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둔형 외톨이’ 실태 충격보고 ②사회·경제적 손실 계산서

집안에만 틀어박혀 사는 히키코모리, 즉 ‘은둔형 외톨이’로 인한 사회·경제적 손실은 엄청나다. 인터넷중독, 실업, 범죄 등 부작용이나 병폐로 이어져 엄청난 비용을 유발한다. 개인뿐만 아니라 가족, 나아가 국가적으로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다시 말해 은둔형 외톨이 문제가 국가발전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를 비용으로 환산하면 어림잡아 수십조원을 훌쩍 넘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산하고 있다.

잠근 방문 열어야 나라 살림 열린다

방에만 콕 박혀있는 ‘은둔형 외톨이’가 늘수록 사회·경제적 비용도 증가한다. 인터넷중독, 실업, 범죄 등 엄청난 비용을 유발하는 부작용과 직결되는 탓이다. 전문가들은 이들의 행동이 사회적 손실은 물론 경제적으로도 생산성 저하를 가중시킨다고 지적한다.
2002년 8월 국내 최초로 은둔형 외톨이에 대한 연구 결과를 발표한 삼성사회정신건강연구소 측은 “점점 사회문제로 부각되고 있는 은둔형 외톨이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일은 적지만 가정붕괴와 학업 포기, 취업 의욕 상실 등으로 이어져 심각한 사회·경제적 손실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은둔형 외톨이로 인한 사회·경제적 손실을 계산한 전체적인 통계나 보고서는 없다. 그 수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이유에서다. 다만 은둔형 외톨이를 유발할 수 있는 일부 경로를 통해 짐작만 가능하다.
은둔형 외톨이의 가장 큰 요인은 ‘인터넷 중독’이다. 인터넷 중독은 개인의 사회 부적응과 심리적 불안 등을 부추겨 결국 사회적으로 소외시킨다. 그중에서도 한 번 빠지면 스스로 헤어 나오기 어려운 ‘게임 중독’은 더욱 그렇다.
청소년위원회(현 보건복지가족부 아동청소년정책실) 관계자는 “인터넷 중독 사례 중 게임 중독이 가장 심각하다”며 “게임중독 증상을 그대로 방치하면 은둔형 외톨이 증세로 악화될 위험성이 크다”고 말했다.
한국정보문화진흥원이 지난해 조사한 게임 중독 실태에 따르면 청소년의 14.4%, 성인의 6.5%가 온라인 게임 등으로 인해 중독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이미 수백만명이 게임 중독이거나 중독 가능성에 노출돼 있다는 셈이다. 이들이 은둔형 외톨이가 될 위험에 있다는 점에서 심각성을 더한다.
일부 전문기관에선 게임중독자 수가 이같은 통계를 훨씬 상회할 것으로 추정한다. 많게는 30%까지 게임 중독이란 보고도 있다. 이를 사회·경제적 손실과 비용으로 환산하면 최소한 수조원에서 수십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법무부, 보건복지가족부, 교육과학기술부 등 정부부처가 인터넷중독 치료 등 위기청소년 대처에 투입하는 비용도 한해 약 1천2백억원이 넘는다.
은둔형 외톨이는 국가 실업률과도 무관치 않다. 은둔형 외톨이는 거의 1백%가 실직자 신세다. 취업활동은 물론 학교에도 다니지 않는다.

인터넷중독, 실업, 범죄 등 부작용 직결…비용만 수십조원
1백만명 이상 위험 경고 “국가적 실업 손실 한해 20조원”

2005년 청소년위원회가 발표한 ‘사회부적응 청소년 지원방안’에서 정의한 은둔형 외톨이는 정신병적 장애 또는 중증 이상의 정신지체가 없이 최소한 3개월 이상 집안에 머물러 있고, 진학·취업 등의 사회 참여활동을 할 수 없거나 하지 않고 있는 사람을 말한다. 당시 청소년위원회가 ‘은둔형 외톨이 위험군’고교생들을 조사한 결과 그 수가 4만3천여명(2.3%)에 달했고, 이 가운데 학업까지 포기한 고위험군은 5천6백여명(0.3%)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른바 ‘니트’(NEET·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 상태다. 니트족은 직장도, 학교도 다니지 않으면서 가사일을 포함해 일할 의지도 없는 15∼34세 사이의 ‘청년 무업자’를 뜻하는 신조어다. 일자리를 구할 의욕이 아예 없기 때문에 일할 의지는 있지만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실업자나 구직자와는 다른 개념이다.
청소년위원회 측은 “은둔형 외톨이 고위험군들은 취업 의욕도 없고 일도 하지 않는 니트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며 “이는 인적자원 손실로 연결돼 국가 실업률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진단했었다.
최근 통계청의 고용동향에 따르면 지난 9월 기준 비경제활동인구는 총 1천5백23만6천명. 이중 청년 무업자는 무려 1백만명에 육박한다.
최근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은 2003∼2007년 청년 무업자의 생활 실태를 조사한 결과 지난해 말 15∼34세 전체 인구 1천4백75만9천1백93명 가운데 청년 무업자가 95만1천8백51명(6.9%)에 달한다고 밝혔다. 개발원 측은 청년 무업자가 2003년 83만5천1백51명에서 매년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청년 무업자는 고스란히 국가 경제에 큰 손실로 이어진다. 이는 국내총생산(GDP)을 통해 계산할 수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이 2003년 9월 GDP 대비 15∼29세의 청년실업에 따른 경제적 비용을 산출한 결과 전국의 실업으로 인한 총 비용은 2000년을 기준으로 약 20조5천억원이었다. 산업구조 변화 등 비경기적 요인에 의한 실업 비용은 16조6천억원, 경기적 요인에 의한 실업비용은 4조원가량으로 조사됐다. 서울지역 청년실업의 경우 서울지역 총생산(GRDP)의 2.0%에 해당하는 1조9천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정부가 실업 문제에 매년 쏟아 붓는 돈도 어마어마하다. 정부는 2004년 2월 13개 부처 합동으로 ‘일자리 창출 종합대책’을 발표, 재정을 부담하는 다양한 일자리 창출에 나섰다. 여기에 2003년∼2007년 5년간 총 12조원이 투입됐다.
시민단체 관계자는 “정부는 실업 해소를 위해 일자리 창출 등에 매년 수조원씩 퍼붓고 있지만, 실업률은 제자리에서 심지어 갈수록 악화되는 실정”이라며 “실업 문제를 해결하려면 정부는 보다 구체적이고 전방위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은둔형 외톨이는 범죄 등 사회불안 요소로 번질 위험 또한 크다. 외톨이는 ‘은둔형’(기본적인 사회활동조차 거부하고 집안에만 틀어박혀 지내는 사람)과 ‘활동형’(기본적인 사회활동은 하는 사람) 등 두 가지 유형으로 분류된다.
삼성사회정신건강연구소가 2000년 1월∼2002년 5월 한 정신과의원에서 치료받은 외래환자 2천4백9명중 외톨이로 진단받은 85명을 조사한 결과 31명(36%)이 ‘은둔형 외톨이’, 나머지 54명(64%)은 ‘활동형 외톨이’로 나타났다.
특히 외톨이 증상이 심할 경우 ‘울분형’으로 악화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전했다. ‘방콕’기간이 장기화되면 피해의식이 쌓여 폭력·공격적 성향이 강해진다는 것. 울분형 외톨이는 겉으론 조용하나 내적으로 분노감과 적개심을 가지고 있다 한순간 외부로 표출, 결국 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미국 역사상 최악의 캠퍼스 총기 살인으로 꼽히는 ‘조승희 사건’이 대표적이다. 재미교포 1.5세인 조승희씨는 2007년 4월 버지니아 공대 27명의 학생과 5명의 교직원 등 32명에게 총을 난사해 살해한 후 스스로 자살해 미국 사회를 충격에 빠뜨렸다.
조씨는 학교에서 철저한 외톨이였다. 그의 가족들은 “조씨가 내성적인 성격과 특이한 발음 때문에 중학교와 고교시절 학생들 사이에서 따돌림과 조롱 등 ‘왕따’를 당했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최근 잇따라 일어난 강력 사건의 범인 중 일부가 은둔형 외톨이 생활을 했다는 정황도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지난 8월 김모씨는 서울 홍제동에서 길가던 40대 남성을 아무런 이유 없이 흉기로 찔러 숨지게 했다. 경찰은 김씨가 정신병원에서 퇴원한 뒤 5년 동안 집안에 틀어박혀 지냈다고 밝혔다. 앞서 4월과 7월 강원도 양구에서 운동을 하던 여고생과 강원도 동해시청 민원실 공무원이 각각 ‘묻지마 칼부림’으로 숨지기도 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이처럼 얼굴도 모르는 제3자가 주된 범행 대상자가 되는 ‘묻지마 살인’은 2006년 전체 살인 사건 중 21.6%를 차지했다. 반면 같은 기간 친족 간 살인은 18.6%, 보복성 살인은 9.0%, 가정불화 살인은 7.4% 등이었다.
경찰 관계자는 “묻지마 살인 범행을 저지른 사람들은 대부분 사회로부터 고립돼 상대적 박탈감이나 소외감 등을 불특정 다수에 분출하는 형태를 띠고 있다”며 “은둔형 외톨이를 방치할 경우 제2, 제3의 조승희가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김양래 휴 신경정신과 김양래 원장은 “최근 일어난 ‘묻지마 살인’과 같은 강력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 중 일부가 은둔형 외톨이 생활을 해왔다는 보도를 통해 이들에 대해 선입견이 걷잡을 수 없이 나빠지고 있는 것이 큰 문제이고, 오히려 이들은 이미 사회적으로 또는 가족이나 친구, 주위에서 상처를 받은 사람들”이라며 “이들의 경우 자신의 스트레스나 불만 등을 해소할 방법이 없어 언제 그 불만들이 밖으로 표출될지 모르지만, 이들을 모두 마치 예비 범죄인들처럼 몰고 가는 것은 오히려 더 심각한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은둔형 외톨이가 증가하는 주된 요인은 역시 경제난이다. IMF 재연 조짐마저 보일 정도로 악화일로인 국내 경제 상황에서 외톨이들이 부각되는 이유다. 반대로 경제가 어렵다고 마냥 방치할 수만은 없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막지 못하는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 특히 사회·경제적 손실과 사회안전망 차원에서라도 정부의 적극적인 대책 마련이 절실한 시점이다.

 
일본삼성 ‘은둔형 외톨이’지원사업
“방문 박차고 나오세요”
삼성은 일본에서 은둔형 외톨이들의 사회 진출을 지원하는 사회공헌 활동을 펼치고 있다.
삼성전자에 따르면 일본삼성은 지난 5월 일본보조견협회와 제휴해 기업으로는 세계 최초로 은둔형 외톨이가 유기견 훈련을 통해 사회에 진출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는 사회공헌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 프로젝트는 1990년대부터 급증해 1백60만여명에 달하는 일본 사회의 은둔형 외톨이가 유기견을 직접 사육하고 훈련해 사회와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키우고 사회 진출 기회를 제공하는 내용이다.
일본삼성은 이번 제휴에 따라 요코하마시의 일본보조견협회 시설 내에 약 60평 규모의 ‘아스나로학교’를 건축해 기증했고, 학생 3명과 청각도우미견 후보 3마리의 입학식도 개최했다. 삼성은 은둔형 외톨이 지원 프로젝트를 2년 전부터 추진해 왔다. 앞으로 청소년 관련 전문가와 동물 애호 센터, 청소년 자립 시설, 아동양호 시설, 견훈련 전문학교 등과 협력해 운영하게 된다.
청각도우미견 육성에는 삼성에버랜드가 훈련사 파견과 15년간의 훈련 노하우를 제공하게 된다. 삼성에버랜드는 미국 맥클라렌 소년교도소의‘POOCH(Positive Opportunities Obvious Change with   Hound)프로젝트’를 모델로 2006년 12월 천안소년교도소에 치료도우미견센터를 설립해, 소년 재소자들의 교정을 돕고 있다.
삼성은 1993년 시각장애인을 위한 안내견 사업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1백13마리의 맹도견, 4백88마리의 인명구조견, 17마리의 마약·폭발물 탐지견, 42마리의 청각도우미견 등 특수견을 양성해 장애인 및 정부기관 등에 무상으로 분양했다. 일본삼성 임직원들은 자원봉사로 프로젝트에 참가해 학생들을 위한 비즈니스 강좌, 커뮤니케이션 실습 등 자립을 위한 프로그램을 담당하게 된다.
이창렬 일본삼성 사장은 “미국 맥클라렌 소년교도소에서 개를 키운 소년범들의 재범률이 0%였다는 사실을 참고해 개를 통한 사회복귀 프로그램을 기획하게 됐다”며 “훈련과정을 통해 실제 효과가 있는 것으로 판명나면 오사카와 한국에도 프로그램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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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분오열’ 의료계 내분 내막

‘사분오열’ 의료계 내분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뚝심인가, 고집인가?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한 대통령의 뜻이 확고해도 너무 확고하다. 겉으로는 유연한 대처를 언급하면서 ‘2000명’이라는 수치는 굽히지 않을 기세다. 강 대 강 대치에 나섰던 의료계는 우왕좌왕하는 모양새다. 의료계 내부의 의견을 모으는 일도 쉽지 않아 보인다. <일요시사>와 인터뷰한 지방의대 A 교수는 의과대학 정원 확대를 밀어붙이는 윤석열정부의 강경 기조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정규군은 수뇌부만 처리하면 와해되기 쉽다. 하지만 현재 의료계는 게릴라 방식으로 대응 중이다. 주동자를 찾기 어렵고 실제 주동자도 없다. 전공의, 의대생 모두 조직의 통제하에 움직이는 게 아니라 본능에 따라 행동하고 있다. 윤정부 입장에서는 협상 대상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일괄 협상에 따른 일괄 타결은 어렵다고 본다.” 2월 이후 평행선만 실제 의료계는 대학의사협회(의협),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의대협) 등 여러 단체가 의대 정원 확대 정책에 개별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의대 정원 확대 반대’를 큰 틀로 하되 대응 방식이나 세부적인 요구사항은 각각 다른 상황이다. A 교수의 말대로 의료계는 현재 단일협의체가 없다. 협상테이블이 마련된다 해도 앞에 대표로 나설 사람이 없는 셈이다. 과거 의정갈등이 일어났을 때 주로 의협이 나서서 의료계 입장을 전달하고 대응을 이끌었다면 현재는 각개전투를 진행하고 있다. 이미 정부는 의협의 대표성에 대해 의문을 표한 상태다. 정부는 지난 2월 말 의협 대신 ‘대표성을 갖춘 협의체’를 구성해 의대 정원 확대 등에 대해 대화하자고 의료계에 요청했다. 의협이 전체 의사들의 대표성을 띠기 어렵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다. 당시 주수호 의협 비상대책위원회 언론홍보위원장은 “의협 회원엔 전공의·봉직의 등 모든 직역이 포함돼있고 모든 직역이 배출한 대의원 총회 의결을 거쳐 만들어진 조직이 비대위”라며 “정부가 의협의 대표성을 부정하는 이유는 내부 분열을 조장하기 위함”이라고 반발했다. 의협은 의료법에 근거해 모든 의사가 가입하는 법정 단체지만 개원의를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번 의정갈등 국면서 가장 선봉에 선 단체는 전공의가 모인 대전협이 꼽힌다. 전공의가 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해 병원을 떠나는 등 집단 강경 투쟁에 나서면서 의정갈등에 불이 붙었다. 의대생은 집단 휴학으로 힘을 실었다. 유급 마지노선에 이른 대학들이 수업을 재개했지만 의대생은 돌아올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집단사직에 나선 전공의가 여전히 버티고 있는 상황서 의대생의 복귀 가능성 역시 낮다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대통령실 1년 유예안 일축하면서도 ‘2000명 정원’ 논의 가능성 제시해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기준 학칙에 따른 형식적인 신청 요건을 지킨 의대생의 휴학 신청은 누적 1만242명으로 전체 의대 재학생 대비 54.5% 규모에 이른다. 의대생들의 집단 휴학과 수업 거부는 지난 2월부터 시작됐다. 대학 사이에선 이달 중순이 지나면 여름방학까지 총동원해도 유급을 막을 수 없다. 의대는 특정 수업서 3분의 1 또는 4분의 1 이상을 결석하면 낙제(F) 처리되고 F가 하나라도 나올 경우 유급이 되도록 학칙을 세워둔 곳이 많다. 전공의의 집단사직으로 병원 업무가 마비되고 일부 의료진에 업무가 과중되는 이른바 ‘의료대란’이 벌어졌다. 여기에 의대생의 집단 휴학은 의사 수급 부족 현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의료현장에 구멍이 생기면서 의사를 찾지 못해 환자가 사망하는 ‘응급실 뺑뺑이’ 사건도 일어났다. 문제는 정부의 태도다. 지난 2월6일 2025학년도 의대 입학 정원을 5058명으로 현행보다 2000명 늘리겠다고 발표한 이후부터 현재까지 요지부동 상태다. 정부는 2035년까지 1만명의 의사 인력을 확충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2006년 이후 19년 동안 동결됐던 의대 정원 확대를 예고한 것이다. 당시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는 발표 당시 의료계와 소통한 결과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지난해 10월26일 ‘의대정원 확대 추진계획’을 발표한 이후 40개 대학으로부터 증원 수요와 교육역량에 대한 자료를 받았고 현장점검을 포함한 검증을 마쳤다고 밝혔다. 의료계를 비롯해 사회 각계각층과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했다는 점도 언급했다. 특히 정부는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강조했다. 언론사 여론조사 등에서 의대 정원을 늘리는 문제에 대해 국민 10명 가운데 8명 이상이 ‘필요하다’고 응답한 것을 의미있게 언급했다. “흔들림 없는 의료개혁을 완수하겠다”는 정부의 입장에 국민의 응원을 지지대로 삼은 것이다. 요구 다른 의사단체 윤석열 대통령의 의지는 더 강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일 ‘국민께 드리는 말씀’ 대국민담화서 “역대 정부들이 9번 싸워 9번 모두 졌고 의사들의 직역 카르텔은 더욱 공고해졌다”며 “이제는 결코 그런 실패를 반복할 여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2000명이라는 숫자는 정부가 꼼꼼하게 계산해 산출한 최소한의 증원 규모”라며 “이를 결정하기까지 의사단체를 비롯한 의료계와 충분하고 광범위한 논의를 거쳤다”고 설명했다. 연구 결과를 들어 그 배경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윤 대통령은 “정부는 국책연구소 등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연구된 의사 인력 수급 체계를 검토했다. 수요 측면서 저출산 고령화와 같은 인구구조의 변화, 만성질환의 증가와 같은 질병구조의 변화, 소득 증가에 따른 의료수요 변화까지 반영했다”며 “어떤 방법론이더라도 지금부터 10년 후인 2035년에는 자연 증감분을 고려하고도 최소 1만명 이상의 의사가 부족하다는 결론은 동일하다”고 말했다. 의대 정원 확대 시기에 대해서도 정부는 가차없는 태도를 보인다. 대통령실은 지난 8일, 의협이 제안한 의대 증원 1년 유예안에 대해 “정부는 그간 검토한 바 없고 앞으로도 검토할 계획도 없다”고 밝혔다. 앞서 박민수 복지부 차관이 “내부 검토는 하겠고 현재로서 수용 여부를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내놓은 답변서 더 강경해진 입장이다. 대통령실은 1년 유예안을 받을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면서도 “만약 의료계서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근거, 그리고 통일된 의견으로 제시한다면 논의할 가능성은 열어놓고 있다”며 “열린 마음으로 임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팔짱 낀 정부 공은 의료계로 일각에서는 정부는 초지일관 원론적인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현재로선 ‘2000명’이 정부와 의료계 간 대화의 장벽이 되고 있다. 정부는 2000명이라는 수치를 꿋꿋하게 고수하고 의료계는 2000명 백지화가 대화의 선결 조건이라는 뜻을 굽히지 않는 중이다. 정부든 의료계든 어느 한쪽이라도 구부려야 맞닿는 법인데 평행선만 그리는 모양새다. 이 와중에 의료계는 내분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정부가 의료계에 요구하는 ‘통일된 의견’을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새 회장을 선출한 의협이 그 중심에 있는 상황이다. ‘강성’으로 꼽히는 임현택 의협 회장 당선인과 의협 비대위가 엇박자를 내고 있고 대전협의 박단 비대위원장도 의협 비대위와 갈등 조짐을 보이는 중이다. 현재 의협은 비대위원장과 차기 회장이 공존하는 상태다. 의협은 지난달 26일, 임 당선인을 차기 회장으로 선출했다. 임 당선인은 결선투표서 65%의 지지를 얻어 당선됐고 임기는 다음 달 1일부터다. 임 당선인의 등장으로 의협의 대정부 투쟁 수위가 올라갈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됐다. 임 당선인은 의대 정원 증원 철회를 비롯해 대통령의 사과와 책임자 파면을 요구하는 등 다른 의사단체에 비해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마찰음이 나온 건 ‘단일대오’를 구성하는 과정에서였다. 의협 비대위는 지난 7일, 기자회견서 전의교협, 대전협, 의대협 등과 함께 합동 기자회견을 이번주 안에 열겠다고 예고했다. 하지만 임 당선인이 이런 움직임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의협 비대위, 차기 회장·전공의 회장 갈등 삐걱거리는 단일대오에 대화 공전 가능성도 의협 회장직 인수위원회는 의협 비대위와 대의원회에 공문을 보내 임 당선인이 김택우 현 비대위원장 대신 의협 비대위원장직을 수행할 수 있도록 협조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는 ‘한 지붕 두 가족’ 상황의 의협 창구를 단일화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대전협 박 위원장도 의협 비대위와 불협화음을 내고 있다. 박 위원장은 자신의 SNS에 “의협 비대위 김택우 위원장, 전의교협 김창수 회장과 지속적으로 소통하고 있지만 합동 브리핑 진행에 합의한 적은 없다”고 적었다. 합동 기자회견은 일단 취소된 상태다. 박 위원장과 임 당선인의 갈등도 관심사다. 임 당선인은 지난 4일, 윤 대통령과 박 위원장의 비공개 만남에 불만을 드러냈다. 의협 비대위는 윤 대통령과 박 위원장의 만남을 ‘의미 있다’고 평가했지만 임 당선인은 SNS에 ‘내부의 적’을 운운하며 박 위원장을 강도 높게 비난하는 듯한 글을 남겼다. 박 위원장은 이 같은 보도 내용을 게시글에 공유하며 ‘유감’이라고 적었다. 전의교협은 의대 비대위에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다. 전의교협은 전국 40개 의과대학 교수협의회로 구성된 단체다. 김창수 전의교협 회장이 의협 비대위에 합류하면서 의료계 단일대오 구성이 빨라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통일된 의견을 내놓을 단일협의체 구성 속도에 따라 의정갈등의 타결 가능성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의협 비대위를 중심으로 단일대오를 구성하려던 시도가 임 당선인과 박 위원장의 행보로 삐걱거리면서 의료계 상황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처지가 됐다. 여기에 협상테이블이 마련돼 정부와 의료계의 대화가 이뤄진다 해도 합의까지 가는 데는 하 세월이 걸릴 것이라는 의견이 만만찮다. 입장차가 그만큼 첨예하다는 뜻이다. 타결까지 첩첩산중 일각에서는 정부와 의료계 모두 환자에 대한 배려는 뒷전에 두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월 이후 두 달 넘게 갈등이 계속되면서 환자들은 불편을 겪고 있고 일부 의료진은 업무 과중으로 그로기 상태에 빠졌다. 전공의가 떠난 병원은 매일 막대한 손해를 입고 있다. 정부와 의료계의 10번째 갈등이 어떤 결론으로 끝나느냐에 따라 의료계 지각변동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jsjang@ilyosisa.co.kr>