 발표 후 바로 치러지는 2차 시험서 합격하긴 쉽지 않다. 보통 1년을 기다려 2차 시험을 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3%도 안 되는 합격률
대다수 고시낭인으로

두 번째 2차 시험서 떨어지면 다시 1차 시험에 도전해야 한다. 정신을 차려보면 4∼5년도 훌쩍 지나가 있다. 대입 시험처럼 재수, 삼수를 하다보면 10년도 금방이다. 그 사이 고시생들은 장수생이 돼있다. 고시촌 바깥에서 보기엔 ‘고시 낭인’이라고 불릴 정도로 시간이 흘러 있는 것이다. 일반인에겐 긴 시간이지만 고시생에게는 빛보다 빠른 속도로 흐른 세월이다.

100명 중 3명만
합격의 영광을


이렇게 해도 사법시험의 합격률은 3%가 안 된다. 100명이 도전해도 97명은 떨어지는 시험이라는 뜻이다. 절대적인 공부량이 많고 난이도가 높기 때문에 극소수 고시생을 제외한 절대 다수는 기약 없는 전쟁터에 내던져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법시험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 사이서 가장 많이 내세우는 근거 중 하나다. 청춘을 다 바쳐 사법시험에 매달려도 결국 대다수는 ‘낭인’으로 남는다는 것.

노무현정부는 2007년 법학전문대학원 설치·운영에 관한 법률, 이른바 로스쿨법을 제정했고 2009년 전국 25개 로스쿨이 문을 열었다. 국회는 변호사시험법을 제정해 사법시험 선발 정원을 2010년부터 단계적으로 줄여 올해 전면 폐지하기로 결정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9월 사법시험 폐지를 예정한 변호사시험법에 ‘합헌’ 결정을 내렸다.

이후 후속 입법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사법시험의 폐지 가능성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상태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대선 후보 시절부터 사법시험 존치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드러낸 바 있어 큰 흐름을 뒤집기는 어렵다는 목소리가 높다.

30년간 고시생들과 울고 웃은 신림동 고시촌은 사법시험 존폐 논란이 불거진 시점부터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하더니 최근에는 그 바람이 조금 더 거세졌다. 서점, 독서실 등 신림동 고시촌의 명소들은 경영난을 이유로 이미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광장서적은 부도가 난 뒤 ‘북션’으로 바뀌었고 18년간 자리를 지켰던 한국서점의 주인 아주머니는 부동산을 운영하는 공인중개사로 변신했다.

고시 서적의 인쇄·복사를 담당했던 가게들 역시 하나둘 문을 닫고 있다. 한 집 걸러 하나씩 있던 독서실은 원룸으로 바뀌었다. 고시생이 빠져나간 자리엔 값싼 방을 찾는 직장인들이 찾아오고 있다. 
 

젊은 대학생을 위한 커피전문점과 주점도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고시촌의 색채가 옅어지면서 새로운 성격의 건물도 생겼다.

일각에선 사법시험 폐지로 신림동 고시촌이 사라지기보다는 최근 늘고 있는 공시생이 고시생의 빈자리를 채울 것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실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공시족들이 노량진에서 신림동으로 옮겨오는 사례가 늘고 있다. 

발 빠른 상인들은 법전 대신 공무원 수험서로 책장을 채웠고 사법시험을 대비하던 학원은 노무사나 법무사 등 다른 자격증 대비 광고로 전단을 바꿨다.

신림 고시촌
새바람 불어

변화의 바람을 정통으로 맞고 있는 고시촌을 보존하려는 시도도 있다. 김태수 대학동주민자치위원회 위원장은 “고시촌 풍경이 사라지는 게 아쉬워 지난해 고시촌 기념관을 만들려는 시도를 했었다”며 “고시원을 개조해 30년의 고시촌 역사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전했다. 이어 “지난번에는 뜻대로 안됐지만 올해 다시 한 번 도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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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 상병 특검’ 공수처 불편한 속내

‘채 상병 특검’ 공수처 불편한 속내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채 상병 특검’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야권의 4·10 총선 압승으로 더불어민주당의 움직임에도 속도가 붙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난감하기만 하다. 부족한 인력으로 인해 수사의 첫 단추도 끼우지 못하는 실정이다. 발 빠른 수사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공수처 안팎에서는 정치권의 책임 떠넘기기에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조직이 와해되기 직전인데 수사에 속도가 어떻게 나겠느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출신 한 변호사의 말이다. 요즘 공수처의 분위기는 참혹하다. 해병대 ‘채 상병 사건’으로 반전을 꾀하고 싶어도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특별검사(이하 특검) 목소리가 거세지면서 ‘비교 대상’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대통령실 압수수색? 채 상병 사건 특검법 추진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공수처의 분위기는 암흑 상태다. 검찰 제도를 보완해 ‘상설특검’ 명목으로 출범했음에도 ‘늑장·부실’ 수사 논란 속에 결국 사건 기록을 특검에 넘겨줘야 하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오는 5월2일, 임시국회를 열어 법안을 표결하자는 분위기다. 법안 통과를 위해서는 국회의장과 여당의 협조가 필요한데, 총선 이후 여당 일각서도 채 상병 특검에 동의하는 분위기가 표출되고 있다. 채 상병 특검 법안은 지난해 10월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뒤 180일의 숙려 기간을 거쳐 본회의 표결만 하면 언제든 통과할 수 있는 상황이다. 채 상병 사건 수사 갈래는 크게 두 가지다. 무리한 수색 지시 등 책임자를 가리는 본안 수사가 경북지방경찰청서 진행 중이고, 해병대 수사단의 초동 조사에 국방부와 대통령실 관계자가 개입했다는 외압 의혹은 공수처가 맡고 있다. 외압 핵심 피의자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주호주대사로 임명돼 부임 후 사퇴하는 과정서 대통령과 법무·외교부 장관의 직권남용 의혹도 공수처에 추가로 고발됐다. 야권이 특검을 통해 밝히려는 사안의 실체는 수사 외압에 집중돼있다. 특검이 통과되면 공수처가 내려던 실적이 특검으로 넘어가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민주당은 이 대사 임명 과정서의 추가 의혹도 특검법안을 수정 발의해 포함할 계획이다. 공수처는 수사의 무게를 일부 덜겠지만, 6개월 넘게 진행해온 사건 기록을 외부에 넘긴다는 건 또 다른 비판의 빌미를 제공하는 셈이다. 특검 추진 본격화…수사팀 의욕 잃어 “이럴 거면 왜 강조하나” 불만 증폭 공수처 출신 한 변호사는 “인력난 때문에 고전하는 상황이다. 내부 얘기를 들어보면 ‘죽을 맛’이란다. 채 상병 사건 수사는 최선을 다하려 했는데 특검이 언급되면서 수사팀의 의욕이 상실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수처법상 수사 범위와 인원 범위가 지나치게 제한돼있어 실질적인 수사 기능을 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설명이다. 공수처법은 공수처의 수사 범위를 현직 공직자와 그 가족, 퇴임 3년 이내 전직 고위공직자로 한정하고 있다. 공수처 검사와 수사관의 인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현재 공수처법이 규정하고 있는 검사와 수사관의 규모는 처·차장 포함 검사 25명, 수사관 40명이다. 공수처법을 추진할 당시 규모는 검사 30~50인, 수사관 50~70인이 제안됐지만 법무부와 국회의 논의를 거치면서 현재 정원으로 대폭 감소했다. 공수처 관계자는 “총선과 무관하게 지속적으로 인원 확대와 관련해 국회와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며 “검사의 신분보장을 위한 임기에 대해서도 개선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앞서 공수처는 최소한의 행정인력이라도 확보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 달라고 호소한 바 있다. 현행법상 행정인원 정원은 20명인데 지난 2022년 공수처는 행정직원 중 국·과장과 직제 파견자 등 7명을 제외하면 실제 가용인원이 13명에 불과해 수사관을 행정인력에 투입해야 할 상황에 놓인 바 있다. 공수처가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법 개정이 필수적이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특히 공수처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일치시켜 수사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수처는 ‘공수처법상 기소권 없는 사건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연구용역’을 발주하는 등 수사 대상과 기소 대상의 불일치로 발생하는 구속영장 논란을 정리하기 위한 연구에 착수하기도 했다. 인력난 가중화 지금까지 공수처가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한 상황을 보면 초기 단계에 불과하다. 지난해 12월 이 전 장관 등을 출국금지했고, 한 달 후인 지난 1월 압수수색에 착수했다. 이후 포렌식과 참고인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 전 장관을 비롯한 국방부 지휘부와 해병대 수뇌부 등에 대한 조사는 특검의 몫이 될 가능성도 있다. 경우에 따라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등으로 특검 수사가 확대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공수처와 경찰은 특검법 처리 여부를 주시하며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총선 국면서 논란의 중심에 선 공수처는 수사를 신속하게 진행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겠다는 입장이다. 공수처 지휘부 공백 상태가 영향을 줄 여지도 있다. 주요 피의자 소환 및 신병처리 등 주요 의사결정을 처장 대행인 부장검사가 결정하기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다. 만약 국회서 여야가 특검법 처리에 합의하는 수순을 밟으면 공수처도 새로 출범할 특검에 기록을 인계하기 위한 작업에 중점을 둘 가능성이 크다. 현재 본회의에 회부된 안은 민주당이 지난해 9월 발의한 법안이다. 민주당이 지난 3월, 이 전 장관이 주호주대사로 임명된 경위를 수사해야 한다는 별도의 특검안도 국회에 제출했기 때문에 이 두 법안이 병합되는 안도 거론된다. 본회의 회부 안건은 수사기간을 최장 100일로 정하고 있는데, 잔여 수사를 검찰에 이첩하도록 명시됐다. 경찰과 공수처가 시작한 수사가 특검을 거쳐 검찰 손에 넘어가는 것은 부자연스럽다는 말도 나온다. 민주당이 3월 발의한 안은 잔여수사 이첩 대상을 검찰과 공수처로 정했다. 단추도 못 끼워 민주당이 특검법 조항 일부를 양보하고 국민의힘이 수사 대상 확대에 동의하는 시나리오도 정치권을 중심으로 나온다. 이런 과정서 본회의 회부 안이 조정될 수도 있다. 이 가운데 이 전 장관은 최근 변호인을 통해 공수처에 “소환조사를 진행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 전 장관 측이 공수처에 소환조사를 요청한 것은 이번이 네 번째다. 이 전 장관 측 김재훈 변호사는 최근 공수처에 소환 촉구 의견서를 내고 “이 전 장관은 호주 대사직서도 물러났으나 공수처는 지금까지도 아무런 연락이 없다”며 “공수처의 이런 수사 방기 탓인지 정치권에서는 특검 필요성까지 제기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공수처에 보낸 의견서에서 “이첩 보류 지시는 직권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국방부 장관은 민간 수사기관으로의 사건 이첩에 대한 최종 승인권자이므로 인사권자가 인사안 결재 후 이를 취소·변경할 수 있듯이 그 승인을 변경할 수 있다”며 “해병대 수사단장에게 수사 권한이 있다느니, 수사단장에게 민간 수사기관으로의 이첩 권한이 있다느니 하는 것은 법 규정의 몰이해로부터 비롯된 억지”라고 주장했다. 이 전 장관 측은 ‘이 장관이 보고서를 회수하라고 지시하기 전에 대통령실 내선번호로 전화를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이 전 장관 측은 “이 전 장관은 대통령으로부터 (사단장을 빼라는)지시를 받은 사실이 없다”며 “당시 장관이 군사보좌관과 논의하는 과정서 ‘(초급 간부들까지 처벌 대상에 포함한다면)초급 간부들이 힘들어할 것 같다’는 의견을 나눴고 법무관리관실의 법리 검토를 거쳐야 한다고 판단해 이첩 보류를 지시했다”고 강조했다. 수사 인원 범위 제한적 법 개정 안되면 도루묵 이어 “재검토한 결과 8월24일 직접적인 혐의가 있는 2명을 경찰에 이첩했고, 해병대수사단 조사기록 원안도 그대로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 전 장관 측은 민주당이 추진하는 ‘채 상병 특검’도 비판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공수처의 1차 수사 결과도 나오지 않은 상황인데 무엇이 미흡하고 국민적 의혹이 남아 해소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냐”며 “특검 논란을 잠재울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은 공수처의 신속한 수사와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공수처 수장이 석 달째 공석인 점은 제도 지속 가능성에 의문을 더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최종 후보자 지명을 두 달 가까이 미루고 있다. 앞서 국회 공수처장후보추천위원회는 지난 2월29일 판사 출신 오동운(사법연수원 27기) 변호사와 검사 출신 이명순(연수원 22기) 변호사를 후보로 추천했다. 김진욱 전 처장과 여운국 전 차장이 임기 만료로 퇴임해 공수처가 ‘대행 체제’에 들어간 건 지난 1월 말부터다. 김선규 수사1부장이 처장 대행을 맡고 있지만, 지난달 제출한 사직서가 수리되지 않아 임시로 대행직을 수행 중이다. 최근 인사위원회서 연임이 불발된 수사1부 소속 김송경 검사(사법연수원 40기) 임기도 만료됐다. 김 대행이 이끄는 수사1부는 공기광 검사만 남게 된다. 별도 조직개편 계획도 없어 수사 부서 1개가 사실상 사라질 위기다. 윤 대통령이 공수처장 후보자를 지명해도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해야 임명이 가능하다. 21대 국회 임기는 내달 29일까지다. 22대 국회가 개원해도 원구성에 시일이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신속한 공수처장 공백 해소를 위해선 이달 안으로 후보 지명을 마쳐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수장 공백 장기화 우려 법조계에서는 특검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공수처법에 따르면, 공수처는 이 전 장관에 대한 수사권은 있지만 기소 권한이 없다. 수사를 마친 뒤 검찰에 사건을 넘기고 검찰이 기소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 구조다. 공수처 출범 당시 수사·기소권을 모두 줄 경우 일각에선 ‘무소불위 공수처’가 될 거란 우려가 제기되면서 공수처는 법관, 검사, 고위 경찰공무원에 대해서만 제한적 기소권을 갖게 됐다. 문제는 검찰이 채 상병 사건 기소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검찰을 관할하는 법무부는 지난달 8일, 공수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 전 장관의 출국금지를 해제했다. 사건 처리의 중립성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특검을 통해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