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박근혜 잡는 김수남 검찰총장

“흔들림 없이 수사” 국민은 믿는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이후 가장 주목받고 있는 집단은 언론과 검찰이다. 언론이 정권의 추악한 이면을 폭로하면 검찰이 단죄하는 구도를 원하는 국민으로선 매번 정권의 앞잡이 노릇을 했던 검찰이 미덥지 못한 상황. 겁찰·떡찰·견찰 등 낯부끄러운 별칭으로 불렸던 검찰이 최근 아직은살아있는 권력에 칼자루를 들이대며 변화를 꾀하고 있다. 그 중심에 검찰총장 김수남이 있다.

최근 부쩍 날카로워진 검찰의 공격을 최전방서 방어해야 할 김현웅 법무부장관과 최재경 청와대 민정수석이 한꺼번에 사의를 표명하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김 장관은 검찰의 최순실 게이트 중간 발표 다음날인 21, 최 수석은 국무회의서 특검법이 의결된 직후인 22일 각각 사표를 냈다. 청와대는 이른바 멘붕에 빠졌다. 검찰의 을 막아야 할 방패가 사라졌다고 봐도 무방한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청와대, 정확히는 박근혜 대통령의 목을 죄어오는 여론의 무게와 검찰의 칼날을 버텨줄 지붕 하나가 사라진 셈이다.

장관·수석 동반사표
청와대는 멘붕 상태

두 사람의 사의 표명은 수많은 해석을 낳았다. “지금으로선 사직하는 게 도리”(김 장관) “사정을 총괄하면서 대통령을 올바르게 보필해야 하는 사람으로서 도의적 책임을 느낀다”(최 수석). 두 사람 모두 도의적 책임을 거론했지만 이는 표면적인 이유일 뿐이라는 게 중론이다.


지난달 30일, 민정수석으로 내정된 지 23, 임명장을 수여받은 지 4일 만에 사의를 표명한 최 수석의 결심에 특히 관심이 쏠렸다. 검찰 최고 특수통으로 불렸던 그가 청와대와 검찰 사이서 진퇴양난의 골에 빠져 그만두는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최 수석이 지인들에게 청와대 상황의 심각성을 말하며 답답함을 토로했다는 뒷말도 있다.

일각에선 최 수석이 박 대통령에게 실망했다, 최 수석과 박 대통령 사이에 갈등이 있었다는 말도 흘러 나왔다. 최 수석의 사의 표명을 두고 언론서 수많은 시나리오를 써내자 청와대는 진화에 나섰다. 그 와중에 한 가지 진실이 수면 위로 훅 올라왔다. 청와대와 검찰은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점이다.

올해의 단어가 최순실’, 올해의 사건이 최순실 게이트라면 올해의 사진은 <조선일보>가 찍은 우병우 전 민정수석의 모습일 듯하다. 일간지 1면 탑에 박힌 사진 한 장은 열 마디 말보다 더 큰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벽을 사이에 두고 우 전 수석과 검사 두 사람이 포착된 절묘한 구도의 사진이 가져온 후폭풍은 대단했다.

좀처럼 웃는 모습을 볼 수 없었던 우 전 수석이 점퍼를 걸친 채 팔짱을 끼고 미소를 지으며 서있는 모습과 선배의 말을 경청하듯 손을 공손히 모은 검사들의 모습은 완벽한 대비를 이뤘다. 사진은 검찰이 우 전 수석을 대하는 태도를 그대로 보여줬다. 즉각 황제수사논란이 불거졌고 검찰을 향한 비난의 화살이 쉴 틈 없이 쏟아졌다.

검찰은 해당 사진 속 모습은 조사 중인 상황이 아니라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담당 부장검사가 자리를 비운 사이 우 전 수석이 다른 후배 검사들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라고 해명했다. <조선일보>는 검찰의 해명을 비웃듯 비슷한 구도의 사진을 여러 장 더 공개했다.

검찰 vs 청와대 벼랑 끝 대치
헌정최초 대통령 피의자 입건

우 전 수석이 다가가자 검사와 수사관이 벌떡 일어나는 모습, 우 전 수석의 변호사가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웃고 있는 모습 등이 담긴 사진은 검찰의 해명을 무색케 했다.

검찰에 대한 비판 수위가 높아지자 김수남 검찰총장이 직접 나섰다. 검찰 관계자는 절차상이라도 그렇게 비춰지지 않도록 조심하고, 앞으로 더 철저히 조사하라는 김 총장의 말을 전했다.

우 전 수석의 팔짱수사논란에 수사팀을 질책하는 목소리를 낸 것이다. 김 총장이 수사팀을 혼냈다는 말에도 국민들이 검찰을 바라보는 시선은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딱 걸렸으니까 혼냈겠지, 이제 안 보이는 데서 모시겠네등 조롱 섞인 비판이 이어졌다. 야권서도 뒤늦은 호들갑이라며 김 총장의 행동을 저평가했다.

검찰이 이런 평가를 받는 건 당연했다. 애당초 검찰은 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수사 의지가 약했다. 검찰은 최씨가 독일서 귀국한 이후 바로 소환하지 않고 31시간의 말미를 줬다. 최씨는 검찰이 벌어준 시간 동안 시내를 활보하며 은행서 현금을 인출했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검찰은 또 다시 여론의 십자포화를 맞았다.

일반인이 정부 정책을 비롯, 수많은 이권 사업에 손을 뻗쳤다는 사실이 알려졌지만 검찰수사에 대한 기대는 한없이 바닥을 쳤다. 검찰은 이미 체면이 땅바닥에 떨어진 상태였기 때문에 이번 이슈도 무난하게 넘길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그런 기류는 돌아가는 판국이 검찰의 무능한 태도를 봐줄 수 없을 정도로 활활 타오르면서 바뀌었다.

우병우 ‘팔짱 사진’
검찰 변화 시발점?

아무리 정국을 뒤흔드는 대형 이슈라 해도 한 달 안팎이면 다른 이슈에 묻히거나 물타기로 나타나는 양비론 끝에 마무리된다. 하지만 JTBC가 최씨의 태블릿PC를 입수해 보도한 이후 특종 경쟁이라도 벌이듯 모든 언론이 최순실 게이트에 힘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청와대 대변인은 하루에도 몇 번씩 기자들 앞에서 보도에 대한 해명을 하느라 진땀을 흘리고 있다.

언론에 힘을 실어준 건 국민이었다. 지난달 29일, 1차 범국민 집회에 2만명이 모인 것을 시작으로 20만명, 100만명(주최측 추산) 등 거리에 나오는 국민의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국민들의 목소리는 정치권을 움직였고 검찰을 압박했다. 청와대든 박 대통령이든 검찰이 성역 없는 수사를 진행하지 않을 경우 국민의 신뢰를 전부 잃을 수 있다는 경고의 목소리를 낸 것이다.

국민 등에 업고 ‘초강수’
앞으로 거취에 관심 집중

상황을 되짚어 봤을 때, 검찰이 방향을 선회한 첫 시발점은 우 전 수석의 사진이 언론을 통해 공개된 때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사진이 공개되면서 검찰이 욕을 먹은 만큼 우 전 수석에 대한 반감 역시 들불처럼 커진 게 김 총장에게는 기회로 작용했다는 시각이다.

검찰의 위신은 땅에 떨어졌지만 그와 동시에 김 총장에겐 우 라인을 압박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는 것.

대검 관계자는 김 총장이 우 전 수석의 직무유기 의혹도 밝히라고 검찰 특별수사본부(이하 특수본)에 지시했다고 전했다. 가족 회사 정강의 자금을 횡령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던 우 전 수석을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얽기 시작한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김 총장의 우 전 수석 수사 지시가 우 라인을 향한 경고장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청와대 경외 민정비서관실 산하 특별감찰반실을 압수수색하는 등 우 전 수석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조사 시기·방법
청와대와 신경전

검찰의 급격한 기류 변화는 박 대통령의 조사를 두고 신경전을 벌이면서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박 대통령은 2차 대국민담화서 앞으로 검찰은 어떤 것에도 구애받지 말고 명명백백하게 진실을 밝히고 이를 토대로 엄정한 사법처리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며 필요하다면 저 역시 검찰의 조사에 성실하게 임할 각오이며 특별검사에 의한 수사까지도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검찰은 지난 13일, 늦어도 1516일에는 대통령을 조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검찰은 대면조사를 원했고 박 대통령의 신분은 참고인이었다. 지난 12100만명의 시민이 서울 한복판으로 뛰어나온 뒤 정치권, 그것도 여당서 탄핵 목소리가 나오는 등 강한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하자 검찰도 칼을 뽑아든 것이다.

검찰의 요청에 박 대통령의 변호인 유영하 변호사는 지난 15서면조사를 원칙으로 해 달라며 사실상 검찰의 대면조사를 대놓고 거부했다.

유 변호사는 이날 기자회견서 본 사안은 매일 언론에서 각종 의혹이 쏟아지고 있는 상황이므로 변호인으로서 기본적인 의혹사항을 정리하고 법리를 검토하는 등 변론 준비에도 최소한의 시간이 필요하다대통령 관련 의혹사항이 모두 정리되는 시점에서 조사가 이뤄지는 것이 타당하다고 조사 연기를 요청했다.

대통령이기 이전에 여성으로서의 사생활이 있다는 점도 고려해 달라고 말해 불필요한 뒷말을 낳았다는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다.

대통령은 헌법상 형사소추를 피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지고 있어 대통령을 피의자로 본다고 해도 검찰 조사 요구에 응하지 않을 경우 이를 강제할 방법은 없다. 검찰 관계자 역시 대통령이 최순실과 관련해 온갖 비난을 받고 있지만 그래도 국민이 선거로 뽑은 헌법상 기관이라며 그 자리에 있으면 행정부 수반이라고 했다.

‘정윤회 사건’ 처리한 특수통
줄곧 총장후보 ‘1순위’ 거론

검찰은 유 변호사의 입장 발표 후 “18일까지 가능하다며 마지노선을 그었지만, 유 변호사는 지난 17다음 주에 검찰 조사에 협조하겠다며 제안을 일축했다.

유 변호사는 대통령께서는 이 사건의 진상을 밝히기 위한 검찰 수사에 적극 협조하시겠다고 확고한 의지를 누차 밝히신 바 있고 지금까지도 그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최대한 서둘러서 변론준비를 마친 뒤 다음 주에는 대통령에 대한 조사가 이뤄질 수 있도록 협조하겠다고 했다.

지난 20, 검찰은 헌정 사상 최초로 대통령을 피의자로 입건해 수사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며 전면전을 선포했다.

이영렬 특수본 본부장은 이날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최순실씨와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 정호성 전 부속비서관 등의 범죄 사실과 관련해 박 대통령이 상당부분 공모관계가 있는 것으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최씨는 안 전 수석과 함께 기업에 영향력을 행사해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 기금을 모금한 혐의를 받고 있다. 직권남용과 강요, 강요미수 혐의다. 정 전 비서관은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를 받고 있다. 세 사람은 모두 구속 기소됐다.

사퇴설 일축하고
“흔들림 없이 수사”

검찰 발표에 청와대는 격앙된 반응을 쏟아냈다. 청와대는 발표 직후 정오쯤 비공식적으로 매우 유감스럽다고 했다.

이후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상상과 추측을 거듭해서 지은 사상누각” “부당한 정치공세” “인격 살인등 거친 표현으로 검찰수사 결과를 비판했다.

앞서 유 변호사는 입장자료를 통해 증거는 엄밀히 따져보지도 않고 상상과 추측을 거듭한 뒤 자신들이 바라는 환상의 집을 지었다검찰의 직접 조사 협조 요청에 일절 응하지 않고 중립적인 특검 수사에 대비하겠다고 밝혔다. 중립성을 논하며 검찰을 부정한 것이다.

검찰은 청와대의 반응에 녹취파일이 단 10초만 공개돼도 촛불에서 횃불로 바뀔 것이라며 증거 공개 가능성을 두고 압박에 들어갔다. 검찰은 33페이지에 달하는 공소장에 99% 입증할 수 있는 것만 적었다고 수사 결과를 자신했다.

검찰은 정 전 비서관이 녹음한 박 대통령의 통화 내용과 안 전 수석의 수첩을 핵심증거로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지난 23오는 29일까지 (박 대통령의) 대면조사를 요청한다며 최후 통첩했다. 박 대통령이 검찰의 요구에 응할 지는 미지수다. 청와대와 검찰이 날선 공방을 벌이면서 김 총장의 거취 문제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청와대 사정 라인이 사의를 표하면서 자신을 임명한 박 대통령을 향해 칼날을 들이밀고 있는 김 총장 역시 사표를 내는 것은 아닌가 하는 관측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김 총장은 지난 23검찰 외부 상황과 상관없이 최순실 국정농단 수사는 흔들림 없이 가야 한다는 공식 입장을 내놨다. 대검찰청 관계자는 김 총장 사퇴설은 검찰의 존재가치를 부정하는 것이라며 정치적 고려 없이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해야 한다는 게 김 총장의 생각이라고 전했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김수남은 누구?

다음 달 2일 취임 1주년을 맞는 김수남 검찰총장은 최근 가장 주목받는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다. '살아있는 권력'인 대통령과 청와대를 상대로 전쟁을 벌이고 있는 검찰의 수장이기 때문이다.

사법연수원 16기인 김 총장은 대검찰청 차장검사, 법무부 기획조정실장, 서울중앙지검장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수원지검장 시절에는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을 지휘했다. 지난 201411월 말에 불거진 정윤회 문건 사건과 관련해 당시 김 총장은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재직하면서 근거 없음으로 결론 낸 당사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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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 상병 특검’ 공수처 불편한 속내

‘채 상병 특검’ 공수처 불편한 속내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채 상병 특검’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야권의 4·10 총선 압승으로 더불어민주당의 움직임에도 속도가 붙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난감하기만 하다. 부족한 인력으로 인해 수사의 첫 단추도 끼우지 못하는 실정이다. 발 빠른 수사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공수처 안팎에서는 정치권의 책임 떠넘기기에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조직이 와해되기 직전인데 수사에 속도가 어떻게 나겠느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출신 한 변호사의 말이다. 요즘 공수처의 분위기는 참혹하다. 해병대 ‘채 상병 사건’으로 반전을 꾀하고 싶어도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특별검사(이하 특검) 목소리가 거세지면서 ‘비교 대상’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대통령실 압수수색? 채 상병 사건 특검법 추진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공수처의 분위기는 암흑 상태다. 검찰 제도를 보완해 ‘상설특검’ 명목으로 출범했음에도 ‘늑장·부실’ 수사 논란 속에 결국 사건 기록을 특검에 넘겨줘야 하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오는 5월2일, 임시국회를 열어 법안을 표결하자는 분위기다. 법안 통과를 위해서는 국회의장과 여당의 협조가 필요한데, 총선 이후 여당 일각서도 채 상병 특검에 동의하는 분위기가 표출되고 있다. 채 상병 특검 법안은 지난해 10월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뒤 180일의 숙려 기간을 거쳐 본회의 표결만 하면 언제든 통과할 수 있는 상황이다. 채 상병 사건 수사 갈래는 크게 두 가지다. 무리한 수색 지시 등 책임자를 가리는 본안 수사가 경북지방경찰청서 진행 중이고, 해병대 수사단의 초동 조사에 국방부와 대통령실 관계자가 개입했다는 외압 의혹은 공수처가 맡고 있다. 외압 핵심 피의자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주호주대사로 임명돼 부임 후 사퇴하는 과정서 대통령과 법무·외교부 장관의 직권남용 의혹도 공수처에 추가로 고발됐다. 야권이 특검을 통해 밝히려는 사안의 실체는 수사 외압에 집중돼있다. 특검이 통과되면 공수처가 내려던 실적이 특검으로 넘어가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민주당은 이 대사 임명 과정서의 추가 의혹도 특검법안을 수정 발의해 포함할 계획이다. 공수처는 수사의 무게를 일부 덜겠지만, 6개월 넘게 진행해온 사건 기록을 외부에 넘긴다는 건 또 다른 비판의 빌미를 제공하는 셈이다. 특검 추진 본격화…수사팀 의욕 잃어 “이럴 거면 왜 강조하나” 불만 증폭 공수처 출신 한 변호사는 “인력난 때문에 고전하는 상황이다. 내부 얘기를 들어보면 ‘죽을 맛’이란다. 채 상병 사건 수사는 최선을 다하려 했는데 특검이 언급되면서 수사팀의 의욕이 상실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수처법상 수사 범위와 인원 범위가 지나치게 제한돼있어 실질적인 수사 기능을 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설명이다. 공수처법은 공수처의 수사 범위를 현직 공직자와 그 가족, 퇴임 3년 이내 전직 고위공직자로 한정하고 있다. 공수처 검사와 수사관의 인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현재 공수처법이 규정하고 있는 검사와 수사관의 규모는 처·차장 포함 검사 25명, 수사관 40명이다. 공수처법을 추진할 당시 규모는 검사 30~50인, 수사관 50~70인이 제안됐지만 법무부와 국회의 논의를 거치면서 현재 정원으로 대폭 감소했다. 공수처 관계자는 “총선과 무관하게 지속적으로 인원 확대와 관련해 국회와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며 “검사의 신분보장을 위한 임기에 대해서도 개선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앞서 공수처는 최소한의 행정인력이라도 확보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 달라고 호소한 바 있다. 현행법상 행정인원 정원은 20명인데 지난 2022년 공수처는 행정직원 중 국·과장과 직제 파견자 등 7명을 제외하면 실제 가용인원이 13명에 불과해 수사관을 행정인력에 투입해야 할 상황에 놓인 바 있다. 공수처가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법 개정이 필수적이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특히 공수처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일치시켜 수사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수처는 ‘공수처법상 기소권 없는 사건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연구용역’을 발주하는 등 수사 대상과 기소 대상의 불일치로 발생하는 구속영장 논란을 정리하기 위한 연구에 착수하기도 했다. 인력난 가중화 지금까지 공수처가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한 상황을 보면 초기 단계에 불과하다. 지난해 12월 이 전 장관 등을 출국금지했고, 한 달 후인 지난 1월 압수수색에 착수했다. 이후 포렌식과 참고인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 전 장관을 비롯한 국방부 지휘부와 해병대 수뇌부 등에 대한 조사는 특검의 몫이 될 가능성도 있다. 경우에 따라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등으로 특검 수사가 확대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공수처와 경찰은 특검법 처리 여부를 주시하며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총선 국면서 논란의 중심에 선 공수처는 수사를 신속하게 진행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겠다는 입장이다. 공수처 지휘부 공백 상태가 영향을 줄 여지도 있다. 주요 피의자 소환 및 신병처리 등 주요 의사결정을 처장 대행인 부장검사가 결정하기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다. 만약 국회서 여야가 특검법 처리에 합의하는 수순을 밟으면 공수처도 새로 출범할 특검에 기록을 인계하기 위한 작업에 중점을 둘 가능성이 크다. 현재 본회의에 회부된 안은 민주당이 지난해 9월 발의한 법안이다. 민주당이 지난 3월, 이 전 장관이 주호주대사로 임명된 경위를 수사해야 한다는 별도의 특검안도 국회에 제출했기 때문에 이 두 법안이 병합되는 안도 거론된다. 본회의 회부 안건은 수사기간을 최장 100일로 정하고 있는데, 잔여 수사를 검찰에 이첩하도록 명시됐다. 경찰과 공수처가 시작한 수사가 특검을 거쳐 검찰 손에 넘어가는 것은 부자연스럽다는 말도 나온다. 민주당이 3월 발의한 안은 잔여수사 이첩 대상을 검찰과 공수처로 정했다. 단추도 못 끼워 민주당이 특검법 조항 일부를 양보하고 국민의힘이 수사 대상 확대에 동의하는 시나리오도 정치권을 중심으로 나온다. 이런 과정서 본회의 회부 안이 조정될 수도 있다. 이 가운데 이 전 장관은 최근 변호인을 통해 공수처에 “소환조사를 진행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 전 장관 측이 공수처에 소환조사를 요청한 것은 이번이 네 번째다. 이 전 장관 측 김재훈 변호사는 최근 공수처에 소환 촉구 의견서를 내고 “이 전 장관은 호주 대사직서도 물러났으나 공수처는 지금까지도 아무런 연락이 없다”며 “공수처의 이런 수사 방기 탓인지 정치권에서는 특검 필요성까지 제기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공수처에 보낸 의견서에서 “이첩 보류 지시는 직권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국방부 장관은 민간 수사기관으로의 사건 이첩에 대한 최종 승인권자이므로 인사권자가 인사안 결재 후 이를 취소·변경할 수 있듯이 그 승인을 변경할 수 있다”며 “해병대 수사단장에게 수사 권한이 있다느니, 수사단장에게 민간 수사기관으로의 이첩 권한이 있다느니 하는 것은 법 규정의 몰이해로부터 비롯된 억지”라고 주장했다. 이 전 장관 측은 ‘이 장관이 보고서를 회수하라고 지시하기 전에 대통령실 내선번호로 전화를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이 전 장관 측은 “이 전 장관은 대통령으로부터 (사단장을 빼라는)지시를 받은 사실이 없다”며 “당시 장관이 군사보좌관과 논의하는 과정서 ‘(초급 간부들까지 처벌 대상에 포함한다면)초급 간부들이 힘들어할 것 같다’는 의견을 나눴고 법무관리관실의 법리 검토를 거쳐야 한다고 판단해 이첩 보류를 지시했다”고 강조했다. 수사 인원 범위 제한적 법 개정 안되면 도루묵 이어 “재검토한 결과 8월24일 직접적인 혐의가 있는 2명을 경찰에 이첩했고, 해병대수사단 조사기록 원안도 그대로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 전 장관 측은 민주당이 추진하는 ‘채 상병 특검’도 비판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공수처의 1차 수사 결과도 나오지 않은 상황인데 무엇이 미흡하고 국민적 의혹이 남아 해소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냐”며 “특검 논란을 잠재울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은 공수처의 신속한 수사와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공수처 수장이 석 달째 공석인 점은 제도 지속 가능성에 의문을 더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최종 후보자 지명을 두 달 가까이 미루고 있다. 앞서 국회 공수처장후보추천위원회는 지난 2월29일 판사 출신 오동운(사법연수원 27기) 변호사와 검사 출신 이명순(연수원 22기) 변호사를 후보로 추천했다. 김진욱 전 처장과 여운국 전 차장이 임기 만료로 퇴임해 공수처가 ‘대행 체제’에 들어간 건 지난 1월 말부터다. 김선규 수사1부장이 처장 대행을 맡고 있지만, 지난달 제출한 사직서가 수리되지 않아 임시로 대행직을 수행 중이다. 최근 인사위원회서 연임이 불발된 수사1부 소속 김송경 검사(사법연수원 40기) 임기도 만료됐다. 김 대행이 이끄는 수사1부는 공기광 검사만 남게 된다. 별도 조직개편 계획도 없어 수사 부서 1개가 사실상 사라질 위기다. 윤 대통령이 공수처장 후보자를 지명해도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해야 임명이 가능하다. 21대 국회 임기는 내달 29일까지다. 22대 국회가 개원해도 원구성에 시일이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신속한 공수처장 공백 해소를 위해선 이달 안으로 후보 지명을 마쳐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수장 공백 장기화 우려 법조계에서는 특검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공수처법에 따르면, 공수처는 이 전 장관에 대한 수사권은 있지만 기소 권한이 없다. 수사를 마친 뒤 검찰에 사건을 넘기고 검찰이 기소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 구조다. 공수처 출범 당시 수사·기소권을 모두 줄 경우 일각에선 ‘무소불위 공수처’가 될 거란 우려가 제기되면서 공수처는 법관, 검사, 고위 경찰공무원에 대해서만 제한적 기소권을 갖게 됐다. 문제는 검찰이 채 상병 사건 기소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검찰을 관할하는 법무부는 지난달 8일, 공수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 전 장관의 출국금지를 해제했다. 사건 처리의 중립성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특검을 통해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