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삼국비사 (21) 검일의 투항

  • 황천우 작가 shs@ilyosisa.co.kr
  • 등록 2017.02.20 10:00:17
  • 호수 110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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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의 칼날을 겨누다

소설가 황천우는 우리의 현실이 삼국시대 당시와 조금도 다르지 않음을 간파하고 북한과 중국에 의해 우리 영토가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있음을 경계했다. 이런 차원에서 역사소설 <삼국비사>를 집필했다. <삼국비사>를 통해 고구려의 기개, 백제의 흥기와 타락, 신라의 비정상적인 행태를 파헤치며 진정 우리 민족이 나아갈 바, 즉 통합의 본질을 찾고자 시도했다. <삼국비사> 속 인물의 담대함과 잔임함, 기교는 중국의 <삼국지>를 능가할 정도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 우리 뿌리에 대해 심도 있는 성찰과 아울러 진실을 추구하는 계기가 될 것임을 강조했다.

밤이 깊은 시각 백제 진영에서 작은 소요가 일어났다. 쥐도 새도 모르게 그곳에 찾아든 검일이 흥수를 접촉하고 있었다.

“이놈을 결박하고 목을 베어라!”

조근하게 대화를 나누던 흥수가 갑자기 곁에 있는 병사들에게 명을 내렸다. 그 소리에 검일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어서 이놈을 끌고 나가 참수하라!”

자신에게 달려드는 병사들을 밀치고 검일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네 놈이 투항을 빙자해서 우리 군영을 염탐하려는 그 수를 내 모르는 줄 알았느냐!”

“염탐이라니요. 말이 되는 소리를 하십시오!”

“뭐라!”

“내가 악의를 품고 왔다면 이미 군사의 목은 내 칼에 떨어졌소. 모르시겠소!”

그곳까지 오는 동안 어느 누구의 제지도 받지 않고 왔음을 의미했다.

그를 상기했는지 흥수가 가볍게 한숨을 토해냈다.

“그런 놈이 맨 손으로 왔단 말이냐?”


“그러면 군사는 한 두 사람의 목을 취하고자 이 전쟁을 시작하였소?”

“그야 물론 아니.”

흥수가 슬그머니 말꼬리를 흐렸다.

“군사, 내 진정을 그리도 모르시오. 내가 이 자리에서 자결해야 알겠소!”

말을 마침과 동시에 검일이 칼을 뽑아 자신의 목에 들이댔다. 순간 흥수가 무릎을 꿇었다.

“검일 장군, 참으시오.”

갑작스런 상황 변화에 검일이 말을 잇지 못했다.

“이 몸이 크나큰 결례를 법했습니다. 용서하시오.”

머리를 조아리는 흥수의 모습을 살피며 검일이 칼을 다시 칼집에 넣었다.

“갑자기 이러는 이유가 뭡니까?”

“당연한 수순 아니겠습니까?”

“뭐라고요?”


“맨 손으로 나타난, 그것도 적의 하급 지휘자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어리석은 자가 세상 천지에 어디 있겠습니까.”

자리에서 일어난 흥수가 만면에 미소를 머금었다.

“그러면?”

“그렇소. 내 장군의 속내를 떠보기 위함이었음을 솔직하게 고백하겠소.”

검일이 눈을 반짝였다.

“이 시간 이후로는 절대 그리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장군이란 호칭은 너무 과분합니다.”


“당연히 그리하리다. 그리고 어차피 우리 백제는 귀하를 장군으로 예우할 터요. 그럼 바로 윤충 장군을 만나도록 하지요.”

말을 마친 흥수가 밖으로 나가더니 그리 오래지 않아 다시 돌아왔다.

그의 안내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윤충의 막사로 들어갔다.

“군사로부터 대략의 이야기는 들었소만 그대의 제안은 무엇이오?”

“개인적으로 너무 창피한 일입니다만, 솔직하게 말씀드려서 제 아내를 빼앗아간 성주 놈과 그 일족 모두를 죽일 수 있다면 다른 뜻은 없습니다. 그러니 여타의 제안은 없고 단지 기왕지사 이렇게 된 일, 백제 사람으로 다시 살아갈 수 있도록 조처 바랄 뿐입니다.”

“알았소만.”

윤충의 얼굴에 의혹이 가시지 않은 듯했다.

“왜 그러십니까, 장군.”

“장군의 제안이 납득하기 힘드오. 이미 죽음까지 마다하지 않은 장군이 목숨을 부지하겠다는 듯 비쳐져서.”

윤충의 얼굴을 주시하던 검일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실은 저의 행동에 여러 사람이 동조할 것입니다. 저는 아무래도 상관없으나 그 사람들과 가족들은 저와는 다르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윤충이 검일의 진지한 표정을 살피며 호탕하게 웃었다.

“그 문제라면 추호도 걱정 마시오. 여하튼 우리는 장군과 일행들을 백제 사람과 똑같이 대우하도록 하겠소. 그런데 어떻게 일을 도모할 생각이오?”

“내일 정오 쯤 저를 배신한 그 년을 죽이고 창고에 불을 지르겠습니다. 날도 건조해서 순식간에 창고를 날려버릴 수 있을 겁니다. 아울러 보급품이 모두 사라지면 오래 버티지 못하고 모두 우왕좌왕하게 될 것입니다.”

“불을 지른 연후에는?”

“동조자들과 함께 바로 백제 진영으로 넘어오겠습니다.”

“그러면 우리 군사로 하여금 장군과 동조자들을 도울 수 있도록 그 시간에 맞추어 성 밖에서 대응하도록 하겠소.”

“그래주시면 고맙습니다. 그러면 저는 다시 대야성으로 돌아가 내일 일에 대해 동조자들과 의견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다음날 정오 쯤 대야성 안이 어수선하였다.

백제 군사들이 성 가까이 다가오자 신라군들이 전투 준비를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 성 중에 있는 신라 군사들의 모든 신경이 그리로 집중되었다.

그를 감지한 검일과 모척이 신속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검일은 자신의 처였던 애랑의 집으로, 모척은 핵심 수하들과 함께 창고로 이동했다.

검일이 칼을 빼들고 애랑이 거처하는 곳에 이르자 애랑이 누가 업고가도 모를 정도로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자 개기름을 흘리며 야수처럼 달려드는 김품석의 얼굴이 회상되었고, 가벼운 한숨과 함께 은연 중 연민의 정이 솟구쳤다.

그러나 생각도 잠시, 애랑의 옆구리를 힘차게 걷어찼다.

외마디 비명과 함께 눈을 뜬 애랑이 검일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통증은 고사하고 두려움이 먼저 솟구쳤는지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놀란 표정으로 검일을 주시했다.

되는대로 걸친 옷 사이로 뽀얀 살결이 언뜻언뜻 비쳤다.

“가증스럽게 나를 속이.”

김품석과 놀아난 애랑…검일에 죽다
검일·모척 반란 착수…백제로 진격

분노로 인해 말이 제대로 이어지지 않았다.

“서방…니…임.”

그제야 사태의 추이를 감지했는지 옷매무시를 바로하며 중얼거렸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검일의 손이 떨렸다.

“네년을 시간 끌며 내가 당한 고통을 뼛속 깊이 새겨주고 싶지만 그럴 수 없음을 한탄할 뿐이다. 여하튼 먼저 가서 기다려라. 내 성주 이놈도 갈가리 찢어서 조만간에 보내줄 테니 그 추한 몰골로 천년만년 함께 뒹굴도록 해라!”

“용서…….”

애랑이 뭐라 대꾸하려는 순간 이미 검일의 칼이 정확하게 심장을 꿰뚫었고 이어 발로 배를 세차게 걷어찼다.

짧은 비명과 함께 애랑의 몸이 뒤로 무너져 내렸다.

뒤 이어 검일이 꿈틀거리는 애랑의 몸을 발로 누르고 목이며 팔 다리 특히 가운데 부분을 수차례에 걸쳐 난도질 하듯 칼을 휘둘렀다.

“사지, 이제 그만하시지요. 빨리 움직여야 합니다.”

어느새 다가왔는지 수하 병사가 검일의 손을 잡아끌었다.

“빨리 모척 사지와 합류해야 합니다.”

또 다른 병사가 거들고 나서자 행동을 멈추고 잠시 호흡을 가다듬은 검일이 이미 너덜거리며 간신히 달라붙어 있는 애랑의 목에 다시 칼질 해대자 머리가 힘없이 몸에서 떨어졌다.

“가자!”

피가 뚝뚝 떨어지는 여인의 두상을 들고 서둘러 창고로 이동했다.

이미 모든 준비를 마치고 모척 일행이 기다리고 있다 검일이 나타나자 창고에 불을 붙이기 시작했다.

잠시 그를 주시하던 검일이 수하 병사가 들고 있는 횃불을 빼앗듯이 낚아채서는 그 저주스런 물통에 던지고 일행과 함께 성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거리에 이르자 우회하여 백제군에 합류한 검일이 모척과 함께 앞으로 나섰다.

“김품석 이놈, 나오너라!”

검일이 큰소리로 외쳐대자 신라 진영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창고의 화재로 뒤숭숭하던 신라 군사들이 검일과 모척이 백제 진영에 있는 모습을 보고는 그 사유를 묻기라도 하듯 서로의 얼굴을 주시했다.

“나 신라의 사지였던 검일이다. 어서 더러운 성주 놈은 앞으로 나오너라!”

말과 동시에 검일이 여인의 두상을 들어올렸다.

순간 신라 진영 여기저기서 비명이 울려 퍼졌다.

“신라 병사들은 잘 들어라!”

가만히 있던 모척이 앞으로 나섰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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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채 상병 사건’ 사단장 수상한 메시지 내막

[단독] ‘채 상병 사건’ 사단장 수상한 메시지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김철준 기자 = ‘채 상병 사건’의 핵심 관계자인 임성근 전 해병대 제1사단장이 해병대 간부들에게 여러 차례 연락을 취한 것으로 파악됐다. 자신의 사건을 언급하면서 사실관계를 확인하려 한 게 핵심이다. 임 전 사단장과 연락이 닿은 인물들은 대부분 이해관계자다. 자칫하면 회유 정황으로 보일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임성근 전 해병대 제1사단장은 ‘채 상병 사건’의 핵심 피의자다. 수사외압 논란의 시발점이자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직접 챙긴 인물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의 수사 대상인 임 전 사단장은 자신의 사건을 물밑에서 알아보기 시작했다. 시종일관 침묵을 지키다 왜 움직이기 시작했을까? 침묵 지키다… 임 전 사단장은 최근까지 복수의 해병대 간부들과 연락을 주고받았다. 그는 간부 A씨에게 “(공수처)수사가 종결되지 않은 상황서 괜한 오해를 살 수 있어서 연락하지 못했다”며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미안하다”는 사과의 말은 없었다. 다만 “모두가 상상할 수 없는 어려움을 겪었고, 현재도 겪고 있지만 아들을 잃은 채 상병의 유족 특히 모친의 고통을 생각하면서 버티고 있다. 진실을 밝힐 때까지는 고통스러워도 견딜 생각이다. 후배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은 다 하겠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고 전했다. 임 전 사단장은 A씨에게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이하 대령)의 변호인이었던 김경호 변호사에게 내용증명을 보낸 것과 관련해 민·형사 소송을 준비 중이라며 도움을 요청하는 뉘앙스로 연락을 취했다. 김 변호사가 자신을 고발한 게 무고에 해당하는지와 사실관계 확인을 요청한 것이다. 그는 타 간부들에게도 비슷한 도움을 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간부는 <일요시사>와의 연락서 “난감해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모셨던 사람이긴 한데 임 전 사단장에 대해 개개인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모든 사람이 채 상병 사건 진상규명을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임 전 사단장은 과거 박 대령에게도 사실확인요청서를 보낸 바 있다. 자신은 물속 수색을 하지 말라는 지시를 수차례 했고 작전통제권이 육군 50사단장으로 넘어간 상황서 자신의 책임과 범위 내 임무를 성실하게 수행했다며, 이에 대한 박 대령의 기억과 판단을 요청하는 내용이었다. 공수처 수사 대상인데… 사건 연루자들에 연락 당시 임 전 사단장은 “상급지휘관(임 전 사단장)에게 작전통제권은 없지만, 부대를 방문해 전술토의할 수 있고 효율적인 작전이 되도록 유도할 권한은 있다”고 했다. 작전통제권이 없어 안전 책무가 없다면서도, 자신이 현장서 ‘수변을 수색하라’고 지휘한 건 직권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취지다. 이런 이유로 임 전 사단장은 자신의 직권남용 문제를 언급한 해병대수사단의 조사 결과 보고서가 잘못됐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해병대 수사단은 임 전 사단장의 직권남용 혐의를 적시하지 않았다. 수사단은 ‘작전통제권과 상관 없이’ 임 전 사단장을 실질적 수색작전 지휘관으로 보고, 안전지침을 부대에 하달하지 않아 채 상병 순직사고가 일어났다고 판단했다. 임 전 사단장은 김 변호사와 공방전을 벌이고 있다. 법적 대응까지 예고했다. 김 변호사가 SNS에 게시한 글 중 허위 사실이 포함된 내용이 있다는 게 임 전 사단장의 주장이다. 그는 김 변호사에게 “해병대 수사단 자료의 한계 속에서 해석과 이해를 거쳐 어떤 주장을 하는 것에 관해서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에도 같은 주장을 반복하는 것은 악의적이라고 생각한다”며 “해병대 수사단 자료의 문제점을 뒷받침하는 자료가 발견됐고, 제가 사안의 진상을 밝히면서 그걸 뒷받침하는 자료를 제시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허위가 여론을 조작하고 진실을 가리는 불의한 상황을 시정하기 위해 나 자신의 안위는 돌보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강조했다. 김 변호사는 임 전 사단장을 공수처에 세 번째로 고발했다. 이번 혐의는 군형법 제79조 무단이탈죄다. 군인권센터에 따르면, 임 전 사단장은 지난 1월 말 서울 노원구에 있는 화랑대연구소가 아닌 영등포구에 위치한 해군 관사 ‘바다마을아파트’에 거주하며 인접한 해군 재경근무지원대대 사무실로 출근 중이다. 마음 급해졌나…어떤 의도? 갑자기? 특검 압박 느꼈나 이 사실은 그가 여러 곳에 자신이 결백하다는 취지의 문서를 내용증명, 등기우편 등으로 보내면서 드러났다. 등기 봉투의 발신지는 화랑대연구소였으나 배송 조회 결과 실제 발신지는 서울 신길7동 우편취급국이었다. 임 전 사단장이 거주 중인 서울 관사 인근이다. 발송 시간도 대부분 일과시간 직전이나 일과 중이었다. 임 전 사단장은 언론을 통해 “연수 초기에 육사에서 주로 근무했으나 장거리 출퇴근 비효율적이라서 최근엔 해군재경대대서 근무 중이다. 근무 장소 중 하나가 해군 재경대대”라고 해명했다. 이에 대해 김 변호사는 “정책 연수의 일시와 출퇴근 시간 및 장소가 명령으로 특정된다. 인사명령의 지정된 장소서 지정된 출퇴근 시간을 준수해야 한다”며,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 인사명령이나 상급기관의 지휘관에게 사전에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최근 자주 번호를 변경하는 임 전 사단장의 핸드폰을 압수수색해 무단이탈한 장소와 상급지휘관인 해병대 사령관에게 정식으로 사전에 허가를 받았는지에 관한 진실을 밝혀 강력히 처벌해 달라는 취지”라고 전했다. 김 변호사는 “임 전 사단장이 해병대 간부들에게 연락을 취하는 행동이 증거인멸 시도로 볼 수 있다”며 “자신의 책임을 부정하기 위해 메시지를 보내며 같이 책임을 면하자는 회유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공수처는 지난 1월부터 해병대 수사단의 조사 결과와 경찰 이첩 과정서 외압이 있었는지에 대해 강제수사를 착수해 왔다. 박 대령에게 사실확인요청서를 보낸 것에서 임 전 사단장이 적극적인 책임 회피에 나섰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현재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정치권서 ‘채 상병 특검’ 목소리가 커지자 조용했던 임 전 사단장이 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부적절한 처신 한 해병대 간부는 “전우의 죽음 이후 형평성에 어긋나거나 석연치 않은 윗선의 처리는 진상규명 문제를 떠나 정치권 개입을 불렀다”며 “도의적 책임도 지지 않고 자리를 지키는 일부 작자들의 행동으로 인해 해병대 전체의 명예가 실추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임 전 사단장은 <일요시사>가 사건 관계인에 연락한 이유에 관해 묻자 "사건 관계인에게 연락한 것은 사실 확인을 위한 것일 뿐"이라고 답했다. <hounder@ilyosisa.co.kr>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