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향기 물씬나는 골목길을 찾아서 ③경기 수원

'구석구석' 실핏줄처럼 흐르는 길 ‘행궁동 골목’

수원 행궁동은 수원 화성 일대의 장안동, 신풍동, 북수동, 남창동, 매향동, 남수동, 지수동 등 12개 법정동을 일컫는 이름이다.

220여년 전 화성이 축성될 당시부터 불과 수십년 전까지 행궁동은 수원에서 가장 번화한 곳이었지만, 1997년 수원화성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면서 엄격한 개발 규제로 시간이 멈춘 듯 쇠락했다.

이런 행궁동에 주민, 시민 단체, 예술가들이 뜻을 모아 벽화를 그리면서 골목이 생기를 되찾기 시작했다. 지금은 수원 화성만큼 많은 사람이 찾는 관광 명소로 떠올랐다. 행궁동 골목은 벽화마을과 공방거리, 수원통닭거리, 지동시장 등 특색에 따라 다양하다. 수원 화성을 구경하다가 골목으로 빠지면 볼거리, 먹거리, 살 것이 가득하다. 행궁동 골목은 수원 구석구석 실핏줄처럼 이어져 도심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수원 화성행궁은 행궁동 골목 여행의 출발점이다. 먼저 화성행궁에 들러보자. 화성행궁은 아버지 사도세자 무덤인 현륭원을 자주 찾던 정조가 머물던 임시 궁궐이다. 정조는 화성행궁 봉수당에서 어머니 혜경궁홍씨의 회갑연을 열어드렸다. 봉수당에는 정조와 혜경궁홍씨의 모습을 복원해놓았다. 행궁 가장 오른쪽에 다소 떨어진 건물이 화령전으로, 정조의 어진을 모셨다. 행궁에서 가장 호젓한 곳은 미로한정이다. 언덕에 자리해 화성행궁과 수원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행궁을 둘러보고 나와서 무예24기 시범 공연을 구경하자. 이 공연은 화성행궁의 정문인 신풍루 앞에서 월요일을 제외한 매일 오전 11시에 펼쳐진다. 무예24기는 정조가 직접 편찬에 관여한 <무예도보통지>에 실린 24가지 기술을 말한다. 칼, 창, 봉, 맨손 무술 등이 박진감 넘치게 펼쳐지는 공연에 관객은 환호성을 보낸다.

이제 본격적으로 골목 여행에 나설 차례다. 화성행궁광장에서 신풍루를 바라볼 때 오른쪽은 골목, 왼쪽은 공방거리가 이어진다. 골목 여행은 수원문화재단이 정리한 ‘왕의 골목’ 코스를 참고해서 둘러보는 것이 좋다. 총 3개 코스가 있으며, 추천하는 동선은 화성행궁-이야기가 있는 옛길-나혜석 생가터-수원전통문화관-행궁동 벽화마을(대안공간 눈)-수원화성박물관-화성행궁 순이다.


도심의 활기

수원 화성의 과거와 현재 모습을 전시하는 신풍초등학교 담벼락을 따라 걸으면 사거리를 만난다. 여기서 왼쪽으로 조금 가면 골목이 보인다. 담벼락에 환한 꽃 그림과 함께 ‘이야기가 있는 옛길’이라 적혔다. 휘파람을 불며 호젓한 골목으로 들어선다. 송악철학관 담벼락에 가득한 연꽃은 철학관 주인이 직접 그렸다고 한다.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제기차기와 말뚝박기 벽화가 있고, 바닥에는 사방치기 그림이 있다. 모처럼 옛 기억을 되살려 사방치기를 해보지만, 순서가 헷갈린다. 어린 시절 동네 골목은 놀이터였다. 술래잡기, 다방구, 구슬치기 등을 하며 골목에서 놀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야기가 있는 옛길이 끝나고 모퉁이를 몇 번 돌면, 꽃으로 장식된 나혜석 생가터를 만난다. 나혜석은 행궁동 부활의 상징적인 인물이다. 예술가들이 행궁동에 들어오면서 마을은 활기를 되찾았고, 이곳 출신인 우리나라 최초 여성 서양화가 나혜석이 재발견되어 행궁동에서 예술문화제가 열렸다.

나혜석의 재발견

나혜석 생가터와 가까운 수원전통문화관도 꼭 들러보자. 이곳에서는 정조와 어머니 혜경궁홍씨가 무엇을 먹었는지 알 수 있다. 고증을 통해 상차림을 복원했는데, 정조의 수라상은 10첩을 넘지 않았다. 참으로 검소한 군주가 아닐 수 없다. 정조가 행궁의 낙남헌에서 양로연을 열었을 때의 상차림, 혜경궁홍씨의 아침상과 반과상 등도 전시된다.

수원전통문화관에서 나와 장안사거리를 지나면 화려한 벽화로 치장한 건물이 보인다. 시민 단체 ‘대안공간 눈’으로, 행궁동 벽화마을이 탄생하는 데 큰 역할을 한 곳이다. 수원 출신 작가들의 전시장과 문화 공연 공간으로 이용된다. 현재 대안공간 눈이 운영하는 ‘예술공간 봄’에서 라켈 셈브리 추모전 ‘라켈을 기억하다-Big Gold Fish’가 열린다.

브라질 작가 라켈 셈브리는 지난 2010년 대안공간 눈에서 진행한 이웃과 공감하는 예술 프로젝트 ‘행궁동 사람들’에 참여, 금보여인숙 담벼락에 커다란 황금물고기를 그렸다. 이 그림은 행궁동 벽화의 대표작으로 널리 알려졌다. 라켈은 고향에서 아기를 낳다가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행궁동 골목 여행의 출발점, 화성행궁
골목 벽화가 만들어내는 동화 속 세상

벽화는 건물 뒤편 골목에 있다. 골목마다 수준 높은 작품이 많아, 동화 속 세상에 들어온 듯 따뜻하다. 몇몇 작품은 붉은 페인트로 덧칠이 된 상태다. 이곳 대표작 ‘금보여인숙 황금물고기’도 사라졌다. 최근에 발생한 일이라 아직 정확한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다고 한다. 행궁동 부활에 결정적 역할을 한 벽화가 사라지는 모습이 안타깝다.

벽화마을에서 수원천을 따라 내려오면 수원화성박물관에 닿는다. 정조 즉위 240주년을 기념해 12월4일까지 특별 기획전 ‘정조대왕과 수원화성’이 열린다. 정조 태 항아리, 정조 왕세손 책봉 교명과 보관함, 정조 황제 추존 옥보 등 처음 공개되는 유물도 많다. 특히 상어 가죽으로 만든 옥보 보관함이 이색적이다. 수원 화성 관련 유물은 <화성성역의궤>와 그 국역본, 프랑스 번역본을 함께 전시한다. 2층 화성 축성실과 화성 문화실에서는 화성 축성 과정과 도시의 발전, 축성에 참여한 인물, 8일간 이어진 정조의 행차 등을 쉽게 알 수 있다.

행궁동 골목 여행을 마치면 공방거리를 거쳐 먹거리 골목을 구경할 차례다. 화성행궁광장에서 왼쪽으로 이어진 길을 따르면 공방거리가 나온다. 거리에는 다양한 공방에서 만든 소박한 장식품을 파는 가게가 행인들의 발걸음을 붙잡는다. 1961년 신상옥 감독이 영화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를 촬영한 ‘한데우물’을 지나면 팔달문이다.

팔달문 저잣거리

수원 화성의 남문인 팔달문 주변은 온통 저잣거리다. 지동시장 주변은 수원천과 어우러져 야경이 아름답고, 먹거리로 순대타운의 순대곱창볶음이 유명하다. 치킨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수원통닭거리에 가보자. 고소한 기름 냄새가 골목에 진동한다. 저녁을 먹고 수원 화성을 걸어보는 것도 좋다. 연인들이 호젓한 달빛 쏟아지는 성곽을 걷는 모습이 로맨틱하다.

 

 

 

==== 여행 정보 =======================================

당일 여행 코스
화성행궁→이야기가 있는 옛길→나혜석 생가터→수원전통문화관→행궁동 벽화마을(대안공간 눈)→수원화성박물관→화성행궁→공방거리→팔달문→지동시장(수원통닭거리)

1박 2일 여행 코스
- 첫째 날: 화성행궁→이야기가 있는 옛길→나혜석 생가터→수원전통문화관→행궁동 벽화마을(대안공간 눈)→수원화성박물관→화성행궁→공방거리→팔달문→지동시장(수원통닭거리)
- 둘째 날: 수원 화성(팔달문-서장대-장안문-팔달문)

관련 웹사이트 주소
- 수원시청 www.suwon.go.kr
- 수원문화재단 www.swcf.or.kr
- 수원화성박물관 http://hsmuseum.suwon.go.kr

문의 전화
- 수원시청 관광과 031)228-2409
- 수원문화재단 031)290-3600
- 화성행궁관광안내소 031)228-4480
- 수원화성박물관 031)228-4242
- 팔달문관광안내소 031)228-2765

대중교통 정보
- 기차: 서울역-수원역, KTX·무궁화호 등 수시(05:20~22:50) 운행, 약 30분 소요.
부산역-수원역, KTX 하루 4회(10:15~20:20) 운행, 약 2시간50분 소요.
수원역 4번 출구 버스 정류장에서 11·13·35번 시내버스 승차, 화성행궁 정류장 하차, 약 10분 소요.
(문의 : 레츠코레일 1544-7788, www.letskorail.com)
- 버스: 광주-수원, 광주종합버스터미널에서 하루 25~34회(06:00~23:00) 운행, 약 3시간 소요.
수원버스터미널 앞 정류장에서 64·112번 시내버스 승차, 화성행궁 정류장 하차, 약 25분 소요.
(문의 : 광주종합버스터미널 062)360-8114 코버스 www.kobus.co.kr)


자가운전 정보
영동고속도로 동수원 IC→창룡대로→정조로→화성행궁광장→화성행궁 주차장

숙박 정보
- 수원호텔꼬모: 팔달구 효원로219번길, 031)233-8966, www.hotelcomo.co.kr (굿스테이)
- 호텔 테이트: 팔달구 권광로180번길, 031)222-6100, http://hoteltate.com (굿스테이)
- 테마모텔: 장안구 파장천로, 031)271-6927 (굿스테이)
- 공존공간게스트하우스: 팔달구 화서문로45번길, 070-4241-2116, http://vorovong.wixsite.com/cospace

식당 정보
- 원조엄마네: 순대곱창볶음, 팔달구 팔달문로(지동시장 내), 031)253-5210
- 장안통닭: 프라이드치킨·양념치킨, 팔달구 팔달문로3번길, 031)252-5190
- 진미통닭: 프라이드치킨·양념치킨, 팔달구 정조로800번길, 031)255-3401
- 본수원갈비: 갈비, 팔달구 중부대로223번길, 031)211-8434, www.bonsuwon.co.kr

주변 볼거리
수원 화성, 월화원, 나혜석거리, 수원박물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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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분오열’ 의료계 내분 내막

‘사분오열’ 의료계 내분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뚝심인가, 고집인가?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한 대통령의 뜻이 확고해도 너무 확고하다. 겉으로는 유연한 대처를 언급하면서 ‘2000명’이라는 수치는 굽히지 않을 기세다. 강 대 강 대치에 나섰던 의료계는 우왕좌왕하는 모양새다. 의료계 내부의 의견을 모으는 일도 쉽지 않아 보인다. <일요시사>와 인터뷰한 지방의대 A 교수는 의과대학 정원 확대를 밀어붙이는 윤석열정부의 강경 기조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정규군은 수뇌부만 처리하면 와해되기 쉽다. 하지만 현재 의료계는 게릴라 방식으로 대응 중이다. 주동자를 찾기 어렵고 실제 주동자도 없다. 전공의, 의대생 모두 조직의 통제하에 움직이는 게 아니라 본능에 따라 행동하고 있다. 윤정부 입장에서는 협상 대상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일괄 협상에 따른 일괄 타결은 어렵다고 본다.” 2월 이후 평행선만 실제 의료계는 대학의사협회(의협),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의대협) 등 여러 단체가 의대 정원 확대 정책에 개별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의대 정원 확대 반대’를 큰 틀로 하되 대응 방식이나 세부적인 요구사항은 각각 다른 상황이다. A 교수의 말대로 의료계는 현재 단일협의체가 없다. 협상테이블이 마련된다 해도 앞에 대표로 나설 사람이 없는 셈이다. 과거 의정갈등이 일어났을 때 주로 의협이 나서서 의료계 입장을 전달하고 대응을 이끌었다면 현재는 각개전투를 진행하고 있다. 이미 정부는 의협의 대표성에 대해 의문을 표한 상태다. 정부는 지난 2월 말 의협 대신 ‘대표성을 갖춘 협의체’를 구성해 의대 정원 확대 등에 대해 대화하자고 의료계에 요청했다. 의협이 전체 의사들의 대표성을 띠기 어렵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다. 당시 주수호 의협 비상대책위원회 언론홍보위원장은 “의협 회원엔 전공의·봉직의 등 모든 직역이 포함돼있고 모든 직역이 배출한 대의원 총회 의결을 거쳐 만들어진 조직이 비대위”라며 “정부가 의협의 대표성을 부정하는 이유는 내부 분열을 조장하기 위함”이라고 반발했다. 의협은 의료법에 근거해 모든 의사가 가입하는 법정 단체지만 개원의를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번 의정갈등 국면서 가장 선봉에 선 단체는 전공의가 모인 대전협이 꼽힌다. 전공의가 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해 병원을 떠나는 등 집단 강경 투쟁에 나서면서 의정갈등에 불이 붙었다. 의대생은 집단 휴학으로 힘을 실었다. 유급 마지노선에 이른 대학들이 수업을 재개했지만 의대생은 돌아올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집단사직에 나선 전공의가 여전히 버티고 있는 상황서 의대생의 복귀 가능성 역시 낮다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대통령실 1년 유예안 일축하면서도 ‘2000명 정원’ 논의 가능성 제시해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기준 학칙에 따른 형식적인 신청 요건을 지킨 의대생의 휴학 신청은 누적 1만242명으로 전체 의대 재학생 대비 54.5% 규모에 이른다. 의대생들의 집단 휴학과 수업 거부는 지난 2월부터 시작됐다. 대학 사이에선 이달 중순이 지나면 여름방학까지 총동원해도 유급을 막을 수 없다. 의대는 특정 수업서 3분의 1 또는 4분의 1 이상을 결석하면 낙제(F) 처리되고 F가 하나라도 나올 경우 유급이 되도록 학칙을 세워둔 곳이 많다. 전공의의 집단사직으로 병원 업무가 마비되고 일부 의료진에 업무가 과중되는 이른바 ‘의료대란’이 벌어졌다. 여기에 의대생의 집단 휴학은 의사 수급 부족 현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의료현장에 구멍이 생기면서 의사를 찾지 못해 환자가 사망하는 ‘응급실 뺑뺑이’ 사건도 일어났다. 문제는 정부의 태도다. 지난 2월6일 2025학년도 의대 입학 정원을 5058명으로 현행보다 2000명 늘리겠다고 발표한 이후부터 현재까지 요지부동 상태다. 정부는 2035년까지 1만명의 의사 인력을 확충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2006년 이후 19년 동안 동결됐던 의대 정원 확대를 예고한 것이다. 당시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는 발표 당시 의료계와 소통한 결과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지난해 10월26일 ‘의대정원 확대 추진계획’을 발표한 이후 40개 대학으로부터 증원 수요와 교육역량에 대한 자료를 받았고 현장점검을 포함한 검증을 마쳤다고 밝혔다. 의료계를 비롯해 사회 각계각층과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했다는 점도 언급했다. 특히 정부는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강조했다. 언론사 여론조사 등에서 의대 정원을 늘리는 문제에 대해 국민 10명 가운데 8명 이상이 ‘필요하다’고 응답한 것을 의미있게 언급했다. “흔들림 없는 의료개혁을 완수하겠다”는 정부의 입장에 국민의 응원을 지지대로 삼은 것이다. 요구 다른 의사단체 윤석열 대통령의 의지는 더 강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일 ‘국민께 드리는 말씀’ 대국민담화서 “역대 정부들이 9번 싸워 9번 모두 졌고 의사들의 직역 카르텔은 더욱 공고해졌다”며 “이제는 결코 그런 실패를 반복할 여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2000명이라는 숫자는 정부가 꼼꼼하게 계산해 산출한 최소한의 증원 규모”라며 “이를 결정하기까지 의사단체를 비롯한 의료계와 충분하고 광범위한 논의를 거쳤다”고 설명했다. 연구 결과를 들어 그 배경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윤 대통령은 “정부는 국책연구소 등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연구된 의사 인력 수급 체계를 검토했다. 수요 측면서 저출산 고령화와 같은 인구구조의 변화, 만성질환의 증가와 같은 질병구조의 변화, 소득 증가에 따른 의료수요 변화까지 반영했다”며 “어떤 방법론이더라도 지금부터 10년 후인 2035년에는 자연 증감분을 고려하고도 최소 1만명 이상의 의사가 부족하다는 결론은 동일하다”고 말했다. 의대 정원 확대 시기에 대해서도 정부는 가차없는 태도를 보인다. 대통령실은 지난 8일, 의협이 제안한 의대 증원 1년 유예안에 대해 “정부는 그간 검토한 바 없고 앞으로도 검토할 계획도 없다”고 밝혔다. 앞서 박민수 복지부 차관이 “내부 검토는 하겠고 현재로서 수용 여부를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내놓은 답변서 더 강경해진 입장이다. 대통령실은 1년 유예안을 받을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면서도 “만약 의료계서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근거, 그리고 통일된 의견으로 제시한다면 논의할 가능성은 열어놓고 있다”며 “열린 마음으로 임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팔짱 낀 정부 공은 의료계로 일각에서는 정부는 초지일관 원론적인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현재로선 ‘2000명’이 정부와 의료계 간 대화의 장벽이 되고 있다. 정부는 2000명이라는 수치를 꿋꿋하게 고수하고 의료계는 2000명 백지화가 대화의 선결 조건이라는 뜻을 굽히지 않는 중이다. 정부든 의료계든 어느 한쪽이라도 구부려야 맞닿는 법인데 평행선만 그리는 모양새다. 이 와중에 의료계는 내분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정부가 의료계에 요구하는 ‘통일된 의견’을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새 회장을 선출한 의협이 그 중심에 있는 상황이다. ‘강성’으로 꼽히는 임현택 의협 회장 당선인과 의협 비대위가 엇박자를 내고 있고 대전협의 박단 비대위원장도 의협 비대위와 갈등 조짐을 보이는 중이다. 현재 의협은 비대위원장과 차기 회장이 공존하는 상태다. 의협은 지난달 26일, 임 당선인을 차기 회장으로 선출했다. 임 당선인은 결선투표서 65%의 지지를 얻어 당선됐고 임기는 다음 달 1일부터다. 임 당선인의 등장으로 의협의 대정부 투쟁 수위가 올라갈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됐다. 임 당선인은 의대 정원 증원 철회를 비롯해 대통령의 사과와 책임자 파면을 요구하는 등 다른 의사단체에 비해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마찰음이 나온 건 ‘단일대오’를 구성하는 과정에서였다. 의협 비대위는 지난 7일, 기자회견서 전의교협, 대전협, 의대협 등과 함께 합동 기자회견을 이번주 안에 열겠다고 예고했다. 하지만 임 당선인이 이런 움직임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의협 비대위, 차기 회장·전공의 회장 갈등 삐걱거리는 단일대오에 대화 공전 가능성도 의협 회장직 인수위원회는 의협 비대위와 대의원회에 공문을 보내 임 당선인이 김택우 현 비대위원장 대신 의협 비대위원장직을 수행할 수 있도록 협조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는 ‘한 지붕 두 가족’ 상황의 의협 창구를 단일화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대전협 박 위원장도 의협 비대위와 불협화음을 내고 있다. 박 위원장은 자신의 SNS에 “의협 비대위 김택우 위원장, 전의교협 김창수 회장과 지속적으로 소통하고 있지만 합동 브리핑 진행에 합의한 적은 없다”고 적었다. 합동 기자회견은 일단 취소된 상태다. 박 위원장과 임 당선인의 갈등도 관심사다. 임 당선인은 지난 4일, 윤 대통령과 박 위원장의 비공개 만남에 불만을 드러냈다. 의협 비대위는 윤 대통령과 박 위원장의 만남을 ‘의미 있다’고 평가했지만 임 당선인은 SNS에 ‘내부의 적’을 운운하며 박 위원장을 강도 높게 비난하는 듯한 글을 남겼다. 박 위원장은 이 같은 보도 내용을 게시글에 공유하며 ‘유감’이라고 적었다. 전의교협은 의대 비대위에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다. 전의교협은 전국 40개 의과대학 교수협의회로 구성된 단체다. 김창수 전의교협 회장이 의협 비대위에 합류하면서 의료계 단일대오 구성이 빨라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통일된 의견을 내놓을 단일협의체 구성 속도에 따라 의정갈등의 타결 가능성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의협 비대위를 중심으로 단일대오를 구성하려던 시도가 임 당선인과 박 위원장의 행보로 삐걱거리면서 의료계 상황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처지가 됐다. 여기에 협상테이블이 마련돼 정부와 의료계의 대화가 이뤄진다 해도 합의까지 가는 데는 하 세월이 걸릴 것이라는 의견이 만만찮다. 입장차가 그만큼 첨예하다는 뜻이다. 타결까지 첩첩산중 일각에서는 정부와 의료계 모두 환자에 대한 배려는 뒷전에 두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월 이후 두 달 넘게 갈등이 계속되면서 환자들은 불편을 겪고 있고 일부 의료진은 업무 과중으로 그로기 상태에 빠졌다. 전공의가 떠난 병원은 매일 막대한 손해를 입고 있다. 정부와 의료계의 10번째 갈등이 어떤 결론으로 끝나느냐에 따라 의료계 지각변동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