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삼국비사 (23) 항복
<기획연재> 삼국비사 (23) 항복
  • 황천우 작가
  • 승인 2017.03.06 10:05
  • 호수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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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복했지만…목숨이 위태롭다

소설가 황천우는 우리의 현실이 삼국시대 당시와 조금도 다르지 않음을 간파하고 북한과 중국에 의해 우리 영토가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있음을 경계했다. 이런 차원에서 역사소설 <삼국비사>를 집필했다. <삼국비사>를 통해 고구려의 기개, 백제의 흥기와 타락, 신라의 비정상적인 행태를 파헤치며 진정 우리 민족이 나아갈 바, 즉 통합의 본질을 찾고자 시도했다. <삼국비사> 속 인물의 담대함과 잔임함, 기교는 중국의 <삼국지>를 능가할 정도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 우리 뿌리에 대해 심도 있는 성찰과 아울러 진실을 추구하는 계기가 될 것임을 강조했다.

 

흥수가 막사로 들어가자 서천이 바로 백기를 전했다.

“무슨 의미요?”

알면서도 그 사유를 묻는 흥수가 의아하다는 듯 서천이 눈을 깜빡거렸다.

“당연히 항복한다는 뜻입지요.”

“싸워보지도 않고 항복하겠다는 말입니까?”

흥수가 한심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서천을 응시하자 얼굴이 마치 벌레라도 씹은 듯 일그러졌다.

“도저히 승산 없다고 판단한 성주께서 진중하게 항복을 제안하셨습니다.”

“하기야 신라는 조만간 백제 수중에 떨어질 터이니 미리 항복하는 일이 차라리 현명할 수도 있지요.”

“그래서…….”

“좋소. 그렇다면 항복 조건은?”“물론 목숨이지요. 성주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의 목숨 말입니다.”

“단지 그겁니까?”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흥수가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

“스스로 항복하는 자의 목숨을 보장하는 일은 당연하건만 어째 이상하게 들립니다. 단지 목숨만이라니요.”

“정말입니다. 그저 목숨만 살려주면 족하다 했습니다.”

“그 후에 직위 등 반대급부는 전혀 생각하지 않겠다는 말로 들립니다만.”

“그렇습니다, 군사!”

서천의 표정이 밝아지기 시작했다.

“저, 그리고.”

“주저 말고 말해보시오.”

“이곳에 투항한 검일 일행은 지금 어디 있습니까?”

“그 사람들은 어제 투항하자마자 사비성으로 갔소. 그곳에서 좋은 여건과 풍성한 대접을 받으며 생활하게 될 것이오. 원한다면 그대들도 그리 조처해드리겠소.”

“저희들이야 그저 목숨을 구할 수만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만족합니다. 그러니 그 부분까지는 염려하지 않으셔도 될 듯합니다.”

서천이 표시 안 나게 가벼이 한숨을 내쉬었다.

“혹여 다른 필요한 일이라도 있으면 말씀하시지요.”

“다른 일이 무에 있겠습니까. 다만 혹시 목숨을 보장한다는 증표를 서류로 만들어주실 수 없는지요.”

“서류로 말이오?”

“다른 뜻은 없고 그저 모든 사람들이 의기투합하기 쉽지 않을까 해서 그럽니다.”

“필요하다면 당연히 해드리리다.”

흥수가 바로 자신의 명의로 글을 써서 서천에게 건넸다.

서찰을 받아 든 서천이 거듭 머리를 조아렸다.

서천이 돌아오자 품석이 다시 죽죽과 용석을 불렀다.

“자네가 다녀온 일을 직접 고해보게.”

품석의 지시에 서천이 두 사람을 번갈아 주시하고 헛기침했다.

“백제군의 장수를 만나 우리들의 사정을 설명하였습니다. 신라는 전쟁을 원치 않고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항복하고자 하니 우리의 요구를 들어 달라고.”

“그쪽에서 뭐라 합디까?”

죽죽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빈정거리자 서천이 거들먹거리며 흥수가 써준 서류를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백제의 군사인 흥수의 친필 확인서입니다.”

“군사라니요, 장수를 만났다 하지 않았소?”

“물론 장수도 함께 만났지요.”

“그런데 왜 군사의 증표요?”

“그야 모든 군율은 군사가 결정하니 그런 것 아니오.”

장수를 만났다는 말이 의심이 들면서도 죽죽이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자, 이제 우리 모양새 좋게 모두 항복했으면 하네.”

항복을 되뇌던 죽죽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야기한 바 있지만 소장은 결코 항복할 수 없소. 그러니 그대들이나 가서 항복하시오. 나는 뜻을 같이하는 병사들과 최후까지 일전을 불사하겠소.”

“정녕 양보할 수 없는가?”

“양보라니요. 군인이 전투에 임하면 사생결단을 봐야지 항복이 다 뭐란 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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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석 자네는 어찌할 텐가?”

질문을 받은 용석이 품석과 죽죽을 번갈아 바라보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소장 역시 군인으로 항복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 연유로 소장은 죽죽과 마지막까지 함께하겠습니다.”

“성주의 명령이라면 어찌할 텐가!”

죽죽이 명령을 되뇌며 피식거렸다.

“지금 왜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모르오!”

죽죽이 소리를 높이자 용석의 표정이 급격하게 굳어갔다.

“항복하고자 한다면 빨리 움직여주기 바랍니다. 병사들 마음 위축시키지 말고 오늘 중으로 항복할 사람들은 모두 가주십시오. 괜히 병사들 소요를 부추기면 이번에는 나 역시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오!”

용석이 말을 마침과 동시에 칼집에서 칼을 뽑아 탁자에 내리 꽂았다. 

그날 오후 품석과 그의 가족들 그리고 그들을 따르는 사람들이 성문을 나서 백제 진영으로 향했다.

백제 진영에 당도하자 막상 맞이하기로 한 윤충과 흥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일반 병사들이 품석의 가족을 다른 사람들과 분류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서천이 앞으로 나섰다.

“어찌된 게요. 윤충 장군과 군사는 어디 있소?”

“두 분은 지금 성주를 위해 자리를 마련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니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정중하게 답하는 병사의 말을 전하자 품석이 알듯 모를 듯한 미소를 머금었다.

이윽고 분류가 마무리되자 병사들이 품석 가족과 서천을 따로 안내했다.

“성주님, 조금도 염려 마십시오. 모든 일이 잘 풀려나갈 겁니다.”

“알았네. 자네만 믿네.”

오래지 않아 한 막사 앞에 도착하자 병사들이 품석과 서천만을 안내했다.

막사에 들자 윤충과 흥수가 의자에 앉아 들어오는 그들을 유심히 주시했다.

“자네가 대야성 성주인 김품석이란 자인가?”

낮으면서도 위엄 있는 윤충의 음성에 일순간 품석의 얼굴이 굳어졌다.

“이 쥐새끼야, 말이 들리지 않느냐! 지금 우리 장군께서 네 놈이 김품석이란 쥐새끼냐고 묻지 않느냐!”

흥수의 일갈에 품석은 물론 서천의 얼굴이 급격하게 창백해졌다.

“주둥이가 막혀 말을 못하는 모양인데. 여봐라, 찢어라!”

윤충의 고함에 그제야 모든 정황을 간파했는지 품석이 무릎을 꿇었다.

그를 살피던 서천 역시 급히 꿇었다.

“부디 살려주십시오!”

“뭐라, 살려 달라. 허허, 과연 쥐새끼로고!”

윤충이 혀를 차자 흥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찌 인간의 탈을 쓰고 목숨을 구걸한다는 말이냐?”

“장군과 군사께서 목숨을 보전해 준다 하여.”

힘들게 말한 품석이 서천을 쳐다보았다.

“물론이다, 내 너를 살려주기로 약조했었다. 그러나 성을 통째로 들고 항복하는 조건이었음을 다시 주지시키지 않아도 되겠지?”

“목숨만은 부디.”

서천이 급히 무릎걸음으로 기다시피 하여 흥수의 다리에 매달렸다.

“저는 그저 이자가 시킨 대로 한 죄밖에는 없사옵니다. 제발 살려 주십시오!”

서천이 머리를 맨 땅에 부딪치기 시작했다.

“과연 쥐새끼들이로고! 여봐라, 꼴도 보기 싫으니 이 두 놈을 끌고 나가라!”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