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21주년 특집7> 21년 전 그들은…

역사에 묻히고 역사가 살리고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일요시사>가 21번째 생일을 맞았다. 1996년 5월 창간 이후 <일요시사>는 격동의 현대사를 겪고 수많은 굴곡을 경험하며 지금의 모습으로 성장했다. 이름만 대면 알 정도로 유명한 각계각층 인사들 역시 21년 전에는 또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다. <일요시사>는 창간을 맞아 유명인사들의 21년 전 모습을 담아봤다.

대중은 유명인사들의 과거에 관심이 많다. 각 분야에서 높은 인지도를 자랑하는 이들이 예전에 어떤 모습이었는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대중의 눈에 띈 유명인들의 과거가 공개되는 건 일종의 ‘통과의례’처럼 돼버렸다. 대중은 현재 모습에서 한 번, 과거 일화서 한 번 그들을 ‘검증’한다.
 

강산이 두 번
그동안 무슨 일?

▲문재인 대통령 ‘문변’= 1996년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던 문재인 대통령은 그해 8월 남태평양에서 조업 중이던 참치잡이 원양어선 ‘페스카마호’서 조선족 선원 6명이 한국인 선원을 포함해 11명을 살해한 사건의 변호를 맡았다. 

당시 부산변호사회 인권위원장이던 문 대통령은 페스카마호 사건의 2심부터 변호를 담당했다. 1심 판결에서 피의자 6명은 전원 사형 선고를 받은 상황이었다. 다음 해 4월 항소심에서 주범 1명을 제외하고 나머지 5명은 무기징역 판결을 받았고, 주범 역시 노무현정부 말기 특별사면 때 무기징역으로 감형됐다. 

문 대통령에게 페스카마호 사건 변론은 일종의 아킬레스건이다. 일부 보수언론은 노무현정부에서 비서실장으로 재직하던 문 대통령이 사면권을 남용했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은 “가해자들의 죄가 무겁지만 이들 또한 동등하게 법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며 “동포로서 따뜻하게 감싸야 한다”는 의견을 유지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칩거’= 헌정 사상 처음으로 탄핵당한 박근혜 전 대통령은 숫자 ‘18’과 묘한 인연이 있다. 먼저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61년 5·16군사정변으로 청와대를 장악해 1979년 10·26사태로 죽음을 맞기까지 18년 동안 대통령의 딸로 살았다. 

이후 신당동 사택으로 이사해 1997년까지 18년 동안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칩거생활을 했다. 박 전 대통령은 1997년 11월 15대 대선서 이회창 후보를 지지 선언하며 한나라당에 입당했다. 18년 만에야 공식적으로 언론에 얼굴을 비친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은 무려 2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가장 인지도가 높은 정치인으로 이미 알려진 상태였다. 그는 2007년 자서전서 “지금도 내가 걸어온 18년이라는 세월이 은둔과 칩거로 치부될 때 쓴웃음이 나온다”고 표현했다.
 

▲이건희 삼성 회장 ‘불구속 기소’=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지난 2014년 5월10일 급성심근경색으로 쓰러진 뒤 3년째 병상에서 투병생활을 하고 있다. 그사이 아들 이재용 부회장이 경영 일선에 나섰지만 박근혜-최순실게이트가 터지면서 박 전 대통령과 함께 감방 신세를 지고 있다. 

공교롭게도 21년 전 이 회장 역시 감방 신세를 질 뻔했다. 이 회장은 1995년 11월 대검 중수부가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조성 의혹을 수사하는 과정서 다른 대기업 총수들과 마찬가지로 조사를 받았다. 

이 회장은 당시 100억원의 불법정치자금을 건넨 혐의를 받고 있었다. 이 회장은 1996년 불구속 기소돼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1997년 10월 개천절 특별사면 대상자로 사면됐다.

한치 앞 모를 리더들의 희로애락
인생 완전히 뒤바뀐 경우도 있어

 


▲손석희 JTBC 보도부문 사장 ‘MBC맨’= 손석희 JTBC 보도부문 사장은 <시사저널>이 매년 실시하는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인’ 조사에서 12년 연속 1위를 차지하는 등 독보적인 위치를 자랑하고 있다. 

언론계서 하나의 아이콘으로 인정받고 있는 손 사장은 21년 전에는 MBC맨이었다. 손 사장은 1992년 MBC 파업 당시 수의를 입고 웃고 있는 모습이 포착돼 한차례 큰 관심을 받았다. 1996년에도 MBC는 파업 여파에 휘말렸다. 

MBC를 살리고자 했던 구성원들이 노력한 결과였다. 손 사장은 1996년 11월 <말>지에 기고한 글에서 언론인으로 살아가면서 변화한 자신의 삶을 담담히 기술했다.
 

▲조국 민정수석 ‘미국 유학’= 문재인 대통령이 19대 대선서 승리한 이후 청와대 민정수석 자리에 누구를 등용할지를 두고 관심이 컸다. 박근혜정부서 검찰이 보여준 행태가 비정상적이었기 때문에 국민들 사이에선 검찰개혁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민정수석은 말 그대로 칼자루를 쥔, 검찰개혁을 수행하는 데 핵심이 되는 자리다. 문 대통령은 취임 2일 만에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깜짝 발탁했다. 그간 민정수석이 검찰 출신이었던 점을 고려했을 때 조 수석의 등용은 파격 인사라 할 정도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조 수석은 누구보다 빠른 삶을 살았다. 16세에 서울대 법대에 최연소로 입학했고 26세 나이로 최연소 교수가 됐다. 1996년에 그는 미국 유학 중이었다. 1994년 8월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교 로스쿨로 유학을 떠난 그는 1997년 12월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조국 수석의 말에 따르면 지독히 공부만 하던 시기였다고.
 

▲김훈 작가 ‘첫 장편’= 김훈 작가는 작품을 발표할 때마다 문단과 대중의 높은 관심을 받는 한국 대표 문인이다. 수사를 극도로 절제한 간결하고 건조한 문체로 표현한 그의 소설은 나올 때마다 판매순위 최상위권에 위치한다.

시작, 불명예…
가지각색 과거

김 작가는 1994년, 47세 나이로 문단에 데뷔했다. 그는 작가로 데뷔한 이후에도 언론인 활동을 병행했는데, 1996년엔 <TV저널> 편집국장을 지냈다.

 그해 자신의 첫 장편소설 <빗살무늬토기의 추억>을 내놓았다. 작품은 문명에 지배당하는 한 소방관과 신석기 여인으로 비유된 장님 안마사의 죽음을 통해 문명을 지배하지 못하고 끌려다니는 현대인의 고뇌를 형상화했다. 

늘 뭉툭하게 깎은 연필로 한 글자, 한 글자 원고지에 써내려가는 그는 올해 1월, 첫 장편을 내놓은 지 21년 만에 9번째 장편소설을 발표했다.
 

▲신경숙 작가 ‘<전설>’= 신경숙 작가는 표절 논란을 겪으며 한국 대표 작가서 바닥으로 추락했다. 신 작가는 표절 논란에 휩싸인 작품 <전설>을 1996년에 발표했다. 신 작가의 단편소설 <전설>은 일본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을 베꼈다는 의혹을 받았다. 


이응준 작가가 두 작품의 문장이 유사하다는 이유를 들면서 시작된 표절 논란은 상당 기간 지속됐다. 신 작가는 표절 논란이 있기 전 <엄마를 부탁해> <외딴 방> <리진> 등으로 국내뿐 아니라 외국에서도 인기를 끌던 초특급 작가였기 때문이다.

대부분 큰 노력
유명인사로 우뚝

신 작가는 지난 2015년 한 언론과의 인터뷰서 “두 작품의 문장을 여러 차례 대조해본 결과 표절이란 문제를 제기하는 게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아무리 기억을 뒤져봐도 <우국>을 읽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이제 나도 내 기억을 믿을 수 없게 됐다”고 밝혔다. 신 작가의 표절 논란으로 문단은 큰 타격을 입었다.

수많은 굴곡 경험하고
지금의 모습으로 성장

 

▲배우 송강호 ‘영화 데뷔’= 지난해 송강호 주연의 영화 <밀정>의 관객수가 700만명을 돌파했다. 송강호는 극 중 조선인 일본 경찰로 출연해 생존과 대의 사이에서 고뇌하는 인물을 섬세하게 표현했다. 

<밀정>의 흥행 성공으로 송강호는 주연작 합산 관객수 1억명을 돌파하는 대기록을 세웠다. 1998년 첫 주연작인 <조용한 가족>부터 <밀정>에 이르기까지 22편의 작품에 동원한 관객수를 합한 것이다. 


그는 1996년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에 단역으로 처음 스크린에 등장했을 때부터 완성된 배우라는 평가를 받았다. 송강호는 1991년 연극으로 데뷔해 이미 잔뼈가 굵은 배우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에는 연극배우의 경제 상황이 매우 열악했다. 

송강호는 배고팠던 시절 열정과 노력으로 무대에 올랐고, 21년이 지난 현재 한국 영화계가 자랑하는 대배우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축구 박지성 ‘스승과 만남’= 1996년 박지성은 수원공고 1학년이었다. 박지성은 그 당시 축구에 대한 열정은 충만했지만 왜소한 체격으로 큰 주목을 받지 못하던 선수였다. 그런 그를 알아본 게 수원공고 이학종 감독이다. 

이 감독은 박지성에 대해 “키가 165㎝밖에 되지 않아 체격조건이 나빴지만 천부적인 지구력을 갖췄고 경기 운용 능력이 뛰어나 훌륭한 재목이 될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 감독은 수원공고를 졸업한 박지성을 원하는 대학이 없자 여기저기 읍소하고 다니는 등 제자를 위해 애쓴 것으로 알려졌다. 

간신히 명지대에 진학한 박지성은 허정무 전 감독의 눈에 띄어 2000년 시드니올림픽서 처음 대표팀 유니폼을 입었다. 이후 월드컵서 골을 넣고, 해외 프리미어리그 명문팀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서 활약하는 등 세계적인 축구스타로 발돋움했다.
 

▲피겨스케이팅 김연아 ‘시작’= 1996년 7세의 김연아는 과천의 아이스링크장을 찾아 고모가 선물해준 낡고 빨간 피겨 부츠를 신은 채 빙판을 누볐다. 소녀는 14년 후 2010년 캐나다 밴쿠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경기서 금메달을 따내며 ‘피겨여왕’으로 우뚝 섰다.

무대 내려오고
끝없는 추락도

현역 선수로 뛰는 내내 출전한 모든 경기서 3위 밖으로 벗어난 적이 없는 압도적 기량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이뤄진 것이었던 만큼 더욱 값졌다. 김연아는 2014년 러시아 소치올림픽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현재 김연아의 모든 관심은 내년에 있을 2018 평창 올림픽에 가 있다. 

평창올림픽 홍보대사인 김연아는 “평창올림픽은 꽁꽁 얼어붙은 분단의 강을 건너 인종과 언어, 지역과 종교의 벽을 허물고 진정한 인류애가 꽃피는 감동적인 순간을 꿈꾼다”며 “평창 대회는 인류 화합이라는 올림픽 정신을 가장 잘 구현할 수 있는 최고의 이벤트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채 상병 특검’ 공수처 불편한 속내

‘채 상병 특검’ 공수처 불편한 속내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채 상병 특검’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야권의 4·10 총선 압승으로 더불어민주당의 움직임에도 속도가 붙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난감하기만 하다. 부족한 인력으로 인해 수사의 첫 단추도 끼우지 못하는 실정이다. 발 빠른 수사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공수처 안팎에서는 정치권의 책임 떠넘기기에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조직이 와해되기 직전인데 수사에 속도가 어떻게 나겠느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출신 한 변호사의 말이다. 요즘 공수처의 분위기는 참혹하다. 해병대 ‘채 상병 사건’으로 반전을 꾀하고 싶어도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특별검사(이하 특검) 목소리가 거세지면서 ‘비교 대상’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대통령실 압수수색? 채 상병 사건 특검법 추진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공수처의 분위기는 암흑 상태다. 검찰 제도를 보완해 ‘상설특검’ 명목으로 출범했음에도 ‘늑장·부실’ 수사 논란 속에 결국 사건 기록을 특검에 넘겨줘야 하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오는 5월2일, 임시국회를 열어 법안을 표결하자는 분위기다. 법안 통과를 위해서는 국회의장과 여당의 협조가 필요한데, 총선 이후 여당 일각서도 채 상병 특검에 동의하는 분위기가 표출되고 있다. 채 상병 특검 법안은 지난해 10월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뒤 180일의 숙려 기간을 거쳐 본회의 표결만 하면 언제든 통과할 수 있는 상황이다. 채 상병 사건 수사 갈래는 크게 두 가지다. 무리한 수색 지시 등 책임자를 가리는 본안 수사가 경북지방경찰청서 진행 중이고, 해병대 수사단의 초동 조사에 국방부와 대통령실 관계자가 개입했다는 외압 의혹은 공수처가 맡고 있다. 외압 핵심 피의자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주호주대사로 임명돼 부임 후 사퇴하는 과정서 대통령과 법무·외교부 장관의 직권남용 의혹도 공수처에 추가로 고발됐다. 야권이 특검을 통해 밝히려는 사안의 실체는 수사 외압에 집중돼있다. 특검이 통과되면 공수처가 내려던 실적이 특검으로 넘어가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민주당은 이 대사 임명 과정서의 추가 의혹도 특검법안을 수정 발의해 포함할 계획이다. 공수처는 수사의 무게를 일부 덜겠지만, 6개월 넘게 진행해온 사건 기록을 외부에 넘긴다는 건 또 다른 비판의 빌미를 제공하는 셈이다. 특검 추진 본격화…수사팀 의욕 잃어 “이럴 거면 왜 강조하나” 불만 증폭 공수처 출신 한 변호사는 “인력난 때문에 고전하는 상황이다. 내부 얘기를 들어보면 ‘죽을 맛’이란다. 채 상병 사건 수사는 최선을 다하려 했는데 특검이 언급되면서 수사팀의 의욕이 상실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수처법상 수사 범위와 인원 범위가 지나치게 제한돼있어 실질적인 수사 기능을 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설명이다. 공수처법은 공수처의 수사 범위를 현직 공직자와 그 가족, 퇴임 3년 이내 전직 고위공직자로 한정하고 있다. 공수처 검사와 수사관의 인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현재 공수처법이 규정하고 있는 검사와 수사관의 규모는 처·차장 포함 검사 25명, 수사관 40명이다. 공수처법을 추진할 당시 규모는 검사 30~50인, 수사관 50~70인이 제안됐지만 법무부와 국회의 논의를 거치면서 현재 정원으로 대폭 감소했다. 공수처 관계자는 “총선과 무관하게 지속적으로 인원 확대와 관련해 국회와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며 “검사의 신분보장을 위한 임기에 대해서도 개선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앞서 공수처는 최소한의 행정인력이라도 확보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 달라고 호소한 바 있다. 현행법상 행정인원 정원은 20명인데 지난 2022년 공수처는 행정직원 중 국·과장과 직제 파견자 등 7명을 제외하면 실제 가용인원이 13명에 불과해 수사관을 행정인력에 투입해야 할 상황에 놓인 바 있다. 공수처가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법 개정이 필수적이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특히 공수처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일치시켜 수사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수처는 ‘공수처법상 기소권 없는 사건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연구용역’을 발주하는 등 수사 대상과 기소 대상의 불일치로 발생하는 구속영장 논란을 정리하기 위한 연구에 착수하기도 했다. 인력난 가중화 지금까지 공수처가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한 상황을 보면 초기 단계에 불과하다. 지난해 12월 이 전 장관 등을 출국금지했고, 한 달 후인 지난 1월 압수수색에 착수했다. 이후 포렌식과 참고인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 전 장관을 비롯한 국방부 지휘부와 해병대 수뇌부 등에 대한 조사는 특검의 몫이 될 가능성도 있다. 경우에 따라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등으로 특검 수사가 확대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공수처와 경찰은 특검법 처리 여부를 주시하며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총선 국면서 논란의 중심에 선 공수처는 수사를 신속하게 진행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겠다는 입장이다. 공수처 지휘부 공백 상태가 영향을 줄 여지도 있다. 주요 피의자 소환 및 신병처리 등 주요 의사결정을 처장 대행인 부장검사가 결정하기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다. 만약 국회서 여야가 특검법 처리에 합의하는 수순을 밟으면 공수처도 새로 출범할 특검에 기록을 인계하기 위한 작업에 중점을 둘 가능성이 크다. 현재 본회의에 회부된 안은 민주당이 지난해 9월 발의한 법안이다. 민주당이 지난 3월, 이 전 장관이 주호주대사로 임명된 경위를 수사해야 한다는 별도의 특검안도 국회에 제출했기 때문에 이 두 법안이 병합되는 안도 거론된다. 본회의 회부 안건은 수사기간을 최장 100일로 정하고 있는데, 잔여 수사를 검찰에 이첩하도록 명시됐다. 경찰과 공수처가 시작한 수사가 특검을 거쳐 검찰 손에 넘어가는 것은 부자연스럽다는 말도 나온다. 민주당이 3월 발의한 안은 잔여수사 이첩 대상을 검찰과 공수처로 정했다. 단추도 못 끼워 민주당이 특검법 조항 일부를 양보하고 국민의힘이 수사 대상 확대에 동의하는 시나리오도 정치권을 중심으로 나온다. 이런 과정서 본회의 회부 안이 조정될 수도 있다. 이 가운데 이 전 장관은 최근 변호인을 통해 공수처에 “소환조사를 진행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 전 장관 측이 공수처에 소환조사를 요청한 것은 이번이 네 번째다. 이 전 장관 측 김재훈 변호사는 최근 공수처에 소환 촉구 의견서를 내고 “이 전 장관은 호주 대사직서도 물러났으나 공수처는 지금까지도 아무런 연락이 없다”며 “공수처의 이런 수사 방기 탓인지 정치권에서는 특검 필요성까지 제기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공수처에 보낸 의견서에서 “이첩 보류 지시는 직권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국방부 장관은 민간 수사기관으로의 사건 이첩에 대한 최종 승인권자이므로 인사권자가 인사안 결재 후 이를 취소·변경할 수 있듯이 그 승인을 변경할 수 있다”며 “해병대 수사단장에게 수사 권한이 있다느니, 수사단장에게 민간 수사기관으로의 이첩 권한이 있다느니 하는 것은 법 규정의 몰이해로부터 비롯된 억지”라고 주장했다. 이 전 장관 측은 ‘이 장관이 보고서를 회수하라고 지시하기 전에 대통령실 내선번호로 전화를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이 전 장관 측은 “이 전 장관은 대통령으로부터 (사단장을 빼라는)지시를 받은 사실이 없다”며 “당시 장관이 군사보좌관과 논의하는 과정서 ‘(초급 간부들까지 처벌 대상에 포함한다면)초급 간부들이 힘들어할 것 같다’는 의견을 나눴고 법무관리관실의 법리 검토를 거쳐야 한다고 판단해 이첩 보류를 지시했다”고 강조했다. 수사 인원 범위 제한적 법 개정 안되면 도루묵 이어 “재검토한 결과 8월24일 직접적인 혐의가 있는 2명을 경찰에 이첩했고, 해병대수사단 조사기록 원안도 그대로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 전 장관 측은 민주당이 추진하는 ‘채 상병 특검’도 비판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공수처의 1차 수사 결과도 나오지 않은 상황인데 무엇이 미흡하고 국민적 의혹이 남아 해소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냐”며 “특검 논란을 잠재울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은 공수처의 신속한 수사와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공수처 수장이 석 달째 공석인 점은 제도 지속 가능성에 의문을 더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최종 후보자 지명을 두 달 가까이 미루고 있다. 앞서 국회 공수처장후보추천위원회는 지난 2월29일 판사 출신 오동운(사법연수원 27기) 변호사와 검사 출신 이명순(연수원 22기) 변호사를 후보로 추천했다. 김진욱 전 처장과 여운국 전 차장이 임기 만료로 퇴임해 공수처가 ‘대행 체제’에 들어간 건 지난 1월 말부터다. 김선규 수사1부장이 처장 대행을 맡고 있지만, 지난달 제출한 사직서가 수리되지 않아 임시로 대행직을 수행 중이다. 최근 인사위원회서 연임이 불발된 수사1부 소속 김송경 검사(사법연수원 40기) 임기도 만료됐다. 김 대행이 이끄는 수사1부는 공기광 검사만 남게 된다. 별도 조직개편 계획도 없어 수사 부서 1개가 사실상 사라질 위기다. 윤 대통령이 공수처장 후보자를 지명해도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해야 임명이 가능하다. 21대 국회 임기는 내달 29일까지다. 22대 국회가 개원해도 원구성에 시일이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신속한 공수처장 공백 해소를 위해선 이달 안으로 후보 지명을 마쳐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수장 공백 장기화 우려 법조계에서는 특검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공수처법에 따르면, 공수처는 이 전 장관에 대한 수사권은 있지만 기소 권한이 없다. 수사를 마친 뒤 검찰에 사건을 넘기고 검찰이 기소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 구조다. 공수처 출범 당시 수사·기소권을 모두 줄 경우 일각에선 ‘무소불위 공수처’가 될 거란 우려가 제기되면서 공수처는 법관, 검사, 고위 경찰공무원에 대해서만 제한적 기소권을 갖게 됐다. 문제는 검찰이 채 상병 사건 기소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검찰을 관할하는 법무부는 지난달 8일, 공수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 전 장관의 출국금지를 해제했다. 사건 처리의 중립성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특검을 통해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