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계 달군 시청자 제보 '비화'

초유의 4벌타, TV는 제2의 심판

지난달 3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랜초미라지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ANA인스퍼레이션은 뜨거운 논쟁을 남겼다. 우승이 확실시 되던 미국의 렉시 톰슨이 TV 시청자의 제보로 4벌타를 받으며 판세가 뒤집혔기 때문이다. 이후 ‘렉시법’이라는 이름으로 룰이 개정될 만큼 큰 사건이었다.

렉시 톰슨은 마지막 날 4라운드 12번홀까지 3타 차 선두를 달렸다. 당일 톰슨의 경기력 등을 감안했을 때 우승을 눈앞에 둔 순간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톰슨이 리더보드 맨 위에서 사라졌고 경기 중이던 톰슨은 경기위원회로부터 4벌타를 받았다. 그 바람에 유소연과 연장까지 치렀지만 결국 우승하지 못했다.

결과 뒤엎는
제보의 위력

갑작스러운 4벌타는 렉시 톰슨이 전날 3라운드 17번홀에서 마크를 했던 지점에서 약 2.5㎝ 정도 홀 가까운 곳에 공을 놓고 퍼트했다는 TV 시청자 제보에 의해서였다. 4라운드 경기 도중 제보를 받은 경기위원회는 녹화 화면을 통해 사실을 확인하고 선두를 달린 톰슨에게 규정 위반으로 2벌타, 스코어 카드 오기로 2벌타 등 4벌타를 부과했다.

4벌타는 가혹하다는 의견도 있지만 골프 규정에 의한 페널티였다. 골프 규칙 6-6에 보면 ‘경기자가 스코어 카드 제출 전에 규칙 위반을 몰랐을 경우는 경기 실격은 아니지만 적용규칙에 정해진 벌을 받고 경기자가 규칙을 위반한 각 홀에 2벌타를 추가한다’고 돼 있다. 20-7에도 ‘경기자가 오소(잘못된 장소)에서 스트로크한 경우 그는 해당하는 규칙에 의하여 2벌타를 받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번 사건이 2016년 이전에 일어났다면 톰슨은 4벌타를 받지 않는 대신 2벌타와 스코어 카드 오기로 실격이다. 과거 수많은 선수가 스코어 카드 오기로 실격당했다. 2016년부터 실격이 너무 가혹하다는 의견을 받아들여 본인이 몰랐을 경우 2벌타로 줄였다. 톰슨은 실격 대신 경감된 2+2벌타를 공개적으로 받은 첫 선수다. 골프팬들은 4벌타에 충격을 받았지만 오히려 실격되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공교롭게도 최근 남녀골프 메이저 대회에서는 최종 라운드 도중 선두권 선수에 대한 벌타가 나와 논란이 일었다. 지난달 10일 끝난 마스터스에서는 ‘메이저 무관’ 세르히오 가르시아(스페인)가 감동 드라마를 빚어내며 우승했지만 TV 시청자의 제보로 벌타를 받을 뻔한 사실이 하루 뒤 밝혀졌다. 렉시 톰슨의 ‘4벌타’ 사건에 이어 TV 시청자가 경기 결과를 바꿀 뻔한 상황이 일주일 만에 또 벌어진 것이다.

그린 핫이슈 된 렉시 톰슨 사태
마스터스컵 주인도 바뀔 뻔했다

가르시아가 4라운드 13번홀(파5)에서 공 주변을 정리하다 공이 살짝 움직이는 듯한 장면이 TV 화면에 잡혔고, 이 장면을 담은 2초 분량의 동영상이 트위터 등으로 확산됐다. 마스터스대회 조직위원회는 곧바로 경기위원회를 열고 “룰 위반은 없었다”고 밝혀 가르시아는 우승컵을 지킬 수 있었다. 만일 시청자 제보를 받아들였다면 가르시아는 오소 플레이에 해당돼 2벌 타를 받고 연장에 나서지 못했을 것이다.

이 외에도 시청자 제보에 의해 벌타를 받은 경우는 여럿 있다. 2013년 10월 한국프로골프(KPGA)투어 한국오픈 최종 4라운드에서 5언더파 선두로 홀아웃한 김형태는 13번홀 2벌타가 뒤늦게 알려져 정상에서 내려왔다. 티샷이 해저드 구역에 떨어졌고, 두 번째 샷을 할 때 클럽을 지면에 댔다는 제보로 17번홀에서 2벌타를 통보받았다. 먼저 경기를 마친 호주 출신 선수들이 클럽하우스에서 TV로 중계를 지켜보다 경기위원회에 제보해 김형태는 제동이 걸렸다. 미셸 위(미국)는 2005년 데뷔전이던 삼성월드챔피언십에서 현장을 취재하던 기자의 제보로 실격당한 적이 있다.

이 사건을 둘러싼 골프계의 논란은 네 가지로 압축된다. TV 시청자가 심판이 될 수 있는가, 그리고 나중에 승패까지 뒤집는 게 온당한 것인가, 선수도 모르는 실수를 찾아내는 건 옳은 일인가, 이 같은 결정이 심판 없이 자신의 양심에 따라 경기하는 ‘골프 정신’에 어긋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다.

‘TV 심판’을 두고 골프계에선 의견이 엇갈린다. 우선 시청자들의 골프 판정 개입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만만치 않다. 타이거 우즈(미국)는 자신의 SNS에 “집에서 TV를 보는 사람이 심판이 돼서는 안 된다”고 적었다. 여자골프 세계랭킹 1위 리디아 고(뉴질랜드)도 SNS에 “전화로 경기에 개입하는 것을 막기 위해 기존 규칙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리키 파울러는 “대회 주최 측이 카메라, 감시위원 등을 배치해 플레이를 모니터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없다”며 “다른 스포츠도 그렇게 하고 있다. 그러나 외부 사람과 어떤 식으로든 연락한 뒤 결론을 내리는 것은 어떤 스포츠에도 없다”고 덧붙였다. 메이저대회서 4번이나 우승한 베테랑 여자골퍼 로라 데이비스(영국)는 “모든 샷이 감시를 받는 게 아니라 선두권에 있는 선수들이 주로 TV에 비치지 않나”며 “이건 불공정한 시스템”이라고 말했다.


승부 좌우하는
공정성 논란

PGA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경험이 있는 리치 빔(미국)도 “톰슨이 선두권에 나서지 않았다면 그를 좇는 카메라도 없었을 것”이라며 “그렇다면 어느 누구도 문제가 된 장면을 보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셸 위 역시 “시청자들이 어디에 전화를 거는지 궁금하다. 도대체 시청자들이 전화 건다는 곳의 번호는 무엇이냐”고 불편해하는 반응을 보였다.

이에 반해 규칙을 적용하는 골프 단체의 의견은 달랐다. 김태연 KPGA투어 경기위원장은 형평성의 원리를 적용하기 위해 TV 시청자 제보도 받아들여 경기 운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가장 넓은 운동장을 사용하는 골프의 특성상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규정을 위반해 이득을 보는 선수가 있다면 공정하지 못한 것”이라고 했다. 렉시 톰슨 사건 때 LPGA 측도 “어떤 상황에서든 규정을 위반했다면 처벌하는 게 원칙”이라는 입장이었다.

가장 뜨거운 논란은 판정을 소급해 적용하는 것(승패까지 바꾸는 것)이 가능하냐는 점이다. 임경빈 골프아카데미원장은 “골프는 사실상 심판 없이 경기를 하기 때문에 논리적으로 사후 처벌을 할 수 있어야 한다”며 “경기가 끝난 뒤 결과를 바꿔 버린다면 혼란을 어떻게 감당하겠느냐”고 했다.

판정 개입
찬반 팽팽

김 위원장도 “경기를 마치고 난 뒤 벌 타를 소급 적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고 했다. 라운드가 진행 중일 때는 어떤 제보라도 받아들여야 하지만 일단 끝나고 나면 축구나 야구 등 다른 스포츠처럼 경기 결과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제3자 제보가 처음 나온 건 1957년으로 알려져 있다. 브리티시오픈 마지막 날 18번홀에서 우승을 앞둔 바비 로크(남아프리카공화국)는 그린에서 마크한 뒤 공을 집어 들었지만, 상대의 퍼트 라인에 걸려 마크를 옮겼다. 이후 자신의 퍼트 차례에서 공을 원위치로 되돌려놓지 않고 옮겨둔 곳에서 플레이했다.

경기는 그대로 끝났지만 이를 본 관중이 이의를 제기했다. 그러나 대회를 주관한 R&A는 오소 플레이에 의해 2벌타를 부과해도 로크의 우승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 사건은 골프대회에서 발생한 최초의 시청자 또는 관중의 제보로 기록되고 있다. 이후 시청자와 관중의 제보가 활발해졌으며 경기위원회도 이를 적극 받아들이고 있다.

직접 본 관중의 제보 외에는 실제로 미셸 위의 의문처럼 시청자들이 어디에 제보를 하고 있는지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 국내의 상황을 봐도 따로 시청자 또는 관중의 제보를 받는 곳은 없고 대회가 열리는 현장에도 제보센터 등은 마련돼 있지 않다. 대회를 주관하는 협회에 제보를 전담하는 직원이 있는 것도 아니고 홈페이지 등에도 별도의 공간이 없다.

“영향력 어떻게 볼 것인가”
시청자 개입에 엇갈린 반응

시청자 제보의 대부분은 시청자 게시판 또는 직접 전화를 거는 등 방송국을 통해 전달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가 들어오면 이런 내용이 경기위원회에 전달되고, 경기위원들은 당시 상황을 조사한 뒤 해당 선수에게 확인하는 절차를 거쳐 판정을 내린다.

골프는 골프 규칙, 매너, 에티켓까지 따질 정도로 공정성을 중요하게 여긴다. 다른 스포츠와 달리 골프는 넓은 경기장에서 펼쳐진다. 하지만 드넓은 경기장에서 펼쳐지는 만큼 모든 홀에 심판(경기위원)을 배치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는다. 이에 따라 골프에서는 선수 스스로가 규정을 준수하고 공정한 경기를 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경기위원들이 선수가 판정을 내리기 애매한 상황에 관여하고, 시청자의 제보를 받아들이는 건 경기위원들이 모든 선수들의 경기를 지켜볼 수 없는 상황에서 그나마 가장 공정한 방식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렉시 톰슨 사건을 계기로 더 이상 시청자들이 심판 역할을 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골프 규정을 관할하는 영국 R&A와 미국골프협회(USGA)가 일명 ‘렉시법’이라 불리는 규정 변경 내용을 지난달 26일 발표했다. 새로 도입된 이 규정은 즉시 시행됐다.

비디오 기술력보다는 선수의 정직성에 더 무게를 두고 벌타 부과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렉시법의 핵심이다. 비디오 재생 화면에서 선수의 규정 위반이 발견됐다 하더라도, 규정위원회가 ‘이 위반 사실은 맨눈으로 확인되지 않는다’고 판단한다면 해당 선수는 벌칙을 받지 않는다.

승부보다 중요
에티켓 준수

골프라는 종목의 특성을 존중하는 게 우선이라는 이들도 있다. 고덕호 SBS골프 해설위원은 “규정 위반을 한 선수를 TV 시청자의 제보로 잡아내 벌타 등 징계를 내리는 시스템이 공정하다고는 생각한다”며 “그러나 선수들의 플레이 자체를 어느 정도 존중해줘야 한다. PGA투어도 그런 차원에서 최근 스코어 오기에 대한 실격 처리를 없앴다. 선수들이 스스로 규정을 위반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골프지도자협회(USGTF) 정회원이자 2PM 골프스쿨 소속인 최원석 프로 역시 “골프는 서로의 양심을 믿고 하는 스포츠다. 인성 등이 특히 강조되는 ‘매너 스포츠’인 만큼 선수들의 기본 소양이 가장 중요하다. 필 미켈슨(미국)은 ‘필드의 신사’라는 이미지로 엄청난 수입을 벌어들인다”며 “‘TV 심판’이니 그런 말들이 나오기 전에 선수 개인이 알아서 규정을 위반하지 않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성수3지구 재개발 조합 복마전

[단독] 성수3지구 재개발 조합 복마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재개발·재건축 현장은 ‘내 집 마련’이라는 욕망의 집합체다. 사려는 사람, 팔려는 사람, 그리고 짓는 사람까지 집을 둘러싼 이해관계가 촘촘하게 얽혀 있다. 조합은 사방팔방 뻗어있는 이권을 조율하고 사업을 끝까지 이끌어야 하는 책무를 지닌다. 문제는 이 과정서 발생하는 유착과 비리 의혹이다. 주택 재개발사업은 권력의 이동에 영향을 받는다. 서울 성동구 성수동은 2007년 오세훈 서울시장 시절 성수전략정비구역으로 지정됐다. 53만㎡ 면적의 땅을 4개 지구로 나눠 재개발을 진행하다가 박원순 서울시장이 당선되면서 사업이 지체됐다. 그러다 오 시장의 취임으로 다시 궤도에 오르는 모양새다. 3조 사업 14년째 성수전략정비구역은 압구정 아파트 지구 특별계획구역을 마주 보면서 한강 조망이 가능해 재개발 수혜 단지로 주목받고 있다. 그중 성수전략정비구역 제3지구는 성동구 성수동2가 572-7번지 일대로 기존 계획안에 따르면, 부지 11만4193㎡에 1852가구 규모 단지가 들어설 예정이다. 전체 사업비는 3조원을 상회할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성수전략정비구역 제3지구주택재개발정비사업조합(이하 제3지구 조합)이 내홍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해 11월 조합장이 지위를 상실한 데 이어 각종 의혹이 불거져 복마전이 따로 없는 상황이다. 특히 조합장과 정비사업관리전문업자(이하 정비업체) 간의 유착 의혹이 화두로 떠올랐다. 정비업체는 정비사업 과정서 조합의 비전문성을 보완하기 위한 전문지식을 갖춘 사업자를 말한다. 대통령령이 정한 자본‧기술인력 등의 기준을 갖춰 시·도지사에게 등록한다. 도시및주거환경정비법(이하 도정법)은 제정 당시부터 ‘정비사업전문관리업 제도’를 도입했다. 조합원의 권익을 보호하고 사업추진의 효율성을 도모한다는 취지다. 정비업체는 ▲조합 설립 및 정비사업의 동의 ▲조합 설립 인가 신청 ▲사업성 검토 및 정비사업 시행계획서 작성 ▲설계자 및 시공자 선정 ▲사업 시행 인가 신청 ▲관리처분계획 수립 등의 업무를 지원하고 대행한다. 정비사업의 A부터 Z까지 모든 업무에 관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3지구 조합은 2009년 10월 추진위원회의 승인, 2010년 5월 주민총회를 거쳐 N사를 정비업체로 선정했다. 이후 2018년 2월 조합 설립 인가를 받아 현재에 이르고 있다. 제3지구 조합 내부서 문제가 제기된 부분은 14년에 걸쳐 조합 업무를 대행해 온 N사와 역시 10년 넘게 조합서 일한 전 조합장 김모씨의 유착 의혹이다. 뉴타운 후보지 정비구역으로 오세훈 시장 취임에 재시동 김 전 조합장은 2010년 추진위 총무로 선출된 후 2016년 주민총회를 통해 추진위원장으로 뽑혔다. 2018년 창립총회서 조합장으로 선출됐지만 지난해 11월 도정법 위반 혐의로 벌금 100만원이 확정돼 자격을 상실했다. 그사이 재신임 투표, 주민총회 등의 과정이 있었고 수차례에 걸쳐 법정 공방에도 휘말렸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김 전 조합장은 2016년 추진위원장으로 선출된 이후부터 지난해 말까지 ‘불사조’에 가까운 면모를 보이며 자리를 지켰다. 김 전 조합장은 창립총회(2018년)와 동시에 진행된 조합장 선거서 학력을 허위로 기재한 혐의가 인정돼 2021년 조합장 지위를 상실했다. 제3지구 조합 선거관리 규정은 ‘후보자 등록 시 제출 서류의 허위·변조·위조 등이 발견된 경우 당선을 무효로 한다’고 명시했다. 김 전 조합장은 후보자 등록 신청서에 지방 소재 ‘Y대학 졸업’이라고 기재해 제출했다. 또 Y대학 총장 명의로 된 졸업증명서를 3부 만들어 추진위원장과 조합장 후보 등록 등에 사용했다. 앞서 서울동부지검은 업무방해죄와 사문서위조죄·위조사문서행사죄 등으로 김 전 조합장에 각각 벌금 100만원과 700만원의 약식명령을 내렸다. 이후 2021년 1심 법원은 해당 약식명령 등을 근거로 ‘조합장 지위 부존재 확인’ 소송서 김 전 조합장이 조합장의 지위에 있지 않다고 판시했다. 서울시가 진행한 조합 실태점검 결과도 조합장 지위에 영향을 미쳤다. 성동구서 2022년 2월28일부터 3월11일까지 열흘간 진행한 ‘성수전략정비구역 제3지구주택재개발정비사업조합 운영실태 시·구 합동 기동점검’서 총 22건의 지적사항이 나왔다. 자금 차입 결국 사임 특히 성동구는 김 전 조합장이 총회 의결 없이 자금을 차입한 부분에 대해서는 수사를 의뢰하겠다고 밝혔다. 도정법 제45조(총회의 의결) 2항에 따르면 자금의 차입과 그 방법, 이자율과 상환방법은 총회의 의결을 거쳐야 한다. 성동구의 실태점검 결과에도 김 전 조합장은 2022년 10월 주민총회서 또다시 조합장으로 선출됐다. 하지만 총회 의결 없이 자금을 빌린 부분이 문제가 되면서 결국 조합장 자격을 잃었다. 김 전 조합장은 2022년 ▲총회 의결 없이 자금을 차입한 점 ▲자료 공개 거부 등 도정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았다. 1심 재판부는 두 혐의 모두를 인정해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지만 항소심서 자료 공개 거부 혐의가 무죄로 바뀌면서 벌금 100만원으로 줄었다. 대법원은 지난해 11월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눈여겨볼만한 부분은 돈을 빌려준 주체가 정비업체인 N사였다는 사실이다. N사는 2019년 6월과 8월, 그리고 10월 각각 2000만원, 2000만원, 1000만원 등 총 5000만원을 제3지구 조합에 무이자로 빌려 줬다. 앞서 김 전 조합장은 2019년 2월에 5000만원, 4월에 3000만원 등 8000만원을 총회 의결 없이 N사로부터 차입한 사실이 확인돼 벌금 70만원의 약식명령을 받았다. 제3지구 조합이 총회 의결 없이 N사로부터 빌린 돈의 액수는 총 1억3000만원에 이른다. 김 전 조합장의 가족 일가가 제3지구 재개발 지역의 아파트 등을 구입하는 과정서도 N사의 흔적이 등장한다. 재산 증식 내부 정보? 문제를 제기한 제3지구 조합원은 “김 전 조합장이 추진위원장, 조합장을 하던 시기에 아들과 딸, 사위 등이 재개발 지역의 아파트를 사거나 도로를 증여받은 사실이 확인됐다. 김 전 조합장의 재산이 늘어나는 과정에 조합의 내부 정보가 사용된 게 아닌가 의심스럽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2016년 전후로 김 전 조합장을 비롯한 가족 일가의 부동산이 눈에 띄게 늘었다고 덧붙였다. 김 전 조합장이 추진위원장으로 선출된 시기와 맞물린다. 김 전 조합장의 남편으로 추정되는 이모씨는 2018년 7월 성수동의 빌라 한 채를 1억9500만원에 매입했다. 등기부등본상 이씨의 주소는 김 전 조합장의 주소와 같았다. 흥미로운 대목은 2019년 1월 이 빌라가 송모씨에게 2억원에 팔렸는데 해당 인물이 정비업체 N사의 관계자라는 의혹이 제기된 점이다. 송씨는 한 달 뒤 해당 빌라를 2억1000만원에 팔았다. 김 전 조합장의 아들로 추정되는 이모씨는 2015년 1월 제3지구 재개발 지역에 위치한 아파트 한 채를 4억5750만원에 매입했다. 김 전 조합장의 아들은 현재 제3지구 조합의 대의원으로 이름이 올라있다. 김 전 조합장의 딸로 추정되는 이모씨는 2018년 11월 특정 인물로부터 성수동2가의 도로 일부를 증여받았다. 딸 이씨의 남편이자 김 전 조합장의 사위로 추정되는 김모씨는 2017년 1월 성수동2가의 한 상가 1층을 매입했다. 김씨도 제3지구 조합의 대의원 명단에 존재한다. 2018년 해당 건물에 근저당을 설정한 업체는 세입자 조사업 등을 하는 W사였다. W사의 과거 등기부등본상 주소는 제3지구 조합서 업무를 하는 법무사 사무소의 주소와 일치했다. 송사 휘말려도 계속 부활해 가족 일가 부동산 구입 의혹 제3지구 조합의 한 조합원은 “지금 드러난 것은 등기부등본을 뒤져 찾아낸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총회의 결의 없이 정비업체로부터 금전을 차입해 자신의 급여를 챙기고 가족 일가의 부동산 축재에 사용했다는 의심을 거둘 수가 없다”며 “김 전 조합장은 대법원 확정 판결로 사임하면서도 조합원에게 단 한 마디의 사과도 없이 뻔뻔함의 극치를 보였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11월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나온 직후 김 전 조합장은 “2009년부터 지금까지 14년간 성수3지구를 위해 노력해 왔고 14년간 조합 운영을 투명하고 절약하였기에 조합장 자리서 내려오며 부끄럽지 않다”는 내용의 문자를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최근에는 사무실을 얻어 ‘김○○ 사랑방’이라고 이름을 붙이고 주민과 부동산 관련 정보를 주고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제3지구 조합의 또 다른 조합원은 “김 전 조합장의 나이가 70대다. 컴퓨터도 제대로 다루지 못한다고 들었다. 그러다 보니 정비업체가 조합장을 바지사장으로 세우고 뒤에서 조합을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말이 내부에 많다”며 “N사는 한남4구역재개발조합서도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해 계약이 해지된 업체”라고 주장했다.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한남재정비촉진구역주택재개발정비사업조합(이하 한남4구역 조합)은 지난해 정기총회서 N사와의 계약 해지 안건을 통과시켰다. 조합 설립 과정서 발생한 비위, 허위 견적서 제출, 금전 편취 혐의로 사기죄 확정 등이 이유였다. 한남4구역 조합은 2011년 N사와 용역 계약을 맺고 지난해까지 조합 업무를 함께 해 왔던 것으로 파악됐다. 한남4구역 계약 해지 제3지구 조합서 불거진 의혹은 현재 성동세무서, 성동경찰서 등에서 조사가 이뤄지고 있다. 문제를 제기한 조합원은 “전 조합장과 N사는 조합을 장악하고 감시 체계가 허술한 틈을 타 끊임없이 비리를 저지르고 있다”며 “이들의 비리는 민생침해 범죄인만큼 철저한 수사로 조합원의 피해를 막아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전 조합장의 해명 “떳떳하다” 김모 전 조합장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울분을 쏟아냈다. 14년간 조합을 위해 일했는데 근거 없는 모함으로 자신을 괴롭히려 든다는 것이다. 김 전 조합장은 자녀를 비롯해 사위 등 가족 일가가 재개발 지역에 아파트나 건물을 산 것은 인정하면서도 결혼을 할 무렵 본인들이 구입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비업체 N사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정비업체는 재개발 사업서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곳이다. 조합장이 됐지만 업무에 서툰 부분이 있어 정비업체 대표(송모씨)에게 도와 달라고 했다”면서도 “정비업체 직원을 따로 만난 적도 없고 부정적인 일을 한 것도 없다. 나는 떳떳하다. 떳떳하기에 아직 이 동네에 살고 있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젊고 똑똑한 사람이 조합장 선거에 나와야 한다. 그런 분이 있다면 언제든 도울 것”이라며 “2010년 조합 총무로 시작해 14년 동안 조합 일을 보면서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 법원 판결로 사임하게 됐지만 조합이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은 여전하다”고 강조했다. <기사 속 기사> N사 대표의 해명 “우리는 을이다” N사의 송모 대표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정비업체는 조합이 시키는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여러 차례 말했다. 정비업체가 조합장을 내세워 조합을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내부의 의견에 강한 불쾌감을 표하면서 한 말이다. 조합이 갑, 정비업체가 을이라고 강조했다. 송 대표는 총회의 의결 없이 제3지구 조합에 돈을 빌려준 이유에 대해 “(김 전 조합장이) 조합 재정 상태가 너무 열악하다고 간곡히 부탁해서 무이자로 빌려준 것인데 그게 문제가 돼서 조합장님이 지위를 잃게 된 점은 지금도 마음이 아프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조합에 차입한 1억3000만원은 한 푼도 돌려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조합장이 사임하는 등 조합 내부가 뒤숭숭한 것 같다는 말에는 “직무대행이 조합 업무를 보고 있고 우리도 정비업체로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사업은 표류하지 않고 계속 진행되는 중”이라고 밝혔다. 이어 “우리 업체가 맡고있는 재개발 지역이 20여군데 정도다. 한 군데서 문제가 생기면 다른 지역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불법을 저지를 수가 없다”고 설명했다. 한남4구역 조합과의 계약 해지에 대해서는 “(한남4구역 조합) 조합장이 내가 불법적인 요구를 했다. 그걸 거절했더니 계약 해지를 한 것”이라며 “현재 민·형사상의 조치를 취한 상태다. 법으로 가려질 일”이라고 주장했다. <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