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병우가 무서운 검찰 막전막후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7.04.17 09:33:13
  • 호수 1110호
  • 댓글 0개

“혼자 죽지 않겠다” 검 수뇌부 엮였다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구속영장이 또 기각됐다. 검찰은 특검 수사 내용을 바탕으로 보강수사를 해놓고 오히려 범죄사실을 3분의 1로 줄인 것으로 드러났다. 또 검찰 수뇌부의 부적절한 통화, 청와대 특별감찰반 독직폭행 등 굵직한 의혹에 대해 ‘혐의 없음’이라는 결론을 내리면서 사실상 우 전 수석에게 면죄부를 줬다.

“우병우 전 민정수석에 대한 구속영장을 재청구하면 100% 나올 것이다. 검찰서 아마 수사를 잘할 거다. 안 할 수도 없을 것이다.”

박영수 특별검사가 지난달 3일 특검 수사가 끝난 뒤 기자단 오찬서 한 말이다. 특검은 수사 막바지인 2월19일, 우 전 수석에 대해 직권남용과 특별감찰관 직무방해, 직무유기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한 바 있다. 이에 대해 법원은 당시 “범죄 사실의 소명 정도나 그 법률적 평가에 관한 다툼의 여지 등에 비춰 볼 때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영장을 기각했다.

구속영장 기각
부실한 혐의들

특검 수사를 이어받은 검찰은 이른바 ‘우병우 라인’과 관련 없는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2부(부장 이근수)를 중심으로 ‘우병우 전담 수사팀’을 꾸려 우 전 수석 관련 혐의를 조사했다. 세월호 참사 때 검찰의 해경 수사에 외압을 행사한 의혹과 관련해 당시 광주지검장과 광주지검 형사2부장을 지낸 변찬우 변호사와 윤대진 부산지검 2차장검사도 참고인 조사를 받았다.

이달 6일 우 전 수석을 불러 조사한 검찰은 9일 직권남용과 직무유기, 특별감찰관법 위반 및 국회서의 증언·감정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그에게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그런데 12일 법원은 검찰의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권순호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부장판사는 전날 우 전 수석의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심사)을 거쳐 이날 오전 0시14분쯤 그의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권 부장판사는 “혐의내용에 관해 범죄성립을 다툴 여지가 있고, 이미 진행된 수사와 수집된 증거에 비춰 증거인멸 및 도망의 염려가 있음이 충분히 소명되지 않았다.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기각 사유를 밝혔다.

특검이 다 지은 밥 ‘홀딱 태웠다’
‘놓쳤나 놔줬나’ 혹시 했는데 역시

박근혜 전 대통령을 구속시킨 검찰의 창이 결국 우 전 수석의 방패를 뚫지 못했다. 영장이 또 기각되자 검찰의 부실수사를 질타하는 여론이 쏟아졌다. 일각에선 검찰이 뚫지 못한 게 아니라 안 뚫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실제로 검찰은 우 전 수석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특검의 영장보다 범죄사실을 3분의 1로 줄인 것으로 드러났다.

특검 수사 내용을 바탕으로 보강수사를 해놓고 영장 내용은 오히려 줄여 ‘조직적인 봐주기’를 했다고 의심해볼 만한 대목이다. 검찰이 청구한 우 전 수석 구속영장의 분량은 20쪽 정도에 불과하다. 이는 앞서 특검이 청구했다가 법원이 기각한 영장의 절반 수준이다.

특검의 영장이 40쪽에 달하는 것은 국정 농단과 관련한 직권남용과 직무유기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검찰의 영장은 이런 부분이 상당부분 생략된 것으로 전해진다. 범죄 사실도 특검 때보다 상당히 줄었다고 한다.


보강수사 했나
범죄 1/3로 줄여

검찰은 우 전 수석의 공무원 인사 개입 의혹서 외교부 부분을 빼는 등 특검 영장의 범죄사실 가운데 3개 정도를 뺀 것으로 알려졌다. 영장의 분량이 구속 여부를 가르는 데 결정적인 변수는 아니지만, 그만큼 우 전 수석 처벌에 대한 의지가 약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검찰은 특히 범죄사실 분량을 대폭 축소하면서 구체적인 이름 등을 적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특검서 특검법상 제약으로 수사하지 못한 ‘세월호 수사 외압’ 의혹도 넣지 않았다. 지난 2014년 6월 우 전 수석이 세월호 구조에 실패한 해경 수사를 맡은 광주지검 수사팀에 전화를 걸어 해경 상황실 전산서버 압수수색을 방해한 사실이 확인됐다.

하지만 검찰은 결과적으로 해경 상황실 전산서버를 압수수색했기 때문에 직권남용이 안 된다고 판단해 영장에선 빼버렸다.
 

검찰은 특검서 기초수사를 마친 이석수 전 특별감찰관에 대한 수사 개입 의혹에 대해서도 깊이 있는 수사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또 특검서 특검법상 한계로 수사하지 못한 ▲가족회사 ‘정강’ 관련 탈세·횡령 ▲변호사시절 수임료 등 개인비리 부분도 검찰의 영장서 빠졌다.

이 때문에 이번 검찰의 영장 청구가 요식행위였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 부분에 대해 제대로 수사를 했다면 충분히 직권남용죄를 적용할 수 있다는 게 법조계의 시각이다.

검찰의 칼날은 왜 매번 우 전 수석 앞에만 가면 휘어질까. 그 이유는 여전히 우 전 수석이 칼자루를 쥐고 있어서다.

우 전 수석은 수사선상에 오른 지난해 7월부터 10월 사이까지 김수남(58·16기) 검찰총장, 안태근(51·20기) 법무부 검찰국장 등과 1000차례 이상 통화한 사실이 특검 수사 결과 드러났다.

특검팀이 우 전 수석의 휴대전화 통화기록을 분석한 결과 안 국장은 검찰 특별수사팀(팀장 윤갑근 고검장)이 이석수 전 특별감찰관 사무실 등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은 지난해 8월25∼28일께 우 전 수석과 통화한 것을 포함, 윤장석 청와대 민정비서관과 1000여차례 집중적으로 통화했다. 안 국장은 많을 때는 하루 수십 차례 우 전 수석과 통화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때문에 일찍이 수사무마 의혹을 받았다. 검찰에선 김 총장과 안 국장 등 검찰 수뇌부와 우 전 수석의 잦은 통화가 업무상 통화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만약 우 전 수석이 “수사관련 논의를 했다”고 진술하면 어떻게 될까? 이 경우 검찰 수뇌부가 줄줄이 수사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끈 떨어졌는데
왜 쩔쩔매나


또 다른 이유는 우 전 수석이 검찰 수뇌부에 ‘혼자 죽지 않겠다’고 압박했기 때문이다. 이미 검찰 내부와 법조계에선 “우 전 수석이 현직 검찰 수뇌부랑 잘 아는 고검장 출신 변호사를 찾아가서 변론을 맡아달라며 ‘나는 그냥 안 간다’고 했다”는 소문이 퍼졌다.

또 법조계 관계자는 “우 전 수석 쪽에서 검찰 수뇌부에게 ‘혼자서는 죽지 않겠다’는 입장을 전달했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초기엔 수사를 제대로 하는 듯 하더니 그 소문이 나오고 난 뒤부터 검찰수사가 흐지부지 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검찰 조직이 살기 위해서는 법무부장관이건 검찰총장이건 가차 없이 구속해온 게 검찰의 속성이지만 우 전 수석을 잡으려하다가는 지금의 검찰 수뇌부와 검찰조직이 같이 죽게 생겼기 때문에 제대로 수사하지 못했다는 것이 검찰 내부사정을 잘 아는 법조인들의 평가다.

‘우병우 사단’이 여전히 건재하다는 시각도 있다. 현재 검찰수뇌부는 우 전 수석이 민정수석이던 시절 그대로다. 대통령이 파면되고 구속됐지만 검찰이나 법무부 조직은 변하지 않은 것이다. 청와대 민정비서관도 그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의원이 지난해 11월 국회서 우병우 사단 12명의 명단을 공개했다.

말만 만날 혁신 타령
“스스로 기회 놓쳤다”


박 의원이 공개한 우병우 사단은 김주현 대검차장,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 윤갑근 대구고검장, 안태근 법무부 검찰국장과 전현준 대구지검장, 유상범 창원지검장, 김기동 대검 부패범죄특별수사단장, 정점식 대검 공안부장, 김진모 서울남부지검장, 노승권 서울중앙지검 1차장, 이동렬 서울중앙지검 3차장, 정수봉 대검 범죄정보기획관 등이다.

특히 서울중앙지검 주요보직 부장들도 우병우 사단으로 불리고 있어 이번 수사는 ‘우병우 사단에 의한 우병우 봐주기 수사’라는 의심을 사고 있다.

검찰 내부와 정치권에선 부실 수사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의정부지검 임은정 검사는 검찰 게시판에 ‘국정농단의 조력자인 우리 검찰의 자성을 촉구하며’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는데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에 대한 영장 기각은 검찰이 자초한 것”이라며 “이번 사태와 관련해 검찰 수뇌부에 원죄가 있기 때문에 (영장 기각에 대해) 수뇌부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검찰 수뇌부를 겨냥했다.

정치권서도 검찰의 부실수사를 비판했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선후보 측 박광온 공보단장은 “법원의 결정도 아쉽지만, 이번 일은 애초 우려한대로 검찰의 부실한 수사에서 초래됐다고 본다”며 “우리는 이번 구속영장 기각이 검찰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것이 아니기를 바란다. 이번 일은 검찰 개혁의 필요성을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는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에 대해 검찰이 부실하게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있다"며 "책임지고 김수남 검찰총장은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검사 출신인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도 “법원서 영장을 기각한 것은 법원의 판단이고 검찰이 수사를 잘못한 것”이라며 “수사를 잘했으면 영장이 기각될 리 있겠느냐”라고 지적했다.

‘우병우 사단’
여전히 건재

반면 검찰은 우 전 수석 수사에 최선을 다했다고 정면 반박했다. 검찰 관계자는 지난 12일 오후 기자들과 만나 ‘검찰 수사가 부실했다는 이 평가가 나오는데 검찰의 입장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수사가 부실했다고 생각 안 한다”고 답했다. 이어 “영장이 기각된 것은 안타깝게 생각하지만 그건 법원 판단이고, 저희는 최선을 다했다. 그건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cmp@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검찰 개혁 공수처 신설이 답?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구속영장 기각 이후 검찰개혁 여론이 더욱 탄력을 받는 기류다. 지난해 우 전 수석을 둘러싼 의혹이 처음 불거졌을 때 그의 입김서 자유롭지 못한 검찰이 제대로 초동대처를 하지 못한 결과라는 지적 때문이다.

현재 유력하게 거론되는 검찰개혁안은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신설이다. 행정부 장차관과 청와대 비서관, 판검사 등 고위공직자 비리만 전담해 수사하는 별도의 수사기관을 창설함으로써 그동안 청와대 등 권력에 취약한 모습을 보여준 검찰의 한계를 극복하자는 것이다.

국회에 제출된 공수처 관련 법안을 보면 고위공직자와 그 가족의 수뢰, 직권남용, 직무 관련 횡령·배임 등이 수사 대상이다. 법안에 따르면 공수처는 수사권과 기소권을 보유한다. 우리 형사소송법 체계의 근간으로 여겨져 온 검찰의 기소독점주의를 깨뜨리겠다는 것이다. <창>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채 상병 특검’ 공수처 불편한 속내

‘채 상병 특검’ 공수처 불편한 속내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채 상병 특검’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야권의 4·10 총선 압승으로 더불어민주당의 움직임에도 속도가 붙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난감하기만 하다. 부족한 인력으로 인해 수사의 첫 단추도 끼우지 못하는 실정이다. 발 빠른 수사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공수처 안팎에서는 정치권의 책임 떠넘기기에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조직이 와해되기 직전인데 수사에 속도가 어떻게 나겠느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출신 한 변호사의 말이다. 요즘 공수처의 분위기는 참혹하다. 해병대 ‘채 상병 사건’으로 반전을 꾀하고 싶어도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특별검사(이하 특검) 목소리가 거세지면서 ‘비교 대상’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대통령실 압수수색? 채 상병 사건 특검법 추진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공수처의 분위기는 암흑 상태다. 검찰 제도를 보완해 ‘상설특검’ 명목으로 출범했음에도 ‘늑장·부실’ 수사 논란 속에 결국 사건 기록을 특검에 넘겨줘야 하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오는 5월2일, 임시국회를 열어 법안을 표결하자는 분위기다. 법안 통과를 위해서는 국회의장과 여당의 협조가 필요한데, 총선 이후 여당 일각서도 채 상병 특검에 동의하는 분위기가 표출되고 있다. 채 상병 특검 법안은 지난해 10월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뒤 180일의 숙려 기간을 거쳐 본회의 표결만 하면 언제든 통과할 수 있는 상황이다. 채 상병 사건 수사 갈래는 크게 두 가지다. 무리한 수색 지시 등 책임자를 가리는 본안 수사가 경북지방경찰청서 진행 중이고, 해병대 수사단의 초동 조사에 국방부와 대통령실 관계자가 개입했다는 외압 의혹은 공수처가 맡고 있다. 외압 핵심 피의자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주호주대사로 임명돼 부임 후 사퇴하는 과정서 대통령과 법무·외교부 장관의 직권남용 의혹도 공수처에 추가로 고발됐다. 야권이 특검을 통해 밝히려는 사안의 실체는 수사 외압에 집중돼있다. 특검이 통과되면 공수처가 내려던 실적이 특검으로 넘어가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민주당은 이 대사 임명 과정서의 추가 의혹도 특검법안을 수정 발의해 포함할 계획이다. 공수처는 수사의 무게를 일부 덜겠지만, 6개월 넘게 진행해온 사건 기록을 외부에 넘긴다는 건 또 다른 비판의 빌미를 제공하는 셈이다. 특검 추진 본격화…수사팀 의욕 잃어 “이럴 거면 왜 강조하나” 불만 증폭 공수처 출신 한 변호사는 “인력난 때문에 고전하는 상황이다. 내부 얘기를 들어보면 ‘죽을 맛’이란다. 채 상병 사건 수사는 최선을 다하려 했는데 특검이 언급되면서 수사팀의 의욕이 상실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수처법상 수사 범위와 인원 범위가 지나치게 제한돼있어 실질적인 수사 기능을 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설명이다. 공수처법은 공수처의 수사 범위를 현직 공직자와 그 가족, 퇴임 3년 이내 전직 고위공직자로 한정하고 있다. 공수처 검사와 수사관의 인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현재 공수처법이 규정하고 있는 검사와 수사관의 규모는 처·차장 포함 검사 25명, 수사관 40명이다. 공수처법을 추진할 당시 규모는 검사 30~50인, 수사관 50~70인이 제안됐지만 법무부와 국회의 논의를 거치면서 현재 정원으로 대폭 감소했다. 공수처 관계자는 “총선과 무관하게 지속적으로 인원 확대와 관련해 국회와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며 “검사의 신분보장을 위한 임기에 대해서도 개선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앞서 공수처는 최소한의 행정인력이라도 확보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 달라고 호소한 바 있다. 현행법상 행정인원 정원은 20명인데 지난 2022년 공수처는 행정직원 중 국·과장과 직제 파견자 등 7명을 제외하면 실제 가용인원이 13명에 불과해 수사관을 행정인력에 투입해야 할 상황에 놓인 바 있다. 공수처가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법 개정이 필수적이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특히 공수처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일치시켜 수사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수처는 ‘공수처법상 기소권 없는 사건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연구용역’을 발주하는 등 수사 대상과 기소 대상의 불일치로 발생하는 구속영장 논란을 정리하기 위한 연구에 착수하기도 했다. 인력난 가중화 지금까지 공수처가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한 상황을 보면 초기 단계에 불과하다. 지난해 12월 이 전 장관 등을 출국금지했고, 한 달 후인 지난 1월 압수수색에 착수했다. 이후 포렌식과 참고인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 전 장관을 비롯한 국방부 지휘부와 해병대 수뇌부 등에 대한 조사는 특검의 몫이 될 가능성도 있다. 경우에 따라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등으로 특검 수사가 확대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공수처와 경찰은 특검법 처리 여부를 주시하며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총선 국면서 논란의 중심에 선 공수처는 수사를 신속하게 진행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겠다는 입장이다. 공수처 지휘부 공백 상태가 영향을 줄 여지도 있다. 주요 피의자 소환 및 신병처리 등 주요 의사결정을 처장 대행인 부장검사가 결정하기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다. 만약 국회서 여야가 특검법 처리에 합의하는 수순을 밟으면 공수처도 새로 출범할 특검에 기록을 인계하기 위한 작업에 중점을 둘 가능성이 크다. 현재 본회의에 회부된 안은 민주당이 지난해 9월 발의한 법안이다. 민주당이 지난 3월, 이 전 장관이 주호주대사로 임명된 경위를 수사해야 한다는 별도의 특검안도 국회에 제출했기 때문에 이 두 법안이 병합되는 안도 거론된다. 본회의 회부 안건은 수사기간을 최장 100일로 정하고 있는데, 잔여 수사를 검찰에 이첩하도록 명시됐다. 경찰과 공수처가 시작한 수사가 특검을 거쳐 검찰 손에 넘어가는 것은 부자연스럽다는 말도 나온다. 민주당이 3월 발의한 안은 잔여수사 이첩 대상을 검찰과 공수처로 정했다. 단추도 못 끼워 민주당이 특검법 조항 일부를 양보하고 국민의힘이 수사 대상 확대에 동의하는 시나리오도 정치권을 중심으로 나온다. 이런 과정서 본회의 회부 안이 조정될 수도 있다. 이 가운데 이 전 장관은 최근 변호인을 통해 공수처에 “소환조사를 진행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 전 장관 측이 공수처에 소환조사를 요청한 것은 이번이 네 번째다. 이 전 장관 측 김재훈 변호사는 최근 공수처에 소환 촉구 의견서를 내고 “이 전 장관은 호주 대사직서도 물러났으나 공수처는 지금까지도 아무런 연락이 없다”며 “공수처의 이런 수사 방기 탓인지 정치권에서는 특검 필요성까지 제기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공수처에 보낸 의견서에서 “이첩 보류 지시는 직권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국방부 장관은 민간 수사기관으로의 사건 이첩에 대한 최종 승인권자이므로 인사권자가 인사안 결재 후 이를 취소·변경할 수 있듯이 그 승인을 변경할 수 있다”며 “해병대 수사단장에게 수사 권한이 있다느니, 수사단장에게 민간 수사기관으로의 이첩 권한이 있다느니 하는 것은 법 규정의 몰이해로부터 비롯된 억지”라고 주장했다. 이 전 장관 측은 ‘이 장관이 보고서를 회수하라고 지시하기 전에 대통령실 내선번호로 전화를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이 전 장관 측은 “이 전 장관은 대통령으로부터 (사단장을 빼라는)지시를 받은 사실이 없다”며 “당시 장관이 군사보좌관과 논의하는 과정서 ‘(초급 간부들까지 처벌 대상에 포함한다면)초급 간부들이 힘들어할 것 같다’는 의견을 나눴고 법무관리관실의 법리 검토를 거쳐야 한다고 판단해 이첩 보류를 지시했다”고 강조했다. 수사 인원 범위 제한적 법 개정 안되면 도루묵 이어 “재검토한 결과 8월24일 직접적인 혐의가 있는 2명을 경찰에 이첩했고, 해병대수사단 조사기록 원안도 그대로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 전 장관 측은 민주당이 추진하는 ‘채 상병 특검’도 비판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공수처의 1차 수사 결과도 나오지 않은 상황인데 무엇이 미흡하고 국민적 의혹이 남아 해소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냐”며 “특검 논란을 잠재울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은 공수처의 신속한 수사와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공수처 수장이 석 달째 공석인 점은 제도 지속 가능성에 의문을 더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최종 후보자 지명을 두 달 가까이 미루고 있다. 앞서 국회 공수처장후보추천위원회는 지난 2월29일 판사 출신 오동운(사법연수원 27기) 변호사와 검사 출신 이명순(연수원 22기) 변호사를 후보로 추천했다. 김진욱 전 처장과 여운국 전 차장이 임기 만료로 퇴임해 공수처가 ‘대행 체제’에 들어간 건 지난 1월 말부터다. 김선규 수사1부장이 처장 대행을 맡고 있지만, 지난달 제출한 사직서가 수리되지 않아 임시로 대행직을 수행 중이다. 최근 인사위원회서 연임이 불발된 수사1부 소속 김송경 검사(사법연수원 40기) 임기도 만료됐다. 김 대행이 이끄는 수사1부는 공기광 검사만 남게 된다. 별도 조직개편 계획도 없어 수사 부서 1개가 사실상 사라질 위기다. 윤 대통령이 공수처장 후보자를 지명해도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해야 임명이 가능하다. 21대 국회 임기는 내달 29일까지다. 22대 국회가 개원해도 원구성에 시일이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신속한 공수처장 공백 해소를 위해선 이달 안으로 후보 지명을 마쳐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수장 공백 장기화 우려 법조계에서는 특검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공수처법에 따르면, 공수처는 이 전 장관에 대한 수사권은 있지만 기소 권한이 없다. 수사를 마친 뒤 검찰에 사건을 넘기고 검찰이 기소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 구조다. 공수처 출범 당시 수사·기소권을 모두 줄 경우 일각에선 ‘무소불위 공수처’가 될 거란 우려가 제기되면서 공수처는 법관, 검사, 고위 경찰공무원에 대해서만 제한적 기소권을 갖게 됐다. 문제는 검찰이 채 상병 사건 기소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검찰을 관할하는 법무부는 지난달 8일, 공수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 전 장관의 출국금지를 해제했다. 사건 처리의 중립성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특검을 통해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