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회사 대한민국의 위기 ③

IMF세대들의 ‘통한의 목소리’

 

 

IMF의 삭풍이 몰아쳤던 1990년대 후반 대학교를 졸업한 IMF세대. 대한민국 역사상 유례없는 풍요로움 속에서 청소년기와 20대 초반을 보냈던 그들은 앞으로 남은 미래도 장밋빛일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발을 딛으려는 이들을 기다리는 것은 IMF시대라는 괴물과 취업전쟁, 그리고 냉혹한 현실이었다. 아무런 준비 없이 벼랑 끝에 몰린 이들은 삶의 방식과 태도, 사고방식까지 바꿔야 살아남을 수 있는 현실 속에 버려졌다. 그리고 10년 후인 지금, 그들은 여전히 힘들다. 지난 10년간의 살아남기 위한 발버둥은 세계적 경제공황 속에서 물거품이 될 위기다. 하루하루가 위태한 30대들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IMF는 벗어났지만 고통은 10년 째

컴퓨터 부품을 만드는 중소기업 개발팀에 근무하는 전모(38)씨는 대학교를 졸업한 후 10년간 하루도 위기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한다.
대기업에 다니는 아버지 밑에서 부족할 것 없는 청년기를 보냈던 전씨. 대학시절에도 아르바이트 한 번 안 해봤을 만큼 경제적 풍요로움을 누렸다. 자신의 삶은 앞으로도 쭉 평화롭고 안정적일 거라는 전씨의 기대가 무너진 것은 대학 졸업을 몇 달 남기지 않았을 때였다.교과서에서나 보던 ‘IMF’란 세 글자가 연일 뉴스에 나올 때만 해도 자신과는 무관한 일일 거라 여겼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IMF의 직격탄은 전씨의 가정에도 떨어졌다.
퇴직을 10여년 앞둔 아버지가 ‘명퇴’를 당하면서 가정경제는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퇴직금으로 받은 2억원 남짓한 돈과 모아둔 돈을 합해 시작한 사업이 화근이었다. 체계적인 준비 없이 뛰어든 사업은 전씨의 가정에 별 보탬이 되지 못했다.
이런 와중에 1998년 8월, 코스모스 졸업을 했다. 서울 소재 사립대 공대에 다녔던 그는 유례없는 취업전쟁 속으로 뛰어들어야 했다. 선배들이 쉽게 들어갔던 기업들에 수십 번 이력서를 냈지만 합격소식은 남의 일이었다. 결국 눈높이를 낮춰 이듬해 봄, 중소기업에 입사한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전씨는 대학 때 마지노선으로 생각했던 연봉의 절반수준밖에 안 되는 급여를 받으며 일주일에 6일씩 야근을 하며 2년간의 직장생활을 했다. 돈을 모으는 것은 불가능했다.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를 대신해 집안경제를 떠안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의 인생은 점점 설계한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렇게 20대 후반을 아등바등 살다 맞이한 30대는 더욱 매서웠다. 그가 다녔던 회사가 도산해 하루아침에 실업자 신세가 된 것.
몇 개월을 실업급여에 의존해 살아가던 전씨는 선배의 소개로 또 다른 중소기업에 입사했다. 규모도, 연봉도 적지만 내실 있는 회사였다. 그리고 지금까지 이 회사에 몸담고 있다.
더 조건이 좋은 회사로 옮기려고도 해봤지만 팍팍한 살림살이 속에서 자기계발을 하며 몸값을 올리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또 5년 전 결혼하면서 생긴 아파트대출금과 각종 은행대출이자를 갚느라 휴직을 하고 다른 직장을 알아보는 것은 꿈도 못 꾸는 형편이다. 여기에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아이들에게 들어가는 사교육비 걱정은 덤이다.
몇 달 전부터 그를 짓누르는 또 한 가지는 지난 해 무리를 해가며 산 펀드가 무서운 속도로 떨어지고 있다는 것. 반토막이 나는 것도 시간문제란다.
전씨는 “IMF시대를 벗어난 지 10년이 지났다고 하지만 난 한 번도 IMF세대라는 걸 잊어본 적이 없다”면서 “아버지가 40대에 누렸던 경제적 안정을 몇 년 후에나 맛볼 수 있을지 막막하기만 하다”고 한숨을 쉬었다.
전씨처럼 IMF를 즈음해 사회에 뛰어든 30대들은 지난 10년을 돌아볼 때면 소주 한 잔이 생각난다. 1970년에서 1975년 전후로 태어난 이들은 이전 세대가 겪었던 경제적 어려움에서 벗어나 여유로운 환경 속에서 유년기를 맞이했다.
물론 지금의 10대와 20대들이 맛보는 정도의 풍요로움은 아니지만 ‘내 자식에게만큼은 가난을 물려주지 않겠다’는 부모세대의 뼈아픈 희생으로 이전의 어느 세대보다 고생 없이 청소년기를 보냈다.
대학교에 들어가서도 마찬가지였다. 일단 대학교만 졸업하면 원하는 직장에 들어가 일을 할 수 있으리란 기대로 다가올 시련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바로 몇 해 전에 졸업한 선배들을 봐도 그랬다. 그들에게 대학교는 자유와 젊음으로 대변되는 낭만의 캠퍼스였고 졸업만 하면 치열한 경쟁 없이 쉽게 직장을 얻었다. 이 때문에 앞날에 대한 불안감이나 막막함은 그리 크지 않았다.
92학번으로 대학에 들어가 1999년에 졸업한 김모(37)씨는 “높은 경쟁률을 뚫고 어렵게 대학에 들어갔지만 대학교에 가서 특별히 공부를 한 기억은 없다”며 “마치 고3처럼 공부한다는 지금의 대학생들을 보면 우리 세대는 편한 대학시절을 보낸 셈”이라고 말했다.
IMF 세대는 또 해외여행이 자유로워진 배낭여행 1세대이기도 했다. 1989년 해외여행 전면 자유화 조치가 내려지면서 이들의 무대는 해외로까지 넓혀졌다. 이로 인해 보다 넓은 시각을 가졌고 다가올 사회생활도 두렵지 않았다.

대학졸업과 함께 IMF시대 맞아 냉혹한 사회 속으로 뛰어들어
치열한 취업경쟁 뚫은 뒤 구조조정과 무한경쟁에서 고군분투


그러나 이들이 사회에 발을 들이기도 전, 대한민국은 혼란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1997년 11월21일, 경제국치라 불리는 IMF가 시작되고 희망은 절망으로 변했다. 외환정책의 실패,  위험성 대출자산 증가 통제불능으로 인한 기업의 연쇄도산, 기업투자의 부실화 등 각종 구조적 요인으로 발생한 위기는 여유로웠던 이들의 인생에 태클을 걸었다.
당장 먹고 살 길이 막막했다. 신입사원을 뽑는 기업의 수가 너무나 적었기 때문이다. 이전만 하더라도 4~5월이면 대기업들은 공채사원 모집으로 수천 명의 신입사원을 뽑았다. 그러나 1998년 상반기 신입사원을 뽑은 대기업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취업준비생은 이에 비해 그 어느 때보다 많았다. IMF세대는 베이비붐 세대이기도 하다. 1970년에서 1972년 사이에 태어난 사람의 수는 그 어느 때보다 많았다.
통계청의 ‘2005년 인구총조사’에 따르면 출생인구가 가장 많은 해는 1971년으로, 87만5천1백87명이나 됐고, 1970년(85만9천8백17명)과 1972년(85만9천5백12명) 생이 뒤를 이었다. 이는 가장 수가 작은 2005년생(41만3천8백5명)에 비하면 두 배가 넘는 수치다. 이로 인해 1998년 20대 실업자는 52만명에 달했다. 이전 해의 27만여 명보다 2배 가까이 많은 수다.
이처럼 혹독한 시련을 겪으며 고생 끝에 취직했다고 해서 안전한 삶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었다. 이들은 언제 자신이 구조조정의 칼바람을 맞을지 모르는 위태로운 직장생활을 해 나갔다.이때부터 ‘평생직장’이란 개념은 사라지고 있었다. 지금 일하고 있는 직장이 간부급으로 승진해 정년퇴직을 보장받는 곳이 아니라 다른 직장으로 옮겨가는 교두보의 역할만을 할 뿐이란 것.
IMF를 벗어나고 21세기를 맞이했다고 해서 이들 세대의 고통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결혼적령기를 맞은 이들은 작은 아파트 한 채를 장만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집값이 폭등해 월급쟁이에게는 전셋집을 마련하는 것도 버거운 일이었다.
그러나 삶의 질은 높아만 갔다. 집은 없어도 차는 있어야 하고, 명품 하나쯤은 있어야 대접받는 시대가 왔다. 여기에 주6일제에서 주5일제로 바뀌면서 여가생활을 즐기는 데 드는 돈도 만만치 않게 들어갔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하모(39)씨는 “아직까지 아파트 대출금을 갚는 형편이지만 가족 여행과 취미생활을 포기할 수 없어 저축할 몫이 줄어드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전 세대에 비해 기본적인 생활비도 늘 수밖에 없다. 휴대폰, 인터넷 등 정보생활에 필요한 돈이 수도세처럼 빠져나가고 사교육비도 늘어만 간다. 그리고 이들 세대의 자녀들은 사교육비가 가장 많이 들어가는 중, 고등학교 입학을 목전에 두고 있는 경우가 많아 그 부담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여기에 몇해 전부터 광풍처럼 불었던 펀드와 주식바람은 이들을 더욱 힘들게 하고 있다. 이전 세대보다 훨씬 쉽고 가볍게 재테크를 생각하는 30대들은 실제로 재테크로 짭짤한 맛을 본 사람들이 많기도 했다. 그러나 세계적인 경제 불황은 대박의 꿈마저도 앗아갔다.
불안한 직장생활의 마지막 보루로 투자했던 펀드와 주식은 바닥으로 치닫기 일쑤고 어렵게 대출을 받아 산 아파트 등의 부동산도 날이 갈수록 값이 떨어지고 있다.
직장인 박모(37)씨는 “틀림없는 정보라고 해서 믿고 산 펀드의 수익률이 끝도 없이 떨어지고 있어 자다가도 벌떡 깬다”면서 “주식실패로 자살했다는 우울한 이야기가 남의 일이 아닌 것 같다”고 털어놨다.
이런 상황에서 30대들의 목을 조이는 또 다른 것은 ‘무서운 후배’들이다. 어느 세대든 후배들이 자신들을 치고 올라와 위협하는 것은 순리(?)겠지만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인 이들의 후배는 누구보다 능력 있는 세대다.
10대 시절에 IMF를 겪고, 바로 윗세대들이 얼마나 냉혹한 사회에서 일하는지를 지켜봤던 이들은 어느 세대보다 철저히 준비하고 사회에 발을 들였다. 대학교는 술을 마시고 연애나 하는 곳이 아니라 ‘취업을 위한 학원’ 정도로 여긴 ‘후배’들은 고3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고 더 많은 투자를 쏟아 취업문을 통과한 인재들이다.
게다가 30대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이기기 힘든 것은 이들이 가진 정보력이다. 20대 후반에서야 인터넷을 접한 IMF세대와 달리 이들은 이미 10대부터 자유자재로 인터넷을 가지고 논 세대. 무려 10년이란 차이를 따라잡는 것이 어려운 것은 당연한 일이다.
호텔에서 근무하고 있는 서모(39·여)씨는 “언젠가 부장님이 나와 후배에게 같은 일을 시킨 적이 있는데 후배는 나보다 24시간이나 빨리 보고서를 제출했다”며 “일한 경력은 내가 훨씬 길기 때문에 당연히 후배를 이길 줄 알았는데 인터넷을 이용한 정보력은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이처럼 IMF세대인, 30대 후반을 맞은 이들은 예고도 없이 가장 치열한 세상 속으로 들어온 뒤 10년 동안 무한 경쟁 속에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그리고 IMF보다 더 혹독한 경제위기라는 지금, 10년 전의 잔혹한 추억을 떠올리며 불안에 떨고 있다.
 

IMF 처녀에서 88만원 세대까지 ‘그때 그 유행어들’
IMF 이후 취업난 빗댄 신조어 쏟아져


IMF 이후 10년 동안 계속 되고 있는 취업난과 청년 실업은 각종 신조어를 만들었다. 이 용어들은 우울한 현실 속에서 쓴 웃음을 주며 여러 사람들에게 회자됐다. 잠깐 사용되다 사라진 신조어와 관용어로 굳혀진 용어들을 되돌아보자.

IMF 처녀
IMF시대였던 1990년대 후반 생겨난 신조어. 구조조정의 칼바람이 불던 당시 기혼녀부터 해고시키는 회사방침으로 인해 결혼을 하고도 처녀행세를 하는 유부녀를 일컫는 말. 심지어 결혼하고도 혼인신고를 하지 않거나 남편과 당분간 따로 사는 등 직장을 사수하기 위한 당시 직장인들의 노력은 그야말로 처절했다.

갤러리족
주인의식 없이 회사 돌아가는 대로 그저 따라다니다가 그만둘 때는 미련 없이 떠나는 직장인들을 일컫는 말. IMF 후 구조조정으로 인해 직장인들이 강제 퇴직당하면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전이까지만 해도 자신이 근무하는 회사를 평생직장으로 여겼지만 하루아침에 실업자로 전락하는 사태가 벌어지면서 더 나은 직장이 나오면 미련 없이 직장을 옮기는 풍속도가 생겼다. 갤러리족이라는 이름은 회사의 운명은 상관없이 자신에게 유리한 것만 생각하는 직장인들의 모습이 마치 골프장의 갤러리들이 멋진 플레이가 나오면 박수를 쳐 주고, 선수가 이동하면 따라 나서는 모습과 같다고 해서 생겨났다.

각종 생선 시리즈
외환위기 이후 직장인들의 목숨과 관련한 신조어들도 연일 생성됐다. 명예퇴직자를 이르는 ‘명태족’, 하루아침에 생매장당한 직장인인 ‘생태족’, 어느 날 황당하게 잘린 직장인을 말하는 ‘황태족’, 30대에 일찌감치 잘린 조기 명퇴자를 일컫는 ‘조기족’, 퇴직금을 두둑이 받은 명예퇴직자를 이르는 ‘알밴 명태족’ 등이다. 이들 용어 중 명태족 등은 지금도 쓰이며 IMF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고공족(考公族)
구조조정으로 해고당하는 이들이 늘면서 해고의 위험성이 없는 공기업과 공무원이 큰 인기를 얻으며 생긴 용어다. 고공족은 고시건 공무원시험이건 일단 붙고 보자는 생각으로 공부를 하는 수험생들을 일컫는다.


공휴족(恐休族)
쉬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뜻하는 신조어. 이들은 주로 취업에 부담을 느낀 대학생들로 방학 중에도 쉴 틈 없이 학업 외에 3~5개 활동을 동시에 한다. 이들은 어학공부, 각종 아르바이트, 봉사활동, 기업 인턴십, 자격증 취득 등 졸업 후 취업에 도움이 될 만한 일이라면 마다않고 한다.

이태백·삼태백
청년실업은 20대 태반이 백수라는 ‘이태백’이란 말을 만들었다. 장기화된 취업난은 연령대를 넓혀 30대 태반이 백수라는 ‘삼태백’으로 바뀌기도 했다.

대학 둥지족
취업이 어려워지자 휴학을 하며 졸업을 미루는 학생을 일컫는다. 이들은 어학연수, 인턴쉽 등을 핑계로 휴학을 밥 먹듯하며 사회로 나가는 시간을 유예시킨다.

버블리족
‘거품족’이라고도 하는데 1986년부터 1990년까지 거품 경기 때 입사했거나 대학생활을 보낸 직장인 중 거품경기가 사라지면서 급변하는 기업 조직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직장인을 지칭하는 말이다. 이들 버블리족의 특징은 무관심·무능력·무경쟁으로 조직의 입장보다는 개인적 관심에의 일을 추진하고 모든 책임을 조직에 돌리는 것. 또 자신에 대한 남의 평가에 대해 관심이 없고 경쟁의식도 없으며, 근무시간에 조직 업무에 대한 집중도 취약해 공사를 명확히 구분하지 못하는 특징이 있다.

88만원 세대
20대 비정규직 노동자가 약 88만원을 받는다는 뜻. 88만원은 비정규직 전체의 평균 임금(1백19만 원)에 20대 평균 소득 수준 비율인 74%를 적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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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0 이후···4인 파워게임> 화려한 부활 조국

[4·10 이후···4인 파워게임] 화려한 부활 조국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이 두 자리 의석수를 확보하면서 원내 3당으로 자리 잡았다. 조국 대표는 비례순번 2번으로 단숨에 여의도행 티켓을 따냈다. 문재인정부 초대 민정수석비서관과 66대 법무부 장관 등 굵직한 이력을 지녔지만 초선인 만큼 처음부터 입지를 다져야 한다.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인 조 대표의 생존 전략은 무엇일까?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과반을 넘기면서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의 표정도 덩달아 밝아졌다. 지난 10일, 민주당의 압승에 가까운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되자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서 상황을 지켜보던 조국당 지지자들도 감탄사를 내뱉었다. 조국당이 기대하던 ‘10석+알파(α)’가 확실해졌다. 주먹을 쥔 지지자들은 연신 “조국”을 외쳤다. 총선 뒤흔든 조국혁신당 조 대표는 이날 총선 출구조사 결과에 대해 “국민이 승리했다”고 소리 높였다. 그는 “국민께서 윤석열정권 심판이라는 뜻을 분명하게 밝히셨다”며 “윤석열 검찰 독재 정권의 퇴행을 더는 두고 볼 수 없다는 국민 여러분이 이번 총선 승리의 진정한 주인공”이라고 밝혔다. 이어 “윤 대통령은 이번 총선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라. 그리고 그간 수많은 실정과 비리에 대해 국민께 사과하라”며 “이를 바로잡을 대책을 국민께 보고하라”며 “총선은 끝났지만 조국당이 만들 우리 정치의 변화는 이제 시작이다. 개원 즉시 ‘한동훈 특검법’을 발의하겠다”고 강조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비례대표 개표 현황에 따르면, 조국당은 12석으로 집계됐다. 국민의힘의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가 18석으로 가장 많은 당선자를 배출했다. 민주당의 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이하 민주연합)이 14석을 얻었으며 개혁신당과 진보당은 각각 1석을 얻는 데 그쳤다. 조국당은 24.25%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신생정당이 20%가 넘는 지지율을 거두자 정치권에서는 이례적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이로써 조국당 비례대표 12번까지는 무난히 당선권에 들었다. 차례대로 ▲박은정 ▲조국 ▲이해민 ▲신장식 ▲김선민 ▲김준형 ▲김재원 ▲황운하 ▲정춘생 ▲차규근 ▲강경숙 ▲서왕진 등의 후보가 국회에 입성하게 됐다. 한때 여권서 “조국이 나오면 땡큐”인 ‘조나땡’이란 말까지 나왔지만 이를 상쇄시킬 정도로 조국당의 돌풍은 거셌다. 조 대표가 부산 민주공원서 신당 창당 선언문을 낭독했을 때만 하더라도 지금과 같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예측한 이들은 극히 드물었다. 기세 좋게 제3지대로서의 존재감을 키워가던 개혁신당과 새로운미래의 갈등이 불거지면서 ‘조국 열풍’ 또한 금세 식을 것이란 분석이 대부분이었다. 게다가 조 대표는 지난 2월8일 자녀들의 입시 비리 및 청와대의 감찰무마 혐의 등으로 항소심서도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마찬가지로 사법 리스크에 발목이 잡힐 것이란 해석에 무게가 실렸다. 총선 한 달 앞두고 등장한 루키 정당 민주당과 정권 심판론 쌍끌이 전략 하지만 예상을 뒤엎고 조국당은 이번 총선서 가장 큰 변수로 자리 잡았다. 총선이 가까워질수록 정권 심판론이 두드러졌기 때문이다. 특히 이종섭 전 주호주대사 사건과 황상무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의 ‘회칼 테러’ 논란이 연이어 터지면서 이는 조국당의 동력으로 이어졌다. 조국당의 슬로건은 윤 대통령의 탄핵을 암시하는 “3년은 너무 길다”였다. 거대 야당인 민주당은 중도층 여론을 의식해 탄핵에는 조심스러운 입장일 수밖에 없다. 결국 ‘윤정부 무력화’를 거침없이 외치는 조국당에 심판을 벼르던 강성 유권자들이 동참한 것이다. 민주당을 지지하지만 다소 약한 목소리에 갈증을 느끼던 지지층의 표를 흡수한 셈이다. 22대 총선을 통해 조 대표는 완벽한 정치적 부활에 성공했다. 하지만 1·2심 모두 실형이 나온 만큼 조 대표가 22대 국회를 완주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당의 대표이자 간판인 조 대표가 대법원 판결을 통해 의원직을 상실한다면 사실상 조국당은 존폐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조 대표가 집어든 여의도 생존 전략은 ‘검찰 탄압 프레임’을 굳히는 것이다. 자신을 여의도로 이끈 ‘검찰 탄압’이라는 명분을 긴 호흡으로 유지하면서 원포인트 전략으로 내세우겠다는 설명이다. 이는 조 대표가 출소 후 여의도로 돌아오기 위한 명분으로도 내세울 수 있다. 국회에 입성한 조 대표는 그동안 강조해온 한동훈 특검법을 띄우는 데 주력할 전망이다. 그동안 조 대표는 기자회견을 통해 “원내에 진입하면 한동훈 특별법을 1호 법안으로 발의하겠다”고 강조해 왔다. 한동훈 특검법은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 징계 관련 의혹 ▲검찰 고발사주 의혹 ▲논문 대필 등 자녀 입시 비리 의혹 등을 수사 대상으로 삼는 걸 골자로 한다. 이 밖에도 조 대표는 ‘윤석열정권 관권선거운동 의혹 국정조사’를 실시하거나 ‘검찰의 민간인 불법 사찰 의혹 국정조사’를 추진해 윤 대통령을 국회에 출석시키겠다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12석 확보 완벽한 성공 당선권에 진입하자 조 대표는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지난 11일 조국당은 총선 당선자들과 함께 첫 공식 일정으로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을 찾았다. 이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에 마지막으로 경고한다. 김건희를 수사하라”고 외쳤다. 조 대표는 “이번 총선서 확인된 ‘윤석열 검찰 독재 정권 심판’이라는 거대한 민심을 있는 그대로 검찰에 전하려 한다”며 “검찰은 즉각 윤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를 소환해 조사하라”고 말했다. 조 대표는 김 여사의 명품 가방 수수 의혹도 거론했다. 그는 “검찰은 ‘몰카 공작’이라는 대통령실의 해명에 설득력이 있다고 보느냐”며 “몰카 공작이라면 관련자들을 소환해 조사하고 처벌하라. 그것과 별개로 김 여사도 당장 소환하라”고 주장했다. 끝으로 조 대표는 “조국당은 검찰이 국민의 명령을 따르지 않을 경우 22대 국회 개원 즉시 ‘김 여사 종합 특검법’을 민주당과 협의해 신속하게 추진할 것”이라며 “검찰이 수사에 나서지 않는다면 김 여사는 특검의 소환조사를 받게 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놨다. 조국당이 검찰만 정조준하는 이유는 조 대표가 ‘정치적 죽임’을 당했다는 여론 때문이다. 따라서 조 대표를 향한 동정론도 조국당이 꺼내들 수 있는 카드 중 하나로 여겨진다. 검찰에게 탄압받았다는 이미지를 가진 조 대표가 법정에 모습을 드러낼수록 오히려 지지자의 결집력이 높아질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지난 몇 년 동안 조 대표 본인은 물론 그의 가족까지 수사 대상에 올랐다. 이를 시작으로 조 대표와 그의 일가족이 잘못한 부분은 있지만 죄명에 비해 과도하게 탄압받았다는 동정론이 형성됐다. 동정론은 조국당 지지자를 결집시키는 강한 무기다. 오래전부터 조 대표를 지지해 왔다는 A씨는 기자회견 현장에서 <일요시사> 취재진과의 만나 “조 대표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참 짠하다”고 말했다. 함께 온 B씨도 “온 가족이 풍비박산이 나지 않았나. 힘든 일이 많았을 텐데 역경을 딛고 나선 것을 보면 마음이 이쪽(조국당)으로 간다”고 말했다. 이 VS 조 동상이몽 민주당 지지자들은 이미 이 대표의 재판에 익숙해져 있기 떄문에 조 대표의 범죄 혐의가 비교적 희석됐다는 평도 나온다. 조국당이 총선 직전까지 지지율을 견인하자 여권에서는 급하게 견제에 나섰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이하 비대위원장)은 총선 기간 동안 조 대표를 ‘범죄자’로 규정하며 “범죄자들에게 미래를, 아이의 미래를 맡길 수 없지 않냐”고 강조했다. 이에 조 대표는 “‘한동훈 특검법’에 동의부터 하라”며 맞불을 놨다. 조국당은 한동훈 특검법에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동의할 것이란 자신감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민주당은 중도층을 포섭해야 하는 입장이다. 또한 차기 대권주자로 부상한 조 대표의 존재가 부담스럽기도 하다. 정치권에서는 여의도 신입인 조 대표와 이재명 대표를 동일선상서 바라보는 모양새다. 총선 다음 날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이번 선거를 “국민을 두려워하지 않던 (윤석열)대통령에게 보낸 마지막 경고”라고 평가하면서 “(윤석열 대통령은)하루빨리 이재명·조국 대표를 만나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제1야당 대표인 이 대표뿐만이 아니라 조 대표까지 함께 언급된 만큼 조 대표의 몸값이 크게 뛰었다고 해석했다. 조 대표는 대권주자로서의 가능성은 닫아뒀지만 민주당에서는 견제하는 분위기가 이어진다. 이 같은 흐름을 두고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현해 “야권의 분열이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대표는 “이재명 대표와 조국 대표의 속도 차이가 있을 것”이라며 “(야권이) 윤정부에 대한 심판론을 갖고 거대 의석을 이뤘지만 조 대표와 이재명 대표의 시간표는 다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자녀 입시 비리’ 사법 리스크 여전 대법 판결 정치생명 마침표될 수도 현재 조 대표는 대법원 판결만 남은 만큼 모든 일정을 빠르게 해치워야 한다. 총선을 한 달 앞두고 정치판에 뛰어든 것 역시 궤를 같이한다. 대법원과 견줄 만큼 몸집을 키우거나 진보 진영서 대권을 잡아 스스로의 힘으로 사면해야 한다는 게 이준석 대표의 시나리오다. 반면 이재명 대표는 급할 게 없다는 입장이다. 이준석 대표는 “이재명 대표는 많은 의석을 가진 정당의 대표기 때문에 서서히 조여 들어가려고 할 것”이라며 “그 속도 차이가 역설적으로 두 세력의 분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현재 조 대표의 생존 전략은 조국당의 원동력을 유지하거나 추후 여의도 복귀를 위한 명분을 쌓는 데 그칠 뿐이다. 조국당의 정치 공간을 넓히고 다른 당과 손을 잡기 위해 매력적인 묘수를 꾀어내는 게 조 대표의 숙제로 남아 있다. 조국당 의석은 12석으로 교섭단체를 충족시키는 20석을 채우기 위해서는 8석이 더 필요하다. 1석씩 얻은 새로운 미래와 진보당, 혹은 소수 야당과 손을 잡고 공동 교섭단체를 꾸리는 것도 방법 중 하나로 제시된다. 이제까지 민주당과 조국당 모두 합당 가능성에 선을 그어왔다. 조국당이 내세운 ‘지민비조(지역구는 민주당 비례는 조국)’ 슬로건에 민주당은 ‘몰빵론’을 내세우기도 했다. 민주당이 과반석을 얻은 지금으로서는 조국당이 거대야당에 협력하는 관계를 유지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하지만 의외의 성적을 거둔 조국당이 22대 총선의 캐스팅보트 역할을 쥐면서 꼬리가 몸통을 흔들 것이란 관측도 제기된다. 민주당·민주연합·조국당 등 범야권이 힘을 합치면 의석수가 국회의원 전체의 5분의 3인 180을 넘기게 된다. 이 경우 신속처리안건인 패스트트랙 지정을 통해 법안을 강행할 수 있다. 아울러 패스트트랙에 저항할 수 있는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도 강제 종료시킬 수 있다. 혼자일 때 더 강하다 전직 청와대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조국 대표가 민주당과 합칠 가능성은 매우 적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추후 민주당서 탈당할 의원이나 제3지대 의원이 합류한다면 원내교섭단체인 20석이 충분한 만큼 조 대표가 숙이고 들어갈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전적으로 조 대표의 판단에 달렸지만 민주당과 손을 잡으면 지금과 같은 선명성이 묻히고 특유의 아이덴티티를 잃게 된다”며 “조 대표는 이번 총선의 캐스팅보트다. 살아남는 방법은 지금과 같은 목소리를 끝까지 유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다급해진 대법원? 대법원이 업무방해·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를 받는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 상고심 사건의 재판부를 결정했다. <뉴스1>에 따르면 주심은 엄상필 대법관으로 2021년 조 대표의 배우자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의 항소심서 징역 4년을 선고한 이력이 있다. 현재 대법원은 엄 대법관이 상고심 재판을 맡더라도 형사소송법상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이번 조 대표 사건의 하급심 판결에 엄 대법관이 직접 관여한 것은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다만 엄 대법관에게 유죄의 심증이 있으므로 조 대표 측은 재판부를 교체해달라는 기피 신청을 낼 수는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