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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천우의 시사펀치> 광해가 주는 교훈
  • 황천우 소설가
  • 승인 2017.06.19 11:21
  • 호수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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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는 물론 광해군을 지칭한다. 일전에도 언급했었지만 광해가 아직도 임금의 시호를 받지 못하고 군에 머물러 있는 부분에 대해 그저 아리송하기만 하다. 비록 반정으로 권력을 잡은 인조 임금이 군으로 격하시켰다고 하지만, 그 후 왕들은 광해를 임금으로 회복시켜줘야 했다. 

아울러 필자가 광해라면 임금의 시호를 받지 못하느니 차라리 왕자의 신분인 군이 아닌 광해로 불리기를 원할 터다.

이와 관련 외국의 사례를 살펴보자. 역사에서 그 악명을 떨쳤던 로마의 네로에 대해서도 우리는 자연스럽게 ‘네로 황제’라 칭하고 있다. 네로에 비한다면 광해의 행적은 그야말로 조족지혈에 불과함에도 불구하고 광해를 왕이 아닌 군으로 지칭하는 일은 상당히 모순적이다.

그 광해가 임금으로 군림했던 당시 있었던 일 하나 소개하자. 조선왕조실록 광해군 12년(1620) 3월28일에 실려 있는 기록으로 비변사에서 강홍립에 대해 치죄를 요청하자 광해가 대답한 내용이다.

“강홍립이 노적(여진족, 후금)의 실정만을 진달했을 뿐이지 무슨 나라를 판 일이 있는가. 진달한 것이 너무 지나치다. 누가 이 논의를 주장했는가? 나라를 도모하는 훌륭한 계책을 일률적으로만 논의할 수 있겠는가.”

당시 상황에 대해 덧붙이자. 명나라의 기운이 쇠하고 여진족이 세운 후금이 왕성하게 기세를 떨칠 즈음이다. 후금의 침략으로 궁지에 몰린 명나라는 조선에 원병을 요청한다. 그로 인해 광해의 고민은 깊어간다. 물론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의 도움을 받은 일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광해는 이미 명나라가 망하고 누루하치가 이끄는 후금(후일 청나라)이 대륙의 새로운 주인이 되리란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여 광해는 명분도 살리고 실리도 챙기는 전략을 구사한다. 그를 위해 문신인 강홍립을 도원수로 임명하고 은밀한 밀명을 내린다.

광해가 내린 밀명은 짧고 간단했다. 단지 “형세를 보아 판단하라”는 말이 전부였다. 그러나 이면에는 광해의 진정이 숨어 있었다. 명나라에는 신세진 부분에 대한 예의를 표하고 후금의 비위를 건드리지 말라는 주문이었다.

이에 따라 명나라군과 연합군을 형성한 강홍립은 후금과의 전투에 앞서 작전에 차질이 생겼음을 이유로 후금에 투항한다. 실록의 내용은 바로 그 당시 강홍립의 처사에 대해 중죄로 다스려야 한다는 신하들의 요구에 대한 답변이다.

명나라와 후금 사이에서 광해의 선택은 당연했다. 강홍립은 단지 광해의 명을 충실히 이행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를 알 길 없는, 명나라에 목매고 있던 신하들은 강홍립을 치죄하자고 나서고 있으니 광해는 그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결국 이 일이 계기가 되어 후일 광해를 악덕 군주로 몰아세우고 권좌서 밀어낸 인조는 광해가 행했던 정책을 지워버리고 반금친명(反金親明) 정책을 쓰면서 병자호란이라는 치욕을 맞이하게 된다.

이제 현실로 시선을 돌려보자. 문재인 대통령은 김대중, 노무현정권으로 이어진 햇볕정책과 미국 사이에서 확실하게 방향 설정을 하지 못한 듯하다. 한편 생각하면 오히려 명분, 즉 햇볕 정책에 의미를 부여하는 듯 보인다.

물론 명분도 마냥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와 국민들을 위한 실리가 우선돼야 한다. 그런 의미서 인조가 아닌 광해의 정책을 살펴봐야 할 일이다.

※ 본 칼럼은 <일요시사>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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