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초대석> '본지 새 연재' <삼국비사> 작가 황천우

“우리 시원은 중원에 있다”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본지를 통해 <스러진 달>을 연재했던 황천우 작가가 새로운 역사소설을 들고 독자들을 찾아간다. 이번에는 시대를 한참 거슬러 올라가 삼국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남다른 시각으로 대한민국 역사를 재조명해왔던 황 작가가 이번엔 어떤 재미난 이야기보따리를 들고 올지 흥미롭다.

<삼국비사>는 여타 역사 소설들과는 차별화된다. 삼국시대를 바탕으로 한 기존 소설들이 신라 중심으로 기술됐다면, 이 소설은 삼국의 역학관계에 주목했다. 여기에 잔인했지만 중국과의 대결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연개소문, 전쟁을 하나의 놀이로 여겼던 의자왕, 당나라의 힘에 의지했던 김유신과 김춘추라는 확실한 캐릭터 설정을 통해 작품에 맛을 더했다. 그 중 고구려의 기상과 웅비에 큰 점수를 줬다는 황천우 작가. 그는 분열된 삼국시대를 통해 지금의 북한과 남한, 더 나아가 호남, 영남의 갈등을 종식할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다음은 황 작가와의 일문일답.

- <삼국비사>를 쓴 계기는?
▲하루는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전화가 왔었다. 그때는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이었다. 당시 난 고구려, 백제, 신라로 갈라졌던 삼국시대가 북한, 호남, 영남으로 분열된 지금의 상황과 뭐가 다르냐고 물었다. 그리고 대통령이 되면 민족 대통합을 이뤄달라고 당부했다. 이후 이 내용을 책으로 써야 되겠다고 생각하게 됐다. 과연 우리 민족이 통합을 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이야기로 풀어내고 싶었다.

- 삼국시대는 700년간 지속된 오랜 역사다. 그중 어떤 시대를 풀어냈나?
▲삼국시대 말기다. 소설은 641년부터 시작된다. 그해는 역사적으로 큰 의미가 있었다. 백제 의자왕이 보위에 올랐고 고구려 연개소문이 영류왕을 찢어 죽이고 보장왕을 앉혀 스스로 대막리지(大莫離支)가 된 해다. 또한 신라에서는 김춘추와 김유신이 결탁해 삼국 쟁패의 막바지로 치닫던 시기였다.

- 기존 신라 중심의 책들과는 다르다고 들었다.
▲<삼국사기>의 저자 김부식은 신라에 편중해 글을 썼다. 정작 삼국시대에 두드러진 역할을 한 사람은 연개소문임에도 말이다. 연개소문은 백제, 신라를 치지 않으려고 했다. 대신 당나라를 집중 공략해 민족 통합을 이루려고 했던 인물이다.

간혹 박 대통령을 신라의 선덕여왕과 비교하는데 난 그건 욕이라고 생각한다. 선덕여왕은 고구려, 백제가 공격해오면 조공을 들고 당 태종을 찾아갔던 여왕이다. 김춘추 또한 마찬가지로 당 태종에게 의존했다. 더군다나 백제 땅을 신라가 가지는 대신 당이 고구려를 칠 때 도와준다는 확약까지 했다.

- 고구려에도 많은 인물이 있었는데 왜 연개소문인가?
▲연개소문은 우리 민족의 시원이 중원에서 시작했다고 봤다. 즉 단군 조선이 시작된 곳이 몽골 쪽이었고 지금의 중국 민족에게 쫓겨서 여기 한반도까지 들어왔다고 봤던 것이다. 그 부분을 연개소문은 익히 알고 있었다. 민족의 시원에 대한 얘기는 징심록에도 나와 있다. 이는 신라의 박재상이 보관하고 있던 책으로 조선시대에 이르러 매월당 김시습이 보증을 했던 오래된 고 서적이다. 기록에 징심록은 원래 18권이나 아쉽게도 조선 초에 불 질러져 지금은 한 권만 남아있는 상태다. 결국 이를 통해 우리 시원이 어딘지 알고 있던 연개소문은 한반도에 있기보다는 북벌을 꾀하게 된다.


- 역사소설을 집필하는 작가로서 신라의 통일을 평해 준다면?
▲우리의 역사적 의미에서는 김유신, 김춘추는 죄인이다. 김부식이 통일신라시대라고 했는데 이는 잘못됐다. 고구려를 내줬는데 어떻게 삼국통일인가. 고구려 유민들이 세운 발해와 신라, 두 나라의 역사를 우리 역사로 기록했었어야 됐다. 근데 발해사를 빼버렸지 않나. 그때 발해의 역사를 뺀 것은 큰 실책이다.

‘스러진 달’이어 삼국시대 소설 선봬
고구려 중심 기술…“통합의 길 제시”

- 결국 고구려가 통일했어야 됐다고 보는 입장인가?
▲당연하다. 역사적으로 보면 신라는 통일을 한 게 아니다. 신라의 승리는 조공에 대한 대가였다.

- 내용은 역사를 그대로 따라가나?
▲가장 기본은 <삼국사기>다. 거기에 픽션을 접목했다. <삼국사기>의 역사를 인정한 대신 중간에 끊어진 부분은 이치에 맞게 내가 채워 넣었다. 책에 내가 만든 사자성어도 넣었다. 이를테면 ‘양필굴음’이 있는데 남자는 반드시 여자에게 굴복하게 되어 있다는 뜻이다. 백제 의자왕이 복용한 마약도 찾아냈다.

- 집필 기간은 얼마?
▲2년6개월 정도 걸렸다.

- 집필 포인트는?
▲우리 민족의 대통합을 위해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이다. 우리끼리 아웅다웅할 게 아니라 넓게 봐야 한다.

- 작가가 생각하는 이 책의 장점은?
▲흥미와 교육이다. 그러나 백제 의자왕의 엽색 행각을 신랄하게 표현해냈기 때문에 미성년자가 보면 안 될 것이다. 또한 캐릭터가 뚜렷하다는 점이다. 연개소문은 정말 잔인했다. 영류왕을 갈가리 찢어 시궁창에 버릴 정도였다. 그리고 백제 의자왕은 엽색 행각이 심했다. 김유신과 김춘추는 잔머리 굴리는 인물로 나온다. 이는 책 속에서 명확히 구분된다.

- 소설을 읽게 될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해석은 순전히 독자들 몫이다. 다만 재미있게 읽으면서 우리 민족이 가야할 방향을 새겨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chm@ilyosisa.co.kr>

 


[황천우는?]

▲1959년 서울 노원 출생
▲대광고등학교 졸업
▲서울시립대 영문학과 졸업
▲정당사무처 공채 (13년 근무)
▲서울과학기술대 문예창작과 입학 및 중퇴

[주요작품]

▲단편소설 <해빙> <파괴의 역설>
▲장편소설 <삼국비사(상)(중)(하)> <여제 정희왕후> <수락잔조> <허균, 서른셋의 반란> <스러진 달> 등 다수
▲희곡 <정희왕후>
▲역사에세이 <수락산에서 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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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채 상병 사건’ 사단장 수상한 메시지 내막

[단독] ‘채 상병 사건’ 사단장 수상한 메시지 내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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