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남구 용당동에 위치한 한국해양수산연수원(이하 연수원)에 암흑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다. 2010년 ‘동삼동 시대’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갖가지 의혹들이 하나 둘씩 봇물을 이루고 있다. 이중 수배전반 설비업체 변경 문제가 대표적인 의혹이다. 지난 2007년 8월 13일 연수원은 A사를 관급자재 업체로 선정한 이후 같은 해 9월 4일 B사로 관급자재 업체를 변경한 것이 뒤늦게 밝혀졌던 것. 그런데 변경 경위가 문제다. 연수원은 A사가 선정된 지 불과 10여일 만에 ‘정전사고’ 발생을 이유로 관급자재 업체 변경을 요구했다. 게다가 관급자재 업체 선정 변경 과정에서 법률 위반 의혹도 제기됐다. 이 때문에 ‘이들 간에 커넥션이 작용한 것이 아니냐’는 세간의 추측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일부에서는 A의원이 지원했다는 얘기도 있지만, 이를 규명할 방법은 없다는 게 일각의 반응이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이유에서 무슨 목적으로 ‘수배전반 설비 업체’를 변경한 것일까. <일요시사>가 단독으로 입수한 자료를 토대로 그 경위를 살펴봤다.
해양수산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한국해양수산연수원(이하 연수원) 교사 이전 과정에서 수배전반 시설 관급자재 업체로 A사가 선정된 것은 지난 2007년 8월 13일. 정부 지원 아래 조달청·연수원·설계사무소가 조달청에 참석한 가운데 연수원이 수배전반 업체로 A사를 선정했다.
정전사고 A사와 무관
연수원 “과실 아니다” 시인
연수원 신축교사는 6만6천6백54㎡ 규모로 총 공사비 4백69억원이 사용된다. 이 중 수배전반 사업비는 총 7억여원. 연수원 신축교사 문제가 하나 둘씩 해결되면서 ‘동삼동 시대’를 맞이하기 위한 모든 준비 작업이 끝난 상태였다.
그러나 A사로 선정된 지 불과 10일 만인 지난 2007년 8월22일~25일에 걸쳐 예상 밖의 ‘변압기 소손사고’가 발생했다. 동력부분 전체가 정전이 되면서 교육생을 위한 실습 장비, 보일러, 에어컨 등이 가동되지 않았던 것.
실제로 연수원은 복구작업을 위해 3일간 밤을 지새웠다. 자체 기술력으로 복구가 어려워, 장비를 구하는데 애를 먹었던 것. 이로 인해 ‘암흑세계’가 된 기숙사에서 교육생들이 한동안 생활했어야 했다는 게 연수원 측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를 계기로 연수원 관계자들은 정전사고뿐만 아니라 부산지역 경제 활성화와 신속한 A/S를 위해 부산지역 업체로 변경해줄 것을 조달청에 요구한 것으로 확인됐다. 결국 A사에서 B사로 수배전반 관급자재 업체가 변경됐던 것.
그러나 일각에선 “정전 사고는 A사의 과실이 아니다”라는 지적이다. 더욱이 정전사고로 인해 선정된 업체를 변경하는 것은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는다는 반응이다.
이를 입증하듯 연수원 한 관계자는 “정전사고 당시 A사는 수배전반에 전혀 참여하지 않았다”며 “A사의 과실이 아니다”라고 시인했다.
문제는 지난 2007년 8월 30일 관급자재 업체를 A사에서 부산지역 업체인 B사로 변경하는 과정에서도 갖가지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우선 관급자재 업체를 선정할 당시 조달청에서 우수업체 12곳을 선정해 연수원에 통보했다. 여기에는 A사, B사가 포함됐던 것.
A사, 법률 위반 제기
조달청·수산원 주장 엇갈려
연수원 관계자는 “조달청이 우수업체 12곳을 선정한 이후 K사, A사, B사 등에서 납품외형, 납품실적 등에 관련된 팜플렛을 보고 선정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A사와 B사의 기술 및 경험 간극이 문제를 낳고 있다. A사는 매출액(2006년 기준)이 1백96억원으로 신기술인증·우수제품마크인증 등 갖가지 특허를 보유하고 있는 회사다. 반면 B사는 매출액(2006년 기준)이 9억8천만원에 불과하며, 조달청 우수·우수제품마크인증을 비롯해 특허 2개만을 보유하고 있을 뿐이다.
비록 연수원 측 말대로 A사와 관계없이 ‘정전사고’로 인해 업체를 변경한 것도 문제지만, 총 사업비 7억원 수배전반 사업을 맡을 업체로 매출액 9억8천만원인 B사가 선정됐다는 것은 더 문제가 되고 있다. 또한 B사는 관급자재 심의회에서 탈락된 업체인데다 조달청에서 제시한 우수업체 12곳 중 유일한 부산 지역 업체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일각의 끊임없는 ‘특혜의혹’의 눈초리를 받고 있다. 게다가 A사가 정전사고와는 무관하다는 점에서 선정업체를 무리하게 바꾼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게 일각의 중론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연수원 관계자는 “지역 업체를 배려하는 과정에서 너무 서투르게 일을 진행한 부분이 있다”면서도 “실무자 입장에서 사고가 났을 때 ‘재검토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과정에서 지역 업체를 선정하는 것이 좋다고 판단해 조달청에 수배전반 업체를 변경해줄 것을 요구했다. 그 이후 B사로 변경했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해명에도 불구하고 연수원의 업체 변경은 또 다른 의혹을 부추기고 있다. B사로 관급자재 업체를 변경하는 과정에서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 시행령 21조를 위반했다는 것.
당초 관급자재 업체로 A사가 선정됐을 때 A사는 업체변경 과정에서 석연치 않은 점을 발견하고 연수원에 이의를 제기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A사는 ‘재정경제부령이 정하여 고시하는 금액 2억1천만원 이상의 경우 지역제한을 할 수 없도록 되어 있는 만큼 업체를 변경할 수 없다’고 제기했다. 또 ‘관급자재 업체로 이미 합의한 이상 행정행위에 특별한 하자가 없는 한 이미 결정된 사항을 취소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즉 B사로 관급자재 업체를 일방적으로 변경하는 것은 법률 시행령 21조를 명백히 위반했다는 것이 A사 주장의 주된 골자다.
이에 대해 연수원 한 관계자는 “관급자재 선정 심의를 통해 수배전반업체로 A사가 선정됐지만, 조달청에서 연수원에만 통보를 하고 선정업체에는 통보를 하지 않았다”며 “법률 위반을 했다고 볼 수 없다”고 해명했다.
이어 그는 “정전사고로 인해 과거 업체를 변경한 사례가 있다”고 덧붙였고, 지역 업체 변경 사례도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지역 업체를 배려한 사례는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일요시사> 취재 결과 연수원 측 주장과 달리 조달청은 관급자재 업체 선정 다음날인 지난 2007년 8월14일 관급자재 선정 결과를 A사에 통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심지어 조달청에서는 “선정 업체를 바꾸는 사례는 극히 이례적인 경우”라고 설명했다.
조달청 법률담당 한 관계자는 “A사가 관급자재 업체로 선정된 이후 기술적 문제 등에 타당한 결격사유가 있다면 문제가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에는 연수원의 잘못”이라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정부가 지원하고 있는 사업에서 법률 시행령을 위반했다는 점은 사회 전반에 걸쳐, 적잖은 파장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커넥션 의혹 일파만파
연수원 “전혀 없다” 일축
그렇다면 법률위반까지 하면서 무리하게 수배전반 업체를 변경한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연수원에서는 “정전사고가 원인이었고,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한 것이다”라고 일관된 답변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또 다른 제3의 힘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반응이다. 심지어 ‘특정기업과의 거래가 있다’, ‘A의원이 지원했다’는 등 갖가지 추측과 억측들이 난무하고 있어 이같은 의혹을 더더욱 부추기고 있다.
실제 일각에서는 ‘커넥션’이 작용했을 수도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연수원이 무리하게 법률위반을 하면서까지 독단적으로 수배전반 업체를 변경했을 가능성은 낮다는 이유에서다. 이런 까닭에 연수원이 특정업체로부터 로비를 받고, 이를 무마해주는 조건으로 A의원에게 로비를 했을 수도 있다는 얘기가 회자되고 있다.
연수원 한 관계자는 ‘커넥션’에 대해 “A의원은 한국해양수산연수원 신축교사 문제에 전혀 관여한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비서관·보좌관조차 만나 보지 못했다”며 “나 역시 특정업체로부터 금품을 주고받은 일은 절대 없다”고 밝혀, 항간에 떠도는 ‘커넥션’에 대한 의혹을 일축했다.
한편, <일요시사>가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연수원은 신축교사 이전 과정 중 공기조화기 분야에서도 이와 비슷한 사례로 업체를 변경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로 인해 전에 없는 수배전반 업체 변경뿐 아니라 공기조화기 분야에서도 또 다른 의혹이 수면 위로 급부상할 태세다. 이 때문에 이를 둘러싼 의혹들은 갈수록 확산될지 여부에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